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인물지 [國朝人物志n1-3책] - 본문 번역 묶음 021
- 책 ID:
kh2_je_a_vsu_B9C^2_000
- 수록 기사: 75건
(정조조)정윤교
- 기사 ID:
B9C^2_003_090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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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54:27.74528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01
한글 번역
자(字)는 대천이고 호는 위암이다. 동래 사람으로서 이조 판서 수홍의 후손이다. 18세 때 아버지가 모함을 받아 목매는 형구에서 죽었다. 윤교는 예리한 칼을 만들어 몸에 숨기고 16년을 지나 아버지의 원수를 찔러 죽이고 관에 나아가 죄를 청했다. 아침에는 복수하고 저녁에는 죽음을 받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여러 달간 옥에 갇혀 고통과 고문을 충분히 당했다. 같은 고향 사람들이 함께 소리 높여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라 감사 원인손이 다섯 고을의 관리들을 불러 심문하여 결국 풀어주었다. 윤교는 세상일을 끊고 유수泉宋明欽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독음
자유대천호위암동래인이조판서수홍지후년십팔부피오사어형양윤교주리도장신십육년刺杀부讐詣관청죄시장복수석취력累월악소비경통독동향인사제성명원전라감사이인손회오읍조심리석지윤교사절인사수업우율천송명흠지원[梅山集]
의미
정조조 인물 정윤교의 효행 기사. 아버지가 억울하게 모함받아 죽자 18세의 나이에 복수를 결심하고 16년간 칼을 갈며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고 스스로 관에 가서 죄를 청했다. 당국에서는 옥에 가둔 채 여러 달간 고문했지만 고향 사람들이 연호하여 억울함을 호소했고, 전라 감사 원인손이 다섯 고을의 관료들과 함께 재심하여 풀어주었다. 풀린 후에는 세간을 떠나 유학자 宋明欽에게 수학했다. 효행과 신의, 그리고 의리의 실천을 보여주는 고전적 이야기이다. 본 기사는梅山集에서 보인다.
원문
字大遷號畏菴東萊人吏曹判書守弘之後年十八父被誣死於桁楊允喬鑄利刀藏身十六年刺殺父讐詣官請罪矢志以朝復仇夕就戮累月縲紲備經痛毒同鄕人士齊聲鳴冤全羅監司元仁孫會五邑倅審理釋之允喬謝絶人事受業于櫟泉宋明欽之門[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윤교 / 鄭允喬, confidence=0.98
- person: 수홍 / 守弘, confidence=0.95
- person: 원인손 / 元仁孫, confidence=0.97
- person: 송명흠 / 宋明欽, confidence=0.97
- place: 동래 / 東萊, confidence=0.98
- place: 전라 / 全羅, confidence=0.98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8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5
- term: 형양(목매는 형구) / 桁楊, confidence=0.85
- term: 악소(죄인의 옻감) / 縲紲, confidence=0.8
- term: 부수(아버지의 원수) / 父讐,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櫟泉(율천) - 地名으로 추정되나 확실한 고을 명칭 불명확
- 五邑倅(오읍조) - 다섯 고을의 수령이라는 뜻으로 해석, 고을 특정명은 미상
(정조조)박성한
- 기사 ID:
B9C^2_003_090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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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21:20.32744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02
한글 번역
자(字)는 사호이고, 호는 지곡산인이다. 음성 사람으로, 충민공 순의 뒤를 이은 자이다. 진사 장심의 아들이자, 기유(년)에 생원, 신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헌납에 이르고 그쳤다. 죽자, 저암(兪漢雋)이 말하기를 ‘실덕실행(實德實行)에 세상 유학자들이 감히 미칠 자가 있겠는가’ 하였으니, 군자(君子)가 이를 안다고 여겼다. 그 묘갈은 외제(外弟) 매산 홍직필이 찬술하였다.
독음
자 사호 지곡산인 음성인 충민공순지후 진사 장심자 기유 생원 신유 문과 관지고 헌납 급 졸 저암 유기한왈 실덕실행 세유 추감자 군자 의사언 자매자 매산 홍직필 찬 묘갈
의미
정조 연간에 활동한 박성한의 행장을 수록한 기사이다. 음성 출신으로 충민공 순의 후손이다. 기유년에 생원, 신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헌납에 이르렀으나 그쳤다. 그가 죽은 뒤 학자 유기한이 실덕실행(진정한 덕과 실천)에 대해 세상 유학자들이 미칠 바 못 된다고 평가하였고, 군자가 이를 올바른 안다고 여겼다. 묘갈은 외제 매산 홍직필이 지었다.
원문
字士章號紫閣山人陰城人忠愍公淳之后進士長欽子己酉生員辛酉文科官止獻納及卒著菴兪漢雋曰實德實行世儒疇敢及者君子以爲知言姊子梅山洪直弼撰墓碣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성한 / 朴聲漢, confidence=0.98
- person: 충민공 순 / 朴淳, confidence=0.95
- person: 장심 / 長欽, confidence=0.92
- person: 유기한 / 兪漢雋, confidence=0.96
- person: 홍직필 / 洪直弼, confidence=0.96
- place: 음성 / 陰城, confidence=0.97
- office: 헌납 / 獻納, confidence=0.93
- work: 묘갈 / 墓碣,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4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4
- term: 실덕실행 / 實德實行, confidence=0.91
- person: 매산 / 梅山,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장심(長欽)의 정확한 호칭과 관계
- 기유년·신유년의 절대 연도(생몰년대 미상)
- 자매자(姊子)의 정확한 의미(외제 외에 이모자 등 가능성)
(정조조)임태춘
- 기사 ID:
B9C^2_003_090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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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54:20.34639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03
한글 번역
임태춘은 자(字)가 자인이고, 호는 용옹이다. 서하(西河)의 출신으로서, 장령(掌令)을 지낸 징하(徵夏)의 증손이다. 천성이 지극한 효자여서, 부모가 병들면 반드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어 바쳤다. 부모의 상을 당해 서 있을 때 슬픔에 몸이 매우 야워져 거의 본성을 잃을 정도였다. 나중에 거취(擧業)를 그만두고 학문에 전력했다. 아들 천모가 있었는데, 자가 덕소이고 호가 취국이다. 역시 효행으로 소문이 났다. 천모에게 아들 헌회가 있었는데, 관직에 올라 찬선(贊善)에 이르렀다.
독음
자유인호용옹서하인장령징하증손천성지효부모병개자족혈거우훼적궤멸성만사거업전정학문유자천모자유덕소호취국역이효문천모유남헌회관지찬선
의미
정조조 시대의 인물 임태춘은 서하 출신으로, 장령을 지낸 징하의 증손이다. 천성이 지극한 효자로 부모가 병들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바쳤으며, 부모상으로 상을 당했을 때 슬픔에 몸이 매우 야위어 거의 미쳐 날뛰는 상태에 가까웠다. 이후 거취(科擧)를 그만두고 학문에 전력했으며, 아들 천모(덕소, 호 취국) 역시 효자로 소문이 났다. 천모의 아들 헌회는 관직에 올라 찬선에 이르렀다. 효행이 대물림된 가문이다.
원문
字子仁號聾翁西河人掌令徵夏曾孫天性至孝父母病皆刺指進血居憂毀瘠幾滅性晚謝擧業專精學問有子天模字德叟號醉菊亦以孝聞天模有男憲晦官至贊善
엔티티 후보
- person: 임태춘 / 任泰春, confidence=1.0
- person: 자인 / 子仁, confidence=1.0
- person: 용옹 / 聾翁, confidence=1.0
- place: 서하 / 西河, confidence=1.0
- person: 징하 / 徵夏, confidence=1.0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person: 천모 / 天模, confidence=1.0
- person: 덕소 / 德叟, confidence=1.0
- person: 취국 / 醉菊, confidence=1.0
- person: 헌회 / 憲晦, confidence=1.0
- office: 찬선 / 贊善, confidence=1.0
- term: 거취(과거 공부) / 擧業,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擧業은 통상 과거 시험 준비를 뜻하나,文中에서는 ‘擧’ 자만 남아 ‘擧業連書’로 쓰인 듯하다.全文이 극히 짧아文中脈絡外的으로 보인다.
(정조조)이행상
- 기사 ID:
B9C^2_003_090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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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21:01.20645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04
한글 번역
이행상은 자가 공려, 호가 왕림이며 연안 출신이다. 위기辛老의 손자요, 문강공 石亨의 후손이다. 도암 李縡에게 수업하였다. 갑진년에 건릉(정조의 능)中将冊儲祠를 세우면서 방방곳곳 경술의 선비를 구하였다. 조정이 행상을 응숩으로 천거하자, 광릉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아들 연구(延龜)가 있으며 가학을 잘 계승하였다. [주:梅山集]
독음
자 공려 호 왕림 연안인 위기 신로의 손자 문강공 석형 이후 수업하여 도암 이석에게 갑진 건릉 장책 축 사방 구 경술사 조청 이 행상 응숩授광릉 참봉 부취 일남 연구 선계술 가학 [주:매산집]
의미
조선 정조 시대 인물 이행상의 기록이다. 연안 출신으로 문강공 石亨의 후손이며, 도암 李縡에게 수학하였다. 정조가 건릉에 책축사를 세우며 경학 인재를 구할 때 응숩되었고 광릉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아들 연구가 가학을 계승하였다.
원문
字公履號旺林延安人翊衛莘老之孫文康公石亨之后受業于陶菴李縡甲辰健陵將冊儲祠旁求經術士朝廷以行祥應薦授光陵參奉不就一男延龜善繼述家學[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행상 / 李行祥, confidence=1.0
- person: 도암 이석 / 陶菴李縡, confidence=0.95
- person: 연구 / 延龜, confidence=0.9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1.0
- place: 광릉 / 光陵, confidence=0.95
- place: 건릉 / 健陵, confidence=0.95
- office: 참봉 / 参奉, confidence=0.9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장책축사: ‘將冊儲祠’를 建陵 옆에 세운다는 의미로 解釋하나 정확한 제도의 구체적 형태는 불확실
(정조조)박창모
- 기사 ID:
B9C^2_003_090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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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21:49.84700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08
한글 번역
자는 덕후, 상주 출신으로 이조판서 양생의 후손이다. 고조 시 거는 호를 미봉이라 하고 학문과 덕행으로 칭송받았다. 증조는 상태, 조부는是天, 아버지는 조신이다. 대대로 순수한 효도가 깊어 부자 간에 서로 모범이 되는 가문이였다. 창모는 세 살에 고아가 되었으나, 스스로 알아서 학문을 닦았다. 병든 부모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했다. 나아가 부모의 상을 당해 슬픔에 잠기어 거의 성품을 잃을 지경이었다.
독음
자 덕후 상주인 이조판서 양생 이후 고조 시 거 호 미봉 이학행칭 증조 상태 조사 천 아버지 조신 세 답순효 작절상망 창모 삼세이고 자시위학事变친 지효 급정우 애훼기멸성
의미
정조조 충추 박창모의 가계와 인물 소개 기사이다. 세 살에 부모를 여의었으나 스스로 학문을修身하며 병든 부모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한 인물이다. 대대로 효도가 깊어 부자 간에 서로 효행을 이어받은家门으로 묘사된다.
원문
字德厚尙州人吏曹判書良生之后高祖時龜號薇峯以學行稱曾祖尙泰祖師天父肇新世篤純孝綽楔相望昌模三歲而孤自知爲學事偏親至孝及丁憂哀毀幾滅性[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창모 / 朴昌模, confidence=1.0
- person: 양생 / 良生, confidence=1.0
- person: 시거 / 時龜, confidence=0.9
- person: 조신 / 肇新, confidence=1.0
- place: 상주 / 尙州,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이의병
- 기사 ID:
B9C^2_003_090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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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21:53:14.05212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09
한글 번역
자의(字)는 심(在心)이고, 호는 주암(疇菴)이다. 완산 사람으로,惠定公 염(濡)의 5대손이요,이조 판서文정公 최중지의 아들이다. 15세에 소심申公에게 수학하였다. 기대가 대단히 크시고 매번 소심하고 근신하라고 가르치셨다. 계사년(1793)에 생원이 되었고, 임인년(1792)에 이(二)李 옥사가 일어났다.文定公이 화를 입어楸子島에 유배되시며, 돌아보시며 의병에게 이르셨다. “앙륙을 당한 것은 비록 극심하지만, 이 일로 인해 창해(瘴海)를 떠나 낙지가 된다.” 의병이 천한 자의 복장을 갖추고 따랐으나,金吾郞가 호출하여 내쫓으니 함께 갈 수 없었다. 갑진년에 홀로 해가 지는 것이 꿈에 들어 마음이 동하여 즉시 떠났으니,,果然 아버지의 부음을 받았다. 병진년에 원을 호소하며中部都事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子和淵이 음부사가 되었다.
독음
자유심호주암완산인혜정공염의증손이자조판서문정공최중지의아들년십오세종학어소심신공대기심중매교이소심근신계사생원임인국이기문정공여화첩격어추자유돌이병몽천자복종지금오낭합축부득수행갑진홀락일입몽심동즉행과승부흉음병진우원수중부도사부취화자와연음부사
의미
李義秉(완산出身)는 이조 판书 최중지의 아들이다. 15세에申徽에게 수학하며 기대를 받았다. 임인년 二李 옥사 때 아버지가楸子島에 유배되자 의병이 천한 복장을 하고 따라가려 했으나金吾郞에게 쫓겨 함께 가지 못했다. 갑진년(1794)에 해가 지는 꿈을 꾸고 즉시 출발하여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후 병진년에冤을 호소하며中部都事 벼슬을 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원문
字在心號疇菴完山人惠定公濡曾孫吏曹判書文貞公最中之子年十五從學于素心申公期待甚重每敎以小心謹愼癸巳生員壬寅二李獄起文貞公罹禍荐棘于楸子島顧謂義秉曰遭罹雖罔極以斯事去瘴海樂地也義秉蒙賤者服從之金吾郞喝逐不得隨行甲辰忽落日入夢心動卽行果承父凶音丙辰籲冤授中部都事不就子和淵蔭府使[주:行狀]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의병 / 李義秉, confidence=1.0
- person: 소심 신공(申徽) / 申公, confidence=0.85
- person: 문정공 최중지 / 文貞公, confidence=1.0
- person: 자와 연 / 子和淵, confidence=0.9
- place: 추자유도 / 楸子島, confidence=1.0
- place: 완산 / 完山, confidence=1.0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중부 도사 / 中部都事, confidence=0.95
- office: 금오랑 / 金吾郞, confidence=0.9
- term: 이옥사건 / 二李獄,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호를 호소하다 / 籲冤, confidence=0.9
- person: 혜정공 염 / 惠定公,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금오郞의 직급과职能
- 음부사의 구체적 직책 내용
(정조조)이사병
- 기사 ID:
B9C^2_003_091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1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22:33.46617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10
한글 번역
자는 도삼이고, 예안인이었으며, 문정공의 시호가 붙었다. 이름은 간자이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질이 유독 뛰어났다. 열세 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슬퍼하는 마음조차 예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후로一经술에만 집중하여 정통하게 되었다. 도연(陶菴)이라는 호의 이승이 한천에서 도를 강의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나아가 배움길을 떠났다. 조정에서 태릉의 참봉 직임을 내렸으나, 그것을 受納하지 않았다.
독음
자는 도삼이요 예안인이며 문정공이시다. 간자라 하니 어려서부터 하늘이 주신 재질이 특별히 다르시었다. 열세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매 슬퍼함이 예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때로부터一经술에 정통하게 되셨다. 도연 이승이 한천에서 도를 강론한다길 듣고 그리로 가서 배움에 나아가셨다. 조정이 태릉 참봉을 제수하시었으나 부임하지 않으셨다.
의미
李師炳은 어려서부터 특출한 자질을 보였고, 아버지 상을 슬퍼하되 예도에 맞는 행실을 보였다. 이후一经술에 정진하였으며,知名한 학자 李縡의 수업을 받으러 한천까지 갔다. 조정에서 태릉 참봉 직을 제수했으나赴任하지 않았다. 조선后期的学问精深한 儒学者로서의 면모와 조정仕官을 기피한 태도를 보여주는 인물 기록이다.
원문
字道三禮安人文正公柬子自幼天分特異年十三父歿哀戚無違禮自是專精經術聞陶菴李縡講道于寒泉往學焉朝廷授泰陵參奉不就[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사병 / 李師炳, confidence=1.0
- person: 이승 / 李縡, confidence=1.0
- place: 한천 / 寒泉, confidence=0.9
- place: 태릉 / 泰陵,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1.0
- term: 슬퍼함이 예에 어긋나지 않다 / 哀戚無違禮, confidence=0.9
- term: 一经술에 정통하다 / 專精經術,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字道三禮安人文正公柬子의 호와 시호 구분 및 文正公이 정말 시호인지 추가 확인 필요
(정조조)이서
- 기사 ID:
B9C^2_003_091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1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23:12.75089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13
한글 번역
[이 인물은] 자(字)가 계호이고, 호(號)가 부계이며, 덕수 출신이다. 충헌공 㙫의 손자이고, 이조판서 주진의 아들이다. 성품이 무게있고 단중하였다. 기묘년에 세마관이 되었으며, 결국 목사가 되었다. 도菴 이학에게 학문을 배우고, 강론과薰陶을 받았으며, 나이가 들어서도 더욱 학문을 좋아하였다. 상사를 지키는 5년간 중문에 들지 않았다. 한 아들 학빈이 현감이 되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후사出去了. [주: 매산집에서 발췌]
독음
자[주:] 자 계호 호 부계 덕수인 충헌공 㙫의 손 이조판서 주진의 아들 성품이 무게있고 단중함 기묘년에 세마관이 되고 목사가 되니 학문은 도菴 이학을 배우고 강론薰陶하여 나이가 들어 더욱 학문을 좋아하며 상 중이다五年 중문에 들지 아니하니 한 아들 학빈은 현감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후사가 되었으니[주: 매산집]
의미
정조조 시대 인물 이학(李漵)의 기록. 충헌공 㙫의 손자로 이조판서 주진의 아들이다. 성품이 단중하고, 기묘년에 세마관이 된 뒤 목사가 되었다. 도菴 이학에게 수학하여 나이가 들어도 학문을 좋아했다. 5년간 상을 치르는 동안 중문에 들지 않았으며, 아들 학빈이 현감이 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 후사가 되는 바람에 가계가 이어지지 않았다. 매산집에서 인용된 내용이다.
원문
子[주:]字季浩號鄜溪德水人忠憲公㙫孫吏曹判書周鎭子性度凝重己卯爲洗馬官止牧使學十陶菴李縡講習薰陶老益好學居憂五年不入中門一男學彬縣監出繼人後[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학 / 李漵, confidence=0.95
- person: 계호 / 季浩, confidence=1.0
- person: 부계 / 鄜溪, confidence=1.0
- place: 덕수 / 德水, confidence=0.9
- person: 충헌공 / 忠憲公, confidence=0.95
- person: 준(준) / 㙫, confidence=0.9
- person: 주진 / 周鎭, confidence=0.95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세마관 / 洗馬官, confidence=0.9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
- person: 이학(도菴) / 李縡, confidence=0.85
- person: 학빈 / 學彬,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學十 - 학십으로 읽되 의미가 불확실.『십』자 주변에 이문(彝門) 관련 오류 가능성 있음
- 學彬縣監出繼人後 - 학빈의 현감직과 출계(出繼) 관계가 명확하지 않음
(정조조)조윤형
- 기사 ID:
B9C^2_003_091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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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24:05.05418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15
한글 번역
자는 시중이고 호는松下옹이다. 창녕 출신으로, 문충공 한영의 5세손이다. 서예의 필법으로 명가를 이루었다. 부모의 직책으로 관에 출사하여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독음
,字時中,號松下翁,昌寧人,文忠公漢英五世孫,以筆法名家,蔭仕至知中樞府事
의미
조선 정조 연간 인물 조윤형의 약력이다. 문충공 한영(조광응)의 5세손으로, 서예에 능하여 명가로 불렸다. 가문의 권익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종이품 관직인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주석상 상동(위와 같음)이라는 표시에서, 이 인물의 다른 항목 기재와 동일하게 초상관이나 출신 등 기본 정보가 상이함을 알 수 있다.
