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인물지 [國朝人物志n1-3책] - 본문 번역 묶음 020
- 책 ID:
kh2_je_a_vsu_B9C^2_000
- 수록 기사: 75건
(영조조)신희천
- 기사 ID:
B9C^2_003_079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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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6:53:19.81958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791
한글 번역
영조 연간에 활동한 신희천은 자가 성백, 호가 하당거이며 본향은 창원이다. 5대조 제현은 관직이 제용奉事에 이르렀다. 백휴암 인걸을 스승으로 모셨고, 율곡 이이와 도의로운 교분을 맺었다. 희천은 타고난 자질이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관직에 나아갈 나이에 앞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당시 남계 박세采가 파주에서 도를 강의하자 희천이 그에게 나아가 수업을 받았다. 后来 겸재 김구,癯溪 권상游와 뜻이 합쳐져 해마다 남계 서원(南溪書院)에서 모여 강론을 베풀었다. 병오년(1776)에 생원에 급제하여 通政이 되었다. [주: 매산집에서]
독음
(영조조)신희천, 자는 성백, 호는 하당거, 본향은 창원, 5대조의 이름은 제현, 관직은 제용奉事에 이르렀고, 백휴암 인걸에게 스승으로 모셨으며, 율곡 이이와 도의의 교분을 맺었다. 희천은 타고난 자질이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관직에 나아갈 나이에 이르지 않아도 학문에 전력하였다. 그때 남계 박세采가 파주에서 도를 강론하자, 희천이 그에게 나아가 수업을 받았다. 후에 겸재 김구,癯溪 권상游와 동지가 되어, 매해 남계 서원(南溪書院)에서 회강(會講)을 베풀었다. 병오년에 생원이 되고 通政에 올랐다. [주: 매산집에서]
의미
조선 영조 연간(1725~1776)의 유학자 신희천의 약전이다. 창원 출신으로 율곡 이이와도 교류하며 학문적 깊이를 쌓았다. 어린 나이에 학문에 전력하고, 남계 박세采에게 수학한 후, 겸재 김구,癯溪 권상游와 함께 매년 남계 서원에서 회강을 베푼 것으로 나타난다. 1776년(영조 52) 병오년에 생원이 되어 通政에 오르고, 호는 하당거이며 백휴암 인걸에게 사사하였다. 효行이 제현인 것은 五代祖임을 의미한다.
원문
字聖伯號荷塘居昌人五代祖齊賢官至濟用奉事師事白休庵仁傑與栗谷李珥爲道義交希天天姿粹美未弱冠專意學問時南溪朴世采講道坡州希天就受業後與儉齋金楺癯溪權尙游爲同志禊每歲會講于南溪書院丙午生員躋通政[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신희천 / 愼希天, confidence=1.0
- person: 성백 / 聖伯, confidence=1.0
- person: 백휴암 / 白休庵, confidence=0.95
- person: 인걸 / 仁傑, confidence=0.95
- person: 율곡 / 栗谷, confidence=1.0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1.0
- person: 남계 / 南溪, confidence=0.9
- person: 박세采 / 朴世采, confidence=0.9
- person: 겸재 / 儉齋, confidence=0.85
- person: 김구 / 金楺, confidence=0.8
- person: 취계 / 癯溪, confidence=0.8
- person: 권상游 / 權尙游, confidence=0.85
- person: 제현 / 齊賢, confidence=0.95
- place: 창원 / 昌, confidence=0.9
- place: 남계 서원 / 南溪書院, confidence=0.95
- place: 파주 / 坡州, confidence=0.95
- office: 제용奉事 / 濟用奉事, confidence=0.9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0.95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昌人(원문의 취계 역시 원문대로 표기, 창인으로 해석 가능)
- 癯溪 권尙游(권상游인지 권상우인지 불확실)
- 朴世采(박세채의 정확한 이름 표기 불확실, 원문에는 朴世采로 표기)
- 五代祖(5대조의 호칭이 五代祖인지 五代祖父인지 불확실)
(영조조)홍계하
- 기사 ID:
B9C^2_003_079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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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6:55:51.92040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792
한글 번역
자는 사옥이고 호는 해운정이며, 남양 사람이다. 먼 조상인 사례는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고려 말기에 진주군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집을 정착시켰다. 계하가 태어나서부터 천성의 효성이 있었으며, 놀이도 부모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았고, 행동거지가 단정하여 어른처럼 보였다. 보는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어머니의 병이 위중해지자, 손가락 피를 바치려 했으나 조상에게 발각되어 이루지 못했다. 장사 지내고 나자 그대로 묘 위에 초막을 칠하고 상을 지냈는데, 우연히 조상의 상을 당한 아버지가 상중에 있는 자식이 바깥에 있을 수 없다고 하여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를 섬기는 일은 하나도《小학》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으며, 아침저녁으로 종묘에参拜하고 모든 제사를 마쳤다.
독음
자사는옥호해운정남양인원조사례관지판서내고말진주군기家居언계하생유지성유희불위친교동치엄약약성인견자핍억지모병격장진지혈위조고소각불과급장인여모치상直値조고상이부거우자불가거외경귀사친일준소학신혼묘알필기생[주:매산집]
의미
홍계하는 조선 영조조 시대의 남양 출신 인물로, 먼 조상 사례가 고려 말기에 진주군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 정착했다. 홍계하는 태어날 때부터 효성이 깊어 행동거지가 어른 같았고,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손가락 피를 바치려다 조상에게 들켜서 실현하지 못했다. 부모님을 섬길 때 《小学》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으며, 아침과 저녁으로 종묘에参拜하는 등 경전에 근거한 효행으로 유명했다. 이 기사는 매산집에서 발췌된 것이다.
원문
字士沃號海雲亭南陽人遠祖思禮官至判書麗季謫眞珠郡仍家焉啓夏生有至性遊戲不違親敎動止儼若成人見者咸異之母病革將進指血爲祖考所覺不果及葬仍廬墓値祖考喪以父居憂子不可居外徑歸事親壹遵小學晨昏廟謁畢其生[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홍계하 / 洪啓夏, confidence=1.0
- person: 사례 / 思禮, confidence=1.0
- person: 어머니 / 母, confidence=1.0
- person: 조상 / 祖考, confidence=1.0
- person: 아버지 / 父, confidence=1.0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1.0
- place: 진주군 / 眞珠郡, confidence=1.0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1.0
- work: 소학 / 小學,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term: 자(호칭) / 字, confidence=0.9
- term: 호(호칭) / 號, confidence=0.9
- term: 병격(병세 위중함) / 病革, confidence=0.8
- term: 지혈(손가락 피) / 指血,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지혈(손가락 피를 바치는 구체적 의식 여부)
- 해운정(호의 위치)
- 매산집 저자와 편찬 연도
(영조조)김락구
- 기사 ID:
B9C^2_003_079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79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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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6:56:29.03972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793
한글 번역
자(字)는子厚, 호는滄村이며,彦陽 사람이다. 고려 시대 시중을 지낸 威烈公 就礪의 후손이다. 성품이준하고 용모가 단정하였다. 아홉 살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어른처럼 예절을 갖추었으며, 애통함으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섬김에 진실하였다. 한번은 밤에 강도를 만나 손님이 돌발하자 손짓이 몹시 급박하였는데,洛龜가 울며 청하기를 “제 어머니를 다치지 않게 해주소서.” 하였다. 강도가 그 말을 듣고 서로 바라보며 “이야말로 참된 효자이로다.”라고 하며, 무리를 이끌고 흩어졌다. 그때 年紀가 十 살이었다. 어머니가 울며 말하기를 “네가 年長하여도 배우지 않으면 아마 先代를 이을 수 없을 것이다. 어찌 외종아비에게 가지 아니하겠느냐.” 하니,洛龜가 명을 받들어 가르침을 청하니族父 杻巖處士 天瑞에게 수학하였다.學이 이루어지자 学에 대하여 太息하며 말하기를 “학업을 쌓아 벼슬길에 出仕하는 것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거나 이름을 떥치기 위한 것이니, 내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데다가 어머니만 나이를 드신身,如何하겠는가?” 하였다. 이에功令을 그만두고庭闈를 떠나지 아니하며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한 지 사십 년이 되었다.
독음
자子是후호창촌언양인고려시중위열공취려지후성준이용구살遭受外艱집례여성인애훼기불전시설모진성상야우격강도천돌수세급낙구호석원무상오진도감기언상고일진효자회기사분시년십세모욕일여년장불학공오무이선고흡취외부낙구수업청업어이자부축엄처사천서학기就学학발탄일자흡업이매진취자비용친칙현명야유적이톅편친유로하립양지도피시공영령불리정위기극치지물양자적사십년[주:상동]
의미
英祖代 인물 金洛龜의 行狀이다. 字는子厚, 호는滄村이며, 고려時代 시중을 지낸 威烈公 就礪의 후손이다. 아홉 살에父를 여의었으나 어른처럼 예절을 지켰고, 열 살에 강도를 만나 어머니를 보호해 준 이야기가 特筆되었다.成長後에도 어머니奉養을 위해功名追求를버리고 40년간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은 효자임이 강조된다.
원문
字子厚號滄村彥陽人高麗侍中威烈公就礪之後性峻而容九歲遭外艱執禮如成人哀毀幾不全事母盡誠嘗夜遇強盜搶突手勢甚急洛龜號泣願無傷吾親盜感其言相顧曰此眞孝子也麾其徒而散時年十歲母泣曰汝年長不學恐無以紹先盍就外傅洛龜受命請業于族父杻巖處士天瑞學旣就學發歎曰資擧業而媒進取者非榮親則顯名也幼而失怙偏親乂老何立揚之是圖遂謝功令不離庭闈極志物之養者積四十年[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낙구 / 金洛龜, confidence=1.0
- person: 자후 / 子厚, confidence=1.0
- person: 언양 / 彦陽, confidence=1.0
- person: 위열공 / 威烈公, confidence=1.0
- person: 취려 / 就礪, confidence=1.0
- person: 축 / 杻, confidence=0.8
- person: 천서 / 天瑞, confidence=1.0
- person: 처사 / 處士, confidence=0.9
- place: 언양 / 彦陽, confidence=0.9
- term: 외곡(父의 상) / 外艱, confidence=1.0
- term: 정위(어머니의 거처) / 庭闈, confidence=0.9
- term: 공령(관료로서의 직무) / 功令, confidence=0.8
- office: 시중 / 侍中,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영조조)어유구
- 기사 ID:
B9C^2_003_079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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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21:45:21.09512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795
한글 번역
字는 성칙이고, 호는 긍재이며, 유(有)의 아우이다. 숙종 기묘(1679)년에 생원진사가 되었고, 정해(172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명령을 받아 방상복(喪服)佩儀節과 동궁청정節日 등을 편찬하여 进上하였는데, 모두 채택되었다. 어느 날 임금이 직접 命令하여 掖隷의 訴狀을政院에 내렸는데, 어유구가 글을 올려 친한 소소한 일을 다투어 国体를 손상시키는 것을 논하였다. 임금이 이를嘉納하였다. 경종이 즉위하자 国舅로서咸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신축(1721)년에 여러 신하들이 상에게 병이 있고 後嗣가 없다하여 建儲을 청하였고, 이에 英祖를 세제(世弟)로 세웠다.廷臣 중에 기뻐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 建請之人을 网打하고 나아가 환관과宫女를 결속하여 세제를 해치려는 음모를 하였다. 어유구가 복상(持服) 중이므로 집에 있었는데, 대사헌 徐命九이 와서 危機를 알렸다. 어유구가 눈물을 흘리며 죽기를 맹세하고效力하겠다고 하니, 이에 세제에게 上書하여 소청의 계책을 상세히陈述하였다. 이로 인해 비로소 위기를 转危爲安할 수 있었다. 세제가 曾下書하여 “小子一身은專托於卿이다.”라고 하였다.柳公 復明이輓에서 “宗庙今日 伊誰力,不獨殉身有四臣이다.”라고하였다.
독음
자성칙호긍재유봉제숙종기묘생원진사정해문과승명편진방상복패의절급동궁청정절일개몽채용일일상친제掖隷소장하정원유유구잘론친세사손국체상기가납경종즉위이국우봉함원부원군신축제신이유구지체재가대사헌서명구래고위기유구제혈서사료효력내서세제비진소청지책내시솔전위위안세제상하서왈소자일신전탁어유공복명만왈종묘금일이어수독윤사유사신[주:가상]
의미
어유구(魚有龜)는 숙종의 신하 유(有)의 아우로 정해(1729)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치에 참여하였다. 영조가 왕세제로 세워질 때 반대 세력이 환관과宫女를 매수하여 음모를 꾀하자, 복상 중이었지만 대사헌 徐命九의 고지를 받고 세제에게 소청의 계책을上書하여 위기를 转危爲安하였다. 이후 영조는 “小子一身專托於卿(소자의 한 몸은 오직 경에게 맡겼다).”이라고 표현하며 어유구에 대한 신임을 보였다. 세제 보호에殉身한 四臣의 하나로 기록되었다.
원문
字聖則號兢齋有鳳弟肅宗己卯生員進士丁亥文科承命編進方喪服佩儀節及東宮聽政節日皆蒙採用一日上親題掖隷訴狀下政院有龜箚論親細事損國體上嘉納景宗卽位以國舅封咸原府院君辛丑諸臣以上有疾無嗣請建儲遂冊英祖爲世弟廷臣中有不悅者網打其建請人至結宦官宮女謀危世弟有龜持服在家大司憲徐命九來告危機有龜涕泣誓死以效力乃上書世弟備陳掃淸之策賴是卒得轉危爲安世弟嘗下書曰小子一身專托於卿柳公復明輓曰宗祊今日伊誰力不獨殉身有四臣[주:家狀]
엔티티 후보
- person: 어유구 / 魚有龜, confidence=1.0
- person: 성칙 / 聖則, confidence=1.0
- person: 서명구 / 徐命九, confidence=1.0
- person: 유복명 / 柳復明,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lace: 함원부원군 / 咸原府院君,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정원 / 政院, confidence=1.0
- work: 방상복패의절 / 方喪服佩儀節, confidence=0.8
- term: 세제 / 世弟, confidence=1.0
- term: 건저 / 建儲, confidence=0.9
- term: 복상 / 持服, confidence=0.9
- term: 망타 / 網打,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網打(망타) - 당파를 일거에 제거함을 이르는 표현으로 정확한 현대 한국어 대응어 확보 어려움
- 掖隷(역리) - 왕방의 하급관리로 구체적 직무 범위 불확실
- 掃清(소청) - 소탕 청리의 의미이나 정치적 맥락에서의 정확한 번역 변별 필요
(영조조)홍임제
- 기사 ID:
B9C^2_003_079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79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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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44:29.89989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797
한글 번역
자(字)는 경윤이고 호는 경직재이다. 남양 사람으로서 고려 康敬公彬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추구의 아홉 번째 아들이다. 미호(金元行)에게 수업을 받았다. 거처恒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시면 종묘에 알멸하고, 물러나 서재에 처해 옷깃을 바로잡고 단정히 앉아 여러 경서와 낙건 등의 책을 연구하며 밤낮으로 힘썼다. 선비들이 소문을 듣고 풍응하여 찾아와 배우는 이가 매우 많았다.
독음
문 경윤 호 경직재 남양인 고려 康敬公彬 이후 첨정 추구 아홉째 아들 미호 金元행에게 수업했다. 거처恒 아침에 일어나시면 신전에 알멸하고 물러나 서재에 처해 옷깃을 바로잡고 단정히 앉아 군경을 연석하며 及 낙건諸서 연구를 궁주야했다. 선비들이 소문을 듣고 풍응하여 배우는 이가 매우 많았다.
의미
조선 영조조 학자 洪任濟의 행적이다. 고려 高麗 康敬公彬의 후손으로, 호를 경직재라 하였다. 학자 金元행에게 수업받아 제자였다. 아침마다 종묘에 참배하고 서재에서 경서를 연구하는 규律 있는 학문 생활을 하였으며, 그 명성이 알려지자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 배우게 되었다. 이는 조선 영조 시대 南陽 지역 학자들의 학술적 系譜와 실천적修養工夫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字景尹號敬直齋南陽人高麗康敬公彬之後僉正疇九子受業于渼湖金元行居恒晨起謁廟退處書室整襟危坐硏譯群經及洛建諸書窮晝夜士聞風而從學者甚衆[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임제 / 洪任濟, confidence=0.95
- person: 경윤 / 景尹, confidence=0.95
- person: 첨정추 / 僉正疇, confidence=0.85
- person: 김원행 / 金元行, confidence=0.95
- person: 빈 / 彬, confidence=0.9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0.95
- place: 미호 / 渼湖, confidence=0.9
- office: 첨정 / 僉正, confidence=0.85
- work: 군경 / 群經, confidence=0.9
- term: 수업 / 受業, confidence=0.9
- term: 정襟위좌 / 整襟危坐, confidence=0.85
- term: 연석 / 硏譯, confidence=0.85
- term: 문풍이종 / 聞風而從,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洛建諸書 (락건제서) - 문자 그대로는 낙(洛) 建(건) 諸書이지만, 정확한 서명 또는 구체적所指이 불분명함. 洛陽 관련 서적으로 추정되나確證 없음
- 疇九子 (추구자) - 僉正疇의 아홉째 아들로 解讀하나, ‘疇九子’의 구두점 분리가 불확실함
(영조조)권필칭
- 기사 ID:
B9C^2_003_079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79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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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6:54:32.65371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799
한글 번역
자는 자평, 호는梧潭, 안동 사람이다. 대사간 도의5대손이다. 어릴 때부터 빼어나고 기도가 있었다. 영조 경오년에 무과에 합격하고, 신축년에 창성부방어사로 부임했다. 위망이 스스로 추앙받아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졌다. 칠읍의 산천을 그려 낮과 밤을 고요히 대치했으며, 깊은 뜻이 있었다. 관직이 수사까지 이르렀다.
독음
자자평호오담 안동인 대사간도오대손 자소괴위기도 영조경오무과 신축배창성방어사 위망소추 불령이행 화칠읍산천 주소정대 개유심장지려 관지수사
의미
영조대에 安東 출신으로 武科 합격하여 昌城 防禦使를 지낸 인물. 뛰어난 풍모와 기도를 타고났고, 부임지 山川를 그려가며 民을 안정시키려는 깊은 경영 의지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위망으로 命令 없이도 백성을 다스렸다는 표현은 武臣으로서의 德望을 강조하는 기사이다.
원문
字子平號梧潭安東人大司諫濤五代孫自少魁偉有器度英祖庚午武科辛丑拜昌城防禦使威望所推不令而行畫七邑山川晝宵靜對蓋有深長之慮官至水使[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권필칭 / 權必稱,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office: 대사간 / 大司諫, confidence=1.0
- place: 창성 / 昌城, confidence=1.0
- office: 방어사 / 防禦使, confidence=1.0
- office: 수사 / 水使, confidence=1.0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畫七邑山川은 칠읍의 산천을 그림으로 그렸는지 실제 지도를 그렸는지 불확실
(영조조)강윤
- 기사 ID:
B9C^2_003_080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0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21:44:33.28814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00
한글 번역
강윤의 글(자)은 덕이요, 진주 출신이다. 정묘(丁卯) 문과에 급제하여 특旨로 교리에 제수되었다. 임금이 말씀하시길 “강윤을 한 번 보고 싶었던 지 오래되었다.” 관직이 관찰사에 이르렀다.
독음
자덕이 진주인 정묘 문과 특지로 교리를 수수하고 가로되 강윤을 일견하고자 오래다 관至관찰사
의미
영조조 인물 강윤의 이력이다. 진주 출신으로 정묘(영조 3년, 1727년) 문과에 급제하여 특旨로 교리에 임명되었고, 영조는 그를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관찰사까지 승진했다.
원문
字德以晉州人丁卯文科以特旨授校理曰欲一見姜潤久矣官至觀察使[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강윤 / 姜潤, confidence=1.0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관찰사 / 觀察使, confidence=1.0
- term: 정묘 문과 / 丁卯文科, confidence=1.0
- term: 특旨 / 特旨, confidence=1.0
(영조조)유척기
- 기사 ID:
B9C^2_003_080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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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전시보(展甫)이고, 호는 지수재(知守齋)이며, 기대(杞溪) 출신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명악(命岳)이고, 조부는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측손(㯙孫)이다. 숙종 임자년(1714년) 문과에 합격하여 검열(檢閱)·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였다. 경종 임인년(1722년)에 화를 입어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영조(即位 후) 초에 용서받아 돌아왔으며, 호조판서(戶曹判書)로 우상(右相)에 이르렀고, 이어,领议政(領議政)에 至하여耆社(耆社)에 들어갔다가致仕(致仕)하였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독음
자 전시보 호 지수재 기대인 목사 명악자 대사헌 측손 숙종 갑오 문과 검열 부제학 경종 임인 재화 입어 해도 도에 유배 영조 초에 유환 호조 판서로서 우상에 至领议政入耆社致仕하여 졸호를 문익이라 함
의미
조선 영조조宰相인 유척기(兪拓基)의 개요를 수록한 기문이다. 숙종 갑오(1714)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경종 연간에 정변 관련 화를 입어 해도에 유배되었다가 영조 즉위 후 풀려나서 다시 등용되어 호조판서·우상·領議政을 역임한 뒤 물러났다. 기대(杞溪) 출신으로 문익의 시호를 받았다.
원문
字展甫號知守齋杞溪人牧使命岳子大司憲㯙孫肅宗甲午文科檢閱副提學景宗壬寅罹禍配海島英祖初宥還以戶曹判書爲右相至領議政入耆社致仕諡文翼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척기 / 兪拓基, confidence=1.0
- person: 명악 / 命岳, confidence=1.0
- person: 측손 / 㯙孫, confidence=1.0
- place: 기대 / 杞溪, confidence=1.0
- place: 해도 / 海島,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호조판서 / 戶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치사 / 致仕,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㯙孫 - 㯙자는 확인되지 않는 한자이며 ‘측손’으로 읽으나 원字形의존이 불확실함
(영조조)조현명
- 기사 ID:
B9C^2_003_080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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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유회(稚晦), 호(號)는 귀록(歸鹿). 풍양(豐壤) 사람으로, 문명(文命)의 아우이다. 효행이 있어 그 마을에 표창을 받았다. 숙종(肅宗) 계사년에 进사(進士)에 합격하고, 기해년에 문과(文科)에 합격하였다. 검열(檢閱)이 되었고, 무신년에는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계책을 세워 진무훈(振武勳)을 세웠으며, 풍양부원군(豐原府院君)에 봉해졌다. 경신년에 우의정(右相)에 오르고,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렀다. 시호(諡號)는 충효(忠孝)이다.
