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인물지 [國朝人物志n1-3책] - 본문 번역 묶음 003
- 책 ID:
kh2_je_a_vsu_B9C^2_000
- 수록 기사: 75건
(세종조)여칭
- 기사 ID:
B9C^2_001_023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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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2:48:06.57362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39
한글 번역
자(字)는 중부(仲父), 호(號)는 추곡(樗谷),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아버지의 관직으로 출직하여 강원도 관찰사에 올랐고, 동북면 도순문사를 지냈다. 벼슬이 의금부사로 이르렀으며, 개성 유후로 퇴직하여 본부(開城府) 서쪽 서강(西江)의 압해정(壓海亭)에서 졸았다.
독음
자중부호추곡함양인음직강원도도체찰사동북면도순문사관지지의금부사개성유후로퇴휴본부후서강압해정에서 졸
의미
세종조 관료 여칭(呂稱)의 인물기사로, 함양 출신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강원도 관찰사, 동북면 도순문사를 역임하고 의금부사까지 승진했으나, 개성 유후로 퇴임한 후 서강 압해정에서 사망한 인물임을记载한다.
원문
字仲父號樗谷咸陽人蔭仕江原道觀察使東北面都巡問使官至知義禁府事以開城留後退休本府後西江壓海亭而卒[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여칭 / 呂稱, confidence=0.95
- person: 중부 / 仲父, confidence=0.9
- person: 추곡 / 樗谷, confidence=0.85
- place: 함양 / 咸陽, confidence=0.95
- place: 강원도 / 江原道, confidence=0.95
- office: 도체찰사 / 觀察使, confidence=0.95
- office: 동북면 도순문사 / 東北面都巡問使, confidence=0.9
- office: 지의금부사 / 知義禁府事, confidence=0.9
- place: 개성 / 開城, confidence=0.95
- office: 유후 / 留後, confidence=0.85
- place: 서강 / 西江, confidence=0.85
- place: 압해정 / 壓海亭, confidence=0.85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留後(유후)의 직위 성격과 품계, 壓海亭의 정확한 위치
(세종조)안질
- 기사 ID:
B9C^2_001_024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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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18:08:56.11143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41
한글 번역
호는 德峯이고, 순흥 사람으로서 文敬公의 직계 후손이다. 성품이 곧고 곧았다. 고려 시대 문과에 합격하여 일곱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명성을 널리 퍼뜨렸으며, 청렴하고 밝다는 칭송을 받았다. 옥당에 들어가고 정부에 오르니, 의논할 때 차갑고 곧은 기상이 있어 마치 가을 서리 같은 절개가 있었다. 벼슬은 판사에 이르렀다. [주: 묘지]
독음
호덕봉순흥인문경공편집손성광직고려시문과출제칠읍발성예칭염명입옥당등정부의론름연추서상절관치지반사
의미
고려 말~조선 초의 관료 安耋의 행적을 적은 묘지문이다. 순흥 출신으로 清白한 성품과 文敬公의 문호를 이은 문과 출신으로서 일곱 고을의 수령을 지내고, 옥당에 들어갔다. 政府에서 清峻한議論으로 秋霜같은 절개를 보여 판사까지 오른 인물이다.
원문
號德峯順興人文敬公輯孫性戇直高麗時文科出典七邑播聲譽稱廉明入玉堂登政府議論凜然有秋霜之節官至判事[주:墓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질 / 安耋, confidence=0.95
- person: 문경공 / 文敬公, confidence=0.85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0.95
- place: 옥당 / 玉堂, confidence=0.9
- office: 판사 / 判事, confidence=0.9
- office: 정부 / 政府, confidence=0.9
- work: 묘지 / 墓志,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編集孫(문경공의 어떤 차남의 후손인지 명확하지 않음)
- 出典七邑(七邑의 구체적 지역이 불분명함)
(세종조)신장
- 기사 ID:
B9C^2_001_024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4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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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18:09:20.31950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42
한글 번역
신장(申檣)은 세종조 시대 인물로, 글자는 제부이고 호는 암현이다. 본향은 고령이다. 조부 德隣은 고려 때 전서(典書)를 역임했고, 아버지는 참의(參議) 包翅의 아들이다. 태종 임오년(1402년)에 생원 시험에 합격하고 이어 문과에 합격하여 참판에 이르렀다. 《선액서》를 지었다. 서른 살에 이조 정랑에서 물러나 나주로 돌아가 은거했으며, 아들 숙주와 말주가 있었다.
독음
(세종조)신장 글자는 제부(濟夫)이고 호는 암현(巖軒)이다. 고령(高靈) 사람이다. 조부 德隣은 고려의 전서(典書)를 지냈다. 아버지는 참의(參議) 包翅의 아들이다. 태종 임오년(太宗壬午, 1402년)에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합격하여 참판(參判)이 되었다. 《선액서(善額書)》를 저술했다. 서른 살에 이조 정랑으로 퇴임하여 나주(羅州)에 은거하였다. 아들은 숙주(叔舟)와 말주(末舟)이다. (주: 《국조방목(國朝榜目)》에 보인다.)
의미
조선 세종조 문신 신장(申檣)의 간단한 세이다. 고려 명문 가문 출신으로, 태종 임오년(1402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참판까지 승진했으나 서른 살에 이조 정랑에서 관직을 떠나 나주에 은거했다. 저서로 《선액서》가 있으며, 두 아들 숙주와 말주가 있었다. 숙주는后来 통신사 正使가 되었다.
원문
字濟夫號巖軒高靈人參議包翅子高麗典書德鄰孫太宗壬午生員文科參判善額書年三十以吏曹正郞退居羅州[주:國朝榜目]子叔舟末舟[주:見下]
엔티티 후보
- person: 신장 / 申檣, confidence=1.0
- person: 덕린 / 德隣, confidence=1.0
- person: 포기 / 包翅, confidence=1.0
- person: 숙주 / 叔舟, confidence=1.0
- person: 말주 / 末舟, confidence=1.0
- place: 고령 / 高靈, confidence=1.0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1.0
- office: 참의 / 參議, confidence=1.0
- office: 전서 / 典書, confidence=1.0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work: 선액서 / 善額書,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文科參判은 ‘문과에 합격하여 참판’의 뜻으로 보이나, 별도 직위 명칭일 가능성도 있음
(세종조)변효문
- 기사 ID:
B9C^2_001_024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4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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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21:50.79019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43
한글 번역
자는 일민이고, 본래 이름은 계문이다. 초계 사람이다. 고려 평리 윤의 손녀이다. 아버지는 남용으로 판윤을 지냈다. 시중 곡성 염제신의 딸을 맞이하여 딸을 낳아 효문이라 이름 지었다. 태종 갑오년(1414)에 문과에 합격하여 제학이 되었다. 일본으로 사절을 파견받아 예법에 어긋남 없이 적절히 대응한 공으로 귀국한 뒤 관직을 내놓았다. [주: 국조사목] 효문의 아우 효경은 기해년에 태어나 생원이 되고 문과에 합격하여 참판이 되었다. [주: 상동]
독음
자일민초명계문초계인고려평리윤손부남용판윤취시중곡성렴제신녀생효문태종갑오문과제학봉사일본이전대칭환국치사국조사목효문제효경기해생원문과참판상동
의미
변효문의 가문 배경과 관료 경력을 기록한 기사다. 고려 평리 윤의 손녀로, 부친 남용은 판윤을 역임했다. 시중 곡성 염제신의 딸에게서 효문을 낳았다. 태종 갑오년(1414)에 문과에 합격하여 제학 벼슬에 올랐고, 일본 사신으로 파견되어 적절한 대응으로 이름을 얻은 뒤 귀국하여 관직을 떠났다. 아우 효경은 기해년에 생원 문과에 합격하여 참판이 되었다. 고려 왕실과의 인척 관계와 조선 개국 직후 과거 합격자들의 관료 경력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字一敏初名季文草溪人高麗評理贇孫父南龍判尹娶侍中曲城廉悌臣女生孝文太宗甲午文科提學奉使日本以專對稱還國致仕[주:國朝榜目]孝文弟孝敬己亥生員文科參判[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변효문 / 卞孝文, confidence=1.0
- person: 변효경 / 卞孝敬, confidence=1.0
- person: 변계문 / 卞季文, confidence=1.0
- person: 변일민 / 卞一敏, confidence=1.0
- person: 남용 / 南龍, confidence=1.0
- person: 염제신 / 廉悌臣, confidence=1.0
- person: 곡성 / 曲城, confidence=0.9
- place: 초계 / 草溪, confidence=1.0
- office: 판윤 / 判尹, confidence=1.0
- office: 제학 / 提學, confidence=1.0
- office: 시중 / 侍中,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office: 평리 / 評理, confidence=1.0
- work: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전문 / 專對, confidence=0.9
- term: 치사 / 致仕,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評理(평리): 고려 말 벼슬 이름으로 직급 미상
- 曲城(곡성): 염제신의 호 또는 본관,曲城出身으로 해석 가능
(세종조)임종선
- 기사 ID:
B9C^2_001_024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4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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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57:39.50555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44
한글 번역
장흥사람이다. 아버지 헌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을 지냈고, 곡성군 수령 염제신의 딸을 맞이하여 종선을 낳았다. 종선은 경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감사를 지냈으며, 시 모음집을 잘 지었다.