원문
字時中號松下翁昌寧人文忠公漢英五世孫以筆法名家蔭仕至知中樞府事[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윤형 / 曹允亨, confidence=1.0
- person: 시중 / 時中, confidence=1.0
- person: 송하옹 / 松下翁, confidence=1.0
- person: 한영 / 漢英, confidence=0.95
- title: 문충공 / 文忠公, confidence=1.0
- place: 창녕 / 昌寧, confidence=1.0
- office: 지중추부사 / 知中樞府事, confidence=1.0
- office: 중추부 / 中樞府, confidence=1.0
- term: 음직 / 蔭仕, confidence=0.9
- term: 필법명가 / 筆法名家,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문충공 한영의 구체적 신원(조광응으로 추정되나 주석상 표기 불일치 가능성), 음직 임용의 구체적 관직 단계
(정조조)이단전
- 기사 ID:
B9C^2_003_091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1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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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24:28.83874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17
한글 번역
자는 윤기였다. 출신은 낮았으나 재능은 뛰어났다. 시를 잘 짓고 서예에 능하여 한 시대에 명성이 컸다. 선비들과 교류하며 스스로 칵재(疋齋)라 호칭하였는데, 하(下)와 사람(人)을 따온 것으로 스스로를 비유한 것이다. 그의 청적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동楓 잎사귀가 소리 없이 떨어지고, 계곡의 구름이 고요히 일어나며 물소리가 난다.’ 또 다른 시에는 ‘노을이 남아 있는 힘을 다하고,浮雲은 스스로 허공의 모양을 바꾸누다’라는 구절이 있어 아름다운 시구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독음
자유윤기 지비이재고 공시선서 명동일세 여사대부유 자호칙재 종하종인 자황야 기청적시운 동협소소하 계운적적생수성 동시운 낙일무여력 부운자환용 의사야 준병몰
의미
조선 정조조 시대 인물 李亶佃의 전기이다. 그는 낮은 출신이었지만 시와 서예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한 시대에 명성을 얻었다. 스스로 ‘칵재’라는 호를 지어 사용했는데, ‘하’자와 ‘사람’자를 합쳐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 것이다. 그의 남긴 시 중 청적시와 관련한 두 작품의 우수구(佳句)를 전하고 있으며, 결국 병으로 요절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문
字耘岐地卑而才高工詩善書名動一世與士大夫遊自號疋齋從下從人自況也其聽笛詩云洞葉蕭蕭下溪雲寂寂生水聲洞詩云落日無餘力浮雲自幻容佳句也尋病沒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단전 / 李亶佃, confidence=0.95
- term: 칵재 / 疋齋, confidence=0.85
- work: 청적시 / 聽笛詩, confidence=0.8
- term: 자(호) / 字, confidence=0.9
- term: 선비 / 士大夫,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洞葉 - ‘洞楓’의 오기 가능성, 현재 원문에 ‘洞’만 표기됨
(정조조)천수경
- 기사 ID:
B9C^2_003_091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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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11:12.95680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18
한글 번역
자는 군선으로, 집안이 가난했으나 독서를 좋아했고 시를 짓는 데 뛰어났다. 옥류천 위에서 초庵을 짓고 스스로 송석도인이라 호칭하였다. 아들이 다섯이었는데, 맏아들은 松, 둘째는 石, 셋은 足, 넷은 過, 다섯은 何였다. 松石는 자신의 거처 이름에서 딴 것이고, 足은 셋아들이면 이미 충분하다는 뜻이며, 過는 넷이면 너무 많다는 뜻이며, 何는 그렇다면 다섯째는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뜻이다. 이것이 전해져 내려오며 웃음거리가 되었다. 세상에 유행하는 풍요 선집을 그가 직접 편집하였다. 수경이 죽은 뒤 제자 안시흑이 묘에 시인 천수경의 묘라 새겼다.
독음
자는 군선, 집이 가난하지만 독서를 좋아했으며 시에 능했다. 옥류천 위에서 초가를 짓고 스스로 송석도인이라 호칭했다.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松, 둘째는 石, 셋은 足, 넷은 過, 다섯은 何였다. 松石는 그 거처 이름을 딴 것이고, 足은 셋아들이면 충족하다는 뜻이며, 過는 넷아들은 넘친다는 뜻이며, 何는 그럼 다섯째 아들은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뜻이다. 전해져 내려오며 웃음거리가 되었다. 세상에 행해지는 풍요 선집(續選)을 그가 직접 편찬했다. 수경이 죽자 제자 안시흑이 묘에다 시인 천수경의 묘라 새겼다.[주: 호산외기]
의미
조선 정조대에 시인 천수경(자의 군선)의生平을記한 기사로, 가난했으나 독서를 좋아해 시에 능숙해지고 송석도인으로 자칭하여 옥류천에서 살았다. 다섯 아들에게 松石足過何라는 이름을 지어 풍자적 의미를 담았다는 점이 웃음거리가 되었다. 풍요 선집을 편찬했고, 사후 제자 안시흑이 묘비를 세웠다. 호산외기에 수록된 내용이다.
원문
字君善家貧好讀書工於詩結茅於玉流泉上自號松石道人有五子一松二石足三四過五何松石以其居名之足則三子足矣過則四子過矣何則五子何事之意也相傳爲笑資世所行風謠續選乃其手輯也壽慶沒其及門安時赫題墓曰詩人千壽慶之墓[주:壺山外記]
엔티티 후보
- person: 천수경 / 千壽慶, confidence=1.0
- person: 군선 / 君善, confidence=1.0
- person: 안시흑 / 安時赫, confidence=1.0
- person: 송석도인 / 松石道人, confidence=1.0
- place: 옥류천 / 玉流泉, confidence=1.0
- work: 풍요속선 / 風謠續選, confidence=0.9
- work: 호산외기 / 壺山外記,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이파계
- 기사 ID:
B9C^2_003_091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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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25:26.45666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19
한글 번역
기녀의 무용시에서 이르기를, ‘한나라의 정원에는 봄바람에 나비의 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진의 누각에는 새벽달이 떠오르니 봉황의 날이 약속되어 있건만, 이 사이에서 오렌지를 던지니 마침내闲暇이 없도다. 헛되이 양주를 지나가는 두목지 같으니라’
독음
기무시云 한원 춘풍 나비영 진루 효월 봉황기차 간에 투자終무하오 허과 양주 두목지
의미
봄날 한원의 나비와 진루의 달빛이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오렌지를 던지며 보내는 나날이 결국 한가롭지 못함을 한탄하는 시. 끝에서 두목지가 양주 경치를 바라보며 세월을 헛되이 보냈던 것과 같이, 나도 이 아름다운 봄을 허공처럼 보내고 만다는 서정적 서정시를 짓고 있다. 사행시 형태로 제작된 기녀 노래로 추정된다.
원문
妓舞詩云漢苑春風蝴蝶影秦樓曉月鳳凰期此間投橘終無暇虛過楊州杜牧之
엔티티 후보
- person: 두목지 / 杜牧之, confidence=0.95
- person: 이파계 / 李芭溪, confidence=0.7
- place: 한원 / 漢苑, confidence=0.9
- place: 진루 / 秦樓, confidence=0.9
- place: 양주 / 楊州, confidence=0.95
- term: 투자 / 投橘, confidence=0.5
불확실한 어휘
- 投橘(橘을 던지다) - 구체적 의미가 불확실하며 오렌지 선물·귁을 던지다 등 여러 해석 가능
- 芭溪(파계) - 人名표기에서 芭자의 독음과 해당 인물의 정확한 한국어 성명 미확인
- 終無暇(종무하) -終에 ‘마침내’ 또는 ‘항상’의 의미 부여 가능
(정조조)김락서
- 기사 ID:
B9C^2_003_092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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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55:24.36504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20
한글 번역
규장각의 연사였으니, 그의 아들 희영(羲齡)이 아버지의 시와 문장 千五百여 편을 가지고 나에게 서문을 구하였다. 대략 인륜에 깊이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독음
규장각 연사야 그 아들 희영이 그 시와 문장 千五百餘篇으로 나에게 서문을 구하니 대개 인륜에笃하다
의미
조선 정조 시대 규장각 관료 김낙서의 아들 희영이 아버지의 시문 작품 千五百여 편을 모아 서문을 구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김낙서가 인륜에笃(두텁고 소중)한 가문을 이룬 인물임을 보여준다.
원문
奎章閣掾史也其子羲齡以其詩若文千五百餘篇求序於余蓋篤於人倫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낙서 / 金洛瑞, confidence=0.95
- person: 희영 / 羲齡, confidence=0.9
- office: 규장각 연사 / 奎章閣掾史, confidence=0.95
- term: 인륜 / 人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장혼
- 기사 ID:
B9C^2_003_092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2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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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7:37:21.06791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21
한글 번역
자는 원일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깊고 후하며 내면이 밝았다. 어머니 곽씨가 서적을 풀어 가며 시험을 행하자, 서적을 묘하게 통달하여 깨달았다. 한 번 보자 곧 외웠다. 집안이 가난하여 친히 땔나무와 물 일을 맡았다. 막 성장하여 사부서를 훑어博览하였다. 특히 시에 능하였다. 지은 시가 하나 나오면 다투어 전하여 읽었다. 성실한 효행은 하늘에 근본을 두었다. 비록 온전한 옷이 없었지만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극진히 대접하며 오십 년 동안 자상하게 섬겼다. 먼저父母의 뜻을 받들어 따랐다. 매일 밖에서 돌아와서는 하루 동안 한 일을 고하고,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제야 물러났다. 아버지가 풍질로 중병에 걸려 삼 년 동안 고생하자, 혼은 이미 오십을 넘어 있었으면서 清潔하지 않기를 빌며 하늘에 기도하고 정성껏 간호하였다. 순조 무자년에 일흔 살로 세상을 떠났다. 지은 것이文集이 있다. 아들은 창과욱이다.
독음
자 원일, 자유 총후 내명. 모 곽씨 해서사 시수기지 서려연 통오. 일과 자 첩송. 가빈 궁집 채수지 로. 보 성동 박통 사부서. 우장어 시. 제영 일출 증상 전송. 성효 근천. 슈신 무완의 이 극기 감지사친. 오십년 완용 동속. 선사 승지. 매일 자외而来必告 종일 소위. 합지 하여后退. 부환 풍현 침면 삼재. 혼시 이 유 오십. 장 뤼 기도천竭力 장양. 순조 무자 졸년 칠십. 소재 유 집. 이유 자 창욱.
의미
정조조 시대 인물 장혼의 行狀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한 번 보면 바로 외웠고,家境이 가난했음에도 시文에 능하여 人们이 다투어 전하였다. 무엇보다 평생 부모를 성실하게 섬기며, 아버지的风眩 병 간호를 정성껏 하였다. 순조 무자년(1808)에 일흔 살로 사망하였다. 아들 장창과 장욱이 있었고,文集이 전해진다.
원문
字元一自幼重厚內明母郭氏解書史試授之書犂然透悟一過自輒誦家貧躬執柴水之勞甫成童博通四部書尤長於詩題詠一出爭相傳誦誠孝根天雖身無完衣而極其甘旨事親五十年婉容洞屬先事承志每自外而還必告終日所爲頷之而後退父患風眩沈綿三載混時已踰五十嘗穢禱天竭力將養純祖戊子卒年七十所著有集二子昶旭[주:斐然箱抄]
엔티티 후보
- person: 장혼 / 張混, confidence=0.98
- person: 곽씨 / 郭氏, confidence=0.95
- person: 창 / 昶, confidence=0.95
- person: 욱 / 旭, confidence=0.95
- place: 정조조 / 正祖朝, confidence=0.99
- term: 사부서 / 四部書, confidence=0.85
- term: 제영 / 題詠, confidence=0.88
- term: 풍현 / 風眩, confidence=0.82
- work: 장혼집 / 集, confidence=0.8
- term: 성효근천 / 誠孝根天,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書犂然透悟의 犂자 뜻이 명확하지 않음
- 完容洞屬의 문장 구조 해석이 불확실함
(정조조)왕태
- 기사 ID:
B9C^2_003_092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2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21:56:03.50916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22
한글 번역
글자(자)는 보경이고, 이름은 한상이니 호는 수리이다. 고려 맹주려씨의 후손이다. 가난하여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24세에 술집 주인 김옹에게 술을 나르는 일을 하며, 남은 시간에 책을 읽었다. 김옹이 꾸짖어 막자, 보경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책을 품에 넣고 걸으며 읽었다. 어떤 날 솥 아래 불빛에 맞춰 소리 없이 외웠다. 김옹이 그의 뜻을 기이하게 여겨 매일 초 한 개를 주어 밤에 읽을 자금을 마련해 주었다. 이로써 문사가 크게 진보하였으나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번은 금호문 밖에서 밤 근무를 서다가, 그날 달이 밝았으므로 땅굴 위에서 상서 한 장을 읽으니 소리가 종이나 돌처럼 울렸다. 이때 윤행인이 지나가다 듣고 기이하게 여겨 수레를 세우고 불러 만났다. 보경은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이 추하며 옷이 찢어져 있었다. 윤행인이 놀라 말하기를, ‘어찌 강청 야소연지(江淸夜少煙)의 왕한상이 아니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임금의 들음으로 선천하여 시를 지으니 수보 만에 이루어, ‘화풍생조막욱일영단문(和風生皁幕旭日映丹門)’의 구절이 있어 한 세상에 퍼졌다. 무과에 급제하여 조령별장이 되었다가 세상을 떠났다.
독음
자보경일명한상호수리연씨예야빈무이자자원년이십사위주가금옹보배행여유능독서옹하지지녕회서행차독혹조솅화묵송옹기기지일급촉일주위야독자자유문사대진인무식자상전기건강문외시야월명종토효중송상서일장성출금석시윤행인과문이차정차소견지붕두추면이의란여야윤행인경일기의비강청야소연지왕한상야내철신선조사시수보성유화풍생조막욱일영단문지구파전세무과위조령별장 졸
의미
이 기사는 조선 정조 연간에 무과에 급제하여 조령별장이 된 인물 왕보경(한상)의 초상기이다. 어린 시절 술집에서 일하며 곤궁했으나 밤마다 독서를 멈추지 않은 근면함과 금호문 밖에서 상서를 낭송하다 윤행인에게 발탁받은 인연, 그리고 초래되어 시를 지어 한 세상에 화제가 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화풍생조막욱일영단문(和風生皁幕旭日映丹門)의 시구가 세상을 놀라게 한 그의 재주를 보여준다. 고려 왕실의 후손이 술집 종일에서 벼슬길에 오른 역경의 모범 사례로 기록된 것.
원문
字步庚一名漢相號數里麗氏裔也貧無以自資年二十四爲酒家金媼保杯行餘猶能讀書媼呵止之乃懷書行且讀或照爨火默誦媼奇其志日給燭一炷爲夜讀資由是文辭大進人無識者嘗踐更於金虎門外是夜月明從土窖中誦尙書一章聲出金石時尹行恁過聞而異之停車召見之蓬頭醜面而衣襤如也尹行恁驚曰豈非江淸夜少煙之王漢相耶乃徹宸聽宣召賦詩數步而成有和風生皁幕旭日映丹門之句播傳一世武科爲鳥嶺別將卒
엔티티 후보
- person: 왕보경 / 王太, confidence=0.95
- person: 김옹 / 金媼, confidence=0.9
- person: 윤행인 / 尹行恁, confidence=0.95
- person: 왕한상 / 王漢相, confidence=0.95
- place: 금호문 / 金虎門, confidence=0.95
- place: 조령 / 鳥嶺, confidence=0.9
- office: 별장 / 別將, confidence=0.95
- term: 강청야소연지 / 江淸夜少煙, confidence=0.85
- term: 화풍생조막욱일영단문 / 和風生皁幕旭日映丹門,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정민수
- 기사 ID:
B9C^2_003_092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2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7:12:04.93792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24
한글 번역
자(字)는 기범(豈凡)이고 호는 벽산(碧山)이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궁핍하게 지냈다. 어머니를 효성스럽게 봉양하여 쌀과 물조차度度 궁핍하였고, 맨발에 왼쪽은 신발, 오른쪽은 목에 걸치고 다니며 시장에서粥(죽)를 팔아 하루를 먹고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보름날과 초파일날마다 묘지에 나아가 반드시 제물을 갖추었으며, 어깨에 메고 걸어갔다. 3년을 지내면서까지 풍우와 추위 더위로 중단한 적이 없었다. 평소 의학을 배웠으나 이루지 못하고 시를 즐겨 했다. 사십오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배가 불룩하고 머리카락이 섞여 있었다. 이에 아내와 서적들을 늘어싸고 적성(積城)의 암거천(巖居川)에 거처하였다. 세상이 큰 기근에 만나 도망민들이 밤에 그 집을 약탈하였다. 白挺(무棍)을 들은 자가 수십 명이었는데, 민수는 달개 사이로 짧은 죽대(短筇)를 내밀며 말하기를, 누가 무기가 있겠느냐, 너희가 어찌 나를 어쩌겠느냐 하였다. 도적이 크게 웃었고, 민수도 크게 웃었다. 이에 문을 열어 들어가며 말하기를, 장물이 있으니 다 가져가도 된다 하였다. 손에松明(松明)을 잡고 불을 켜어 사방 벽과 문을 비추니, 안에는 다만 물레방아一台와 수函의 책뿐이었다. 도적이 이에 함께 물러갔다. 한편 누군가가 그이의 삿갓을 훔치려 하자, 민수가 도적에게 타이르기를, 하나의 낡은 삿갓에 인색한 게 아니라, 어찌하여 내가 사직을 베풀고 객인을 대접하러 가면서 관을 벗겠느냐 하였다. 도적이 웃으며 되돌려주었다. [주:恩誦堂集]
독음
자유기범호벽산소고부모효서수리공적각좌여우경출시粥일이위양모몰삭망전묘필구전수견이행종삼년미상풍우한서폐야소학의불성기음영년사십오시취처파복이발종종수혜처낭서적거어적성암거천치세대기류민야겁기려조백정자수십인민수종려隙시단공왈수무기기이어여하재대소민수역대개호입지의유장물도가치거수패명화조사벽호내유일방송차수함서적而已재내여인자유유절취기리자민수유어적왈일폐립비소겸야기사양관이승제제견빈객왈재소환지
의미
정민수(호 벽산)는 어린 시절 궁핍하게 어머니를 효성스럽게 봉양하였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도 3년간 보름과 초파일마다 제사를 지냈으며, 의학을 배웠으나成就 못하고 시를 즐겼다. 45세에 거처한 뒤 적성의 암거천에居住하던 중 큰 기근 때 도적떼가 찾아왔으나, 칼도 없이 짧은 죽대만 내밀며 대담하게 대응하였다. 빈곤한 집안 상황을 보여주자 도적들이 물러갔고, 훔치려던 삿갓도 돌려받았다. 清貧하면서도 절개를 지킨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출전은恩誦堂集이다.
원문
字豈凡號碧山少孤貧事母孝菽水屢空赤脚左履右屐出市粥日以爲養母沒朔望展墓必具奠需肩擔而行終三年未嘗以風雨寒暑而廢也素學醫不成嗜吟詠年四十五始娶妻皤腹而髮種種遂挈妻囊書籍居於積城巖居川値歲大飢流民夜劫其廬操白挺者數十人民秀從籬隙示短筇曰誰無器械爾如我何賊大笑民秀亦大笑卽啓扉入之曰有長物都可持去手松明火照四壁戶內惟一紡車數函書而已賊乃相與引去有竊取其笠者民秀諭於賊曰一弊笠非所慳也豈使我且免冠而承祭祀見賓客乎賊笑而還之[주:恩誦堂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정민수 / 鄭民秀, confidence=1.0
- person: 기범 / 豈凡, confidence=1.0
- place: 벽산 / 碧山, confidence=1.0
- place: 적성 / 積城, confidence=1.0
- place: 암거천 / 巖居川, confidence=1.0
- work: 은송당집 / 恩誦堂集, confidence=1.0
- term: 서수 / 菽水, confidence=1.0
- term: 적각 / 赤脚, confidence=1.0
- term: 백정 / 白挺, confidence=1.0
- term: 삭망 / 朔望, confidence=1.0
- term: 송명 / 松明,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屐의 정확한 형태
- 種種이 노령의 묘사인지 식물 묘사인지
(정조조)김홍도
- 기사 ID:
B9C^2_003_092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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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사능이고 호는 단원이다. 그림에 능해서 산수와 인물, 화초와 새의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모두 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정조 때 내정에 시종하며 매번 그림을 바치면 항상 임금의 마음을 얻었다. 한 번은 크게 흰 벽을 만들고 해상의 선자들을 그려 넣으라고 명을 내렸다. 환자를 시켜 진한 먹 수 승을 들게 하고는, 그는 모자를 벗고 옷자락을 여미고 서서 먹을 부었는데 마치 비바람 같았고 시간을 얼마 안 있어 완성했다. 아버지의 은전으로 벼슬하여 연풍현감이 되었고, 금강산 사군 지역의 산수 그림을 그려달라는 명이 내려졌으며, 각 군에 마련한 음식 등을 공급하게 하였으니 모두 특별 한 대우였다. 집이 가난하여 때로는 끼니도 잇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아주 기이한 매화를 팔았는데 살 돈이 없었다. 마침 그림을 청하는 예전 삼천전이 있었기에 그중 이천냥을 써서 매화를 사고, 팔백냥으로 술 여러 되를 사서 동지들을 불러 모아 매화향연 을 베풀었고, 이백냥을 남겨서 쌀과 연료비에 충당했다. 하루를 넘기지 않을 계획을 세울 정도로 소탈하고 넓었으니 이러하다. 아들 양제는 자가千里이고 호는 경원인데, 역시 그림을 그려 집안의 법을 전수받았다. [주: 호산외기]
독음
자사능호단원 공화산수인물화초능모 무불지묘 정조사供奉內廷 매진일화첩칭지尝试분액거벽 명화해상군선 사환자봉농묵수승 탈모섭의이립휘호약풍우 불수시이성主要以음보관지연풍현감 명사진강산사군산수 영열군추공 개이사야 가족 빈혹식불계 유인판매일매심기 무금가역 적유乞畫贄전삼천 내연 이천역매以往八百沽주수두 취동지작매화음 이백위미신자 불일일 계기소학여시 자양제자량千里호경원 역화유가법 [주:호산외기]
의미
조선 정조 때 유명 화가 김홍도의 일화를 수록한 기사다. 그는 산수와 인물, 화초와 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정조의 총애를 받아 내정에 시종했다. 바다 위 선자들을 거대한 흰 벽에 그려 넣은 일화가 특히 유명한데, 환자에게 먹을 들게 하고 모자를 벗고 옷을 여미며 재빨리 그려 넣었으며 폭풍우처럼 빠른 속도로 완성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은전으로 연풍현감이 되었으며, 금강산 사군 그림을 그리는 특별 한 임무를 받은 것도 기록되어 있다. 가난하여 끼니조차 잇지 못할 때도 예전 삼천냥 중 이천냥을 써서 기이한 매화를 사고, 남은 돈으로 술과 음식을 마련해 동지들과 매화향을 베푼 일화는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과 소탈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아들 김양제(良驥)도 자는千里이고 호는 경원으로 아버지의 그림법을 이었다.
