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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부록 [金缶錄] - 해제

G002+AKS-AA55_C14B^32_000 【체제 및 내용】 본 해제는 『金缶錄』의 기사중 ‘精言妙選’에 대한 해제입니다. 精言妙選(請求記號 : C14B^32) 李珥(朝鮮, 1536~1584) 選. 筆寫本(宣祖6, 1573). 5卷1冊; 31.2 × 17㎝. 율곡(栗谷)이 중국의 고체시와 근체시를 두루 선별해서 편찬한 시선집 『정언묘선』(精言?選)은 시가의 예술미에 입각한 율곡의 심미인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자료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사대부의 심미인식을 단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매우 유익한 정보를 거기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정언묘선』은 『율곡전서』(栗谷全書)에 습유(拾遺) 6편이 더해지던 영조 25년에만 해도 전8권에 이르는 그것의 완질을 이미 구할 수 없었고, 이후로 더욱 망실이 심해져서 이제는 극히 희귀한 문헌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판본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는 수용의 범위가 그리 좁지는 않았던 듯한데, 오늘날 잔본만 전하고 있을 뿐더러 그마저 아주 온전한 것이 아님은 자료의 가치를 생각할 때에 매우 아쉬운 일이다. 학계에 보고된 6종의 잔본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가. 사본 3종 ① 대구 김남형 소장 필사본, 7권 1책, 9항 20자. ②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필사본, 5권 2책, 10항 20자. ③ 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소장 필사본, 5권 1책, 8항 20자. 나. 판본 3종 ④ 대구 개인 소장 목판본, 3권 1책, 9항 20자. ⑤ 서울대학교 일사문고 소장 목판본, 3권 1책, 9항 20자. ⑥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목판본, 3권 1책, 9항 20자. 『정언묘선』의 판본은 모두가 제1ㆍ3ㆍ5권만 남아 있되 연세대학교 소장본이 가장 양호하고, 사본은 제7권까지 남아 있는 김남형 소장본이 가장 양호하다. 그런데 김남형 소장본은 단순히 서지에 관한 약간의 사실이 공개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판본의 한계가 엄연한 데다 김남형 소장본의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한에는, 연세대학교 사본과 장서각 사본을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이다. 장서각 사본은 서문을 비롯해서 제1권 「원자집」(元字集)으로부터 제5권에 해당하는 「인자집」(仁字集)의 일부까지 남아 있는데, 「인자집」은 두보(杜甫)의 「북정」(北征)을 끝으로 본문의 태반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오자ㆍ탈자가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또한 몇몇 작품에 붙인 율곡의 주석이 모두 온전하게 남아 있는 점에서 연세대학교 사본에 비하면 정확성과 신빙성이 높은 편이다. 특기할 바는, 「원자집」에 사혜련(謝惠連)의 「도의」(?衣) 후반과 왕유(王維)의 「춘일전가작」(春日田家作) 제목이 적히지 않은 점이고, 「정자집」(貞字集)에 두보의 「부성현향적사관각」(?城縣香積寺官閣)이 더 들어 있는 점이다. 『정언묘선』은 한(漢)ㆍ위(魏)ㆍ진(晉)ㆍ당(唐)의 오언고시를 시교(詩敎)와 심미(審美)의 차원에서 크게 중시하는 편집을 보이며, 시인으로는 도연명(陶淵明)과 위응물(韋應物)을 역대 최고로 평가하는 배치를 보인다. 체재의 이러한 특징은 그 자체가 율곡의 심미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바로서, 여기에는 풍격의 ‘충담소산’(沖澹蕭散), 넓게는 곧 소박미를 시가의 본원으로 규정하는 견해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율곡은 충담소산만을 중시했던 것이 아니고, ‘한미청적’(閒美淸適)과 ‘청신쇄락’(淸新灑落)을 비롯해서 ‘정공묘려’(精工妙麗)와 같은 여러 풍격을 두루 긍정하는 관점에서 이것들의 등차와 상호관계에 의거하여 각권을 편차했다. 따라서 『정언묘선』은 조선전기의 사대부가 시가예술을 통해서 추구했던 여러 심미범주와 그 체계를 파악하는 데에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된다. 『정언묘선』은 풍격과 시체(詩體)에 따라 분류된 각권의 시편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율곡의 심미인식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부분은 율곡이 손수 붙인 서문, 각권의 풍격에 대한 율곡의 서술, 각권의 시편에 찍어 놓은 율곡의 권점이다. 