독음
장흥인 부 헌조 문과 대사헌 취 첩리중 곡성 염제신녀 생 종선 경자 문과 전라 감사 선 집구시
의미
세종조 관리 임종선의 가계와 경력을 수록한 병서이다. 아버지 헌조는 문과 급제자이자 대사헌이었고, 임종선은 경자년 문과에 합격하여 전라감사를 역임했으며 시문에도 능숙하였다.
원문
長興人父獻祖文科大司憲娶侍中曲城廉悌臣女生從善庚子文科全羅監司善集句詩[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임종선 / 任從善, confidence=1.0
- person: 헌조 / 獻祖, confidence=1.0
- person: 염제신 / 廉悌臣, confidence=1.0
- place: 장흥 / 長興, confidence=1.0
- place: 곡성 / 曲城, confidence=1.0
- place: 전라 / 全羅,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척리중 / 侍中, confidence=1.0
- office: 전라감사 / 全羅監司,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집구시 / 集句詩, confidence=0.9
- term: 경자 / 庚子,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헌조(성명인지 호칭인지 명확하지 않음)
- 集句詩(구체적 저서명인지 일반적 능력을 가리키는지 불확실)
- 장흥의 구체적 행정구역 위치
(세종조)이영견
- 기사 ID:
B9C^2_001_024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4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57:41.67006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45
한글 번역
遂安 출신의 인물로 스스로 호를 石齋라 하였다. 부령구로자(求魯子)는 기유년에 태어나 原文科에 합격하였고, 이조참의로 벼슬하다 관직을 물러났으며, 養老宴에 참여하였다. 80세에 사망하였다. [주:國朝榜目]
독음
수인인 자호석재 부령구로자 기유생 원문과 이조참의 치사 참 참석노연 년팔십 졸[주:국조방목]
의미
세종조 벼슬이던 이영건의 인물기로, 수원 출신,石齋 호, 1599년생, 원문과과 합격, 이조참의 역임, 퇴임 후 참석노연 참여, 80세 졸这样一个 기록이다.
원문
遂安人自號石齋部令求魯子己酉生員文科吏曹參議致仕參養老宴年八十卒[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lace: 수원 / 遂安, confidence=0.95
- person: 이영건 / 李永肩, confidence=0.95
- term: 석재 / 石齋, confidence=0.95
- person: 부령구로자 / 部令求魯子, confidence=0.7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office: 이조참의 / 吏曹參議, confidence=0.95
- term: 치사 / 致仕, confidence=0.95
- term: 참석노연 / 養老宴, confidence=0.8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안덕손
- 기사 ID:
B9C^2_001_024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4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2:48:41.68162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46
한글 번역
공주 출신의 인물로, 병사 습자(모병 훈련의 장교) 조익은 고려에서 벼슬하여 찬성(삼정승의 한 사람)에 이르렀으며, 명나라 연경에 사절로 다녀가며 청렴한 절개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후손인 덕손은 세종 즉위년 정묘(1419)년에 태어나 생원 시험과 문과에 합격하여 군수(군부长官)에 임명되었다[주:국조사목에 수록됨].
독음
공주인 병사습자 조익 고려에 출사하여 관직이 찬성에 이르렀고 연경에 사절로 가서 청렴한 절개로 유명했다. 덕손은 세종 정묘년에 태어나 생원문과에 급제하여 군수가 되었다[주:국조사목]
의미
공주 출신 조익이 고려 시대에 높은 관직에 올라 명나라에 다녀오며 청렴함을 보인 인물임을 기록하고, 그 후손 덕손이 세종대에 문과에 합격해 군수가 되었다는 세 가지 사실을 담고 있다. 安德孫은 이름이고 德孫은 安德孫의 약칭임을 알 수 있다.
원문
公州人兵使習子祖翊仕于高麗官至贊成奉使燕京以淸節著名德孫以世宗丁卯生員文科郡守[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lace: 공주 / 公州, confidence=1.0
- person: 덕손 / 安德孫, confidence=1.0
- person: 조익 / 祖翊, confidence=1.0
- office: 병사 / 兵使, confidence=0.9
- office: 찬성 / 贊成, confidence=0.95
- place: 연경(북경) / 燕京,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term: 국조사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최정안
- 기사 ID:
B9C^2_001_024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4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57:55.87503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47
한글 번역
양주 사람은 풍저창의 녹사가 되었다. 정미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검설관에 보직되었고 직위를 올려 정언에 이르렀다. 뇌물 수수죄를 범하여 관직 서류를 박탈당했으나, 문종조에 이르러 직첩을 돌려받았다. 정사년에 명을 받들고 만주의 오랑캐를 토벌하였다.
독음
양주인 풍저창 녹사 정미 문과 보검설관 지정언으로 범패로 뇌물죄를 범하여 공부를 박탈당하고 문종조에 직첩을 환급받았다. 정사년에 명을 받들고 만주 오랑캐를 토벌하였다.
의미
최정안은 양주 출신으로 정미년 문과에 합격하여 검설관, 정언 등 감찰 직위를 지냈다. 뇌물죄로 관직을 박탈당했으나 문종조에 직첩을 되찾았고, 이후 정사년에 만주 오랑캐 토벌에 나섰다. 「국조 방목」에 수록된 인물이다.
원문
楊州人爲豐儲倉錄事丁未文科補檢閱官至正言以犯贓奪告身文宗朝職牒還給丁巳奉命討滿洲野人[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정안 / 崔井安, confidence=1.0
- place: 양주 / 楊州, confidence=1.0
- place: 만주 / 滿洲, confidence=1.0
- office: 풍저창 / 豊儲倉, confidence=1.0
- office: 검설관 / 檢閱官,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공서(관직 서류) / 告身, confidence=1.0
- term: 직첩 / 職牒, confidence=1.0
- term: 범패(뇌물죄) / 犯贓,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녹사(錄事)의 구체적 직무 범위
- 丁巳년의 정확한 재위 연도 특정
(세종조)안지귀
- 기사 ID:
B9C^2_001_024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4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21:57.47357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48
한글 번역
순흥 사람으로 직학玖자원의 증손이다. 임자년에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합격하여 대사성이 되었다[주:국조사목]. 지귀의 종제(從弟)인 관후는 字를 영부라 하고, 검교 한성부윤 경의 아들이다. 정묘년에 进士가 되었고 문과에 합격하여 감사가 되었다. 관후의 형 중후는 정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여持平이 되었다. 근후는世祖 경진년에 생원이 되고 문과에 합격하여 전적이 되었다. 제제 돈후는 경진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연벽사예가 되었다. 네 형제가 모두 등제하였다[주:동상]. 이상 세종조의 사람들이다.
