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인물지 [國朝人物志n1-3책] - 본문 번역 묶음 007
- 책 ID:
kh2_je_a_vsu_B9C^2_000
- 수록 기사: 75건
(중종조)홍계정
- 기사 ID:
B9C^2_001_082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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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2:49:15.95612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24
한글 번역
자의는叔幹이고, 남양 출신이다. 사성(교관)의 손자 경손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윤덕으로, 文科副正 벼슬을 했다. 고령의 부사 신송주의 딸을 취했다. 계정을 낳았는데, 무오년에 생원시험에 합격하고, 계유년에 文科 과거에 합격했다. 교관을 기다릴 정도로 재주가 있었으나 등용이 늦었고, 늦게 등용된 만큼 서거가 빨라 사흘 모두 애석해하였다. 아들은 春卿과 春年이다.
독음
자叔간 남양인 사성경손지손 부윤덕문과부정 취부사고령신송주녀생계정 무오생원 계유문과 대교유재이기진만 만진이기서거거 인개석지 자춘경춘연
의미
홍계정의 가계와 학력, 출세 경위를 적은 인물 기록이다. 사성 벼슬人家的 명문 출신으로, 文科 과거에 합격했으나 관리 등용이 늦어졌고, 서거하기까지 이르렀다. 아들 春卿과 春年이 있었다.
원문
字叔幹南陽人司成敬孫之孫父閏德文科副正娶府使高靈申松舟女生係貞戊午生員癸酉文科待敎有才而其進晚晚進而其逝遽人皆惜之子春卿春年[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홍계정 / 洪係貞, confidence=1.0
- person: 홍叔간 / 洪叔幹, confidence=1.0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0.9
- person: 경손 / 敬孫, confidence=0.9
- person: 윤덕 / 閏德, confidence=0.9
- office: 문과부정 / 文科副正, confidence=0.8
- person: 신송주 / 申松舟, confidence=0.9
- place: 고령 / 高靈, confidence=0.8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8
- person: 춘경 / 春卿, confidence=0.9
- person: 춘연 / 春年,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待敎: ‘대교’는 관직명 待敎(기다리는 교관직)일 수 있으나, 中央官職과의 연결이 불확실
- 系든係: 제목의 係을 계정으로 읽었으나, 한자음계 또는 고유음都有可能
(중종조)홍춘경
- 기사 ID:
B9C^2_001_082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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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8:18:57.79683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25
한글 번역
자는 명중이고 호는 석벽이다. 정자의 아들이며 경인년에 생원이 되었고, 무자에 문과에 합격했으며, 갑신년에 중시에 합격했다. 황해도 관찰사가 되었다. 문학으로 이름이 났다. 성품이 효순하고 우애롭고 강직하여 세상이 변천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고요히 조용히 문을 닫고 권문세가가의 발자취를 밟지 않았다. 서로 안 건은 오직 송규菴과 린수뿐이었다. 옥서에서 글을 올려 금안로를 논박할 때, 당시掖庭에서 저주가 드러났다. 안로가 스스로 변을 선포하니 박귀인이狱에다 그를 단련시켜 옥에 가둔 것이다. 사간원 대사간 송순만이 불가하다고 했으나斥責받았다. 홍춘경이 당황하여 그를 변호한 끝에 결국 옥에 갇히고 벼슬을 박탈당했다. 1년이 지나서 관용을 내렸다. [주: 인물考] 아우 홍춘년은 자가 화중이고 호가 치암이다. 갑오년에 생원이 되고 진사가 되었으며, 을미년에 문과에 합격했다. 강원도 감사가 되었다. [주:국朝榜목]
독음
자 명중 호 석벽 계 정자 인오 생원 무자 문과 병신 중시 황해도 관찰사 문학으로 명성 효우 강직 세변 이심 불변 포정掩扉 부적 권귀가 상지 유 송규菴 린수 재 옥서 첩론 금안로 사 시掖庭 저주 현 안노 전선 언변 유 박귀인 단련 성狱 사감 송순 독 불가 피斥 공면 신지 경하옥 탈고신 유여년 명서
의미
홍춘경(字 明仲, 號 石壁)은 조선 중종 때 문과에 합격하고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관리이다. 효우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문名을 얻었으며, 금안로(金安老)의 죄를 논박하다가 관련된 사건에 휘말려 옥에 갇히고 관직을 박탈당했으나 1년 후 복직되었다. 아우 홍춘년(字 和仲, 號 癡巖)도 과거에 합격하여 강원도 감사가 되었다.
원문
字明仲號石壁係貞子壬午生員戊子文科丙申重試黃海道觀察使以文學名性孝友剛直世變而心不變飽靜掩扉不跡權貴家相知惟宋圭菴麟壽在玉署箚論金安老事時掖庭詛呪現安老專宣言變由朴貴人鍛鍊成獄司諫宋純獨不可被斥公面伸之竟下獄奪告身踰年命敍[주:人物考]弟春年字和仲號癡巖甲午生員進士乙未文科江原監司[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춘경 / 洪春卿, confidence=1.0
- person: 홍춘년 / 洪春年, confidence=1.0
- person: 금안로 / 金安老, confidence=1.0
- person: 송순 / 宋純, confidence=1.0
- person: 송규암 / 宋圭菴, confidence=0.9
- person: 박귀인 / 朴貴人, confidence=0.9
- person: 린수 / 麟壽, confidence=0.8
- place: 황해도 / 黃海道, confidence=1.0
- place: 강원도 / 江原道, confidence=1.0
- place: 역정 / 掖庭, confidence=0.9
- office: 관찰사 / 觀察使,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office: 옥서 / 玉署, confidence=0.9
- office: 사간 / 司諫,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김인경
- 기사 ID:
B9C^2_001_082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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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8:19:39.84270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27
한글 번역
자(字)는 경유, 광산 사람이다. 공안공 겸광의 증손자. 7세에 중종의 서녀인 효순 옹주를 배우고, 광천위(光川尉)에 봉했다. 정해년(1527)에 옹주의 어머니인敬嬪 박씨가灼鼠의화를 당하자 상주로 추방되었다. 계사년(1533)에 김안로가 그 옥을 다시 일으켜 唐城尉 홍려를 몽둥이로 죽이고, 다시 박씨와 아들 福城君 미를 죽였다. 公은 서천으로 유배되고, 갑오년(1534)에 公州로 이배되고, 정유년(1537)에 김안로가 참수되어 비로소 풀려나 관작을 회복했다. [주: 인물考]
독음
자 경유 광산인 공안공 겸광 증손자 생칠세 상중종녀혜순옹주 봉광천위 정해 옹주모경빈박씨 조작서화祸 체어상주 계사 김안로부기 기狱 장살 당성위 홍려谋杀 박씨급자 복성군 미 공 점어서천 갑오량이 공주 정유 안로복도 견방 부작
의미
김인경(字 경유)은 광산 사람으로, 7세 때 중종의 서녀 효순 옹주와 혼인하여 광천위에 봉해졌다. 1527년 옹주의 어머니 경빈 박씨가灼鼠사건에 연좌되어 함께 상주로 추방되었다. 1533년 권신 김안로가 이 사건을 다시 핑계로 내세워 홍려(唐城尉)를 비롯하여 박씨와 아들 福城君 미를 죽이고, 김인경은 서천으로 유배되었다. 1534년 公州로 이배되었으며, 1537년 김안로가 처형되자 풀려나 관작을 회복했다. 본문은 인물考에서 발췌한 것이다.
원문
字景裕光山人恭安公謙光曾孫生七歲尙中宗女惠順翁主封光川尉丁亥翁主母敬嬪朴氏遭灼鼠之禍黜于尙州癸巳金安老復起其獄杖殺唐城尉洪礪又殺朴氏及子福城君嵋公謫于舒川甲午量移公州丁酉安老伏誅見放復爵[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인경 / 金仁慶, confidence=1.0
- person: 효순옹주 / 惠順翁主, confidence=1.0
- person: 경빈 박씨 / 敬嬪朴氏, confidence=1.0
- person: 김안로 / 金安老, confidence=1.0
- person: 홍려 / 洪礪, confidence=1.0
- person: 복성군 미 / 福城君嵋, confidence=1.0
- place: 광산 / 光山, confidence=1.0
- place: 상주 / 尚州, confidence=1.0
- place: 서천 / 舒川, confidence=1.0
- place: 공주 / 公州, confidence=1.0
- office: 광천위 / 光川尉, confidence=1.0
- office: 당성위 / 唐城尉,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灼鼠之禍(작서지화) - 정확한 사건 성격과灼鼠의 실체가 불분명
(중종조)구한
- 기사 ID:
B9C^2_001_082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2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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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2:02:04.53885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28
한글 번역
자(字)는 태초이고, 능성(綾城) 사람으로 능천군(綾川君) 수영의 손자이다. 나이가 열한 살 때 중종(中宗)의 딸 숙정옹주(淑靜翁主)를 아내로 맞이하여 능창위(綾昌尉)에 봉해졌다. 총기가 뛰어나 보통 사람과 달랐으며,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글을 읽는 것을 알았다. 그림 묘사의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능히 그 묘리를 다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한번은 대내(大內)에 불러들여 지어오라는 절구(絶句)를 명령받았는데, 명령을 받자 바로 지어냈다. 마치 뜻에 걸리지 않은 듯하면서도 시의 문지(文詞)와 풍치가洒脱(사탈)하였다. 중종이 이를 보고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주: 인물고]
독음
자유태초명은인름천군수영손년십일상중종녀숙정옹주봉앵창위영수이범자독서불번제사지회사지미무불곡진기묘창소입대내명제절구승명립취약불경의이자치사脱중종대기지의[주:인물고]
의미
조선 중종 때 인물 구한(具澣)의早年 전기이다. 능천군 수영의 손자로 열한 살에 중종의 딸 숙정옹주를 맞이하여 능창위에 봉해졌다. 총기가 뛰어났으며 독서를 스승의 지적 없이도 스스로 할 수 있었고, 그림 묘사에도 뛰어났다. 궁정에 불려가 절구를 지으라는 명을 받자 곧바로 완성했는데, 시의 품격이洒脱하여 중종이 크게 감탄하였다. 영리한童年의 인재상이 담긴 기록이다.
원문
字太初綾城人綾川君壽永孫年十一尙中宗女淑靜翁主封綾昌尉穎秀異凡自知讀書不煩提撕至於繪事之微無不曲盡其妙嘗召入大內命製絶句承命立就若不經意而詞致洒脫中宗大奇之[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구한 / 具澣, confidence=1.0
- person: 자유태초 / 字太初, confidence=1.0
- person: 능천군수영 / 綾川君壽永, confidence=1.0
- person: 숙정옹주 / 淑靜翁主, confidence=1.0
- person: 중종 / 中宗, confidence=1.0
- place: 능성 / 綾城, confidence=1.0
- office: 능창위 / 綾昌尉,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소세량
- 기사 ID:
B9C^2_001_082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2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18:20:10.86833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29
한글 번역
자( 字 )는 원우( 元友 )이고, 호( 號 )는곤암( 困庵 )이니 또 호는 병암( 屛巖 )이다. 진주( 晉州 ) 사람으로, 세양( 世讓 )의 형이다. 을묘( 丁卯 )년에 생원( 生員 )에 합격하고 문과( 文科 )에 급제하여 한림원( 翰林院 )과 대사간( 大司諫 )을 역임하였다. 당시에 선비들의 학문 풍기가 조급하게 성공을 쫓는 데만 급급한 것을 성스럽게 여겨, 이를 가리켜 “세상을 속이고名声을 탐내는 것”이라 규탄하며, 간쟁하는 상소를 올려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에 마음에 내색하지 않는 자들이 계략으로 그를 모함하여 마침내 나주( 羅州 ) 등 지역에 좌천되었다. 이후 용담현령( 龍潭縣令 )에 보직되어 백성을 아끼되 자식처럼 여기고, 그간의 간혹한 금령을 모두 없앴다. 봄날의 냇가와 바위 사이에서 웃으며 초연하게 노닐되, 마치 마음에 두지 않는 듯하였다. [주: 인물고]
독음
자유원우호곤암우호병암진주인세양형병진생원정묘文科력한림대사간분시대지식식오어조진지도이欺世盜명항소불휘불월자이계중지내출보용담현령애민여자진거고금소오천석약불경의[주:인물고]
의미
조선 중종 연간 인물인 소세량(蘇世良)의 인물 기록이다. 진주 출신으로 세양의 형이며 을묘년에 급제하여 한림과 대사간을 지냈다. 당대 선비들의 조급한 출세 풍기를 성토하며 간쟁 상소를 올렸다가, 이에 불쾌한 세력이 계략으로 그를 모함하여 용담현령으로 좌천되었다. 현령 재임 시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가혹한 금령을 철폐했으며, 초연하고 초탈한 태도로 현직을 수행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원문
字元友號困庵又號屛巖晉州人世讓兄丙辰生員丁卯文科歷翰林大司諫憤時之士習騖於躁進指以欺世盜名抗疏不諱不悅者以計中之乃出補龍潭縣令愛民如子盡去苛禁笑傲泉石若不經意[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소세량 / 蘇世良, confidence=1.0
- person: 세양 / 世讓, confidence=0.9
- person: 원우 / 元友, confidence=1.0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1.0
- place: 용담 / 龍潭, confidence=1.0
- office: 한림 / 翰林, confidence=1.0
- office: 대사간 / 大司諫, confidence=1.0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항소 / 抗疏, confidence=0.9
- term: 세상을속이고명성을탐냄 / 欺世盜名, confidence=0.95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又號屛巖
- 屛巖이 병암(屛巖)인지 병암(屛巖)인지 불확실
- 以計中之
- 중계의 구체적 내용이 원문에 없어 구체적 수단 불확실
- 笑傲泉石
- 현악(泉石)이 자연 속에서의 초탈한 삶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해석
(중종조)정순
- 기사 ID:
B9C^2_001_083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3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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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8:19:54.01535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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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노천이다. 일인(日人) 판서 연(淵)의 현손(玄孫)으로서, 정유(丁酉)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천거로 평직(持平)에 임명되었다. 경오(庚午)년에 문과 판결사(判決事)를 지냈다. 성품이 너그럽고 후하며, 화려한 것을 싫어하고 검소하게 사귀었다. 직무에서 돌아온 뒤에는 조용히 앉아 마치 수도修行者처럼 지냈다. 손님이 와면 비록 비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의를 다 갖추어 대접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始至终 끝까지 성실하고 근면하였다. 아들을 잃고 후손이 끊어졌으나 한탄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병이 위중해지자 여러 딸들이 둘러앉아 시중들자, 웃으며 말하기를 “내 딸들은 다 단정하구나!” 하였다. 부인이 뒤일을 묻자 대답하지 않았다. 그,这位人物的 태연하고 운명에 맡기는 성품을 이와 같이 평가하였다.
독음
자 노천영일인판서연현손정유진사천위평직경오문과판결사성관후염분화간교유공퇴묵좌여재객지수미접진례여관종시근학실자절후불차한질혁제녀환시소왈오여개단정인부인문후사불답기이황임운여차
의미
중종조 관리 정순의 인물기로, 판서 연의 현손으로서 정유년에 진사 급제, 경오년에 문과 판결사를 지냈다. 성품이 너그럽고 검소하며 손님에게 예의를 다하고 관직에서 끝까지 성실했던 인물이다. 아들을 잃고 후손이 끊어졌으나 한탄하지 않았고, 병危及之时 딸들이 단정하다고 웃으며 말한 뒤 부인의 묻기에 답하지 않은 것이 그夷曠任運한 성품을 보여준다.
원문
字老泉迎日人判書淵玄孫丁酉進士以薦爲持平庚午文科判決事性寬厚厭棼華簡交遊公退默坐如齋客至雖微接盡禮莅官終始勤恪失子絶後不嗟恨疾革諸女環侍笑曰吾女皆端正矣夫人問後事不答其夷曠任運如此[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순 / 鄭洵, confidence=1.0
- person: 노천 / 老泉, confidence=1.0
- person: 연 / 淵,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평직 / 持平, confidence=1.0
- office: 판결사 / 判決事, confidence=1.0
- term: 정유 / 丁酉, confidence=1.0
- term: 경오 / 庚午,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迎日人判書淵玄孫(일인(日人) 판서 연의 현손)
- 夷曠(이황)
(중종조)이운
- 기사 ID:
B9C^2_001_083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3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4:13:14.01843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31
한글 번역
표자는仲野이고 한산출신이다. 자(李耘)의 형제로 을묘년에 진사에 급제한人物考] 신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참의에 이르렀다. 공에게는 형제가 모두 네 사람인데, 모두 문학으로 인한 명망과 지节으로 사림에서 함께 추대하였다. 공은 기개가慨하고 어린 시절부터 허락함이少었으나, 時態에 굽신거리지 않았다. 陰崖같은 器識으로沈厚醇和坦易하였으니, 비록 소就和함이 같지 않았으나 모두 사림에서 존중받았다.
독음
자 중야 한산인 자의 형 을묘진사 신유문과 공조참의 공형제사인개이문학지절제추
의미
이 기사는 조선 중종조 관료 李耘(공)의 인물 현황을 수록한 것으로, 한산 출신으로辛酉년 문과 급제하여工曹參議에 오른 인물이다. 네 형제 모두 문학적 소양과 절의로 사림에서 존경받았으며, 공은 특유의 억센 기개와 겸손하지 않는 성품을 지니면서도 깊고 순후한器識으로 사림에서 추앙받은 인물임을 보여준다.
원문
字仲野韓山人耔兄乙卯進士辛酉文科工曹參議公兄弟四人皆以文學志節齊推公氣抗少許可不肯俯從時態陰崖器識沈厚醇和坦易雖所造不同俱爲士林所重[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운 / 李耘, confidence=0.95
- person: 중야 / 仲野, confidence=0.9
- place: 한산 / 韓山, confidence=0.95
- person: 자 / 耔, confidence=0.9
- person: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85
- office: 공조참의 / 工曹參議,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심사손
- 기사 ID:
B9C^2_001_083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3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2:02:57.41856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32
한글 번역
자(임)의 호는 양경(讓卿),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경신(貞子)으로, 계유(癸酉)년에 진사가 되고, 정축(丁丑)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직제학에 승진하였다. 그때 서쪽 오랑캐가畔를 일으키니, 중종(中宗)이 바야흐로 왕의 지모를 기울여 정사를 도모하던 중, 문무(文武)를 모두 갖춘 인재가 아니면 이를控制和防御할 수 없다고 여겼다. 西門(시문)에서 공을 시종(侍從) 가운데에서 발탁하여 특히 만포(金浦) 첨사로 특별 승진시켰다. 공은 발탁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목숨을 바쳐 보답하고자 하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 오랑캐의 정세를 자세히 살폈다. 위엄과 은혜를 함께 베풀어 진의 군사들과 변경의 오랑캐들이 모두 ‘할아버지’라 불렀다. 진에서 오래 재임하면서 변경의 利病을 빠짐없이 알았으므로,民兵에게 편리한 것이면 무엇이든 그 조처를 다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진 중에서 장작 문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江을 건너 장작을 구하는 직무를督察하던 중, 돌연 적에게 습격을 받아 군을 거두어 돌아가려는 순간, 말이 발을 헛디뎌 마침내 물에 빠져 순국하였다. 소식이 전해지자中外가震惊하고, 중종은 名臣을 잃은 것을 슬퍼하며 옷소매를 던지며袂을 던지며甚히悲愤하여 甚至废食했다. 이러한 조치가 여러 날이나 계속되었다. [주: 홍暹이 비문을 지었다] 아들守慶이 있다. [주: 아래를 참조]
독음
자양경 풍산인 정자 계유진사 정축문과 직제학 시서리 요흉 중종방 로예산 이에위비문무전재 막가공어 시종중 특별 승 만포첨사 공감격 지우 사효일사 단갈 정신 심사려정 위혜병저 진병번호개 호위 아재재 재진 기구 비찰변상 이병 범이가便民於兵民 무불진책처 진중窘於薪樵 친솔군 과강 독취 소재 축즉 졸우 점발육 수군환도 마졸 경우해해 사문 중외 진경 중종 뇌 실명신 위지 두송지서 수일 자 홍점 찬비
의미
중종조 직장관리 심사손의 평전이다. 풍산 출신으로 계유년 진사, 정축년 문과 합격 후 직제학에 올랐다. 서쪽 오랑캐의 침입이 일자 중종은 문무 양재의 인물로 만포 첨사에 특채했고, 심사손은 은혜에 감사하여邊防에 힘을 다했다. 위엄과 은혜로 군사와 변경 주민들의敬慕를 받아 ‘할아버지’로 불렸다. 장작 부족问题时 군사를 이끌고 江을 건너 장작을 구하는 감독 작전에 나섰다가 적의 습격을 만나군대를 물러가려다 말이 헛디뎌 물에 빠져 순국했다. 소식이 전해지자中外가震惊하고, 중종은 명신을 잃은的痛苦으로 옷소매를 던지며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悲愤했다. 홍暹이 비문을 찬술했으며, 아들守慶이 있다.
원문
字讓卿豐山人貞子癸酉進士丁丑文科直提學時西虜搆釁中宗方勞睿算以爲非文武全才莫可控禦西門拔公于侍從中特陞滿浦僉使公感激知遇思效一死殫竭精力審察虜情威惠幷著鎭兵藩胡皆呼爲爺爺在鎭旣久備悉邊上利病凡可以便於民兵無不盡其措處見鎭中窘於薪樵親率軍渡江督取柴之役猝遇賊虜狙發欲收軍還渡馬蹶竟遇害事聞中外震驚中宗悼失名臣爲之投袂至於廢食者屢日[주:洪暹撰碑]子守慶[주: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심사손 / 沈思遜, confidence=0.95
- person: 자(임) / 字, confidence=0.85
- person: 양경 / 讓卿, confidence=0.95
- place: 풍산 / 豐山, confidence=0.95
- person: 자(호) / 字, confidence=0.85
- person: 홍점 / 洪暹, confidence=0.95
- person: 수경 / 守慶, confidence=0.9
- office: 직제학 / 直提學, confidence=0.95
- office: 만포첨사 / 滿浦僉使, confidence=0.95
- person: 중종 / 中宗, confidence=0.95
- term: 서쪽 오랑캐 / 西虜, confidence=0.9
- term: 할아버지 / 爺爺, confidence=0.85
- place: 만포 / 滿浦, confidence=0.9
- work: 비문 / 碑,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西門(직제학 재직 시 왕이办公하던門堂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음)
- 蹶竟遇害(말이헛디디어 물에 빠진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溺水 경위 불확실)
- 備悉邊上利病(変更의得失를 빠짐없이 알았다는 표현,邊政制度 구체적 내용 미확인)
(중종조)박세옹
- 기사 ID:
B9C^2_001_083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3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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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8:20:38.13316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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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경운, 함양 사람이다. 감찰(官職)의 딸손(義孫)의 증손(曾孫)이다. 을묘년에 생원이 되었고, 진사가 되었으며, 을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참의에 오랐다.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 그가 아직 어리고 홀로이며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어 특별히 좋은 전지를 골라 주었다. 그가 대관이 되어 그 전지를 본가(宗家)에 돌려 제사 지낼 데 쓰게 하였는데, 이를 듣고 난 자들이 그의 효성을 훌륭하다고 여겼다.