원문
字士能號檀園工畫山水人物花草翎毛無不臻妙正祖朝供奉內廷每進一畫輒稱旨嘗粉堊巨壁命畫海上群仙使宦者捧濃墨數升脫帽攝衣而立揮毫若風雨不數時而成以蔭補官至延豐縣監命寫金剛山四郡山水令列郡廚供皆異數也家貧或食不繼有人售一梅甚奇無金可易適有乞畫贄錢三千乃捐二千易梅以八百沽酒數斗聚同志作梅花飮二百爲米薪資不一日計其疏曠如是子良驥字千里號肯園亦畫有家法[주:壺山外記]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홍도 / 金弘道, confidence=0.98
- person: 김양제 / 金良驥, confidence=0.95
- place: 연풍현 / 延豐縣, confidence=0.95
- place: 금강산 / 金剛山, confidence=0.98
- work: 호산외기 / 壺山外記, confidence=0.92
- term: 해상군선 / 海上群仙, confidence=0.85
- term: 매화음연 / 梅花飮,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분액(粉堊, 흰 벽 회칠)
- 추공(廚供, 음식 제공의 구체적 방식)
- 贄전(예전, 그림 의뢰 시 예우금)
- 八百沽酒(팔백냥으로 술 삼은 구체적 수량)
(정조조)전기
- 기사 ID:
B9C^2_003_092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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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가 위(瑋)이고, 또 하나의 이름은 기옥(奇玉)이며, 호는 고람(古藍)이다.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하며, 깊은 정서와 고풍의 운치가 가득하다. 진·당 시대 그림 속 인물과 같았다. 산수와 연기·구름을 그려 적막하고 소탈하며 간략한 화풍을 펼쳐 元代 화가들의 묘경에 이르렀다. 필意的 임에는 때로 도달하지만, 元代를 배워서가 아니라 元代와 본래 같은 사람이었다. 시를 지으면 기이하고 깊이가 있어 세상을 능가했다. 나이 서른에만 집에서 병으로 죽었다. 또峯(우봉) 조희용이 시로 슬퍼하며 말했다. ‘자네는 문득 천고의 객이 되어 종말의 남은 빚은 완전히 고독하네. 비록 흙이 정 없는 물건이라 하나, 나무가 썩으면 이 사람 열 손가락이 없겠구나.’
독음
자위공일자유기옥호고람기이수유정고운앙연여진당화중인작산수연운소료간담첩조원인묘경필의우도비학원이너자者也위시칙기오개세년긴삼십병졸인가우봉조희용시곡왈자자유위천고객진환여채의전고수운토양비정물과수사인십지무
의미
정조조 화가兼 시인 田琦의 전기이다. 호는 고람, 자는 공이며, 진·당 시대 그림 속 인물처럼 풍류 있는 인물이었다. 산수화에서 元代 화가들의 묘경에 도달했으나, 元代를 배우지 않아도 본래 같은 화풍을 지녔다. 시에서도 기이하고 깊이 있어 세상을 능가했으나, 서른 살에 병으로 집에서 사망했다. 친구 조희용이 시로 애도하며 그를 천고의 객이라 칭하고, 才華로운 화가가 세상을 떠났음을 슬퍼했다.
원문
字瑋公一字奇玉號古藍頎而秀幽情古韻盎然如晉唐畫中人作山水煙雲蕭寥簡澹輒造元人妙境筆意偶到非學元而元者也爲詩則奇奧蓋世年僅三十病卒于家又峯趙煕龍以詩哭曰自子遽爲千古客塵寰餘債意全孤雖云土壤非情物果朽斯人十指無[주:壺山外記]
엔티티 후보
- person: 전기 / 田琦, confidence=0.95
- person: 자가 위(자 공) / 字瑋公, confidence=0.95
- person: 기옥 / 奇玉, confidence=0.95
- person: 고람 / 古藍, confidence=0.95
- person: 조희용 / 趙煕龍, confidence=0.95
- person: 우봉 / 又峯, confidence=0.9
- term: 원대 화가 / 元人, confidence=0.9
- work: 호산외기 / 壺山外記,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박화문
- 기사 ID:
B9C^2_003_093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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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화문의) 자(字)는 도기이다. 고령인(高靈)의 현감(縣監) 경진(敬鎭)의 손자이며, 입체헌(挹翠軒) 음지(誾之)의 아들이다. 이후 아버지의 명에 따라 백운산인(白雲山人) 기허(綦許)에게 수학하니 (기허가 화문을) 매우 총애하였다. 백운산인이 추소(追削)의 형률을 받게 되자, 화문은 화순현감이었던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혹시 백운산인을 저주하는 자가 있었는데, 화문이 말하기를, ‘제자에게 대하여 그 스승을 비방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독음
자도기 고령인현감 경진지 손 입체헌 음지지 후 이 부명 종학어 백운산인 기허 심중 및 산인 피 추소지율 화문 이 화순현감 기관귀或有詛산인자 화문왈 대제자 이 훼기사 가호
의미
정조조(正祖朝) 인물 박화문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화문은 고령인현감 경진의 손자로, 백운산인 기허에게 수학하여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스승 기허가 추소(追削)의 처벌을 받게 되자, 화문은 화순현감 벼슬을 버리고 관직을 떠났다. 나아가 스승을 비방하는 사람에게 ‘제자가 스승을 헐뜯을 수 있겠는가’라며 도덕적 불쾌감을 드러냈다. 스승을 향한 불리한 처벌 앞에서도 관직을抛하고 충절을 지킨 사례이다.
원문
字道器高靈人縣監敬鎭之孫挹翠軒誾之后以父命從學於白雲山人綦許甚重及山人被追削之律和文以和順縣監棄官歸或有詛山人者和文曰對弟子而毀其師可乎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화문 / 朴和文, confidence=0.95
- person: 경진 / 敬鎭, confidence=0.95
- person: 입체헌 / 挹翠軒, confidence=0.9
- person: 음지 / 誾之, confidence=0.95
- person: 백운산인 / 白雲山人, confidence=0.95
- person: 기허 / 綦許, confidence=0.95
- place: 고령인현감 / 高靈人縣監, confidence=0.85
- place: 화순 / 和順, confidence=0.9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term: 추소 / 追削,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挹翠軒은 호(號)인지 명칭인지 불확실
- 字道器의 띄어읽기 해석이 단의어인지 확인 필요
(정조조)임정주
- 기사 ID:
B9C^2_003_093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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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임정주의 글자는 직고이고, 호는 운호이며, 본성은 풍천 사람이다. 아버지는 판관의 적자이다. 형인 녹문 성주와 함께 주산의 천운루에서 공부하였다. 임오년에 사마에 합격하여 동몽교관에 올랐다. 역대 관직의 연혁과 득실을 꿰뚫어 꾀하였다. 임금이 말씀하기를, “当今의 큰 학자를 빼고는 너밖에 없겠구나.” 하였다. 지은 책으로 『속예록』이 있다. 벼슬은 현감에서 그쳤다.
독음
자직고호운호풍천인판관적자여형녹문성주강학우주산지천운루임오사마배동몽교관역대연화득실여송기언상왈당금석유시설어기수소저유탁예류속임정주
의미
정조조 시대 인물 임정주의行跡을 수록한 기사이다. 풍천 사람으로 판관의 적자출신이며, 형 성주와 함께注山 천운루에서 공부하였다. 임오년 사마 합격 후 동몽교관에 오르며, 역대 관직의 연혁과 득실을 꿰뚫어 꾀하여 임금으로부터 당금의 석유라는 평가를 받았다. 저작 『속예록』이 있으며, 벼슬은 현감에서 그쳤다.
원문
字穉恭號雲湖豐川人判官適子與兄鹿門聖周講學于注山之天雲樓壬午司馬拜童蒙敎官歷代沿革得失如誦己言上曰當今碩儒捨爾其誰所著有夙預錄官止縣監
엔티티 후보
- person: 임정주 / 任靖周, confidence=1.0
- person: 직고 / 穉恭, confidence=1.0
- person: 녹문성주 / 鹿門聖周, confidence=0.95
- place: 풍천 / 豐川, confidence=0.95
- place: 주산 / 注山, confidence=0.9
- place: 천운루 / 天雲樓, confidence=0.95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동몽교관 / 童蒙敎官,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work: 속예록 / 夙預錄, confidence=0.95
- term: 사마 / 司馬,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조유선
- 기사 ID:
B9C^2_003_093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3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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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30:27.95617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35
한글 번역
자는 자순, 호는 나산(蘿山)·직산(稷山)이다. 시조 성좌는 백제 온조왕 때 직산백(稷山伯)에 봉해졌고, 후손들이 이에 따라 그곳에 세적하게 되었다.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에게 수학하고, 동지들과 함께 서당을 열어 나산 꼭대기에 거처하며 학규를 세워 한쪽 지역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영조 신묘(辛卯)년에 사마(司馬)가 되었고, 정조 무신(戊申)년에惠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이어苑署奉事로 옮겨 상주하기를, ‘본서(本署)는 成忠文公 三問의 옛 집입니다. 돌아받을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상이 말씀하기를, ‘돌려받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돌려줄 곳이 없으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대답하기를, ‘자손이 없다면 마땅히 별도로 문자를 세워 앞으로 세상에 믿음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하였다. 상이 명하여 그事的을 서술하게 하고 관에 게시하게 하였다. 관직은 현감에 이르렀다.
독음
자자순호나산직산인시조성좌백제온조왕봉직산백자손수적언 수학위미호금원행여동지개서거업어나산정상립학규위일방창언 영조신묘사마 정조무신제혜릉삼봉 이동원서봉사주왜 본서시성충문공삼문고택청축환 상왈축환비난이미무가환처고부득위야 대왈무자손즉당별립문자징신래세 상명술기사揭板 관지현감
의미
조선 정조조 시대 管理職官 趙有善의的行履이다. 학자 金元行에게 수학하고 나산에서 서당을 열어地方 교육에 앞장섰으며, 영조조에 사마가 된 뒤 정조조에惠陵參奉으로 벼슬길에 진출하였다. 成忠文公 三問(성충문공 삼문)의 옛 집이 있는 본서(苑署)의 관직에 옮기면서 그 집을 되찾아달라고 상소하였다. 왕은 돌려줄 곳이 없다는 현실적 사유를 들었으나,趙有善은 자손이 없으면 문자를 세워 기록으로 남기자고 반문하였다. 왕은 이를記事하여 관에 게시하게 하였다. 결국 현감까지 올라갔다.
원문
字子淳號蘿山稷山人始祖成佐百濟溫祚王封稷山伯子孫遂籍焉受業于渼湖金元行與同志開塾居業於蘿山頂上立學規爲一方倡焉英祖辛卯司馬正祖戊申除惠陵參奉移掌苑署奉事奏曰本署是成忠文公三問古宅請贖還上曰贖還非難以無可還處故不得爲也對曰無子孫則當別立文字徵信來世上命述其事揭板官至縣監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유선 / 趙有善, confidence=0.95
- person: 김원행 / 金元行, confidence=0.95
- person: 온조왕 / 温祚王, confidence=0.9
- person: 성좌 / 成佐, confidence=0.85
- person: 삼문 / 三問, confidence=0.9
- place: 나산 / 蘿山, confidence=0.95
- place: 직산 / 稷山, confidence=0.95
- office: 혜릉삼봉 / 惠陵參奉, confidence=0.95
- office: 원서봉사 / 苑署奉事, confidence=0.9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term: 사마 / 司馬,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揭板(게판) - 게시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하였으나, 목판 인쇄와 관련된 구체적 행위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음
(정조조)김정묵
- 기사 ID:
B9C^2_003_093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3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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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30:39.80996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37
한글 번역
자호는 과재이고 광산인이며 만기의 후손으로서 도학이 존중되고 덕행이 이루어져서 당세 유학의 종주가 되었다. 가문의 화근으로 인하여 유선(儒選)을 삭탈당했다. 강재(牢齋) 송치규가 상소를 올려 사직을 청하기를, ‘신이 좌중에 종유(從游)한 인물에게 연좌(連坐)되어 부득이 김정묵을 평범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정조(上)가 재상들에게 의논을 물으니, 재상들이 모두 김정묵의 관직 회복을 청하였고, 정조가 그 말을 따라하였다.
독음
자호 과재 광산인 만기지 후 도존덕성위 세유종 원인 가화삭 유선강재 송치규상 장 사직왈 신 종유於좌루인 김정묵 의 불감비 혁신상순於재정 제신 모두 청 정묵 부관 종지
의미
정조 연간에 유학자 김정묵이 가문의 화근으로 유선 벼슬을 삭탈당하자, 강재 벼슬에 있던 송치규가 상소를 올려 자신의 종유(從游) 관계로 연좌된 것을 사직으로 표시하며 김정묵의 무고(無辜)를 호소하였다. 이에 정조가 재상들의 의견이라며 김정묵의 관직을 회복시켜준 사료이다. 김정묵이 만기의 후손으로 당세 유학의 종주(宗主)로 존경받았음을 보여주며, 정조의 뛰어난 판단력을 반영하는 기록이다.
원문
字號過齋光山人萬基之后道尊德成爲世儒宗因家禍削儒選剛齋宋穉圭上章辭職曰臣從游於坐累人金正默義不敢比恒人上詢於在廷諸臣咸請正默復官從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정묵 / 金正默, confidence=0.98
- person: 만기 / 萬基, confidence=0.92
- person: 송치규 / 宋穉圭, confidence=0.96
- place: 광산 / 光山, confidence=0.95
- office: 유선 / 儒選, confidence=0.88
- office: 강재 / 剛齋, confidence=0.85
- term: 세유종 / 世儒宗, confidence=0.9
- term: 좌루 / 坐累, confidence=0.82
- term: 종유 / 從游,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과재(過齋)의 정확한 문법적 역할, 좌루인(坐累人)의 구체적 연좌 범위
(정조조)김지묵
- 기사 ID:
B9C^2_003_093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3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21:56:48.37070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38
한글 번역
자(字)는 유지칙, 청풍 사람이다. 병조판서 효정공 김성응의 아들이자 부원군 김시묵의 아우이다. 영조 경오년에 생원이 되었고, 아버지의 직임을 이어 관에 보任하였다. 영의정 김치인이 천거하여 호조참의에 제수하였고, 계축년에 재상 김여소가 천거하여 형조판서에 오르게 되었다. 특별히 승진하여 숭정階으로 판敦寧府事에 이르렀다.
독음
자 유지칙, 청풍인, 병조판서 효정공 성응의 아들 부원군 시묵의 아우, 영조 경오년에 생원, 음보로 관에 보任하고, 영의정 김치인의。秦으로 호조참의에 제수되고, 계축년에 상신 김여소의。秦으로 형조판서에 오르고, 특별히 숭정 판敦寧府事로 승진하다.
의미
김지묵은 청풍 출신으로, 영조대에 생원이 되었으며, 관직을 세습하고 영의정 김치인의 천거로 호조참의에 올랐다. 이후 재상 김여소의 천거로 형조판서가 되었고, 다시 특별 승진하여 숭정階의 판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원문
字維則淸風人兵曹判書孝靖公聖應子府院君時默弟英祖庚午生員以蔭補官領議政金致仁奏擢戶曹參議癸丑相臣金履素奏拜刑曹判書特陞崇政判敦寧府事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지묵 / 金持默, confidence=1.0
- person: 김성응 / 金聖應, confidence=1.0
- person: 김시묵 / 金時默, confidence=1.0
- person: 김치인 / 金致仁, confidence=1.0
- person: 김여소 / 金履素, confidence=1.0
- place: 청풍 / 淸風, confidence=1.0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호조참의 / 戶曹參議, confidence=1.0
- office: 형조판서 / 刑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敦寧府事, confidence=1.0
- term: 효정공 / 孝靖公, confidence=1.0
- term: 숭정 / 崇政,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爵位 명칭으로 쓰인 崇政이阶(階)인지 벼슬 이름인지
- 음보 세습 관직의 구체적 직함이 불분명
(정조조)소수구
- 기사 ID:
B9C^2_003_093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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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伯淵(백연), 호(號)는湛樂軒(탐락헌)이다. 진주출신으로서 병사斗山의5대손이다. 중주李文敬公심재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니, 이는宋文敬公의 문하와 같은 계통이다. 경자년에 生員이 되었다. 아들 하나를 두어亨述이라 하고,亨述의 아들輝冕은 매산洪直弼에게 수업하여 학행으로 관직에 올라持平에 이르렀다.
독음
자백연호탐락헌진주인병사두산오세손수업於중주이문경공심재송문경공의문경자생원일남형술형술자휘면수업於매산홍직필이학행관至持平
의미
조선시대 진주 출신 학자 苏洙榘의 가계와 학맥을 적은 전기이다. 5대조斗山이 병사 벼슬을 했고, 그는李文敬公심재와宋文敬公 문하에서 수학한 후 경자년 생원 시험에 합격하였다. 아들亨述, 손자輝冕으로 이어지며, 손자輝冕은洪直弼에게 배워持平官에 이르렀다. 주석에 ‘上同’으로 이전 기록과 같다고 표기하였다.
원문
字伯淵號湛樂軒晉州人兵使斗山五世孫受業於中洲李文敬公心齋宋文敬公之門庚子生員一男亨述亨述子輝冕受業于梅山洪直弼以學行官至持平[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소수구 / 蘇洙榘, confidence=1.0
- person: 백연 / 伯淵, confidence=1.0
- person: 형술 / 亨述, confidence=1.0
- person: 휘면 / 輝冕, confidence=1.0
- person: 홍직필 / 洪直弼, confidence=1.0
- person: 두산 / 斗山, confidence=1.0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1.0
- office: 持平, confidence=0.95
- office: 병사 / 兵使, confidence=0.9
- work: 탐락헌 / 湛樂軒, confidence=1.0
- term: 5대손 / 五世孫,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경자 / 庚子,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중주(中洲)가 地望명칭인지 실제 인물 호칭인지 불확실
- 병사斗山의 정확한 신원 미상
- 경자년이 정확히哪년을 가리키는지 미확인
(정조조)김회연
- 기사 ID:
B9C^2_003_094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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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표자)는 문통, 본관은 청풍, 이조판서 종정의 아들, 문경공 김간의 현손이다. 정유(1757)년에 생원이 되었고, 예빈시참봉(拜洗馬)에 제수되었다. 경신(1800)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순조 원년 신유(1801)년에 상疏를 올려 성학을 권면하였으며, 다시 상疏를 올려 시사를 논하였다. 그 결과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구월(9월)에 특별히 명령으로 풀려났으며, 벼슬은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독음
자 문통, 청풍인, 이조판서 종정의 아들, 문경공 간의 현손, 정유 생원, 배세마, 경신 문과, 순조 원년 신유 상서 진면성학, 우상서언사, 전海南, 구월 특명 방환, 관至 예조참판
의미
정조조 문신 김회연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청풍 김씨로서 문경공 간의 후손이고, 정유년에 생원, 경신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순조 원년 상疏를 올려 성학勉學을 권면하고 시사를 논하였다가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구월에 특사받아 풀려났으며, 관직은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원문
字文通淸風人吏曹判書鍾正之子文敬公幹玄孫丁酉生員拜洗馬庚申文科純祖元年辛酉上疏陳勉聖學又上疏言事竄海南九月特命放還官至禮曹參判[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회연 / 金會淵, confidence=1.0
- person: 종정 / 鍾正, confidence=1.0
- person: 김간 / 金幹, confidence=1.0
- place: 해남 / 海南,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세마 / 洗馬, confidence=0.9
- office: 예조참판 / 禮曹參判,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상서 / 上疏, confidence=1.0
- term: 현손 / 玄孫, confidence=1.0
- term: 문경공 / 文敬公, confidence=1.0
(정조조)민명혁
- 기사 ID:
B9C^2_003_094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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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명여, 여흥 사람으로 문헌공 응수의 손자이다. 경술년에 사마, 을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조(正廟)가 그 풍도와 품격이 법도에 어긋남이 없이 전형이 있다 하여 크게 등용하려 하였다. 순조 초년 출사하여 서장관으로 연향(燕行)에 다녀온 뒤 차례로 벼슬이 올라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숙헌이다.
독음
자 명여 여흥인 문헌공 응수의 손자 경술년 사마 을묘년 문과 급제 정묘가 그 풍도가妥有 전형이 있다 하고 대용을 베풀려고 하였으나 순조 초년에 서장관으로 연향에 다녀왔다 돌아와 차차 벼슬하여 예조 판서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숙헌
의미
민명혁(閔命赫)은 여흥 출신으로 문헌공闵應洙의 손자이다. 경술년에 사마 벼슬에 오르고 을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정조는 그 풍도가 단아하고 전형이 있다 하여 대용할 예정이었으나, 순조 즉위 직후 서장관으로 청국에 다녀온 뒤 차례로 승진하여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사후 시호는 숙헌이다.
원문
字明汝驪興人文憲公應洙之孫庚戌司馬乙卯文科正廟稱其風度綽有典刑將究大用純祖初服以書狀官奉使如燕還累官至禮曹判書諡肅獻[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민명혁 / 閔命赫, confidence=1.0
- person: 응수 / 應洙, confidence=1.0
- person: 문헌공 / 文憲公, confidence=1.0
- person: 정조 / 正祖, confidence=1.0
- person: 순조 / 純祖, confidence=1.0
- place: 여흥 / 驪興, confidence=1.0
- place: 연(베이징) / 燕, confidence=1.0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0.9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
- office: 서장관 / 書狀官, confidence=0.9
- office: 예조 판서 / 禮曹判書, confidence=1.0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1.0
- term: 풍도(풍채와 태도) / 風度, confidence=0.9
- term: 전형(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典范) / 典刑, confidence=0.8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term: 숙헌 / 肅獻,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典刑은 법형·전형 등 여러 뜻이 있어文中 맥락에 따른 해석 필요
- 風度綽有는 두 단어의 결합 방식이 불분명하나 풍도가 곧고 단아함을 이르는 표현으로 추정
(정조조)정존겸
- 기사 ID:
B9C^2_003_094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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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대수, 호는 양암, 동래 사람이다. 우의정 지화(知和)의 5세손이다. 영조 경오년에 생원이 되었고, 진사 신미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교리, 부제학 등을 역임했다. 정조 병신년에 이조판서로 부임하여 우의정에 올라 영의정에 이르른 후 퇴직하여 기사사에 들어갔다. 갑인년에 죽었고, 시호는 문안이다. [주:상신록]
독음
자유 대수호 양암 동래인 우의정 지화 오세손 영조 경오 생원 진사 신미 문과 역 교리 부제학 정조 병신 이조판서 백 우상 지,领의정 치사 입 기사사 갑인 졸 시 문안
의미
조선 정조 시대의 재상 정존겸의 이력이다. 영조 때 생원으로 발탁되어 정조 때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라 영의정에 이르렀다. 퇴직 후 기사사에 들어갔고, 갑인년에 사망하여 문안의 시호를 받았다. 동래 출신으로 우의정 지화의 5세손이다.