독음
순흥인 직학玖자원의 증손 임자 생원文科 대사성[주:국조사목] 지귀 종제 관후 자 영부 검교한성부윤 경의 아들 정묘 进士文科 감사 관후 형 중후 정묘文科持平 근후世祖 경진 생원文科 전적 제제 돈후 경진文科 연벽사예 사형제 등제[주:동상] 이상 세종조
의미
安知歸의 가문을 정리한 기사이다. 安知歸는 순흥 출신으로 임자년 생원文科로 대사성에 올랐다. 종제 安寬厚와 그 형제 安重厚·安謹厚·安敦厚 모두 문과에 합격하여 네 형제가 모두 등제한 뛰어난 가문임을 보여준다. 注疏를 통해 同祖系人物을 함께 수록한 것이 확인된다.
원문
順興人直學玖子瑗曾孫壬子生員文科大司成[주:國朝榜目]知歸從弟寬厚字栗甫檢校漢城府尹璟子丁卯進士文科監司寬厚兄重厚丁卯文科持平謹厚世祖庚辰生員文科典籍弟敦厚庚辰文科聯壁司藝四兄弟登第[주:同上]以上世宗朝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지귀 / 安知歸, confidence=0.95
- person: 안관후 / 安寬厚, confidence=0.95
- person: 안중후 / 安重厚, confidence=0.95
- person: 안근후 / 安謹厚, confidence=0.95
- person: 안돈후 / 安敦厚, confidence=0.95
- person: 경 / 璟, confidence=0.85
- person: 구자유 / 玖子瑗, confidence=0.85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0.95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0.9
- office: 한성부윤 / 漢城府尹, confidence=0.9
- office: 持平, confidence=0.9
- office: 전적 / 典籍, confidence=0.9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
- office: 연벽사예 / 聯壁司藝, confidence=0.85
- term: 文科,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
- term: 등제 / 等第, confidence=0.85
- term: 종제 / 從弟, confidence=0.85
- term: 검교 / 檢校,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직학玖子瑗의 직학이 관칭인지 호칭인지 불확실
- 聯壁司藝의 정확한 직제와 역할이 불분명
(문종조)최선문
- 기사 ID:
B9C^2_001_024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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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22:23.35761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49
한글 번역
자호는 경부이다. 화순 사람으로서 생원 신축년에 징계로持平에 임명되었다. 학문을 힘쓸 때 반드시 성리학을 궁구하고, 자신을 단속할 때 반드시 청렴하고 검소하게 하였다. 도의를 강설하였으며, 사림에서 존중받았다. 점필재 김종직과 같은 사람들이 모두 그를 공경하고 섬겼다. 관직을 다스릴 때 마치 집안처럼 다루어 조금도 범하지 않았고, 임금을 섬길 때 마치 친부모처럼 하였으나, 추요한 요직은 반드시 피하였다. 당세의 사람들은 그를 일러 ‘송운의 지조에 수월의 정신’이라 칭하였다. 문종조에 이르러吏曹判書로 승진하였으나, 선문은 힘써 사양하였다. 조정은銓選이라는 극도로 어려운 벼슬길이니 대유(遺逸)를 대우할 바가 아닌바,移拜하여工曹判書를 삼았다. 공을 명하여 화상을 그리게 하니 이를 표하여 숭상하고 장려하는 뜻이었다. 선문은 몸소啓沃의 임을 맡아 반드시 될 만한 일이 있으려 하였으나, 이내端宗이逊位하자 선문은 몸을 물러났다.世祖 원년에 찬성으로서 소환하였으나 끝내 부임하지 않았다. 이미 세상을 떠나자, 명정(銘旌)에工判으로 썼으니 이는 유명을 따른 것이었다. 시호는文惠였다. [주: 인물고]
독음
자 경부 화순인 중 생원 신축 증거 제수持平 위학필구성리율기필이청검강설도의견중사림여점필재금종직개경사지치관여가섬호무범사군여친추요필피시인칭지송운지조수월정신문종조승리조판서 선문력사조의이의전선극지고비이소득 대유일 이동배공조판서명공도상의표숭장의의 선문신임계옥장욕유위기이단종손위선문인신이퇴세조원년 이내찬성소종부취궤익제 명정서이공판준유명야 시문혜
의미
崔善門(최선문)은 문종조에持平에서 관직을 시작하여 清廉검소한 절조와 도의로운 학문으로 사림의 존경을 받았다. 문종 때吏曹判書로 승진 제척되었으나 力辭하여 工曹判書로 이동封拜되었고, 임금이 특별히 화상을 그려 表獎하였다. 이후端宗遜位 후 引身而退하여 세상의 벼슬에서 물러났으며,世祖 원년에도 贊成을 제의 받았으나 끝내 부임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유명에 따라 工判으로 명정을 쓰고, 시호 文惠를 받았다. 송과 대、竹처럼 곧고 물처럼 맑은 절개를 갖추었으나 정치 변화에 따라 불遇한 삶을 살았다.
원문
字慶夫和順人中生員辛丑徵拜持平爲學必究性理律己必以淸儉講說道義見重士林如佔畢齋金宗直皆敬事之治官如家纖毫無犯事君如親樞要必避時人稱之曰松筠志操水月精神文宗朝陞吏曹判書善門力辭朝議以銓選劇地非所以待遺逸移拜工曹判書命工圖像以表崇奬之意善門身任啓沃將欲有爲己而端宗遜位善門引身而退世祖元年以贊成召終不就旣易簀銘旌書以工判遵遺命也諡文惠[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선문 / 崔善門, confidence=0.98
- person: 김종직 / 金宗直, confidence=0.97
- office: 평사 / 持平, confidence=0.95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8
- office: 공조판서 / 工曹判書, confidence=0.98
- office: 찬성 / 贊成, confidence=0.97
- king: 문종 / 文宗, confidence=0.98
- king: 단종 / 端宗, confidence=0.98
- king: 세조 / 世祖, confidence=0.98
- term: 전선 / 銓選, confidence=0.92
- term: 계옥 / 啓沃, confidence=0.95
- term: 역측 / 易簀, confidence=0.97
- term: 명정 / 銘旌, confidence=0.96
- term: 송운지조 / 松筠志操, confidence=0.94
- term: 수월정신 / 水月精神, confidence=0.94
- place: 화순 / 和順, confidence=0.95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8
불확실한 어휘
- 和順人中의 中人 계층의 정확한 지위 규정
- 佔畢齋의 점필재가 장소명인지 호호稱인지를 문헌에 따라 다르게 해석 가능
- 工判의 직급 명칭이 工曹判書 준용인지 별도 호칭인지
(단종조)화의군영
- 기사 ID:
B9C^2_001_026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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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0:00:24.55783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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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아호)는 양지이며, 세종대왕의 서자로 어머니는 윤비(令嬪) 강씨이다. 어려서부터 특출한 자질이 있어 용감하고 민첩함이常人을 뛰어넘었다. 조금 자라면 문장에 능숙해졌으며, 한 번 말하기를 “이 세상에 태어나는以上 충성과 의리가 가장 크다.”고 하였다. 을해년에 빈청에서 영과 유가 만나 활을 쏘는 시험을 행하자, 영을 유배시켜 산청으로 보냈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영을延安으로 옮겼다. 병자년에 成三問 등이 처형되자 영을 금산에 유배安置하였다. 정축년에 종실과 대신들이 유를 죽여줄 것을 청하면서 함께 영도 역모에 가담한 죄로 논죄하였고, 명이 내려 외부인의 왕래와 선물 날다감을 엄격히 단속하도록 하였다. 이후 충성스럽지 못하다는 죄로 논죄되었으며, 나중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조대에 갑인년에 시호를 내려 충景이라 하고, 그 후손을 등용하였다.