독음
자유회호귀록 풍양인 문명제 유효행정려 숙종 계사 进사 기해文科 검열 무신 이미 오명항 종사관 평 이인좌난책 진武훈 봉 풍양부원군 경신 납우상 지영의정 시충효
의미
조선 영조 때的重臣 조현명(赵显命)의 약력이다. 풍양 출신으로 효자로 유명했으며, 숙종 연간 进사·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다. 무신년에 오명항 휘하에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고武功을 세워 풍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이후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사후 시호는 충효였다.
원문
字稚晦號歸鹿豐壤人文命弟有孝行旌閭肅宗癸巳進士己亥文科檢閱戊申以吳命恒從事官平李麟佐亂策振武勳封豐原府院君庚申拜右相至領議政諡忠孝[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조현명 / 趙顯命, confidence=1.0
- person: 문명 / 文命, confidence=1.0
- person: 오명항 / 吳命恒, confidence=1.0
- person: 이인좌 / 李麟佐, confidence=1.0
- place: 풍양 / 豐壤, confidence=1.0
- place: 풍양부원군 / 豐原府院君, confidence=1.0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1.0
- office: 종사관 / 從事官,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term: 진무훈 / 振武勳, confidence=1.0
- term: 효행정려 / 孝行旌閭, confidence=0.95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檢閱 직전 관직 명칭이 원문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
- 振武勳의 구체적 등급이나 시행 시기가 미상
(영조조)정석오
- 기사 ID:
B9C^2_003_080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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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攸好. 동래 사람. 동평위 이종(李种)의 손자이면서, 좌상 치화의 증손이다. 숙종 을미(173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조 병인(1746)년에 이조 판서로 승진하여 우상이 되고, 이어 영의 정부에 이르렀다. 무신(1748)년에 사신으로燕(베이징)에 다녀오는 길에 도중에서 졸했다. 시호는貞簡이다.
독음
자 유호. 동래인. 동평위 재윤의 손. 좌상 치화의 증손. 숙종 을미(1735)에 문과. 영조 병인(1746)에 이조 판서로 우상을 거拜하고 영의 정부에 至至. 무신(1748)에 使를 受奉하여 燕으로 行하여 도중에서 卒함. 諡는 貞簡.
의미
조선 영조 시대 문신 정석오의 열전이다. 동래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우상·영의정에 이르렀으며, 무신년(1748)에燕국(청) 사신으로 가는 길에 졸했다. 시호는貞簡이다. 형수에 문과 급제자이자 참판을 지낸 정錫三이 있다.
원문
字攸好東萊人東平尉載崙孫左相致和曾孫肅宗乙未文科英祖丙寅以吏曹判書拜右相至領議政戊辰奉使赴燕道卒諡貞簡[주:相臣錄]兄錫三文科參判[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석오 / 鄭錫五, confidence=1.0
- person: 유호 / 攸好, confidence=1.0
- person: 이종 / 李種, confidence=0.95
- person: 이재윤 / 李載崙, confidence=0.9
- person: 치화 / 致和, confidence=0.8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1.0
- place: 동래 / 東萊, confidence=1.0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1.0
- person: 석삼 / 錫三, confidence=1.0
- place: 연 / 燕,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1.0
- work: 국조 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字攸好의 字는 이름 대신 字(아호)인지, 본래 字兼 이름인지 확인 필요
- 東平尉 재윤의 직급으로 동평위(동래부任职관) 확인 필요
(영조조)김약로
- 기사 ID:
B9C^2_003_080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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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아호)는 이민이고, 호는 만휴청풍인이다. 대제학의 서자이며, 충헌공 구성의 조카이다. 영조 정미(1757)년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가 되었고, 기사(1809)년에 우상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신유(1813)년에 졸했으며, 시호는 충정이다. 아우 김취鲁는 자가 취경이고, 진사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서를 지냈으며, 아우 김상로는 문과에 급제하여 영의정에 이르렀다.
독음
자이민호만휴청풍인 대제학 육자충헌공 구성제 영조 정미문과 교리 기사년 우상하여 좌의정에 至 至좌의정 신유년에 졸하고 시호는 충정 형제 김취鲁 자는 취경 진사문과 반서 김상로 문과 영의정
의미
英祖朝(1725~1776) 문신 金若魯의 전기 기사이다. 영조 丁未년(1757)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우상, 좌의정을 역임하고 1813년 졸했다. 시호는 충정이다. 대제학 서자출신으로 충헌공 金構의 조카이며, 동생 金取魯와 또 다른 아우 金尙魯도 모두 문과 급제하여 관리에 오른 인물이다.
원문
字而敏號晚休淸風人大提學楺子忠憲公構姪英祖丁未文科校理己巳拜右相至左議政癸酉卒諡忠正[주:相臣錄]弟取魯字取卿進士文科判書尙魯文科領議政[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약로 / 金若魯, confidence=0.95
- person: 김구성 / 金構, confidence=0.9
- person: 김취로 / 金取魯, confidence=0.9
- person: 김상로 / 金尙魯, confidence=0.9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0.95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0.95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0.95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0.95
- office: 반서 / 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term: 정미문과 / 丁未文科,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8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楺子(우자)라는 표현이 ‘楺子’인지 확인 필요
(영조조)정우량
- 기사 ID:
B9C^2_003_080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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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자휘, 호는 학남. 연일 사람. 판서 수기의 아들이자 감사 시성의 증손. 경종(景宗) 즉위 시절인 계묘(1723)년에 문과에 급제. 영조(英祖) 즉위 시절인 기사(1749)년에 병조판서로 있다가 우의정에 오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아들 원달은 자가 문백, 병자(173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참판을 지냈다. 아우 휘량은 영의정이 되었다.
독음
자 자휘호 학남연일인판서 수기자 감사 시성 증손경종 계묘 문과영조 기사이병조판서 배 우의정시 문충[주:상신록]자 원달자 문백 병자 문과참판아우 휘량영의정[주:국조방목]
의미
정우량은 조선 영조 시대의 문관으로, 경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영조대에 병조판서·우의정을 역임한 뒤 문충의 시호를 받은 인물이다. 영의정이 된 아우 정휘량과 함께 정씨 가문의 명성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원문
字子翬號鶴南延日人判書壽期子監司始成曾孫景宗癸卯文科英祖己巳以兵曹判書拜右議政諡文忠[주:相臣錄]子遠達字聞伯丙子文科參判弟翬良領議政[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우량 / 鄭羽良, confidence=0.95
- person: 정휘량 / 鄭翬良, confidence=0.95
- person: 정원달 / 鄭遠達, confidence=0.9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5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5
- place: 연일 / 延日,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壽期子監司始成曾孫 - 수기·감사 시성이 각각 인물인지 관직명인지, 그리고 인물 간 관계가 명확하지 않음
- 字子翬號鶴南延日人 - 호와 본향의 연결 방식이 약간 불확실
(영조조)이종성
- 기사 ID:
B9C^2_003_080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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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종성의 자는 자고, 호는梧川이며, 경주출신으로서 태사의 아들이다. 신묘년에 进屚에 급제하고, 영조 정미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判서를 역임했으며, 임신년에 우승상에 任명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충이다. 종형 이종백은 자가 태소로서 신축년에 生원进屚에 급제하고, 경종 계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判서를 역임했다.
독음
자 자고호 오천경주인 태조사자 신묘진사영조 정미문과 이조판서 임신배우상至极영의정 시호 문충 종형 종백자 태소 신축생원진사 경종 계묘문과 호조판서
의미
조선 영조조的重臣 李宗城의 주요 이력이다. 경주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判서를 거쳐 우승상에까지 승진하고 영의정에 이른 고위 관료이다. 문충의 시호를 받았으며, 종형 李宗白도 함께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判서을 역임한 것으로 나타난다.
원문
字子固號梧川慶州人台佐子辛卯進士英祖丁未文科吏曹判書壬申拜右相至領議政諡文忠[주:相臣錄]從兄宗白字太素辛丑生員進士景宗癸卯文科戶曹判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종성 / 李宗城, confidence=0.98
- person: 이종백 / 李宗白, confidence=0.97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0.98
- office: 태사 / 台佐, confidence=0.88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8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0.97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8
- office: 호조판서 / 戶曹判書, confidence=0.98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8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85
- term: 자 / 字, confidence=0.97
- term: 호 / 號, confidence=0.98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6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8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영조조)이천보
- 기사 ID:
B9C^2_003_080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0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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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6:56:26.47138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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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가 의숙, 호는 진암. 연안 사람. 군수 주신의 아들. 판서 일상의 증손(뛰어난 손자). 영조 기미년(1759년)에 문과에 합격. 임신년(1752년)에 병조 판서로써 우상에 오르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간. [주:상신록] 종형제鼎輔는 자가 사수, 호는 삼주. 문과 합격자. 대제학. 시호는 문간.
독음
자유숙호진암연안인군수주신자판서일상증손영조기미문과임신이병조판서배우상지영의정諡文簡[주:상신록]종형정보자유사수호삼주문과대제학諡文簡
의미
영조조 관료 李天輔는 연안 출신으로 군수 李舟臣의 아들, 판서 李一相의 뛰어난 손자이다. 1759년(기미) 문과에 합격했고 1752년(임신)에 병조 판서에서 우상으로 올라 최종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간. 그의 종형제 李鼎輔도 문과 합격 후 대제학을 역임하고 같은 시호 문간을 받았다.
원문
字宜叔號晉菴延安人郡守舟臣子判書一相曾孫英祖己未文科壬申以兵曹判書拜右相至領議政諡文簡[주:相臣錄]從兄鼎輔字士受號三洲文科大提學諡文簡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천보 / 李天輔, confidence=1.0
- person: 이정보 / 李鼎輔, confidence=1.0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1.0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영조조)조재호
- 기사 ID:
B9C^2_003_081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1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21:45:30.45529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10
한글 번역
자(字)는 경대이고, 호(號)는 손재이며, 풍양 사람이다. 문명자의 아들이었다. 영조조에 진사에 올랐고, 음보로 홍산현감이 되었다. 을축년(1744) 문과에 직초로 급제하여 通政、通政大夫에 올랐고, 부제학을 역임했다. 갑술년(1754)에 병조판서로 右議政에 나갔다. 임오년(1762)에 화를 만나 종성에 유배되고 사약을 받았다. 장조(景宗)가 말씀하시기를 ‘춘상이 있었더라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독음
자경대 호손재 풍양인 문명자 영조조 진사 음보하여 홍산현감을 보함 을축 문과에 직초하여 통정에 오르고 부제학을 역임함 갑술년에 병조판서로 우의정에 나아가壬午년에 화를 만나 종성에 유배되고 사약을赐함 장조가 말하기를 춘상이 있었더라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 하였음
의미
조재호는 풍양 출신으로 영조대에 진사에 합격하고 음보로 홍산현감이 되었으며,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 병조판서, 우의정을 역임한 관리였다. 그러나 임오년(1762)에 화를 입어 종성에 유배되고 사약을 받았다. 이후 장조가 조재호를 그리워하며 말한 것이 본문이다. ‘춘상’은 효장세자의 별호로 추측되며,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이러한 참화를 막았을 것이라嘆息한 것으로 이해된다.
원문
字景大號損齋豐壤人文命子英祖朝進士蔭補鴻山縣監甲子文科直超通政歷副提學甲戌以兵曹判書拜右議政壬午罹禍謫鍾城賜死莊祖曰春相若在吾不至此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재호 / 趙載浩, confidence=0.95
- person: 경대(자) / 景大, confidence=0.95
- person: 손재(호) / 損齋, confidence=0.95
- person: 문명자(조재호의 아버지) / 文命子, confidence=0.85
- person: 장조(조선 영조의 아들) / 莊祖, confidence=0.95
- person: 춘상(효장세자로 추정) / 春相, confidence=0.7
- place: 풍양(경기도 양주군) / 豐壤, confidence=0.95
- place: 홍산(경상남도 합천군) / 鴻山, confidence=0.9
- place: 종성(함경도 종성군) / 鍾城, confidence=0.9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0.95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5
- office: 통정(관품) / 通政, confidence=0.95
- term: 문과 직초 / 文科直超, confidence=0.9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0.95
- term: 화입다(화근을 만나다) / 罹禍, confidence=0.9
- term: 저(유배) / 謫, confidence=0.95
- term: 사사(사약) / 賜死,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문명자(원문에 子字가 포함되어 아버지인지 확인 필요)
- 춘상(효장세자로 추정되나 추가 확인 필요)
(영조조)신만
- 기사 ID:
B9C^2_003_081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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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21:46:43.14001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11
한글 번역
자호는汝成이고, 평산 출신으로 영부사思喆의 아들이다. 정미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을자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병조판서로 임명되어 우승상에 오르고, 결국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孝正이다. 아우弟晦의 자호는汝根이고, 신유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계해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임진년에 이조판서로 임명되어 우승상에 오르고, 결국 영의정에 이르렀다. 병신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독음
자 여성, 평산인 영부사 사철의 아들 정미 진사 문과 을자년에 병조판서로 우승상에 오르고 영의정에 이르다. 시호는 효정이다. 아우弟晦 자汝根, 신유년 진사, 계해년 문과, 임진년에 이조판서로 우승상에 오르고 영의정에 이르다. 병신년에 유배지에서 죽다.
의미
조선 영조조 관인申晩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영부사思喬의 아들로 정미년과 을자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승상,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효정이다. 아우晦도 과거에 합격하여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승상, 영의정에 올랐으나, 병신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두 형제가 모두 영의정에 이르렀으나 아우는 유배 중 사망한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원문
字汝成平山人領府事思喆子丁未進士文科丙子以兵曹判書拜右相至領議政諡孝正弟晦字汝根辛酉進士癸亥文科壬辰以吏曹判書拜右相至領議政丙申卒于謫
엔티티 후보
- person: 신만 / 申晩, confidence=0.95
- person: 신회 / 申晦, confidence=0.95
- person: 사철 / 思喆, confidence=0.95
- place: 평산 / 平山, confidence=0.95
- office: 영부사 / 領府事, confidence=0.9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0.95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term: 자호 / 字, confidence=0.95
- term: 아우 / 弟,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유배지에서 사망 / 卒于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영부사(영의정부사) 관직 명칭이 영부사로 표기된 점, 丁未進士와 文科丙子가 별도의 시험인지同一 시험의 단계인지
(영조조)홍봉한
- 기사 ID:
B9C^2_003_081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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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익여, 호는 익측재, 풍산 사람이다. 판서 홍鉉輔의 아들이다. 을묘년에 생원, 진사에 합격하고, 음보로 세마에 보임되었다. 갑자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신사년에 우승상에 피임되었으며,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익정이다. 실로 아들의 헌경을 기리고 후사를 배치한 자는, 우리 장조의 아우인麟漢과龍漢이다. 자는 明汝, 생원, 문과에 합격하여 의주부윤이 되었다.
독음
자유익여호익측재풍산인판서현보자유묘생원진사진보세마갑자문과신사배우상지영의정시의익정실생헌경후배아장조제린한제용한자유명여생원문과의주부윤
의미
홍봉한은 영조조的重臣으로, 풍산 홍씨 출신이며 판서 홍현보의 아들이다. 을묘년생으로 생원·진사 합격 후 음보로 세마에 보임되고, 갑자년 문과에 합격하여 관계를 시작하였다. 신사년 우승상에 임명된 후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익정이다.文中 추가된 아우麟漢과龍漢의 정보는 혼인이 홍용한의 아들임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홍용한은 자가 明汝이며 생원·문과 합격 후 의주부윤을 지낸 인물이다.
원문
字翼汝號翼翼齋豐山人判書鉉輔子乙卯生員進士蔭補洗馬甲子文科辛巳拜右相至領議政諡翼靖寔生獻敬后配我莊祖弟麟漢弟龍漢字明汝生員文科義州府尹
엔티티 후보
- person: 홍봉한 / 洪鳳漢, confidence=0.95
- person: 홍현보 / 洪鉉輔, confidence=0.9
- person: 홍린한 / 洪麟漢, confidence=0.85
- person: 홍용한 / 洪龍漢, confidence=0.9
- place: 풍산 / 豐山, confidence=0.9
- place: 의주 / 義州, confidence=0.9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
- office: 세마 / 洗馬, confidence=0.9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0.9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office: 부윤 / 府尹,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0.9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寔生獻敬后配我莊祖弟麟漢弟龍漢字明汝生員文科義州府尹의 문장 순서와 구조가 원문 그대로 읽었을 때 어순이 다소 불규칙하여, 홍용한의 정보 삽입 시점에 대한 해석이 분분함
(영조조)정휘량
- 기사 ID:
B9C^2_003_081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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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자우, 호는 남애, 연일 사람이다. 우량의 아우. 계사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이조 판서·대제학을 거쳤으며, 신사에 우상에 오르고 좌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헌이다. 아들의 이름은 의달, 자는 방숙이다. 의달도 계사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가 되었다가 을유년에 먼 산으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독음
字子羽 號南崖 延日人 羽良弟 癸巳文科 檢閱 歷吏曹判書 大提學 辛巳拜右相 至左議政 諡文憲 子義達 字方叔 癸巳文科 校理 丙午遠竄 卒于謫
의미
조선 영조 때 관리 정휘량의 인물 기록이다. 정휘량은 연일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 대제학 등 요직을 역임하고, 우상에서 좌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헌이다. 아들 정의를도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가 되었으나, 을유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원문
字子羽號南崖延日人羽良弟癸巳文科檢閱歷吏曹判書大提學辛巳拜右相至左議政諡文憲子義達字方叔癸巳文科校理丙午遠竄卒于謫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휘량 / 鄭翬良, confidence=1.0
- person: 자우 / 子羽, confidence=1.0
- person: 남애 / 南崖, confidence=1.0
- person: 우량 / 羽良, confidence=1.0
- place: 연일 / 延日, confidence=1.0
- person: 정의달 / 義達, confidence=1.0
- person: 방숙 / 方叔, confidence=1.0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1.0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term: 원산 / 遠竄,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弟(아우) 뒤에 주어지는 인물이兄(형)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문맥상 우량이 형이고 정휘량이 아우인 것으로 추정
(영조조)윤동도
- 기사 ID:
B9C^2_003_081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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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호)는 경중(敬仲), 파평인이다. 판서惠敎의 아들이며, 상윤舜擧의 증손이다. 갑자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을축년에 문과에 합격했으며, 부제학의 벼슬을 지냈다. 신사년에 호조판서로 임명되어 우상에 오르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무자년에 사망하고 시호는 文靖이다.
독음
자경중파평인판서혜교자상윤순거증손갑자진사을축문과부제학신사이호조판서배우상지영의정무자졸시문정
의미
조선 영조조 관료 윤동도의 행적을 적은 기문이다. 파평에서 출생하여 갑자년에 진사, 을축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부제학을 거쳐 신사년에 호조판서로 우상에 오른 뒤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무자년에 사망하여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왕실과 연결된 가문 출신으로 확인된다.
원문
字敬仲坡平人判書惠敎子掌令舜擧曾孫甲子進士乙丑文科副提學辛巳以戶曹判書拜右相至領議政戊子卒諡文靖
엔티티 후보
- person: 윤동도 / 尹東度, confidence=0.95
- person: 혜교 / 惠敎, confidence=0.85
- person: 순거 / 舜擧, confidence=0.85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상윤 / 掌令, confidence=0.9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0.95
- office: 호조판서 / 戶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0.95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place: 파평 / 坡平, confidence=0.9
- term: 자(호) / 字,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惠敎와舜擧의 정확한 한자 독음과 신사년 등의 간지 연도 변환
(영조조)김상복
- 기사 ID:
B9C^2_003_081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1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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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의는仲受이고, 광산 출신으로 판윤 원택의 아들이다. 일찍이 기예(기역)함이 뛰어나 숙달되었다. 판서 安允行이 그에게 자신의 딸을 아내로 주었다. 경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검열이 되었고, 계미년에 이조판서로 임명되어 우상에 나아가 至 영의정에 이르렀다. 임인년에 사망하고 시호는 文憲이다.
독음
자 중수 광산인 판윤 원택자 기역 숙성 판서 죽산 안윤행 이 녀 처지 경신 문과 검열 계미 이조 판서 배 우상 至 영의정 임인 졸 시호 문헌
의미
영조조 관료 김상복의 약력. 광산인出身으로 영의정에 올랐으며, 경신년(1746) 문과 급제, 계미년(1773) 이조판서拜相 후 영의정 至, 임인년(1782) 졸, 시호 文憲. 安允行의 사위이기도 하다.
원문
字仲受光山人判尹元澤子岐嶷夙成判書竹山安允行以女妻之庚申文科檢閱癸未以吏曹判書拜右相至領議政壬寅卒諡文憲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상복 / 金相福, confidence=1.0
- place: 광산 / 光山, confidence=1.0
- person: 원택 / 元澤, confidence=0.95
- office: 판윤 / 判尹,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person: 안윤행 / 安允行, confidence=1.0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0.85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term: 자(字的) / 字, confidence=1.0
- term: 문헌(시호) / 文憲,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檢閱(검열) - 직책명으로서의 검열과 현대 의미의 검열이 혼용될 수 있으나, 관직명으로서 검열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
(영조조)김치인
- 기사 ID:
B9C^2_003_081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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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6:58:11.50776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18
한글 번역
자(字)는 공서이고, 호는 고정이다. 청풍인(淸風人)이며, 재노자(在魯子)이다. 정묘년에 생원이 되고, 무진년에 문과 장원에 합격하였다. 부제학에昇진하고, 을유년에 우승상에 임명되었으며, 영의정에 이르렀다. 조상 대대 손자(三世)에 걸쳐 상직에 올랐으며, 원손의 스승으로서致仕하고耆社에 入하였다. 경술년에 사망하고, 시호는 헌숙이다.
독음
자공서호고정청풍인재노자정묘생원무진문과장원부제학을유배우승상지영의정범조자손三世入상万元손사부致仕입제도사경술졸시호헌숙
의미
김치인은 조선 영조 연간的人物로, 문과 장원 합격 출신으로累進하여 우승상과 영의정을 역임한重臣이다. 조상 대대로 3대에 걸쳐宰相에 오른 명문 가문 출신이며,元孫의 스승으로서致仕 후耆社에 入사하였다. 경술년에 사망하여 시호 헌숙을 받았다.
원문
字公恕號古亭淸風人在魯子丁卯生員戊辰文科壯元副提學乙酉拜右相至領議政凡祖子孫三世入相以元孫師傅致仕入耆社庚戌卒諡憲肅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치인 / 金致仁, confidence=1.0
- person: 공서 / 公恕, confidence=1.0
- term: 고정 / 古亭, confidence=1.0
- term: 청풍인 / 淸風人, confidence=0.7
- term: 재노자 / 在魯子, confidence=0.6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office: 문과장원 / 文科壯元,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0.9
- term: 헌숙 / 憲肅,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영조조)서지수
- 기사 ID:
B9C^2_003_081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1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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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6:58:23.78395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19
한글 번역
자(一之), 호는 송옹(松翁). 대구 사람이다. 아버지는 좌상(左相) 서명균(徐命均)이고, 우상(右相) 청풍 김구(金構)의 딸과 결혼하여 서지수(徐志修)를 낳았다. 계축년(1753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경신년(180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갑술년(1806년)에咸鏡監司에 임명되고 우상에 오르며, 결국 영의정에 이르렀다. 조상·자식·손자 모두 삼대에 걸쳐丞相에 올라 入相하였다. 무신년(1828년)에 졸하고, 시호는 文淸이다.