원문
字大受號陽菴東萊人右議政知和五世孫英祖庚午生員進士辛未文科歷校理副提學正祖丙申以吏曹判書拜右相至領議政致仕入耆社甲寅卒諡文安[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존겸 / 鄭存謙, confidence=1.0
- person: 지화 / 知和, confidence=0.95
- place: 동래 / 東萊,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9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지화(知和)의 구체적 신원, 기사사 입사 시기
(정조조)정홍순
- 기사 ID:
B9C^2_003_094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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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15:10.61885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46
한글 번역
정홍순은 字를 의중, 号를 오천이라 하였으며, 동래 출생으로 참판 정锡三의 아들이다. 영조 즉위년(1725) 이후 로테 해인 문과에 합격하여 평안감사가 되었다. 오래도록 그를 수행한 하급 졸개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근래에 공의 개인적인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청하자 공이 거절하였다. 그 사람이 걱정하고 분해하여 병에 걸린 뒤에야 마지못해 고분고분 따랐다. 공은 그를 사흘 동안 머물게 하였으나 다만 말 한 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그 사람이 더욱 노하여 한 달이나 모습을 완전히 끊었다. 공이 이를 꾸짖으며 보잘것없는 종이 한 권을 선물하였다. 그 사람이 더욱 원한을 품어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앞에 던졌는데, 어머니가 펴보니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이 바치는 공물 이명의 문서였다. (주: 그 사람은 장작·숯·횃불·촉 등을 공급하는 일을 하며 예전부터 서로 사고파는 것으로 그 이득을 취하였다.) 을유년(1778)에 우상에 올라 우의정과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정민이다. (주: 상신록에서 발췌)
독음
정홍순, 자 의중, 호 오천, 동래 사람, 참판 석삼의 아들이다. 영조 을축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평안감사가 되었다. 수행하는 하급 졸개가 있어 해마다 공로가 쌓인 자라고 하였는데, 그 사람이 개인적인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하였으나 공이 거절하자, 그 사람이 걱정하고 분하여 병에 걸렸다. 나중에 간신히 고분고분 따랐다. 공이 삼일 동안 머물게 하니 다만 말 한 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그 사람이 더욱 노하여 한 달이나 모습을 끊었다. 공이 꾸짖으며 보잘것없는 종이 일 권을 선물하였다. 그 사람이 더욱 원한을 품어 돌아가서 어머니 앞에 던졌는데, 어머니가 펴보니 그것은 그 사람의 공물 이명의 문서였다. (주: 그 사람은 장작·숯·횃불·촉 등을 공급하는 일을 하며 예전에 서로 사고파는 것으로 그 이득을 취하였다.) 을유년에 우상에 올라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정민이다. (주: 상신록)
의미
조선 정조 시대 재상 정홍순의 일화이다. 오랜 수행 하급 졸개가 개인적인 은혜를 청하였으나 정홍순이 거절하자, 그 사람은 병에 걸릴 정도로 걱정과 분함을 느꼈고 나중에 마지못해 따랐다. 정홍순은 그를 사흘간만 머물게 하고 말 한 필로 돌려보냈으며, 한 달간 모습을 끊자 보잘것없는 종이 한 권을 선물하였다. 그 사람은 돌아가母亲 앞에 던졌고, 어머니가 펴보니 자신에게 해당하는 공물 이명의 문서였다. 이를 통해 정홍순이 공적인 자리에서 공물 문서를 선물하여 상하 간의 도리를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우의정에 오르고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정민의 시호를 받았다.
원문
字毅仲號瓠泉東萊人參判錫三子英祖乙丑文科爲平安監司有傔人積年勤勞者謂當行私自治裝公拒之其人憂憤成疾後冒沒仰從公留三日唯給一馬治遣其人益怒遂絶跡月餘公責之贈弊紙一軸其人益懷恨歸而投之母前母發之乃其人貢物二名之文券也[주:其人者供柴炭炬煒例相賣買以收其利]戊戌拜右相至左議政諡靖敏[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홍순 / 鄭弘淳, confidence=1.0
- person: 정홍순의 字(의중) / 毅仲, confidence=1.0
- person: 정홍순의 호(오천) / 瓠泉, confidence=1.0
- person: 영조(조선 제21대 왕) / 英祖, confidence=1.0
- place: 동래(부산광역시 동래구) / 東萊, confidence=1.0
- office: 참판(정3품 이상 벼슬) / 參判, confidence=0.9
- office: 문과(과거 급제) / 文科, confidence=0.9
- office: 평안감사(평안도 암체찰사) / 平安監司, confidence=1.0
- office: 우상(우의정)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1.0
- term: 졸개(하급 수행인부) / 傔人, confidence=0.9
- term: 정민(시호) / 靖敏,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文科: 문과의 정확한 급제 연도記載 여부, 文科가 과거제 전체를 가리키는지 특정 과목을 가리키는지 불확실
- 貢物二名之文券: ‘二名’이 공물 수량인지 공물 종류인지 명확하지 않음
- 弊紙: 질이 낮은 종이라는 뜻은 확실하나 시장 가치 등 구체적 의미 미상
- 冒沒仰從: 억지로 순응하다는 의미로 보이나 정확한 四字熟語 의미 확인 필요
- 錫三: ‘석삼’으로 읽으나 한자음이 명확하지 않음
(정조조)홍낙순
- 기사 ID:
B9C^2_003_094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4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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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32:55.91242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47
한글 번역
자(字)는 백효이고, 풍산 출신이다.監司昌漢의 아들이다. 영조 정축년(1737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정조조에 대제학에 오르고 左議政에 이르렀다.
독음
자백효 풍산인 감사 창한자 영조 정축 문과 정조조 백대제학 至좌의정
의미
조선后期的文武官洪樂純의 약력이다. 풍산군出身으로 영조 연간 문과에 합격하여 정조대에 대제학, 左議政至相에 이르렀다. 監司昌漢은 그의 아버지이다.
원문
字伯孝豐山人監司昌漢子英祖丁丑文科正祖朝拜大提學至左議政
엔티티 후보
- person: 홍낙순 / 洪樂純, confidence=0.98
- person: 창한 / 昌漢, confidence=0.95
- place: 풍산 / 豐山, confidence=0.96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0.97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0.97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6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이휘지
- 기사 ID:
B9C^2_003_094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4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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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33:28.70654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48
한글 번역
자는 미경이고 호는 노포이며,完山 출신으로 文靖公 관명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은전으로 보직되어 목사에 이르렀다. 영조 경술년(1766)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참의를 지내고, 사신으로 연안에 다녀온 뒤 돌아와 대제학에 오르렸다. 경자년(1780)에 우승상에 임명되고 기사에 입사했으며, 을사년(1785)에 졸했다.
독음
자미경호노포완산인문정공관명자유음보관지목사영조병술문과역이조삼의봉사입연환배대제학경자배우상입기사을사 졸[주:상신록]
의미
조선 정조 시대의 문신 李徽之의 약력이다.完山 출신으로 文靖公 李觀命의 아들이며,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참의, 대제학 등을 역임했다. 사신으로 연안(베이징)에 다녀왔고, 정조 치세인 경자년에 우승상에 올랐다. 기사에 입사한 뒤 을사년에 졸했다. 相臣錄에서 발췌한 인물 기록이다.
원문
字美卿號老圃完山人文靖公觀命子以蔭補官至牧使英祖丙戌文科歷吏曹參議奉使入燕還拜大提學庚子拜右相入耆社乙巳卒[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휘지 / 李徽之, confidence=1.0
- person: 이관명 / 李觀命, confidence=1.0
- place: 완산 / 完山, confidence=0.9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office: 이조 참의 / 吏曹參議, confidence=1.0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1.0
- term: 문정공 / 文靖公, confidence=1.0
- term: 음 / 蔭,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완산(현재 지역 특정 불확실, 전주 또는 강진 지역 가능성)
(정조조)홍낙성
- 기사 ID:
B9C^2_003_094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4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7:15:01.42610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49
한글 번역
자는 자안, 호는 형재, 풍산 출신이다. 판서(判書)象漢의 아들이자 鳳漢의 조카이다. 영조(英祖) 때 을묘(乙卯년, 1795)에 进士에 합격하고, 정조(正祖) 때 갑자(甲子년, 1804)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의 판서를 역임하고, 정조 임인(壬寅년, 1802)에 우상(右相)에 임명되었다. 영의정에 이르렀고, 기사사(耆社)에 들어갔다. 소과(小科)에 회방(回榜)하여 기장(几杖)을 내려받았다. 무오(戊午)에 졸했으며,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독음
자자안호형재풍산인판서상한자봉한질영조을묘진사갑자문과역이병조판서정조임인배우상지의영의정입기사사이소과회방급기장무오졸시호효간
의미
洪樂性(1755~1800)은 풍산 출신으로 영조 연간 进士, 정조 갑자에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병조 판서를 지내고 정조 임인년에 우상에 이어 영의정이 된 인물이다. 소과에 회방 합격 후 기장을 하사받았으며 기사사에 들어갔다가 졸했다. 시호는 효간이고, 영조 을묘년을 1795로 읽되 원문 기록에 유의가 필요하다.
원문
字子安號恒齋豐山人判書象漢子鳳漢侄英祖乙卯進士甲子文科歷吏兵曹判書正祖壬寅拜右相至領議政入耆社以小科回榜賜几杖戊午卒諡孝簡[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홍낙성 / 洪樂性, confidence=1.0
- person: 상한 / 象漢, confidence=0.9
- person: 봉한 / 鳳漢, confidence=0.9
- place: 풍산 / 豐山,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이조 / 吏曹, confidence=1.0
- office: 병조 / 兵曹,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회방 / 回榜, confidence=0.7
- term: 기장 / 几杖, confidence=0.9
- term: 효간 / 孝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乙卯進士의 연도(정조 연간 기록 오류 가능성 있음)
- 回榜(소과 회방의 구체적 의미와 절차)
- 무오 졸년의 정확성(기사사 入社와 시점 불일치)
(정조조)이복원
- 기사 ID:
B9C^2_003_095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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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표자)는 술지이고 호는 쌍계이다. 연안 사람으로 판서 이절보의 아들이다. 양구현감을 역임하고 영조 갑술년(1754) 문과에 합격하여 대提학, 이조 판서를 두루 지냈다. 임인년(1798)에 우상에 올라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기사사에 들어갔다. 임자년(1792)에 세상을 떠나니 시호는 문간이다.
독음
자 술지호 쌍계연안인판서절보자위 양구현감영조갑술문과력대提학이자조판서임인배우상치지정의정입기사임자 졸시문간
의미
이복원은 영조 갑술년(1754) 문과 합격생으로 대提학, 이조 판서 등을 역임한 뒤 정조대에 우상에서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기사사에 들어갔다. 임자년(1792)에 사망하여 문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연안出身으로 이절보의 아들이다.
원문
字綏之號雙溪延安人判書喆輔子爲楊口縣監英祖甲戌文科歷大提學吏曹判書壬寅拜右相至左議政入耆社壬子卒諡文簡[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복원 / 李福源, confidence=0.98
- person: 이절보 / 李喆輔, confidence=0.95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0.95
- place: 양구 / 楊口, confidence=0.97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7
- office: 대提학 / 大提學, confidence=0.95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0.97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0.97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0.92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7
- term: 시호 문간 / 諡文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대提학 - ‘提’ 앞 한글 표기가 불확실하나原文 대提学으로 판독
(정조조)김익
- 기사 ID:
B9C^2_003_095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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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표자)는 광중이고 호는 죽하이며, 다시 호를 약현이라 하였다. 연안 사람으로서 판윤 상석의 아들이었다. 음보(친임관의 가문에서 보충 임명)로 전성주서에 보任되었고, 효행이 있어 문을 포상받았다. 영조 조계미(173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정조 조임인(1782)년에 우상에 임명되었으며, 영의정에 이르렀다. 경술(1790)년에 졸하고 시호는 문정이었다. [주: 상신록]
독음
자광중호죽하우호약현연안인판윤상석자음보전성주서유효행정려영조계미문과역병조판서정조임인배우상지의영의정경술졸시문정[주:상신록]
의미
정조조的重臣 金熤의 약력이다. 표자는 광중, 호는 죽하와 약현이고, 연안 출신으로 판윤 상석의 아들이다. 영조 계미(1733)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판서 등 요직을 거쳤으며, 정조 임인(1782)년 우상에 오르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효행이 뛰어나 표창을 받았고, 졸한 뒤 문정 시호를 받았다. 상신록에서 발췌한 인물 기재이다.
원문
字光仲號竹下又號藥峴延安人判尹相奭子蔭補典牲主簿有孝行旌閭英祖癸未文科歷兵曹判書正祖壬寅拜右相至領議政庚戌卒諡文貞[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익 / 金熤, confidence=1.0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1.0
- person: 상석 / 相奭, confidence=1.0
- office: 판윤 / 判尹, confidence=1.0
- office: 전성주서 / 典牲主簿, confidence=1.0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1.0
- term: 정려 / 旌閭,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문정 / 諡文貞, confidence=1.0
(정조조)조경
- 기사 ID:
B9C^2_003_095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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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경서(景瑞)이고, 처음 이름은 㻐이다. 호는 하서(荷棲)이다. 풍양 사람으로서, 목사(군부대장)尙紀의 아들이며, 영의정(領相)을 지낸 연안 이천輔의 사위이다. 효행으로 표창을 받고 문에 기렸다. 영조 임종미년(173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병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정조 정미년(1797년)에 우의정에 보임되었으며, 사후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독음
자 경서 초명 경 호 하서 풍양인 목사 상기 자 영상 연안 이천보 사위 이 효행으로 문에 표창 영조 계미 문과 과거 급제 역임 병조 판서 정조 정미 우의정 보직 충정 시호
의미
조선后期的 관료 赵璥의 간단한 전기이다. 풍양 태생으로 효자로 알려졌으며, 영의정 이천輔의 사위가 되었다. 문과 급제 후 병조 판서를 역임하고 우의정에 이르렀다.
원문
字景瑞初名㻐號荷棲豐壤人牧使尙紀子領相延安李天輔壻以孝行旌門英祖癸未文科歷兵曹判書正祖丁未拜右議政諡忠定[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조경 / 趙璥, confidence=0.95
- person: 이천보 / 李天輔, confidence=0.95
- place: 풍양 / 豐壤, confidence=0.95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0.95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5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영의정 / 領相,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0.95
- term: 호 / 號, confidence=0.95
- term: 정문 / 旌門,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㻐 - 원문 한자가 불확실하며,多数 기록에서 ‘璥’으로 보이나 확신할 수 없음
(정조조)이재협
- 기사 ID:
B9C^2_003_095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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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표字)는汝皐(여호)이고, 용인 출생으로,景祜(경우)의 아들이다. 영조(영조) 정축(정축)년에 문과 장원을 택어 병조판서를 두루 지냈으며, 무신(무신)년에 녹훈하여 인릉군(인릉군)에 봉해졌다. 정조(정조) 정미(정미)년에 우상(우상)에 임명되고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경술(경술)년에 졸했다. [상신록]
독음
자 여호 · 용인인 · 병조판서 · 경우의 아들 · 영조 정축년 문과 장원 · 두루 병조판서 지냄 · 무신 녹훈 · 인릉군에 봉함 · 정조 정미년 우상에 임명 · 영의정에 이르다 · 경술년 졸함 [상신록]
의미
이재협은 영조 정축(1733)년 문과 장원 합격자로,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무신(1768)년에 녹훈되어 인릉군에 봉해졌다. 이후 정조 정미(1789)년에 우상에 오르고 영의정에까지 이르렀으며, 정조 치세 말인 경술(1790)년에 졸한 정조조 핵심 재상이다. 상신록은 이인수 등이 편찬한 相臣錄에서 수록된 인물임을 뜻한다.
원문
字汝皐龍仁人兵曹判書景祜子英祖丁丑文科壯元歷兵曹判書戊申錄勳封仁陵君正祖丁未拜右相至領議政庚戌卒[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재협 / 李在協, confidence=1.0
- person: 경우 / 景祜, confidence=1.0
- place: 용인 / 龍仁, confidence=1.0
- place: 인릉군 / 仁陵君, confidence=1.0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term: 문과 장원 / 文科壯元, confidence=1.0
- term: 녹훈 / 錄勳,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1.0
(정조조)이성원
- 기사 ID:
B9C^2_003_095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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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35:03.72948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55
한글 번역
자(표자)는 선지이고 호는 조은이다. 연안 출신으로, 판서 이길보의 아들이다. 영조 임인년에 진사가 되었고, 문과 갑술년에 중시에서 장원을 했다. 정조 정미년에 우승상에升至左議政되었고, 시호는 문숙이다. 형 이심원의 자는 택지이고, 경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을 역임했다.
독음
자선지호조은연안인판서길보자영조계미진사문과갑술중시장원정조정미배우우상리지좌의정시문숙주상신록형심원자택지경오문과대사宪주국조방목
의미
정조조的重臣 李性源의 인물기로, 字는 善之, 호는 潮隱이고 연안 출신이다. 英祖朝에 진사가 되고 文科에서 장원한 뒤 清揀으로累升至左議政에 至했다. 兄 心源도 文科 출신으로 大司憲을 지냈다. 두 사람 모두 科擧出身의 管理層이었다.
원문
字善之號潮隱延安人判書吉輔子英祖癸未進士文科丙戌重試壯元正祖丁未拜右相至左議政諡文肅[주:相臣錄]兄心源字宅之庚午文科大司憲[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성원 / 李性源, confidence=0.98
- person: 이심원 / 李心源, confidence=0.98
- person: 길보 / 金吉輔, confidence=0.85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0.95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0.95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0.95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0.95
- term: 호 / 號,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英祖癸未進士의 정확한 해解(1745년으로 추정되나 기록상 英祖 21년은 1745년이 아닌 다른 가능성 있음)
- 文內 ‘壮元’의 異寫 可能性
(정조조)김종수
- 기사 ID:
B9C^2_003_095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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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7:40:08.89717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57
한글 번역
자의는 정부이고 호는 몽촌이다. 본래 청풍 사람으로서 궁정의 시직에 이르렀으며, 충헌공 김구(金構)의 4대손이다. 영조 무자년(1728년)에 진사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호조정서와 대제학을 지냈다. 정조 기유년(1789년)에 우의정에 오르고 정사하여 노사(耆社)에 들어갔으며, 기미년(1799년)에 졸하였다. 시호는 문충이다.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상신록]에 기록되어 있다. 형 김종후는 호가 본암이며, 첨촌闵遇洙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행으로 관직에 이르러 의논에 이르고, 본암집이 세상에 전해진다.
독음
자정부호몽촌청풍인시직치만자충헌공구증손영조무자진사문과역호조정서대제학정조기유배우의정치사입기사기미졸시면충배정조묘정
의미
정조 시대의 문신 김종수에 대한 기록이다. 청풍 김씨로 출신하여 영조 무자년에 진사 문과에 합격하고, 호조정서와 대제학을 역임한 뒤 정조 기유년에 우의정에 오르고 정사하여 노사(耆社)에 들어갔다. 기미년에 졸하고 문충의 시호를 받았으며, 정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형 김종후는 본암을 호로 하고 첨촌闵遇洙에게 수학한 학자이며, 본암집을 간행했다.
원문
字定夫號夢村淸風人侍直致萬子忠憲公構曾孫英祖戊子進士文科歷戶曹判書大提學正祖己酉拜右議政致仕入耆社己未卒諡文忠配正祖廟庭[주:相臣錄]兄鍾厚號本菴受業于蟾村閔遇洙之門以學行官至諮議有本菴集行于世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종수 / 金鍾秀, confidence=0.95
- person: 김종후 / 金鍾厚, confidence=0.95
- person: 김구 / 金構, confidence=0.9
- person: 민우수 / 閔遇洙, confidence=0.85
- office: 시직 / 侍直, confidence=0.8
- office: 호조정서 / 戶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0.95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5
- office: 노사 / 耆社, confidence=0.85
- work: 본암집 / 本菴集, confidence=0.9
- term: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9
- term: 자 / 字, confidence=0.95
- term: 호 / 號,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 place: 청풍 / 淸風,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민우수의 한자 독음(閔遇洙)
- 첨촌의 위치나 구체적 신분
(정조조)박종악
- 기사 ID:
B9C^2_003_095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5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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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58:19.71398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58
한글 번역
자는 여오이고 호는 창암이다. 반남 사람으로, 참판이자 사정을 지낸 사람의 손자이다. 영조 병술(1746)년에 진사하고 문과에 올랐다. 관직을 역임하여 충청監司가 되었고, 정조 임자(1792)년에 우상에 오르고, 을묘(1795)년에 사신으로 명나라(베이징)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정주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충헌이다.
독음
자여오호창암반남인참반사정손영조병술진사고문과역충청감독사정조임자배우상을묘봉사입연환도정주 졸시충헌
의미
조선 정조조的重臣朴宗岳의 약력이다. 영조대에 진사, 문과에 합격하고 충청監司를 지냈다. 정조대에 우상에 발탁되었고, 을묘년에 명나라이자(燕京)로 사신 파견길에 다녀왔다. 귀환길 정주에서 사망하여 충헌 시호를 받았다. 반남朴氏的名門 출신으로,参判師正의 손자이다.