독음
자양지 세종별자 모영빈강씨 유유이질 용첩절인 소장선속문 창출일 인생사세 충의위대 을해빈청계영여우 유 회사청류외천산 청세조축위이암延安 병자성삼문등사 안치금산 정축종실대신청서우병론영당역지죄 명엄방외인왕래증여 이 당불충론 후 졸어저 영묘갑인시시충정 록其后孫
의미
단종 치세(1453~1455) 당시 和義君 영(瓔)은 세종대왕의 서자로, 어려서부터 강인하고 문장에도 능했다. 자신의 인생 좌우명을 “충의가 가장 크다.”라고 밝힐 만큼忠義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을해년(1455) 세조의 즉위와 함께 錦南君 유 등과의 연루로 유배되었고, 병자년(1456) 成三問 등의 처형 이후 금산으로 이배安置되었다. 정축년(1457)에는 역모 죄리로 다시 추핵을 받아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되었다. 결국 유배지에서 사망하였고, 약 250년 후 영조대에 이르러 충절을 기려 충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는 단종 복위 세력과 연루된 인물들에 대한事大史的 평가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원문
字良之世宗別子母令嬪姜氏幼有異質勇捷絶人稍長善屬文嘗曰人生斯世忠義爲大乙亥賓廳啓瓔與瑜會射請流于外竄山淸世祖卽位移延安丙子成三問等死安置錦山丁丑宗室大臣請誅瑜竝論瓔黨逆之罪命嚴防外人往來贈遺以黨不忠論後卒于謫英廟甲寅賜諡忠景錄其後孫[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화의군영 / 和義君瓔, confidence=0.95
- person: 강씨 / 姜氏, confidence=0.9
- person: 유(錦南君) / 瑜, confidence=0.85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0.95
- person: 성삼문 / 成三問, confidence=0.95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0.9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0.85
- place: 금산 / 錦山, confidence=0.9
- place: 산청 / 山淸, confidence=0.85
- term: 빈청 / 賓廳, confidence=0.8
- term: 영빈 / 令嬪, confidence=0.75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0.9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令嬪姜氏가 和義君瓔과 瑜 공동의 어머니인지 단독 어머니인지 불확실
- 延安安置이 단순한搬迁이 아니라 軟禁에 가까운 억류였는지 불확확
- 會射의 정확한 행사 성격(官方 시험이었는지 사적인 모임이었는지)
- 成三問等死의 구체적 사인(처형·자살·病死) 미상
- 乙亥년 활동 시 단종의 재위 여부 및 실제 정치 주도권 소재
(단종조)영풍군전
- 기사 ID:
B9C^2_001_026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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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0:00:34.90557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62
한글 번역
세종(世宗)의 서출 아들로 한남군(漢南君)의 동복 아우이면서 호는 취금헌(醉琴軒)이었다. 참판 박빙년의 딸과 혼인하였다. 을해년에 예안으로 유배되고 곧바로 안성으로 옮기며 다시 수원으로도 옮겼다. 병자년에 임실에 안치되어 그 집에 입적되었다가 결국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영조 때 임술년에 시호를 정열(貞烈)하였다. [주: 장릉지]
독음
세종별자한남군동모제호취금현참판박빙년여서을해산예안선이안성우이수원병자안치임실적기가수수졸배소영묘임술사시정열
의미
단종(端宗) 치세 시기 영풍군(永豐君)瑔은 세종대왕의 서출로 한남군의 동복 아우이며, 취금헌이라는호를 사용하였다. 참판 박빙년의 사위였다가 을해년(1455)에 예안에 유배되고 수도를 전전하며 궁핍하게 지냈다. 병자년(1456)에 임실에 이安置되어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훗날 영조대 임술년(1730)에 시호貞烈을 내려졌다. 이 기록은 장릉지에서 확인되며, 단종复位运动에 연루된 지식인의 불운한 운명을 보여준다.
원문
世宗別子漢南君同母弟號醉琴軒參判朴彭年女壻乙亥竄禮安旋移安城又移水原丙子安置任實籍其家遂卒配所英廟壬戌賜諡貞烈[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영풍군瑔 / 永豐君瑔, confidence=0.9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9
- person: 한남군 / 漢南君, confidence=0.95
- person: 박빙년 / 朴彭年, confidence=0.98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조 / 英祖, confidence=0.99
- place: 예안 / 禮安, confidence=0.95
- place: 안성 / 安城, confidence=0.98
- place: 수원 / 水原, confidence=0.98
- place: 임실 / 任實, confidence=0.9
- place: 장릉 / 莊陵, confidence=0.95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8
- term: 별자(서출) / 別子, confidence=0.85
- term: 천류(유배) / 竄, confidence=0.95
- term: 정열 / 貞烈, confidence=0.98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別子(별자, 서출로 해석하나 적자 가능성 배제 불가)
- 籍其家(그 집에 입적의 의미이나 유배지 소재 지문과 관련 해석 상이)
(단종조)이양
- 기사 ID:
B9C^2_001_026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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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18:11:18.65943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63
한글 번역
의안대군 화손이 무과에 진출하여 세종대왕의 수릉관을 역임하고, 관직을 두루 거쳐 판중추부사에 이르렀으니, 우찬성이 되었다. 계유년(1453)에 정수충이 양을 고소하기를, 「밀히 용에게 부附하고, 또 김종서를 참杀하였다.」고 하였다. 양이 모반을 꾀하였다고 하여 소환하여 곤장을 쳤다. 아들 승은의 자는 장지이며, 계유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헌납이 되었다. 승은의 아들 소조와 계조는 관직이 장군이었는데, 모두 함께 죽었다. 양의 아우 보인은 관직이 목사였고, 보인의 아들 해와 심과 모 등이 모두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주: 장릉지]
독음
의안대군화손이무진으로위세종수릉관역관지판중추부사우찬성계유정수충고양밀부용급축금종서이양모반소입추살之子승은자동지계유문과헌납승은자소조계조관장군개동사양제제보인관목사보인자해심모동피사[주:장릉지]
의미
단종조 의안대군 화손의 측근 이양이 세종대왕 수릉관 직을 지내며 판중추부사·우찬성에 올랐으나, 1453년(계유) 정수충이 김종서 척결과 관련하여 양이 용에게 붙고 모반을 꾀했다고 고소하였다. 이양은 체포되어 곤장으로 맞아 죽었고, 아들 승은(문과 급제, 헌납) 및 손자 소조·계조(장군)도 함께 처형되었다. 아우 보인(목사) 역시 아들 해·심·모 등과 모두 제거되었다. 장릉지에 수록된 이 기사는 단종왕조 시기 척족 세력이 숙정 과정에서 이양 가문 전체를 말살한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원문
義安大君和孫以武進爲世宗守陵官歷官至判中樞府事右贊成癸酉鄭守忠告穰密附瑢及誅金宗瑞以穰謀反召入椎殺之子承胤字長之癸酉文科獻納承胤子紹祖繼祖官將軍皆同死穰弟保仁官牧使保仁子諧諶謨等同被死[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양 / 李穰, confidence=1.0
- person: 의안대군 / 義安大君, confidence=1.0
- person: 화손 / 和孫, confidence=1.0
- person: 정수충 / 鄭守忠, confidence=1.0
- person: 김종서 / 金宗瑞, confidence=1.0
- person: 용 / 瑢, confidence=1.0
- person: 승은 / 承胤, confidence=1.0
- person: 보인 / 保仁, confidence=1.0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1.0
- office: 수릉관 / 守陵官, confidence=1.0
- office: 판중추부사 / 判中樞府事, confidence=1.0
- office: 우찬성 / 右贊成, confidence=1.0
- office: 헌납 / 獻納, confidence=1.0
- term: 추살(곤장处罚) / 椎殺, confidence=0.95
- term: 계유(1453년) / 癸酉, confidence=1.0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화손이 무진으로위세종수릉관역관
- 密附瑢급誅金宗瑞의 문맥관계
- 召入椎殺의 구체적 처형 방식
- 子弟承胤字長之에서子和子의 판독
(단종조)권완
- 기사 ID:
B9C^2_001_026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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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25:47.0902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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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안동 사람인 단종(端宗) 갑술년에 권완의 딸이 후궁으로 선발되어 들어갔다. 정축년에 상왕이瑜의 집으로 출거하여 살게 되자 권씨도 역시 권완을 따랐다. 권완이 그때 관직이 둔녕부 판관이었다. 의금부에서 권완의 말을 계고하기를, ‘상왕이 복위하시면 대단히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宋玹壽와 교통하여 반역을 꾀한 죄로 마땅히 참형당한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독음
안동인 단종갑술 완녀 선입 후궁 정축상왕 출거瑜제 권씨 역종不完시관 둔녕부 판관 의금부 계완언 상왕 복위즉심호 단此事불역여송현수 교통 모역 죄당주 추지
의미
단종 즉위년인 갑술년에 안동 출신 권완의 딸이 후궁에 들어갔다. 정축년(1457)에 선왕(세조)이瑜의 집으로 이주하자 권씨도 권완을 따라갔다. 권완이 당시 둔녕부 판관직에 있었는데, 의금부는 그가 ‘상왕의 복위가 좋을 것이다’라고 말한 사실과 함께 宋玹壽와 반역 사실을 결부하여 사형이 적절하다고 계고했고 그대로 처형되었다. 단종复位運動과 관련한 인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이며, 이 기록은 실록에 수록된 사실임.