독음
자유 일지 호 송옹 대구 사람 아버지 좌상 서명균 욕 우상 청풍 김구녀 생 서지수 계축 진사 경신 문과 검열 갑술 염경감사 배 우상 지 영의정 조자손 범 삼세 입상 무신 졸 시문청
의미
영조 연간 인물 서지수는 대구 출신으로, 좌상 서명균의 아들이자 우상 김구의 사위였다. 1753년 진사, 1800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咸鏡監司, 우상 등 관직을 역임하고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다. 서씨 가문은 조상 서귀殷의 손자 서정温과 함께 삼대에 걸쳐丞相 벼슬에 오른 武臣世家였다. 1828년에 사망하여文淹란 시호를 받았다. 영조조 相臣錄에 수록된 인물이다.
원문
字一之號松翁大邱人父左相命均娶右相淸風金構女生志修癸丑進士庚申文科檢閱丙戌以咸鏡監司拜右相至領議政祖子孫凡三世入相戊子卒諡文淸[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서지수 / 徐志修, confidence=1.0
- person: 서명균 / 徐命均, confidence=1.0
- person: 김구 / 金構, confidence=1.0
- person: 서귀 / 徐軌, confidence=0.9
- person: 서온 / 徐溫, confidence=0.9
- place: 대구 / 大邱, confidence=1.0
- place: 함경도 / 咸鏡道, confidence=1.0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함경감사 / 咸鏡監司, confidence=1.0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1.0
- office: 상신 / 相臣,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1.0
- term: 입상 / 入相,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영조조)한익謩
- 기사 ID:
B9C^2_003_082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21:46:15.41239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20
한글 번역
자(字)가 경부(敬夫)이고 호(號)가 정견(靜見)이다. 청주 출신으로서 진사에 급제하였다. 사범의 아들이며, 참판 성유의 증손이다. 계축년(1753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강화 유수를 지냈다. 을유년(1766년)에 우상에 오르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정유년(1777년)에 유배되었다가 서、客户에게 문숙(文肅)의 시호를 받았다. [주:상신록] 형,显謩의 자는 기이(期而)이고, 계묘년(175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을 지냈다.
독음
자경부호정견청주인진사사범자참판성유증손계축문과강화유수을유배우상지영의정정유천문숙주상신록형현모자기이계축문과대사헌
의미
조선 영조 때 문신 한익의简历이다. 음서로 출사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강화 유수, 우상, 영의정을 역임하였으나, 정유년(1777년) 유배되었다가 사후에 문숙의 시호를 받았다. 한익의 형 한현모도 문과 급제하여 대사헌에 이르렀으며, 두 형제 모두管理等서出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문
字敬夫號靜見淸州人進士師范子參判聖佑曾孫癸丑文科江華留守丙戌拜右相至領議政丁酉竄諡文肅[주:相臣錄]兄顯謩字期而癸卯文科大司憲
엔티티 후보
- person: 한익 / 韓翼謩, confidence=1.0
- person: 현모 / 顯謩, confidence=1.0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place: 강화 / 江華,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유수 / 留守,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term: 천 / 竄, confidence=0.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師范子의 구체적 관계와 세대
- 丁酉竄의 정확한 유배 연도와 기간
- 사망 연도 미상
(영조조)김상철
- 기사 ID:
B9C^2_003_082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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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사보, 강릉 출신이다. 판서 시혁의 아들로, 계축년(1693) 진사에 합격하고 병진년(1736)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를 지냈다. 신사년(1761)에 우승상에 나아가 영의정에 이르렀다. 병신년(1776)에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시호는 충정이다. [주:상신록] 형兄长尚迪은 자가 사순, 판서 시경의 아들로서 계축년(1693) 문과에 급제하고 참판을 지냈으며, 경오년(1770)에 균세사로 봉산에 있다가 사망했다. 형兄长尚重은 자가 사질, 임자년(1732)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헌을 지냈다. 형兄长尚翼은 자가 사필, 을사년(1765) 진사에 합격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판서를 지냈다. 형兄长尚星은 자가 사정, 판서 시환의 아들로 계묘년(1739) 진사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육조 판서를 두루 역임했다. [주:국조사목]
독음
字는 사보, 강릉인은 강릉 출신, 판서 시혁의 아들, 계축 진사(1693), 병진 문과(1736), 이조 판서, 신사년에 우승상에 나아가,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병신년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났으니 시호는 충정, [상신록]에 실림. 형제尚迪은 자가 사순, 판서 시경의 아들, 계축 문과 급제, 참판, 경오년에 균세사로서 봉산에서 재임 중 사망. 형제尚重은 자가 사질, 임자 문과 급제, 대사헌. 형제尚翼은 자가 사필, 을사 진사 문과 급제, 판서. 형제尚星은 자가 사정, 판서 시환의 아들, 계묘 진사(1739) 문과 급제, 육조 판서를 두루 역임, [국조사목]에 실림
의미
영조 연간 출세한 문신 김상철의 행적과 그 형제들을 기록한 기문이다. 김상철은 문과 급제 후 이조 판서를 거쳐 우승상, 영의정에 이르렀으나 병신년(1776)에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났다. 상신록에 수록된 인물이며, 시호는 충정이다. 또한 상기 네 명의 형제도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역임한 유력 가문 출신임을 보여준다. 주석으로 상신록과 국조사목의 출처가明示되어 있다.
원문
字士輔江陵人判書始㷜子癸丑進士丙辰文科吏曹判書丙戌拜右相至領議政丙申謫卒諡忠靖[주:相臣錄]從兄尙迪字士順判書始炯子癸丑文科參判庚午均稅使在鳳山卒從兄尙重字士質壬子文科大司憲從兄尙翼字士弼乙巳進士文科判書從兄尙星字士精判書始煥子癸卯進士文科歷六曹判書[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상철 / 金尙喆, confidence=0.98
- person: 김상적 / 金尙迪, confidence=0.95
- person: 김상중 / 金尙重, confidence=0.95
- person: 김상의 / 金尙翼, confidence=0.95
- person: 김상성 / 金尙星, confidence=0.95
- place: 강릉 / 江陵, confidence=0.98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7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0.97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8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7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7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7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7
- office: 균세사 / 均稅使, confidence=0.92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97
- work: 국조사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7
- term: 자(的字) / 字, confidence=0.98
- term: 저(유배) / 謫, confidence=0.94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7
- term: 형수 / 從兄, confidence=0.93
불확실한 어휘
- 始㷜(시혁)
- 始炯(시경)
- 始煥(시환)
- 丙戌(병술년)
- 丙申(병신년)
- 庚午(경오년)
- 壬子(임자년)
- 乙巳(을사년)
- 癸卯(계묘년)
(영조조)이창의
- 기사 ID:
B9C^2_003_082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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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성방(聖方)이다. 계통은 종실(宗室) 세종(世宗)의 별자(別子) 영해군 당(瑭)의 후손으로서, 참봉(參奉)에 올라之子(躋子)의 판서(判書) 언강(彥綱)의 손자이다. 을묘(乙卯)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고, 무자(戊子)년에 우의정(右議政)으로 임명되었으며, 임진(壬辰)년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익헌(翼獻)이다.
독음
자 성방 계출 종실 세종 별자 영해군 당 이후 참봉 지자 판서 언강 손 을묘 문과 병조 판서 무자 배 우의정 임진 졸 시호 익헌
의미
영조조的重臣인 이창의의 약력이다. 세종대왕의 서자 영해군 당의 후손으로, 을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판서를 지내고, 무자년에 우의정으로 승진했으며, 임진년에 사망하여 익헌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원문
字聖方系出宗室世宗別子寧海君瑭之後參奉躋子判書彥綱孫乙卯文科兵曹判書戊子拜右議政壬辰卒諡翼獻[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창의 / 李昌誼, confidence=1.0
- person: 당 / 瑭, confidence=1.0
- person: 지자 / 躋子, confidence=1.0
- person: 언강 / 彥綱, confidence=1.0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1.0
- place: 영해군 / 寧海君,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office: 병조 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1.0
- term: 을묘 / 乙卯, confidence=1.0
- term: 무자 / 戊子, confidence=1.0
- term: 임진 / 壬辰,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익헌 / 翼獻, confidence=1.0
(영조조)김양택
- 기사 ID:
B9C^2_003_082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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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6:58:57.02776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23
한글 번역
자(字)는 사서, 호는 건암, 광산인. 아버지는 판서 김진구. 신유년에 생원 장원, 계해년에 문과 합격. 대제학에 올랐고, 병술년에 우상에 임명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간이다. [주:상신록] 아들 여름 재료(夏日材)의 자는 양숙, 을유년에 진사, 기축년에 문과 합격하여 대사헌이 되었으나 갑진년에 숙청되어 처형됨.
독음
자사서호건암광산인판서진구자신유생원장원계해문과대제학병술우상승임영의정시문간[주상신록]자하재자양숙을유진사고축문과대사헌갑진복주
의미
영조조的重臣 김양택의 행적. 신유년 생원장원, 계해년 문과 합격 후 대제학·우상·영의정에 올랐으며 시호는 문간. 아들 여름 재료(夏日材)는 진사·문과 출신으로 대사헌이었으나 갑진년(1766?)에 반역 혐의로 처형된 것으로 추정됨.文中 아들 부분은 본인의 行迹와 혼재되어 있을 가능성 있음.
원문
字士舒號健菴光山人判書鎭圭子辛酉生員壯元癸亥文科大提學丙戌拜右相至領議政諡文簡[주:相臣錄]子夏材字養叔乙酉進士己丑文科大司憲甲辰伏誅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양택 / 金陽澤, confidence=1.0
- person: 김진구 / 金鎭圭, confidence=1.0
- person: 하지재(夏日材), confidence=0.7
- place: 광산 / 光山,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생원장원 / 生員壯元, confidence=1.0
- term: 시호문간 / 諡文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子夏材 부분이 아들 名인지, 인물 지칭 오류인지 불확실
- 갑진년이 1766년 영조42년 숙청을 가리키는지 확인 필요
- 생년과 사망연도 未詳
- 『상신록』 출처 및 완전성 미확인
(영조조)신회
- 기사 ID:
B9C^2_003_082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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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6:58:50.20571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24
한글 번역
자(字)는 여근, 평산 사람이다. 막내 아우 신유년에 진사로 급제하고, 남양부 윤에 남양 홍启发의 딸을 며느리로 맞았다. 계해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판서가 되었고, 임진년에 우승에 나아가 영의정에 이르렀다. 병신년에 유배되었다가 죽었다.
독음
자여근 평산인 만제 신유진사 삼판 남양 홍启发의 딸을 아내로 삼다(之) 계해 문과 병조 판서 임진년 우승에 오르다 영의정에 이르다 병신년 유배되었다가 죽다
의미
조선 영조조 문신 신회의 행적을 적은 기문이다. 평산 출신으로 신유년(1721년) 진사, 계해년(1733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판서를 지내고, 임진년(1772년) 우승, 이어 영의정에 至렀다. 그러나 병신년(1772년 또는 1832년?)에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났다. 相臣錄에서 발췌한 것으로 추정된다. 홍启发가 남양부 윤임을 감안할 때 상간녀를 통해 인척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인다.
원문
字汝根平山人晚弟辛酉進士參判南陽洪啓迪以女妻(之)癸亥文科兵曹判書壬辰拜右相至領議政丙申竄卒[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신회 / 申晦, confidence=1.0
- person: 여근 / 字汝根, confidence=1.0
- place: 평산 / 平山, confidence=1.0
- person: 홍启发 / 洪啓迪, confidence=1.0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승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term: 삼판 / 參判, confidence=0.8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만弟(晚弟)의 정확한 해석, 丙申竄卒의 연도(1772년 또는 1832년)
(영조조)이는
- 기사 ID:
B9C^2_003_082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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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7:27:50.88614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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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가 유호이고 호는 탐재이며, 덕수 출생이다. 이조 판서 주원의 아들이자 충헌공 㙫의 손자이다. 경신(1440)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음보(친영의 관직 임용)로 남평 현감이 되었다. 기묘(1459)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임진(1532)년에 이조 판서로 오른상에 올랐다. 사신으로 두 번 연경(베이징)에 다녀갔고,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신축(1541)년에 사망하고 시호는 충목이다. 형 주면은 자가 중호이고, 계유(1453)년에 생원에 합격했으며, 정축(1517)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 참판을 지냈다. 아버지 주원은 좌상 䮝興閔鎭遠의 딸을 맞이하여 세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귀족 가문에서 출세하였다.
독음
자유호호재재도수인이조판서주전자충헌공감손경신진사음보남평현감이묘문과임진이이조판서배우상봉사재복연경관지영의정신축 졸시충목
의미
이 기사는 영조조(16세기) 재상 이溵의 이력이다. 영의정에 오른 높은 관료로서, 강화도 덕수 출신으로 충헌공 㙫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명종대 우상에 오르고 사신으로 명나라 수도 연경을 두 차례 방문하는 등 외교 경력을 쌓았다. 가문적으로도 이조 참판을 지낸 형 주면이 있었고, 아버지 주원은 좌상闵鎭遠의 사위로서 권세가와 인척관계를 맺었다. 세 아들도 모두 출세하여 명문 가문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相臣錄과 國朝榜目의 기록이 인용되었다.
원문
字稚浩號瞻齋德水人吏曹判書周鎭子忠憲公㙫孫庚申進士蔭補南平縣監己卯文科壬辰以吏曹判書拜右相奉使再赴燕京官至領議政辛丑卒諡忠穆[주:相臣錄]兄瀰字仲浩癸酉生員丁丑文科吏曹參判父周鎭娶左相驪興閔鎭遠女生三子皆貴顯[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溵 / 李溵, confidence=1.0
- person: 주원 / 周鎭, confidence=1.0
- person: 감(감강) / 㙫, confidence=1.0
- person: 주면 / 瀰, confidence=1.0
- person: 민진원 / 閔鎭遠, confidence=1.0
- place: 덕수 / 德水, confidence=1.0
- place: 남평 / 南平, confidence=1.0
- place: 연경(베이징) / 燕京, confidence=1.0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상 / 右相,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이조 참판 / 吏曹參判, confidence=1.0
- office: 남평 현감 / 南平縣監, confidence=1.0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별칭) / 號, confidence=1.0
- term: 손자 / 孫,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영조조)원인손
- 기사 ID:
B9C^2_003_082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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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6:59:36.18999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26
한글 번역
원인손은 자가 자정이며, 원주 사람이다. 이조판서 경하의 아들로서 흥평위 몀린의 증손자이다. 경오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음보로 세마에 보직되었다. 계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전라감사를 역임하고, 임진년에 우의정에 오르며, 갑오년에 졸하였다. 시호는 문민이다. [주:상신록]
독음
자자정 원주인 이조판서 경하이 자 흥평위 몀린의 증손자 경오년 진사 음보로 세마 보충 계유년 문과 역임 전라감사 임진년에 우의정에 오르고 갑오년에 졸하며 시호는 문민
의미
조선 영조조 문신 원인손의 졸기(行狀)이다. 원주 출신으로, 이조판서 경하의 아들이자 흥평위 몀린의 증손으로서 경오년 진사에 합격하고 음보로 세마에 보직되었다. 계유년 문과에 합격한 후 전라감사를 역임하고 임진년에 우의정에 올랐으며, 갑오년에 졸하여 문민의 시호를 받았다.
원문
字子靜原州人吏曹判書景夏子興平尉夢麟曾孫庚午進士蔭補洗馬癸酉文科歷全羅監司壬辰拜右議政甲午卒諡文敏[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원인손 / 元仁孫, confidence=1.0
- person: 경하 / 景夏, confidence=1.0
- person: 몀린 / 夢麟, confidence=1.0
- place: 원주 / 原州,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흥평위 / 興平尉, confidence=1.0
- office: 세마 / 洗馬, confidence=1.0
- office: 전라감사 / 全羅監司,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1.0
- term: 문민 / 文敏, confidence=1.0
(영조조)이사관
- 기사 ID:
B9C^2_003_082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6:59:35.95121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27
한글 번역
자(字)는 소설, 호는 장음, 한산인이다. 목사의 아들이며 기유년에 진사, 정사년에 문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양사를 역임하고, 임진년에 병조 판서로 부임하여 오른议政에 오르고, 시호는 효정이다.(주:相臣錄)
독음
자 소설호 장음한산인 목사 기한자 기유진사 정사문과 제이 역양사 임진以此병조판서 배 우의정 시 효정[주:상신록]
의미
조선 영조조 문신 이사고의 약력이다. 진사·문과 합격 후 승문원과 집현전 등 양사를 거치며 승진하여 병조 판서를 거쳐 우의정에까지 이르렀다. 호는 장음, 한산 사람이며, 시호는 효정이다.
원문
字叔賓號長陰韓山人牧使基漢子己酉進士丁巳文科第二歷兩司壬辰以兵曹判書拜右議政諡孝靖[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사고 / 李思觀, confidence=1.0
- place: 장음 / 長陰, confidence=0.9
- place: 한산 / 韓山, confidence=0.95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5
- office: 양사 / 兩司, confidence=1.0
- office: 병조 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term: 자(성명) / 字, confidence=1.0
- term: 호(별칭) / 號,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牧使基漢子 - 목사와 기한의 관계가 ‘아들(子)’로 해석되는지, 다른 관계인지 원문만으로 단정하기 어려움
(영조조)홍린한
- 기사 ID:
B9C^2_003_082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00:12.69772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28
한글 번역
자의는 정여, 풍산 사람이다. 형 홍봉한의 아우이다. 이삭참판(吏曹參判) 평산 신방(申昉)이 그 용모가 곱고 밝은 것을 보고 딸에게 시집보냈다. 규사文科校理에 오르고 이도監司를 지냈다. 갑오년에 우의정拜射하였다. 병신년에 정후겸에게 집착하여 마침내 사약을 받았다.[주:상신록]
독음
자정여 풍산인 봉한제 이사참반 평산 신방 견기설 무석자지 정기文科校理력 이도감사 갑오배 우의정 병신 당부 정후겸 사사[주:상신록]
의미
홍린한은 풍산 홍씨 출신으로 형 홍봉한의 아우이다. 평산 신방이 그 용모를 보고 딸을 맺어줬다. 과거에 급제하여 교리, 감사를 거쳤고 갑오년(1774)에 우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병신년(1776) 정후겸에 연루되어 사사를 받았다.
원문
字定汝豐山人鳳漢弟吏曹參判平山申昉見其貌晳以女妻之癸酉文科校理歷二道監司甲午拜右議政丙申以黨附鄭厚謙賜死[주:相臣錄]
엔티티 후보
- person: 홍린한 / 洪麟漢, confidence=0.99
- person: 홍봉한 / 洪鳳漢, confidence=0.98
- person: 신방 / 申昉, confidence=0.98
- person: 정후겸 / 鄭厚謙, confidence=0.99
- place: 풍산 / 豊山, confidence=0.98
- place: 평산 / 平山, confidence=0.98
- office: 이삭참판 / 吏曹參判, confidence=0.99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0.99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9
- work: 상신록 / 相臣錄, confidence=0.99
- term: 사사 / 賜死, confidence=0.98
불확실한 어휘
- 견기(見其貌)는 신방이 홍린한의 용모를 직접 목격했다는 뜻으로 보이나, 원문 ‘見’자가 목격인지 단순 조견(朝見)인지 불분명함
(영조조)정후겸
- 기사 ID:
B9C^2_003_082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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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21:47:20.8973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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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백익이다. 영일인(延日人) 목사(牧使) 석달(錫達)의 아들이며, 반서(判書) 수기(壽期)의 증손이다. 우의정 우량자(羽良子) 일성위(日城尉) 치달(致達)은 영조(英祖)의 딸 화수옹주(和綏翁主)에게 장가들었으나 아이가 없어 후겸을 아들로 삼았다. 생원·진사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이 참판(參判)에 이르렀다. 을신(1756)에 경원(慶源)으로 유배되고, 정유(1757)에 사약(賜死) 명을 받았으며, 특별히 파면되어 본종(本宗)으로 돌아갔다.
독음
자백익 연일인목사석달자 반서수기증손 우의정우량자 일성위치달상은영조녀 화수옹주 무육 이후겸위자 생원진사문과 관至참판 병신 서경원 정유 사사 명 특파 환본종
의미
정후겸은 영조 시대의 관료로, 영일인 목사 석달의 아들이다. 반서 수기의 증손으로서 일성위 치달과 화수옹주에게 입양되었다. 문과에 합격하여 참판까지 올랐으나 을신년에 경원으로 유배되고, 정유년에 사약을 받으며 파면되어 본종으로 돌아갔다. 우의정의 아들로 사돈 관계를 맺었으나 결국 역모의혹으로 처형된 인물이다.
원문
字伯益延日人牧使錫達子判書壽期曾孫右議政羽良子日城尉致達尙英祖女和綏翁主無育以厚謙爲子生員進士文科官至參判丙申竄慶源丁酉賜死命特罷還本宗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후겸 / 鄭厚謙, confidence=0.98
- person: 수기 / 壽期, confidence=0.92
- person: 우량자 / 羽良子, confidence=0.88
- person: 치달 / 致達, confidence=0.95
- person: 화수옹주 / 和綏翁主, confidence=0.97
- place: 경원 / 慶源, confidence=0.96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5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7
- office: 일성위 / 日城尉, confidence=0.93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5
- term: 자(호칭용 이름) / 字, confidence=0.96
- term: 본종(출생 가문) / 本宗, confidence=0.91
불확실한 어휘
- 羽良子(우량자)의 정확한 인물 특정, 연일인(延日人)의 지리적 소속
(영조조)심상운
- 기사 ID:
B9C^2_003_083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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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봉여, 청송인이다. 군수 일진의 아들로서 출계하여 청평위 익현의 후손이 되어 음보로 군수 벼슬에 보임되었다. 임진년에 무과(文科)에 급제하여 승지가 되었으나, 을신년에 화를 당하여 특히 파면되고 본종으로 돌아갔다. [주:국조방목] 형翼雲의 자(字)는 붕여이며, 进士文科에 급제하여正言을 지내고 을신년에 화를 당하여仁祖代에 좌천되었다.仁祖代名臣의 한(漢)씨5대손이다.