독음
자 경운 함양인 감찰의 딸손의 증손을묘년생원 진사을유문과 이조삼의 부상将近 곤 고약 무의 별 견 양전 여지 및 위 달관 속기 전田 종가 비 공 제사 문자고지
의미
조선 중종 때 관리였던 박세옹의 행적을 적은 기사로, 그가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좋은 전지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뒤, 대관에 오르자 그 전지를 본가에 돌려 가문의 제사 비용으로 쓰게 했다는 내용이다. 어려서 홀어닐 때의 불쌍한 처지와 대관 출사 후의 효행이 대비되며, 이를 듣고 사람들이 그의 효성을 칭송한 것이 핵심이다.
원문
字景雲咸陽人監察義孫曾孫乙卯生員進士乙酉文科吏曹參議父將終憐公孤弱無依別揀良田與之及爲達官屬其田宗家俾供祭祀聞者賢之[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세옹 / 朴世蓊, confidence=0.95
- person: 경운 / 景雲, confidence=0.95
- place: 함양 / 咸陽, confidence=0.95
- office: 감찰 / 監察, confidence=0.9
- office: 이조삼의 / 吏曹參議, confidence=0.9
- person: 의손 / 義孫, confidence=0.8
- person: 증손 / 曾孫, confidence=0.9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
- term: 종가 / 宗家, confidence=0.9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감찰義孫曾孫의 구체적 계통 관계 해석
- 달관(達官)의 구체적 관직 명칭
(중종조)김백순
- 기사 ID:
B9C^2_001_083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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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2:03:36.51517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35
한글 번역
자는 순지, 위성 출생이다. 기묘년에 생원이 되고, 무자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을 역임했다. 여러 제자가 되었을 때 경학을 연구하여 꽤 정밀하였다. 사료를 선발할 때 맨 먼저 뽑혔고, 다시 섬거(임금의 특명으로 추천받음)를 받아 특별히麟山僉使에 임명되었다. 금령을 간소하고 엄격하게 하여奸民이 즉시 물러갔다. 변경 백성의 아이들을 모아 경사를 가르쳤는데, 문雅한 모습이 볼 만하였다.義州判官이 되어 화북(중국)과 대비할 때 힘을 다하여 응접하였으며, 그때그때 일을辦治하였다. 공무之余 빈객들과 시를 짓고 활을 쏘며 밤새도록 즐겼는데, 前後6년에 해당하여 마땅히 오래 머물렀다는 서글픔이 있을 만하였으나, 오히려 마골裏尸의 뜻을 떨쳤다. 任이 만하여召還되어承旨에 취임하였다. [주:国朝榜목에 따르면煕川人이라고 하였다.] 희천군에게 지혜가 있었으니, 증손이 이어받아威川君에 습봉되었다.
독음
자순지위성인 기묘생원 무자문과 역검열 자위제생치경파정 급선사유수출기선 부잉섬거특수인산첨사 금지간숙간민돈집 변민자제교이경사 빈빈和歌관 及위역주접화비밀력응접 수시변치 공정여빈료교사시관 대조수미륙년 기대반유체 서관지탄이 반멸력마격괄시지지기임만징환배승지(国朝榜목운희천인) 희천군유치증손습봉위천군
의미
김백순의 증손이威川君에 습봉되었고, 그 기원이 희천군(煕川君)에 있음이 판명된다는 내용의 주석附記가 本文 끝에 붙어 있다. 本文에서는 백순이 생원·문과 급제 후 검열을 지내고,麟山僉使로 부임하여 정치와 교육에成效을 거둔 뒤,義州判官으로6년간 화북 대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经过了 기술되어 있다.
원문
字淳之威城人己卯生員戊子文科歷檢閱自爲諸生治經頗精及選師儒首被其選復膺僉擧特授麟山僉使禁令簡肅姦民頓戢聚邊民子弟敎以經史彬彬可觀及爲義州接華備虜罄力應接隨事辦治公餘與賓僚較射賦詩歡飮達朝首尾六年宜報留滯玉關之歎而反勵馬革裹尸之志任滿徵還拜承旨[주:國朝榜目云煕川人]煕川君有智曾孫襲封威川君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백순 / 金伯醇, confidence=0.95
- person: 희천군 / 煕川君, confidence=0.9
- person: 위천군 / 威川君, confidence=0.9
- place: 위성 / 威城, confidence=0.85
- place: 인산 / 麟山, confidence=0.8
- place: 주주 / 義州, confidence=0.95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0.95
- office: 첨사 / 僉使, confidence=0.9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5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0.85
- term: 자(호) / 字,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사유(학식 높은 선비) / 師儒, confidence=0.8
- term: 섬거(특명 추천) / 僉擧, confidence=0.75
- term: 경사(경전과 역사서) / 經史, confidence=0.9
- term: 마격과시(전장에서 싸우다 죽음) / 馬革裹尸, confidence=0.8
- term: 습봉(봉호를 대물림받음) / 襲封,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較射(교사) - 시문 상호 검교의 의인지 활쏘기之意인지 분명치 않음
- 侵封(습봉) - 문맥상 이어받음으로 읽으나 원자가 侵字인 점 미해소
- 國朝榜目(국조방목) - 과거 합격자 명부로서의 구체적 문헌 확인 필요
(중종조)남세준
- 기사 ID:
B9C^2_001_083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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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4:13:42.25894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36
한글 번역
자(호)는 정경이며, 의녕 사람으로 지(智)의 증손이다. 경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참판이 되었다. 아우 세웅의 자는 국가이고, 계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삼판이 되었다. 아우 세건의 자는 백순이고, 정묘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갑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이 되었다. 세건의 아들 응운의 자는 치운이고 호는 국창으로, 전서(篆文)에 능하였다. 신축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을미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삼판이 되었다. 응운의 아우 응룡의 자는 경림이고 호는 이악당이며, 을미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삼판이 되었다. 형제가 모두 옥같은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국조방목]
독음
자정경 의녕인 지증손 경오문과 이부삼판 아제 세웅 자국건 계유문과 삼판 아제 세건 자백순 정묘진사 갑신문과 대사헌 세건자 응운 자치운 호국창 선전문 신축진사 을미문과 삼판 응운 아제 응룡 자경림 호이악당 을미진사문과 삼판 형제연벽
의미
이 기사는 조선 중종조 문과 급제자 남세준 일가의 세대를 추적한 기록이다. 남세준은 의녕 출신으로 경오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삼판에 올랐고, 두 아우 남세웅과 남세건도 각각 문과에 합격하여 삼판과 대사헌 등 요직을 역임했다. 특히 남세건의 아들 남응운과 남응룡 형제도 연달아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모두 삼판에 이르렀으며, 전서에 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조방목에서 ‘형제연벽(兄弟聯璧)’이라 수록한 것은 이처럼 여러 세대에 걸쳐 형제가 모두 급제하여 뽐내는 옥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이다.
원문
字正卿宜寧人智曾孫庚午文科吏曹參判弟世雄字國幹癸酉文科參判弟世健字伯順丁卯進士甲申文科大司憲世健子應雲字致雲號菊窓善篆文辛卯進士乙未文科參判應雲弟應龍字景霖號二樂堂乙未進士文科參議兄弟聯璧[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남세준 / 南世準, confidence=0.95
- person: 남세웅 / 南世雄, confidence=0.95
- person: 남세건 / 南世健, confidence=0.95
- person: 남응운 / 南應雲, confidence=0.95
- person: 남응룡 / 南應龍, confidence=0.95
- place: 의녕 / 宜寧, confidence=0.95
- office: 이부삼판 / 吏曹參判, confidence=0.95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office: 삼판 / 參判, confidence=0.95
- term: 연벽 / 聯璧,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5
(중종조)김서성
- 기사 ID:
B9C^2_001_083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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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2:51:10.85595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37
한글 번역
자(아호)는 응경이다. 부안 사람으로, 정언 직손의 손(4대손)이다. 을유년에 태어나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급제하였다. 간결하고 무거우며 말이 적었다. 학문에 날카로우며 부지런히 힘썼다. 기개와 태도가 한량하여 초연히 세상 밖의 풍모가 있었다. 사람의 명망을 받으면 곧 장래가 깨끗하고 올바른 선비임을 알 수 있었다. 담담하게 스스로를 지키며 세력이나 이해관계와 사귀지 않았으니, 이는 그의 가법이 원래 그러하였다. 나주목사로 나갔다.[주: 인물고]
독음
字應卿扶安人正言直孫之孫乙酉生員文科簡重寡言銳於學問孜孜不怠氣度閒遠超然有物外之表人望之卽知爲淸修吉士恬淡自守不交勢利其家法然拜羅州牧使[주:人物考]
의미
김서성은 중종조 부안 출신의 문과 급제자이다. 정언 직손의 4대손으로 을유년생이다. 간중하고 말이 적으며 학문에 열심이고, 초연한 풍모가 있었다. 깨끗한 식견과 올바른 행실로 사귀는 이가 없었던 인물로, 결국 나주목사로 부임하였다.『인물고』에 수록된 인물이다.
원문
字應卿扶安人正言直孫之孫乙酉生員文科簡重寡言銳於學問孜孜不怠氣度閒遠超然有物外之表人望之卽知爲淸修吉士恬淡自守不交勢利其家法然拜羅州牧使[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서성 / 金瑞星, confidence=1.0
- person: 응경 / 應卿, confidence=1.0
- place: 부안 / 扶安, confidence=0.95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0.9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5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정언 직손의 직손(4대손)이 정확하게 맞는지 여부,『인물고』의 정확한 편찬 연대와 저자
(중종조)이원손
- 기사 ID:
B9C^2_001_083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3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1:29.30608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38
한글 번역
이원손, 자는 자장, 전의 출신으로 감역이라는 사람의 아들이다. 임오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임진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삼각(三賞)을 지냈다. 문장이 화려하여 그 명성이 날로 높아졌다. 대성(臺省)에 있을 때 혼탁한 것을 끌어내고 맑은 것을 드날리며, 사람을 거량하고 척핵하되 감히 피하지 않았다. 일찍 윤원형을 탄핵하였으나 그에게 중상을 받아京师 밖으로 보직되었다. 경성에 부임하였다가 곧 平壤 태윤(庶尹)으로 임명되었다. 여러 차례 전직하여淮陽,朔州,原州,義州,星州의 수령을 지냈는데 곳곳에서 혁혁한 명성을 떨쳤다. 평양에는大同江 위에 유애비(遺愛碑)가 세워져 있다. 매춘 가을이면 부윤이 그 비 아래에서 제사지낸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淮陽의 노인들이 나그네를 만나면 자꾸씩 말하기를, ‘우리 고을을 다스린 이는 참으로 많았으나, 이 사군(李使君)을 금강산과 함께 어루<’고 칭송하였다. 금강산이 부윤의 관할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독음
자 자장, 전의인, 감역侃의 아들. 임오년 진사, 임진년 문과에 과목. 삼각(三賞)에 있다. 문장이 화려하여 문음이 날로 크다. 대성(臺省)에 있으면서 혼탁한 것을 끌어내고 맑은 것을 드날리며, 거荐하고 척핵하되 피할 것이 없다. 일찍 윤원형을 척핵하였으나 그에게 중상을 당하여 외직으로 보임되었다. 경성에 차임(下任)하여 차차 평양 태윤(平壤庶尹)이 되었다. 여러 번 전직하여淮陽,朔州,原州,義州,星州에 이르렀는데 모두 혁혁한 소리가 있다. 평양에는 대동강 위에 유애비(遺愛碑)가 있다. 매춘 가을에 부윤(府尹)이 그 비 아래에서 제사지낸다. 공이 돌아가신 뒤에淮陽의 노인들이 손님을 만나면 칡칡이 말하기를, ‘우리 고을을 다스린 이가 많아웠다. 이 사군(李使君)을 금강산과 함께 어루다.’ 하였다. 금강산이 부윤 경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미
조선 중종 연간에 활동한 이원손의 인물 기록이다. 그는 임오년 진사와 임진년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台省에서 清議를 진작하며 윤원형까지 탄핵한 강한 清流로서 평가를 받았다. 그로 인해 윤원형의 중상을 받아地方 관직으로 밀려났으나, 경성·평양 태윤 및 여러 주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모두 혁혁한政绩를 세웠다. 특히 平壤 부윤 재임 시의 치적이 뛰어나大同江 위에 유애비가 세워질 정도로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사후에도淮陽의 노인들이 그를 금강산에 비유하며 기리며, 인물고(人物考)에 수록될 정도로 당대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원문
字子長全義人監役侃子壬午進士壬辰文科參議爲文章華問彌大在臺省激濁揚淸擧劾無所避嘗劾尹元衡被其中傷外補爲鏡城下車旋授平壤庶尹屢遷淮陽朔州原州義州星州皆有赫赫聲平壤有遺愛碑于大同江上每春秋府民祀碑下公沒後淮陽父老遇客吃吃語曰宰吾邑者多矣如李使君常與金剛山竝稱山在府地故云云[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원손 / 李元孫, confidence=0.98
- person: 자장 / 子長, confidence=0.95
- person: 윤원형 / 尹元衡, confidence=0.97
- place: 전의 / 全義, confidence=0.92
- place: 경성 / 鏡城, confidence=0.95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0.98
- place: 훙양 / 淮陽, confidence=0.96
- place: 삭주 / 朔州, confidence=0.96
- place: 원주 / 原州, confidence=0.96
- place: 의주 / 義州, confidence=0.96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0.96
- place: 대동강 / 大同江, confidence=0.97
- place: 금강산 / 金剛山, confidence=0.97
- office: 감역 / 監役, confidence=0.85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office: 삼각 / 參議, confidence=0.9
- office: 대성 / 臺省, confidence=0.9
- office: 태윤 / 庶尹, confidence=0.92
- term: 유애비 / 遺愛碑, confidence=0.93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감역侃子 - 감역侃의 아들로, 감역이 관직명인지 인명인지 불분명
- 文章華問彌大 - 문장이 화려하여 문음이 날로 크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問’ 자의 취입이 불확실
- 使君 - 사군이라는 호칭이 해당 수령을 지칭하는 당시 통칭인지 특정 직책인지 불확실
- 如李使君常與金剛山竝稱 - 금강산과 어루다는 표현의 구체적 의미와 취입이 불확실
- 宰吾邑者多矣 - ‘宰’가 수령 재임 기간을 뜻하는지 사망 후 추모之意인지 맥락이 다소 불분명
(중종조)이도남
- 기사 ID:
B9C^2_001_083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3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1:32.54098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39
한글 번역
자는 대붕, 강양 출생. 전적직에 오르고, 아들은 적자. 병자년 생원에 합격하고, 계사년 문과에 합격하여 동래부사가 되었다. 타고난 자질이 보통과 다르며, 지혜롭고 뛰어나서 사람보다 낫다. 학문을 심화시키고 문장을 닦아 동료들 사이에서 먼저 추앙받았다. 네 차례나 외郡을 거치면서 백성을 다스릴 때 번잡한 것을 제거하여 늘 은혜로운 명성이 있었다. [주: 인물고]
독음
자대붕 강양인 전적적자 병자생원 계사문과 동래부사 생질이범 준맥과인 종학적문 재배추선 사치외군 임민거번 다유혜성[주:인물고]
의미
조선 중종조 관료 이도남의 행적을 수록한 인물고 문헌. 어려서부터 재능이 출중하여 동료들 사이에서 으뜸이었으며, 문과에 합격한 후 동래부사를 역임했다. 네 번이나 외郡을 다스리며 백성에게麻烦了을 제거하는 정치를 펼쳐 은혜로운 명성을 남겼다.
원문
字大鵬江陽人典籍迪子丙子生員癸巳文科東萊府使生質異凡俊邁過人種學績文儕輩推先四莅外郡臨民祛煩多有惠聲[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도남 / 李圖南, confidence=1.0
- person: 적자 / 迪子, confidence=0.9
- place: 강양 / 江陽, confidence=1.0
- office: 전적 / 典籍, confidence=1.0
- office: 동래부사 / 東萊府使,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種學績文: ‘종학’ 부분이 ‘種學’인지 ‘種學’ 오류인지 불확실. 문맥상 종학(학문을 심화시키다)으로 보이나 확신 없음
- 四莅外郡: 네 번 외郡을 거치였다는 의미로 해석, 四가 관직 임기 수인지 본문에서 명확하지 않음
- 臨民祛煩: ‘祛煩’을 번거로운 것을 제거하다로 해석, 원문 인용이 불완전하여 정확한 뜻이 불확실
(중종조)류숭조
- 기사 ID:
B9C^2_001_084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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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2:04:45.10097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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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종효(宗孝), 호(號)는 진일재(眞一齋). 전주인으로서 서령의 아들이다. 임진(壬辰)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성종(成宗) 기유(己酉)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검阅(檢閱)에 보임되었다. 관직을 차례로 승진하여 성균관사(知成均館事)에 이르렀다. 경학에 정통하고 사람을 가르치기에 힘썼으며, 명을 받들어 칠서(四書)諺解를 편찬하고 연산군에게 구연(口讀)했다. 연산군에게 강直하게 상소하여 뜻에违背하여 매질당하고 유배되어 원주에 流되었다. 을인(丙寅)년靖國後召還되어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연산군의 상사에 대해 유숭조는 상소하여 장례에 능히 능儀式을 쓰고 별도 位主를 세워 제사지내며 왕의 시호를 加할 것을 청했다. 그言论은 옛 증거를 들어 지금을证实하여 예의에 매우 합치되었다.柳子光은 논하여 부회하고 经하지 않다 하고鞫할 것을 청하였다.李繼孟은 극력으로 구하다가 그저 파직만 되었다. 임신(壬申)년에 졸하고 시호는 文康이다.
독음
자 종효호 진일재 전주인 서령지성장 임진진사 성종 기유문과 보검열 누적관지 성균관사정 정통경학 근어회인봉명찬집칠서언해구독연산군항소오지장류원주병인정국후소환위 대사성 연산지상에숭조소청장용릉의별립주이제 가이왕시기언거고증금심합리의 유자광론이 부회사경청궐지 이계맹극구구지벌직 임신 졸 시 문강
의미
조선 중종대 문신 유숭조의 전기. 전주출신으로 성종 연간에 문과에 급제한後累官至成均館事了. 경학에 정통하고 교육에 힘썼으며 명을 받아 四書諺解를 编纂했다. 연산군치하에서直言을 올렸다가 처벌받았으나 정국 後召還되어 대사성이 되었다. 연산군 졸시葬礼問題에 대해礼意에 맞는 건의를 했다가柳子光과 논쟁이 벌어졌으나李繼孟의 힘을 받아 파직에 그쳤다. 졸後文康시호를 받았다.
원문
字宗孝號眞一齋全州人署令之盛子壬辰進士成宗己酉文科補檢閱累官至知成均館事精通經學勤於誨人奉命纂輯七書諺解口讀燕山朝抗疏忤旨杖流原州丙寅靖國後召還爲大司成燕山之喪崇祖疏請葬用陵儀別立主以祀加以王諡其言據古證今甚合禮意柳子光論以傅會不經請鞫之李繼孟極救只罷職壬申卒諡文康[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숭조 / 柳崇祖, confidence=1.0
- person: 유자광 / 柳子光, confidence=1.0
- person: 이계맹 / 李繼孟,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place: 원주 / 原州, confidence=1.0
- office: 서령 / 署令, confidence=0.9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0.9
- office: 성균관사 / 知成均館事, confidence=1.0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1.0
- work: 칠서언해 / 七書諺解, confidence=0.9
- term: 임진 / 壬辰, confidence=1.0
- term: 기유 / 己酉, confidence=1.0
- term: 병인 / 丙寅, confidence=1.0
- term: 임신 / 壬申, confidence=1.0
- term: 문강 / 文康,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靖國의 구체적 의미와 시기
- 七書의 정확한所指范围
- 崔山君口讀의 구체적 상황
(중종조)이중호
- 기사 ID:
B9C^2_001_084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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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19:08:58.20350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44
한글 번역
자(字)는 풍후이고 호(號)는 여소재(履素齋)이다. 전주 사람으로 효령대군 보의 현손이다. 자질이 용감하여 매사마다 남보다 뒤처지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며, 문장에 뜻을 두고 글을 지었다.慕齋 김안국이 그를 보고 ‘奇哉(기이하도다), 귀신이 아니면 모든 명경에게 널리 알릴 수 없겠구나’라며 소매에 초고를 넣고 보여주어 그치지 않는 칭찬을 했다. 이로 인해 시的名聲이 크게 떨쳤다. 한번 맹자를 읽다가 ‘사람은 다尧舜이 될 수 있다’는 구절에 이르러 문득 깨닫고, 갑자기 도를 구하고자 하는 뜻을 품었다. 낮에는 외우고 밤에는 생각하느라 잠도 먹지도忘记了. 학문을 깊이 익히고 힘써 실행하여, 늘 남다른驚人之事를 이루었다. 제자를 가르쳐 많이 배출하여 그 시대의 기대와 명망이 두터웠다.退溪李滉公는 그 학문에中道를 넘은 폐단이 있는 듯하다고 말하였다. [주:大東韻玉] 기묘(1519)·을사(1545)년 이후 낙하(京城)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소학을 권학하는 이가 없었으나,仲虎는 문을 닫고 학자를 가르쳤으며, 그 제자 중에 박응남, 박漸, 김謹恭이 있었다. [주:重峯集]
독음
씨 풍후호 여소재 전주인 효령대군 보 현손 자품 용감 매일 사고치 出人後恥励志 위 문장慕齋 김안국견지왈 기재비 귀불 능 변고 명경수초시지칭상 부이지 유시 시명 대진尝读맹자치지인 개 가위 염순수유각개연 유수도지 차별 주송야사 지 침식 두학력행 왕왕 유졀异于 경인지사고 수생 다유 진작 시망 웅중 퇴계 이해공위기학 사유 과중지폐[大東韻玉] 기묘 을사 후락하지인 일무 이소학 권학자仲虎 두문 교회학자 중다유 박응남 박渐进 김근공[重峯集]
의미
李仲虎는 전주 출신 효령대군의 현손으로,字는 풍후이고 호는履素재다.慕齋 김안국의 발굴로 시的名聲을 얻었고, 맹자의尧舜 가능성 사상에 감화되어 도를 구하는 길을 택했다. 학문과 실천에 몰두하며 제자를 많이 배출했으나, 퇴계李滉는 그 학풍에過中之弊가 있다고 우려했다. 기묘·을사년 이후京城에서 소학 권학자가 없었던 시대에仲虎가关门教授를 통해 학술을 전수했으며, 박응남·박漸·김謹恭 등의 제자를 냈다.