원문
安東人端宗甲戌完女選入後宮丁丑上王出居瑜第權氏亦從完時官敦寧府判官義禁府啓完言上王復位則甚好但此事不易與宋玹壽交通謀逆罪當誅從之[주:實錄]
엔티티 후보
- person: 권완 / 權完, confidence=0.95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0.98
- person: 송현수 / 宋玹壽, confidence=0.95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8
- office: 둔녕부 판관 / 敦寧府判官, confidence=0.92
- office: 의금부 / 義禁府, confidence=0.98
- term: 상왕 / 上王, confidence=0.95
- term: 교통 / 交通, confidence=0.88
- term: 후궁 / 後宮,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瑜第의瑜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불확실
- 完女의 완이 권완의 딸인지 명칭인지 불확실
(단종조)황보인
- 기사 ID:
B9C^2_001_026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6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18:12:11.03161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69
한글 번역
글자는 사겸, 호는 지봉, 영천 사람이다. 지중추원사 황보琳의 아들이다. 태종 갑오년(1414)에 친시 문과에 합격하였다. 세종조에 북도 체찰사가 되어 김종서와 함께 육진을开拓하여 설치하였다. 세종 임금의 마지막 해에 병이 들어 군신이 드물게 뵙게 되었으나, 황보인은 조정에 들어갈 때마다 침전에서 독대하여 군사 기밀을 논의하였고, 총애와 대우가 유별났다. 좌찬성에서 영의정에 올라 벼슬아깨의 큰 줄기를 힘써 잡고, 은연히 국가의 중책이 되었다. 문종 임신년(1452)에 영의정이 되고, 유명을 받아 어린 임금을 보필하였다. 계유년(1455)에 권람이 세조에게 고발하여 말하기를, “황보인과 김종서가 밀모를 많이 터놓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였다. 세조가 오랫동안 말없이 있다가 이르기를, “그들이 경영하고 약속한 것이八九일에 그칠 것이니 손해 될 것이 없다.” 하였다. 마침내 김종서를 처형하고 황보인이 용과 결탁하여 반역을 꾀한 정상을 이어 열어 보이고, 급히 황보인에게 알렸다. 황보인이 가다가 종묘 아래에서 수레에서 내려 서서 울며 흘러내렸다. 판서 이례장에게 후사를 부탁하였다. 황보인이 도착하자 즉시 곤봉으로 때려 죽였다. 아들 황보 석관의 관은 참판이 되었고, 동생 황보钦와 함께 잠복하였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영조 경인년(1728)에 황보인에게 충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독음
글자는 사겸, 또 글자는 춘경, 호는 지봉, 영천 사람, 지중추원사 림의 아들. 태종 갑오년에 친시 문과에 급제. 세종조에 북도 체찰사가 되어 김종서와 함께 육진(六鎭)을开拓하여 설치하였다. 세종 말년에 병들어 군신이 드물게 청견하였으나, 인(仁)은 조정에 들어갈 때마다 침전에서 引見하여 군사 기밀을 물었고, 총애와 대우가 특별하였다. 좌찬성에서 入相하여 대체를 힘쓰고, 은연히 국가의 중책이 되었다. 문종 임신년에 영의정이 되고, 유명을 받아 어린 임금을 보필하였다. 계유년에 권람이 세조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인(金)과 김종서가 음모를 많이 꾀하여 어찌할 것입니까?” 하였다. 세조가 오래도록 잠자코 있다가 말하기를, “그들의 경영 약속은 八九일에 그칠 것이니 손해가 없다.” 하였다. 마침내 종서를 주살하고 인의 당부가 용을 끼고 반역을 꾀한 정상을 열거하고, 급히 인에게 고하였다. 인이 가다가 종묘 아래에서 수레에서 내려 서서 울며 흘러내렸다. 판서 이례장에게 후사를 부탁하였다. 인이 도착하자 즉시 곤봉으로 죽였다. 아들 석관과 남동생钦가 잠복하였다가 발각되어 주살하였다. 영조 경인년에 인에게 충정(忠定)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의미
황보인은 조선 세종·문종·단종 시대의的重臣으로, 김종서와 함께 북쪽 육진을开拓設置한 공로를 쌓았다. 세종 말기에 병환으로 군신이 드물게 뵙게 되자 그만 독대하여 군사 기밀을 상담하였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문종 때 영의정이 되어 유명을 받아 어린 단종을 보필하였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前夕에 권람의 고발로 김종서와 함께 주살되었다. 그의 아들과 동생도 함께 처형되었다. 훗날 영조대에 시호를 내렸다.
원문
字四兼一字春卿號芝峯永川人知中樞院事琳子太宗甲午親試文科世宗朝爲北道體察使同金宗瑞拓地置六鎭世宗晚年違豫群臣罕得進見仁入朝必引接寢殿咨詢軍機眷遇超絶由左贊成入相務持大體隱然爲國家重文宗壬申爲領議政受顧命輔幼主癸酉權擥告世祖曰仁與金宗瑞謀議甚密將奈何世祖默然良久曰彼經營約束可費八九日無傷也及誅宗瑞啓仁黨附瑢謀不軌狀急告仁仁行過宗廟下輿立泣下顧舍人李禮長托以後事仁至卽椎殺之子錫官參判與弟欽逃匿覺誅英廟戊寅賜仁諡忠定[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황보인 / 皇甫仁, confidence=1.0
- person: 김종서 / 金宗瑞, confidence=1.0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1.0
- person: 문종 / 文宗, confidence=1.0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1.0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1.0
- person: 권람 / 權擥, confidence=1.0
- person: 이례장 / 李禮長, confidence=1.0
- place: 영천 / 永川, confidence=1.0
- place: 북도 / 北道, confidence=1.0
- place: 육진 / 六鎭, confidence=1.0
- office: 지중추원사 / 知中樞院事, confidence=1.0
- office: 좌찬성 / 左贊成,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북도 체찰사 / 北道體察使,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친시 / 親試, confidence=1.0
- term: 유명 / 顧命,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1.0
(단종조)김문기
- 기사 ID:
B9C^2_001_027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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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1:03:23.30979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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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원래 이름은 효起였고, 김해 사람이다. 세종 임금의 병오년생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병자년에 박팽년이 문기가 반역 음모에 가담하였다고 고발하였으나, 문기는 불복하고 그 자백을 거부하였다. 이에 이색 등과 함께 사형되었다. 아들 현석은 현감 벼슬을 했으나 역시 죽었다. 영조임금 시대에 구세손鼎九가 억울함을 호소하여 관직이 회복되었고, 문기에게 충毅란 시호를 하사하였다.(주: 장릉지) 호는 백촌이다. 익천군 남쪽 이십 리 되는 곳에 폐허가 남아 있고 비석이 있다.(주: 매산 홍직필이 지음)
독음
초명효기금해인 세종 병오생원 문과 이조판서 병자 박팽년언 문기 사전모건지부복 여 이색등동사 자 현석관 현감역사 영묘조인 구세손鼎九소송원복관사 문기시 충역(주: 장릉지) 호 백촌 익천군 남 이십리유 유서비(주: 매산 홍직필찬)
의미
단종 시대의 관리였던 김문기는 세종 병오년생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까지 승진하였다. 그러나 병자년에 묘량대부 박팽년의 고발로 반역 음모에 연루되었다고 몰려 그 자백 없이 이색 등과 함께 사형되었다. 아들 현석도 현감 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역시 사망하였다. 이후 영조대에 이르러 구세손鼎九가 호소하여 억울함이 갚혔고, 충毅란 시호를 하사받아 명예가 회복되었다. 호는 백촌이며,沃川군 남쪽 이십 리 지점에 그의 유허비(,洪直弼가 찬문)가 남아 있다.