독음
자 봉여 청송인 군수 일진의 아들 출계하여 청평위 익현의 후손이 되어 음보로 군수가 되니 임진년文科 급제하고 승지가 되었으나 을신년에 화를 당하여 특히 파면되고 본종으로 돌아갔다 [주:국조방목] 형翼雲 자는 붕여,进士文科的正言이 되고 을신년에 화를 당하여仁祖代에 좌천되었다仁祖名臣의 한 五代孫이다
의미
沈翔雲은 청송 태생으로, 청평위 익현의 후손으로서 음보로 군수가 되었다가 임진년에文科에 급제하여 승지가 되었으나, 을신년에 화를 당해 파면되고 본종으로 돌아갔다. 형 沈翼雲도 进士文科에 급제하여 正言을 지냈으나 을신년에 좌천되었고, 仁祖,代 명신인 한(漢)씨의 5대손이었다.
원문
字鳳汝靑松人郡守一鎭子出系靑平尉益顯后蔭補郡守壬辰文科承旨丙申伏誅命特罷還本宗[주:國朝榜目]兄翼雲字鵬汝進士文科正言丙申坐謫仁祖名臣之漢五代孫
엔티티 후보
- person: 심상운 / 沈翔雲, confidence=1.0
- person: 심익운 / 沈翼雲, confidence=1.0
- place: 청송 / 靑松, confidence=1.0
- place: 청평위 / 靑平尉,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office: 무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term: 출계(양자가 문중에 들어감) / 出系, confidence=0.9
- term: 후음(선대 관직으로 인한荫職) / 後蔭,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兄弟 구조에서 ‘弟翔雲’인지 ‘字翔雲’인지 불확실
- 出系의 구체적 양자 관계 여부
- 伏誅命의 文法 구조(화형을 당한 것인지 명령이 내렸는지)
(영조조)홍국영
- 기사 ID:
B9C^2_003_083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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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德老, 풍산(豐山) 출신. 삼판(三判)을 지내고 호는 樂春子이다. 감사(監司)를 지낸 昌漢의 손자로, 임진년에 文科에 합격하여 삼판에 이르렀으나 벼슬을 내려놓고 관직을 떠났다. 경자년에 田里로 유배되었다.
독음
자덕로 풍산인 삼판락춘자 감사창한손 임진문과 관至삼판 치사 경자방축전리
의미
홍국영은 풍산 출신으로 字는 德老이고 호는 樂春子이다. 감사昌漢의 후손으로서 임진년(1752년 추정)에 文科에 합격하여 삼판(三判)까지 관직에 올랐으나, 경자년(1720년 추정)에 정치적 변란에 연좌되어 田里 즉 향촌으로 유배되었다가 이후 퇴직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삼판 직위에서致仕한 것은 유배 후 신분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명의 영조대 실세 홍국영(소론 핵심 인물)은 이보다 훨씬 높은 벼슬에 올랐으므로, 이 기록의 인물과 신원 일치가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는다.
원문
字德老豐山人參判樂春子監司昌漢孫壬辰文科官至參判致仕庚子放逐田里
엔티티 후보
- person: 홍국영 / 洪國榮, confidence=0.9
- place: 풍산 / 豐山, confidence=0.95
- office: 삼판 / 參判, confidence=0.95
- person: 창한 / 昌漢, confidence=0.9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치사 / 致仕, confidence=0.9
- term: 방축전리 / 放逐田里,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삼판樂春子의 결합 방식이 삼판관직과 호樂春의 연결이 명확하지 않고, 임진문과·경자유배의 절대 연도가 유배 시기의 정치적 사건과의 정합성 확인이 필요하다.
(영조조)김성탁
- 기사 ID:
B9C^2_003_083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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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진백, 호는 제산, 의성 사람이다. 표은은 그의 증조부 옹의 호이다. 숙종조에 문과 교리에 오랐고, 정사년에 상소하여 당파의 해악을 논했으며, 또한 그의 스승 갈암 이현일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옥에 갇혀 제주에 유배되었다. 도광양도에 이르러 세상을 떠난 조현명이 상소하여 논평하기를, 조정이 이현일을 역모(역적)의 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오히려 역을 도운 죄로 성탁을 처리한 것은 백성을 속이는 것이 아니겠나라고 하였다. 이에 사간원과 대사간, 우승 등의 삼사(三司)가 조현명을 공격하여 함께 멀리 유배보냈다. [주: 『桐巢謾錄』]
독음
자 진백호 제산 의성인표은시옹증조조종조문과교리정사상소론사이급당파지해우위기사갈암이현일송원궁배제주도광양도졸조현명소론조정불이역률감현일이호호죄성탁불기가어망민호어시삼공공현명병원선
의미
영조조 학자 김성탁의 소개와 당쟁 관련 사건 기록이다. 김성탁은 숙종조 문과 교리에 올랐고, 정사년에 상소하여 당파 문제를 논했다. 그는 스승 이현일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유배되었다가 사망한 조현명의 상소로 자신의 처우가 부당했음을 깨닫게 된다. 조현명은 조정이 이현일을 역모로处罚하지 않고 성탁을 유죄로 처리한 것은 백성을 속이는 처사라고 비판했으며, 이로 인해 삼사의 공격을 받아 유배되었다.
원문
字振伯號霽山義城人瓢隱是榲曾孫肅宗朝文科校理丁巳上疏論事以及朋黨之害又爲其師葛菴李玄逸訟冤鞫配濟州到光陽道卒趙顯命疏論朝廷不以逆律勘玄逸而以護逆罪聖鐸不幾于罔民乎於是三司攻顯命竝遠竄[주:桐巢謾錄]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성탁 / 金聖鐸, confidence=1.0
- person: 이현일 / 李玄逸, confidence=1.0
- person: 조현명 / 趙顯命, confidence=1.0
- place: 의성 / 義城, confidence=1.0
- place: 제주 / 濟州, confidence=1.0
- place: 광양 / 光陽,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work: 동과만록 / 桐巢謾錄, confidence=0.8
- term: 삼사 / 三司, confidence=1.0
- term: 당파 / 朋黨,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영조조)홍계희
- 기사 ID:
B9C^2_003_083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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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6:59:14.43626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33
한글 번역
자(字)는 순보(純甫), 호(號)는 단와(淡窩), 남양(南陽) 사람이다. 참판(參判) 우전(禹傳)의 아들이며, 타오(打愚) 이翔(李翔)의 외손이다. 을사(乙巳)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정사(丁巳)년 문과(文科)에서 장원(壯元)이 되었다. 통신사(通信使)로 동쪽 일본에 다녀왔고, 이력(歷)리조(吏曹) 판서(判書)를 지냈다. 균역청(均役廳)을 주설(主設)했으며, 관직은 판부사(判府事)에 이르렀다. 삼운성휘(三韻聲彙)를 저술했고, 시호(諡號)는 문간(文簡)이다. 아들 지해(趾海)의 자(字)는 백미(伯美), 임신(壬申)년 문과에 급제하고, 갑오(甲午)년에 준시(俊試)에 등재되었다. 관직이 판서에 이르렀으나, 정유(丁酉)년에 핀서(伏誅, 사형)에 처해졌다. 아우 경해(景海)의 자는 숙행(叔行), 경오(庚午)년에 생원(生員), 문과에 급제하고 응교(應敎)가 되었다. 을묘(乙卯)년에 장시(掌試) 도사(都事)가 되어 은계(銀溪) 찰방(察訪) 박필진(朴必珍)과 함께 가서 금화(金化)에서 익사(渰死)했다. 아우 술해(述海)의 자는 중선(仲善),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음보(蔭補)로 군수(郡守)가 되었다. 기묘(己卯)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감사(監司)가 되었다. 정유(丁酉)년에 핀서(伏誅)에 처해졌다. 아우찬해(纘海)의 자는 유성(幼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承旨)가 되었다. 정유(丁酉)년에 참형(誅)당했다. 지해의 아들 상간(相簡)의 자는 경이(敬而),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大司諫)이 되었다. 병신(丙申)년에 장비(杖斃)했다. 계희(啓禧)의 아우 계능(啓能)은 흡진관(逸進官)에 나아가 进善(進善)에 이르렀고, 호(號)는 신계(莘溪)이다. 병신(丙申)년에 장비(杖斃)했다.
독음
자유순보호담와남양인참판우전자타오이상외손을사진사정사문과장원이지통신사동복일본역리조판서주설균역청관至判府事저삼운성휘시문간
의미
홍계희는 영조 시대의 관료로, 남양 출신이며 자는 순보, 호는 단와이다. 을사년 진사, 정사년 문과 장원에 합격하고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다. 이조판서, 판부사 등을 역임하고 균역청을 설치했으며, 삼운성휘를 저술해 문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아들趾海는 판서까지 올랐으나 정유년에 핀서, 경해는 금화에서 박필진과 함께 익사, 술해는 감사가 되어 정유년에 핀서, 찬해는 승지가 되어 정유년에 참형, 손자상간은 대사간이 되어 병신년에 장비되었다. 홍씨 일문은 정유와 병신년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 홍계능도 병신년에 장비되어 일문의 비극이 완성되었다.
원문
字純甫號淡窩南陽人參判禹傳子打愚李翔外孫乙巳進士丁巳文科壯元以通信使東赴日本歷吏曹判書主設均役廳官至判府事著三韻聲彙諡文簡[주:國朝榜目]子趾海字伯美壬申文科甲午登俊試官至判書丁酉伏誅弟景海字叔行庚午生員文科應敎乙卯以掌試都事與銀溪察訪朴必珍偕行渰死于金化弟述海字仲善進士蔭補郡守己卯文科監司丁酉伏誅弟纘海字幼成進士文科承旨丁酉誅趾海子相簡字敬而進士文科大司諫丙申杖斃啓禧弟啓能以逸進官至進善號莘溪丙申杖斃[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홍계희 / 洪啓禧, confidence=1.0
- person: 홍지해 / 洪趾海, confidence=1.0
- person: 홍경해 / 洪景海, confidence=1.0
- person: 홍술해 / 洪述海, confidence=1.0
- person: 홍찬해 / 洪纘海, confidence=1.0
- person: 홍상간 / 洪相簡, confidence=1.0
- person: 홍계능 / 洪啓能, confidence=1.0
- person: 우전 / 禹傳, confidence=1.0
- person: 이翔 / 李翔, confidence=1.0
- person: 박필진 / 朴必珍, confidence=1.0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1.0
- place: 금화 / 金化,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office: 통신사 / 通信使,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판부사 / 判府事, confidence=1.0
- office: 응교 / 應敎, confidence=1.0
- office: 장시도사 / 掌試都事,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office: 대사간 / 大司諫, confidence=1.0
- work: 삼운성휘 / 三韻聲彙, confidence=1.0
- term: 핀서 / 伏誅, confidence=0.95
- term: 엄사 / 渰死, confidence=0.95
- term: 장비 / 杖斃,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타오李翔外孫의 타오(打愚)가 이름인지 오기인지 불확실
- 진사壮元의 진사(進士)와 장원(壯元) 구분
(영조조)박성원
- 기사 ID:
B9C^2_003_083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3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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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01:06.61983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34
한글 번역
글자는 사수, 호는 겸재, 또 호는 광암, 밀양 출신, 문경공 충원의 6대손, 도암 이질에게 수학, 신축년에 생원과 진사, 무신년에 문과 합격, 두 관서를 역임하고 유선에 이르렀으며 관직이 참판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헌이다.
독음
자 사수호 겸재우호 광암 밀양인 문경공 충원 육대손 학우도암 이질 신축 생원 진사 무신 문과 역사 양사 유선 관지삼반 시호 문헌[주:국조방목]
의미
조선 영조조 시대의 문신 박성원(字 사수, 호 겸재·광암)의 가계, 학식, 과거 합격, 관료 경력, 시호를 기재한 간단한 인사편력이다. 밀양 출신으로 문경공 충원의 6대손이며, 이질(도암)에게 수학하고 신축년과 무신년에 차례대로 생원·진사·문과에 합격하였다. 양사를 거쳐 유선에서 참판에 이르렀으며死后 시호로 문헌을 받았다.
원문
字士洙號謙齋又號廣岩密陽人文景公忠元六代孫學于陶菴李縡辛丑生員進士戊申文科歷兩司諭善官至參判諡文憲[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성원 / 朴聖源, confidence=0.95
- person: 이질 / 李縡, confidence=0.95
- place: 밀양 / 密陽, confidence=0.95
- person: 문경공충원 / 文景公忠元, confidence=0.8
- office: 양사 / 兩司, confidence=0.9
- office: 유선 / 諭善, confidence=0.9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문경공충원 - 시호 체계가 비표준적이나 문경공(작위)과 충원(시호)이 혼용된 듯함
- 陶菴은 이질의 호로 보이나 해당 인물의 정확한 관계 설정이 불확실
(영조조)신사원
- 기사 ID:
B9C^2_003_083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3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01:20.92851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35
한글 번역
자(字)는 정여(靜汝), 평산 사람이다. 대사성 민일(敏一)의 현손(玄孫)으로서 충景公 염(銋)의 아들이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손으로 팔괘(八卦)와 오행(五行), 12방위(十二方位)를 작은 종이에 그려서 주었는데, 사랑하여 장난하고 유실이 두려워 주머니에 넣고 간직하여 늙도록 오히려 새것과 같았다. 우의정 조도빈이皇上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과거 판관 신사원은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옮겨가면서 좌우에서 호호하고 한시도 떠나지 않았으므로 섬 사람들 중에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다 신 효자라 일컬었다. 마땅히襃典이 있어야 합니다.” 하니,皇上이 기뻐하여 이를 가상히 여기시고 집역(執義)을 증직하였다.
독음
자정여 평산인 대사성민일 현손 충경공 염자 오세시기 부수화괘서오행십이방위어소지이여지 애완공실장패낭지노이유신 우의정조도빈백상언 고판관신사원 수부 남천 좌우 장호 수휴 불리도 인물 부감탄 개칭 신효자 의유襃典 상 가정지 증 집역
의미
신사원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八卦·五行·十二方位를 그림纸上그려 주자 이를 보물처럼袋子에 넣고 평생 간직했다는 일화와, 아버지南遷에 따라左右에서孝養하며岛人들로부터孝子라는 평가를 받은 점을 서술한다. 우의정 조도빈의奏言으로皇上이嘉納하여 執義를 증직한 인물 기행이다.
원문
字靜汝平山人大司成敏一玄孫忠景公銋子五歲時其父手畫八卦書五行十二方位於小紙以與之愛玩恐遺失藏佩囊至老而猶如新右議政趙道彬白上言故判官申思遠隨父南遷左右將護須臾不離島人無不感歎皆稱申孝子宜有褒典上嘉之贈執義
엔티티 후보
- person: 신사원 / 申思遠, confidence=1.0
- person: 신정여 / 申靜汝, confidence=1.0
- person: 민일 / 敏一, confidence=1.0
- person: 충경공 염 / 忠景公銋, confidence=0.95
- person: 조도빈 / 趙道彬, confidence=1.0
- place: 평산 / 平山, confidence=0.9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1.0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집역 / 執義, confidence=1.0
- term: 襃典,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영조조)조정순
- 기사 ID:
B9C^2_003_083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3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03:15.32016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38
한글 번역
자의는 성지이고 임천 출신이다. 승지 희진의 증손이다. 경묘년에 진사가 되었고 정미년에 익산군수로 부임하여 문과에 급제했다. 시평이 되어 매일 대에 나아가 동료 벼슬아치들과 함께 부대론을 논하고, 그 무렵 경연에 올라 힘써 간언하면서 5개 조항의 상소를 올려 군덕과 시무를 아뢰었다. 그 글이 수만 자에 달했다. 얼마 되지 않아 시국이 크게 변하자 조정순도 관직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그는 연천 석곡의 선영 아래에 정자를 하나 짓고 서수라고 편액을 달아 본질로 돌아가는다는 의미를 나타냈다. 아들 明鼎이 두 번이나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이 판서에 이르렀다.
독음
字는 성지요, 林川人입니다. 承旨 희진의 曾孫입니다. 庚寅年에 進士가 되고, 丁未年에 益山郡守로 文科에 급제하여 持平이 되어 날마다 台에 나아가 同僚諸官과 함께 復大論을 논의하고, 그 사이 筵에 올라 請益하기를 力行하며 上에게 五條疏를 올려 君德과 時務를 진술했으니, 글자가 수만이나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국이 크게 변하자 公도 또한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가니, 漣川 石谷 先墓 아래에 一개의 정자를 세우고 霜水라扁額을 달았으니, 돌아가는 本의 의미를 나타낸 것입니다. 一男 明鼎이 再中하여 文科에 합격하고, 관직이 判書에 이르렀습니다.
의미
이 기사는 조선 영조조 문신 조정순의的行蹟을 기록한 것이다. 조정순은 익산군수로 재임 중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가 된 뒤 시평으로서 대에 나아가 동료 벼슬아치들과 부대론을 논의하고, 경연에서 5개 조항의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내려놓고 연천 석곡의 선영 아래에 정자를 짓고 서수라 편액을 달았다. 아들 明鼎도 문과에 두 번 합격하여 판서가 되었다. 조정순의 급제는 정미년에 이루어졌으며, 그의 증조 할아버지는 승지 희진이다.
원문
字誠之林川人承旨希進曾孫庚寅進士丁未以益山郡守登文科爲持平日詣臺同諸僚申討復大論間登筵請益力上五條疏陳君德時務幾萬言未幾時事大變公亦罷歸漣川之石谷先墓下搆一亭扁以霜水以寓返本之義一男明鼎再中文科官至判書[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정순 / 趙正純, confidence=1.0
- person: 조희진 / 趙希進, confidence=1.0
- person: 조명정 / 趙明鼎, confidence=1.0
- place: 임천 / 林川, confidence=1.0
- place: 연천 / 漣川, confidence=1.0
- place: 익산 / 益山, confidence=1.0
- place: 석곡 / 石谷, confidence=0.9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office: 시평 / 持平,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부대론 / 復大論, confidence=0.8
- term: 오조소 / 五條疏, confidence=0.9
- term: 반본 / 返本,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持平日詣臺同諸僚申討復大論間登筵請益力上五條疏陳君德時務幾萬言 未幾時事大變 公亦罷歸
- 석곡의 정확한 위치와 서수(霜水) 편액의 유래, 부대론 논쟁의 구체적 내용
(영조조)이기진
- 기사 ID:
B9C^2_003_083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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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39
한글 번역
글자는 군범이고 호는 목곡이다. 덕수 사람으로 문정공 이식의 증손이다. 현감 이래자의 出系로서 백부 부사 이번의 문하에 있다가 이후 권수암(권상하) 문하에서 수암(권상하)이 그가 의지할 만하다고 자주 칭찬하였다. 정유년에 进士科와 文科에 연속으로 합격하여 즉시 한원에荐擧되었고, 관직이 이조 판서에 이르렀다. 갑술년에 숙조조의 시종으로서 숭록階로 进하였다. 여름에 어머니 부인을 여읜 상을 당하여 어릴 적처럼 깊이 슬퍼하였다. 다음 해 지평의 선조 묘소에 이르러 날마다 반드시 무덤을 살피고 울음에서는 반드시 깊은 애도를 다하였다. 결국 이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다.
독음
자유 군범 호 목곡 덕수인 문정공 식의 증손 현감 랭자 출계하여 백부 부사 번의 문하에 나아가 권수암 상하의 문하에서 수암이 자주 뛰어나다고 칭찬하였다. 정유년에 进士科文科에 연속으로 합격하여 한원에荐舉되었으며, 관직이 이조 판서에 이르렀다. 갑술년에 숙조조의 시종으로서 숭록에 进하였다. 여름에 어머니 부인을 여읜 상을 당하여 어릴 적처럼 슬퍼하였다. 다음 해 지평의 선묘에 나아가 날마다 반드시 무덤을 돌보고 울음에서는 반드시 깊은 애도를 다하였다. 결국 이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의미
영조조 이기진은 덕수 출신으로 문정공 이식의 증손이다. 정유년에 进士科文科에 연속 합격하여 한원에荐擧된 뒤 수암 권상하의 눈에 띈 인재였다. 이후 이조 판서까지 승진하였고, 갑술년에 숙조조 시종으로 숭록階를 받았다. 어머니 부음을 당한 뒤 지평의 선조 묘소를 찾아 날마다 무덤을 돌보며 깊이 애도하였고, 결국 그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다. 효성과 문학才을 모두 갖춘 인물로 기려되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字君範號牧谷德水人文靖公植曾孫縣監簹子出系伯父府使蕃後游權遂菴尙夏門下遂菴亟稱爲可仗丁酉連中進士文科卽薦翰苑官至吏曹判書甲戌以肅廟朝侍從進崇祿夏遭母夫人喪致哀如少時明年就砥平先墓下日必展墓哭必盡哀竟以是卒[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기진 / 李箕鎭, confidence=0.95
- person: 이식 / 植, confidence=0.9
- person: 이번 / 蕃, confidence=0.85
- person: 권상하 / 權尙夏, confidence=0.9
- place: 덕수 / 德水, confidence=0.95
- place: 지평 / 砥平, confidence=0.8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한원 / 翰苑, confidence=0.9
- office: 숭록 / 崇祿, confidence=0.95
- term: 자(글자) / 字, confidence=0.95
- term: 호 / 號, confidence=0.95
- term: 증손 / 曾孫, confidence=0.95
- term: 출계 / 出系, confidence=0.8
- term: 연중 / 連中, confidence=0.8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
- term: 모부인상(어머니 부음) / 母夫人喪,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영조조)김상옥
- 기사 ID:
B9C^2_003_084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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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7:28:46.92178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42
한글 번역
자(表字)는 언장이고 호는 서와이며, 연안 사람이다. 좌참찬 여리지(汝知)의 후손이다. 아버지 김호가 숙종 때 장령으로 있으면서 감언을 꺼리지 아니하고直言不諱하였으므로, 특히 고비(皐比)를 하사하여 이를 권장하였다. 상옥이 나이가 27세 되던 해에 열성文科에서 장원이 되었다. 입조한 후 발언과 논의는 오로지公平을 근본으로 하였고, 장주와 연대에서도 반드시 正君心에 힘을 쏟았다. 항상 이렇게 말하기를, 징계와 토벌이 늦어지면 의리가 분명하지 않고 나라의 큰 방향이 안정되지 못하니, 아마도 그 사소하고 먼 곳을 잊은 채 오히려 그 책임을 몸소 지겠다고 하였다. 무신년(戊申, 1728) 난란이 일어나자 상옥은 교외로 물러가 살았다가 변고를 듣고 그날 즉시 입조하여 도승지에 오르고, 팔대(八對)에서 당평의过失를 간언하자 임금이 크게 노하여 명으로 영암에 유배시켰다. 얼마 되지 않아 관용으로 돌려보내고 대사헌에 이르렀다.