여기에서 특히 서문은 시가의 본질에 관한 규정적 판단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으로서 시가의 영역에 입각한 율곡의 심미인식을 집약하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주장이 그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미학사상은 심각한 탐색과 광범한 토론을 필요로 한다. 시는 비록 학자의 능사가 아니나, 성정(性情)을 음영(吟詠)하고 청화(淸和)를 선창(宣暢)하는 바이니, 이로써 가슴속의 더러움을 씻을 수 있다면, 또한 존성(存省)의 한 구실이라 할 것이다. 어찌 조회(雕繪)하여 수조(繡藻)하고 이정(移情)하여 탕심(蕩心)하려 베푸리오? (“詩雖非學者能事, 亦所以吟詠性情, 宣暢淸和, 以滌胸中之滓穢, 則存省之一助. 豈爲雕繪繡藻, 移情蕩心而設哉.” 精言?選序, 栗谷全書 13-25.) 율곡은 시가의 본질적 공능이 인간의 심성을 보살펴 기르는 데에 있음을 중시하여, 시가는 성정(性情)을 음영(吟詠)하고 심기(心氣)의 청화(淸和)를 선창(宣暢)하는 바로서 존성(存省)의 한 구실이 되는 것임을 천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율곡은 이른바 이정(移情)을 탕심(蕩心)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가운데에 그것을 엄중히 경계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문제가 따른다.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이른바 이정은 실로 불가결한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율곡이 이정을 엄중히 경계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율곡은 이것을 자세히 말하지 않았고, 따라서 커다란 문제로 남는다. 이정은 정(情)을 이역(移易)하는 심리의 작용을 말한다. 문학과 예술로 말하면, 특히 미적 이정은 인간의 정(情)을 진(眞)ㆍ선(善)의 차원에서 미(美)의 차원으로 이역하는 작용에 해당하며, 이러한 작용은 반드시 일정한 정(情)을 일정한 상(象)에 이입(移入)하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감정이입’(感情移入)이라고 부르는, 특히 미적 이정은 요컨대 자아(自我)의 정(情)을 외물(外物)의 상(象)에 이입해야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정은 정(情)과 상(象)의 통일을 가능케 하는 심리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정이 예술미를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거의 불가결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이정은 고금을 막론하고 시가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정을 완전히 배격하면, 시가의 태반은 그와 동시에 폐기될 것이고, 또한 존재의 상당한 일부가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율곡도 실은 이정을 모든 경우에 걸쳐서 철저히 부정하고 배격했던 것은 아니다. 율곡이 그 풍격을 충담소산으로 평가하여 『정언묘선』의 원자집에 수록한 작품만 보더라도, 여기에는 이정에 의한 표현이 뚜렷하게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작품을 권수에 수록한 만큼, 율곡은 이정을 모든 경우에 걸쳐서 통틀어 부정했던 것이 아니라 이정의 어떤 특수한 일면을 배격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특수한 일면은 반드시 그의 심미감정에 대척되는 어떤 속성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유가(儒家)는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하여 ‘불역이목’(不役耳目)을 존성의 방편으로 삼았다. 외물과의 관계에서 랭정을 유지하려는 심미태도가 여기에서 유래했던 듯하다. 그러나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 「신사」(神思) 편의 이른바 “산에 오르면 정(情)이 산에 가득하고, 바다를 보면 의(意)가 바다에 넘친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한, 인정의 당연한 소치이다. 이정은 심미활동의 거의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런데 유가는 이것을 두루 긍정하면서도 외물의 표상과 이로 말미암아 생긴 감정을 인식의 차원에서 엄격히 구별했다. 외물을 음영하되 이정을 극도로 억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심미태도는 유가의 미학사상의 핵심에 속하는 문제이고,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율곡의 『정언묘선』은 가장 친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