원문
初名孝起金海人世宗丙午生員文科吏曹判書丙子朴彭年言文起預謀鞫之不服與李塏等同死子玄錫官縣監亦死英廟朝因九世孫鼎九訟冤復官賜文起諡忠毅[주:莊陵志]號白村沃川郡南二十里有遺墟碑[주:梅山洪直弼撰]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문기 / 金文起, confidence=0.98
- person: 효기 / 孝起, confidence=0.95
- person: 박팽년 / 朴彭年, confidence=0.97
- person: 이색 / 李塏, confidence=0.95
- person: 현석 / 玄錫, confidence=0.93
- person: 홍직필 / 洪直弼, confidence=0.95
- place: 김해 / 金海, confidence=0.97
- place: 옥천군 / 沃川郡, confidence=0.95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0.92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term: 심문 / 鞫, confidence=0.8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
- term: 유허 / 遺墟,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鼎九
- 원문 소실로 음독 미확인, 九世孫鼎九(구세손 정구) 혹은 九世孫名鼎九(구세손 이름이 정구) 두 해석 가능
(단종조)박쟁
- 기사 ID:
B9C^2_001_027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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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1:03:31.04803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76
한글 번역
병자년에 박쟁이 성승, 유응부와 함께 별운검 사건에 연루되어 사기가 드러났다. 박쟁은 성승과 같은 날 죽었다. 정조 신해년에 병서판서(兵書判書)에 추증되고 충剛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아들 숭문 등 두 사람이 함께 죽었다.
독음
병자 성승 유응부 구위별운검사覺 성승 동일일사 정묘신해 증병서판서 츠지충剛자 숭문등 이인 병사
의미
조선 시대 인물 박쟁이 성승, 유응부와 함께 별운검 사건에 연루되어 병자년(1556)에 성승과 같은 날 처형되었다가, 이후 정조 연간에 추증과 시호가 내려지고 아들 둘도 함께 죽었던 일을 수록한 기사이다.
원문
丙子與成勝兪應孚俱爲別雲劍事覺與勝同日死正廟辛亥贈兵書判書賜諡忠剛子崇文等二人竝死[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쟁 / 朴崝, confidence=1.0
- person: 성승 / 成勝, confidence=1.0
- person: 유응부 / 兪應孚, confidence=1.0
- person: 숭문 / 崇文, confidence=1.0
- event: 별운검 사건 / 別雲劍事, confidence=0.8
- office: 병서판서 / 兵書判書, confidence=1.0
- term: 추증 / 贈,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별운검(別雲劍) - 정확한 사건 명칭이 불분명하며, 기록 상태나 사건 성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
(단종조)안완경
- 기사 ID:
B9C^2_001_027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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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7:13:05.58446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78
한글 번역
호는 정암, 광주 사람으로, 목사(牧使) 처선의 아들이다. 세종 기묘년(1423) 문과에 급제한 뒤 병진년(1436) 중시로 집현전 직제학이 되었고, 세종 계유년(1453)에는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다. 세종이 하늘에 계신 뒤, 세조가 난을 평정할 때 금종서, 이양, 조극관, 윤처건, 이명민, 원거, 조번 등과 결탁하여 함길도 절제사 이등옥, 종성 부사 이경㽥, 평안도 관찰사 조수량, 충청도 관찰사 안완경을 포고하여 ‘임금이 어리고 충동하여 종사를 해치려 하니, 군사들에게 명하여 무사(皇甫仁), 금종서, 극관, 처공 등을 현릉 비석 곁에서 목을 베어 현릉 비석 곁에 드러내어 죽이라’고 하였다. 교서에 이르기를 ‘간신皇甫仁, 금종서 등이 안평대군 융과 결탁하여 친당을 넓히고 안팎에 분포하며 몰래 사사를 양성하여 불의를 도모하였으니, 간당은 이미 모두 죄에 해당한다. 정분을楽安에 流竄하고, 수량을固城에, 완경을梁山에 流配하였다.’ 헌납 김계우가 아뢴 바에 따르면 ‘完경이 경기에 이르러 융과 밀담으로 약조한 죄는 용서할 수 없다’ 하였다. 마침내 교수형에 처하였다. [주: 소벌기년] 아들 철, 손은 세종 신유년(1461) 생원文科에 급제하여 참판이 되었다. [주: 국조방목]
독음
호정암 광주인 목사처선자 세종계묘文科 병진중시 집현전 직제학 세종계유위 충청도 관찰사 세종기유위 충청도 관찰사 안완경 성상 영난以来 금종서 이양 조극관 윤처공 이명민 원거 조번 등 연결 함길도 절제사 이등옥 종성 부사 이경㽥 평안도 관찰사 조수량 충청도 관찰사 안완경 승상 유충 모호위 종사 군사 무사에게椎殺皇甫仁 금종서 극관 처공 등 현릉 비석 소에서 베어 목욕을 베어 현릉 비석 곁에 죽음. 교어하기를, 간신皇甫仁 금종서 등이 안평대군 융과 결탁하여 친당을 넓히고中外에 분포하여 몰래死士를 양성하여 不軌를 도모하였다. 간당은 이미 모두 죄에 해당하였으니, 정분을楽安에竄逐하고, 수량을固城에, 완경을梁山에 流配하였다. 헌납 김계우가 계妻完경이京畿 땅에 이르러 융과 밀담으로 약조한 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아뢴다. 마침내 교수형에 처하였다. [주: 소벌기년] 아들 철, 손 세종 신유년 생원文科 참판 [주: 국조방목]
의미
단종 즉위 초 충청도 관찰사 안완경은 세조의 왕위 찬탈(癸甲의亂) 과정에서 수묘와 결탁한 간당으로 지목되었다. 세조는幼冲한 단종을 핑계로 금종서·皇甫仁 등 원로 대신을 습격하여 살해하고, 완경 역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헌납 김계우의 建白로 완경이 경기에서 안평대군과 밀담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梁山 유배에서 다시 교수형이 선고된 사건이다. 安完경은 단종复位 실패와 관련된 인물로 기록되었다.
원문
號貞菴廣州人牧使處善子世宗癸卯文科丙辰重試集賢殿直提學世宗癸酉爲忠淸道觀察使世祖靖難以金宗瑞李穰趙克寬尹處恭李命敏元矩趙藩等連結咸吉道節制使李澄玉鍾城府使李耕㽥平安道觀察使趙遂良忠淸道觀察使安完慶乘上幼沖謀危宗社使武士椎殺皇甫仁金宗瑞克寬處恭等斬伸于顯陵碑石所敎曰奸臣皇甫仁金宗瑞等交結安平大君瑢廣植親黨分據中外陰養死士以圖不軌奸黨皆已伏辜竄鄭苯于樂安遂良于固城完慶于梁山獻納金季友啓完慶到京畿地與瑢密語約束罪不可赦遂絞死[주:昭伐紀年]子哲孫世宗辛酉生員文科參判[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완경 / 安完慶, confidence=0.95
- person: 황보인 / 皇甫仁, confidence=0.95
- person: 김종서 / 金宗瑞, confidence=0.95
- person: 안평대군 융 / 安平大君瑢, confidence=0.9
- person: 김계우 / 金季友, confidence=0.9
- place: 현릉 / 顯陵, confidence=0.85
- place: 양산 / 梁山, confidence=0.85
- place: 고성 / 固城, confidence=0.85
- place: 악안 / 樂安, confidence=0.85
- office: 집현전 직제학 / 集賢殿直提學, confidence=0.85
- office: 충청도 관찰사 / 忠淸道觀察使, confidence=0.9
- term: 정난 / 靖難, confidence=0.8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
- term: 추살 / 椎殺,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단종조)지정
- 기사 ID:
B9C^2_001_027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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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1:04:37.61092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79
한글 번역
무관인池淨이 갑오년에忠淸道節制使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金宗瑞 등이 죽은 뒤 도망쳐 숨어다니며 잡히지 않아靈巖으로 귀양 갔다.議政府가 아뢴 바에 따르면, 池淨과 趙順生, 李石貞 등이 모두 武官으로서 瑢에게 비위를 맞추어 종일 밤으로 왕래하며 함께 당 원을 맺었다가, 이내 교수형에 처해졌다[주: 實錄].