독음
자언장호서와연안인좌참찬여지지지가부호사숙종이장령감언불훼특차고비이장지지상옥년이십칠탁열성문과장원입조언의일주공평이장주연대우필귀중어양군심매위징토환즉의리불명국시미정태장망기어신임기책임무신난란상옥병거교외문변즉일입조배도승지팔대극언당평지실상진노명산영암미기우환대대사헌
의미
조선 영조조 명신 김상옥의 전기이다. 그의 아버지 김호가 숙종 때 장령으로直言不諱한 공로로 특赐 고비를 받았다. 상옥은 27세에 열성文科에서 장원하여 입조하였으며, 평생 발언과 논의에서公平을 근본으로 하고 正君心에 힘썼다. 그는 징계와 토벌의 지체를 경계하며 나라의 의리와 국시를 힘써 바로잡으려 하였다. 무신년(1728) 난란이 일어나자 도승지에 오르고 당평의过失를 간언하다가 영암에 유배되었다가 곧 석방되어 대사헌에 이르렀다. 그의 清直한 직언과 敢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字彥章號疏窩延安人左參贊汝知之後父灝事肅宗以掌令敢言不諱特賜皐比以奬之相玉年二十七擢謁聖文科壯元立朝言議一主公平而章奏筵對又必歸重於正君心每謂懲討緩則義理不明國是靡定殆將忘其疏逖而身任其責戊申逆亂相玉屛居郊外聞變卽日入朝拜都承旨八對極言蕩平之失上震怒命竄靈巖未幾宥還至大司憲[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상옥 / 金相玉, confidence=0.95
- person: 김호 / 金灝, confidence=0.9
- person: 여리지 / 汝知, confidence=0.85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0.9
- place: 영암 / 靈巖, confidence=0.9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0.95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0.95
- office: 도승지 / 都承旨, confidence=0.95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0.95
- term: 고비 / 皐比, confidence=0.85
- term: 당평 / 蕩平, confidence=0.9
- term: 열성문과 / 謁聖文科, confidence=0.9
- term: 장원 / 壯元, confidence=0.9
- term: 정군심 / 正君心, confidence=0.85
- term: 팔대 / 八對, confidence=0.85
- term: 무신난란 / 戊申逆亂,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皐比(고비) - 구체적 물건이나 의미가 불분명하나 장령 직에 대한 특赐之物로 추정
(영조조)김석범
- 기사 ID:
B9C^2_003_084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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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47:59.0354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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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여추이고 안산 사람이다. 위정공 정경의 후손으로, 참판 성대의 손자이다. 타고난 품성이 호방하고 용맹하여 어릴 때부터 소를 잡아 먹는 기개가 있었다. 어버이를 대하는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와 우애하였다. 일찍 붓을 내려놓고 무예에 종사하였다. 을축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에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는 병에 걸리자, 이내 벼슬에 뜻을 버리고 농사와 낚시를 오히려 기쁨으로 삼았다. 아들 상두가 무과에 급제하여 수사가 되었다.
독음
자여추 안산인 위정공 정경지후 참판 성대지손 천자호탕 자유유식우기 사친극성 여곤제우제 조투필업무 을축무과 우병예 수절의사환 경조이위락 유자상두무과 수사
의미
조선 영조 시대 안산 출신의 무과 급제자 김석범의 행적을 적은 기사이다. 그가 무과에 합격했으나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며 즐겁게 살았고, 아들 상두도 무과에 합격하여 수군절도사에 오른 것을 기록하였다.
원문
字汝疇安山人威靖公定卿之後參判聲大之孫天姿豪宕自幼有食牛氣事親極誠與昆弟友悌早投筆業武丙辰武科偶病聵遂絶意仕宦耕釣以爲樂有子相斗武科水使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석범 / 金錫範, confidence=1.0
- person: 여추 / 汝疇, confidence=1.0
- person: 성대 / 聲大, confidence=1.0
- person: 상두 / 相斗, confidence=1.0
- person: 정경 / 定卿, confidence=1.0
- place: 안산 / 安山,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office: 수사 / 水使, confidence=1.0
- term: 위정공 / 威靖公, confidence=1.0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term: 을축 / 丙辰, confidence=1.0
- term: 예 / 聵, confidence=1.0
(영조조)김도영
- 기사 ID:
B9C^2_003_084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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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호는 자유, 청풍의 사람으로서 공조 판서를 지냈다. 아들 석연은 좌윤 석익의 뒤를 이어 다른 가문의 후사로 나갔다. 어려서부터 총후하고 어른처럼 무거웠으며, 기묘년(1759년?)에 진사가 되었다. 심택현과 함께 공부할 적에 항상 그의 글과 서예가 아름답고 뛰어지어 미치지 못할 정도라고 칭찬하였다.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요절하여 두 아들을 남겼다. 둘째 아들 성하는 부윤이 되었고, 장남 성응은 병조 판서를 지냈다.
독음
자 자유 청풍인 공조 판서 석연자 출계 좌윤 석익 이후 유중후 여노성인 기묘 진사 심택현 시 여 동연 매칭 사한遒美 불가급년 仅 삼십 이殀有二男 성하 부사 성응 병조 판서 [주: 상동]
의미
영조조 관료 김도영의 인물사로, 자호 자유, 청풍 출신으로 공조 판서를 역임했다. 어려서부터 총후한 성품이었으며, 학友 심택현으로부터 글과 서예를 칭찬받았다. 서른 살에 요절하여 두 아들만 남겼는데, 둘째 성하는 부윤이, 장남 성응은 병조 판서가 되었다.
원문
字子游淸風人工曹判書錫衍子出繼左尹錫翼之后幼重厚如老成人己卯進士沈宅賢時與同硏每稱詞翰遒美不可及年僅三十而殀有二男聖廈府使聖應兵曹判書[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도영 / 金道泳, confidence=0.95
- person: 자유 / 子游, confidence=0.95
- person: 석연 / 錫衍, confidence=0.9
- person: 석익 / 錫翼, confidence=0.9
- person: 심택현 / 沈宅賢, confidence=0.9
- person: 성하 / 聖廈, confidence=0.85
- person: 성응 / 聖應, confidence=0.85
- office: 공조 판서 / 工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병조 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좌윤 / 左尹, confidence=0.9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85
- place: 청풍 / 淸風, confidence=0.8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출계 / 出繼,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淸風人의 해석 (출신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이나 정확한 지역 명칭으로의 대응 불확실)
- 殀의 정확한 의미 (사망이나 조기 사망을 의미하나 원문에서의 구체적 경위 미상)
(영조조)이상정
- 기사 ID:
B9C^2_003_084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4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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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01:22.69571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46
한글 번역
자(字)는 경문이고 호는 대산이며 한산인이다. 수은(睡隱) 홍조(弘祚)의 현손(玄孫)이다. 밀암(密菴) 이재(李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을묘년(乙卯年)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문과(文科)에 편입하였다.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역임하고 안동(安東)에서 도를 강론하였다. 학자들이 그를 따랐다. 대석산(大夕山) 아래에 거처하였으므로 이에 대서당(大山書堂)이라 편액하였다. 늘 말씀하기를,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바른 본성을 사람은 받아 가지고 태어나는데, 만약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살다면 사람도 또한 하늘이 된다고 하였다. 일흔한 살에 졸하였다.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은 완(埦)이고 자는 치도(致度)이며 문과 교리(校理)를 역임하였다. 아우 광정(光靖)의 자는 휴문(休文)이고 호는 소산(小山)이며, 경술(經術)을 천거받았다. 관직에 올라 별제(別提)에 이르렀다.
독음
자경문호대산한산인수은홍조현손수업어밀암이재之门을묘진사문과형조참의강도어안동학자종지거대석산하고편왈대산서당상왈천이지종인수지생약순천리인역천야년칠십일졸유일남완자치지도문과교리제광정자휴문호소산경술천관지별제
의미
조선 영조 시대 유학자 이상정의 전기이다. 한산인인 그는 밀암 이재의 문인으로서 을묘년 진사에 급제하고 문과에 진출하여 형조참의까지 역임하였다. 안동에서 도를 강학하여 학자들의 스승이 되었고, 대석산 아래 거처를 대서당이라 편액하였다.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하늘의 이치에 따라 잘 기르면 사람도 하늘의境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을 표현하였다. 71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 이완은 문과 교리가 되었고 아우 이광정은 호가 소산으로 별제에 이르렀다.
원문
字景文號大山韓山人睡隱弘祚玄孫受業于密菴李栽之門乙卯進士文科刑曹參議講道于安東學者從之居大夕山下故扁曰大山書堂嘗曰天之降衷人受之生若循天理人亦天也年七十一卒有一男埦字致度文科校理弟光靖字休文號小山經術薦官至別提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상정 / 李象靖, confidence=1.0
- person: 이재 / 李栽, confidence=1.0
- person: 홍조 / 弘祚, confidence=1.0
- person: 완 / 埦, confidence=1.0
- person: 광정 / 光靖,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place: 대석산 / 大夕山, confidence=1.0
- work: 대서당 / 大山書堂, confidence=1.0
- office: 형조참의 / 刑曹參議,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별제 / 別提, confidence=1.0
- term: 수은 / 睡隱, confidence=1.0
- term: 현손 / 玄孫, confidence=1.0
- term: 천리 / 天理, confidence=1.0
(영조조)김시찬
- 기사 ID:
B9C^2_003_084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4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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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04:34.60119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47
한글 번역
자의는 치명, 호는 초천, 안동 출신이다. 아버지는 좌랑 김성도이고, 진사와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을 역임했다. 사망 후 증직으로 리조판서를赠했으며, 시호는 충정이다.
독음
자치명호초천안동인좌랑성도자진사문과부제학증리조판서시충정
의미
김시찬은 조선 영조 시대의 문관으로, 안동 김씨 출신이며 진사와 문과에 합격하여 부제학에 올랐다. 사후에 리조판서로 증직되고 충정 시호를 받았다. 아버지 김성도는 좌랑이었다.
원문
字穉明號苕川安東人佐郞盛道子進士文科副提學贈吏曹判書諡忠正[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시찬 / 金時粲, confidence=1.0
- person: 김성도 / 金盛道,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东, confidence=1.0
- office: 좌랑 / 佐郞,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리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佐郞盛道子 중 子字가 ‘아들’인지 직함이 정확한지
(영조조)이병상
- 기사 ID:
B9C^2_003_084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4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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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01:29.61236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48
한글 번역
이병상의 자는 여오이고 한산 출신으로, 참판 정구의 손자이다. 을유년에 생원으로 장원을 했으며, 숙종 신묘년의 문과에 급제한 뒤 대제학에 이르렀고, 관직은 행리조판서에 이르렀으며, 기사에致仕하고 졸서는 문청이다. 백부 이택은 자가 광종이고 호는 운곡이며 문과 감시 벼슬을 했다. 이병상은 영조조 사람이다. [주: 국조방목] 이병태는 자가 유안이고 한산 출신으로, 군수 정의정의의 손자이다. 을미년에 생원이 되었고, 숙종 계묘년의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에 올랐으며, 출임하여 감서군수로 나가 관에서 졸하였다. 청백한 군인으로 추모받아 사당을 세웠다. [주:同上] 이태중은 자가 자삼이고, 참봉 이 법무의 아들이며, 이병상의 종제이다. 진사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고, 호는 삼산이다. [주:同上]
독음
자여오 한산인 삼판정규손 을유생원 장원 숙종신묘문과 대제학 관至형리조판서 기사치서 시문청 백부택 자광종 호운곡 문과감시 이병태 자유안 한산인 군수정규손 을미생원 숙종계묘문과 부제학 출보감서군수 졸관청백군인립사 이태중 자자삼 참봉 법무 아전 이병상 종제 진사문과 관至판서 호삼산
의미
영조조 한산 이씨 이병상의 인물経歴와 그 일가에 관한 기록이다. 이병상은 을유생원, 숙종 신묘문과 장원으로 대제학, 행리조판서까지 벼슬한 뒤 기사에致仕하여 문청의 시호를 받았다. 백부 이병태는 부제학으로 출임하여 감서군수에서 졸했으며, 청백한 관리로 사당에 제향되었다. 종제 이태중은 진사문과에 합격하여 판서에 이르렀으며 호는 삼산이었다. 세 사람 모두 한산 이씨 출신으로, 문과 진사 등 출신 배경과 관료 경력, 인물 관계를 알 수 있다.
원문
字汝五韓山人參判廷夔孫乙酉生員壯元肅宗辛卯文科大提學官至行吏曹判書人耆社致仕諡文淸叔父澤字光仲號雲谷文科監司[주:國朝榜目]李秉泰字幼安韓山人郡守廷龍孫乙未生員肅宗癸卯文科副提學出補陜川郡守卒于官以淸白郡人立祠[주:同上]李台重字子三參奉秉哲子秉常從侄進士文科官至判書號三山[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병상 / 李秉常, confidence=0.95
- person: 이병태 / 李秉泰, confidence=0.95
- person: 이태중 / 李台重, confidence=0.95
- person: 이 법무 / 李秉哲, confidence=0.9
- person: 이택 / 李澤, confidence=0.9
- person: 정구 / 廷夔, confidence=0.85
- person: 정규 / 廷龍, confidence=0.85
- place: 한산 / 韓山, confidence=0.95
- place: 감서 / 陜川, confidence=0.9
- office: 삼판 / 參判, confidence=0.85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0.9
- office: 리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0.9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
- office: 감시 / 監司, confidence=0.9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85
- term: 장원 / 壯元, confidence=0.9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0.85
- term: 치서 / 致仕, confidence=0.8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
- term: 청백군인립사 / 清白郡人立祠,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官至行吏曹判書의 정확한 직급 해명과品階
- 出補陜川郡守卒于官의補字 의미와 사망 경위
(영조조)안윤행
- 기사 ID:
B9C^2_003_084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4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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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7:29:35.28736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49
한글 번역
자(字)는 성지(性之)이고, 죽산(竹山) 사람이다. 아버지는 상원(相元)이다. 정유년(丁酉年)에 태어났으며, 생원(生員)에 합격하였다. 경신년(庚申年)에 문과(文科)에 합격하였다.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내고,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독음
자성치지산인목사상원자정유생원경신문과반돈녕부사시호충헌
의미
조선 영조시대의 관료 安允行의 행적이다. 충청남도 예산군 죽산면 출신으로, 아버지 安相元의 아들이다. 정유년에 출생하여 생원에 합격하고, 이후 경신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벼슬은 판돈녕부사에 이르렀으며, 죽 후 시호로 충헌을 받았다. ‘국조방목(國朝榜目)’이라는 주를 통해 이 기록이 조선조 과거방목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문
字性之竹山人牧使相元子丁酉生員庚申文科判敦寧府事諡忠憲[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윤행 / 安允行, confidence=0.97
- person: 안상원 / 安相元, confidence=0.92
- place: 죽산 / 竹山, confidence=0.94
- office: 판돈녕부사 / 判敦寧府事, confidence=0.93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0.9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6
불확실한 어휘
- 相元子의 해석이 ‘상원의 아들’인지 ‘상원이라는 이름의 아들’인지 문맥상 유력하나 문과방목의 관례상 확인 필요
(영조조)한원진
- 기사 ID:
B9C^2_003_085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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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48:15.95175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52
한글 번역
한원진은 글자를 덕조,호를 남塘이라 하고 청주 사람이다. 현감 한여익의 손자이다. 한수재 권상하에게 수학하였다. 학문은 먼저 상달(성圣)에 이르기를 도모하였으므로, 남塘의 문하에 드나든 자는 비록 후진인 소생이라도 모두 태극오행에 통달하였다. 원진이 일찍 그 형 계진과 아우에게 말하기를, 인생은 재품에 따라 진업해야 하니 원하노니 형은 과문에 힘을 써서 과제(科第)를 차지하고, 아우야는 농사나 경영하여 산업을 일으키라. 나는 곧 성리학에 뜻을 두겠다 하였다. 형은 뒤에,果然文科에 오르고, 아우도 재산을 넉넉히 가졌다. 원진은 유일(遺逸)로 등용되었고, 모두 그 말과 같았다. 원진은 벼슬이 집의에 이르렀고, 정묘조(영조조)에 학행으로 판서를 증직하고 시호를 문순이라 하였다. [주: 화해집편] 계진은 글자를 계명, 숙종 기해년에文科에 오르고, 승지에 이르렀다. 계진의 아들 후락은 글자를希文, 임오년에文科에 오르고 검역이 되었다. 무술년에 아우의 사연으로 유배되었다. 후락의 아우 후익은 글자를敬而, 경인년에文科에 오르고 정언이 되었다. 정묘조에 상서하여 오직 상궁을 공격하기를, 기회는 지나갔으나 기심은 아직 남아 있다 하였다. 무술년에 복诛되었다. [주: 국조방목]
독음
자덕조호남당 청주인 현감여익손 수업위 한수재 권상하 학문선상단고 유남당지문자雖後진소생 무불융회위 태극오행 원진 당어어기형 계진급제별왈 인생당수재품이진업 원형兄공과문점과제 제해명농치산업 아측당지위성리지학 형후과등문과 제부饶재산 원진이유일진다고언 原震관지집의 정묘조이학행증판서 시문순 [주: 화해집편] 계진자사업 숙종기해문과 승지 계진자후락자희문 임오문과 검열 무술서제형도후락제형후익자경이 경인문과 정언 정묘조상서전문공상궁왈 기계지난 기계심상존 무술복철 [주: 국조방목]
의미
한원진은 청주 출신으로 권상하에게 수학하여 남塘이라는호를 얻었다. 태극오행 등 성리학에 정통하여 문하 후진들이 모두 그 학문에게 통달하였다. 어려서부터 형과 아우에게 인생 목표를 나누어, 형은 과문에 종사하고 아우는 농상을 경영하며, 자신은 성리학에 뜻을 두겠다고 하였다. 형제 모두 그대로成就되어, 원진은 유일로 등용되어 집의에 이르렀고, 영조대에 학행으로 증직되었다. 형 계진은文科에 합격하여 승지가 되었고, 아들 후락은 검역이 되었다가 무술년에 아우의牵连으로 유배되었다. 아우 후익은文科에 합격하여 정언이 되었다가 상궁을 비판하는 상서를 올렸다가 무술년에 처형되었다.
원문
字德昭號南塘淸州人縣監如益孫受業于寒水齋權尙夏學問先上達故游南塘之門者雖後進小生無不融會於太極五行元震嘗語其兄啓震及弟曰人生當隨才稟而進業願兄攻科文占科第季兮明農治產業我則當志於性理之學兄後果登文科季饒財產元震以遺逸進皆如其言元震官至執義正廟朝以學行贈判書諡文純[주:華海彙編]啓震字季明肅宗己亥文科承旨啓震子後樂字希文壬午文科檢閱戊戌坐弟島配後樂弟後翼字敬而庚寅文科正言正廟朝上疏專攻上躬曰機事已過機心尙存戊戌伏誅[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한원진 / 韓元震, confidence=0.95
- person: 권상하 / 權尙夏, confidence=0.95
- person: 여익 / 如益, confidence=0.9
- person: 계진 / 啓震, confidence=0.95
- person: 후락 / 後樂, confidence=0.9
- person: 후익 / 後翼, confidence=0.9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0.95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0.95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office: 검역 / 檢閱, confidence=0.95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5
- work: 화해집편 / 華海彙編, confidence=0.8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5
- term: 태극오행 / 太極五行, confidence=0.9
- term: 유일 / 遺逸, confidence=0.9
- term: 성리학 / 性理之學,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영조조)림상덕
- 기사 ID:
B9C^2_003_085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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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48:47.68020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55
한글 번역
임상덕의 자는 윤보이고, 또 다른 자는 이호이며, 호는 노촌이다. 출신은 이주인으로서, 판서 단의 증손이고, 도사 세공의 아들이다. 준수한 재능이 있었고, 기묘년(1755년)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을유년(1765년)에 문과 장원에 합격하여 이조 정랑을 역임하였다. 「동사회강」을 저술하였다. 아우 상극은 무신란(1738년)에 죽었고, 재종 아우 상원은 자가 언춘이며 진사에 합격하여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역임하였다.
독음
자윤보일자이호호노촌이주인반서단증손도사세공자유준재기묘진사을유문과장원리조정랑저동사회강제상극사무신란재종제상원자언춘진사문과승지주상동
의미
英祖代 인물 林象德의 약전이다. 1755년 진사, 1765년 문과 장원에 합격하여 이조 정랑을 지냈으며, 「동사회강」을 저술하였다. 아우 임상극은 무신란(1738년)에 전사하였다. 재종 아우 임상원은 진사 합격 후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역임하였다.「象」은 임상의 한자음.
원문
字潤甫一字彝好號老村罹州人判書墰曾孫都事世恭子有俊才己卯進士乙酉文科壯元吏曹正郞著東史會綱弟象極死戊申亂再從弟象元字彥春進士文科承旨[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임상덕 / 林象德, confidence=1.0
- person: 임상극 / 林象極, confidence=1.0
- person: 임상원 / 林象元, confidence=1.0
- person: 세공 / 世恭, confidence=1.0
- place: 이주 / 罹州, confidence=0.5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도사 / 都事, confidence=1.0
- office: 이조정랑 / 吏曹正郞,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work: 동사회강 / 東史會綱, confidence=1.0
- term: 자(个字) / 字, confidence=1.0
- term: 호(별호) / 號, confidence=1.0
- term: 문과장원 / 文科壯元, confidence=1.0
- term: 재종제 / 再從弟, confidence=0.9
- term: 무신란 / 戊申亂,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罹州(지명, 확인 필요)
- 墰(판서 단의 이름으로 추정되나 불확실)
(영조조)민우수
- 기사 ID:
B9C^2_003_085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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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07:42.89585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57
한글 번역
자(字)는 사원, 호(號)는 선촌, 다시 호는 정암, 여흥 사람. 아버지는 지재 진후. 농암 김창협에게 수업을 받었고, 만년에 여주 江上에서 도를 강의하였다. 유일로 여러 번 천거되었으나 일어나지 않았으며, 관직은 대사헌에 이르렀고, 시호는 文元이다. 김원행, 자는伯春, 호는 미호, 다시 호는 운루, 안동 사람, 농암 김창협의 손자이다. 유일로 관직에 이르러 찬선에 이르렀다. 김양행, 호는 지암, 안동 사람, 선촌闵遇洙에게 수업을 받아 유일로 관직에 이르러 찬선에 이르렀고, 시호는 文元이다. 송능상, 자는士能, 호는 운평, 은진 사람, 남당 한원진의 문하에서 수업을 받아 유일로 관직에 이르러 장령에 이르렀다.
독음
자 사원 호 선촌 우호 정암 여흥인 지재진후자 수업어농암김창협 만년강도어여주강상 이유일려정불기 관至대사헌 시문원 김원행 자백춘 호 미호 우호 운루 안동인 농암창협지손 이유일관至찬선 김양행 호 지암 안동인 수업어선촌민우수 이유일관至찬선 시문원 송능상 자사능 호 운평 은진인 수업어남당한원진지문 이유일관至장령
의미
영조조 유학자 세 명의 전기.闵遇洙는 여흥 출신으로 농암 김창협에게 배워 여주강상에서 강의하였고, 천거를 여러 번 거절하였으나 대사헌에 이르렀다. 김원행은 安東의 농암 손자로 유일 벼슬이 찬선에 이르렀고, 김양행은 安동 사람으로闵遇洙에게 수업하여 역시 찬선에 이르렀다. 송능상은 은진 사람으로 한원진 문하에서 수학하여 장령에 이르렀다. 세 사람 모두 유일(遺逸) 칭호를 받고 관직에 진출한 인물이다.