원문
字風后號履素齋全州人孝寧大君補玄孫姿稟勇敢每事恥出人後勵志爲文章慕齋金安國見之曰奇哉非鬼不能遍告名卿袖草示之稱賞不已由是詩名大振嘗讀孟子至人皆可以爲堯舜遂有所悟慨然有求道之志晝誦夜思至忘寢食篤學力行往往有絶異驚人之事敎授生徒多有振作時望隆重退溪李公謂其學似有過中之弊[주:大東韻玉]己卯乙巳後洛下之人一無以小學勸學者仲虎杜門敎誨學者衆多有朴應男朴漸金謹恭[주:重峯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중호 / 李仲虎, confidence=1.0
- person: 김안국 / 金安國, confidence=1.0
- person: 이황(퇴계) / 李滉, confidence=1.0
- person: 효령대군 / 孝寧大君, confidence=1.0
- person: 박응남 / 朴應男, confidence=1.0
- person: 박점(박漸) / 朴漸, confidence=1.0
- person: 김근공 / 金謹恭,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place: 낙하(한양京城) / 洛下, confidence=1.0
- work: 맹자 / 孟子,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 work: 중봉집 / 重峯集, confidence=1.0
- term: 과중지폐 / 過中之弊, confidence=0.9
- term: 두문교회 / 杜門敎誨,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慕齋 - 김안국의 호칭으로 추정되나 확인 필요
- 退溪李公의 학평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추가 고증 필요
(중종조)류우
- 기사 ID:
B9C^2_001_084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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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19:09:18.81875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848
한글 번역
자(字)는 양청(養淸), 호는 서봉(西峯)이다. 진주 출신으로 벼슬은 사정(寺正)이었다. 자빈자(自濱子). 어려서 한한전(金宏弼)에게 수학하여 성리학을 깊이 탐구하고 뜻과 행실을 닦았다. 한한전이 화를 당하자 마음으로 상을 삼 년간 지냈다. 그러고는 홀연히 떠나隐거하여 세상에 뜻을 품지 않았다. 어려서 아버지를 일찍 잃어 매우 가난하였으나, 스스로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하였고, 후학을 가르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이름을 날린 선비들이 많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대동운옥] 연산 갑자(1504)년에 불러 승정원에 세워 묻기하였으나 곧 그만罷職하였다. 그때 나라 정사가 어지러워 문학 인재를 불러들이는 때가 아니었으므로, 사람들 모두 두려워하였으나 마침 화를 입지는 않았다. [성제원이 지은 묘갈명] 승정원에서 才學을 시험하는 모임이 있었으나 연산주가 이것을 잊고 다시 소환하지 않았다. 나가면서도 여섯하여 슬퍼하고, 그琴을 부수고 붓을 끊었으며, 나아가 자제들에게 배우지 말 것을 경계하였다. [기재잡기] 이상은 중종조의 하나이다. 国朝人物志가 여기서 끝난다.
독음
자양청호서봉진주인사정자빈자소수업우한한전금홍혁궁탐성력역행급한한피화심상삼년수호연고턴뫼의어세조과란심재지어궁피심념甚躬취양모이훈후진위기임명저지사다출기문[대동윤옥]연산갑자소제시승정원문기소학이罢우시국정방란비초연문학지진인개위공경궐불급화[성제원撰墓碣]정원시재회연산주망지불갱소우기어유손연훼금절필차급자제물습[기재잡기]이상중종조일국조인물지의종
의미
류藕는 진주 출신으로, 금홍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우고 그 은사를 깊이 따랐다. 금홍혁이 화를 당하자 3년간 마음으로 상을 지내고 세상으로부터 물러났다. 어려서 가난하였으나 어머니를 봉양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연산군 시대 갑자년(1504) 왕이 그를 불러 승정원에서도 시험하였으나 곧 파직시켰다. 나라 정사가 어지러워 인재 등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였기에 화를 면하였다. 승정원 시험 때 다시 소환되었고, 그,他才학을 알아 보지 못한 것에 억울해하며 나가서琴을 부수고 붓을 끊었다. 후대에도 후학 양성으로 이름 높은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国朝人物志의 중종조 인물이 여기서 끝난다.
원문
字養淸號西峯晉州人寺正自濱子少受業于寒暄堂金宏弼窮探性理勵志力行及寒暄被禍心喪三年遂浩然高遯無意於世早孤貧甚躬炊養母以訓後進爲己任知名之士多出其門[주:大東韻玉]燕山甲子召詣承政院問其所學而罷于時國政方亂非招延文學之辰人皆爲懼竟不及禍[주:成悌元撰墓碣]政院試才會燕山主忘之不更召藕旣出猶悚然毀琴絶筆且戒子弟勿習[주:寄齋雜記]以上中宗朝一
國朝人物志一終
엔티티 후보
- person: 류藕 / 柳藕, confidence=1.0
- person: 금홍혁 / 金宏弼, confidence=1.0
- person: 한한전 / 寒暄堂, confidence=1.0
- person: 한한, confidence=1.0
- person: 성제원 / 成悌元, confidence=1.0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1.0
- office: 사정 / 寺正, confidence=1.0
- office: 승정원 / 承政院,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 work: 기재잡기 / 寄齋雜記, confidence=1.0
- work: 국조인물지 / 國朝人物志, confidence=1.0
- term: 심상 / 心喪, confidence=1.0
- term: 호연고턴 / 浩然高遯, confidence=1.0
- person: 연산 / 燕山,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毁琴絶筆 - ‘毀’는 ‘毀’와 혼용되어 ‘부수다’로 해석,文中罷罷職의 ‘罷’이 원문 누락 가능성
(중종조이)조언수
- 기사 ID:
B9C^2_002_000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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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19:09:48.76538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01
한글 번역
자(字)는伯高이고, 호는信善堂이다. 양주 출신으로, 문刚公의 막내아들의 5대 손자이다. 기개와 도량이 너그럽고 후하다. 신묘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을미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좌참찬에 올랐다. 기사에 들어갔다. 청백하게 스스로 수양하였고, 관직은 六卿에 이르렀다. 사망했을 때 집에 남긴 재물이 없었다. 시호는 貞簡이다. (참고:「大東韻玉」) 아우 사秀는 자가 季任이고 호는 松岡이다. 갑자년에 생원, 진사를 거쳐 신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호堂에 선발되었다. 관직이 우참찬에 이르렀다. 역시 청백한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시호는 文貞이다. (참고:「국조방목」)
독음
자백고호신선당양주인문강공말생오대손기기도관후신묘진사을미문과좌참찬입기사청백자수관체육경급멸가무유재시진簡[주:대동운옥]제사秀자유임호송강갑자생원진사신묘문과선입호당관至우참찬역이자백저명우세시문貞[주:국조방목]
의미
조선 중종조 관료인 조언수와 그 아우 조사秀 형제의 기록이다. 조언수는 양주 출신으로 文剛公의 5대 손孙이며, 신묘년과 을미년 과거에 합격하여 좌참찬에 올랐다. 청백한 관료로 소문났으며, 六卿에 이르렀으나 사망 시 유족이 없을 정도로 가정이 궁핍하였다. 시호는 貞簡이다. 아우 조사秀는 갑자년에 생원·진사, 신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호堂에 선발되고 우참찬에 올랐다. 역시 청백으로 유명하며, 시호는 文貞이다. 두兄弟 모두 清白著称으로 세상에 알려졌던 清官吏였다.
원문
字伯高號信善堂楊州人文剛公末生五代孫器度寬厚辛卯進士乙未文科左參贊入耆社淸白自修官躋六卿及歿家無遺財諡貞簡[주:大東韻玉]弟士秀字季任號松岡戊子生員進士辛卯文科選入湖堂官至右參贊亦以淸白著名于世諡文貞[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언수 / 趙彥秀, confidence=0.98
- person: 조사秀 / 趙士秀, confidence=0.98
- person: 문刚공 / 文剛, confidence=0.92
- place: 양주 / 楊州, confidence=0.97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0.95
- office: 우참찬 / 右參贊, confidence=0.95
- office: 육경 / 六卿, confidence=0.93
- office: 기사 / 耆社, confidence=0.88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0.86
- term: 청백자수 / 淸白自修, confidence=0.91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4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4
- term: 자(,字) / 字, confidence=0.95
- term: 호(,號) / 號, confidence=0.95
- term: 5대손자 / 五代孫,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7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7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6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6
불확실한 어휘
- 末生五代孫(문강공의 정확한 대世系 관계)
- 器度寬厚의 구체적 의미 범위
- 碑石 내용 일부 문구
(중종조이)이순
- 기사 ID:
B9C^2_002_000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0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3:20.93509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03
한글 번역
이순은 자(字)가 희문이고 덕산 사람이다. 정랑 증문의 조카로서 감사 이익복의 증손이다. 정묘(1543)년에 진사로 문과에 급제하여 여주목사를 지냈다.慕齋 김안국과 퇴계 이황과 친하게 지냈다. 《황극경세》 내편 주해를 저술하여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주:대동운옥] 종질 이의신은 자가 군사로, 병오(1546)년에 생원이 되고 명종 기유(154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가 되었다. [주:국조방목]
독음
자 희문, 덕산인, 정랑 증문의 질, 감사 익복 증손, 정묘 진사 문과, 여주목사, 여慕齋 김안국, 퇴계 이황과 상선, 유 황극경세 내편 주해, 학문으로 유명, [주:대동운옥], 종질 의신, 자 군사, 병오 생원, 명종 기유 문과, 군수, [주:국조방목]
의미
이순은 16세기 중반 덕산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여주목사를 지낸 관리이자 학자이다. 당시的名儒인 김안국과 이황과 교류하며 《황극경세》 내편 주해를 저술했다. 그의 종질 이의신도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가 되었다.
원문
字希文德山人正郞曾門之姪監司益福曾孫丁卯進士文科驪州牧使與慕齋金安國退溪李滉相善有皇極經世內篇註解以學問著名[주:大東韻玉]從姪義臣字君禮丙午生員明宗己酉文科郡守[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순 / 李純, confidence=1.0
- person: 김안국 / 金安國, confidence=1.0
- person: 이황 / 李滉, confidence=1.0
- person: 이의신 / 李義臣, confidence=1.0
- person: 감사 익복 / 監司益福, confidence=0.9
- place: 덕산 / 德山, confidence=1.0
- place: 여주 / 驪州, confidence=1.0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1.0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work: 황극경세 내편 주해 / 皇極經世內篇註解,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退溪이 退溪李滉의 약칭인지, 李滉을 직접 가리키는지
(중종조이)이계동
- 기사 ID:
B9C^2_002_000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0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3:22.95174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04
한글 번역
평창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영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세상에서 국조의 명장을 논하면 이계동을 으뜸으로 삼았으니, 시호는 헌武이다.[주:대동윤옥]
독음
평창인 무과 관至영중추부사, 세칭 국조 명장을 이계동을 으뜸으로 삼고, 시호는 헌무라.[주:대동윤옥]
의미
이계동은 평창 출신으로 무과에 합격하여 영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조선 시대 명장 중 으뜸으로 불리며, 시호는 헌武이다.
원문
平昌人武科官至領中樞府事世稱國朝名將以季仝爲首諡憲武[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lace: 평창 / 平昌, confidence=0.95
- person: 이계동 / 李季仝, confidence=1.0
- office: 영중추부사 / 領中樞府事, confidence=0.95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0.98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 work: 대동윤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
(중종조이)류담년
- 기사 ID:
B9C^2_002_000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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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19:09:51.95276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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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유담년은 무과에 급제하여 종성부사로 부임하여 오히려 청렴하고 신중하다는 칭송을 들었다. 경오년(1506)에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유담년이 황형, 안정德 등과 함께 이를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양무(襄武)였다.
독음
문화인 무과 통판 종성 파이염廉謹稱 경오 삼포왜란 담년여 황형 안정덕등 토평지 관至 좌참찬 시양무
의미
조선 중종 때 무과 급제자 유담년이 1506년 삼포왜란을 황형·안정덕 등과 함께 토평하여 공을 세우고, 벼슬이 좌참찬에 올랐으며 사후 양무 시호를 받은 인물이다. 종성부사로 재임 중 청렴한 행사로 이름이 났던 것으로 기록된다.
원문
文化人武科通判鍾城頗以廉謹稱庚午三浦倭亂聃年與黃衡安潤德等討平之官至左參贊諡襄武[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유담년 / 柳聃年, confidence=1.0
- person: 황형 / 黃衡, confidence=1.0
- person: 안윤덕 / 安潤德, confidence=0.95
- office: 통판 / 通判, confidence=1.0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1.0
- place: 종성 / 鍾城, confidence=1.0
- place: 삼포 / 三浦, confidence=1.0
- term: 삼포왜란 / 三浦倭亂, confidence=1.0
- term: 양무시 / 諡襄武, confidence=1.0
- term: 문화인 / 文化人, confidence=0.9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문화인(無科 급제자를 통칭하는 용어로 보이나, 통판과의 관계가 원문상 명확하지 않음)
(중종조이)전림
- 기사 ID:
B9C^2_002_000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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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남양 사람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한성판윤에 이르렀다. 처신이 청백하고 엄격하여 당시에 맹장으로 불렸으며, 시호는 위절이었다.
독음
남양인 무과 관至한성반윤 위인 청백엄려 시칭 맹장 시위절
의미
조선 중종조 무과 출신으로 한성판윤까지 오른 관리의 전기다. 청백하고 엄격한 처신으로猛将라 불렸으며, 사후 시호로 위절을 받았다. 출전은 『대동운옥』이다.
원문
南陽人武科官至漢城判尹爲人淸白嚴勵時稱猛將諡威節[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0.95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0.98
- office: 한성판윤 / 漢城判尹, confidence=0.98
- term: 맹장 / 猛將, confidence=0.92
- term: 위절 / 威節, confidence=0.9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7
(중종조이)여자신
- 기사 ID:
B9C^2_002_000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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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함양 출신으로, 고려의 전서(典書)를 지낸 어미의 후손이다. 무과에 급제한 사람으로 성격이 청백하고 간직하며, 관직이 병조 판서에 이르렀고, 시호는 정장(貞莊)이다. [주] 인물考) 아들 윤철도 무과에 합격하여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청백한 성품을 지녔고, 관직이 절도사에 이르렀다. [주] 상동)
독음
함양인 고려 전서 어미 이후 무과 성청백 간직 관至병조 판서 시정장[주:인물고] 자 윤철 무과 청백 만약아비 관至절도사[주:상동]
의미
조선 중종조 무관 가문의 기록이다. 함양 출신으로 고려 시대 관료 어미의 후손인 아버지는 무과에 급제하여 병조 판서까지 승진하고 정장 시호를 받았다. 아들 윤철 역시 무과에 합격하여 아버지를 본떠 청백한 성품을 갖추고 절도사에 이르렀다. 두 세대에 걸친 무과 합격과 청백한 행적의 전승이 주목된다.
원문
咸陽人高麗典書御梅之後武科性淸白簡直官至兵曹判書諡貞莊[주:人物考]子允哲武科淸白如其父官至節度使[주:上同]
엔티티 후보
- place: 함양 / 咸陽, confidence=0.95
- person: 어미 / 御梅, confidence=0.85
- office: 전서 / 典書, confidence=0.9
- office: 병조 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5
- person: 윤철 / 允哲, confidence=0.95
- office: 절도사 / 節度使, confidence=0.95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 term: 시호 정장 / 諡貞莊,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文中 구조상 ‘御梅之後武科性’ 부분이 ‘御梅의 後孫으로서 武科에 급제한人物의 性行’으로 解讀되며, 御梅 자체가 관직명인지 人名인지 确定이 어렵다.
(중종조이)나안세
- 기사 ID:
B9C^2_002_001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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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나안세는 자가 德與이고 호는 建溪이며, 나주 사람으로서 정묘년에 진사에 급제했다. 南衮을 거슬러 벼슬을 하지 않았다. 신선술이 있었으며, 「촉영부」와 「장문부」를 지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사망한 뒤에 고을 사람들이 금제 용암사에서 제사지냈다.
독음
자어는득여호는건계나주인정묘진사진곤을거스려벼슬지않으며신선술이있어촉영부를지우고장문부를지어사람들이입에썼으며몰후후이자인들이금제의용암사에서제사지냈다
의미
나안세는 조선 중종조의 인물로, 나주 출신이며 정묘년에 진사과에 급제했다. 권신 남곤을 내조하지 않고 벼슬을 버렸다. 신선술을 지녔다는 특기가 전하며, 「촉영부」와 「장문부」 등의 작품으로 인망이 컸다. 사후에는 고을 사람이 금제 용암사에서 제사를 지냈다.
원문
字德與號建溪羅州人丁卯進士忤南衮不仕有仙術著燭影賦長門賦膾灸[주:炙]人口歿後邑人享于金堤龍巖寺[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나안세 / 羅安世, confidence=1.0
- person: 남곤 / 南袞, confidence=1.0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1.0
- place: 금제 / 金堤, confidence=1.0
- place: 용암사 / 龍巖寺, confidence=1.0
- work: 촉영부 / 燭影賦, confidence=1.0
- work: 장문부 / 長門賦, confidence=1.0
- term: 정묘진사 / 丁卯進士, confidence=0.95
- term: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丁卯進士의丁卯연도(조선 중종 2년, 1507년으로 추정되나 한문만으로 정확한西曆확인 곤란)
- 燭影賦의 내용과 창작 시기
- 南袞과의 구체적 갈등 경위
- 金堤龍巖寺의 정확한 소재지
(중종조이)이정
- 기사 ID:
B9C^2_002_001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1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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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2:54:38.46712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11
한글 번역
자(字)는剛이고, 호는龜岩이다. 사천 사람이다.奎菴宋麟壽가 사천에 유배되어 살았는데,楨가 그를 따라 배우았다. 갑신년(1536)에 문과 장원을 찍었다. 성품이 단정하고 바르며, 너그럽고 엄격했다. 만년에退陶門下에 들어가 믿음이 더욱 깊었다. 군부에 나아갈 때마다 학문을 일으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선조조에 부제학에 오르지 않았다. 그때 여전히 천여 마디의 경계를 아뢰었고,龜岩精舍를 지어 학문을 강설하니 힘쓰다.
독음
자강이호구암 사천인 괴암 송윤수 저거사상 제종학 병신문과 장원 성단졸관엄 만유 퇴도문하 수사익독려군이흥학위기임 선조조배부제학불기잉진계천백언축구암정사강학불권
의미
李楨(1501~?)은 字가剛이고 호가龜岩이며 사천 출신이다. 어려서 宋麟壽(奎菴)에게 수학하고 1536년(중종 31) 문과 장원에 합격했다. 성품이 단정하고 바르며 너그러웠으나 엄격했다. 만년에 成浑(退陶)門下에서 배우며信道가 더욱 깊어졌다. 군守로 있을 때마다興學을 임무로 삼았다.宣祖代에 부제학으로 천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천여 言의戒을 아뢰고龜岩精舍를 지어 학문 강의에 힘썼다.
원문
字剛而號龜岩泗川人圭菴宋麟壽謫居泗上楨從而受學丙申文科壯元性端愨寬嚴晩游退陶門下信道益篤莅郡以興學爲己任宣祖朝拜副提學不起仍陳戒千百言築龜岩精舍講學不倦[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정 / 李楨, confidence=0.95
- person: 송윤수 / 宋麟壽, confidence=0.9
- place: 사천 / 泗川, confidence=0.85
- term: 문과 장원 / 文科壯元, confidence=0.95
- person: 퇴도 / 退陶, confidence=0.8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0.95
- place: 구암정사 / 龜岩精舍, confidence=0.8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5
- era: 선조조 / 宣祖朝,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圭菴(괴암) - 宋麟壽의 호로 추정, 원문 ‘圭菴’을 ‘奎菴’으로 볼 것인지 명확하지 않음
- 退陶 - 成浑의 호로 추정되나 문헌상 확인 필요
(중종조이)조윤손
- 기사 ID:
B9C^2_002_001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1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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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8:21:56.88962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12
한글 번역
자(字)는 창녕인이고, 직위는 천호(千戶)다. 아버지 안중손의 아버지 숙沂의 자는 문위다. 성종 갑오년에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나아가 검역·감사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여 대사헌에 이르렀다. 직장(直長)을 취했으며, 광주(廣州) 안신의 딸에게서 윤손을 낳았다. 윤손은 무과에 장수하여 두 계의 절도사가 되었다. 중종 계미년에 오랑캐가 와서閭延과茂昌에 거처하면서 점점 마을을 이루자, 임금이 윤손에게 군사를 이끌고 쫓아내게 명하였다. 윤손은 이를 다 격퇴하여 경외로 완전히 내보냈으며, 공으로 병조 판서로 승진하였다. 관직은 좌참赞에서 그쳤다. 시호는 장호(莊胡)다.
독음
자창녕인천호안중손부숙沂자문위성종갑오생원문과역검역감사관관至대사헌취직장광주안신녀생윤손무과위양계절도사중종계미야인래거于閭延茂昌점성부락상명윤손영병구축진출경외이공탁배병조판서관지좌참찬시양호
의미
조선 중종조武将曹潤孫의 가문 배경과 관료 경력을 기술한 기사다. 문과 출신的父亲와 달리 武科에 진출하여 두 지역 절도사로 활동했다. 특히 중종 때 오랑캐가閭延·茂昌에 정착하자 군사적으로 토착 세력을 격퇴한 공으로 병조 판서까지 승진했다.