원문
字汝五號蒼岩潘南人參判師正孫英祖丙戌進士文科歷忠淸監司正祖壬子拜右相乙卯奉使入燕還到定州卒諡忠獻[주:下同]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종악 / 朴宗岳, confidence=1.0
- person: 여오 / 汝五, confidence=1.0
- person: 창암 / 蒼岩,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정조 / 正祖, confidence=1.0
- place: 반남 / 潘南, confidence=1.0
- place: 연(베이징) / 燕, confidence=1.0
- place: 정주 / 定州,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office: 감독사 / 監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별호) / 號,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사정(師正)의 구체적 관직 명칭이 정확한지 미확인
(정조조)김희
- 기사 ID:
B9C^2_003_096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6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36:45.82813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60
한글 번역
자의는 선의, 호는 근와, 광산 출신. 감역상·경자판서를 지냈으며, 익희의 5세손이다. 영조 임오년에 생원이 되었고, 계사에 문과에 급제하여, 역설서 직각·대사성을 역임했다. 정조 계축년에 우의정에 임명되고 기사사에 들어갔다. 경신년에 졸했으며, 시호는 효간이다.
독음
자선의호근와광산인감역상경자판서익희오세손영조임오생원계사문과역서직각대사성정조계축배우의정입기사경신卒시호효간
의미
조선后期的的重臣 김희(金憙)의 가문 배경과 관료 경력을 기록한簡略한 인물 전기이다. 영조 연간 생원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정조대에 우의정에 올랐으며, 기사사에 입사한 뒤 경신년에 졸했다.
원문
字善之號芹窩光山人監役相庚子判書益煕五世孫英祖壬午生員癸巳文科歷說書直閣大司成正祖癸丑拜右議政入耆社庚申卒諡孝簡[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희 / 金憙, confidence=1.0
- person: 익희 / 益煕,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정조 / 正祖, confidence=1.0
- place: 광산 / 光山, confidence=0.9
- office: 감역 / 監役,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설서 / 說書, confidence=1.0
- office: 직각 / 直閣, confidence=1.0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term: 효간 / 孝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相庚子判書 부분의 구두점 분리가 불확실하여 관직명 전체가 ‘감역상 경자판서’인지 개별 관직인지 명확하지 않음
(정조조)이병모
- 기사 ID:
B9C^2_003_096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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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표자)는 의칙이고, 호는 정수이다. 덕수 출신으로, 문충공 단하의 현손이다. 영조(英祖) 계사년(1733)에 진사가 되었고,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복提學을 역임하고, 병조 판서와 호조 판서를 지냈다. 정조(正祖) 갑인년(1794)에 우승상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영의정에 이르렀다. 정미년(1797)에 익산으로 유배되었고, 무신년(1798)에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주:相臣錄]
독음
자유칙호정수덕수인문충공단하현손영조계사진사문과력복提학병호조반서정조갑인배우승치지영의정정미설익산무신졸시문숙[주:상신록]
의미
이병모는 조선后期的 문신으로, 덕수 출신이며 영조 연간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조 판서와 호조 판서를 역임하고, 정조 연간 우승상에 오른 뒤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조 말기에 정치적 변동을 만나 익산으로 유배되었다가 그해 사망하였다. 문충공 단하의 후손으로서 文忠公·文肅 두 시호를 받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원문
字彝則號靜修德水人文忠公端夏玄孫英祖癸巳進士文科歷副提學兵戶曹判書正祖甲寅拜右相至領議政丁未謫益山戊申卒諡文肅[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병모 / 李秉模, confidence=0.98
- person: 자유칙(자의칙) / 字彝則, confidence=0.97
- person: 호정수 / 號靜修, confidence=0.97
- place: 덕수 / 德水, confidence=0.96
- person: 문충공 / 文忠公, confidence=0.95
- person: 단하 / 端夏, confidence=0.93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8
- person: 정조 / 正祖, confidence=0.98
- office: 복提학 / 副提學, confidence=0.94
- office: 병조 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호조 판서 / 戶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0.97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8
- place: 익산 / 益山, confidence=0.97
- person: 문숙 / 文肅, confidence=0.96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6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92
- term: 계사 / 癸巳, confidence=0.95
- term: 갑인 / 甲寅, confidence=0.95
- term: 정미 / 丁未, confidence=0.95
- term: 무신 / 戊申, confidence=0.95
- person: 현손 / 玄孫, confidence=0.93
- term: 설(유배) / 謫, confidence=0.94
불확실한 어휘
- 단하(端夏)의 구체적 신원: 本文獻에서 단하가 누구인지 추가 확인 필요
- 상신록(相臣錄)의 완전한 本文과 편찬 시기를 확인할 수 없음
- 진사 급제와 문과 급제의 구분, 이병모의 생년 미상
(정조조)윤시동
- 기사 ID:
B9C^2_003_096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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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62
한글 번역
자(字)는伯常, 호(號)는方閒, 해평 사람. 及第(시험)에 합격하여 민자 감사로 세수의 증손이 되고, 영상(領相)兪拓基의 사위였다. 英祖 갑술(1734)년 문과에 합격하여 과거를 밟아 부제학·이조판서를 지내고, 정조 을묘(1799)년 우의정에 오르고, 丁巳(1801)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文翼이다.
독음
자 백상호 방한해평인집제득민자감사세수증손영상유탁기지서영조갑술문과과력부제학이조판서정조을묘배우의정정사 졸시 문익
의미
윤시동은 英祖 갑술(1734)년 문과에 합격하여 부제학·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정조代 우의정에 올랐다. 영조 시대 重臣인 領相 兪拓基의 사위이고, 士林 출신으로 清簡한 인물이었다. 丁巳(1801)년 사망 후 文翼의 시호가贈賯되었다.
원문
字伯常號方閒海平人及第得敏子監司世綏曾孫領相兪拓基之壻英祖甲戌文科歷副提學吏曹判書正祖乙卯拜右議政丁巳卒諡文翼[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시동 / 尹蓍東, confidence=1.0
- person: 백상 / 伯常, confidence=1.0
- person: 방한 / 方閒, confidence=1.0
- person: 세수 / 世綏, confidence=0.9
- person: 유탁기 / 兪拓基, confidence=1.0
- place: 해평 / 海平, confidence=0.95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5
- term: 자(본명 외의 호칭) / 字, confidence=1.0
- term: 호(별칭) / 號, confidence=1.0
- term: 집제(문과 급제) / 及第,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相臣錄」에 수록된 인물 정보로, 世綏의 정확한 인물상과 尹시동과의 세대 관계가 相臣錄 단행본 교차 확인이 필요하다.
(정조조)심환지
- 기사 ID:
B9C^2_003_096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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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辉元이고 호는晚圃이며 청송의 사람이다. 교리沈泰賢의 손자이다. 영조 임오년(1702)의 진사 합격자이고, 음보로 부솔에 보임되었다. 신묘년(1739) 문과 합격자로 출세하여,奎章閣提學과兵吏曹判書를 지냈다. 정조 무오년(1798)에 우상에 보임되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경신년(1800)에 원상으로서 직임을 수행하고, 임술년(1802)에 졸했다. 시호는忠憲이다.
독음
자휘원 호만포 청송인 교리태현의 손자 영조 임오년 진사 음보 부솔 신묘년 문과 거쳐 경장각 제학 병리조 판서 정조 무오년에 우상에 보임 영의정에 이르러 경신년에 원상으로 직임을 행하고 임술년에 졸 시호는 충헌
의미
조선 정조조的重臣 심환지의 약력이다. 영조임오년(1702) 진사출신으로辛卯文科에 합격하여 요직을 두루 거쳐 정조무오년(1798) 우상에 보임되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경신년(1800) 원상으로서 직임을 수행하다가 임술년(1802)에 졸했으며 시호는 충헌이다. 相臣錄에서 수록된 인물이다.
원문
字輝元號晚圃靑松人校理泰賢之孫英祖壬午進士蔭補副率辛卯文科歷奎章閣提學兵吏曹判書正祖戊午拜右相至領議政庚申以院相行職壬戌卒諡忠憲[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심환지 / 沈煥之, confidence=0.95
- person: 심태현 / 沈泰賢, confidence=0.9
- place: 청송 / 靑松, confidence=0.85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0.9
- office: 부솔 / 副率, confidence=0.9
- office: 경장각제학 / 奎章閣提學, confidence=0.95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
- office: 리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0.95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office: 원상 / 院相, confidence=0.95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蔭補副率 - 음보 부솔: 음보(대부 관직의 세습 보임)制度和 具体적 직위명이 정확한지 확인 필요
(정조조)홍량호
- 기사 ID:
B9C^2_003_096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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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한사, 호는 이계, 본향은 풍산 사람이다. 판결사 만휘의 증손이다. 아버지名叫 진보가 영의정인 청송 심수賢의 딸을 맞이하여 낳은 아들이良浩이다. 본래 이름은良漢이고, 영조 임신년에 태어나 생원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검열, 수찬을 거쳐 갑오년에 등용시험에 합격하여 발탁되어 대제학·의금부 판결사·예조판서를 지내고 기사사에 들어갔으며, 시호는 文獻이다.
독음
자한사호이계 풍산인 판결사만휘증손 아버지진보 취영상청송심수현녀생良浩 초명良漢 영조임신 생원문과력 검열수찬 갑오등준시 첩대제학 판결의금부사 예조판서입기사 시호문헌
의미
조선 正祖朝 관료 洪良浩(홍량호)의 가문 배경과 주요 이력에 관한 기록이다. 풍산 만휘의 후손으로, 영의정 심수현의 외손녀를 어머니로 두고 英祖 임신년에 태어나 文科에 합격했다. 갑오년 등용시험에 합격하여 大提學과 義禁府 판결사, 例授判書 등 요직을 역임했고, 나중에 耆社에 가입하여 시호 文獻을 받았다.
원문
字漢師號耳溪豐山人判決事萬恢曾孫父鎭輔娶領相靑松沈壽賢女生良浩初名良漢英祖壬申生員文科歷檢閱修撰甲午登俊試擢大提學判義禁府事入耆社諡文獻
엔티티 후보
- person: 홍량호 / 洪良浩, confidence=1.0
- person: 홍진보 / 洪鎭輔, confidence=1.0
- person: 심수현 / 沈壽賢, confidence=1.0
- place: 풍산 / 豐山, confidence=1.0
- office: 의금부 판결사 / 判義禁府事, confidence=1.0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예조판서 / 例授判書, confidence=1.0
- office: 기사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등용시험 / 登俊試, confidence=1.0
- work: 문과 / 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영조실록』 임신년이 英祖 16년(1748)인지, 英祖 40년(1764)인지 미확인
- 萬恢의 정확한 세율 관계
(정조조)오재순
- 기사 ID:
B9C^2_003_096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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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문경이고, 호(號)는 순암이며, 해주(海州) 사람이다. 대제학 문목공瑗의 아들이다. 영조 임진년 문과에 합격하여 홍문제학, 규장각제학, 병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계축년에 사망하여 시호는 문정이다. 아우 재소의 자는 克卿이며, 진사문과에 합격하여 관至判書에 이르렀다.
독음
자문경호순암해주인대제학문목공원자영조임진문과역홍문제학규장각제학병조판서대제학계축졸시문정 주국조방목제재소자극경진사문과관지판서 주同上
의미
조선 정조조의 문신 오재순의 이력이다. 해주 출신으로 문목공瑗의 아들이다. 영조 임진년 문과에 합격한 후 홍문제학, 규장각제학, 병조판서, 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고, 계축년에 사망하여 문정 시호를 받았다. 아우 재소도 진사문과에 합격하여 병조판서까지 올랐다.
원문
字文卿號醇菴海州人大提學文穆公瑗子英祖壬辰文科歷弘文提學奎章閣提學兵曹判書大提學癸丑卒諡文靖[주:國朝榜目]弟載紹字克卿進士文科官至判書[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오재순 / 吳載純, confidence=0.95
- person: 오원(문목공) / 吳瑗, confidence=0.95
- person: 오재소 / 吳載紹, confidence=0.95
- place: 해주 / 海州, confidence=0.95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0.95
- office: 홍문제학 / 弘文提學, confidence=0.95
- office: 규장각제학 / 奎章閣提學, confidence=0.95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5
- term: 문목공 / 文穆公, confidence=0.95
- term: 문정 / 文靖,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癸丑년은 1733년(영조 9년) 또는 1793년(정조 17년)일 수 있으나, 本文脈에서는 1793년으로 추정됨
(정조조)안정대
- 기사 ID:
B9C^2_003_096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6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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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58:57.75738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66
한글 번역
자(표字)는 성화이고, 광주 사람이다. 진사(進士) 세덕의 아들이며, 풍애(楓厓) 민학의 5세손이다. 영조 갑술(1754)년 증광文科에 합격하여 注書·銓郞·抄啓文臣을 역임하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종형(從兄) 鼎垕과 함께 屛溪 윤봉九에게 수학하였다.鼎垕의 자는 여중이다. 같은 시기에 동성명의安定大가 있어京城에 거처하므로, 사람들이 이를 구별하여京鼎大와鄕鼎大라 불렀다.安定大의 자는來伯이고, 죽산 사람이다. 병자(1756)文科에 합격하여 벼슬이 우윤에 이르렀다.
독음
자성화 광주인 진사 세덕자 풍애민학오세손 영조갑술 증광文科 역주서 전랑 초계문신 관至 승지 여종형鼎垕 동수업어병계 윤봉구鼎垕 자여중 동시에 유 동성명安定大字來伯 죽산인 병자文科 관至 우윤
의미
조선 영조조에 같은 이름의安定大 두 명이 있었음을 기재한 기록이다. 광주 출신安定大는 윤봉구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승지에 이르렀으며, 죽산 출신安定大는 병자文科 합격 후 우윤에 이르렀다.京城 거처자와地方거처자를 구분하기 위해京鼎大와鄕鼎大로 불렀다. 주기에 따르면 이 기록은 국조榜目(국朝文科榜目)에서 발췌한 것이다.
원문
字聖和廣州人進士世德子楓厓敏學五世孫英祖甲戌增廣文科歷注書銓郞抄啓文臣官至承旨與從兄鼎垕同受業于屛溪尹鳳九鼎垕字汝重同時有同姓名安鼎大居京世人呼以京鼎大鄕鼎大以辨之安鼎大字來伯竹山人丙子文科官至右尹[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정대 / 安鼎大, confidence=0.95
- person: 윤봉구 / 尹鳳九, confidence=0.95
- person: 안정후 / 安鼎垕, confidence=0.95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0.9
- place: 죽산 / 竹山, confidence=0.9
- place: 경성(한양) / 京, confidence=0.9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office: 우윤 / 右尹, confidence=0.95
- office: 文科, confidence=0.95
- work: 국조榜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5
- term: 경정대 / 京鼎大, confidence=0.9
- term: 향정대 / 鄕鼎大, confidence=0.9
- term: 병계 / 屛溪,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최흥원
- 기사 ID:
B9C^2_003_096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6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21:59:13.19898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68
한글 번역
자는 태초, 또 여호라고도 하였다. 호는 백불암이며, 경주 사람이다. 일찍이 과거 시험을 버리고 은거하여 학문을 닦으니,东南의 유학자들이 일제히 스승으로 받들며 측계선생이라 불렸다. 정조 무술년(1778)에 장릉의 참봉이 되었고, 임인년(1778)에 낙악의 주부로 되었다. 특旨로 네 책을 인쇄하여 내려줌을 받았고, 이듬해 을축년(1779)에 왕세자를 책봉하면서 좌익赞으로 뽑혔다. 여든두 살에 세상을 떠났으며, 효행이 있어 기축년(1769)에 정려되었다. 아들 주진(字는 공보, 호는 동계)이 있었는데, 대산 이상정문인이다.
독음
자태초 · 우여호 · 호백불암 · 경주인 · 조기기업 · 은거독학 · 동남유사흡연사지 · 칭위측계선생 · 정조무술제장릉삼봉 · 임인위장악주부 · 특명인급사서 · 을축춘책왕세자 · 선위좌익찬 · 졸년팔십이 · 유행기문 · 기축정려 · 자주진 · 자기공보 · 호동계 · 대산 · 이상정문인
의미
崔興遠은 정조대(18세기 말) 경주 출신 학자로, 과거를 일찍 버리고 은거하여 학문에 힘썼다. 동남 유학자들의 스승이 되어 측계선생이라 불렸다. 1778년 장릉 참봉에 임명된 뒤 낙악 주부로 전임되었으며, 특旨로 사서를 인쇄 급부받았다. 1779년 왕세자 책봉 때 좌익赞에 발탁되었고, 82세로 사망했다. 효행이 뛰어나 표창받았으며, 아들 周鎭은 대산 이상정의 문인이다.
원문
字太初又曰汝浩號百弗庵慶州人早棄擧業隱居篤學東南儒士翕然師之稱爲漆溪先生正祖戊戌除莊陵參奉壬寅爲掌樂主簿特命印給四書翌春冊王世子選爲左翊贊卒年八十二有孝行己酉旌閭[주:墓誌]子周鎭字公甫號東溪大山李象靖門人
엔티티 후보
- person: 최흥원 / 崔興遠, confidence=0.98
- person: 태초 / 太初, confidence=0.95
- person: 여호 / 汝浩, confidence=0.95
- person: 주진 / 周鎭, confidence=0.97
- person: 이상정 / 李象靖, confidence=0.97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0.98
- place: 장릉 / 莊陵, confidence=0.92
- office: 장악주부 / 掌樂主簿, confidence=0.9
- office: 좌익찬 / 左翊贊, confidence=0.92
- office: 삼봉 / 參奉, confidence=0.95
- term: 거업 / 擧業, confidence=0.88
- term: 효행정려 / 孝行旌閭,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四書(사서): 어떤 사서인지 특정 불가, 白弗庵(백불암): 호의 정확한 뜻 미상
(정조조)황덕길
- 기사 ID:
B9C^2_003_097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7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7:42:00.50206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71
한글 번역
자(아호)는 이길이고, 호는 하려이다. 창원인으로서 진사이며, 이곤의 유복자이자 맏아들이다. 형인 공과 백당, 덕일과 함께 안순암 정복에게 사사하여 취어를 전수받았다. 복잉하며 눈을 빛내어 더욱 힘써为己之学(자기를 위한 학문)에 힘썼다. 정해년에 先生이 돌아가셨다. 先生의 학문은 넓고도 간결하며, 단순하면서도 갖추어져 있었다. 마음을 써서 조화의 근원을 궁구하고, 몸을 통해 사물의리를 체득하였다. 『동현학칙』, 『도학원류찬언』 17편, 『사례요의』, 『동유예설』, 『염민문취』를 지었다.
독음
자이길호하려창원인진사최손이곤유복자여형공백당덕일사사안순암정복수이취어복잉맹약익면위기지학정해 졸선생지학박이약간비비심궁조화지원신체사물지리저동현학칙도학원류찬언십칠편사례요의동유예설염민문취행장
의미
조선 정조 시대의 학자 黄德吉(황덕길)의 행장을 수록한 기사로, 창원 출신 진사로서 安順菴 鼎福(안순암 정복)에게 수학하고, 조화의 원리를 궁구하며 여러 저서를 남겼으나 정해년(정조 23년, 1799년)에 세상을 떠났음을 기록한다. 朱子學的正統을 계승한 동아시아 성리학 전통의 학자였다.
원문
字耳吉號下閭昌原人進士最孫以坤遺腹子與兄拱白堂德壹師事安順菴鼎福授以粹語服膺眷眷益勉爲己之學丁亥卒先生之學博而約簡而備心窮造化之源身體事物之理著東賢學則道學源流纂言十七編四禮要議東儒禮說濂閩文粹[주:行狀]
엔티티 후보
- person: 황덕길 / 黃德吉, confidence=0.95
- person: 이길 / 耳吉, confidence=0.9
- person: 안순암 정복 / 安順菴鼎福, confidence=0.95
- person: 이곤 / 以坤, confidence=0.9
- place: 창원 / 昌原, confidence=0.95
- work: 동현학칙 / 東賢學則, confidence=0.85
- work: 도학원류찬언 / 道學源流纂言, confidence=0.85
- work: 사례요의 / 四禮要議, confidence=0.85
- work: 동유예설 / 東儒禮說, confidence=0.85
- work: 염민문취 / 濂閩文粹, confidence=0.85
- term: 위기지학 / 为己之學, confidence=0.85
- term: 유복자 / 遺腹子, confidence=0.9
- term: 정해 / 丁亥, confidence=0.9
- term: 행장 / 行狀,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남한조
- 기사 ID:
B9C^2_003_097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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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종백이고 호는 손재이며, 본래 의녕 사람이다. 9세에 고아가 되어 외삼촌,素庵 金鎭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총명하고 강기하여 열 줄을 동시에 읽었다. 항상 태만하고 소홀하여 물외의 세상에 빠져 있었다. 하루는 문득 탄식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능히 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습관의 해로움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거습침』을 지어 스스로 경계하였다. 대산 李象靖을 뵈었고, 돌아와 四子書와,洛閩書를 읽으니 한 번에 깨닫고 번연히 일변하여 바르게 되었다. 기사년에 세상을 떠나며 향년 66세였다. 어리부터 훙하고 억센 기상이 영달하고 담력이 있어 체당하고非常多한 대절을 가졌다. 동유하여 봉악을 기울고 팔경을 거쳐 가슴을 씻어내렸으며, 다시 문경의 선유동에 옥하정을 쌓았다.