원문
字士元號蟾村又號貞菴驪興人趾齋鎭厚子受業于農岩金昌協晚年講道于驪州江上以遺逸屢徵不起官至大司憲諡文元[주:文獻錄]金元行字伯春號渼湖又號雲樓安東人農岩昌協之孫以遺逸官至贊善金亮行號止菴安東人受業于蟾村閔遇洙以遺逸官至贊善諡文元[주:同上]宋能相字士能號雲坪恩津人受業于南塘韓元震之門以遺逸官至掌令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우수 / 閔遇洙, confidence=0.95
- person: 김창협 / 金昌協, confidence=0.95
- person: 김원행 / 金元行, confidence=0.95
- person: 김양행 / 金亮行, confidence=0.95
- person: 송능상 / 宋能相, confidence=0.95
- person: 한원진 / 韓元震, confidence=0.95
- place: 여흥 / 驪興, confidence=0.9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5
- place: 은진 / 恩津, confidence=0.9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office: 찬선 / 贊善, confidence=0.95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0.95
- term: 유일 / 遺逸, confidence=0.85
- work: 문헌록 / 文獻錄,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趾齋(지재) - 호로 볼 수 있는지 불확실, 鎭厚子(진후자) - 인명인지 호칭인지 명확하지 않음
(영조조)송덕상
- 기사 ID:
B9C^2_003_085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5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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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21:49:11.73367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58
한글 번역
교관(敎官)으로서 무원자(婺源子)이고, 은진(恩津) 출신으로 문정공(文正公) 목시열(時烈)의 현손(玄孫)이다. 유관(遺官)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다. 임인년에 연회(筵會)에 나아가 어떤 연유로 사사(賜死)되었다. 덕상의 형 수상(述相)은 사평(司評)이었다. 수상 아들 환억(煥億)의 자(字)는 대년(大年)이고, 신묘년에 문과(文科)에 합격하여 부윤(府尹)에 이르렀다. 임인년에 덕상의 조카로서 도(島)에 유배되었다. [주:국조 방목]
독음
교관무원자은진인문정공시열현손以来的관리지조판서임인등연이모양저이유사사덕상형술상사평술상자환억자대년신묘문과부윤임인이다덕상졸도배
의미
조선 영조대에 인물 宋德相은 교육관 출신으로 문정공 목시열의 4대손으로서 유관 보직에서 이조 판서까지 승진하였으나, 임인년에 연회 자리에서 어떤 죄명으로 사사되었다. 그의 형 宋述相은 사평 벼슬을 했고, 그 아들 宋煥億는 신묘년 문과 급제하여 부윤에 이르렀다. 宋煥億 역시 임인년에 숙부 宋德相의 연좌로 도섬에 유배되었다. 국조 방목에 기록된 인물 관련 사항이다.
원문
敎官婺源子恩津人文正公時烈玄孫以遺逸官至吏曹判書壬寅登筵以某樣底道理賜死德相兄述相司評述相子煥億字大年辛卯文科府尹壬寅以德相侄島配[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송덕상 / 宋德相, confidence=0.98
- person: 무원자 / 婺源子, confidence=0.85
- person: 목시열 / 時烈, confidence=0.92
- person: 송술상 / 宋述相, confidence=0.97
- person: 송환억 / 宋煥億, confidence=0.97
- place: 은진 / 恩津, confidence=0.95
- place: 도 / 島, confidence=0.8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교관 / 敎官, confidence=0.88
- office: 사평 / 司評, confidence=0.88
- office: 부윤 / 府尹, confidence=0.95
- term: 유관 / 遺逸官, confidence=0.82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6
- term: 사사 / 賜死, confidence=0.93
- term: 현손 / 玄孫, confidence=0.92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婺源子는 호칭으로 보이나 교육관 내 직호와의 관계가 불분명
- 島配의 구체적 도명(島名) 미상
- 임인년의 정확한 서기 연도(1729년 또는 1789년) 미확정
- 모양저道理의 구체적 죄명 내용 미상
(영조조)유언술
- 기사 ID:
B9C^2_003_085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5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08:28.95760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59
한글 번역
자(字)는 계지고 호는 송호이다. 기계 사람으로서 부윤에 임명되었다. 손자 중 한 명을 특출하게 하여 기유년에 진사에 합격시켰고, 을묘년 무과文科에 합격하여 양사兩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한 뒤, 知中樞府事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학식이 넓고 기억력이 비상하여 송호집이 세상에 유통되었다. 시호는靖憲靖憲이다. (주: 위와 같다) 증손자 成煥은 호가 봉棲이고, 縣監縣監에 이르렀다. 문장과 학행으로 이름났다.
독음
글자는 계지요 호는 송호이다. 기계 사람이다. 부윤이 되고, 손 중에 한 명을 명하여 기유 연간에 진사 합격시켰다. 을묘년 무과는 문과에 합격하여 두 관서를 두루 역임하고, 관至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박학강기하여 송호집이 세상에流传하였다. 시호는 정헌이다. 위와 같다. 증손자 윤환이 호는 봉栖이며, 관至縣監에 이르렀다. 문장學行으로著名하였다.
의미
조선 영조 시대 인물 유언술에 대한 기록이다. 字는 계지, 호는 松湖이며 기계出身으로 부윤을 지냈다. 손자 한 명을 기유년에 진사로 합격시키고, 본인은 을묘년文科에 합격하여 양사를 두루 역임한 뒤 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박학강기하여 송호集을著述하고 시호는靖憲靖憲이다. 증손자 成煥은 호가 鳳棲이고 縣監에 이르렀으며, 문장과 학행으로知名声을 얻었다.
원문
字繼之號松湖杞溪人府尹命一孫己酉進士丙辰文科歷兩司官至知中樞府事博學強記有松湖集行于世諡靖憲[주:同上]曾孫莘煥號鳳棲官至縣監以文章學行著名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언술 / 兪彥述, confidence=1.0
- person: 계지 / 繼之, confidence=1.0
- person: 송호 / 松湖, confidence=1.0
- place: 기계 / 杞溪, confidence=1.0
- office: 부윤 / 府尹, confidence=1.0
- office: 양사 / 兩司, confidence=1.0
- office: 지중추부사 / 知中樞府事, confidence=1.0
- work: 송호집 / 松湖集, confidence=1.0
- term: 정헌 / 靖憲, confidence=1.0
- person: 윤환 / 莘煥, confidence=0.9
- person: 봉서 / 鳳棲,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鳳棲는 봉서 또는 봉栖로 읽을 수 있으나, ‘鳳棲’는 봉서(봉새가 머무름)가 자연스러운 현대 한국어 독음이다
- 命一孫은 ‘한 손자를 임명(특출)시켰다’는 의미로, 해당 孙(손자)의 구체적 인명이 명시되지 않아 해석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영조조)이현급
- 기사 ID:
B9C^2_003_086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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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가 우정이며, 광주인으로서 부사 성지의 아들이었다. 을축(1725)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문과 벼슬이佐郞에 이르렀으며, 공령(功令)으로 유명해졌다. 임오(1762)년에 형의 죄로 인하여 유배되어 죽었고, 아우 현섭은 자가 설천이며, 기묘(1759)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가 임오(1762)년에 사형당하였다.
독음
자 우정 광주인 부사 성지도 을축 진사 문과 관至佐랑 공령으로 유명하니 임오에 형의 죄로 견줘 죽으니 아우 현섭 자 설천 기묘 문과 승문원 정자 임오에 복주
의미
이 기문은 영조조 시대 광주 출신 인물 이현급과 그 아우 이현섭에 대한 기록이다. 이현급은 을축년에 진사 합격 후 문과 벼슬이佐郞에 이르렀고 공령으로 유명해졌으나, 임오년에 형의 죄로 유배되어 죽었다. 아우 이현섭은 기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가 임오년에 사형당하였다. 임오년은 1762년으로, 영조 연간丁酉航海事變 또는 관련 역모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문
字禹井廣州人府使聖至子乙丑進士文科官至佐郞以功令著名壬午坐弟謫死弟賢涉字說川己卯文科承文院正字壬午伏誅[주:國朝榜目]蔡得淳仁川人中進士亦以功令著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현급 / 李賢伋, confidence=0.95
- person: 이현섭 / 李賢涉, confidence=0.95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0.95
- office: 佐郞, confidence=0.85
- office: 승문원 / 承文院, confidence=0.95
- office: 정자 / 正字, confidence=0.85
- term: 공령 / 功令, confidence=0.8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佐郞(좌랑)의 정확한 벼슬 품계, 功令(공령)의 구체적所指内容, 坐弟의 정확한罪名事由
(영조조)신광수
- 기사 ID:
B9C^2_003_086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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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성연이고 호는 석북이며, 고령 사람이다.僉知澔의 아들 子湛의 5대손이다.功令文으로 유명하여 중생원이 되었고 연천현감이 되었다.영조 48년 임진년에,潜邸時에 입적한 나이와 생년월일을 다시 계산하여, 특명으로 기사과를 설치하였다. 60세 이상은 응시가 허락되었고, 임금이 친히 인정전에서 주관하여 당일 방점을 내렸다.광수가 문과 1등으로 급제하여 승지로 발탁되었으나,을미년에 졸했다.[주:국조방목]아들禹相은 字가景益이고,기묘년進士이며 영조 기묘년文科에 급제하여司諫이 되었다.광수의 아우光河는 字가文初이고,정조 임자년文科에 급제하여 그때 나이 64세였으며 관직이 승지에 이르렀다.
독음
자유성연호석북고령인첨지호자탐오대손이익령문제명중생원위연천현감영조사십팔년임진이잠저시취저년갑월일중회특명설기노과년육십이상허제친림인정전즉일방광광수중문과제일탁위승지을미 졸[주:국조방목]자유상자경익기묘진사영조기묘문과사간광수제광하자문초정조임자문과시년육십사관지승지
의미
신광수는 영조대에 문과 1위로 급제한 인물이다. 영조 48년(1772년)潜邸時에 입적한 정보를 바탕으로 60세 이상만 응시할 수 있는 기사과가 특명으로 설치되었고, 임금이 친히 인정전에서 주관한 이 시험에서 1위를 했다. 승지로 발탁되었으나 을미년에 졸했다. 아들 신우상과 아우 신광하도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가 되었다. 특히 신광하는 정조 임자년文科에서 64세의 나이에 합격한 점이 특기적이다.
원문
字聖淵號石北高靈人僉知澔子湛五代孫以功令文著名中生員爲漣川縣監英祖四十八年壬辰以潛邸時就邸年甲月日重回特命設耆老科年六十以上許赴親臨仁政殿卽日放榜光洙中文科第一擢爲承旨乙未卒[주:國朝榜目]子禹相字景益己卯進士英祖己卯文科司諫光洙弟光河字文初正祖壬子文科時年六十四官至承旨
엔티티 후보
- person: 신광수 / 申光洙, confidence=1.0
- person: 신우상 / 申禹相, confidence=1.0
- person: 신광하 / 申光河, confidence=1.0
- place: 고령 / 高靈, confidence=1.0
- place: 연천 / 漣川, confidence=1.0
- office: 첨지 / 僉知, confidence=0.8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사간 / 司諫, confidence=1.0
- term: 공령문 / 功令文, confidence=0.8
- term: 기사과 / 耆老科,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잠저 / 潛邸,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첨지澔子湛의 정확한 가계 관계 해석
- 潛邸時就邸年甲月日重回의 구체적 계산 방식
(영조조)이봉환
- 기사 ID:
B9C^2_003_086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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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성장이고, 호(號)는 우염재이다. 전주인으로서 체(體)의 아들 춘영(春英)의 5대 손이다. 영조조에 중사마가 되고 관직이 양치지감에 이르렀다.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경인년에 최익남 옥사에 연좌되어 고문 받아 죽었으니, 일생이 원冤이었다. 문집이 세상에 행하여졌다[주:우염재집]. 아들 명오(明五)의 자(字)는 사위이고, 호는 발옹이다. 순조조에 중사마가 되었다. 아버지의 원冤이 아직 씻겨지지 않은 것을 통분히 안고, 여러 번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풀리지 않으며, 옷을 벗지 않고 자주 임금의 행차길에 나아가 호소했으나 때에 막혀 오히려 귀양을 가게 되었다. 시와 역사로 스스로 즐거워하며 살았다.
독음
자성장호우염재절전주인체소재춘영오대손영조조중사마관치양치지감이문장명세경인사련최익남옥치고사일세완지의유문집행어세[주:우염재집]자명오자사의호발옹순조조중사마이부완미설포은통첩고불해의여차출로위시소격반피전슬시사자오
의미
영조조 문인 이봉환(성장, 우염재)은 전주 출신으로 체춘영의 5대손이다. 중사마를 지내고 양치지감을 역임했으며,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경인년에 최익남 옥사에 연좌되어 고문而死하였으니 일생이 원망이었다. 그의 문집은 우염재집으로 전해진다. 아들 이명오(사위, 발옹)는 순조조 중사마로 아버지의 원冤이 아직 씻겨지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늘 막혀 결국 귀양을 가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런 가운데 시와 역사를 노래하며 스스로 위로하였다.
원문
字聖章號雨念齋全州人體素齋春英五代孫英祖朝中司馬官至陽智縣監以文章鳴世庚寅辭連崔益男獄栲死一世冤之有文集行于世[주:雨念齋集]子明五字士緯號泊翁純祖朝中司馬以父冤未雪抱隱痛薦藁不解衣屢籲蹕路爲時所格反被竄謫詩史自娛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봉환 / 李鳳煥, confidence=1.0
- person: 최익남 / 崔益男, confidence=0.9
- person: 명오 / 明五,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place: 양치 / 陽智, confidence=1.0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0.9
- office: 지감 / 縣監, confidence=0.9
- work: 우염재집 / 雨念齋集, confidence=1.0
- term: 고문으로 죽임 / 栲死, confidence=0.9
- term: 연좌 / 辭連, confidence=0.9
- term: 귀양 / 竄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체소재(體素齋)의 올바른 인물特定)
- 출로(蹕路)의 구체적 연호 해석
- 薦藁不解衣의 정확한 문맥 의미
(영조조)남옥
- 기사 ID:
B9C^2_003_086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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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남옥은 字를 시윤이라 하고 이녕인이며, 명익의 증손이다. 공적에 힘입어 문과에 급제하여名声이 났다. 기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에 임명되었으나, 경인년에 최익남의 옥사에 연좌되어 고문으로 죽었다. (주: 위와 같다) 아우 重은 字를 시민이라 하고, 정묘년에 생원으로, 병자년에 문과 찰방에 급제하였다.姜柏은 字를子靑이라 하고 진주인이다. 별제碩周의 아들이다. 갑오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정미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장원이 되었다. 시로 이름이 났다. 무신년에 成歡察訪으로 있을 때 적변을 당하자, 거짓으로 어머니의 상을 당했다고 칭하며 머리를 풀고 도망쳤다. 적이 평정된 뒤에 탄핵을 받아 군에 충군되었다. (주: 위와 같다)
독음
남옥, 글시윤, 이녕인, 명익종증손,기의문과, 군수, 경인최익남옥사대계노주, 제중, 글시민, 정묘생원, 병자문과찰방, 강백, 글자청, 진주인, 별제석주자, 갑오진사, 정미문과장원, 무신시명, 무신성환찰방당적변가칭모상피방도적, 적평이대로소환충
의미
영조 연간 인물 南옥과 그 형제 重, 그리고 姜柏의生平을 수록한 기사이다. 南옥은 이녕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에 올랐으나, 경인년 최익남 옥사에 연좌되어 고문으로 죽었다. 아우 重 역시 문과에 급제하여 찰방이 되었다.姜柏은 진주 출신으로 문과 장원에 합격하였으나, 成歡察訪 재임 중 도적의 변을 만나 어머니의 상을 핑계로 도망친 죄로 군사 처벌을 받았다. 문과 장원이라는 성공과 모면 근무 중 도망친다는 치적이 共存하는人物的이다.
원문
字時韞宜寧人溟翼從曾孫以功令著名癸酉文科郡守庚寅崔益男獄事逮繫栲死[주:上同]弟重字時敏丁卯生員丙子文科察訪[주:同上]姜柏字子靑晉州人別提碩周子甲午進士丁未文科壯元有詩名戊申以成歡察訪當賊變假稱母喪被髮逃走賊平以臺劾充軍[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남옥 / 南玉, confidence=0.98
- person: 중 / 重, confidence=0.95
- person: 최익남 / 崔益男, confidence=0.97
- person: 강백 / 姜柏, confidence=0.97
- person: 석주 / 碩周, confidence=0.9
- place: 이녕 / 宜寧, confidence=0.97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0.97
- place: 성환 / 成歡, confidence=0.95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8
- office: 찰방 / 察訪, confidence=0.98
- office: 별제 / 別提, confidence=0.92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8
- term: 장원 / 壯元, confidence=0.97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8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8
- term: 충군 / 充軍, confidence=0.93
불확실한 어휘
- 功令:以功成名이라 읽을 수도 있으나 정확한 의미 해석이 어려움
(영조조)김적기
- 기사 ID:
B9C^2_003_086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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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惠仲이고 선산 출신으로, 교리 의원의5대손이다. 영조 연간 계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별검을 지냈다. 임금이 여러 승지에게 묻기를, 남옥 김적기와 成大文 중 누가 낫겠느냐 하였다. 대답하기를, 김이 成보다 가장 낫다고 하였다. 아들 鎭聲은 자가 天五이고, 순조 연간 을유년에 진사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을 역임하였다.
독음
자혜중 선산인 교리의원오대손 영조계유문과 교서관별검 상문제승지왈 남옥김적기 성대문 우열 대왈 김여성성최승 자진성 자천오 순조을유진사문과장령
의미
영조대에 문과에 급제한 인물 김적기에 대한 기록이다. 승지들이 임금의 질문에 응하여 김적기와 成大文의 문장优劣을 논했으며, 김적기가 더 우월하다고 평하였다. 이어 김적기의 아들 김진성이 순조대에 진사 문과에 합격하여 장령까지 역임한 사실도 함께 수록되어父子兩代의 관료 배출 사실을 보여준다.
원문
字惠仲善山人校理義元五代孫英祖癸西文科校書館別檢上問諸承旨曰南玉金迪基成大中文優劣對曰金與成最勝子鎭聲字天五純祖乙酉進士文科掌令[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적기 / 金迪基, confidence=1.0
- person: 김혜중 / 金惠仲, confidence=1.0
- person: 김진성 / 金鎭聲, confidence=1.0
- person: 성대문 / 成大文, confidence=1.0
- place: 선산 / 善山, confidence=1.0
- office: 교서관별검 / 校書館別檢, confidence=1.0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오대손 / 五代孫, confidence=1.0
- term: 우열 / 優劣, confidence=1.0
- term: 남옥 / 南玉, confidence=0.8
- term: 원의 / 義元,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義元 五代孫
- 義元이 인명인지 관직명인지 불분명
- 南玉
- 호称 또는 가문 명칭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음
(영조조)채지홍
- 기사 ID:
B9C^2_003_087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7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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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05:46.10562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72
한글 번역
자의는 군범, 호는 삼환재이다. 인천 사람으로,承旨(승지)洛의 5세손이다. 증조부는 종길, 조부는 달달하였다. 광해군 정란이 있을 때 세상을 떠났다. 뜻을 구하던 중, 인조조에 이르러 유질(遺逸)을 뽑아 현감에 임명되었다. 지홍이 학문을 배움에 있어서는 곧 책을 알게 되었다. 8세에 초월(初月)을 읊조리며 ‘형체가 태극초(太極初)와 같다’라는 구를 지었고, 16세에 발해(發解)에 합격하여 고등(高等)에 이르렀다. 문수엄(遂菴) 권상하(權尙夏)가 황강(黃江)에서 도를 강론하자 마음이 기뻐하여 곧 그를 스승으로 뵙갔다. 상하는 ‘이 사람은 나를 스승으로 삼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지홍이 이미 친히熏灸(불에 쪼이듯 교化和)받음에 그 문인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 외암(巍岩) 이건(李柬), 치평(持平) 윤혼(尹焜) 등과 어울려 다니며 그 덕을 완성하였다. 숙종이 온천을 행幸하여 인재를 찾으니, 도신(道臣)이 호중(湖中) 六學士를 거론하여 아뢰다. 왕자 사부(師傅)에 제수되었으나 受하지 않았고, 신축(辛丑)에 첩의(諮議)에 제수되었으나 가지 않아 온 가족을 거두어 구운산(九雲山)에 들어갔다. 오래된 학문을 강명하고 후진을 가르치는 것을 힘썼다. 모두 4년이었다. 을사(乙巳)에 영조가 즉위하여 부솔(副率)에 제수하였다. 대신 민진원(閔鎭遠)이 극히 선정(選精)한 경학之士를 불러 경연관으로 삼아启发(계발)하고 도와줄 것을 청하였다. 지홍이 뽑혀 특별히 별유(別諭)를 내려 부르자, 거처 수개월에 제주(堤州) 부여현감(扶餘縣監)에 제수되었다. 한 달이 지나 버리고 돌아갔다. 다시 公洪道都事(공호도도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递(물러났다).
독음
자군범호삼환재인천인승지락오세손증조종길달광해정란사세구지급인조조거유일위현감리지학어즉지지서팔세부초월유형여태극초지구십육세발해고등문수엄권상하강도황강심열수왕사치지상하왈차비사의아자지홍기친훈灸여기문인남당한원진병계윤봉구외암이건치평윤혼등유이미성기덕숙종행온천방인재도신거호중육학사이문제왕사부불구신축제자의첩사부지연진구운산중이강명구문훈후진위무범사년을사영조즉위제부솔대신민진원청겁선경제지위경연관이자자곡지홍피선특강별유조사지거수월제주부여현감유월기귀우제공호도사사연전
의미
채지홍(蔡之洪, 자 군범, 호 삼환재)은 인천 출신으로承旨洛의 5세손이다. 8세에 ‘初月有形如太極初’라는 뛰어난 시구를 지었고, 16세에 발解 합격하였다. 권상하에게 도를 배우고 한원진·윤봉구·이건·윤혼 등 문인들과 어울려 덕을 완성하였다. 숙종 때는 왕자 사부와 첩의를 모두 사양하고 가족과 함께 구운산에 들어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영조 즉위 후 부솔에 제수되고, 민진원의 추천으로 경연관 후보로 뽑혔으며, 이후 부여현감을 역임했으나 곧 사직하고 돌아갔다. 재능 있었으나 벼슬을 기피하고隐居하며 학문에 기울었던 선비이다.