원문
字昌寧人千戶顏仲孫父淑沂字文偉成宗甲午生員文科歷檢閱監司官至大司憲娶直長廣州安信女生潤孫武科爲兩界節度使中宗癸未野人來居于閭延茂昌漸成部落上命潤孫領兵驅逐盡出境外以功擢拜兵曹判書官止左參贊諡莊胡[주:昭代紀年]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윤손 / 曹潤孫, confidence=0.95
- person: 안중손 / 顔仲孫, confidence=0.95
- person: 숙沂 / 淑沂, confidence=0.9
- person: 안신 / 安信, confidence=0.9
- place: 창녕 / 昌寧, confidence=0.95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0.95
- place: 려연 / 閭延, confidence=0.9
- place: 무창 / 茂昌, confidence=0.9
- office: 천호 / 千戶, confidence=0.85
- office: 검역 / 檢閱, confidence=0.95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5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office: 병조 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좌참赞 / 左參贊, confidence=0.95
- office: 절도사 / 節度使,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字昌寧人千戶顏仲孫父淑沂字文偉 - ‘字昌寧人千戶顏仲孫父淑沂字文偉’의 문장 구조가 불분명하여 계승 관계(주어-서술)의 해석이 불확실
(중종조이)반석칭
- 기사 ID:
B9C^2_002_001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1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18:22:14.22041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13
한글 번역
자는 공문이며, 광주 사람이다. 정묘(년)에 생원(荐拔)과 문과에 합격하여 보검역에 보임되, 팔도의 방백을 두루 역임하고 관至하여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청백하고 염근하여 특히 유명하였으며, 시호는 장절이다. [주:국조 방목]
독음
자는 공문, 광주인, 정묘 생원, 문과 보검역, 팔도 방백을 역임하고 관至 예조 판서, 청백염근으로 유명하고 시호는 장절이다. [주:국조 방목]
의미
조선 중종조 관료 潘碩秤의 행적을 수록한 짧은 기문이다. 字·본관·생원 및 문과 합격 연차·보검역 발탁·팔도 방백 역임·예조 판서 달성을 서술하고, 청백염근의 특성을 밝힌 후 시호 장절을 부여하였음을 전한다. 출전은 『國朝榜目』이다.
원문
字公文光州人丁卯生員文科補檢閱歷八道方伯官至禮曹判書淸白廉謹著名諡壯節[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반석칭 / 潘碩秤, confidence=1.0
- person: 공문 / 公文, confidence=1.0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1.0
- term: 정묘 / 丁卯, confidence=0.85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office: 문과 보검역 / 文科補檢閱, confidence=0.9
- office: 팔도 방백 / 八道方伯, confidence=1.0
- office: 예조 판서 / 禮曹判書, confidence=1.0
- term: 청백염근 / 淸白廉謹, confidence=1.0
- term: 장절 / 壯節, confidence=1.0
- work: 국조 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文科補檢閱: 문과 합격 후 보검역에 보임된 것인지, 文科補檢閱이라는 단일 직함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음
- 丁卯: 생원 또는 문과 합격 연차로 보이나, 해당 丁卯년이 정확히哪一年(연호)인지 확인 필요
(중종조이)허항
- 기사 ID:
B9C^2_002_001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1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19:10:23.08124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14
한글 번역
자호는 清卿이고, 양천 사람이다. 동지확의 아들이며 충정공琮의 손자이다. 갑신년 진사에 합격하여 문과로 선발되어 호당에 들어갔고, 여러 벼슬을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安老에게 가담하여 蔡無擇과 함께 그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 沈이 늘 “[후대에] 역사를 편찬하면 반드시 무택과 함께 전할 것이니, 이는 차마 참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嘆息하였다. 정유년에 安老와 無澤과 같은 날 賜死를 받았다. 형 허흡은 자호가 中和이고, 정묘년 진사에 합격하고 계유년 문과에 합격하여 좌참찬을 지냈으며, 좌상 이惟淏의 사위였다.
독음
字는 清卿, 양천인, 동지확(礭)의 아들, 충정공琮의 손자이다. 갑신년 진사, 문과로 선발되어 호당에 들어갔고, 여러 벼슬을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안로에게 당부하고 채무택과 함께 응견이 되었다. 심이 자주 “[후세에] 역사를 쓰면 반드시 무택과 함께 전할 것이니, 이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叹道하였다. 정유년에 안로와 무택과 같은 날 사사를 받았다. 형 흡은 자가 중화이고, 정묘년 진사, 계유년 문과, 좌참찬, 좌상 이惟淸의 사위이다.
의미
조선 중종조 명신 허항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그는 갑신년 합격 진사로 호당에 진출하여 이조참판까지 올랐으나, 安老 일당에 가담하여 蔡無澤과 함께 그 세력의 앞잡이 역할을 한 인물이다. 후세史官가 자신과 無澤을 함께 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심이歎息한 것으로 보아, 그 명성이 얼마나 악독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정유년에 安老·無澤과 함께 사사를 받았고, 같은 날 처형된 형 左參贊 허흡의 이和政治史 위에서 李惟淏와 혼동되는 부분이 있다.
원문
字淸卿陽川人同知礭子忠貞公琮孫甲申進士文科選入湖堂屢官至吏曹參判黨附安老與蔡無擇同爲鷹犬沈每歎曰後世作史必與無擇同傳是所不堪者也丁酉與安老無擇同日賜死[주:昭代紀年]兄洽字中和丁卯進士癸酉文科左參贊左相李惟淸壻也[주:國朝朝[주: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허항 / 許沆, confidence=1.0
- person: 채무택 / 蔡無澤, confidence=1.0
- person: 안로 / 安老, confidence=1.0
- person: 심 / 沈, confidence=1.0
- person: 허흡 / 許洽, confidence=1.0
- person: 종(충정공) / 琮, confidence=0.9
- place: 양천 / 陽川, confidence=1.0
- office: 이조참판 / 吏曹參判, confidence=1.0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1.0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1.0
- office: 호당 / 湖堂, confidence=1.0
- term: 응견(앞잡이) / 鷹犬,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person: 이惟칠 / 李惟淏, confidence=0.5
불확실한 어휘
- 礭(동지확) - 同知礭을 벼슬명이나 인명 중 어디에 귀속시킬지 불확실, 李惟淏(원문 李惟淸)는 이 기사와 국조榜目의 동일 인물 여부가 불확실, 丁酉賜死의 정확 연호 확인 필요
(중종조이)황사우
- 기사 ID:
B9C^2_002_001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1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5:31.51672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16
한글 번역
황사우. 자는국호, 호는용현.昌原출신으로,判書希聖의아들이다.丁묘년에進土가되었고,갑술년에는文科에서2등을했다.관직은좌찬성까지올랐으나,금안로의당에붙어탐욕스럽게재물을춰집을부유하게했다.집앞에별도로마구간을짓고밤에마구간문을열어다음날아침점검하면기둥에매달린명부에이름을적어놓은말이하루에5,6마리는되었다.정유년에벼슬을삭탈했다.아들응우는文科출신으로同知가되었다.응우의아들선(字景明,호식암)은文科출신으로大司憲이되었다.
독음
자국호號용현昌原人判書希聖子丁묘進士갑술文科第二名관至좌찬성당부금안로탐탁이비자가가전별기마구혼엄마구문급조점검칙마지현주제명자일불하오륙정유삭관자의응괴文科同知응괴자선자경명호식암文科대사헌
의미
조선中宗시대 인물 황사우의生平기록이다.昌原출신으로문과2등및좌찬성까지승진했으나,權臣金安老의당에가담해탐식한것으로평가된다.특히집마당에마구간을지어비밀리에 말을키운사실이기록되어비판의대상이되었으며,丁酉년(1517)에벼슬을삭탈당했다.아들응우와손자선까지文臣으로대사헌까지올라가문벌가문이이어졌다.
원문
字國輔號慵軒昌原人判書希聖子丁卯進士甲戌文科第二名官至左贊成黨附金安老貪濁以肥家家前別起馬廏昏啓廏門及朝點檢則馬之懸柱題名者日不下五六[주:逐睡篇]丁酉削官[주:國朝榜目]子應奎文科同知應奎子暹字景明號息菴文科大司憲[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황사우 / 黃士佑, confidence=0.98
- person: 금안로 / 金安老, confidence=0.98
- person: 응우 / 應奎, confidence=0.95
- person: 선 / 暹, confidence=0.95
- place: 창원 / 昌原, confidence=0.95
- office: 좌찬성 / 左贊成, confidence=0.97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7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7
- office: 동지 / 同知, confidence=0.95
- work: 축수편 / 逐睡篇, confidence=0.8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8
- term: 마구 / 馬廏,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昏啓廏門의구체적의미(주먹에밤에마구간문을열었다는지명사건으로해석)
- 日不下五六의정확한수치해석(최소5~6마리또는5~6보다적다의이중적표현)
- 丁酉削官의삭관년대(1517년또는다른丁酉년가능성)
- 別起馬廏의別起정확의미(별도축조또는신설)
(중종조이)양연
- 기사 ID:
B9C^2_002_001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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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호는 거원, 남원 출신으로 현령 호의 아들 자성의 손자이다. 갑신년 문과에 합격하여 직提학을 지내고 정유년에 대사헌이 되었다. 참판 윤안인의 말을 듣고 상소하여 김안로·채무택·허항 등의 부정하고 간사한 행위를 직접 비판하였다. 김안로 등은 사형을 받고 영상의 윤은보 등은 종사가 거의 위태롭다가 다시 안정되었으므로 진하를 청하였다. 양연은 공을 논하여 가자하고 좌참성에 임명되었다.[주:조대기년]
독음
자 거원 남원인 현령 호 자성지손 갑신 문과 직提학 정유 위 대사헌 문 참판 윤안인의 언 상소 직척 김안로 채무택 허항 지 봉간 안로등 사사 영상 윤은보 등 이 종사 기위 이 부안 계청진하 양연론상가자 배좌참성[주:조대기년]
의미
梁淵(자 거원)은 南原 출신으로 갑신년 문과 합격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유년 대사헌 재임 중 참판 윤안인의 말을 듣고 金安老·蔡無擇·許沆 등의 부패를 상소로 직접 비판하였고, 이로 인해 安老 등은 사형되었다. 이후 尹殷輔 등이 종사 위기를 수습하자 梁淵의 공으로 가자 특전을 받고 左贊成에升至하였다.
원문
字巨源南原人縣令琥子誠之孫甲申文科直提學丁酉爲大司憲聞參判尹安仁之言上疏直斥金安老蔡無擇許沆之朋奸安老等賜死領相尹殷輔等以宗社幾危而復安啓請陳賀梁淵論賞加資拜左贊成[주:昭代紀年]
엔티티 후보
- person: 양연 / 梁淵, confidence=1.0
- person: 김안로 / 金安老, confidence=1.0
- person: 채무택 / 蔡無擇, confidence=1.0
- person: 허항 / 許沆, confidence=1.0
- person: 윤은보 / 尹殷輔, confidence=1.0
- person: 윤안인 / 尹安仁, confidence=1.0
- place: 남원 / 南原,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좌참성 / 左贊成, confidence=1.0
- work: 조대기년 / 昭代紀年,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직提학(直提學) - 直提學 또는 直提學의 오기 가능성, 확인 필요
(중종조이)안정명
- 기사 ID:
B9C^2_002_001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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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창평 사람으로 현감 안기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죽자 3년간 초당에 거처하며 채소와 과일을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똥을 맛보아 병의 완치와 악화를 확인하였고, 어머니가 또 이가 무성하게 번성하는 고통에 시달리자 안정명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이를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이 그의 효성을 칭송하였다.
독음
창평인 현감 기의 아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초당(廬)에 거처하며 3년간 채소와 과일을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똥을 맛보아 완치와 악화를 살폈다. 어머니가 또 이가 많이 번성하는 고통을 당하자, 안정명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이를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이 이것을 효행이라 칭하였다.
의미
조선 중종조 안정명이 효행을 닦은 기록이다. 아버지 상에 맞춰 3년간 채소·과일 없이 지내고, 어머니 병中将 똥을 맛보며 몸의 변화를 살폈으며, 어머니의 이 고통을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해결해준 것으로, 당시에 효자 사례로 칭송받았다.
원문
昌平人縣監起之子父歿居廬三年不食菜果母病嘗糞以驗差劇母又苦蝨繁盛正命散其髮以分其蝨人稱其孝[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정명 / 安正命, confidence=1.0
- person: 안기 / 安起, confidence=1.0
- place: 창평 / 昌平,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 term: 거처하는 초당(상가를 지킨다) / 居廬,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어영준
- 기사 ID:
B9C^2_002_001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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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아호)는 언심이고 호는 송정이다.咸從人 출신으로 반사·효선손·직제학을 역임했고, 변갑·종증손(관직)의 증손이다. 갑자년에 생원이 되었고 진사가 되었으며, 정묘년 문과에 합격하여 경제관에 들어갔다. 호당에서暇(휴식)을 하사받아 여덟 번이나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외직을 구했으며, 벼슬이舍人에 이르렀다. 청백리에 기재되었으나, 아직 쉰 살이 되기도 전에 졸했다.
독음
자언심호송정 함종인 반사 효선손 집제학 변갑 종증손 갑자생원 진사 정묘문과 입 경제관사가호당 여위친양깔외관至사인녹청백리년 미오십이 이 졸
의미
魚泳濬은 조선 중종조咸從人 출신으로, 갑자년에 생원, 정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경제관에 들어갔다. 벼슬을 통해 반사·직제학 등을 역임하고 舍人에 이르렀으며, 청백리로 기록되었다.孝敬을 중시하여 여러 차례 부모님 봉양을 위해 외직을 구했으며, 아직 쉰 살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원문
字彥深號松亭咸從人判事孝善孫直提學變甲從曾孫甲子生員進士丁卯文科入弘文館賜暇湖堂屢爲親養乞外官至舍人錄淸白吏年未五十而卒[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어영준 / 魚泳濬, confidence=0.98
- person: 자 언심 / 字彥深, confidence=0.95
- person: 호 송정 / 號松亭, confidence=0.95
- place: 함종 / 咸從, confidence=0.9
- office: 반사 / 判事, confidence=0.92
- office: 직제학 / 直提學, confidence=0.92
- office: 경제관 / 弘文館, confidence=0.93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0.93
- term: 호당 / 湖堂, confidence=0.88
- term: 청백리 / 淸白吏,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3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3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3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장옥
- 기사 ID:
B9C^2_002_002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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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자강, 호는 유정. 덕수 사람. 아버지는 집의(持平) 장충보이다. 을해(1515)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병술(1526)년의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호당에 뽑혔다. 여러 관직을 거쳐 사인(舍人)을 지내고, 정유(1537)년에 졸배(杖刑)로 유배되었다. 관직은 남반(南班)으로 판교서감사(判校書監事)에 이르렀다. 아들 운익은 문과에 합격하여 판서(判書)가 되었다. [주: 『국조방목』에 보인다]
독음
자 자강 호 유정 덕수인 집의 충보之子 을해 문과 병술 중시 선입 호당 역사인 정유 장류 관至 반 교서감사 [주:국조방목] 자 운익 문과 반서 [주:견하]
의미
조선 중종 연간 문신 장옥의 약력. 덕수 출신으로 1515년 문과에 급제하고 1526년 중시에 합격해 호당에 들어갔다. 관료를 거쳐 사인이 되었으나 1537년 졸배로 유배되었다. 졸배는 매질과 유배의 합칭으로, 사인 재임 중 범한 죄에 대한 형벌로 추정된다. 궁극적으로 남반 판교서감사에 이르렀고, 아들 장윤익도 문과에 급제하여 판서가 되었다. 『국조방목』에 수록된 인물이다.
원문
字子剛號柳亭德水人執義忠輔子乙亥文科丙戌重試選入湖堂歷舍人丁酉杖流官至判校書監事[주:國朝榜目]子雲翼文科判書[주: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장옥 / 張玉, confidence=1.0
- person: 장충보 / 張忠輔, confidence=1.0
- person: 장윤익 / 張雲翼, confidence=1.0
- place: 덕수 / 德水, confidence=0.9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0.9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1.0
- office: 판교서감사 / 判校書監事, confidence=0.9
- office: 남반 / 南班, confidence=0.8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5
- term: 호당 / 湖堂, confidence=0.85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0.8
- term: 졸류 / 杖流,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湖堂(호당으로 추정되나 이층 등의 서고라는 다른 설도 있음)
- 重試(재시 시험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시험 성격 불확실)
- 杖流(졸배와 유배의 결합인지, 특정 유배 유형인지 미확인)
(중종조이)유형
- 기사 ID:
B9C^2_002_002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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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8:22:33.94511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21
한글 번역
자(字)는 명중이고 호(號)는 도원이다.昌原 사람으로서 직제학 상지의 증손이다.정묘년에 생원에 올랐고, 진사를 거쳐 갑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정랑에랐다.을사년에 외任되어 청풍군으로 나갔다가 관직에서 사망하였으며, 부제학으로 추증되었다. [주: 국조방목] 아우 유덱의 자는 명원이고, 무자년에 진사로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에 임명되었다. [주:同上]
독음
자 명중호 도원昌原 사람은 직제학 상지 증손 정묘 생원 진사 갑술 문과 이조 정랑 을사 출보 청풍군 졸어관 증 부제학 주:국조방목 아제 유덱 자 명원 무자 진사 문과 정자 주:同上
의미
유형의 인물 소개이다.昌原 출신으로 직제학 상지의 증손으로서 학문에 뜻을 쌓아 정묘년에 생원, 진사를 거쳐 갑술년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 정랑에랐다. 을사년에 청풍군으로 보직되어 부임 중 사망하였고,死后에 부제학으로 추증되었다. 아우 유덱도 무자년에 진사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원문
字明仲號桃園昌原人直提學尙智曾孫丁卯生員進士甲戌文科吏曹正郞乙巳出補淸風郡卒于官贈副提學[주:國朝榜目]弟燉字明遠戊子進士文科正字[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유형 / 兪炯, confidence=1.0
- person: 유덱 / 兪燉, confidence=1.0
- place: 창원 / 昌原, confidence=1.0
- place: 청풍군 / 淸風郡, confidence=1.0
- office: 직제학 / 直提學, confidence=1.0
- office: 이조 정랑 / 吏曹正郞,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정자 / 正字,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출보 / 出補, confidence=1.0
- term: 졸어관 / 卒于官, confidence=1.0
- term: 증(추증) / 贈,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直提學 直의 읽는 방식이 직제학인지 직提學인지 불확실
(중종조이)이세장
- 기사 ID:
B9C^2_002_002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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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4:16:28.00192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24
한글 번역
글은 도성이고 호는 금강이다. 전주 사람이다. 평가(評事) 목자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어린 나이에 일찍부터为己(스를 위함)를 뜻하였다. 성품이 화厚하고 사물을 대할 때 去畦町(틀에 얽매이지 아니)하였다. 병자년에 进士(진사)에 합격하고, 갑오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검열(檢閱)에 보임되었다. 부제학(副提學)으로 발탁되고,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강원監司(감사)가 되었다. 책을 보며 占畢(점필)을 읽는闲暇한 때에 늘 도연(陶然)하게 마셨다. 네 벽 안에서 짚신과 누비옷을 입고 열 해를 지내면서, 야채를 씹고 소금물에饭吃淡(식사가 담백)함을 그 괴로움을 모른다. 청렴에 있어서는 천연(天植)이니, 바로 하늘이 심어준 것과 같다. 清白한 자를 가릴 적에 公의 우에 갈 자가 없으니, 옛 사람이 사람의 清白함을 称하되玉雪에 비겼다. 나의 所聞으로 보건대 公은 오히려 玉雪와 같을 것이다. [주: 인물고] 임술년에 돌아가시니 향년 66세. [주: 국조방목]
독음
글자 도성호 금강전자 원주인 평가 목자년 육칠 수상 조지위기 화성 후물 거희정 병자진십 갑오문과 보검열 발부제학 도승지 위기원감사 간서점필지여측음 도연 사벽고荐면추 일착십년 교채식담부지其고於廉潔즉천식야급선청백무과거공우자고인지칭인렴백비지옥설이여소문공기유옥설호[주:인물고]임술졸년육십육[주:국조방목]
의미
李世璋(1520-1582)은 字를 道盛, 호를 錦江이라 하였고, 전주 출신이다. 평가 목자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병자(1576)년 진사, 갑오(1578)년 문과에 합격하였다. 검열, 부제학, 도승지, 강원감사를 역임하였다. 清白하고 청렴하여 玉雪에 비유될 정도로 清白無可比者(청백하여 능히 그의 우에 갈 자가 없음)였다. 강원에서 재임할 때 四壁之間에서 藁荐綿裘(짚신과 누비옷)로 生活하며, 咬菜食淡(야채와 담백한 음식)으로도 그 清苦를 모르는 清廉한 성품을 보여주었다. 任戌(1582)년에 사망하였다.