독음
자종백호손재의녕인구세고수학어부씨소암금진동之门총명강기십행구하상탈략소광유물지외일일홀위연왈인지불능유위자습해지야작거식침이자경견대산이상경귀이사자서일발변전순연일이어정기사졸연육십육자소횡의영달유담략체당다대절동유풍악력팔경이탕涤흥흉又築옥하정어문경之선유동
의미
조선 正祖朝 代 南漢朝代의 선비 李宗伯(자 종백, 호 손재)의 行錄이다. 9세에 부모를 잃고 외삼촌 金鎭東에게 수학하여 총명한 자질을 보였으나, 소홀한 생활에 빠졌다가 거습침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李象靖에게 나아가 수학하고 돌아와 四書와,洛學·閩學의 서적들을 읽으며 순연히 바른 길로 돌아섰다. 기일년에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훙하고 억센 기상에 英達한 才智와 담력이 있어 대절을 쌓았다. 동유하여 楓岳과 八景을 두루 방문하여 마음의 뜻을 씻어냈고, 文敬 仙遊洞에 玉霞亭을 축조하였다. 柳定齋集의 격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원문
字宗伯號損齋宜寧人九歲孤受學于舅氏素庵金鎭東之門聰明強記十行俱下常脫略疏曠遊物之外一日忽喟然曰人之不能有爲者習害之也作祛習箴以自警見大山李象靖歸以四子洛閩書一撥便轉粹然一移於正己巳卒年六十六自少弘毅英達有膽略倜倘多大節東遊楓岳歷八景以蕩滌胸衿又築玉霞亭於聞慶之仙遊洞[주:柳定齋集碣銘]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종백 / 李宗伯, confidence=0.95
- person: 김진동 / 金鎭東, confidence=0.95
- person: 이상경 / 李象靖, confidence=0.95
- place: 의녕 / 宜寧, confidence=0.95
- place: 봉악 / 楓岳, confidence=0.95
- place: 문경 / 聞慶, confidence=0.9
- place: 선유동 / 仙遊洞, confidence=0.9
- work: 거습침 / 祛習箴, confidence=0.95
- work: 사자서 / 四子書, confidence=0.85
- work: 낙민서 / 洛閩書, confidence=0.8
- work: 유정재집 / 柳定齋集, confidence=0.95
- place: 옥하정 / 玉霞亭, confidence=0.95
- term: 사대자서 / 四大子書,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四大子書의 정확한 구성 (四書를 가리키는지 四子書를 가리키는지 문맥상 명확하지 않음)
- 倜倘(체당)의 정확한 음독 및 현대 한글 표기
- 洛閩書가 구체적으로 어떤 서적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학계 해석이 분분함
(정조조)남경희
- 기사 ID:
B9C^2_003_097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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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중은(仲殷)이고 호는 치암(癡菴)이며 영양(英陽) 사람이다. 어느 날 책을 읽고 있는데 부인이 식량이 떨어졌다고 알렸으나 응하지 않았다. 다시 집안 일을 말해도 응하지 않고 그때와 다름없이 책을 보고 있었다. 다섯 살 난 막내딸이 옆에서 ‘어머니, 어찌 굳이 이 바보 같은 사람에게 말을 걸며 고생하시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남경희가 이를 듣고不知不觉 절로 웃음을 터뜨리며 책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내 호가 진짜로 딱 맞구나’라고 하면서 因此 스스로 호를 치암이라 하였다. 남경희는 늘 이렇게 말하기를 ‘과거 시험의 문장은 마치 나무 위의 새가 내는 맑은 소리 같고, 산악의 도적이 밤에 내는 울음소리 같다’고 하였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에게 수학하였으며, 문과 벼슬에 올라 정언(正言)에 이르렀다. [默齋集誌銘]
독음
자 중은 호 치암 영양인 일일방간서 부인고 양절 불응 우어급가지 불응간서여고 지녀방오세 재봉、母氏何苦與癡人語 공불각실권 투권이而起 명의고당인양 호왈치암尝曰과거지문여목객지청음 치미지야효、受業於大山李象靖文科관至正言[默齋集誌銘]
의미
영양 출신 남경희는 책을 읽는 데 집중하여 부인의 식량 부족 알림이나 집안 일 말에도 전혀 응하지 않았다. 다섯 살 막내딸이 ‘어머니가 어찌 굳이 이 바보 같은 사람에게 말을 걸며 고생하시는가’라고 쏘아붙이자, 남경희가 절로 웃으며 책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이에 ‘내 호가 진짜로 맞구나’라며 자조적으로 치암(癡菴)이라는 호를 인정하였다. 과거 시험의 문장을 비난하여 ‘(시문에 불과한) 과거의 문장은 마치 숲속 새의 맑은 소리 같고, 도적의 밤 울음소리 같다’고 혹독하게 평가하였다. 이상정에게 수학하여 문과 벼슬에 올라 정언에 이르렀다.
원문
字仲殷號癡菴英陽人一日方看書夫人告糧絶不應又語及家事不應看書如故稚女方五歲在傍曰母氏何苦與癡人語公不覺失笑投卷而起曰名我固當因號曰癡庵嘗曰科擧之文如木客之淸音魑魅之夜嘯受業于大山李象靖文科官至正言[주:默齋集誌銘]
엔티티 후보
- person: 남경희 / 南景羲, confidence=1.0
- person: 자 중은 / 字仲殷, confidence=1.0
- term: 치암 / 癡菴, confidence=1.0
- place: 영양 / 英陽, confidence=1.0
- person: 이상정 / 李象靖, confidence=1.0
- place: 대산 / 大山, confidence=0.8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work: 묵재집지명 / 默齋集誌銘,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송환기
- 기사 ID:
B9C^2_003_097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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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자동이고, 호(號)는 성담이며, 은진 사람으로서 유암(宋時烈)의 5대손이다. 은닉과 유약(隐逸)의 관로로 나아가 관직이 선잠에 이르렀다.
독음
자유동호성담은진인유암오대손이은임관지찬선
의미
정조조 시대 인물 宋煥箕의 인물 정보를 수록한 기사로, 그가 유암으로 불린 송시열의 5대손임을 밝히고 있다. 송시열(尤庵)은 조선后期的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그의 가문은 양반 명문가였다. 宋煥箕는 평소 벼슬에 나가지 않고隐逸의 길로 자신의 재능과 학덕을 세상에 드러냈으며, 최종적으로 선잠(贊善)까지 관직에 이르렀다. 이는 명문 가문 출신이 직접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도 은둔 학자로서의 명성이 높아 관직에 천거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송환기 / 宋煥箕, confidence=1.0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place: 은진 / 恩津, confidence=1.0
- office: 찬선 / 贊善, confidence=1.0
- term: 은임 / 隱逸, confidence=1.0
- term: 오대손 / 五代孫, confidence=1.0
(정조조)류심춘
- 기사 ID:
B9C^2_003_097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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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호원이고, 호(號)는 강고이며, 풍산의 사람이다. 어은(漁隱) 천지의 5대 손이며, 음익찬(蔭翊贊)에 벼슬하였다.
독음
자호원호강고풍산인어은천지오대손음익찬
의미
정조조 시대 인물인 류심춘(柳尋春)의 정보를 수록한 기사이다. 그의 자는 호원, 호는 강고이며, 풍산지역 출신으로, 어은(漁隱)이라는 호를 쓴 천지의 5대 후손이다. 벼슬은 음익찬에 나갔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류심춘 / 柳尋春, confidence=0.95
- person: 호원 / 象元, confidence=0.95
- person: 강고 / 江皐, confidence=0.95
- place: 풍산 / 豐山, confidence=0.9
- person: 어은천 / 漁隱千, confidence=0.85
- office: 음익찬 / 蔭翊贊, confidence=0.9
- term: 오대손 / 五代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어은천지의 5대 손 여부 및 구체적 계보 관계
(정조조)이로익
- 기사 ID:
B9C^2_003_097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7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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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7:42:29.1486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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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로익의 자(字)는겸소이며 덕수 사람으로서 영상(領相) 이병모의 아들이다.的全羅監司의 부리(府吏)였던 최치봉은 큰 간사한 인물이었다. 매 마을마다 반드시 이삼 명의 간사한官吏가 서로 결탁하여 최치봉을 맹주(盟主)로 삼았다. 최치봉은 돈 수십 만으로 창고와 관계하여 어음을 조작하고 돈을 세워 근본을 삼았으니 만민이 그 피해를 입었다. 매监司가官吏를 보내어守令의 흉악을 물을 때 반드시 먼저 최치봉의 풍채(風旨)를 받았다. 그리하여 돌아올 때 반드시 작은 기록(小錄)을 먼저 최치봉에게 보여주었다. 清廉하고 근검하여 법을 잘 지키는守令은 모두 그 기록에 몰래 그를中傷하였으며, 탐욕스럽고奸滑한官吏가 작은 기록에 들어가면 모두 빼냈다. 기록을 갈라서本人에게 보내어 德을 세웠다. 일로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독음
자겸소덕수인영상병모자위전라도감사부리최치봉거환야매읍필유이삼간리체교치봉위맹주치봉이전수십만환동창고작전립본만민수독매감사차가리문수령장저필수선수치봉풍지급기귀필이소록선시치봉수령염근집법자개음중치지탐간괄리입어소록자개탈출지구록이송本人이수성덕일로측목공하차십일홀유왈여죄당사곤지장치지불사이우삼사읍유주고팽납물고치봉건명이대일오시현감불청경사우고팽
의미
정조조 시대全羅監司 부리 최치봉이 돈 수십만으로倉庫와 어음을 조작하여 만민에게 피해를 끼친 기록. 각监司가守令을 감찰할 때 반드시 최치봉의色을 보고褒貶을 결정하였다. 清廉한守令은 중상하고 간사한官吏는 기록에서 빠뜨려 德을 세우는 부패 구조를描寫하였다.
원문
字謙叟德水人領相秉模子爲全羅監司府吏崔致鳳巨猾也每邑必有二三奸吏締交致鳳爲盟主致鳳以錢數十萬幻弄倉庫作錢立本萬民受毒每監司遣吏問守令臧否必先受致鳳風旨及其歸必以小錄先示致鳳守令廉謹執法者皆陰中之其貪奸猾吏入於小錄者皆脫出之割其錄以送本人以樹成德一路仄目公下車十日忽喩曰汝罪當死棍之杖之不死移囚三四邑至于高敞促納物故致鳳乞命以待明日午時縣監不聽竟死于高敞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로익 / 李魯益, confidence=0.98
- person: 최치봉 / 崔致鳳, confidence=0.99
- person: 이병모 / 秉模, confidence=0.95
- place: 덕수 / 德水, confidence=0.92
- place: 전라도 / 全羅, confidence=0.99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9
- office: 부리 / 府吏, confidence=0.98
- term: 소록 / 小錄,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공윤항
- 기사 ID:
B9C^2_003_097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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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2:00:49.17617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79
한글 번역
자(字)는 사홍이고 나중에 星之로改하였다. 창원인으로서 대사헌 서린의 9대 손이다. 용인현에 거처하면서 가난하여 스스로 생계를 잇지 못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성균관에서 거두어 길렀다. 18년 2월에 임금이 반궁을 행차하여 문선왕묘를 배알하고 과목을 설치하여 인재를 뽑았는데,胤恒을 특별히 방榜의 끝에 붙였다. 벼슬은 병조좌랑에 이르렀다.
독음
자사홍후개성치지창원인대사헌서린구대손거용인현빈무자자상명성균관수양교육십팔년이월상행반궁액문선왕묘설과취사이윤항특부방미관지병조좌랑
의미
정조조 인물 공윤항의 행적 기록이다. 가난한 환경이었으나 임금의 특명으로 성균관에서 교육받았고, 정조 18년 문묘 별科的 시험에서 특별히 방榜 끝에 붙여 합격시켰다. 이후 병조좌랑 벼슬에 이르렀다.
원문
字士弘後改星之昌原人大司憲瑞麟九代孫居龍仁縣貧無以自資上命成均館收養敎育十八年二月上幸泮宮謁文宣王廟設科取士以胤恒特付榜末官至兵曹佐郞
엔티티 후보
- person: 공윤항 / 孔胤恒, confidence=0.95
- person: 사홍 / 士弘, confidence=0.9
- person: 성지 / 星之, confidence=0.9
- person: 서린 / 瑞麟, confidence=0.85
- place: 창원 / 昌原, confidence=0.9
- place: 용인현 / 龍仁縣, confidence=0.95
- place: 반궁 / 泮宮, confidence=0.9
- place: 문선왕묘 / 文宣王廟, confidence=0.9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85
- office: 병조좌랑 / 兵曹佐郞, confidence=0.9
- office: 성균관 / 成均館, confidence=0.95
- term: 방미 / 榜末,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榜末 特付
- 방榜 끝에 붙임이 방榜 하위 등재인지 특별 합격인지를文中에서 명확하지 않음
(정조조)모달겸
- 기사 ID:
B9C^2_003_098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8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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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40:12.66605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80
한글 번역
자(호)는 善甫, 함평 출신이다. 좌랑 景觀의 아들이며, 기유년 문과에 합격하였다. 여러 차례 우승의 직을 맡아 권奸을 탄핵하였으므로, 세상에서 모 우승의直言이라 일컬었다.
독음
자선호 함평인 좌랑 경관의 아들 기유년 문과屡屡 우승으로 권奸을 탄핵하여世에 모 우승의直言이라 일컬었다
의미
정조조 시대 인물 牟達謙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그는 함평 출신으로 좌랑 景觀의 아들이며 기유년 문과에 합격하였다. 우승(掌令)의 벼슬을 여러 차례 수행하며 권세를 누리는 간악한 자들을 탄핵하는 등 직간을 떳떳이 베풀어, 세상에서 ‘모 우승의直言’으로 불렸다. 直言은 관직을 직시하는 벼슬과 直言으로 간쟁하는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
원문
字善甫咸平人佐郞景觀子己酉文科屢以掌令劾權奸世稱牟掌令之直言[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모달겸 / 牟達謙, confidence=1.0
- person: 경관 / 景觀, confidence=1.0
- place: 함평 / 咸平, confidence=1.0
- office: 좌랑 / 佐郞, confidence=1.0
- office: 주임 / 掌令,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직간 / 直言,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文科 앞에 붙은 己酉의 연도 해석은 문헌 주에 ‘國朝榜目’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정확한 합격 연도는 추가 확인 필요
(정조조)홍대용
- 기사 ID:
B9C^2_003_098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8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21:57:38.34975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83
한글 번역
자(字)는 덕보이고 호는 담헌이며, 남양 사람이다. 대사諫(諫院의长官) 룡조의 손자이다. 아버의 음으로 영천군수를 보임받았다.律曆에 정밀하였으니, 처음으로 서양인이 지구를 논하였으나 지구 자전(地轉)은 말하지 않았다. 이에 홍대용이 말하기를, 땅이 한 바퀴 돌아면 하루가 된다고 하였다. 일찍이 스스로 과거应试를 폐지하고名利를 끊었으며, 숙부를 따라 사신으로燕(베이징)에 다녀오는길에 해내交友하여 名聲을 날린 선비들과 교류하였으니, 류비응, 엄성, 반정운 등이 모두,推服하였다. [주: 묘소명] 숙부 응의 자는 유치이고, 문과 장원하였으며,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주: 국조방목]
독음
字는 덕보요호는 담헌이요 남양人啊 대사간의 룡조의 손이요 음으로 영천군수를 보임했다. 그의 학술은律曆에 정밀했으니, 처음으로 태서인이 지구설을 논하였으나 지전(자전)은 말하지 않았는데, 대용이 가로되, 땅이 한 번 돌아으면 하루가 된다고 하였다. 일찍이 스스로 폐거(과거应试)를 폐지하고名利를 끊었으며, 숙부을 따라奉使燕行에 나갔다. 그 행중에 해내知名之士와 교유하였으니, 류비응, 엄성, 반정운 등이 모두,推服하였다. [주: 묘소명] 숙부 응(檍)은 字가 유치요, 문과 장원이고, 병조판서를 지냈다. [주: 국조방목]
의미
홍대용(字 德保, 湛軒)은 남양 출신으로 대사간을 지낸 홍룡조의 손자이다.律曆에精通하였고, 서양인이 지구 개념을 처음 논의했을 때 지구 자전에 대해「땅이 한 번 돌아면 하루가 된다」고 처음으로 지적하였다. 이후 스스로 과거를 포기하고名利를 등진 뒤, 숙부 홍응을 따라燕行使行에 참여하여 海內 명사들과 교류하였다. 특히 清學者 陸飛應, 嚴誠, 潘庭筠과 深交를 맺어 西學議論에 영향을 받았다. 숙부 홍응은 문과 장원 출신의 병조판서이다.
원문
字德保號湛軒南陽人大司諫龍祚孫蔭補榮川郡守精於律曆始泰西人論地球而不言地轉大容曰地一轉爲一日早自廢擧絶意名利隨叔父奉使如燕之行交遊海丙[주:內]知名之士如陸飛嚴誠潘庭筠咸推服焉[주:墓詣銘]叔父檍字幼直文科壯元兵曹判書[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홍대용 / 洪大容, confidence=1.0
- person: 홍룡조 / 洪龍祚, confidence=1.0
- person: 홍응 / 洪檍, confidence=1.0
- person: 자덕보 / 字德保, confidence=1.0
- person: 담헌 / 湛軒, confidence=1.0
- person: 자유치 / 字幼直, confidence=1.0
- person: 륙비응 / 陸飛應, confidence=0.9
- person: 엄성 / 嚴誠, confidence=0.9
- person: 반정운 / 潘庭筠, confidence=0.9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1.0
- place: 연(베이징) / 燕, confidence=1.0
- place: 영천 / 榮川, confidence=1.0
- office: 대사간 / 大司諫,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term: 율력(천문역법) / 律曆, confidence=0.9
- term: 지전(자전) / 地轉, confidence=1.0
- term: 지구 / 地球, confidence=1.0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1.0
- term: 봉사여연(사신행) / 奉使如燕, confidence=1.0
- term: 장원 / 壯元,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해내知名之士의 범위와 구체적 의미
- 墓詣銘의 정확한 문헌 표기
(정조조)김호천
- 기사 ID:
B9C^2_003_098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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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18:34.64443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86
한글 번역
자(字)는 성지(聖之), 호는 지천(芝川), 순천 사람이었으니 공령(功令)으로 유명하였다. 한번 남을 연경(燕京)에 보내면서 시를 지어 이르기를, “진시(秦時)의 성곽 한시(漢時)의 보壘, 고대로부터 남자가 북으로 흉노(胡)를 친다. 옥백(玉帛)이 해마다 유곡(楡塞)의 길로 가는데, 오늘날 사람은 머리를 숙여 단于(單于)에게 절한다.” 하였다. 삼전도(三田渡)를 지나며 시가 있다. “여기서 남자는 죽고 싶다. 대발(剃頭)한 황제가 공功을 새긴 비석, 비 앞의 지척에 조종수(朝宗水)가 있고, 날로 밤으로 동쪽으로 흘러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호천에게 막내아들 수암(秀巖)이 있으니 자는 망여(望汝), 호는 안옹(岸翁)이라, 역시 시문으로 이름이 있어 나이가 들어도 더욱 열심히 하였다. 그 시에 이르기를, “스스로 안심과 발자취가 맑은 물 같음을 안다. 감히 신명에게 밤에 향을 피워 묻는다.” 하였다.[주: 시화속록]
독음
자성지호지천순천인)이공령제명창송인입연경시왈진시성곽한시보종고남아북격호옥백년대유새로금인제수배단우과삼전도유시왈어차남아욕사지제두황제낙공비비전지적조종수일야동류경위수호천유계자수암자망여호안문학유명노이유독기시왈자지심적청여수감질신명야소향주시화속록
의미
조선 정조 연간에 살았던 순천 출신의 문인 김호천에 대한 기록이다. 호천은 공령(功令)으로 유명한 학자였으며, 연경에 가는 사람에게 시를 보내 전통적으로 남자가 북쪽 오랑캐를 치던 시대와 달리 이제는 그들에게 공손히 절하는 현실을 한탄하였다. 또한 삼전도를 지나며 만주족 황제가 세운 정종대왕묘비 앞에서 시를 지어, 유역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 역사의 의미를 묻고 있었다. 호천의 막내아들 김수암(망여, 호 안옹)도 시문으로 이름이 있었으며, 그의 시는 자신의 결백함과 신명 앞에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기원은 시화속록에 실린 기록이다.
원문
字聖之號芝川順天人以功令著名嘗送人入燕京詩曰秦時城郭漢時堡從古男兒北擊胡玉帛年年楡塞路今人稽首拜單于過三田渡有詩曰於此男兒欲死之剃頭皇帝勒功碑碑前咫尺朝宗水日夜東流竟爲誰浩天有季子秀巖字望汝號岸翁亦以詩文有名老而愈篤其詩曰自知心跡淸如水敢質神明夜燒香[주:詩話績錄]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호천 / 金浩天, confidence=0.98
- person: 김수암 / 金秀巖, confidence=0.95
- place: 순천 / 順天, confidence=0.97
- place: 연경 / 燕京, confidence=0.98
- place: 삼전도 / 三田渡, confidence=0.96
- place: 유곡 / 楡塞, confidence=0.72
- work: 시화속록 / 詩話續錄, confidence=0.92
- term: 공령 / 功令,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류득공
- 기사 ID:
B9C^2_003_098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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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글자는惠甫, 호는惠風이다. 문화인이자 일찍 진사에 합격하였다. 기해년에奎章閣檢書官에 임명되었다. 외직으로 보직되어提川郡抱川郡楊根郡郡守가 되었다. 비록 외직에 있으나 항상 검서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 때문에 세상에서 네 검서(四檢書) 중의 하나로 불렸다. 녹관(年老退職)으로 통정階에 올라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나중에豊川府使가 되었다.
독음
자혜부호혜풍문화인조중진사기해배규장각검서관외보제천포천양근군수수재외매대검서지첩시고세칭사검서지일이수승통정첨지중추부사만위풍천부사
의미
류득공은 정조조 시대의 관료이자 문화인이다. 기해년에奎章閣檢書官에 임명된 후 외직을 맡았으나 계속 검서 직함을 유지하여 네 검서 중 한 명으로 불렸다. 녹관 후 通政僉知中樞府事로 승진하고, 최종적으로豊川府使를 역임했다.