원문
字君範號三患齋仁川人承旨洛五世孫曾祖宗吉達光海政亂謝世求志及仁祖朝擧遺逸爲縣監之洪學語卽知書八歲賦初月有形如太極初之句十六歲發解高等聞遂菴權尙夏講道黃江心悅遂往師之尙夏曰此非師我者也之洪旣親薰灸與其門人南塘韓元震屛溪尹鳳九巍岩李柬持平尹焜等遊以成其德肅宗幸溫泉訪人才道臣擧湖中六學士以聞除王子師傅不就辛丑除諮議辭不赴盡室入九雲山中以講明舊聞訓誨後進爲務凡四年乙巳英祖卽位除副率大臣閔鎭遠請極選經學之士爲經筵官以資啓沃之洪被選特降別諭召之居數月除扶餘縣監踰月棄歸又除公洪道都事辭遞[주:行狀]
엔티티 후보
- person: 채지홍 / 蔡之洪, confidence=1.0
- person: 권상하 / 權尙夏, confidence=1.0
- person: 한원진 / 韓元震, confidence=1.0
- person: 윤봉구 / 尹鳳九, confidence=1.0
- person: 이건 / 李柬, confidence=1.0
- person: 윤혼 / 尹焜, confidence=1.0
- person: 민진원 / 閔鎭遠, confidence=1.0
- place: 인천 / 仁川, confidence=1.0
- place: 구운산 / 九雲山, confidence=1.0
- place: 부여 / 扶餘, confidence=1.0
- place: 온천 / 溫泉,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사부 / 師傅, confidence=1.0
- office: 첩의 / 諮議, confidence=1.0
- office: 경연관 / 經筵官, confidence=1.0
- work: 삼환재 / 三患齋,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熏灸(훈구) -熏과灸는 원래 서로 다른 뜻이나 여기서는 문인의 가르침에 깊이 젖다는 비유적 표현으로 보임
- 形如太極初 - 태극초의 형체라는 구로 정확한 의미 파악이 어려움
- 發解高等 - 조선 과거 제도에서의 단계별 합격 과정, 세부 구분 불확실
(영조조)윤혼
- 기사 ID:
B9C^2_003_087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7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21:50:30.71443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73
한글 번역
(영조사) 윤혼. 자는晖甫, 호는泉西坡. 평인 출신으로, 감사希吉의5대손이다. 수암권상하에게 수업하였다. 进士에 뽑혔고, 기해(1755년) 문과에 합격하여持平이 되었다. 아들子在謙은 자가士益이다. 영조(영조) 경오(1750)년에 온양온천을 행행하시어 과녁을 놓고 선비들을 뽑으니, 재겸이文中科에 합격하여 관직이掌令에 이르렀다. [주:국조방목]
독음
(영조사)윤혼, 자晖甫(휘보), 호천서파, 평인, 감사희길5대손, 수암권상하에게 수업하다. 进士举, 기해문과,持平 자재겸, 자사익, 영조 경오(1750년)에 온양온천을 행행하다. 设科取士, 재겸中文科에 합격, 관至掌令에 이르다. [주:국조방목]
의미
영조대에 활동한 윤혼의 가계와 그의 아들子在謙의 관료 출세를 기록한 기사이다. 윤혼은 平人 출신으로 권상하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进士가 되었고, 아들子在謙은 영조의 온양온천 行幸 때 시행된 별과에서文中科에 합격하여掌令까지 올랐다. 平人 출신 관료 가문의 성공적 상승 사례를 보여준다.
원문
字晦甫號泉西坡平人監司希吉五代孫受業于遂菴權尙夏擧進士己亥文科持平子在謙字士益英祖庚午幸溫陽溫泉設科取士在謙中文科官至掌令[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윤혼 / 尹焜, confidence=1.0
- person: 자晖甫 / 字晦甫, confidence=1.0
- person: 호천서파 / 泉西坡, confidence=1.0
- person: 희길 / 希吉, confidence=1.0
- person: 권상하 / 權尙夏, confidence=1.0
- person: 자재겸 / 子在謙, confidence=1.0
- person: 자사익 / 字士益, confidence=1.0
- place: 온양온천 / 溫陽溫泉, confidence=1.0
- office: 持平, confidence=1.0
- office: 掌令,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平人(평인) - 良民과 区賤民 사이 신분階層의 정확히 구분이 불확실
(영조조)김간
- 기사 ID:
B9C^2_003_087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7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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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7T07:13:29.92952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74
한글 번역
자(字)는 직경이고 호는 후재이며 청풍 출신이다. 현석(玄石) 박세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유관(遺逸)으로 관직에 이르러 찬성(贊成)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형 재(栽)의 자(字)는仲固이고, 숙종 기유(1689)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였다. 을해(1715)년에 문과文科에 합격하여 집의(執義)에랐다. 아들 태로(泰魯), 손자 치후(致垕)의 자는士重이며, 역시 문과에 합격하여 대사간(大司諫)에랐다.
독음
자직경호후재청풍인수업어현석박세채之문이유관지찬성염문경형재자중고숙종기유진사을해문과집의간간자태로태로자치후자사중문과대사간
의미
영조조 문신 김간의 내력을 적은史料이다. 청풍 출신으로 박세채 문하에서 수학하여 유관으로 벼슬하여 찬성에 이르렀고 문경의 시호를 받았다. 숙종 기유(1689)년 진사, 을해(1715)년 문과 합격 후 집의에랐다. 형 김재는 중고라 하고, 아들 김태로의 아들 김치후는 사중이라 하여 역시 문과 합격 후 대사간에랐다. 김간 가문의 학문적 전통과 관직 진출 경로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字直卿號厚齋淸風人受業于玄石朴世采之門以遺逸官至贊成諡文敬兄栽字仲固肅宗己酉進士乙亥文科執義[주:國朝榜目]幹子泰魯泰魯子致垕字士重文科大司諫[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김간 / 金幹, confidence=0.95
- person: 박세채 / 朴世采, confidence=0.95
- person: 김재 / 金栽, confidence=0.95
- person: 김태로 / 金泰魯, confidence=0.95
- person: 김치후 / 金致垕, confidence=0.95
- place: 청풍 / 淸風, confidence=0.85
- office: 찬성 / 贊成, confidence=0.9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0.9
- office: 대사간 / 大司諫,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國朝榜目 주석의 구체적 서지사항 미상
- 遺逸官的 구체적 직제 분류
(영조조)주형이
- 기사 ID:
B9C^2_003_087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7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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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06:04.95043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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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전주인이다. 숙종 을미년에 생원진사가 되고, 정유년에 문과 장령에 뽑혔다. 아버지 정서(자: 정叔)는 계해년에 생원진사가 되고, 신미년에 문과 정랑이 되었다. 종제 기(자:仲良)는 영조 을묘년에 문과 정언이 되었고, 기의 아들 형질(자:子野)은 을묘년에 문과 장령이 되었다.
독음
전주인 숙종 을미 생원진사 정유 문과 장령 아버지 정서(정수) 계해 생원진사 신미 문과 정랑 종제 기(자: 중량) 영조 을묘 문과 정언 기의 아들 형질(자: 야) 을묘 문과 장령
의미
조선 시대 전주 출신 문과 합격자 일가의 가계와 관직 이력이다. 丁酉文科掌令의 정확한 연도가 불분명하나, 전체적으로 全州出身의 朱氏 가문에서 수세기에 걸쳐 문과에 합격하여管理等 실무직과 言路 담당직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원문
全州人肅宗乙未生員進士丁酉文科掌令[주:國朝榜目]父椗字定叔癸亥生員進士辛未文科正郞從弟杞字仲良英祖乙卯文科正言杞之子炯質字子野丙寅文科掌令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정서) / 椗, confidence=0.95
- person: 기(중량) / 杞, confidence=0.95
- person: 형질(자:야) / 炯質, confidence=0.95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0.95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0.95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0.95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생원진사 / 生員進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丁酉文科掌令의 丁酉년을 1777년으로 볼 경우 원문 通文記載와 배치되는 해석 문제
- [주:國朝榜目] 주석의 정확성
- 從弟 관계의 구체적 범위
(영조조)김진상
- 기사 ID:
B9C^2_003_087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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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06:16.8792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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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의는 어익이고, 호는 퇴어이며, 광주 사람으로 익훈의 손자이다. 숙종 기묘년(1699)에 진사가 되었고, 임진년(1732)에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신유년(1751)에 대사헌으로 발탁되었다. 고향으로 물러나 살면서, 여러 차례 관직 제수받았으나 모두 양심에 따라 사양하였고, 시사에 관해 한 말도 없었다. 임금이 그의 담담하고 청렴하며 당파에 연루되지 않은 점을 칭찬하였다.
독음
자유익호퇴어광주인익훈손숙종기묘진사임진문과력부제학영조신유탁위대사헌퇴거향리범유직명인의사손무일어급시사상칭기염결무당
의미
조선 영조 시대 관료 김진상(자의 어익, 호 퇴어)에 대한 기록이다. 숙종 기묘년(1699) 진사, 영조 신유년(1751) 대사헌 발탁 등의 이력을 기록하였다. 그는 관직을 제수받으면 양심에 따라 사양하였고, 시사 논의에 한마디도 관여하지 않았다. 영조는 그의 담담하고 청렴무사한 모습을 칭찬하였다. 출전은 『국조보감』이다.
원문
字汝翼號退漁光州人益勳孫肅宗己卯進士壬辰文科歷副提學英祖辛酉擢爲大司憲退居鄕里凡有職名引義辭遜無一語及時事上稱其恬潔無黨[주:國朝寶鑑]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진상 / 金鎭商, confidence=1.0
- person: 어익 / 汝翼, confidence=1.0
- person: 퇴어 / 退漁, confidence=1.0
- person: 익훈 / 益勳, confidence=1.0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work: 국조보감 / 國朝寶鑑,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염결무당(담담하고 청렴하며 당파가 없음) / 恬潔無黨, confidence=1.0
(영조조)류정원
- 기사 ID:
B9C^2_003_088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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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51:27.65383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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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순백이고 호는 삼산이며, 전주 출생이다. 어려서부터 재성과 성품이 빠르고 총명하였다. 기유년에 생원이 되었고, 을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대부 정의신이 그 사람의 경학을 천거하여, 드디어 수찬에 오르며 이후 예비를 역임하였다. 임금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들었으니 마땅히 힘을 다하여 춘궁에게 강학하도록 권력하라.” 하시었다. 외보로 나가 통천을 다스려 다스림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발탁되어 승지에 오랐다.
독음
자순백호삼산전주인자유재성통민기유생원을묘문과태신정희신천기경학수입수찬역필선상왈문이자다서의권강춘궁외보통천이지치최탁배승지
의미
류정원은 전주 출신으로 기유년에 생원, 을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대부 정의신의 추천으로 벼슬에 진출하여 수찬과 예비를 역임하였다. 임금으로부터 학식을 인정받아 춘궁의 강학에 힘쓸 것을 명받았고, 이후 통천郡守로 나가 치적이 가장 우수하여 승지로 발탁된 인물이다.
원문
字淳伯號三山全州人自幼才性通敏己酉生員乙卯文科臺臣丁喜愼薦其經學遂入修撰歷弼善上曰聞爾多讀書宜勉力勸講春宮外補通川以治最擢拜承旨[주:墓志]
엔티티 후보
- person: 류정원 / 柳正源, confidence=0.95
- person: 정의신 / 丁喜愼, confidence=0.9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0.95
- place: 통천 / 通川, confidence=0.95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office: 수찬 / 修撰, confidence=0.95
- office: 예비 / 弼善, confidence=0.95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term: 춘궁 / 春宮, confidence=0.9
- term: 외보 / 外補,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外補는 지방관 보직으로의 외任을 의미하는 관료 인사 용어로 추정되나, 구체적 직위명 해석에 이견 가능
(영조조)고유
- 기사 ID:
B9C^2_003_088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8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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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7:07:10.35114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82
한글 번역
자는 순지, 호는 추담. 개성 사람으로, 인계의 5대손이다. 어릴 때 물가에서 놀다가 뽕나무 꾼 아이가 땔감을 캐다가 짐을 지고 가는 것이 힘겨워하는 것을 보고, 나무를 묶어 물에 띄워 보내 흐름에 실려가게 하고 뒤따라가 가져오게 하였다. 신유년에 생원이 되고, 계해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가 되었다. 창녕군수로 있을 때, 한 상인이 여관에泊하면서 돈을 잃은 일이 있었다. 돈을 훔친 자의 자취를 따라가니 대나무 울타리를 벌채고 나갔다. 상인이 그 형상을 가지고 고에게 고소하였다. 고는 “대나무를 베는 사람은, 바깥에서 베면 그 끝이 바깥을 향하고, 안쪽에서 베면 그 끝이 안쪽을 향한다.”고 말하며 살펴보게 하였다.果然히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점주店主를 잡아 오게 하여 한 번 심문하니 스스로服하였다. 기해년에 안주 任所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아버지는 全光済로, 자는 明兼이고 용궁 사람이다. 계해년 文科에 급제하여佐郞이 되었고, 사위와 같은 해 시험에 同榜하였다.
독음
자순지호추담개성인인계5대손아시유천상견초아채신불능부담사속부 於수대류하취신유생원계해문과승지위창녕군감시아상인숙於점실기금적지도작죽리退出상인기상태고유왈범작죽자자외칙기전재외자내칙기전재내사심색과재내단치점주일문이복기해졸於안주임소妻父전광제자명겸용궁인계해문과좌랑여서동방[주:묘지]
의미
고유(高裕)의 묘지명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仁厚한 성품을 보여 땔감采集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를 배려한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신유년에 生員, 계해년에 文科에 급제하여 承旨至 창녕군감을 역임하였다. 창녕군수 재임 중 돈 도둑 사건을 지능적으로 해결하여 범인의 범행 수법을 간파하고店主를 심문하여 자백받았다. 기해년에 안주 부임지에서 졸했다. 외숙부 全光済는 同년에 文科에 급제하여佐郞이 되었고, 고의 사위와 같은 방榜에 오른 인연이 있었다.
원문
字順之號秋潭開城人仁繼五代孫兒時游川上見樵兒採薪不能負擔使束浮於水待流下取之辛酉生員癸亥文科承旨爲昌寧縣監時一商人宿於店失其金跡之盜斫竹籬而出商人以其狀告裕曰凡斫竹者自外則其尖在外自內則其尖在內使審視果在內捉致店主一問而服己亥卒于安州任所妻父全光濟字明兼龍宮人癸亥文科佐郞與壻同榜[주:墓志]
엔티티 후보
- person: 고유 / 高裕, confidence=1.0
- person: 인계 / 仁繼, confidence=0.9
- place: 개성 / 開城,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place: 창녕군 / 昌寧縣, confidence=1.0
- person: 전광제 / 全光濟, confidence=1.0
- place: 용궁 / 龍宮, confidence=1.0
- office: 좌랑 / 佐郞, confidence=1.0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place: 안주 / 安州,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부浮於水의 于가 수식어인지 동사 보조어인지 불분명
- 店主를店主로 볼지 점주(상인店主)로 볼지
(영조조)송순명
- 기사 ID:
B9C^2_003_088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8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7:33:36.95837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84
한글 번역
호는 화숙이며, 여산인이다. 목사 정奎의 아들이었으나 출계하여 정규휴의 양자가 되었다. 진사에 급제한 뒤 인천부사로 재임했다. 임진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을 지냈다. [주:국조방목에서 발췌한 기록]
독음
자 화숙 여산인 목사 정규의 아들 출계하여 정규휴의 양자가 된 후 진사으로서 인천부사에 임명되었고 임진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에 이르렀다. [주:국조방목]
의미
영조조 인물 송순명의 이력 기사로, 본래 목사 정규의 아들로서 출계하여 삼촌 정휴의 양자가 되었고, 진사에 합격한 뒤 인천부사를 지냈으며, 임진년(영조 20년, 1744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까지 역임한 관리임을 보여준다.
원문
字和叔礪山人牧使徵奎子出繼徵休後進士以仁川府使壬辰文科大司憲[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송순명 / 宋淳明, confidence=0.95
- person: 화숙 / 和叔, confidence=0.95
- place: 여산 / 礪山, confidence=0.85
- person: 정규 / 徵奎, confidence=0.85
- person: 정휴 / 徵休, confidence=0.85
- place: 인천 / 仁川, confidence=0.9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term: 임진(1744년) / 壬辰,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박준흠
- 기사 ID:
B9C^2_003_088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8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21:52:35.83514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89
한글 번역
자(字)는 德汝이고, 호는 立菴이다. 음성 사람으로서 현감 廷珪의 아들이다. 생下来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였다. 자라면서 여러 경전을 연구하며 陶菴 李縡와 黎湖 朴弼周에게 의의를 묻고 함께 토론하였는데, 그들이 매우 기리며 칭찬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나중에 久菴 尹鳳九 문하에서 수학하여 스승의 학설을 깊이 믿고 전습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鳳九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게서 의견을 보이고 의를 행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이러한 이는 이 세상에서轻易 만나기 어렵다. 내가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바는, 이를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예로 대접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말이 많아 安城山里에 거처하면서 兪大齋 彥鏶과 함께 학문을砥礪하고切磋하였다.
독음
자덕여호립암음성인현감청규자생이민혜소장경군경질의의우도암이흡여호박필주여지강론상탄부의만학우구암윤봉구문독신사설전습불해봉구희왈견의행의즉세미역궤여소경외불가대이미제지례모년우거안성산중여유대재언련강마
의미
정조조 시대 인물 朴俊欿의 묘지 기문이다. 현감 廷珪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李縡(陶菴)와 朴弼周(黎湖) 등 당대 유학자들과 활발히 학술 토론을 나누었다. 이후 尹鳳九(久菴) 문하에서 수학하며 스승 학설을 충실히 전습하였고, 스승 尹鳳九는 그를 높이 평가하며 존경과 경외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말년에는 安城山里에 은거하며 兪大齋 彥鏶과 학문 교류하며切磋하였다. 박준흠이 스승 前에서 의리를 논하고 실천하는 모습에 尹鳳九가 감탄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원문
字德汝號立菴陰城人縣監廷珪子生而敏慧稍長硏群經質疑義于陶菴李縡黎湖朴弼周與之講論賞嘆不已晚學于久菴尹鳳九門篤信師說傳習不懈鳳九喜曰見議行義卽此世未易覯余所敬畏不可待以師弟之禮暮年寓居安城山中與兪大齋彥鏶講磨[주:墓誌]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준흠 / 朴俊欽, confidence=0.95
- person: 청규 / 廷珪, confidence=0.9
- person: 이흡 / 李縡, confidence=0.9
- person: 박필주 / 朴弼周, confidence=0.9
- person: 윤봉구 / 尹鳳九, confidence=0.95
- person: 언련 / 彥鏶, confidence=0.85
- place: 음성 / 陰城, confidence=0.9
- place: 안성 / 安城,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work: 립암 / 立菴, confidence=0.95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0.95
- term: 호(별호) / 號,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見議行義(견의행의) - 李縡의 표현으로 정확한 문학적 의역 가능성 있음
- 賞嘆不已(상탄부의) - 칭찬과 탄식의 복합 의미로 해석에 다소 불확실
(정조조)조㟲
- 기사 ID:
B9C^2_003_089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9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21:52:38.53981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90
한글 번역
자(字)는 성陟이고 호(號)는 정암(靜崖)이며, 평양 사람으로서 송산선생 격(狷)의 후손이다. 선생은 자손에게 과거 시험에 나가지 말 것을 경계하였으며, 후손들은 모두 경서와 덕행으로 이름났다. 효우하고 천성이 곧아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나, 상사지통으로 거의 살아남지 못할 정도였다. 묘실을 갖추고 가사를 가다듬으며 온전히 성실한 힘을 다하여 평생의 그리움을 나타내었다. 여러 아우들과 어우러져 오십 년 동안 함께 먹고 함께 자며 가문의 뜰에서 사이좋은 말이 없었다. 정조 기유년(1789)에 능을 이전하는 공사 때 조씨 선영이 황금로(輦路)에 해당하는 요충지에 놓여, 예법에 따라 묘를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직책을 사임해야 했다. 사람들이 모두 공에게 대중을 따르라고 권하였으나 공이 비웃으며, 마침내 정을 써서 대부(丁)를 모집하여 수백 보를 후퇴하여 보수하니, 험한 길이 평탄하여짐에도 끝내 묘를 옮기지 않았다. 아들이 둘 있었으니 인석과 천석이다.
독음
자 성측호 정애 평양인 송산선생 격지후 선생 계자손 물부거거 후손 험 이경술 덕행 유명 효우천식 조상호시 애훼 기불능전塚飾家奠극탄정력용전종신지모 부익군계 여공 기회 동취오십년 정무간언 정묘 기유 천능지역 조지선영 임연로 요충 예명 이전자 청직인 개권 공소지遂募정 퇴수 백보 험도 여제 졸불천묘 유이남 인석 천석
의미
조선 정조 시대 평양 출신 선비 조㟲의 묘지이다. 조㟲은 송산선생의 후손으로, 조상에게 과거에 나가지 말라는 유품을 받들어 후손들이 모두 경서와 덕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상사지통을 하였으나, 가족과 화합하여 오십 년간 사이좋게 지냈다. 기유년(1789) 능 이전 공사 때 조씨 묘가 황금로 요충지에 해당하여 이전 명령을 받았으나, 공은 관직을 버리고 묘를 옮기지 않았다. 그는 정의를 비웃으며 수백 보 후퇴하여 묘를 보수하였으나 묘 자체는 옮기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원문
字聖陟號靜崖平壤人松山先生狷之後先生戒子孫勿赴擧後孫咸以經術德行著名孝友天植蚤喪怙恃哀毀幾不能全塚飾家奠克殫誠力用展終身之慕附翼群季與共飢飽同炊五十年庭無間言正廟己酉遷陵之役趙之先塋臨輦路要衝例命移塚者除職人皆勸公從衆公晒之遂募丁退修數百步險塗如砥卒不遷墓有二男仁錫天錫[주:墓誌]
엔티티 후보
- person: 조㟲 / 趙㟲, confidence=0.95
- person: 성측 / 聖陟, confidence=0.95
- person: 인석 / 仁錫, confidence=0.95
- person: 천석 / 天錫, confidence=0.95
- person: 송산선생 격 / 松山先生狷, confidence=0.9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0.95
- term: 거과(과거 시험 응시) / 赴擧, confidence=0.9
- term: 능 이전 / 遷陵, confidence=0.95
- term: 연로(황금로) / 輦路, confidence=0.85
- term: 제독(地方官) / 荊使,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附翼群季와 共飢飽同炊의 구체적 의미
- 正廟己酉의 정확한 연호 대응(정조 13년)
- 墓誌 작성 연도
(정조조)정광의
- 기사 ID:
B9C^2_003_089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9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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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21:52:04.84983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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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표자)는 원경이고 호는 묵재이다. 해주 사람으로서 충의공 문부의 6세손이다. 성품이 침착하고 장난을 잘 하지 않았다. 겨우 여섯 살에 아버지가 병이 위중해지자 울며 곁을 떠나지 않고 피를 묻힌 손가락으로 그 입에 넣어주었다. 상을 당하여 성인처럼 깊이 슬퍼하고 상하기까지 하였다. 장성하여 삼조 기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무자년에 사마(과거 급제자) 벼슬에 올랐다. 강남 황경원, 김履翼과 서로 친하게 지냈다. 정유년에 경능(정조의 능침)의 삼성보로 임명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귀로 돌아가 동호에 대월루를 쌓았다. 서적을 책장에 채우고 꽃을 심으며 대나무를 가꾸고 거문고를 타며 시를 지으니, 세속을 벗어난 뛰어난 풍모가 있었다.