원문
字道盛號錦江全州人評事穆子年六七受書蚤志於爲己性和厚接物去畦町丙子進十甲午文科補檢閱擢副提學都承旨爲江原監司看書佔畢之餘輒飮陶然四壁藁薦綿裘一著十年咬菜食淡不知其苦於廉潔卽天植也及選淸白無可居公右者古之人稱人廉白比之玉雪以余所聞公其猶玉雪乎[주:人物考]壬戌卒年六十六[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세장 / 李世璋, confidence=1.0
- person: 도성 / 道盛, confidence=1.0
- person: 목자 / 穆子,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place: 강원 / 江原, confidence=1.0
- office: 평사 / 評事, confidence=1.0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도승지 / 都承旨,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 term: 점필 / 佔畢, confidence=0.8
- term: 고점 / 藁荐, confidence=0.8
- term: 옥설 / 玉雪,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佔畢(점필) -『詩經』毛傳의 독법이 불확실함
- 去畦町(거혜정) - 成語의 정확한 의미 해석이 다름
- 看書佔畢(간서점필) - 점필의 구체적 의미 미확정
(중종조이)우상
- 기사 ID:
B9C^2_002_002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2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7:09.21994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25
한글 번역
자(字)는 염학(彥確)이며, 단양(丹陽) 출신이다. 수도인(守使仁)의 손자이다. 경자(庚子)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태학의 전임 교관을 역임하고, 예문관의 관원을 지냈으며, 검상(檢詳)을 맡았다. 기개가 너그럽고 화유하며, 처사가 정밀하고 상세하였다. 장자의 풍모가 있었다. 한때 중종실록을 편수하였고, 승지(承旨)가 되었다. 관직이 江原監司에 이르렀다. [주: 인물고]
독음
자언학 단양인 수도인 손자 경자문과 역사 교육전감검상 기우관화 처사정상 유장자풍 시절 중종실록을 수찬하여 승지가 되고 관직은 江原監司에 이르렀다 [주: 인물고]
의미
조선 중종 때 인물인 禹鏛의 개략적인 이력이다. 字는 彥確이고, 江原道 단양 출신이다. 수도인(守使仁)의 손자로 경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가 교육職과 中央行政職을 거쳤으며, 중종실록 편수에 참여하고 승지에 이르렀으나, 최종 관직은 江原監司에 머물렀다. 품성이 너그럽고 처사가 정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문
字彥確丹陽人水使仁孫之子庚子文科歷待敎典翰檢詳器宇寬和處事精詳有長者風嘗修中宗實錄爲承旨官至江原監司[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우용 / 禹鏛, confidence=1.0
- person: 수도인 / 守使仁, confidence=1.0
- person: 염학 / 彥確, confidence=1.0
- place: 단양 / 丹陽, confidence=1.0
- place: 강원 / 江原,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대교 / 待敎, confidence=0.9
- office: 전감 / 典翰, confidence=0.9
- office: 검상 / 檢詳,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
- work: 중종실록 / 中宗實錄, confidence=1.0
- term: 장자풍 / 長者風, confidence=0.9
- term: 기우 / 器宇,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典翰(전감) - 典翰檢詳官의 준말인지 전신관 직칭인지 불분명
- 水使仁孫 - 水使의 정확한 직임명칭 확인 필요
(중종조이)김영
- 기사 ID:
B9C^2_002_002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2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18:22:42.92633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26
한글 번역
자(字)는 영이지 호(號)는 삼당(삼塘)이다. 안동 사람으로, 삼령(三令) 영주(永銎)의 아들이며, 계행종손(行從孫)이다. 을卯년에 생원진사에 합격하고, 연산군 치세인 병인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예문관의 대교가 되어 정충양 등과 함께 상소하여 무오년 사옥의 억울함을 논하였으나 마침내 윤허를 받았다. 그 당시 논단이 많았으며, 관직은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주:대동운玉] 아우弟는 환(璠)이다.
독음
자영지호삼당 안동인 삼령영주자 계행종손 을묘생원진사 연산병인문과 예문관대교 여정충양등 상소론무오사옥지원 경,蒙允 시론다지 관至이조참의 [주:대동운옥] 제환
의미
조선 중종期的 인물 김영의 약력이다. 김영은 안동 출신으로 을卯년에 생원진사에 합격하고, 연산군 연간 병인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예문관 대교 재직 중 정충양 등과 함께 무오년 사옥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를 올려 수용된 바 있다. 이후 이조참의까지 관직이 올랐다. 호는 삼당이고, 아버지는 삼령 영주이며, 아우는 김환이다. 출전은「大동음옥」이다.
원문
字英之號三塘安東人掌令永銖子係行從孫乙卯生員進士燕山丙寅文科以藝文館待敎與鄭忠樑等上疏論戊午史獄之冤竟蒙允時論多之官至吏曹參議[주:大東韻玉]弟璠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영 / 金瑛, confidence=1.0
- person: 영주 / 永銖, confidence=1.0
- person: 정충양 / 鄭忠樑, confidence=1.0
- person: 환 / 璠,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office: 삼령 / 掌令, confidence=0.9
- office: 예문관 대교 / 藝文館待敎, confidence=1.0
- office: 이조참의 / 吏曹參議, confidence=1.0
- work: 대동음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 term: 을묘 / 乙卯, confidence=1.0
- term: 병인 / 丙寅, confidence=1.0
- term: 무오사옥 / 戊午史獄, confidence=1.0
- term: 생원진사 / 生員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계행종손(계행종손) - 정확한 친족 관계 용어
(중종조이)박용
- 기사 ID:
B9C^2_002_002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2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2:08:25.47482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27
한글 번역
글자는仲保이고 반남 출신으로 평도공朴訔의 증손이다. 을묘년에 진사가 되었다. 은률현의 현령이 되었는데, 읍 사람들이 꿈에 그가 소녀를 끼고 용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중종이 태자궁에서 어짊과 덕이 뛰어난 이를 가려 뽑아 마침내仁宗왕의 왕후가 되었다. 추증하여領相金城府院君이 되었다.[주: 인물考]
독음
자충보 반남인 평도공음 증손 을묘진사 위은률현령읍인몽공협소녀반용승천미기중묘위저궁묘선숙덕실위인종왕후증영상금성부원군[주:인물고]
의미
朴墉은潘南出身으로平度公朴訔의 증손이며, 을묘년에 진사 합격하여殷栗縣令을 지냈다. 재임 중 주민들이公이 소녀와 함께龍에 올라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는 이상한 조짐이 있었고, 곧中宗이仁宗의 왕후를 뽑을 때 그 소녀가 바로 후궁에서 선발된 인물이었다.死后에는領相金城府院君으로 추증되었다.
원문
字仲保潘南人平度公訔曾孫乙卯進士爲殷栗縣令邑人夢公挾少女攀龍升天未幾中廟爲儲宮妙選淑德寔爲仁宗王后贈領相錦城府院君[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용 / 朴墉, confidence=1.0
- person: 평도공 음 / 朴訔, confidence=1.0
- person: 중종 / 中宗, confidence=1.0
- person: 인종 / 仁宗, confidence=1.0
- place: 은률현 / 殷栗縣, confidence=1.0
- place: 반남 / 潘南, confidence=1.0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
- office: 현령 / 縣令, confidence=1.0
- titl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1.0
- title: 평도공 / 平度公,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조익
- 기사 ID:
B9C^2_002_002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2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7:25.44567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28
한글 번역
자의 이름은翊之이고, 임천 출신으로, 아버지는 사예元卿이다. 을묘년에 태어나 문과에 급제하였다. 영산군 갑자년 문과 합격자. 효종 즉위년에 장령을 지냈다. 중국어를 꿰뚫어 알고 있었다. 전후에 관직에 나갈 때마다 항상 겸임으로 승문원의 직임을 맡았다. 두 번이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건너가 중국어를 교정하였다. 임금이 조익과 최세진에게 명하여 중국어로 왕도와 패도를 논하고 논박하게 하니, 말문이 막힘이 없었다. 이에 특별히 한 계급을 더하여 서임하고 그 공을 높이 평가하였다. 관직은 결국 군자감정에 이르렀다.
독음
자로 이름은翊之이고 임천 사람이다. 사예 원경의 아들이며 을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과거를 봤다. 영산갑자년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을 지냈다. 화어를 널리 알았다. 전후하여 관职에 나갈 때마다 항상 겸임으로 승문원의 직임을 가졌다. 다시 명나라에 출사하여 화어를 질정하였다. 상이翊와 최세진을 명하여 화어로 왕패를 논변问答하게 하였다. 말이 막힘이 없었다. 특별히 한 계급을 더하여 그를 장상하였다. 관직은 군자감정에 이르렀다. [주: 인물考]
의미
조선 중종조 벼슬아치 조익은 임천 출신으로 사예元卿의 아들이다. 을묘년생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 승문원 직임을 겸임했다. 두 차례 명나라 사신으로 건너가 중국어 교정 업무를 수행했고, 특히 최세진과 함께 중국어로 왕도·패도를 논박하는 논쟁을 펼쳤는데 대화력이 뛰어나 인정받았다. 이를 특별히 평가하여 한 계급을 승진시켰고 최종적으로 군자감정에 이르렀다.
원문
字翊之林川人司藝元卿子乙卯生員燕山甲子文科掌令通曉華語前後除官每兼帶承文院之銜再使明朝質正華語上命翊及崔世珍用華語論卞王霸問對無礙特加一階以奬之官至軍資監正[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익 / 趙翊, confidence=1.0
- person: 최세진 / 崔世珍, confidence=1.0
- place: 임천 / 林川, confidence=1.0
- place: 명나라 / 明朝, confidence=1.0
- office: 사예 / 司藝,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office: 승문원 / 承文院, confidence=1.0
- office: 군자감정 / 軍資監正, confidence=1.0
- term: 왕패 / 王霸, confidence=1.0
- term: 화어 질정 / 質正華語,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장령 : 의식(驥山) 또는 영산(永山) 집권 시의 직명인데 정계 관직인지 능수직인지는 확실하지 않음
- 질정(質正) : 명나라 사신 시절 중국어를 교정·확인하던 업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 절차는 불확실
- 一階(一階) : 품계 하나를 승진시킨 것인데 정식 서임이었는지 호칭 변화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음
(중종조이)홍인우
- 기사 ID:
B9C^2_002_002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2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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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19:11:03.42207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29
한글 번역
자(字)는 응길이고, 호는 치재이다. 남양 사람으로,僉知洪德演의 아들이다. 정유년에 生員이 되었고, 기묘년 이후 정인정사로서 유배와 추방을 당하여 그 형벌이 극도로 혹심하였다. 문생들과 오래된 지기들이 도의로 서로切磋勸勉하던 사람들조차 오히려 모습을 바꾸어 마치 일평생 알지 못했던 것처럼 그 문전 앞을 지나치며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仁祐는 비록 바다섬 먼 변경에 있더라도 사람에게 부탁하여 묻고切磋勸勉하며 그 정성이 매우 간절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해 상사지 내다가 병에 걸려 결국 아들의 귀임으로 인해 우승상에 추증되었다. 아들의 이름은進迪이다.
독음
자응길호치재 남양인 천지덕연자 정유생원 기묘지후 단인정사 유방찬적극기 혹열 문생치지호 유치상강마자 개두환면조약평생소매자연 과기문이불고 도도인우 수해도절새지원인서의 문차촉권면의 극견전 전자우애훼성질 졸이자귀증우상자진적
의미
洪仁祐는 字가 응길이고 호가 치재인 남양 출신으로,僉知洪德演의 아들이다. 정유년에 生員이 되고 기묘년 이후 붕당 갈등 속에 정인정사로 분류되어 유배와 추방 등 혹심한 처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문생들과 도의로 교류하던 기존의 지기들도 모습을 바꾸어 그의 문前을 지나치며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洪仁祐는 유배된 먼 변방에서도 사람에게 부탁하여 학술적 교류와切磋勸勉을 이어갔으며, 아버지의 상을 당한 후 병에 걸려 결국 아들의 관직으로 인해 우승상에 추증되었다. 아들의 이름은洪進迪이다. 기묘년은 1519년으로 추정되는데, 이는中宗 연간 武臣勢와 文人 정인파의 충돌 시기와 일치한다.
원문
字應吉號恥齋南陽人僉知德演子丁酉生員己卯之後端人正士流放竄殛極其酷烈門生知舊號以道義相講磨者改頭換面做若平生素昧者然過其門而不顧滔滔仁祐雖海島絶塞之遠因人寄問切磋勸勉意極繾綣遭父憂哀毀成疾卒以子貴贈右相子進迪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인우 / 洪仁祐, confidence=0.95
- person: 응길 / 應吉, confidence=0.95
- person: 홍덕연 / 洪德演, confidence=0.9
- person: 홍진적 / 洪進迪, confidence=0.9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0.9
- term: 정유 / 丁酉, confidence=0.8
- term: 기묘 / 己卯, confidence=0.8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office: 우승상 / 右相,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流放竄殛(유방찬적)
- 滔滔仁祐(도도인우)
- 絶塞之遠因人寄問(절새지원인서의)
- 門生知舊(문생치지)
- 過其門而不顧(과기문이불고)
(중종조이)매한손
- 기사 ID:
B9C^2_002_003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3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7:57.80185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30
한글 번역
황간 사람 한손의 선조는 처음에 중국의 제남부에서 왔다고 전한다. 아버지가 무거운 병에 걸리자 한손이 손가락을 잘라 약에 섞어 바쳤더니, 병이 즉시 나았다. 중종 14년에 특별히 그 집 문을 표창하도록 명하였다.
독음
황간의 사람(黃澗人) 그 선조가 처음 출하여 중국 제남부(濟南府)에서 왔다고 한다. 아버지가 악질 병을 얻으니 한손이 손가락을 끊여 약에 섞어서 바치니 병이 즉시 나았다. 중종 14년에 명령하여 그 문을 표창하였다.
의미
충효 사례 기사로, 한손이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약에 넣어 바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중종 14년(1519년)에 효행으로 표창을 받은 것으로, 이 기사는 『여지승람』에 실린 것으로 보인다.
원문
黃澗人其先出自中國濟南府云[주:大東韻玉]父得惡疾漢孫斷指和藥以進病卽愈中宗十四年命旌其門[주:輿地勝覽]
엔티티 후보
- place: 황간 / 黃澗, confidence=1.0
- place: 제남부 / 濟南府, confidence=0.95
- person: 한손 / 梅漢孫, confidence=1.0
- person: 중종 / 中宗, confidence=1.0
- work: 여지승람 / 輿地勝覽,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大東韻玉은『대동음옥』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서적명이나 내용 확인이 필요함
(중종조이)박인
- 기사 ID:
B9C^2_002_003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3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18:22:57.19168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31
한글 번역
진주 출신인 사람은 연산군 시절 단상법이 매우 엄격하였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을 당하여 대문 밖 움막에 거처하며 3년을 완전히 마쳤다. 병인년(1506년)에 정국(勳國)이 일어난 이후, 조정이 그 사실을 임금에게 갖추어 아뢴즉, 명하여 그 마을에 표창을 내렸다.
독음
진주인 연산군 시절 단상법이 대단히 엄격하였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을 당하여 거처를 고치어(廬) 3년을 완전히 마쳤다. 병인년에 정국이 난 이후, 조정이 그 사실을 위에 아뢴바, 명하여 그 마을에 표창을 행하였다.
의미
이 기사는 연산군 시절 진주 출신 한 인사가 아버지의 죽음에 따라 단상법(3년 상)을 엄격히 지켰던 이야기를 전한다. 효행이 뛰어나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진 뒤 표창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병인년靖國은 1506년(연산군 12년)에发生过的事件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원문
晉州人燕山主時短喪法大嚴父歿服喪居廬以終三年丙寅靖國後朝廷以其事上聞命旌其閭[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0.95
- person: 연산군 / 燕山, confidence=0.95
- term: 단상법 / 短喪法, confidence=0.85
- person: 정국 / 靖國, confidence=0.8
- term: 상거거려 / 服喪居廬, confidence=0.9
- term: 정기려 / 旌其閭,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박번
- 기사 ID:
B9C^2_002_003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3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8:22.59207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32
한글 번역
임실 사람이 아침에 생원이 되었고, 성품이 지극한 효자였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오리 고기를 먹고 싶어하시자, 박번이 물가로 다니며 통곡하였다. 마침내 오리를 얻어 아버지께 드렸다. 돌아가신 뒤에는 아버지 묘에 초가를 짓고 3년을 거처 있었다. 중종조에 이르러 그 집 문에 효행의 표창을 내리라고 명하였다. [주:이윤행록]
독음
임실인 아침중 생원성 지효 부병욕상아리 번연수통곡수득압이괴지급몰여묘삼년 중종조명정기문[주:이윤행록]
의미
조선 중종 때 임실 출신의 효자 박번이 아버지가 오리 고기를 먹고 싶어하시자 물가에서 울며 기도한 끝에 오리를 구해 모시다가, 돌아가신 뒤 3년간 묘가에서 거처하며 효를 다한 일을 기록한 기사. 중종이 그 가문을 표창하였다.
원문
任實人早中生員性至孝父病欲嘗鴨肉蕃沿水慟哭遂得鴨以饋之及沒廬墓三年中宗朝命旌其門[주:二倫行錄]
엔티티 후보
- person: 박번 / 朴蕃, confidence=1.0
- place: 임실 / 任實, confidence=1.0
- place: 물가 / 水, confidence=1.0
- place: 묘 / 墓, confidence=1.0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person: 중종 / 中宗, confidence=1.0
- term: 지극한 효 / 至孝, confidence=1.0
- term: 묘가에 초당을 짓고泊거 / 廬墓, confidence=1.0
- term: 효행 가문을 표창함 / 旌門, confidence=1.0
- work: 이윤행록 / 二倫行錄,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沿水慟哭의 구체적 행위(물가에서 기도하거나 간청한 것인지 여부)
- 아버지 호칭의 구체적 관계(생원 박번의父)
(중종조이)郉사보
- 기사 ID:
B9C^2_002_003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3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18:23:30.42962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33
한글 번역
자의는 중우이며, 진주 출신이다. 고려 시대 예빈경(礼賓卿)을 지낸 형순의 후손이다. 형사보는 효행으로 일컬어졌으며, 생원시 중시에 합격하였다. 기묘년에 현량과에 합격하고 천거된 기록이 남아 있다. 중종 17년(1522) 임오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군수 벼슬에 나갔다.
독음
자의는 중우, 진주인, 고려 예빈경 형순의 후손, 형사보는 효행이 있었으니, 생원시 중시에 합격하고, 기묘년 현량과에 합격하였으며, 천거된 기록이 있다. 중종 17년 임오년 문과에 합격하여 군수에 임명되었다.
의미
조선 중종 때 인물 형사보의 초상기록이다. 진주 출신으로 고려 예빈경 형순의 후손으로서 효행이 있었다. 생원시 중시와 기묘년 현량과, 그리고 중종 17년(1522) 문과에 합격하며 관직에 진출하였다.「大東韻玉」이라는 책에 수록된 인물이다.
원문
字仲愚晉州人高麗禮賓卿郉順之後士保有孝行中生員試己卯賢良科有薦目十七年壬午文科郡守[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형사보 / 郉士保, confidence=0.95
- person: 형순 / 郉順, confidence=0.95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0.95
- office: 고려 예빈경 / 高麗禮賓卿, confidence=0.8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
- term: 현량과 / 賢良科,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荐目(천거된 기록 여부 및 구체적 의미)
- 文科郡守(文科과郡守의 관계, 文科뒤에 직제 명칭 누락 가능성)
(중종조이)공규
- 기사 ID:
B9C^2_002_003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3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8:09.60213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34
한글 번역
자(字)는 덕장이다. 금포(金浦) 사람으로서 문학으로 이름났으며, 신사(辛巳)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여 문과(文科)에 등재되었다 [주: 《국조방목》에 수록됨].
독음
자덕장 금포인 이문학저명 신사진사 문과전적 주:국조방목
의미
공규는 자가 덕장이고 금포(金浦) 출신으로 문학에 뛰어났다. 1521년(신사) 진사과에 합격하여 문과에 오랐으며, 이 기록은 《국조방목》에 실려 있다.
원문
字德璋金浦人以文學著名辛巳進士文科典藉[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공규 / 公珪, confidence=0.95
- person: 덕장 / 德璋, confidence=0.95
- place: 금포 / 金浦,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典藉: 문과 전적(선별된 문과 합격자 목록)이라는 뜻으로 보이나, 원문 ‘典藉’이 ‘典籍’의 오기인지, 또는 특정 관직명인지 분명하지 않음. 注의 文科典籍은 원문의 文科典藉을 교정·주석한 것으로 보임.
(중종조이)남궁효
- 기사 ID:
B9C^2_002_003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3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8:30.77945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36
한글 번역
자(字)는 사종이다. 함곡 사람이다. 아버지는 현감 벼필이며, 부제학 최경지의 딸을 맞이하여 낳은 아들이 효이다. 갑오년(갑오)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문과 정자(正字)에 오랐다.
독음
자사종 함알 인물 아버지 현감 필취 부제학 최경지녀생 효갑오 진사 문과 정자
의미
중종조 인물 남궁효의 가문과 이력에 관한 기사이다. 그의 아버지 현감 벼필이 부제학 최경지의 딸과 혼인하여 효를 낳았다. 남궁효는 갑오년에 진사과에 합격하여 문과 정자의 관직에 오른 인물이다. ‘함알인’은 그의 출신지를 나타낸다.
원문
字思宗咸悅人父縣監弼娶副提學崔敬止女生孝甲午進士文科正字[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남궁효 / 南宮孝, confidence=1.0
- person: 벼필 / 弼, confidence=0.9
- person: 최경지 / 崔敬止, confidence=1.0
- place: 함곡 / 咸悅, confidence=0.8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정자 / 正字,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진우
- 기사 ID:
B9C^2_002_003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3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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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2:58:32.56142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37
한글 번역
자는 괵이며 여양 출신으로,进士 복명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뛰어났다. 갑오년에 进士 장원이 되어 태학에 있을 때 시정의得失을 논하자 金安老의 마음을 거스려 诽謗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독음
글자는 괵이요 여양 사람이다.,进士福命의 아들이다. 어리적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많다. 갑오년에 进士 장원이 되고 태학에 있으면서 时정의得失을 말하여 金安老의뜻에 위배되어 非謗으로論死하였다.
의미
陈宇는 金安老와 정쟁에서 패배하여 诽謗 죄로 사형된 进士 장원이다. 친구 李悌胤만이 시장에서 독음하며 그를送했으며, 이후 三奸이 숙청되면서 陈宇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져 执义로 추존되었다.