원문
字惠甫號惠風文化人早中進士己亥拜奎章閣檢書官外補提川抱川楊根郡守雖在外每帶檢書之銜是故世稱四檢書之一以壽陞通政僉知中樞府事晚爲豐川府使[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류득공 / 柳得恭, confidence=0.95
- person: 혜부 / 惠甫, confidence=0.95
- person: 혜풍 / 惠風, confidence=0.95
- office: 규장각검서관 / 奎章閣檢書官, confidence=0.9
- place: 제천 / 提川, confidence=0.85
- place: 포천 / 抱川, confidence=0.85
- place: 양근 / 楊根, confidence=0.85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0.9
- office: 첨지중추부사 / 僉知中樞府事, confidence=0.9
- place: 풍천 / 豊川, confidence=0.85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
- term: 사검서 / 四檢書, confidence=0.8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
- term: 외보 / 外補,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윤사국
- 기사 ID:
B9C^2_003_099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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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91
한글 번역
자(字)는 빈경이고, 호(號)는 직암이며, 칠원 사람이다. 관찰사 경용의 아들로, 종叔 경종의 뒤를 이어 출계했다. 여섯 살에 아버지를 따라 홍주의 임소로 갔을 때, 걸식하는 아이를 보고粥를 나눠주어 먹였다. 영조 기묘년에文科에 합격하여掌令이 되었다.陳啓가鄭厚謙을劾糾하자 이에忤逆하여得罪,大靜縣에 유배되었다가 곧 남해로 옮겼다. 곧赦宥되어江原監司가 되었는데,子規樓을 중수하면서 옛 터를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갑자기 불이 일어나 다섯 가구를 연소하고야 멈추었으니, 터와基礎가 모두 드러나 비로소 공사를 완수했다. 글씨의筆法이 매우 묘하였다.白下의尹淳,圓嶠,李匡師 등이 말했다. ‘이후 成名家가 될 것이다.’金剛山돌刻字이 묘하고,水原에도지지대碑가 있다. 벼슬은判敦寧府事에 이르렀다.
독음
자 빈경호 직암칠원인 관찰사 경용자 출계족숙 경종지후 육세 수부지 홍주임소 출견 걸아 지粥哺지 영조 기묘문과 위 장령 진계 핵 정후겸 견오 천 대정현 순이 남해 선유 강원감사 중수 자규루 심사 구지 미확 홉화 기 연소 오호 이 지 기출 노 답 내극 공역 필법 심묘 백하 윤순 원교 이광사왈 후成名家 금강산 석각 묘 길상수 원유 지지대비 관至 반돈녕부사
의미
윤사국은 칠원 출신으로 여섯 살에 아버지를 따라赴任한 곳에서 걸식하는 아이에게粥를 나눠주는 효심 어린 행적을 보인다. 영조 기묘년文科에 합격하여掌令에 오르며直言敢諫하는 태도를 보여 정후겸을劾糾한陳啓와 함께忤逆하여 유배되었다.赦宥된 후 강원감사로赴任하여子規樓을 중수할 때 불로 인해 옛 터가 드러나는 경이를 겪었고, 뛰어난筆法으로 서예가로서知評받았다.金剛山石刻과水原의지지대碑 등의 작품이 전해지며, 최종적으로判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원문
字賓卿號直菴漆原人觀察使敬龍子出繼族叔敬宗之后六歲隨父之洪州任所出見丐兒持粥哺之英祖己卯文科爲掌令陳啓劾鄭厚謙見忤竄大靜縣尋移海南旋宥爲江原監司重修子規樓尋舊址未獲忽火起延燒五戶而止址礎俱露乃克工役筆法甚妙白下尹淳圓嶠李匡師曰後成名家金剛山石刻妙吉祥水原有遲遲臺碑官至判敦寧府事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사국 / 尹師國, confidence=1.0
- person: 윤순 / 尹淳, confidence=1.0
- person: 이광사 / 李匡師, confidence=0.9
- person: 정후겸 / 鄭厚謙, confidence=1.0
- person: 경용 / 敬龍,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敬宗, confidence=1.0
- place: 칠원 / 漆原, confidence=0.9
- place: 홍주 / 洪州, confidence=1.0
- place: 대정현 / 大靜縣, confidence=1.0
- place: 남해 / 海南, confidence=1.0
- place: 강원 / 江原, confidence=1.0
- place: 금강산 / 金剛山, confidence=1.0
- place: 수원 / 水原, confidence=0.8
- place: 백하(南京) / 白下, confidence=0.9
- work: 자규루 / 子規樓, confidence=1.0
- work: 지지대비 / 遲遲臺碑, confidence=0.8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office: 반돈녕부사 / 判敦寧府事, confidence=1.0
- term: 출계(대살) / 出繼,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圓嶠(원교 - 백하 지역 인물인지 명확하지 않음)
- 漆原(칠원 -的地名还是人名구분 불확실)
- 遲遲臺碑(지지대비 - 구체적位置및性质 미확인)
(정조조)심낙수
- 기사 ID:
B9C^2_003_099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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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42:29.00224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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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경문이고 호는 은파이다. 청송 사람으로 영수상의 근원이 되는 6대 손이다. 영조 을미(1755)년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으로, 첨사 벼슬을 했다. 제주의 대기근시가 들어왔을 때 조정이 특별히 그를 선정하여 제주목사로 삼았다. 그가 유민을 편안하게 하고 구제하여 적잖이功을 이루었다. 아들 노숭은 호가 효전이고, 노숭의 아우 노암은 호가 제전이다. 모두 시문으로之名이 났다.
독음
자 경문호 은파 청송인 영상지 원육대손 영조 을미 문과參議 제주 대기 조정 특선 위 제주 목사 부집 유민 구진득의 자 노숭호효전 노숭제 노암호제전 구 이사문 유명
의미
정조조 관인 심낙수에 대한 기록이다. 영조 연간 문과에 급제한 후 제주목사를 역임하며 기근 때 유민 구제에 적잖은 공로를 세웠다. 영수상 가문의 6대 손으로, 아들 심노숭과 아우 심노암도 시문으로著名함을記해 놓았다.
원문
字景文號恩坡靑松人領相之源六代孫英祖乙未文科參議濟州大饑朝廷特選爲濟州牧使撫輯流民救賑得宜子魯崇號孝田魯崇弟魯巖號悌田俱以詩文著名
엔티티 후보
- person: 심낙수 / 沈樂洙, confidence=0.95
- person: 심노숭 / 沈魯崇, confidence=0.9
- person: 심노암 / 沈魯巖, confidence=0.9
- place: 청송 / 靑松, confidence=0.95
- place: 제주 / 濟州, confidence=0.95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
- office: 영수상 / 領相, confidence=0.8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첨의 / 參議, confidence=0.9
- term: 대기근 / 大饑,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영조 을미년을 영조 31년(1755)년으로 확인하나, 역사 기록상 해당 문과 급제 명단이 불분명함
- 원육대손의 정확한 세대 연결 고리는 문헌상 명확하지 않음
(순조조)김조순
- 기사 ID:
B9C^2_003_099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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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19:12.82322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94
한글 번역
자(子)는 사원(士源)이고, 본래 이름은 낙순(洛淳)이며, 호는 봉고(楓皐)이다. 안동 출신으로서, 부사(府使)履中의 아들이요, 승지(承旨)濟謙의 증손(曾孫)이다. 정조(正祖) 을巳(1789)년 문과에 합격하였고, 대제학(大提學)이 되었다. 순조(純祖)의 국舅(국외)로서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에 봉해졌다. 시에 이르기를, ‘고국천년유수재(古國千年流水在), 행인삼월행화비(行人三月杏花飛)’라 하였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주: 국조방목]
독음
자사원초명낙순호봉고 안동인 부사이자 중수 증조 할아버지 정조 을사 문과 대제학 이 순조 국舅 봉 영안부원군 시왈 고국천년유수재 행인삼월행화비 염충문
의미
김조순의 인물기를 수록한 기사로, 본래 이름은 김낙순이고 호는 봉고이며 안동 출신이다. 문과에 합격하여 대제학에 이르렀고, 순조의 외척(국舅)으로서 영안부원군에 봉해졌다. 시 작품의 일부와 시호 충문이 기록되어 있으며, ‘국조방목’이라는 주를 붙여 당시 급제자 명부에서 확인된 인물이음을 나타낸다.
원문
子士源初名洛淳號楓皐安東人府使履中子承旨濟謙曾孫正祖乙巳文科大提學以純祖國舅封永安府院君詩曰古國千年流水在行人三月杏花飛諡忠文[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조순 / 金祖淳, confidence=0.95
- person: 낙순 / 洛淳, confidence=0.95
- person: 이중(김조순의 아버지) / 履中, confidence=0.85
- person: 제겸(김조순의 조상) / 濟謙, confidence=0.85
- person: 정조 / 正祖, confidence=0.95
- person: 순조 / 純祖, confidence=0.95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5
- place: 영안부원군 / 永安府院君, confidence=0.95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85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85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0.95
- term: 국舅(국의 어른, 외척) / 國舅,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순조조)홍광일
- 기사 ID:
B9C^2_003_099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99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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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2:03:37.44622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996
한글 번역
자(字)는伯承이고, 호는華西이며, 南陽 사람이다. 나이 열아홉 살에童蒙 중에 生員이 되었다. 丙申년에 文科로 합격하여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고, 한성부 좌윤을 역임하였다. 한번 길 위의 걸걸이를 보고 불러 함께 자도록 하였다. 말하기를, 이것도 사람의 아들인데 어찌 후하게 대해서는 안 되겠는가, 하였다. 어린 아이들이 참새를 잡는 것을 금하였다. 말하기를, 군자는 친족을 사랑하고(親親) 백성을 어짊(仁民)이며, 백성을 어짊으로 물건을 사랑하게 한다(愛物). 비록 이것이 작은 절의(小節)이지만 이것으로도仁心을 볼 수 있다, 하였다. 유고(遺稿) 삼십 권이 있는데 집에 간직하여 두었다. [주:梅山集]
독음
자백수호화서남양인년십구이충몽중생원병신문과拜동지중추부사한성부좌윤상견도상걸아초여공침왈차역인자불가선우금지소황포작왈군자친친이인민인민이爱물차수소절역가고인심야유유고삼십권장어거梅山集
의미
조선 순조조 관료 홍광일(洪光一)의 약전이다. 열아홉 살에 생원 급제, 丙申년(순조 연간 추정)에文科 합격 후 동지중추부사·한성부 좌윤 등 요직을 역임했다. 길가의 걸걸이를 불러 함께 자게 하고 그 또한 사람의 아들이라 후하게 대접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어린아이가 참새를 잡는 것을 금하며 군자는 친족을 사랑하고 백성을 어짊으로 대하고 물건까지 사랑하는仁心의 발로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따뜻한人性愛와仁政 사상을 실천 인물로 기록한 전기이다. 유고 삼십 권이 있었으며,文集 제목은梅山集이다.
원문
字伯承號華西南陽人年十九以童蒙中生員丙申文科拜同知中樞府事漢城府左尹嘗見道上乞兒招與共寢曰此亦人子可不善遇禁小兒捕雀曰君子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此雖小節亦可以見仁心也有遺稿三十卷藏于家[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홍광일 / 洪光一, confidence=1.0
- person: 백수(자) / 伯承, confidence=1.0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1.0
- office: 동지중추부사 / 同知中樞府事, confidence=1.0
- office: 한성부 좌윤 / 漢城府左尹, confidence=1.0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1.0
- term: 동몽(어린아이) / 童蒙,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걸걸이(결식아동) / 乞兒, confidence=0.8
- term: 유고 / 遺稿,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동몽중생원(童蒙中生員)의 정확한 시험 단계 구분
(순조조)류효원
- 기사 ID:
B9C^2_003_100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0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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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45:40.81769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04
한글 번역
유효원의 자는 사백으로, 진주 출신이다. 아버지는 통제사 유진항이다. 아버지의 관직으로 음보하여 도총경력이 되었다. 정묘년(1809) 무과 중시에서 장원을 취득하였다. 평안병사를 지냈으며, 신미년(1811)에 순무 중군으로 서쪽의 적홍경래 등을 토평하였다. 관직이 통제사에 이르렀고, 죽은 뒤 증직으로 병조판서를 받았으며, 시호는 무숙이다. [주: 국조방목]
독음
자 사백, 진주인, 통제사 진항의 아들. 음보하여 도총경력이 되고, 정묘년 무과 중시 장원이 되었다. 평안병사를 역임하고, 신미년에 순무 중군이 되어 서적 홍경래 등을 토평하였다. 관직이 통제사에 이르렀고, 증직으로 병조판서를 받고 시호는 무숙이다. [주: 국조방목]
의미
유효원은 진주 출신으로, 아버지 유진항(통제사)의 관직을 이어 음보로 관료 길에 올라 정묘년 무과 중시 장원이 되었다. 이후 평안병사를 역임하고 신미년 홍경래 반란을 순무 중군으로 평정하는 공을 세워 통제사에 올랐으며,死后 증직으로 병조판서를 받고 시호 무숙을 받았다.
원문
字斯伯晉州人統制使鎭恒子蔭補都摠經歷正廟丙申武科重試壯元歷平安兵使辛未以巡撫中軍討平西賊洪景來等官至統制使贈兵曹判書諡武肅[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유효원 / 柳孝源, confidence=0.95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0.95
- person: 유진항 / 鎭恒, confidence=0.9
- office: 통제사 / 統制使, confidence=0.95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5
- person: 홍경래 / 洪景來, confidence=0.95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0.95
- term: 도총경력 / 都摠經歷, confidence=0.85
- term: 무과중시장원 / 武科重試壯元, confidence=0.9
- office: 평안병사 / 平安兵使, confidence=0.95
- term: 순무중군 / 巡撫中軍, confidence=0.85
- term: 시호무숙 / 諡武肅,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도총경력(都摠經歷)의 직급명 변동 가능성), 순무중군(巡撫中軍)의 구체적 역할 구분
(순조조)이정하
- 기사 ID:
B9C^2_003_100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0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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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21:54.99393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06
한글 번역
자(字)를 경인(敬人)이라 하고, 완산(完山) 사람이다. 충정공 후원의 8대 손이며, 조부는 명연(明淵)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부사(永興府使)를 지내고, 사후에 증리삼참판(贈吏曹參判)으로 추증되었다. 호는 거포(瞿圃)이고, 성품이 곧고 바랐으며 임금을 잘 섬기고 대우를 깊이 받았다. 그러나 벼슬에서 차차 권세와 총애를 받는 자들을 거슬려 朝에서 몸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정하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慧敏하여 여덟 살에镶路를 따라가며 정조(正祖)의 행차를 구경하고, 정조가 특별히 명하여 앞으로 나오게 하고 거포의 손자임을 알고 그 거端正한 용모를 칭찬하며 ‘기개가 조부와 꽤 비슷하다’고 하였다.成長한 뒤에는 오희상(吳煕常)에게 도를 배우고 징악산(徵岳山)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책보따리를 메고 대학(大學)을 受讀하였으며, 기대와期許가 매우 높았다. 삼가현감(三嘉縣監)과 가평군수(加平郡守)를 지내고, 논어(論語)의疑義를 논술한困衡錄을 지었다.
독음
자경인완산인충정공후원팔세손조명연문과영흥부사증리삼참판호거포직도사고계약우강중이적오권형불능안신어조정하생이영오팔세종철로관광정묘특명진전문지위거포지손찬기거지유도일기안비개뇌조영장문오역상징악산중수선부제독대학기허綎중위삼가현감가평군수창술논어유의명곤형록주매산집
의미
李正夏는 순조 연간에 활동한 관료로, 충정공 후원의 8대 손이다. 어려서 정조의 시종을 받으며 총명함을 칭찬받고, 오희상에게 수학하여 대학을 읽었다. 삼가현감과 가평군수를 역임한 뒤 논어 의문을 논한困衡錄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권세를 사귀지 않는 곧은 성품 때문에 권신들에게 度數차례로 불이익을 받아 朝에서 편안히身을 놓지 못했다.
원문
字敬人完山人忠貞公厚源八世孫祖明淵文科永興府使贈吏曹參判號瞿圃直道事君契遇降重而積忤權倖不能安身於朝正夏生而穎悟八歲從蹕路觀光正廟特命進前問知爲瞿圃之孫讚其擧止有度曰氣岸頗類乃祖旣長聞吳煕常講道徵岳山中首先負笈受讀大學期許綦重爲三嘉縣監加平郡守創述論語疑義名困衡錄[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정하 / 李正夏, confidence=1.0
- person: 오희상 / 吳煕常, confidence=0.95
- person: 명연 / 明淵, confidence=0.95
- person: 후원 / 厚源, confidence=0.95
- place: 완산 / 完山, confidence=0.95
- place: 영흥 / 永興, confidence=0.95
- place: 삼가 / 三嘉, confidence=0.95
- place: 가평 / 加平, confidence=0.95
- place: 징악산 / 徵岳山, confidence=0.9
- office: 영흥부사 / 永興府使, confidence=0.95
- office: 리삼참판 / 吏曹參判, confidence=0.9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5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work: 곤형록 / 困衡錄, confidence=0.95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85
- term: 충정공 / 忠貞公, confidence=0.95
- term: 거포 / 瞿圃, confidence=0.95
- term: 대학 / 大學, confidence=0.95
- term: 논어 / 論語,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蹕路 - 당상행차로 인한 통제 구간의 구체적 범위와 용례
- 從蹕路觀光正廟 - 정조 행차를 따른 구체적 행사의 성격
- 擧止有度 - 예의 바르고 분수에 맞는 행동을 표현하는 관용적 서술
(순조조)신필황
- 기사 ID:
B9C^2_003_100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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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21:38.61625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08
한글 번역
자(字)는舜七이고, 호는樓橋이며, 거창인이다. 宋剛齋의 문하에서 배웠다. 말과 침묵에 법도가 있었고, 행동거지에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동문 제자들 모두 그의 부지런함을 따를 수 없다고 하였다. 나중에粉溪의 한곳을 골라 집을 짓고 꽃을 심어 그 사이를 서성였다. 壬辰년에 졸했으며, 향년 34세였다. [주:梅山集]
독음
자순칠호루교 거창인 학어송강재지문 어묵유도 동지유상 동문제자 흡위기근불가급야 만포분계일구 적실식화반선기간 임진졸년삼십사
의미
조선 순조조(純祖朝) 시대의 학자 愼必璜(신필황)의 약력이다. 字는舜七, 호는樓橋이며, 거창 출신으로 송강齋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평소 말과 행동에 규범이 있었고, 동문들 사이에서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한 인물이었다. 말년에粉溪로 거처를 옮겨 꽃을 기르며 생활하였으나, 壬辰년에 34세로 요절하였다. 출전은『梅山集』이다.
원문
字舜七號樓橋居昌人學于宋剛齋之門語默有度動止有常同門諸子咸謂其勤不可及也晚卜粉溪一區築室蒔花盤旋其間壬辰卒年三十四[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신필황 / 愼必璜, confidence=0.95
- person: 자舜칠 / 字舜七, confidence=0.95
- person: 송강재 / 宋剛齋, confidence=0.95
- place: 거창인 / 昌人, confidence=0.9
- place: 분계 / 粉溪, confidence=0.85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
- term: 임진 / 壬辰,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樓橋(호명), 동문제자의 표현 범위, 粉溪의 구체적 위치
(순조조)오치규
- 기사 ID:
B9C^2_003_101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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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서오이며, 해주 사람이다. 문원공(文元公) 희상(煕常)의 아들이자, 백부인 영재처사(寧齋處士) 윤상(允常)의 뒤를 이어 출계한 사람이다. 스스로 힘써 학문에 힘쓰고,功令(공령)도 아웠다. 경오(庚午)년에 사마(司馬)에 올랐으며, 관직은 목사(牧使)에 이르렀다.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홍선(弘善)은 생원(生員)이었으나 요절(夭折)하였다. 따라서 족자(族子) 준영(俊泳)을 맞아 양자로 삼았다. 준영은 문과(文科) 반서(判書)에 이르렀다. [주: 매산집]
독음
자서오해주고인문원공희상자출계백부영재처사윤상지후자력위학겸치공령경오사마관지목사유일남홍선생원요취족자준영위사준영문과반서[주:매산집]
의미
순조조의 인물 오치규(吳致珪)는 해주 출신으로 문원공 오희상의 아들이며, 백부 오윤상의 양자가 되었다. 사마과에 합격하여 결국 목사에 이르렀으며, 아들 홍선이 생원 때 요절하자 족자 오준영을 양자로 삼았고, 이 양자가 문과 반서가 되었다.
원문
字瑞五海州人文元公煕常子出繼伯父寧齋處士允常之后自力爲學兼治功令庚午司馬官至牧使有一男弘善生員殀取族子俊泳爲嗣俊泳文科判書[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오치규 / 吳致珪, confidence=1.0
- person: 서오 / 瑞五, confidence=1.0
- place: 해주 / 海州, confidence=1.0
- person: 문원공 오희상 / 文元公煕常, confidence=1.0
- person: 영재처사 오윤상 / 寧齋處士允常, confidence=1.0
- person: 홍선 / 弘善, confidence=1.0
- person: 오준영 / 俊泳, confidence=1.0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1.0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office: 반서 / 判書, confidence=1.0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功令(공령) - 군사적 명령·규율로 해석하나 원문 맥락이 불분명
(순조조)최광한
- 기사 ID:
B9C^2_003_101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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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48:00.56684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12
한글 번역
자(字)는 윙명(允明)이고, 삭녕(朔寧)사람이다. 증참판(贈參判) 염겸(彥謙)의 증손(曾孫)이다. 어릴 적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학업을 놓쳤으나, 본성은 효행에 기울어졌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한 달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았으며, 양눈에 끈적이는 눈꼽이 많이 배어도 조금도 나태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똥을 맛보고, 대소변을 직접 씻어 치웠다. 남이 더러움을 보지 못하게 하였으며, 십 년을 하루처럼 그렇게 지냈다.