독음
무인 궤유 除忠청도절제사 미부의 금종서 등사 도립 불견포 천영엄 의정부계 정과 조순생 이석정 등 구이 무관 아부용 일야왕래 공위 당원 심지구사[주:실록]
의미
단종 즉위년(1453) 무관 지정은 충청도 절제사로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김종서가 죽은 뒤 지정은 도망쳐 잡히지 않았고, 결국 영암으로 귀양갔다. 의정부가 임금에게 아뢴 바에 따르면, 지정과 조순생, 이석정 등은 모두武官으로서 권신瑢에게 비위를 맞추고 밤낮으로 왕래하며 함께 당편을 형성하였고, 이내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실록에는 ‘귀양 보냈다’는表現替로絞死를記했다는 주기가 붙어 있다.
원문
武人癸酉除忠淸道節制使未赴任金宗瑞等死逃匿不見捕竄靈巖議政府啓淨與趙順生李石貞等俱以武官阿附瑢日夜往來共爲黨援尋絞死[주:實錄]
엔티티 후보
- person: 지정 / 池淨, confidence=0.95
- person: 김종서 / 金宗瑞, confidence=0.98
- person: 조순생 / 趙順生, confidence=0.95
- person: 이석정 / 李石貞, confidence=0.95
- person: 용 / 瑢, confidence=0.97
- place: 충청도 / 忠淸道, confidence=0.97
- place: 영암 / 靈巖, confidence=0.96
- office: 절제사 / 節制使, confidence=0.97
- office: 의정부 / 議政府,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癸酉(단종 즉위년 1453년으로 추정되나, 문헌학적確證必要)
- 議政府啓(의정부啟의 기능과 법적 효력에 관해 전문가 解釋差異 가능)
- 絞死(주인지음에 따르면實錄에는 ‘竄靈巖’으로 기재되었으나, 지문이 ‘絞死’로 전함)
(단종조)이경㽥
- 기사 ID:
B9C^2_001_028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8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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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1:04:58.46447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80
한글 번역
관(中央)이 종성 부사에게 명하여, 계유년에 황보인 등과 이경㽥을 결탁하여 모반을 꾀하였다고 하여, 의금부치지 구치관을 보내어 가서 참형에 처하였다. 그의 아들 이물금과 형제들이 모두 죽었다.
독음
관 종성 부사, 계유년에 황보인 등과 경㽥을 연결하여 모반하자 의금부치지 구치관을 보내어 가서 참살하니, 아들 물금과 형제가 모두 죽하였다. [주: 장릉지]
의미
단종 연간에 종성 부사 이경㽥이 황보인 등과 결탁하여 반역을 도모하였다가 발각되어, 중앙에서 의금부치지 구치관을 파견하여 참형에 처하고, 그의 아들 물금과 형제들도 모두 처형된 사건을 기록한 기사이다. 장릉지에 수록된 기사이다.
원문
官鍾城府使癸酉以皇甫仁等連結耕㽥謀反遣義禁府知事具致寬往斬之子勿金兄弟皆死[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경㽥 / 李畊㽥, confidence=0.95
- person: 황보인 / 皇甫仁, confidence=0.95
- person: 구치관 / 具致寬, confidence=0.95
- person: 물금 / 勿金, confidence=0.9
- place: 종성 / 鍾城, confidence=0.95
- office: 의금부 / 義禁府, confidence=0.95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0.95
- term: 계유 / 癸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단종조)이명민
- 기사 ID:
B9C^2_001_028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8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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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27:58.97187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81
한글 번역
관선을 다스리는 工監의 부정(補正)으로서 예전에 인정전(仁政殿)을 감독하여 지었던 자가 있다. 계유년(癸酉年)에 상왕(上王: 단종)이 정종(端宗)의 거처에 계실 때, 황보인(皇甫仁)이 명민(命敏)을 시켜 계时请(請)하여 다시 수강궁(壽康宮)으로 환승할 것을 아뢴다. 명종(命敏)이 조정의议论을 정부(政府)에 물었다. 김종서(金宗瑞)가 이미 죽은 뒤에 이명민이 종서(宗瑞)의 당(黨)이 되어 모반을 도모한 죄로 사람을 보내어 그를 죽였다. 다음 날 명민이 다시 살아났으나 도망쳤으므로, 호군(護軍) 박悌(朴悌)를 보내어 가斩(斬)하였다.
독음
관선공감 부정 상감조 인정전 계유상왕재 정종제 황보인 유 명민계청환여수강궁 명종의 정부 김종서 기而死 이명민 당종서모반 유인살지 숙일 명민 부숙 이도逃사호군 박체왕참지
의미
단종 즉위기에 숙종이 정종궁에 있을 때, 황보인이 명민에게 수康复로 환승해 줄 것을 요청했다. 명민이 정부에 논의했으나, 김종서暗殺 이후 명민이 종서의 당파에 가담하여 모반罪名으로杀了되었다가 살아났으나 도망쳤고, 박悌가其后追杀하여 참수했다. 이记事는 단종复位期间的宫廷权力斗争와 그에 연루된 인물들의 최측을 보여준다.
원문
官繕工監副正嘗監造仁政殿癸酉上王在鄭悰第皇甫仁遣命敏啓請還御壽康宮命議于政府金宗瑞旣死以命敏黨宗瑞謀反遣人殺之翼日命敏復蘇而逃使護軍朴悌往斬之[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명민 / 李命敏, confidence=0.95
- person: 황보인 / 皇甫仁, confidence=0.95
- person: 김종서 / 金宗瑞, confidence=0.95
- person: 박체 / 朴悌, confidence=0.9
- place: 인정전 / 仁政殿, confidence=0.95
- place: 수강궁 / 壽康宮, confidence=0.95
- office: 공감 / 工監, confidence=0.85
- office: 호군 / 護軍, confidence=0.9
- term: 상왕 / 上王, confidence=0.95
- term: 정부 / 政府,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단종조)윤처공
- 기사 ID:
B9C^2_001_028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8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2:54:33.47689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82
한글 번역
관군기판사가 의정부에 장계를 올렸다. 윤처공과 녹사 조번은 武庫(무기고)의 병장(병기)을 관장하고, 知部 김승규와 鎭撫 원구 등과 함께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여 정해진 시일에 거사하도록 했다. 황보인 등이 죽자, 사람을 보내 그들을 살해하였다. 아들 海·渭·濯·湜 등 여섯 명이 함께 죽었다.
독음
관군기판사의정부계처공급녹사조번장무고병장여지부금승규진무원구등일야취용가극기거사황보인등사견인살지자해위탁식육인동사주장릉지
의미
단종조의 관군기판사가 의정부에 올린 장계에 따르면, 윤처공과 녹사 조번이 무기고의 병기를 관장하며 김승규, 원구 등과 함께 음모를 꾀했다. 황보인 등이 이미 죽은 뒤이었으므로, 이들이 반대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윤처공과 조번 등은 왕의 명으로 사람을 보내 살해되었고, 윤처공의 아들 海·渭·濯·湜 등 6명이 동시에 죽었다. 이 기록은 『장릉지』에서 확인된다.