원문
字廓而驪陽人進士福命子幼聰穎多才甲午進士壯元在太學言時政得失忤金安老意以誹謗論死同年友李悌胤言于館中曰今日陳壯元死我同年誰能從我餞之皆不應悌胤獨持酒壺飮宇於市慟哭而訣別丁酉三奸伏誅以宇冤死贈執義[주:昭代紀年]臨刑吟一絶曰漠漠皇天不我明浮雲流水奈吾生平生所抱無人識終得淸朝冤鬼名[주:上同]丙申年間有人題詩于葛院壁曰群小滿朝誣太平此身端合早歸耕愛君不敢輕休退苦受蚊蝱甕裏鳴此必在朝不同志者所作也金安老淫刑峻法以待異己粉袍緇髡亦被其毒朝野惴恐莫之敢議而乃有此人大書特書人心之不可誣也如此越明年三凶竄死[주:丙辰丁巳錄]時有告童蒙敎官率子弟將起兵叛者命捕之自勝冠至十歲以上百餘人下獄桔梏不足以藁索係頸坐之鍾樓下林塘鄭惟吉年十歲亦在繫中其祖文翼公光弼亦待命金吾上親鞫之則群兒登南山脫衣爲旗折枝爲槍爲習陣戲幷無他遂反坐之時告變反坐者相繼猶不止[주:朝野輯要]柳世昌謀欲邀功受賞聚鄕里小兒相與雜戲錄姓名僞作契狀誘會于家飮博爲賭取各人衣曰來日備酒饌乃衣覓去皆令散歸潛書各人姓名謀逆辭連割衣縫納之還合裁縫翌日依約還與衣卽日告變皆拿鞫世昌供請開衣領縫見之果有書錄無辭取服皆杖死其數十人年甫十五六蝨腫滿頭爲所誑誘被誅聞者冤之吾家外從兄昏愚不辦菽麥與柳世昌隣居亦爲所誘被誅故余詳其由[주:思齋摭言]思齋金正國外祖郡守陽川許芝也[주:朝野僉載]
엔티티 후보
- person: 진우 / 陳宇, confidence=1.0
- person: 이제인 / 李悌胤, confidence=1.0
- person: 금안로 / 金安老, confidence=1.0
- person: 임당 정유길 / 林塘 鄭惟吉, confidence=1.0
- person: 정문익 / 鄭文翼, confidence=1.0
- person: 류세창 / 柳世昌, confidence=1.0
- person: 금정국 / 金正國, confidence=1.0
- person: 허치 / 許芝, confidence=1.0
- place: 여양 / 驪陽, confidence=1.0
- place: 태학 / 太學, confidence=1.0
- office: 집의 / 执义, confidence=1.0
- work: 사재적언 / 思齋摭言, confidence=1.0
- work: 소대기년 / 昭代紀年, confidence=1.0
- work: 조야졸요 / 朝野辑要, confidence=0.9
- term: 삼간 / 三奸,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양성윤
- 기사 ID:
B9C^2_002_003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3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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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2:58:46.20654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38
한글 번역
옥구 태수의 아들인 전은 여러 해를 병卧하여 누워 있었고, 밤낮으로 부모를 돌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십여 년 동안 병들어 계셨을 때에도 역시 성실하게 간호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모두 삼 년 동안 묘소 옆 움막에 거처하며 애도하였다. 중종 조에 이르러 명이 그 문 앞에 충열했다.
독음
옥구인 현감 전지 전전당 병와수세 주야불해태 모병십여년 봉사역진성 부모멸개庐묘삼년 중종조 명 형기문
의미
충렬한 효자 전의 행적을 적은 기사이다. 전은 옥구 태수 직의 아들로, 자신이 여러 해 병卧했을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으면서도 어머니의 십여 년 장기 요양을 밤낮으로 성실히 돌보았고, 부모 사후에도 삼 년간 묘庐를 지켰다. 중종 때 이러한 효행이 전해들려 문을 충열하도록 명이 내려졌다. 효자 문 表의 관행이 적용된 사례이며, 현감 직의 아들로 벼슬길에 오른 인물이 효자로 기려졌다는 점에서 비범한 가문 환경과 그에 걸맞은 효행이 함께 드러난다.
원문
沃溝人縣監甸之子甸嘗病臥數歲晝夜不懈帶母病十餘年奉侍亦盡誠父母歿皆廬墓三年中宗朝命旌其門[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전 / 梁成允, confidence=0.95
- person: 전 / 甸, confidence=0.95
- place: 옥구 / 沃溝, confidence=0.95
- place: 직(현감 직) / 甸, confidence=0.9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5
- term: 충열하다 / 旌門, confidence=0.85
- term: 묘庐 / 廬墓,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채형온
- 기사 ID:
B9C^2_002_003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3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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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2:58:38.41983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39
한글 번역
영동 사람 채형온은 열한 살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집이 가난하여 떡갈나무 열매를 줍어 아침저녁을 해결했다. 어머니가 죽자 빚을 얻어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가 항상 요통으로 고생할 때 핥아 주니 나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죽은 지 삼 년 동안 곣을 먹으며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지냈다. 중종조에 그 문을 표창하라는 명을 내렸다.
독음
영동인년십일모위부소기가빈십상이공조석모사칭대이장부당환림순지乃愈급몰졸축노묘삼년중종조명정기문
의미
채형온이 어려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도 떡갈나무 열매를 줍어 가족을 먹여 살렸으며, 아버지가 요통으로 힘들어하면 직접 핥아 치료하는 효행을 보였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사망 후 빚을 내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 묘소에 곣을 먹으며 삼 년간 복상한 효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종대朝廷에서 그 가문의 문을 표창하겠다고 명한 내용이다.
원문
永同人年十一母爲父所棄家貧拾橡以供朝夕母死稱貸以葬父嘗患淋吮之乃愈及歿啜粥廬墓三年中宗朝命旌其門[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채형온 / 蔡亨溫, confidence=0.95
- place: 영동 / 永同, confidence=0.9
- period: 중종조 / 中宗朝,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稱貸(빚을 빌리다) - 고문헌에서 주로 빚을 꾸는 의미로 쓰였으나 구체적 빚의 형태는 불분명
- 淋(림/요통) -淋病과 구분 필요하나文脈상 요로 질환으로 추정
(중종조이)조변
- 기사 ID:
B9C^2_002_004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4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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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2:58:40.42542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40
한글 번역
자호는浩然이고 한양사람으로 정菴의 종제이다. 신사년(1541년)에 옥사를 만나 형을 받아 康津에 유배되었고 19년이 지나서 풀려났다. 평생 종아리 통증을 앓아 뼈가 다섯 조각으로 부러지기도 하였다. 여든 살이 되어 여러 손자들이 장수연을 베풀었을 때, 변은 여전히 건강하여 춤을 추며 시를 지어曰하였다. ‘형이 여든 살이고 동생은 드물도다. 한 몸 세상에 다시 만나 기묘年春, 지난 일이 하나하나清清楚楚하여 많이 감개롭다. 유情人과의 우정을 말할 필요도 없겠으니.’
독음
자유浩然 한양인 정菴 종제야 신사 옥 피형 유 康津 십구년 방환 평생 환비 출쇄골 오편 년 팔십 제손 설수연 변尙 건강 무도 작시왈 형년 팔십 제희 일신세 중봉 기묘춘 왕사 녁 녁 다 감개 부린론 여유情人
의미
조선 중종时期的 조변은 정菴의 종제로서 신사년(1541년) 옥사를 당해 康津에 19년간 유배되었다가 돌아왔다. 종아리 질환으로 뼈가 다섯 조각으로碎한 평생의 고통 속에서도 여든 살까지 살아 손자들의 수연에서 춤을 추고自作歌하는 강인함을 보였다. 시에서는 동생으로서 형과의再逢과 과거 회한, 그리고 벗과의友情을 노래한다.
원문
字浩然漢陽人靜菴族姪也辛巳獄被刑流康津十九年放還平生患腓出碎骨五片年八十諸孫設壽宴忭尙康強舞蹈作詩曰兄年八十弟稀一身世重逢己卯春往事歷歷多感慨不須論與有情人[주:朝野輯要]
엔티티 후보
- person: 조변 / 趙忭, confidence=1.0
- person: 하현 / 浩然, confidence=1.0
- place: 한양 / 漢陽, confidence=1.0
- person: 정菴 / 靜菴, confidence=1.0
- place: 강진 / 康津, confidence=1.0
- work: 조야집요 / 朝野輯要,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김만균
- 기사 ID:
B9C^2_002_004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4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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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8:23:37.12967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43
한글 번역
자(字)는 중임(仲任). 경주 사람. 직제학(直提學) 천영(千齡)의 아들이며,持平引齡의 뒤를 이어 입적하였다. 진사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라 대사헌까지 이르렀다.[주:국조방목]
독음
자중임경주인직제학천영자출계치평인령이지진사문과관 至대사헌[주:국조방목]
의미
김만균은 경주 출신으로, 字는仲任이다. 아버지 직제학 千齡의 아들이며,持平引齡의 후사를 이어 입적하였다. 진사문과에 합격하여 관료로 진출하여 대사헌까지 승진한 인물이다. 본관은 김해 김씨로 추정된다.
원문
字仲任慶州人直提學千齡子出繼持平引齡之後進士文科官至大司憲[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만균 / 金萬鈞, confidence=1.0
- person: 중임 / 仲任, confidence=1.0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1.0
- person: 천영 / 千齡, confidence=1.0
- person: 인령 / 引齡, confidence=1.0
- office: 직제학 / 直提學, confidence=1.0
- office: 치평 / 持平,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出繼持平引齡之後는 ‘持平引齡의 뒤를 이어 입적하다’는 뜻으로 해석되나, 出繼와 引齡의 관계가養子관계인지 혈족관계인지 문맥상 명확하지 않음
(중종조이)류사
- 기사 ID:
B9C^2_002_004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4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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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2:59:28.93167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44
한글 번역
자(호칭)는 중락, 호는 설강, 서산 사람이었으며 진사, 문과 합격자였다. 부사를 지냈으니 위와 같은 사람이다. 형의 이름은 유수인데, 자는 중沂, 호는 보천이며 문과 중시 합격자이고 참지를 지냈다.
독음
자중락호설강서산인진사문과부사 주상동 형수자중沂호보천문과중시참지
의미
조선 중종조 인물 유사(柳泗)와 그 형 유수(柳洙) 형제의 전기이다. 유사는 서산 출신 진사·문과 합격자로 부사를 역임했고, 유수는 문과 중시에 합격하여 참지의 관직에 올랐다. 두 사람은 같은 해에 출생하고 같은 고향 출신으로, 문과 합격자였다.
원문
字仲洛號雪江瑞山人進士文科府使[주:上同]兄洙字仲沂號葆川文科重試參知
엔티티 후보
- person: 유사 / 柳泗, confidence=0.95
- person: 유수 / 柳洙, confidence=0.95
- person: 중沂 / 仲沂, confidence=0.95
- place: 서산 / 瑞山, confidence=0.9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
- office: 참지 / 參知, confidence=0.85
- term: 문과중시 / 文科重試,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文科重試: 문과 중시는 문과 장원 급제 후 다시 치르는 특별 시험으로 해석하나, 장원·중시 구분에 대한 정확한 용례 확인 필요
- 參知: 참지(參知政事) 또는 참지교서 등 직제법상의 벼슬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나, 조선 초기 직제 호칭 혼용 가능성 있음
(중종조이)고형산
- 기사 ID:
B9C^2_002_004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4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2:59:49.17274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48
한글 번역
자(字)는 정숙이고, 횡성 사람이다. 성종 기사(1499)년에 태어난 생원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좌참찬을 지냈다. 성격이 뼡직하고 정직하며, 부지런하고 검소하였다. 여러 차례 군사·병역·전곡 등의 직임을 맡아, 총괄 관리가 매우 치밀하였다. 그러나 기묘년(1519)에 남건 등의 간사들에게 유인되어 북문 사건에 끼워넣어졌다. 『대동운옥』의 주. 기로사에 들어갔으며, 안윤덕과 함께 기로사회를 하였다. 시호는 익평이다.
독음
자정숙 횡성인 성종 기사생원 문과 좌참찬 성벽직근검 누전 군사병전곡지임 종리심밀단의 기묘 피 남건 제간 유치 구성 북문지화 대동운옥 입기사 어 안윤덕 작기로호회 시익평
의미
고형산은 조선 성종 기사년(1499)에 태어난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좌참찬까지 올랐다. 성격이 뼡직하고 정직하며 검소했고, 군사·재정 등의 직임을 맡아 치밀하게 관리를 잘했다. 그러나 기묘년(1519) 사화 때 남건 등의 간사들에게 유인되어 북문 사건에 연좌되었다. 이후 기로사에 들어갔으며, 안윤덕과 함께 기로회를 가졌다. 사후 시호는 익평을 받았다.
원문
字靜叔橫城人成宗癸卯生員文科左參贊性撲直勤儉累典軍兵錢穀之任綜理甚密但己卯被南衮諸奸誘致搆成北門之禍[주:大東韻玉]入耆社與安潤德作耆老會諡翼平
엔티티 후보
- person: 고형산 / 高荊山, confidence=1.0
- person: 남건 / 南袞, confidence=1.0
- person: 안윤덕 / 安潤德, confidence=1.0
- place: 횡성 / 橫城, confidence=1.0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1.0
- term: 북문 사건 / 北門之禍, confidence=1.0
- term: 기로사 / 耆社,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중종조이)윤옥
- 기사 ID:
B9C^2_002_004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4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2:10:35.22900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49
한글 번역
자(字)는 자온(子溫)이고 호(號)는 동리(東里)이다.茂松(모송) 사람으로서, 아버지는 판서(判書) 윤사의(尹思翼)이다. 신묘(辛卯)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경자(庚子)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검阅(檢閱)에 보직되었다.慕斋(慕齋) 김안국(金安国)에게 수학하였다. 부모에게 지극한 효도를 하고, 3년간 묘소 옆에서 거처하며 살았다. 서적 읽기를 좋아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관직은 참판(參判)에 이르렀다.
독음
자자유온호동리모송인반서사의자신묘진사경자문과보검열수업어모재금안국사부모지효여묘삼년탐서조건수불석권관지삼판
의미
조선 중종 연간에 활동한 윤옥의 행적을 수록한 비문이다. 윤옥은 자가 자온, 호가 동리이며, 아버지 윤사의의 가르침을 받아 신묘년에 진사가 되고 경자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김안국에게 수학하고 효성과 학구심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종 관직은 참판에 이른다.
원문
字子溫號東里茂松人判書思翼子辛卯進士庚子文科補檢閱受業于慕齋金安國事父母至孝廬墓三年耽書嗜學手不釋卷官至參判[주:李誠中撰碑]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옥 / 尹玉, confidence=1.0
- person: 자온 / 子温, confidence=1.0
- person: 윤사의 / 尹思翼, confidence=1.0
- person: 김안국 / 金安國, confidence=1.0
- person: 이성중 / 李誠中, confidence=1.0
- place: 모송 / 茂松, confidence=0.8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삼판 / 參判, confidence=1.0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1.0
- work: 모재 / 慕齋, confidence=0.9
- term: 신묘 / 辛卯, confidence=0.9
- term: 경자 / 庚子,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정유
- 기사 ID:
B9C^2_002_005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3:00:17.14739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50
한글 번역
자(호)는 공작이고 온양 사람이다. 현감 수강의 아들이다. 무자에 생원이 되었고, 정유년에 문과에 합격하였으며, 정의년에 거용시험에 뽑혔다. 삼사를 두루 역임하고 대사헌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경연을 보필하여 큰启迪를 주었다. 명종이 늘 말씀하시길 “정유는 글을 읽는 태도가 근실하고 후후한 사람이다.” 하셨다. 정사에 척리 세도가 횡행하여 그 세焰이 짙고 독렬하여 감히直言하는 이가 없었다. 정유가戒告을 올리며 말하기를 “외척이 제멋대로 횡포하니 마땅히 제재하여 누르소서. 봄이 감돌아 뻗치지 못하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기뻐하며 말씀하시길 “경의 말은 대단한 원려가 있다.” 하셨다. 병인년에 졸하니, 비문은 유성용이 지었다.
독음
자공작 온양인 현감수강자 무자생원 정유문과 정의무과 거용시험력 삼사관 至대사헌 구시경연 다소계옥 명종 상인 위정유 독서 근후인야 정재척리세염훈작무감자裕進戒위 외속자유 횡宜가 제재억 無시호 자만상嘉之위 청언 대유 원려 병인 졸[주 유성용 찬비]
의미
정유(字公綽)는 조선 명종 때 온양 출신으로, 무자에 생원이 되고 정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삼사를 두루 관직을 옮기며 대사헌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경연을 보필하며 왕에게 큰 도움을 주었으며, 명종은 정유를 ‘글이행을 근후하게 닦은 사람’으로 칭찬하였다. 당시 척족이 정사를 좌우하며 세焰이 독렬하였으나 감히 간하는 이가 없었고, 정유만이 이를憂虑하며 외척의 횡포를 제재해야 한다고大胆直言하였다. 명종은 이를 높이 사고嘉納하며 원려가 있다고評価하였다. 병인년에 사망하자 유성용이 비문으로 그의 行跡을 기렸다.文中의 ‘거용시험력’은 과거제의 거용(擧用) 시험과 사마시(三司試)를 거친 경력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시험 명칭은 文献상 확인이 어렵다.
원문
字公綽溫陽人縣監守綱子戊子生員丁酉文科戊戌擢英試歷三司官至大司憲久侍經筵多所啓沃明宗嘗曰鄭裕讀書謹厚人也政在戚里勢焰薰炙無敢言者裕進戒曰外屬恣橫宜加裁抑無使滋蔓上嘉之曰卿言大有遠慮丙寅卒[주:柳成龍撰碑]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유 / 鄭裕, confidence=1.0
- person: 수강 / 守綱, confidence=1.0
- person: 명종 / 明宗, confidence=1.0
- person: 유성용 / 柳成龍, confidence=1.0
- place: 온양 / 溫陽,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경연 / 經筵,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term: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 / 三司, confidence=0.9
- term: 척족(외척과 그 일족) / 戚里, confidence=1.0
- term: 거용시험 또는 거용시 / 擧英試, confidence=0.7
- term: 계옥(계발과 가르침) / 砥沃, confidence=0.9
- term: 계옥(계발과 가르침) / 砥沃, confidence=0.9
- term: 자(시호·호) / 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거용시험력(擧英試력) - 사마시(三司試)와 거용시(擧用試)를 합친 표현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시험 명칭과 순서는 문헌 확인이 필요하다. ‘력’자가 시험 경력을 나타내는지 명시적이지 않다.
(중종조이)이영현
- 기사 ID:
B9C^2_002_005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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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2:10:38.08385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51
한글 번역
자가 희성이요, 광주 사람이다. 참판 예손의 증손으로서 을유년에 진사가 되었고, 정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무술년에 영걸시를 통해 발탁되어 검열에 보임되었다. 을사년에 사림이 탄압을 받게 되자, 이영현은 응교 벼슬에서 병을 칭탁하고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흉구가 노여워하여 이때부터 9년간 낮은 신세로 궁상하게 지냈다. 일찍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누가 알리오, 하늘에는 눈이 있어 사람의 정과 악을 하나하나 살피나니, 미세한 재변과 상감이 명백하도다’ 하였다. 벼슬은 참판에 이르렀으며, 인물고에 따르면 종형은 이영부이다.
독음
자 희성이요, 광주 사람이니, 참판 예손의 증손이다. 을유년에 진사가 되고, 정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무술년에 영걸시를 뽑아 급제하여 검열에 보임되었다. 을사년에 사림이 핍박받으니, 영현이 응교로 병을 칙탁하여 나가지 아니하니, 흉당이 노怒甚甚히 自是로부터 低徊宂散한 자가 凡九年이나 되었다. 嘗에 시를 지어 가라사대, 누가 알리오 하늘에 눈이 있어, 하나하나 사람의 정과 악을 살피나니,幾微한 재사와 상감이 明明白白하다 하였으니, 벼슬은 至作參判에 이르렀으며, [주: 인물고]에 따르면, 從兄英符라. [주: 위에 보인다]
의미
이영현은 조선 중종 때 광주 출신으로, 참판 예손의 증손이다. 문과에 진출하여 검열에 보임되었으나, 을사년(1537년) 사림의 탄압이 일어났을 때 응교로서 병을 칭탁하여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흉당에게 노여움을 받아 이후 9년간 궁리한 신세로 지냈다. 하늘이 사람의 선악을 꿰뚫어 본다는 시구를 남겨, 자신의 궁리를 달래면서도 하늘의 응보에 기대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벼슬은 참판에 이르렀다.
원문
字希聖廣州人參判禮孫之曾孫乙酉進士丁酉文科戊戌擢英試補檢閱乙巳士林魚肉英賢以應敎移疾不出凶黨怒甚自是低徊宂散者凡九年嘗有詩曰誰知天有眼一一見人情善惡幾微隱災祥感應明官至參判[주:人物考]從兄英符[주:見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영현 / 李英賢, confidence=0.95
- person: 이영부 / 李英符, confidence=0.9
- person: 예손 / 禮孫, confidence=0.85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0.95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0.9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5
- office: 응교 / 應敎, confidence=0.9
- term: 사림의 핍박 / 士林魚肉, confidence=0.85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 term: 영걸시 / 擢英試, confidence=0.9
- term: 낮은 신세로 궁리함 / 低徊宂散,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남순민
- 기사 ID:
B9C^2_002_005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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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가봉이고, 의녕 사람이다. 수사(水利使者) 효원의 아들이며, 기묘년에 태어나 원진사가 되었다. 갑신년에 문과에 급제한 뒤 검열에 보임되었다. 성품이 엄엄하고 용감하며 말이 적었다. 선을 좋아하고 학문을 깊이嗜暯하였는데, 특히 역(易)에功夫이 깊았다. 관직을力力히処理하며 영화를慕望치 않았다. 관직은 가선 동지까지 올랐다. (송인이 찬술한 묘표와 함께 수록)
독음
자가 가봉 의녕인 수사 효원자 기묘생 원진사 갑신 문과 보검열 엄엄 과언 낙선 담학 유신어 역 각근 관사 불모 영리 관至 가선 동지
의미
남순민은 의녕 출신으로, 수사 효원의 아들이다. 기묘년에 태어나 갑신년 문과에 합격하고 검열로 관직을 시작했다. 성격이 엄격하고 조용했으며, 학문 특히 역에 깊었고, 관직에서 부지런히 일하면서 영화를 사양하지 않았다. 결국 가선 동지까지 승진한 관리였다. 송인이 찬한 묘표에서 비롯된 기록이다.
원문
字可封宜寧人水使孝元子己卯生員進士甲申文科補檢閱嚴毅寡言樂善耽學尤深於易恪勤官事不慕榮利官至嘉善同知[주:竝宋寅撰墓表]
엔티티 후보
- person: 남순민 / 南舜民, confidence=0.95
- place: 의녕 / 宜寧, confidence=0.95
- office: 수사 / 水使, confidence=0.7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0.95
- office: 가선동지 / 嘉善同知,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원진사 / 員進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경혼
- 기사 ID:
B9C^2_002_005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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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가 언회이며 청주 사람이다. 지평世淸의 아들로서 덕기와 재능이 일찍 이루어졌다. 모재金安國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오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계사년에 문과에 올라 검열을 지냈다. 천거로 인하여 퇴계李滉과 함께하고, 金安老에게 불쾌한 일을 당하여 직임을 파면되었다. 부제학이 되었으며, 늙어서 벼슬이 올라가자 임금의 특별히 금환을 하사하여 자손의 보배로 남기도록 하였다.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아들時成은 문과에 합격하여 헌납이 되었고, 時成의 아들暹은 字를 퇴甫,호를 칠송이라 하였다. 경인년에 생원 · 문과에 합격하여 참판에 이르렀다.