[주:『매산집』에서 발췌]
독음
자 윙명삭녕인증참판 염겸증손조수이간고실학이자성어효친병열월불매양목농시소不少解부병상분대소변궁척혼구인부득견눼십년여일일[주:매산집]
의미
조선 순조(純祖) 연간에 활동한 최광한(崔光漢)에 대한 인물 기사를 수록한 한문 고문헌이다. 그의 직위는 증(贈)으로 추증한 참판이고, 가문은 염겸의 후손이다. 어린 시절 가정 경제를 책임지며 학업을 포기해야 했으나, 그럼에도 효도와 관련된 행적으로 그를 기린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각 병에 걸렸을 때 잠을 자지 않고 눈꼽이 맺혀도 게으름없이 간호하며, 특히 아버지의 병에서 똥을 맛보고 대소변을 직접 씻어 치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행적을 십 년 동안 하루처럼 꾸준히 수행했다고 한다. 출전은 『매산집』이다.
원문
字允明朔寧人贈參判彥謙曾孫蚤歲以幹蠱失學而性於孝親病閱月不寐兩目濃眵不少懈父病嘗糞大小便躬滌溷具人不得見穢十年如一日[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최광한 / 崔光漢, confidence=1.0
- person: 윙명 / 允明, confidence=1.0
- place: 삭녕 / 朔寧, confidence=1.0
- person: 염겸 / 彥謙,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순조조)유병주
- 기사 ID:
B9C^2_003_101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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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22:20.00518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13
한글 번역
글자를 보니 덕여라 하고, 기溪 사람으로서 정비공 유언술의 손자였다. 관직은 목사에 이르렀다. 혹 자比例为 ‘재화가 한정되어 있는데 잘 베풀어 그치지 않으니, 홀로 자손을 위해 하지 않는데’라고 말했다. 이에 답하기를 ‘재화의 모임과 흩어짐은 어진 것과 어질지 못한 것의 구별이 되는 길이다.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어찌 재화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오히려 자손의 옷과 음식도 각각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니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독음
자덕여기계인정비공언술손관지목사혹위재유한而来시不已독불위자손답왈재지취산어여불어지소유분사람이불어언용재위내약자손의식역자각모비오소당지
의미
유병주가 재화의 운용에 대한 입장을 밝힌 기사다. 재화가有限하면서도 쉬지 않고施捨하면子孫을 위해 남기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 재화의聚散이仁과不仁을 구분하는 기준이며, 불인한 사람에게 재화가 무슨 소용이겠냐고 반문했다. 또한子孫의 삶은 각자 스스로 책임지는 것으로, 그것까지 자신이 알아야 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재화를 통한仁德 실천과物质적 유산에 대한無差別적 태도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원문
字德汝杞溪人靖憲公彥述孫官至牧使或謂財有限而好施不已獨不爲子孫答曰財之聚散仁與不仁之所由分人而不仁焉用財爲乃若子孫衣食亦各自謀非吾所當知
엔티티 후보
- person: 유병주 / 兪秉柱, confidence=0.95
- place: 기계 / 杞溪, confidence=0.9
- person: 유언술 / 彥述, confidence=0.95
- person: 정비공 / 靖憲公, confidence=0.9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5
(순조조)박기수
- 기사 ID:
B9C^2_003_101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1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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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48:27.58036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15
한글 번역
자(말호)는 봉래, 남반 사람이다. 인문숙공 종경의 아들이며, 백부인 충익공 종보에게 출제되었다. 경오년에 태어나 생원, 진사에 급제하고, 백조(伯祖) 근재 윤원에게 학례를 배웠다. 병자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반돈녕부사까지 올랐으나 물러나 양주 마을에 거처했다. 종이 울리고 물이 마르는 줄도 모르고 밤에 행해 멈추지 않는다는 옛 사람의 경계를 생각하여, 돈암의 옛 마을로 돌아가山水를 즐기며 남은 일생을 보내고자 하였다. 정미년에 병조판서로 임명되었는데, 충심과 근면을 갖추어 큰일을 맡기기에 알맞다 여기셨으나, 얼마 되지 않아 서거하였다.
독음
자봉래 남반 인문숙공 종경자 출제백부 충익공 종보자 경오생원 진사고 학례어백조 근재 윤원 병자문과 관至반돈녕부사 퇴처양주촌사인念 종명루진야행불휴 고인계也想귀돈암구舍逍遙산수이종여경 정미 除병조판서이위충근가속대사미수월이 졸
의미
박기수는 경오년(1790) 태어났으며 생원·진사 합격 후 근재 윤원에게 수학하고 병자년(1816) 문과에 합격하여 반돈녕부사까지 올랐다. 이후 양주의 마을에서隠居하며 종이 울리고時刻이 다했음을 모르고 밤길을 걷는다는 고사를 인용, 돈암의 옛 마을로 돌아가 산수를 벗하며余生를 보내고 싶어 했다. 정미년(1847) 병조판서로 부임되었으나忠勤을 인정받았음에도 수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원문
字鳳來南潘人文肅公宗慶子出繼伯父忠翼公宗輔子庚午生員進士學禮於伯祖近齋胤源丙子文科官至判敦寧府事退處楊州村舍因念鍾鳴漏盡夜行不休古人誡也欲歸敦巖舊舍逍遙山水以終餘景丁未除兵曹判書以爲忠勤可屬大事未數月而卒[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박기수 / 朴岐壽, confidence=1.0
- person: 봉래 / 鳳來, confidence=1.0
- person: 종경 / 宗慶, confidence=1.0
- person: 종보 / 宗輔, confidence=1.0
- person: 윤원 / 胤源, confidence=1.0
- place: 양주 / 楊州, confidence=1.0
- place: 돈암 / 敦巖, confidence=1.0
- office: 반돈녕부사 / 判敦寧府事, confidence=1.0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term: 인문숙공 / 人文肅公, confidence=0.8
- term: 충익공 / 忠翼公, confidence=0.8
- term: 근재 / 近齋,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인문숙공·충익공 - 능호(諡號)로 보이나 문헌 출처 미확인
- 종鳴漏盡 - ‘종이 울리고 물이 마친다’는 時已盡之意로 解讀하나, 구체적典故 미확인
(순조조)정의
- 기사 ID:
B9C^2_003_101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1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22:05:37.73317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16
한글 번역
자(字)는 청부였고, 연일인(延日人)이었다. 문청공 정척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흥은위이고, 어머니는 재화상 장조의 딸 청선옹주에게서 정漪가 태어났다. 별명은 진명이고 자는 성汝이며, 정묘(正廟)에서 지금 이름을 하사주고, 순묘(純廟)에서 또다시 字를 하사주시며 그 字설까지 내리셨으니 대단히 후한 은혜였다. 아버지의 음로(蔭)로서 차관에 승진하여 형조 참판에 이르렀다.
독음
자 청부 연일인 문청공 척 구세손 아버지 흥은위 재화상장조녀의 딸 청선옹주에게서 정漪가 태어났다. 별명은 진명이고 자는 성汝이며, 정묘에 바쳐 지금 이름을 하사받고, 순묘에 또다시 字를 하사받으시며 그 字설까지 내리셨으니 매우 후한 은혜였다. 음로 인해 관직을 차례로 오르다 형조 참판에 이르렀다.
의미
조선 순조조 시대 인물 정漪의 전기이다. 문청공 정척의 9세손으로, 흥은위와 청선옹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별명 진명, 자 성汝를 사용하다가 정묘와 순묘에서 각각 이름과 字를 하사받았다. 아버지의 관품으로 출사하여 형조 참판까지 승진한 인물이다. 『梅山集』에서 보인다.
원문
字淸夫延日人文淸公澈九世孫父興恩尉在和尙莊祖女淸璿翁主生漪別名鎭命字性汝正廟賜今名純廟又賜字而錫以字說殊渥也以蔭累官至刑曹參判[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정漪 / 鄭漪, confidence=1.0
- person: 청부 / 淸夫, confidence=1.0
- person: 문청공 척 / 文淸公澈, confidence=1.0
- person: 흥은위 / 興恩尉, confidence=1.0
- person: 청선옹주 / 淸璿翁主, confidence=1.0
- person: 진명 / 鎭命, confidence=1.0
- person: 성汝 / 性汝, confidence=1.0
- person: 정묘 / 正廟, confidence=1.0
- person: 순묘 / 純廟, confidence=1.0
- office: 형조 참판 / 刑曹參判, confidence=1.0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순조조)심의진
- 기사 ID:
B9C^2_003_101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1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50:30.46084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17
한글 번역
자(표字)는 지홍이고, 청송 출신이다. 영의정 심원의 현손이며, 직장 심사민의 아들이다. 순조 신유년에 사마에 나아가 벼슬이 익위에 이르렀다. 베풀기를 좋아하였으며, 친척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고, 가난하고 병든 자와 혼인과 상여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미처 다 하지 못하는 듯 도왔다. 궁핍한 고을의 멀리 떨어진 친족에게까지 이르렀다. 가족의 아들 심돈영을 양자로 삼았다. 문과에 급제하여 참판에 이르렀다.[주: 『매산집』]
독음
자지홍청송인 영의정지원현손 직장사민자 순묘신유 사마 사치익위 기시여여 친척공감고 제기빈병혼상여불급 이대궁향소속 취족자돈영위사文科參判[주:梅山集]
의미
순조 시대 인물 심의진의 약력이다. 청송 출신으로 영의정 심원의 후손이며, 관료 생활을 거쳐 익위까지 출세했다. 덕행方面으로 유명하여 베풀기와 이웃 사랑에 힘썼으며, 궁핍한 친족까지 돌보았다. 문과에 합격하여 참판 벼슬에 올랐다. 『매산집』에 수록된 내용이다.
원문
字致弘靑松人領議政之源玄孫直長師民子純廟辛酉司馬仕至翊衛喜施予與親戚共甘苦濟其貧病婚喪如不及以逮窮鄕疏屬取族子敦永爲嗣文科參判[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심의진 / 沈毅鎭, confidence=0.95
- person: 지홍 / 致弘, confidence=0.95
- place: 청송 / 靑松, confidence=0.95
- person: 심원 / 沈源, confidence=0.9
- person: 사민 / 師民, confidence=0.85
- person: 돈영 / 敦永, confidence=0.9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office: 직장 / 直長, confidence=0.85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0.9
- office: 익위 / 翊衛, confidence=0.85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5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양자 / 嗣,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직장(直長)의 구체적 관직 명칭과 품급
- 소속(疏屬)의 정확한 친족 관계 범위
- 辛酉년의 순조 재위 연도와 실제 서거와의 대비
(순조조)이승연
- 기사 ID:
B9C^2_003_101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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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문계(文階)이고, 호는 연재(衍齋)이며, 완산(完山) 사람이다. 광평대군(廣平大君) 이璵(리기)의 후손으로서, 현감(縣監) 의화(義和)의 아들이다. 5세에 부모가 비가 올 때 빗줄기가 얼마나 될까 하고 물었더니, 승연이 마당에 내려가서 처마 물받이를 세어서 대답하였다. 자라서는 간재(艮齋) 홍의영(洪儀泳)에게 수학하고, 근재(近齋) 박윤源(朴胤源)에게 교정을 받았다. 임자(壬子)년에 사마(司馬)에 합격하고, 벼슬이 반관(判官)에 이르렀다.
독음
자유문계호연재완산인광평대군기후현감의화자오세부모시험문우각기하승연하정수연담류이대성장수업우간재홍의영취정우근재박윤원임자사마관지반관
의미
조선 순조조 인물 이승연의 행적을 수록한 기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비의 빗줄기를 처마 물받이를 세어 답한 일화가 전한다. 홍의영, 박윤원 등 당대 학자들에게 수학한 후 임자년 사마 합격, 반관 벼슬에 이르렀다.
원문
字文階號衍齋完山人廣平大君璵后縣監義和子五歲父母試問雨脚幾何升淵下庭遂數簷溜而對及長受業于艮齋洪儀泳就正于近齋朴胤源壬子司馬官至判官[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승연 / 李升淵, confidence=0.95
- person: 홍의영 / 洪儀泳, confidence=0.95
- person: 박윤원 / 朴胤源, confidence=0.95
- person: 광평대군리기 / 廣平大君璵, confidence=0.85
- place: 완산 / 完山, confidence=0.9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반관 / 判官, confidence=0.95
- work: 간재 / 艮齋, confidence=0.9
- work: 근재 / 近齋,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순조조)이직보
- 기사 ID:
B9C^2_003_102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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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직보의 자(字)는 위종이고 호는 중洲이며,延安 사람이다. 관찰사 해조의 손자이다. 8세에 시를 지어 “명월이 바다에서 떠올라 맑은 빛이 만 리를 내려온다”[明月初滄海, 淸光萬里來]라고 하였다. 성장하여 미호(金元行)의 문하에서 지암(金亮行)에게 수학하였다. 갑진(甲辰)에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곧掌令으로 발탁 임명되었다. 정사(丁巳)에 元子가 학업에 들어가면서 우욱善으로 임명되었다. 순조(純祖)가 즉위하면서吏曹判書에 임명되었다. 무진(戊辰)에 독판之士 宋啓幹과 金直淳을 천거하였는데, 모두 유학자들의 배출에 선정되었다. 시호는 文敬이다.[주: 매산집]
독음
자유 위종호 중주延安인 관찰사 해조 손 팔세 부시운 명월출창해청광만리래 及장 종 미호 금원행 지암 금양행 학 갑진 서監役不就 척배 장령 정사 원인자 취학 배 우욱善 순조 즉위 배 이조 판서 무진 천 독지사 송계간 금 직순 구 피 유선 시 문경 [주: 매산집]
의미
조선 순조조 문신 이직보의 행적을 적은 기사이다. 8세 때 시才를 보였고, 학문을 닦아 갑진년(1804)에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掌令, 우욱善,吏曹判書 등을 역임하며 관직을 올렸다. 무진년(1808)에는 인재 宋啓幹과 金直淳을 천거하여 유학 선발에 기여하였다. 사후 文敬의 시호를 받았다. 이 기사는 매산집에서 발췌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문
字維宗號中洲延安人觀察使海朝孫八歲賦詩云明月出滄海淸光萬里來及長從渼湖金元行止菴金亮行學甲辰除監役不就擢拜掌令丁巳以元子就學拜右諭善純祖卽位拜吏曹判書戊辰薦讀書士宋啓幹金直淳俱被儒選諡文敬[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직보 / 李直輔, confidence=0.95
- person: 자 위종 / 字維宗, confidence=0.9
- person: 해조 / 海朝, confidence=0.9
- person: 금원행 / 金元行, confidence=0.85
- person: 금양행 / 金亮行, confidence=0.85
- person: 송계간 / 宋啓幹, confidence=0.9
- person: 금직순 / 金直淳, confidence=0.9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0.9
- office: 관찰사 / 觀察使, confidence=0.95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0.95
- office: 우욱선 / 右諭善, confidence=0.95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5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85
- term: 원자 / 元子,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監役
- 掌令이 아닌 직제 여부
- 渼湖의 한자 표기 및 실존 인물 확인
(순조조)박정원
- 기사 ID:
B9C^2_003_102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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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가 성秀이고, 반남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사영자이다. 세 살 때에도 유방에서 젖을 끊지 않았으며 동생과 함께 빨았다. 하나씩 나누는 것이 고르지 못할까봐 동생이 배고프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형제가 각각 하나씩 빨게 하여 동생이 굶주리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닦아 경오년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주: 매산집에서]
독음
자 성수, 반남인, 생원, 사영자의 아들이다. 세 살에 젖을 끊지 않고 아우와 함께 빨았다. 그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여 어머니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형제가 각각 그 하나를 빨게 하여 아우가 배고프지 않게 하고자 하였다.少年功令하여 경오년에 진사 되었다.[주: 매산집]
의미
순조조 인물 박정원(朴鼎源, 자 성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관직 이력이다. 세 살에 동생과 함께 젖을 빨던 중 동생이 배고프지 않을까 걱정하며 어머니에게 형제가 하나씩 나누어 빨게 해달라고 청했다는 일화에서, 어려서부터 동기간의 공정한 분배를 지키려 한 그의 성품을 보여준다. 이후功令에 따라 경오년(1826년 또는 그 이전) 진사에 급제하였다. 저서는 『매산집』이다.
원문
字聖秀潘南人生員師永子三歲不斷乳與弟同吮慮其不均請於母曰願兄弟各吮其一無令弟飢少業功令庚午進士[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정원 / 朴鼎源, confidence=0.95
- place: 반남 / 潘南, confidence=0.9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person: 사영 / 師永, confidence=0.9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5
- term: 공령 / 功令, confidence=0.8
- term: 경오 / 庚午,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순조조)이봉수
- 기사 ID:
B9C^2_003_102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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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51:40.83337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22
한글 번역
자는 자강, 호는 금계. 연안의 인물로 문간공 시원의 아들 효정공 민보의 손자. 친조 중주 직보, 노주 오희, 상영, 서임, 여우에게 수학하였다. 을축년에 생원이 되었고, 임신년에 세마에 제수되었으며, 다시 판관에 제수되고 장악원정에 이르렀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주: 매산집]
독음
자 자강호 금계연안인 문간공 시원자 효정공 민보지 손종학어 족종조 중주 직보 노주 오희 상영 서임 여우 을축 생원 임신 배 세마 또 배 판관급 장악원정 개 불취 주: 매산집
의미
李鳳秀는 조선 순조 때 연안 출신 인물로, 호는 금계이다. 문간공 시원의 손자이자 효정공 민보의 손孙이다. 여러 학자에게 수학한 뒤 을축년에 생원에 합격하고, 임신년에 세마·판관·장악원정 등 관직에 연달아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매산집에서 볼 수 있는 기록이다.
원문
字子岡號襟溪延安人文簡公始源子孝貞公敏輔之孫從學于族從祖中洲直輔老洲吳煕常穎西任魯游乙丑生員壬申拜洗馬又拜判官及掌樂院正皆不就[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봉수 / 李鳳秀, confidence=1.0
- person: 자강 / 子岡, confidence=0.95
- person: 금계 / 襟溪, confidence=0.95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1.0
- person: 문간공 / 文簡公, confidence=0.9
- person: 시원 / 始源, confidence=0.85
- person: 효정공 / 孝貞公, confidence=0.85
- person: 민보 / 敏輔, confidence=0.85
- person: 중주 / 中洲, confidence=0.8
- person: 직보 / 直輔, confidence=0.8
- person: 노주 / 老洲, confidence=0.8
- person: 오희 / 吳煕, confidence=0.85
- person: 상영 / 常穎, confidence=0.85
- person: 서임 / 西任, confidence=0.8
- person: 임노 / 任魯, confidence=0.7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5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office: 세마 / 洗馬, confidence=1.0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장악원정 / 掌樂院正, confidence=0.95
- term: 을축 / 乙丑, confidence=1.0
- term: 임신 / 壬申,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人文簡公 - ‘연안인 문간공’으로 읽었으나 文簡公의 정확한 인물 확인이 필요함
- 從學于族從祖中洲直輔老洲吳煕常穎西任魯游 - 수학 관계자가 명확하지 않고 文法 구조가 불확실함
- 任魯 - 任魯를 ‘임노’로 읽었으나 西任과 任魯가 별개의 인물인지 확인 필요
(순조조)김태근
- 기사 ID:
B9C^2_003_102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102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51:20.81339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1023
한글 번역
자호는 백원이며 안동 출신이다. 형조참판 여성의 손자요, 수북 광현의 후손이다. 경오년(1490)에 생원이 되었고, 위솔에 임명될 때 익조(연산군)가 봄궁궐에 계시어 관례를 베풀으니推恩으로 말을 하사받았다. 임오년(1510)에 진안현감이 되었다가 파면되어 돌아왔다. 이에 진급을 법하여 오히려 더욱 흥취를 갖고 날마다 시문과 율곡으로 스스로 즐겼다. [주:매산집]
독음
자 백원 안동인 형조참판 여성의 손 수북 광현의 후손 경오 생원 위솔에 배할 때 익묘 재춘저 관례를 행하니推恩하여 말을 내리다 임오년에 진안현감이 되고 견罢하여 돌아오매 이에 진취를 단연 끊고 일마다 성률로 스스로 즐기니 [주:매산집]
의미
조선 순조조 안동 출신 관리 김태근의略傳이다. 생원 급제 후 위솔에 발령받아 연산군궁궐에서 관례를 거행하고推恩으로 말을 하사받았다. 진안현감이 되었다가 견罢(파면)당한 후 진급을 단념하고 시문과 성률(율곡)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았다. 매산집에서 나온 기록이다.
원문
字伯元安東人刑曹參判履成之孫水北光炫之后庚午生員拜衛率時翼廟在春邸行冠禮推恩錫馬壬午爲鎭安縣監見罷而歸遂絶意進取日以聲律自娛[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태근 / 金泰根, confidence=0.98
- person: 여성 / 履成, confidence=0.95
- person: 수북 광현 / 水北光炫, confidence=0.95
- person: 익묘 / 翼廟, confidence=0.92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8
- place: 진안현 / 鎭安縣, confidence=0.98
- place: 춘저 / 春邸, confidence=0.88
- office: 형조참판 / 刑曹參判, confidence=0.95
- office: 위솔 / 衛率, confidence=0.95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5
- term: 추은 / 推恩,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推恩锡马의 추은말 수여가 익묘(연산군) 재위 중 사건인지는 문맥상 연산군 춘궁궐 체류 시기의 행적으로 보이나, 연산군 즉위 전 춘저 시절이었는지 확인 필요
- 견罢의 구체적 파면 사유가 미상
- 경오생원의 서기 확인 필요(1490년 또는 1550년 해석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