독음
字는 원경이요, 호는 묵재이다. 해주 사람으로서 충의공 문부의 6세손이다. 침착하고 장난을 멀리하였다. 겨우 6세에 아버지가 병이 위중해지자 눈물을 흘리며 곁을 떠나지 않고 피를 묻힌 손가락으로 그 입에 대었다. 상을 당하여 성인처럼 깊이 슬퍼하며 상하게 여겼다. 장성하여 삼조 기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무자년에 사마가 되었다. 강남 황경원, 김履翼과 서로 친구로 지냈다. 정유년에 경능의 삼성보로 임명되었으나 버리고 귀로 돌아가 동호에 대월루를 쌓았다. 서적을 책장에 채우고 꽃을 심고 대나무를 가꾸며 거문고를 타시고 시를 지어, 척살연然出塵하는 생각이 있었다.
의미
정광(鄭光毅)은 해주 출신으로 충의공 문부의 6세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피 묻은 손가락으로 아버지 입에 넣어 돌보였고, 상을 당해 성인처럼 깊이 슬퍼하였다. 삼조 기암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무자년에 사마 벼슬에 올랐고, 황경원, 김履翼과 친구가 되었다. 정유년에 경능 삼성보로 임명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귀로 돌아가 동호에 대월루를 지으며 서적과 꽃, 대나무, 거문고, 시를 즐기는隠居 생활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효행이 두드러지고 장성하여도 세속을 초월한 풍모가 있었다.
원문
字遠卿號默齋海州人忠毅公文孚六世孫凝重寡戲甫六歲父病革涕泣不離側血指灌口及喪哀毀如成人及長受學于叔祖畸菴之門戊子司馬與江漢黃景源金履翼相友善丁酉授敬陵參奉棄歸東湖築對月樓儲書于卷蒔花種竹彈琴賦詩翛然有出塵想[주:墓碣]
엔티티 후보
- person: 정광 / 鄭光毅, confidence=0.95
- person: 문부 / 文孚, confidence=0.9
- person: 황경원 / 黃景源, confidence=0.95
- person: 김履翼 / 金履翼, confidence=0.85
- place: 해주 / 海州, confidence=0.95
- place: 동호 / 東湖, confidence=0.85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0.9
- office: 삼성보 / 參奉, confidence=0.9
- work: 대월루 / 對月樓, confidence=0.9
- person: 기암 / 畸菴, confidence=0.85
- term: 슬퍼서 상함 / 哀毀,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金履翼은 확인된 기록이 부족하여 한자 독음 그대로 기재
- 畸菴은 정조조 실록 등 추가 확인 필요
(정조조)윤명렬
- 기사 ID:
B9C^2_003_089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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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52:30.24152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92
한글 번역
자(표자)는 언국이고 호는 석우이며, 해평인문목공(人文穆公) 신(新)의 6세손이다. 아버지 면동(冕東)의 호는 어헌(娛軒)이고, 관직이 교관(敎官)에 이르렀으며,死後에 증리조삼판에 추증되었다. 도를 안고 은거하며, 명망이 학림의 표범이 되어, 족제 기동(紀東)의 아들 명렬을 입양하여 後嗣를 삼았다. 을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차례 교리에 除拜되었으나 모두 受拜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기유년에 三日製에서 장원을 했는데, 상이 直赴殿試를 명하시자, 相臣 채제공(蔡濟恭)이 制述에 익숙하지 않고 太急하다고 하여 削科를 청하였다. 상이 말씀하시길 “윤某의 아버지는 讀書端潔之士인데 아들이 無文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 하시어, 이때에 至하여 科를 회복하였다. 신사년에 예조삼판으로 燕國에 使行을 다녀갔는데, 몸을所持하는 데謹嚴하여,游覽을 事롭게 하지 아니하고 公事가 아니면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시호는 충헌이다. 아들이 네 분 있는데, 지승은 판관이고, 지응은 목사이며, 지희는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삼판이 되었고, 지영은承旨이다.
독음
자언국호석우해평인문목공신지육세손부면동호어헌관지교관증리조삼판포도은구표준사림취족제기동자명렬위사을묘문과루제교리개불패선시기유괴삼일제상명직제한殿試상신채제공이불연제술지태급청삭과상왈윤모지원독서단潔之士기자무문지譏가이의야지시명복과신이예충사유례조삼판봉사여연지지신근엄불공사불출일보시충헌유사남치지승판관지영목사지혜문과이조삼판지영승지
의미
윤명렬은 조선 정조 시대의 문신으로, 文穆公 尹新老師의 6세손이다. 아버지 윤면동(호 어헌)은 교관으로 증리조삼판에 추증되었다. 윤명렬은 을묘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차례 교리에 除拜되었으나 受拜하지 않았고, 기유년 三日製에서 장원한 뒤 直赴殿試问题时 相臣 채제공의 削科 청을 받았으나, 상이 아버지의 清白한 인품을 들어不可能하다고 여겨 科를 회복시켜 주었다. 신사년에 예조삼판으로 清國에 使行을 다녀갔으며, 平生謹嚴하여 公事 외에 外遊하지 않았다. 시호는 충헌이고, 아들 중 尹致羲는 이조삼판에 이르렀다. 梅山集에서 全集되었다.
원문
字彥國號石囿海平人文穆公新之六世孫父冕東號娛軒官至敎官贈吏曹參判抱道隱求表準士林取族弟紀東子命烈爲嗣乙卯文科累除校理皆不拜先是己酉魁三日製上命直赴殿試相臣蔡濟恭以不嫺製述持太急請削科上曰尹某之父讀書端潔之士其子無文之譏可異也至是命復科辛巳以禮曹參判奉使如燕持身謹嚴不事游覽非公事不出一步諡忠憲有四男致承判官致膺牧使致羲文科吏曹判書致英承旨[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윤명렬 / 尹命烈, confidence=1.0
- person: 윤신(人文穆公) / 尹新, confidence=1.0
- person: 윤면동 / 尹冕東, confidence=1.0
- person: 윤지희 / 尹致羲, confidence=1.0
- person: 채제공 / 蔡濟恭, confidence=1.0
- place: 연(燕國, 청나라) / 燕,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예조삼판 / 禮曹參判, confidence=1.0
- office: 이조삼판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1.0
- term: 삼일제 / 三日製,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충헌(시호) / 忠憲,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김기후
- 기사 ID:
B9C^2_003_089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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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52:56.02901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93
한글 번역
자(표자)는 사중이고, 청풍 사람이다. 판돈녕부사를 지냈으며, 호는 지묵자이다. 효정공 성응의 손자이다. 갑오년에 생원이 되었다. 소년에 처사 이구상과 우수(櫟泉) 송명흠의 고제에게 배우았다. 마음을 세우고 행실을 닦은 것이 모두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삼대에 걸쳐 장수로서 군사(將兵)를 지켰으므로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였으며, 또한 작룡(濯龍)의 경계를 말함으로 관직을 사양하였다. 관직은 공조 판서에 이르렀고, 을유년에 나이가 팔십에 해당하여 정헌으로 승진하였다. 아들의 대부는 선량한 목사(牧使)이다.
독음
자 사중 청풍인 판돈녕부사 지묵자 효정공 성응지 손갑오생원 소년학어처사이구상 우수송명흠지고제야립심행기개득어此前이삼세장병거상숩측차이작룡지계를위사관지고공조판서병술이년준팔질진계정헌계자택선목사
의미
이 기사는 조선 정조조의 관리 김기후(字 사중)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청풍 출신으로 효정공 성응의 손자이며, 처사 이구상과 송명흠의 제자门下로서 학문을 배웠다. 삼대에 걸쳐 장수직을 역임하며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고, 공조 판서까지 승진하였다. 을유년에 팔십 고령으로 정헌階에 올랐다.
원문
字士重淸風人判敦寧府事持默子孝靖公聖應之孫甲午生員少學于處士李龜祥櫟泉宋明欽之高弟也立心行己皆得於此以三世將兵居常悚惕且以濯龍之戒爲辭官至工曹判書丙戌以年準八耋進階正憲系子宅善牧使[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김기후 / 金基厚, confidence=0.95
- person: 이구상 / 李龜祥, confidence=0.9
- person: 송명흠 / 宋明欽, confidence=0.9
- person: 성응 / 聖應, confidence=0.85
- person: 택선 / 宅善, confidence=0.85
- place: 청풍 / 淸風, confidence=0.9
- office: 판돈녕부사 / 判敦寧府事, confidence=0.95
- office: 공조판서 / 工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정조조)이회두
- 기사 ID:
B9C^2_003_089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9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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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21:52:46.02003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94
한글 번역
자의는 이장이고 호는 정거이며, 평창 출신이다. 조부는 익채이고 아버지는 현정이다. 문장과 행실로 이름을 날렸으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예전에 기린을 꿈꿨다가晦斗를 낳았다. 8세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나 어른처럼 예의를 행하였고, 성장하여 도소(道薦)로 추천받아 참여(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을묘(1795)년에 다시 천자의 명을 받아 대면하여 경전의 의리 깊은 요지를 논의하였으며, 임금의 은혜로운 하사가 매우 많았다.晦斗는 강서(江西) 향리에 돌아가 제사 지낼 田과 서적을 사들이고, 남은 것을 친족과 동향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임금이 이를 듣고 기뻐하며 탄식하기를, 선비의 도란 마땅히 이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독음
자이장호정거평창인조익채부현정이문행착모이씨상몽린而生晦斗팔세상모집례여성인급장이도천배삼봉부취을묘又被선소인대자이경전의리에대오은사심다회두귀어강서향제매제전서적분여어친당상문이가탄왈선지지도당여사야
의미
이 기문은 정조조 선비 李晦斗의 생애와 효행을 수록한 묘지이다. 字는 이장, 호는 정거이며, 조부와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 이씨가 기린을 꿈꿨던 뒤 출생하였다는 일화도 전한다. 8세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나 성인처럼 예의를 갖추었고, 도소로 추천받아 참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을묘(1795)년에 다시 천召되어 경전의 의리를 논의하고 많은 은사를 받았다. 고향 강서로 돌아가 제사田과 서적을 사들이고 남은 것을 친족에게 나눠주는 등 검소하고 효친한 모습을 보여 임금의 칭찬을 받았다.
원문
字而章號貞居平昌人祖益采父顯挺以文行著母李氏嘗夢麟而生晦斗八歲喪母執禮如成人及長以道薦拜參奉不就乙卯又被宣召引對咨以經傳義理之奧恩賜甚多晦斗歸于江西鄕第買祭田書籍分其餘于親黨上聞而嘉歎曰士之道當如是也[주:墓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회두 / 李晦斗, confidence=0.95
- person: 익채 / 益采, confidence=0.9
- person: 현정 / 顯挺, confidence=0.9
- place: 평창 / 平昌, confidence=0.95
- place: 강서 / 江西, confidence=0.9
- office: 참여 / 參奉, confidence=0.9
- term: 도소 / 道薦, confidence=0.85
- term: 제전 / 祭田, confidence=0.85
- term: 자 / 字, confidence=0.9
- term: 호 / 號,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以文行著 - 문행으로 유명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문행’이라는 단어가 관행인지 특정 인명인지 문맥상 명확하지 않음
- 分其餘于親黨 - 남은 것을 친족에게 나눠준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親黨’의 구체적 범위와 분배 방식이 기록에 없어 불확실함
(정조조)최영순
- 기사 ID:
B9C^2_003_089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9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7T07:18:58.85582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95
한글 번역
자(표자)는 기찬이며 신풍출신으로 벼슬은 집의이고, 호는 매곡이며 법호는 숙정이다. 그후 성품이 지극한 효道을 갖추어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묘소에 나아가 끕덕이며 절을 올리고 손으로 솔나무와 잣나무를 심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나무들이 숲이 되었다.
독음
자 기찬 신풍인 집의 호 매곡 숙정 후 성지효 오세이면 고상 묘 배규 수식 송백 세구 성임
의미
조선 정조 시대 인물 최영순의 행적이다. 신풍 출신으로 벼슬은 집의이며 호는 매곡이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지극한 효도로 어머니 묘소를孝敬하며, 직접松柏를 심어 그 숲이 되었다는 효행 기록이다.
원문
字起燦新豐人執義號梅谷淑淨後性至孝五歲而孤上墓拜跪手植松柏歲久成林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영순 / 崔永淳, confidence=0.95
- person: 기찬 / 崔永淳, confidence=0.95
- place: 신풍 / 新豐, confidence=0.95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0.9
- term: 매곡 / 梅谷, confidence=0.95
- term: 숙정 / 淑淨,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淑淨後의 ‘후’는 ‘이후’의 의미인지, 아니면 다른 단어와 결합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정조조)이승달
- 기사 ID:
B9C^2_003_089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9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7:08:30.89932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96
한글 번역
자(字)는 재방(在邦)이고, 또 자(字)는 겸선(兼善)이며, 호(號)는 수오(守愚)이다. 전주 사람으로서 영응대군 염(永膺大君琰)의 후손이고, 형조판서 햤(溎)의 아들이다. 종숙 노교선생(老樵先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계해(癸亥)에 증광文科에 합격하고, 갑술(甲戌)에 해西部地区의 장시(掌試)를 맡았으나, 문란한 인맥 관계가 미치지 못하였다. 시읍(試邑)의 관직에서 정언(正言)에 이르러 그쳤다. 나이 사십팔 살에 졸(卒)하였다. [주: 매산집]
독음
자재방우사건선호호수오 전주인 영膺대군 염지 형조판서 햤之子 수업어 종숙 노교선생지문 계해 증광문과 갑술 장시 해서而来 괄절不到 시읍관지정언년사십팔술
의미
이승달은 전주 출신으로 영응대군 이염의 후손이며, 형조판서 이햤의 아들이다. 종숙 노교선생 문하에서 수학하고 1743년(계해) 증광文科에 합격하였다. 1754년(갑술) 해西地区 수석 시험관으로 부임했으나 유력 인사과의 연결고리를 갖지 못하였다. 결국 시邑 관직에서 정언 직전에서 물러났으며, 48세에 세상을 떠났다. 매산집에서 수록된 인물이다.
원문
字在邦又字兼善號守愚全州人永膺大君琰之后刑曹判書溎之子受業于從叔老樵先生之門癸亥增廣文科甲戌掌試海西而關節不到試邑官止正言年四十八卒[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승달 / 李承達, confidence=0.95
- person: 영응대군 염 / 永膺大君琰, confidence=0.95
- person: 햤 / 溎, confidence=0.9
- person: 노교선생 / 老樵先生, confidence=0.85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0.95
- place: 해서 / 海西, confidence=0.9
- office: 형조판서 / 刑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5
- office: 장시 / 掌試, confidence=0.9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5
- term: 계해 / 癸亥, confidence=0.95
- term: 갑술 / 甲戌,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증광 / 增廣, confidence=0.9
- term: 괄절不到 / 關節不到,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괄절不到(관계가 미치지 못함)의 구체적 의미는 당대 부정 시험 관행과의 대비 내지 그의 청백한 성품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맥락 확인이 필요하다
(정조조)류여호
- 기사 ID:
B9C^2_003_089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9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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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7:35:01.17572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97
한글 번역
자로를 도열이라 하고 강남 사람이었으며 대대로 북청에 거처하였다. 도암 이선에게 학문을 배우었다. 무신년에 난리가 일어나자 제자들 모두 황급히 달아났고, 이선이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여호가 이르길 “북쪽 길은 적의 피해가 미치지 않으니 우리 부모는 아마도 무사할 수 있을 것이나, 저는 다만 사인이 있는 곳에서 죽기로 하는 의리를 알 뿐입니다.” 이선이 급히 물러나 왕도(上都)에 들어가고자 하자, 여호는 검을 지고 그를 따랐다.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난리가 평정된 뒤 스승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며칠이 지나자 이선이 횡액을 만나게 되어 깊은 산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여호는 울며 사양하기를 “뒤에가고 싶어서가 아니라不敢(감당할 수 없음) 때문입니다.” 하였다. 도암이 시를 보내며 이르길 “골짜기에서 나온 황莺은 머무를 곳을 알고, 봄을 타고 난 거위는 돌아갈 곳을 안다. 호미로 풀을 매거小学(소학교)을带的造次에 서로 어기지 마라.” 하였다.
독음
자도열 강남인 세거 북청 종학우 도암 이선 무신란작 제자개 창황 봉토 선찬위지귀 여호왈 북로즉 구난부급 오부모가보무우 오즉지유소재치사지의 급선 분문입경 여호장겁 종지 수어불리측 난정수기사 귀향 기수월 선소개려 횡역 장입궁산 여호걱사왈 비욕후也不敢也 도암送出 시왈 불곡온이지지 승춘암식귀 조사 대소학 조차막상위
의미
정조조(正祖朝) 인물인 유여호의 행적을 기록한 기사이다. 무신란(戊申亂) 때 스승 이선(李縡)의 제자들이 대부분 도망쳤으나, 유여호는 북쪽 고향의 부모는 안전할 것이며 자신은 스승을 따라 죽음의 길을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후 스승의 곁을 떠나지 않고 수행하다가, 스승이 깊은 산으로 들어가게 되자 함께 가지 못하고 울며 사양하였다. 이 선이 시를 보내 유여호에게 자신의 학문과 가르침을 잊지 말 것을 권유한 내용이다.
원문
字道悅江陵人世居北靑從學于陶菴李縡戊申亂作弟子皆蒼黃奔逃縡勸之歸汝豪曰北路則寇難不及吾父母可保無虞吾則只知有所在致死之義及縡奔問入京汝豪杖劍從之須臾不離側亂定隨其師歸鄕旣數月縡遭罹橫逆將入窮山汝豪泣辭曰非欲後也不敢也陶菴送以詩曰出谷鶯知止乘春雁識歸鋤時帶小學造次莫相違[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여호 / 劉汝豪, confidence=0.95
- person: 이선 / 李縡, confidence=0.95
- place: 강릉 / 江陵, confidence=0.9
- place: 북청 / 北靑, confidence=0.9
- person: 도암 / 陶菴, confidence=0.95
- term: 무신란 / 戊申亂, confidence=0.9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85
- term: 소학 / 小學,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출곡鶹知止乘春雁識歸에서 ‘출곡’의 구체적 의미 맥락
- 造次莫相違에서 ‘造次’의 변형 가능성
(정조조)윤취동
- 기사 ID:
B9C^2_003_089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3]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3
- 면/쪽: 0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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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21:52:38.09651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3&aa15no=003&aa20no=B9C%5E2_003_0899
한글 번역
자(별호)는 여오이고 호는 응와이며, 해평 윤씨 사람이니 정효공 윤인지의 5대손이다. 아버지 득량은 지극한 효행이 있었으며, 문화 유장봉의 따님을 맞이하였다. 유씨도 어머님과 같이 제자들과 학문修行에 힘썼다. 윤취동은 일찍이 과거 합격 공부를 그만두고, 성리학에 정통하게 되어 문간공 금양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온양에 거처를 정하고 조용히 스스로修養하며, 경전을 연구하고 예악을 닦되 밤을 낮과 같이 이어갔다. 이로부터 명성이 날로 떨치고 충청 감사 홍병찬이 문학의 무게가 있다고 하여 조정에 천거하자, 벼슬에 나아가 정령參奉이 되고 직장과 주簿를 역임하였다. 외보로 용인 현감이 되었으나, 그만 내려가 버리고 귀향하였다. 수구를 이유로 동지중추부사로 있다가 취동의 아우 태동 자영열을 후사로 삼았다.
독음
자여오호응와해평인정효공인지오세손부득량유지행문화유장봉녀女士也친수제자학취동조사공령지학전기성리수사문간공금양행지문하서거우온양잠정자수구경연예야이지속화문일창충청감사홍병찬이망중사문천재조봉정령참종역직장주서외보용인현감기귀수사수탁배동지중추부사취중씨태동자영열위후
의미
윤취동(1755~1822)은 해평 윤씨出身으로 정효공 윤인지의 5대손이다. 아버지 득량은 효자로 명성이 있었고, 어머니 유씨도 교육에熱心한 인물이었다. 취동은 과거 공부 대신 성리학을 연구하며 금양행 문하에서 수학하고, 온양에서隐居하며 경전과 예악을 닦았다. 명성이 높아져 홍병찬 감사에게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랐으나, 용인 현감 재임 중 스스로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이후 수구(고령)로 동지중추부사에 나아가기도 하였으며, 후사가 없는 자신을 위해 아우 윤영열의 아들 태동을 후사로 삼았다. 묘지文中의 기록이다.
원문
字汝五號凝窩海平人貞孝公履之五世孫父得良有至行娶文化柳長鳳女女士也親授諸子學聚東早謝功令之學專精性理首事文簡公止菴金亮行之門卜居于溫陽潛靖自修劬經硏禮夜以繼晝自是華聞日暢忠淸監司洪秉瓚以望重斯文薦于朝拜貞陵參奉歷直長主簿外補龍仁縣監棄歸以壽擢拜同知中樞府事取仲氏台東子英烈爲後[주:墓誌]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취동 / 尹聚東, confidence=1.0
- person: 윤인지(정효공) / 尹履之, confidence=1.0
- person: 윤득량 / 得良, confidence=1.0
- person: 유장봉 / 柳長鳳, confidence=1.0
- person: 금양행(문간공) / 金亮行, confidence=1.0
- person: 홍병찬 / 洪秉瓚, confidence=1.0
- person: 윤영열(태동) / 尹英烈, confidence=0.95
- place: 해평(해평 윤씨) / 海平, confidence=1.0
- place: 온양(온양군) / 溫陽, confidence=1.0
- place: 용인(용인군) / 龍仁, confidence=1.0
- place: 문화(문화군) / 文化, confidence=0.9
- office: 정령참봉 / 貞陵參奉, confidence=1.0
- office: 직장 / 直長, confidence=1.0
- office: 주簿 / 主簿,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동지중추부사 / 同知中樞府事,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term: 공령(과거 규정) / 功令, confidence=0.95
- term: 지행(지극한 효행) / 至行, confidence=0.9
- term: 성리학 / 性理, confidence=1.0
- work: 묘지 / 墓誌,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女士也의 全句文意가 다소晦澁하여 정확한 句讀과 解釋에 불확실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