독음
자유언회 청주인 지평세청자 덕기속성 수학 于모재김안국지문 임오진사 계사문과 역검렬 이천거引领이황 견우於김안로 좌罢 위부제학 이기노승자 상특자원금권유위자손보 관至이조참판[주:인물고] 자시성문과헌납 시성자점 字퇴보호칠송 경인생원문과 참판
의미
경혼(字彥晦)은 청주 출신으로, 모재 김안국의 문인이다. 임오년 진사, 계사년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을 올렸다. 퇴계李滉와 교류하였으나, 김安老와 갈등하여 파면된 뒤 부제학에 다시 임명되었다. 늙어서 벼슬이 오르자 임금으로부터 금환을 하사받았다. 아들時成은 문과 합격생이고, 손자暹(퇴甫, 칠송)은 경인년에 생원·문과에 합격하여 참판에 이르렀다. 김安老는 중종 연간 권신으로 추정된다.
원문
字彥晦淸州人持平世淸子德器夙成受學于慕齋金安國之門壬午進士癸巳文科歷檢閱以薦引退溪李滉見忤於金安老坐罷爲副提學以耆老陞資上特賜金圈留爲子孫寶官至吏曹參判[주:人物考]子時成文科獻納時成子暹字退甫號七松庚寅生員文科參判
엔티티 후보
- person: 경혼 / 慶渾, confidence=1.0
- person: 세청 / 世淸, confidence=0.9
- person: 김안국 / 金安國, confidence=1.0
- person: 이황 / 李滉, confidence=1.0
- person: 김안로 / 金安老, confidence=0.9
- person: 시성 / 時成, confidence=1.0
- person: 점 / 暹, confidence=1.0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office: 지평 / 持平, confidence=0.9
- office: 검열 / 檢閱,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이조참판 / 吏曹參判, confidence=1.0
- office: 헌납 / 獻納,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8
- term: 덕기속성 / 德器夙成, confidence=0.9
- term: 금환 / 金圈,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檢閱(검렬 또는 검열으로 둘 수 있음)
- 金圈(임금이 하사한 금제로 된 패물·훈장류로 추정)
- 引溪(引进관계 또는引领동행의 의미로 해석이 나뉨)
(중종조이)김정
- 기사 ID:
B9C^2_002_005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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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글자는 응지이다. 청풍인으로서,務功郞이며,宗砥의 아들이다. 총하고 영리하여 사람과 크게 달랐다. 문예를 일찍이 익혔으며, 임오년에 진사가 되고, 갑신년에文科에 합격하여 벼슬을 옮기며 전라도 도사를 역임하고, 곡산 부사를 지냈다. 관이 승문원의 교리에 이르렀다. 퇴거하여 관서에 살게 되어 마침내 관서의著名한 성씨가 되었다.[주:梅山集]
독음
자 응지, 청풍인, 무공랑, 종저자, 총혜절인, 문예숙취, 임오진사, 갑신文科, 이어관 전라도사, 곡산부사, 관至 승문원의 교리, 퇴거 관서, 수위 관서저성
의미
김정은 字를 응지라 하고, 청풍인이며務功郞이었다. 총명하여 문예에 조예가 깊었고, 임오년 진사, 갑신년文科 합격 후 전라도 도사, 곡산 부사, 승문원 교리 등을 역임한 뒤 관서(關西)地方으로 물러나 그곳의 유력한 가문이 되었다.
원문
字凝之淸風人務功郞宗砥子聰慧絶人文藝夙就壬午進士甲申文科歷官全羅都事谷山府使官至承文院校理退居關西遂爲關西著姓[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정 / 金鼎, confidence=0.95
- person: 응지 / 凝之, confidence=0.95
- place: 청풍 / 淸風, confidence=0.6
- office: 무공랑 / 務功郞, confidence=0.9
- person: 종저 / 宗砥, confidence=0.9
- place: 전라 / 全羅, confidence=0.95
- office: 도사 / 都事, confidence=0.95
- place: 곡산 / 谷山, confidence=0.8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5
- office: 승문원 교리 / 承文院校理, confidence=0.9
- place: 관서 / 關西, confidence=0.85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淸風人: ‘청풍인’으로 읽으나, 地名인 清風縣이나 일종의 칭호로 볼 가능성도 있어 확인 필요
- 務功郞: 관직명으로서 務功郞은有些不常見한 직칭으로 보임, 정확한 직제 분류 미확인
(중종조이)류세린
- 기사 ID:
B9C^2_002_005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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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2:11:04.53514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55
한글 번역
류세린은 자가 사인이고 호는 활동이며, 전주 출신이다. 아버지는 헌자이다. 기묘년에 태어났다. 관유(관리의 서재)로서 정암(정암 스승)을 모신 여러 현자를 상소로 변호하여 구했다. 병자년(1576)에 진사에 합격하고, 신사년(1581)에 문과에 합격하여 삼판(三判)에 세 번 임명되었다. 국조방목에 기록되어 있다. 아들 신의 자는 언부이고, 갑오년(1594)에 진사에 합격하고 갑진년(1604)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검임관 벼슬에서 조랑까지 관직에 이르렀다.
독음
자 사인호 활동 전주인 헌자 기묘이관유서구정암제현 병자진사 신사문과 삼판삼판[주:국조방목]자신자언부 갑오진사 갑진문과 검임관 至조랑[주:동상]
의미
류세린(柳世麟)은 전주 출신으로 기묘년생이다. 벼슬길에 올라 정암 스승을 위해 상소로 변호한바 있으며, 문과 급제 후 삼판(三判)에 세 번 임명된 고관이다. 아들 류신(柳信)도 갑오진사와 갑진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다. 이 기사는 국조방목에서 발췌한 인물 기록이다.
원문
字士仁號活灘全州人軒子己卯以館儒疏救靜菴諸賢丙子進士辛巳文科參判參判[주:國朝榜目]子信字彥孚甲午進士甲辰文科檢閱官至佐郞[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류세린 / 柳世麟, confidence=1.0
- person: 류신 / 柳信,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5
- person: 정암 / 靜菴, confidence=0.9
- term: 관유 / 館儒, confidence=0.9
- term: 자(표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軒子
- 헌자로 해석하나 아버지 이름일 가능성도 있음
(중종조이)윤현
- 기사 ID:
B9C^2_002_005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19:11:55.46748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56
한글 번역
자(字)는 자용(子用), 호는 국간(菊磵). 파평 사람. 사정승 홍자의 아들 영상 필상의 증손(曾孫). 신유(辛酉)년에 생원(生員)에 합격하고, 정유(丁酉)년에 문과 장원(壯元)으로 합격하여 벼슬이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이르렀다. 낡은 자리 위에 누비고, 옷은 푸른 빛의 물든 베를 입고, 모두 이를 쌓아 창고에 두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그 후 낡은 자리를造纸서에 내어 종이를 만들게 하였는데, 종이의 품질이 매우 우수하였고, 푸른 물든 베로 야인(野人)의 옷을 만들어 축에 붙였다. [주:牧民心書] 선조(宣祖)가 대신에게 물어 가로되, ‘도지(度支)에 아직 적임자를 얻지 못하였다. 직분을 다하는 윤현과 같은 사람은 관직의 품계에 상관없이 추천하면 될 것이다.’ 대신들이 이역(李珥)을 으뜸으로 추천하자, 비로소 호조 판서에 임명되었다. 이헌국(李憲國)이 말하기를, ‘숙헌(叔獻)의 관품이 높아진 것을 축하하나, 다만 임금께서 윤현과 같은 사람을 구하시려 하였는데 대신들이 숙헌으로 응하였으니, 후세에 반드시 인물 품격의 낮음으로 의심할 것입니다.’ 이를들은 웃었다. [주:昭代紀年] 청렴하고 근신한 것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주:國朝榜目] 형 윤건(尹鍵)의 자(字)는 자기(子器), 신묘(辛卯)년에進士에 합격하고, 정유(丁酉)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이舍人에 이르고, 관至參判에 이르렀다. 청백리(淸白吏)였다. [주:同上]
독음
자유용호국간 파평인 사정승홍자영상필상증손 신유생원 정유문과장원 관至호조반서 폐석지의청연포실장지도 중인감소지嘲笑지其后폐석부조조선서작지 지품심가 청포작야인 의축
의미
조선 호조 판서 윤현(尹鉉, 자용, 호 국간)의 생애와 인물상을 적은 기사이다. 윤현은 파평 출신으로 정유(1537)년 문과 장원 합격 후 호조 판서까지 올랐다. 청렴과 검소한 생활로 유명하여 낡은 자리와 헌 옷을 창고에 쌓아 두었다가 종이 만드는 데 쓰게 하였고, 그 종이와 옷이 모두 품질이 우수하였다. 선조 연간 도지人选에 윤현을 추천하였으나 대신들은 이역(李珥)을 대신 추천하여 화제가 되었다. 사후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형 윤건 역시 청백리로 유명하였다.
원문
字子用號菊磵坡平人寺正承弘子領相弼商曾孫辛酉生員丁酉文科壯元官至戶曹判書弊席地衣靑緣布悉藏之庫中人咸笑之其後弊席付造紙署作紙紙品甚佳靑布作野人衣軸[주:牧民心書]宣祖問于大臣曰度支未得其人盡職如尹鉉者勿問爵秩薦擬可也大臣以李珥爲首薦乃拜戶判李憲國語人曰叔獻陞秩可賀但自上欲得如尹鉉者而大臣以叔獻應薦後世必疑人品之卑矣聞者笑之[주:昭代紀年]以廉謹稱諡忠簡[주:國朝榜目]兄釜字子器辛卯進士丁酉文科歷舍人官至參判淸白吏[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윤현 / 尹鉉, confidence=0.98
- person: 이역 / 李珥, confidence=0.97
- person: 윤건 / 尹鍵, confidence=0.96
- person: 이헌국 / 李憲國, confidence=0.95
- office: 호조판서 / 戶曹判書, confidence=0.98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0.97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7
- office: 사정 / 寺正, confidence=0.95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0.98
- work: 목심민서 / 牧民心書, confidence=0.9
- work: 조사기년 / 昭代紀年, confidence=0.88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8
- place: 파평 / 坡平, confidence=0.98
- term: 장원 / 壯元, confidence=0.98
- term: 도지 / 度支, confidence=0.92
- term: 청백리 / 淸白吏, confidence=0.97
- term: 충간 / 忠簡, confidence=0.98
불확실한 어휘
- 野人의 구체적 신분 범위
- 軸에 붙인 기록이 목심민서의 어떤 부분인지
(중종조이)박경
- 기사 ID:
B9C^2_002_005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4:18:31.13436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57
한글 번역
자는 백우이며 나주 사람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사서(寫手)로 교추청에 종속되어 오래 함께 있으면서 그의 행실을 알았는데, 이는 거의 잠부(潛夫)와 같은 부류이다. 글은 생계 수단일 뿐 그 지향은 서적에 있지 않았다. 정축년에,参議柳崇祖, 護軍沈貞, 상인南衮 등이 비밀히 아뢴 바에 이르기를, 서자朴耕과 유사趙廣輔, 李長吉 등이 朴元宗과 柳子光을 해치려 한다고 하였다.殿廷에서 문초하여烙刑을 가하기에 이르렀다.『東閱雜記』 남큽은 진급에 급급하여 朴耕이 반역을 꾀한다 하며 거짓으로 고발하고 사형에 이르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清議가 容납되지 아니하였다.『石潭日記』朴耕은 鄭新堂에게 수학하였는데, 鵬松堂朴英은 화를 입은 소식을 듣고 달려와 新堂先生을 찾아, 지팡이에 기대어 말없이 궁구하니 이르기를, 이는 반드시 文世皐가 한 짓이라 하였다. 이르기를, 인(仁)하나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이 어리석음이라.伯牛는 어리석으나 배우지 않으면 화를 입음이 예측할 수 없으나, 赵广辅라면 반드시 면한다 하였다. 뒤에 과연 그 말과 같았다.『一善志』松堂은墓碣을 지었다.『東儒師友錄』
독음
자 백우 나주인 가빈 이 사수 예 제 교추청 구여처 이득기 위인 해 태 잠부지류 서어식 이 기지 측 부재 서
의미
朴耕은 나주 출신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사서로 생계를 유지한 인물이다. 학문보다는 현실적 생존에 치중하는 잠부류的人物이었다. 丁卯년에 柳崇祖, 沈貞, 南衮 등이 朴耕과 趙廣輔, 李長吉이 朴元宗·柳子光을 해치려 한다고 비밀 고변하였고,殿廷에서烙刑까지 사용하여 문초하였다. 남큽은 자신의 진급을 위해 朴耕을 모반 혐의로 허위 고발하여 사형에 이르게 하였다. 朴耕은 鄭新堂門下에서 수학하였으며, 친구 朴英은 新堂先生을 찾아 이 사건의 배후가 文世皐임을 알아챘다. 新堂先生은 어리석은 자가 배우지 않으면 예측 못할 화를 입을 수 있으나, 才知가 있는 趙廣輔는 반드시 면할 것이라 예언하였고, 실제로 그와 같았다. 이후 松堂이 朴耕의 묘표墓碣를 지었다.
원문
字伯牛羅州人家貧以寫手隷校讎廳久與處而得其爲人殆潛夫之流書於食而其志則不在書[주:金濯纓書]丁卯參議柳崇祖護軍沈貞喪人南衮等密啓庶孼朴耕儒士趙廣輔李長吉等欲害朴元宗柳子光鞫于殿廷至用烙刑東閱雜記
南衮急於進取誣告朴耕謀反抵死由是不容淸議[주:石潭日記]耕受業于鄭新堂鵬松堂朴英聞被禍馳詣新堂先生倚杖默究曰此必文世皐所爲也語曰仁而不學其蔽也愚伯牛愚而不學被禍不測若趙廣輔必免後果如其言[주:一善志]松堂作墓碣[주:東儒師友錄]
엔티티 후보
- person: 박경 / 朴耕, confidence=1.0
- person: 유숭조 / 柳崇祖, confidence=1.0
- person: 심정 / 沈貞, confidence=1.0
- person: 남눈다 / 南袻, confidence=1.0
- person: 조광보 / 趙廣輔, confidence=1.0
- person: 이장길 / 李長吉, confidence=1.0
- person: 박원종 / 朴元宗, confidence=1.0
- person: 유자광 / 柳子光, confidence=1.0
- person: 정신당 / 鄭新堂, confidence=1.0
- person: 박영 / 朴英, confidence=1.0
- person: 문세포 / 文世皐, confidence=1.0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1.0
- office: 교추청 / 校讎廳, confidence=1.0
- work: 동악잡기 / 東閱雜記, confidence=1.0
- work: 석담일기 / 石潭日記, confidence=1.0
- work: 일선지 / 一善志, confidence=1.0
- work: 동유사우록 / 東儒師友錄, confidence=1.0
- term: 사서 / 寫手, confidence=1.0
- term: 낙형 / 烙刑, confidence=1.0
- term: 청의 / 清議,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寫手隷校讎廳
- 寫手隷校讎廳의 직제 소속 관계가 불분명하여 직역 표기함
(중종조이)이장
- 기사 ID:
B9C^2_002_005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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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3:01:39.0912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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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장은 자가 군헌으로, 전주 출신이다. 부호군 익번의 아들이며, 익안대군 방역의 5대 손이다. 을유년에 생원과 진사를 거쳐 임진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역이 되었다. 시부(詩賦)에 능하여 큰 노래(長歌)를 짓고 김안로를 비판하였다. 이 때문에 동래로 유배되어 19년을 보냈으나, 안로가 실각한 뒤 정언으로 소환되어 돌아갔다. 상주에서 벼차를 가는 길에 세상을 떴다.
독음
이장, 자는 군헌, 전주인, 부호군 익번의 아들, 익안대군 방역의 5대 손자, 을유년에 생원진사, 임진년에 문과 급제하여 검역이 되다. 시부(詩賦)에 능하여 장가(長歌)를 지어 김안로(金安老)를 토로하였다. 이 때문에 동래에 유배되어 19년을 보냈으나, 안로가 부패하자 정언으로 다시 소환되다. 상주에서 사망하다.
의미
이장(李璋)은 전주 이씨로서 중종조 문과 급제자이다. 시부(詩賦)에 뛰어나 장가(長歌)를 지어 권신 김안로를 비판한 죄로 동래에 19년간 유배되었다. 김안로가 실각한 뒤 정언으로 다시 기용되었으나, 상주赴任길에 사망하였다. 한국 고문헌 인물 전기의 간결한 서술 형식을 갖는다.
원문
字君獻全州人副護軍益蕃子益安大君芳毅五代孫乙酉生員進士壬辰文科檢閱長於詞賦作長歌斥金安老以是謫東萊十九年而安老敗以正言召還至尙州卒于道[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장 / 李璋, confidence=1.0
- person: 김안로 / 金安老,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place: 동래 / 東萊, confidence=1.0
- place: 상주 / 尙州, confidence=1.0
- office: 부호군 / 副護軍, confidence=1.0
- office: 검역 / 檢閱,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person: 익번 / 益蕃, confidence=1.0
- person: 방역 / 芳毅, confidence=1.0
- person: 익안대군 / 益安大君,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長於詞賦作長歌斥金安老의 ‘斥金安老’가 시를 지어 비판했다는 의미인지, 직권으로 징계했다는 의미인지 문맥상 불확실
(중종조이)안처화
- 기사 ID:
B9C^2_002_005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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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순흥 사람은 판서 심지의 조카로서 역학에 밝고 성품이 효순하였다. 묘에 대들판을 치우고 거처하며 상을 지냈는데, 묘 앞의 밭은 관에서 모두 세금을 면제해주었고, 그대로 그 마을 이름이 되었다. 기묘년에 진사가 되고 참봉에 오르지 않았으며, 다시 현량과에 추천받았으나 가지 않았다. 응거하여 신사년에 宋씨 일당에게 모함당하여 맹산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독음
순흥인 판서 심지의 종자 선해역학 선정효 당여묘 묘전전 관개면세 영위동명 기묘진사 참봉 불사 우천현량과 불취 응거 신사 위송사 연당 소오 맹산 이 졸
의미
조선 중종조 순흥 출신 安處和의 행적이다. 효자로 명성이 높아 묘 앞 밭이 관에서 세금을 면제받고 마을 이름이 되었으며, 과거에 진사로 급제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관직 응거 시 정치적 당파斗争에 휘말려 宋씨 일당에게 모함당해 맹산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인물고』에서 확인되는 인물이다.
원문
順興人判書琛之從子善解易理性孝嘗廬墓墓前田官皆免稅仍爲洞名己卯進士參奉不仕又薦賢良科不就應擧辛巳爲宋祀連黨所誣謫孟山而卒[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처화 / 安處和, confidence=0.85
- person: 심 / 琛, confidence=0.95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0.95
- place: 맹산 / 孟山, confidence=0.95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5
- term: 현량과 / 賢良科, confidence=0.9
- term: 응거 / 應擧, confidence=0.9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洞名(동명의 구체적 유래와 변화)
- 宋祀連黨(송씨 일당의 정확한 정치적 배경과 관계)
(중종조이)안수
- 기사 ID:
B9C^2_002_006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6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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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8:24:52.7846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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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여패, 또 명의는 서경, 호는 창랑. 순흥 출신. 부사(府使) 처명의 아들이며, 첨의 손자이다. 정유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기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박사를 역임했다. 시로 명성이 있었으나 일찍 요절하였다. [주:국조방목]
독음
자여패又开始瑞경호창랑순흥인 부사처명자첨손정유진사기유문과 홍문박사유시명조요[주:국조방목]
의미
安璲는 조선 중종조의 문인이다. 자는 여패, 호는 창랑이며, 순흥 출신으로 부사(군부 관리)였던 처명의 아들이다. 정유년과 기유년에 각각 진사와 문과에 합격하여 홍문박사 벼슬에 올랐다. 시가 뛰어나 명성이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国朝榜目은 과거 합격자 명부를 의미하는 주석이다.
원문
字汝佩又曰瑞卿號滄浪順興人府使處明子琛孫丁酉進士己酉文科弘文博士有詩名早夭[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수 / 安璲, confidence=1.0
- person: 여패 / 汝佩, confidence=1.0
- person: 서경 / 瑞卿, confidence=1.0
- person: 처명 / 處明, confidence=1.0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
- office: 홍문박사 / 弘文博士, confidence=1.0
- term: 정유 / 丁酉, confidence=1.0
- term: 기유 / 己酉,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琛孫 - 첨손으로 해석하나, 원문 순서가 일반적 표현과 다름
- 處明子琛孫 - 처명의 아들 첨의 손자라는 계보의 정확한 관계
(중종조이)류세화
- 기사 ID:
B9C^2_002_006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6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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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3:02:01.10165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61
한글 번역
자(字)는 백실이고, 전주 출신이다. 신묘년(1539년) 진사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냈다. 부친 팽성(彭城)은 오래도록 중병을 앓았으나, 세화가 직접 소변기를 받들고 약과 음식은 반드시 친히 맛보며 돌보아 지극한 효성을 다했다. 나아가상을 당하자 죽은 아버지를 위해 끼니마다 죽을 먹으며 삼 년을 마쳤다.
독음
자백실 전주인 신묘진사문과 부사 부친 팽성구포침가 세화친봉역기약이필친상조호비지급정우졸죽음자종삼년
의미
류세화가 부친 팽성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친이 중병을 않았을 때 소변기를 직접 받들고 약과 음식은 반드시 자신이 직접 맛보며 돌보았고, 사망 후에는 삼 년간 죽을 먹으며 여가를 지냈다. 효자로 유명했던 류세화의 행적을 소세양이 묘갈에 기록한 것이다.
원문
字伯實全州人辛卯進士文科府使父彭城久抱沈痾世華親奉溺器藥餌必親嘗調護備至及丁憂啜粥飮以終三年[주:蘇世讓撰墓碣]
엔티티 후보
- person: 류세화 / 柳世華, confidence=1.0
- person: 팽성 / 彭城, confidence=1.0
- person: 소세양 / 蘇世讓,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term: 침가 / 沈痾, confidence=1.0
- term: 정우 / 丁憂, confidence=1.0
- term: 묘갈 / 墓碣, confidence=1.0
- term: 진사문과 / 進士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신묘진사문과의 합격 연도 해석에 유의(1539년 음력 2월 또는 이듬해설 있음), 字伯實의 字는 호칭인지 실명 표기인지 문맥상 구분 필요
(중종조이)김약묵
- 기사 ID:
B9C^2_002_006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6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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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3:02:07.85375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62
한글 번역
김약묵은 字를 대용, 호를 성재라 했다. 강진 출신으로, 참봉을 지낸 희석의 아들이다. 경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의를 역임했으며, 학식과 행실이 있었다. 하서(金海)의 학자 김윤후가 그의 묘문을 지어 유제(祭文)를 지었다. 아들 복억은 부사에 至했고, 복억의 손자 우정은 字를 숙단이라 했으며, 병술년에 생원에 합격하고 인조 무자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正郞에 任관했다. 国朝榜목에 기록되어 있다.
독음
자대용호성재강진인참봉희석자경자문과집의유학행하서김윤후작묘명고자복억부사복억손자우정자숙단병술생원인조무자문과정랑국조방목
의미
조선 중종조 문신 김약묵의 가계와 이력을 수록한 기사다. 김약묵은 강진 출신으로 경자년 문과에 급제하여 집의까지 역임했다. 학행이 있었으며, 학자 김윤후가 그를 추모하는 묘명祭文을 지었다. 아들 복억은 부사에 이르렀고, 손자 우정은 숙단이라는 字를 사용하며 병술년 생원, 인조 무자년 문과 정랑에 합격해 관료를 세습한 명문 가문이었다.
원문
字大容號誠齋康津人參奉希奭子庚子文科執義有學行河西金麟厚作墓銘[주:人物考]子福億府使福億孫友正字叔端丙戌生員仁祖戊子文科正郞[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약묵 / 金若默, confidence=0.98
- person: 희석 / 希奭, confidence=0.95
- person: 김윤후 / 金麟厚, confidence=0.96
- person: 복억 / 福億, confidence=0.95
- person: 우정 / 友正, confidence=0.92
- place: 강진 / 康津, confidence=0.97
- place: 하서 / 河西, confidence=0.88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6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0.95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0.96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8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8
- term: 방목 / 榜目, confidence=0.88
- work: 묘명 / 墓銘,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河西金麟厚作墓銘考의 문장 구조가 다분히 약어식이라 묘명制作과祭文 작성을 동시에 지칭하는지, 혹은 별개의 문헌인考慰碑 등 다른 유물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음
- 友正字叔端에서 字叔端이 복억의 자인지 우정의 자인지 원문의 약기 때문에 확신하기 어려우나, 문맥상 후손의 字로 보는 것이 타당함
(중종조이)차식
- 기사 ID:
B9C^2_002_006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6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18:24:54.26759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63
한글 번역
자는 경숙, 호는 예재, 연안 사람이다. 광운자에게 교수하였다. 열 살에 시서를 외우고 화담 서경德에게 수학하였다. 모재 김안국에게 알아본 바를 받아 문학으로 이름이 났다. 효행이 있었다. 정유년에 진사에進士하고, 계묘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군수가 되었으며, 종사에 전임하면서 제사를 맡은 바 있다. 정종 능의 침실은 세대가 이미 오래되어 오직 한식날에만 제사지내고, 음복이 엉성하고 보잘것없었다. 세가 이에 마음을 다하여 공경하는 성심을 보이고, 재계하고 몸을 깨끗이 하며, 제물과 술수 모두 친히 살펴보았다. 제사가 끝나고 꿈에서 정종이 말씀하기를, “이전의祀官은 그저 옛 관습을 따를 뿐 지극히 깨끗하게 받들지 않았으나, 이제 네가 성의껏 예법을 다하였으니 내가 이를 가상하게 여기노라. 네 어머니가 병이 있다 하였으니, 너에게 좋은 약을 주노니 그것을 기억하라.” 하였다. 그때 세의 어머니는 송도에 있으면서 대하(帶下) 질환을 않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두 독수리가 한 마리 큰 물고기를 다투며 하늘 위에서 맴돌다가 말이 앞쪽으로 떨어뜨린 것이 바로 물뱀이었다. 그 크기가 한 자쯤 되었다.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바치니 병이 즉시 나았다. [주: 유몽인이撰한墓碣에서 발췌] 아들은 천뢰와 운뢰이다. [주: 아래를 참조]
독음
자경숙호예재 연안인 교수광운자십세송시서수도위화담서경덕견지의어모재김안국이자문학제명유효행정유진사계묘文科군수상차전전성종능현대원지제한식이어소비박불견세별치견성재제몸무건시치감약기식시세모재송도환대하증대하환회량우패쟁일대어선반선중천락지마전즉만려어야기고대척여납시귀이선병립율추:유몽인撰墓碣]자천뢰운뢰
의미
車軾(字敬叔, 號頤齋)은 연안 출신으로 花潭 徐敬德에게 수학하고 金安國의 발탁을 받았다. 정유년 진사, 계묘년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가 되었다. 정종 능의 제사를 담당하면서 멀어진 제도를 다시 정성껏 거행하였다. 제사 후 정종의 꿈을 받아 어머니의 병을 치료할 약을 전해 받았다는 기이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사 직후 돌아가는 길에 두 독수리가 물뱀을 떨어뜨려 어머니에게 바치니 병이 즉시 나았다고 전한다. 아들로 天輅, 雲輅가 있었다.
원문
字敬叔號頤齋延安人敎授廣運子十歲誦詩書受學于花潭徐敬德見知遇於慕齋金安國以文學著名有孝行丁酉進士癸卯文科郡守嘗差典祀定宗陵寢世代已遠只祭寒食而庶羞菲薄不蠲軾別致虔誠齋沐潔身粢盛酒饌無不躬視祭罷夢見定宗敎曰向者祀官只循故常饗不涓潔今爾盡誠禮予用嘉之聞爾母有疾錫爾良藥其識之時軾母在松都患帶下之疾歸路見兩鵰爭一大魚盤旋中天墮之馬前卽鰻鱧魚也其大尺餘歸以奉母病立愈[주:柳夢寅撰墓碣]子天輅雲輅[주: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차식 / 車軾, confidence=1.0
- person: 서경덕 / 徐敬德, confidence=1.0
- person: 김안국 / 金安國, confidence=1.0
- person: 정종 / 定宗, confidence=1.0
- person: 유몽인 / 柳夢寅, confidence=1.0
- person: 천뢰 / 天輅, confidence=1.0
- person: 운뢰 / 雲輅, confidence=1.0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1.0
- place: 송도 / 松都, confidence=1.0
- place: 정종 능 / 定宗陵, confidence=1.0
- work: 묘갈 / 墓碣, confidence=1.0
- term: 대하 질환 / 帶下之疾, confidence=0.9
- term: 한식 / 寒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典祀定宗陵寢世代已遠只祭寒食而庶羞菲薄不蠲
- 典祀定宗陵寢世代已遠只祭寒食而庶羞菲薄不蠲
(중종조이)류중영
- 기사 ID:
B9C^2_002_006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6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3:02:38.58306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64
한글 번역
자(字)는 연우(彥遇), 호(號)는 입암(立岩), 풍산(豐山) 사람이다. 군수(郡守) 공綽의 아들이다. 경자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황해감사(黃海監司)를 역임하였다. 재물(裁斷)을 처사함에 유여(有裕)하고,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무리四五명을惩創하여 용서하지 않았으므로 부역(賦役)이 조금 공평하게 되었다. 문헌당(文獻堂)의 학전이 끊기자, 속포(贖布)를 검출하여 곡식千석에 해당하는 것을 조성하여 저장하고 그 이름을 ‘성고(作成庫)’라 하였다. 학도들이 모여들어 현송(絃誦)이 날로 들렸다. [주:인물고] 아들의 이름은 成龍이다. [주:下문 참조]
독음
자연우호입암풍산인군수공초자경자문과황해감사전재유유치위민해자四五괘불요부의조소득평문헌당학전불계검득속포작천곡조저지지명일성고학도분집현송일문[주:인물고][주:하문견]자성용
의미
류중영은 풍산出身으로 자는 연우, 호는 입암이다. 경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감사를 역임했다.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무리들을 엄하게 다스려 부역이 공정해지도록 하였고, 문헌당의 학전이 끊기자 속물로 곡식千석을 조성하여 성고라 이름한 저장고를 만들었다. 이에 학도들이 모여들어 학업이 활기를 띠었다. 아들의 이름은 成龍이며, 인물의 가문과 관료로서의 업적, 교육 사업 추진력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字彥遇號立岩豐山人郡守公綽子庚子文科黃海監司剸裁有裕治爲民害者四五魁不饒賦役稍得平文獻堂學錢不繼檢得贖布作千斛租貯之名曰作成庫學徒坌集絃誦日聞[주:人物考]子成龍[주: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류중영 / 柳仲郢, confidence=1.0
- person: 연우 / 彥遇, confidence=1.0
- person: 입암 / 立岩, confidence=1.0
- person: 공綽 / 公綽, confidence=0.95
- person: 성용 / 成龍, confidence=0.9
- place: 풍산 / 豐山, confidence=1.0
- place: 황해 / 黃海,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work: 문헌당 / 文獻堂, confidence=0.95
- work: 성고 / 作成庫, confidence=0.95
- term: 전재 / 剸裁, confidence=0.8
- term: 속포 / 贖布, confidence=0.8
- term: 분집 / 坌集, confidence=0.85
- term: 현송 / 絃誦,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剸裁(재물처사의 구체적 업무 범위)
- 坌集(학도 집중 양상의 정확성)
- 作成庫(창고 조성 방식의 제반 근거)
(중종조이)류예신
- 기사 ID:
B9C^2_002_006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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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문경이고 진주 출신이다. 아버지 첨지 서는 반서咸從魚孝瞻의 딸을 맞이하여 예신을 낳았다. 예신은 어려서 호협하여 책을 읽지 않다가 스무 살에 이르러 학문을 시작하여 낮과 밤 쉬지 아니하였다. 갑자년에 생원 장원이요, 경오년에 문과 정랑이 되었다. 형 의신의 자는 개옹으로서, 임자년에 생원 장원이요, 연산군 임술년에 문과 사성이 되었다.
독음
자문경 진주인 아버지 첨지 서는 반서 함종어 효점의 딸을 맞이하여 예신을 낳았다. 예신이 어려서 호협하여 책을 읽지 않다가 서른 살에 이르러 학문을 시작하여 낮과 밤 쉬지 아니하였다. 갑자년에 생원 장원이요, 경오년에 문과 정랑이 되었다. 형 의신 자는 개옹으로 임子년에 생원 장원이요, 연산 임술년에 문과 사성이 되었다.
의미
류예신은 진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하여 책을 읽지 않다가 스물두 살에 학문을 시작하여 노력 끝에 갑자년에 생원 장원에 합격하고 경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랑이 되었다. 형 의신 역시 학구적이었고, 임자년에 생원 장원에 합격하고 연산군 치세인 임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성이 되었다. 당시 조선 시대 양반 가문의 아들들이 이른 나이에 학문에 종사하는 것과 다른 유형의 인물상을 보여준다.
원문
字文卿晉州人父僉知塾娶判書咸從魚孝瞻女生禮臣少豪俠不讀書年二十始學晝夜不輟甲子生員壯元庚午文科正郞[주:國朝榜目]兄義臣字介翁壬子生員燕山壬戌文科司成[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류예신 / 柳禮臣, confidence=0.95
- person: 첨지 서 / 僉知塾, confidence=0.9
- person: 함종어 효점 / 咸從魚孝瞻, confidence=0.85
- person: 류의신 / 柳義臣, confidence=0.95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0.95
- office: 첨지 / 僉知, confidence=0.8
- office: 반서 / 判書, confidence=0.9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0.9
- office: 사성 / 司成,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장원 / 壯元, confidence=0.9
- term: 호협 / 豪俠, confidence=0.85
- term: 연산(연산군) / 燕山,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甲子生員壯元·庚午文科正郞의 간략한 문장에서 시험 합격 연도를 갑자년·경오년으로 해석하나, 정확한 서기 연도 환산은 문맥 추가 확인 필요
- 字文卿과 字介翁의 문장 연결 구조상父子 관계이나, ‘字文卿晉州人父僉知塾娶…‘라는 끊어읿기 구성이 정확하지 않음
- 燕山은 연산군을 가리키는 지명과 연호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나, 이 문맥에서는 연산군 치세 시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봄
(중종조이)이복로
- 기사 ID:
B9C^2_002_006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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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원래 이름은 군석, 자(字)는 백붕, 호는 쌍봉이다. 함천 사람으로, 판관(判官) 택의 아들이다. 을묘년에 생원이 되었고 진사가 되었으며, 계酉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군수(郡守)가 되었다. 형 이름은 숭로, 자는기지, 호는 수옹으로, 병오년에 진사가 되고 혁신에 합격한 뒤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독음
초명군석 자백붕 호쌍봉 함천인 판단택자 을묘생원 진사 계유문과 군수 형 숭로 자기지 호수옹 병오진사 혁신문과 정의
의미
조선 중종조 인물 이복로의 개요이다. 본래 이름은 군석이고 자는 백붕, 호는 쌍봉이다. 함천 출신으로 판관 택의 아들이다. 을묘년에 생원, 진사에 합격하고 계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군수를 지냈다. 형 이숭로는 병오년에 진사, 혁신에 합격하여 정언을 역임하였다. ‘燕山’은 음서로 급제한 것을 표시하는 것 같다.
원문
初名君錫字百朋號雙峯陜川人判官澤子乙卯生員進士癸酉文科郡守兄崇老字耆之號壽翁丙午進士燕山丙辰文科正言[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복로 / 李福老, confidence=1.0
- person: 이숭로 / 李崇老, confidence=1.0
- place: 함천 / 陜川, confidence=1.0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
- term: 혁신(음서) / 燕山,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燕山(혁신·연산군?)의 표기 의미, 丁丑년이 중종 연간에 해당하는지
(중종조이)민구손
- 기사 ID:
B9C^2_002_006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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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서경이고, 여흥 사람이다. 수자(粹子)의 아들이며, 어려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늦게 되어 유학(儒學)을 익혔으며, 한힌당(金宏弼)에게 수업을 받았다. 사람이 단정하고 청결하여 욕됨이 없었다. 정묘(丁卯)년에 진사(進士)에 올랐고, 정축(丁丑)년에 문과 전적(典籍)에랐다. 아들의 이름은 제인(齊仁)으로서, 문과에 합격하여 찬성(贊成)에 올랐으며, 호는 입암(立岩)이다.
독음
자서경 여흥인 수자 생이 조호 만습유업 수업어 한힌당 김홍필 위인 단결 무루 정묘진사 정축 문과 전적 자제인 문과 찬성 호립암
의미
민구손은 여흥 출신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늦게 유학을 익혀 한힌堂 김홍필에게 수학했다.丁卯년 진사, 丁丑년 문과 전적에 합격했으며, 아들 민제인은 문과 합격 후 찬성에 이르렀다. 입암이라는호를 사용했다.
원문
字瑞卿驪興人粹子生而早孤晩習儒業受業于寒暄堂金宏弼爲人端潔無累丁卯進士丁丑文科典籍[주:師友言行錄]子齊仁文科贊成號立岩
엔티티 후보
- person: 민구손 / 閔龜孫, confidence=0.95
- person: 김홍필 / 金宏弼, confidence=0.95
- person: 한힌당 / 寒暄堂, confidence=0.85
- place: 여흥 / 驪興, confidence=0.95
- person: 제인 / 齊仁, confidence=0.9
- office: 찬성 / 贊成, confidence=0.95
- office: 전적 / 典籍,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粹子가 아버지 호인지 직계 친족 명칭인지 불확실
- 丁丑文科典籍의 全籍이 전적 관직명인지 문과 합격 등급 표기인지 불확실
- 立岩이 민구손 자신의 호인지 제인의 호인지 문맥상 명확하지 않음
(중종조이)김윤종
- 기사 ID:
B9C^2_002_006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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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계지였다. 김식(金湜)에게 밝게 배웠다. 화가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북장사(北丈寺)에 있다가 속리산으로 피신하였다. 관리가 발자국을 따라 도착하여 붙잡혔을 때, 잡힌 그의 노복이 울면서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윤종이 말했다. ‘나는 이미 죽을 몸인데 울지 않는데, 너는 왜 울어?’ 하고는 태연하게 밥을 다 먹고는 조금도劫難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속물의 세계에 있지 않은 인물이었다. [주: 치재일록] 곤장一百대 맞아 명천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졸했다. [주: 동여시면우록]
독음
자계지수업어금식문화기래재북장사피입속리산역적이지피잡노복힐이지식윤종왈아이장사자불혈여하칠위수종종종여음이시용진식략부위겁비속류중인물야전자일록장류명천족어적동여시면우록
의미
조선 중종 때의 충신 김윤종은 화가 미치는 줄 알면서도 북장사에서 피신했다가 결국 붙잡혔다. 붙잡힌 직후에도 노복의 울음을 지켜보며 태연하게 밥을 다 먹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은 모습이 기록되었다. 이는 그야말로 속된 세속에 물든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후 곤장刑罚을 받아 명천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치재일록과 동여시면우록에 전해진다.
원문
字繼志受業于金湜聞禍起來在北丈寺避入俗離山吏跡而至被拿奴僕泣而進食胤宗曰我以將死者不泣汝何泣爲遂從容盡食略不畏劫非俗流中人物也[주:恥齋日錄]杖流明川卒于謫[주:東儒師友錄]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윤종 / 金胤宗, confidence=0.95
- person: 김식 / 金湜, confidence=0.95
- place: 북장사 / 北丈寺, confidence=0.9
- place: 속리산 / 俗離山, confidence=0.95
- place: 명천 / 明川, confidence=0.95
- work: 치재일록 / 恥齋日錄, confidence=0.9
- work: 동여시면우록 / 東儒師友錄, confidence=0.9
- term: 수업(스승에게 배움) / 受業, confidence=0.9
- term: 피잡(붙잡힘) / 被拿,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중종조이)조경
- 기사 ID:
B9C^2_002_007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7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2:12:20.19628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70
한글 번역
자(字)는 영중이고 직산 사람이다. 10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김석에게 수업받았다. 여름이나 겨울 가리지 않고, 제자들 중 나이가 가장 어려면서도 뜻이 특히 독실하였다. 조정암(趙靜菴)이 영중을 보면 곧 경모하였다. 기묘년(1498년) 화란이 일어나자 영중은 그때 스물두 살이었으니, 도학이 멸망한 것에 분격하여 과거에 응하지 않고 금천으로 돌아가 눈물을 훔치며 농사(耕作)와 어로(漁釣)했다. 제자들과 아들에게 경계하기를, ‘한念头의 근면함과 태만함에 따라 성인(聖人)과 광인(狂人)의 분별이 갈린다’고 하였다.
독음
자 영중 직산인 십세 지어학 수업어 김석망한서 재학도 년최소 지유독 조정암 견첩 경기묘 화작 영중시 년이십 분도상 부응거 귀금천 휘루 경조 계자제왈 일념근홀 성광분
의미
조경(趙瓊, 자 영중)의 생애를 적은 기사이다. 10세에 학문을 시작하여 김석에게 배웠고, 어려서도 뜻이 독실하여 조정암에게 존경받았다. 1498년 기묘사화 때 스물두 살의 나이로 도학의 쇠망에 분격하여 과거 시험을 거부하고 귀향, 농사와 어로에 힘썼다. 유학과 제자들 앞에서 한念头의 근면 여하에 따라 성인과 광인의 경계가 갈린다는 유교적修身의 메시지를 남겼다.
원문
字瑩仲稷山人十歲志于學受業于金湜罔寒暑在學徒年最少志尤篤趙靜菴見輒敬己卯禍作瑩仲時年二十憤道喪不應擧歸衿川揮淚耕釣戒子弟曰一念勤忽聖狂分[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조경 / 趙瓊, confidence=0.95
- person: 영중(조경의 자) / 字瑩仲, confidence=0.95
- place: 직산(충남 연기) / 稷山, confidence=0.9
- person: 김석(선생) / 金湜, confidence=0.85
- person: 조정암 / 趙靜菴, confidence=0.9
- event: 기묘사화(1498년) / 己卯禍, confidence=0.9
- place: 금천(경기 광주) / 衿川, confidence=0.85
- term: 농사와 어로 / 耕釣, confidence=0.9
- term: 성인과 광인의 분별 / 聖狂分,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금천 귀향의 구체적 시기
- 제자들과 아들의 성명
- 휘루(휘루)가 눈물 훔치기의 구체적 의미
(중종조이)윤광일
- 기사 ID:
B9C^2_002_007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2]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2
- 면/쪽: 007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4:18:45.95979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2&aa15no=002&aa20no=B9C%5E2_002_0072
한글 번역
선비 윤적(尹積)의 서자(庶子)가 김탁(金湜)의 문도(門徒)로서 채찍으로 때려 종役(徒役)을 맡겼다. 학계에서는 리학(理學)으로 알려져 칭찬을 받았으나, 성품이 완고하여 바꿀 수 없었던 것이었다. [주: 동서사우록] 산법(算法)을 얻어 윤광일에게 지시를 받아 이렇게 자세하였다. [주: 퇴계문집]
독음
사인윤적서자이미전기문도장배도역사림이자학견칭연위성집요불능변[주:동서사우록] 산법득윤광일지시하여차지양[주:퇴계문집]
의미
윤광일은 윤적의 서자이자 김탁의 문인으로서 종役의 형벌을 받았다. 학문적으로는 리학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성격이 완고하여 고치기 어려웠다. 특히 산법(수학) 분야에서 윤광일에게 자세한 지도를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사는 퇴계 이황과 관련된 문헌에서 확인된다.
원문
士人尹漬庶子以金湜門徒杖配徒役士林以理學見稱然爲性執拗不能變[주:東儒師友錄]算法得尹光溢指示如此之詳[주:退溪文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윤광일 / 尹光溢, confidence=1.0
- person: 윤적 / 尹積, confidence=0.9
- person: 김탁 / 金湜, confidence=0.9
- work: 동서사우록 / 東儒師友錄, confidence=0.85
- work: 퇴계문집 / 退溪文集, confidence=0.95
- term: 리학 / 理學, confidence=0.95
- term: 산법 / 算法, confidence=0.9
- term: 서자 / 庶子, confidence=0.95
- term: 문도 / 門徒,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