원문
官軍器判事議政府啓處恭及錄事趙藩掌武庫兵仗與知部金承珪鎭撫元矩等日夜聚瑢家刻期擧事皇甫仁等死遣人殺之子海渭濯湜六人同死[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처공 / 尹處恭, confidence=0.95
- person: 조번 / 趙藩, confidence=0.95
- person: 김승규 / 金承珪, confidence=0.95
- person: 원구 / 元矩, confidence=0.9
- person: 황보인 / 皇甫仁, confidence=0.95
- person: 해·위·탁·식 / 海·渭·濯·湜, confidence=0.85
- office: 관군기판사 / 官軍器判事, confidence=0.95
- office: 녹사 / 錄事, confidence=0.95
- place: 무기고(무고) / 武庫, confidence=0.95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용(瑢) - 고문헌에서 인명·지명의 한자 표기가 불분명하며, ‘용가(瑢家)’가 특정 인물의 집인지 장소명인지 명확하지 않음
- 議政府啓(의정부계) - 의정부에 올리는 장계 문서의 구체적 형식과 용어구분이 불확실
(단종조)이현로
- 기사 ID:
B9C^2_001_028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8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29:00.41809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83
한글 번역
이현로는 원래 이름이 이선로로, 강흥 사람이다. 세종 무오(1438)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집현전 교리가 되었다. 현로는 여러 대신들에게策을 올려 헌부로 빈경(벼슬을 구걸하는 일)을 금지하게 하고, 정부와 여러 대신 집에서 시행하게 하였다. 세조가 안평군과集정과 함께하며 말하기를, ‘이는 나를 의심하는 것이다.上新이 즉위하자 맨 먼저 종실을 의심하고 금방금책으로 막으니, 어찌 고립하여 도움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가’ 하였다.皇甫仁이 가볍게 놀란 체하며 말하기를, ‘내가 실로 모릅니다’ 하고 곧 그것을 그만두었다. [주:황토記事] 현로는 사람이 경박하고 기술이 있어 안평군 집을 출입하였다. 계유(1453)년에 의정부가启,秦(永).__聰에게 명하여 귀하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백악 북쪽에興王이 나타날 땅이 있다고 하였다.瑢이 武夷精舍를 쌓아 부첩의 응험을 하고자 하였다. 그때 현로는 관직에서 파면되어湖南에 있었는데, 정분과 함께 돌아가다가 길목에서 살해되었다. 아들 간(金)과 등 네 사람이 모두 죽었다.
독음
초명선로강흥인세종무오문과위집현전교리현로헌책어제대신영헌부금빈경어정부급제대신가세조여안평어집정왈시상의아야상신즉위수의종실이금방지무내고리무조호부인양경왈아실부지즉罢지[주:황토기사]현로위인경박유기술출입안평가계유기정부개현로언용명귀불가언우백악북유흥왕지용우수武夷精舍욕응부첩시현로罢관재호남여정분동환중도피전자건금등사인개사
의미
단종조의 문신 이현로(初名善老)의 행적을 적은 기사이다. 그는 세종 무오(1438)년 문과에 합격하여 집현전 교리가 되었으며, 빈경을 금지하는 정책을건의하였다. 그러나 세조 즉위 직후,安平군 등과의關聯疑惑을 받아 퇴진되었다. 이후 瑢(錦城大君) 등의 역성 혁명 관련 음모에 연루되어 정분과 함께 귀환途中에서殺害되었으며, 아들 넷도 모두 처형되었다. 이 기록은世祖篡位 과정에서의 정치적 숙청과 연좌제 실상을 보여준다.
원문
初名善老江興人世宗戊午文科爲集賢殿校理賢老獻策于諸大臣令憲府禁奔競于政府及諸大臣家世祖與安平語執政曰是疑我也上新卽位首疑宗室而禁防之無乃孤立無助乎皇甫仁佯驚曰我實不知卽罷之[주:黃兎記事]賢老爲人輕薄有技術出入安平家癸酉議政府啓賢老言瑢命貴不可言又言白岳北有興王地瑢乃搆武夷精舍欲應符讖時賢老罷官在湖南與鄭苯同還中路被誅子乾金等四人皆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현로 / 李賢老, confidence=0.95
- person: 이선로 / 李善老, confidence=0.95
- person: 안평군 / 安平, confidence=0.85
- person: 황보인 / 皇甫仁, confidence=0.9
- person: 정분 / 鄭苯, confidence=0.9
- person: 용(錦城大君) / 瑢, confidence=0.85
- place: 강흥 / 江興, confidence=0.85
- place: 호남 / 湖南, confidence=0.9
- place: 백악 / 白岳, confidence=0.9
- place: 무이정사 / 武夷精舍, confidence=0.8
- office: 집현전 교리 / 集賢殿校理, confidence=0.95
- office: 의정부 / 議政府, confidence=0.9
- term: 빈경 / 奔競, confidence=0.9
- term: 부첩 / 符讖, confidence=0.8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단종조)조충손
- 기사 ID:
B9C^2_001_028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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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한양 사람으로서 양절공이란 시호를 받은 온손은 세종 임술(142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역과 의정부의 관원이 되었다. 충손은瑢의 심복으로서 병조 정랑이 되어 병권을 장握하고, 변방 지역에 배치되어 있다가 죽었다.
독음
한양인양절공온손세종임술文科사예의정부계충손이용복심위병조정랑장병권안치변군사
의미
조선 전기 인물 조충손의 관력简历. 한양 출신으로 세종 임술년 문과 급제자. 사역과 의정부 벼슬을 지내고,瑢의 측근으로서 병조 정랑에 올랐다. 병권을握하며 변방에 배치되었으나 사망했다.文中의 주석은《莊陵志》에서 유래.
원문
漢陽人良節公溫孫世宗壬戌文科司藝議政府啓衷孫以瑢腹心爲兵曹正郞掌兵權安置邊郡死[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충손 / 趙衷孫, confidence=1.0
- person: 온손 / 溫孫, confidence=1.0
- person: 용 / 瑢, confidence=0.9
- place: 한양 / 漢陽, confidence=1.0
- place: 변방 / 邊郡,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병조정랑 / 兵曹正郞, confidence=1.0
- term: 의정부관원 / 府啓, confidence=0.7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단종조)황의헌
- 기사 ID:
B9C^2_001_028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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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창원 사람은 희산군 석기의 증손으로, 세종 임술년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다. 단종 계유년에 안악군사를 知(관직명 겸임)하였다. 군인 부사정 이포가 의헌에게 밀모가 있다고 고발하였다. 통례문사 유규을 보내어 연루된 자들을 심문하고, 의헌을 투옥하였다. 갑술년에 의헌이 여용과 교분이 깊어 사냥을 핑계로京师에 들어가 동정을 탐색하였다 하여 법대로 논죄할 것을 청하였다. 명이 이를 참형하도록 하고 그 가산을 적몰하였다. 아들 석동도 함께 죽었다. [주: 장릉지] 이석정은 무인으로서 첨지 중추부사의 관직을 지냈으며, 체력이 매우 뛰어났고 강한 궁을 당길 수 있었다. 말을 달리고 사냥하며 매번 돌아올 때 잡은 짐승의 수가 반드시 화살 수와 같았다. 여용의 당인으로서 유족되었고, 지내면서 남해로 옮겨 교살로 죽였다. [주: 상동]
독음
창원인 희산군 석기 증손 세종 임술 문과 단종 계유知 안악군사 군인 부사정 이포 고 의헌 유밀모 연궁 예문들이 유규 국 연인 체수 의헌 갑술 의헌 여 용 교밀 타 사렵 연입京师 탐후 동정 청론여괄 명점지적 기가자 석동 병사 [주: 장릉지] 이석정 무인 관첨지 중추부서 여력절 능 만 강궁 척열 매렵귀 획금 필시 곡수 이 용 당류염일 이동남해 교사 [주: 상동]
의미
조선 단종 연간, 창원 출신의 문과 급제자이자 안악군사를 지낸 황의헌이 사병 축출 등의 밀모를 계획했다는 율포의 고발로 투옥되었으며, 여용(수양대군의 아들)과 교분이 깊고 사냥을 가장하여京师에 들어가 동정을 살폈다는罪名으로 처형되고 가산을 적몰당한 사건이다. 그 아들 석동도 함께 죽었다. 무인 이석정도 여용의 당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고 남해에서 교살되었다.
원문
昌原人檜山君石奇曾孫世宗壬戌文科端宗癸酉知安岳郡事郡人副司正李苞告義軒有密謀遣通禮門使柳規鞫辭連人逮囚義軒甲戌以義軒與瑢交密托射獵遣入京師探候動靜請論如法命斬之籍其家子石同竝死[주:莊陵志]李石貞武人官僉知中樞府事膂力絶人能彎強弓馳獵每獵歸獲禽必如矢數以瑢黨流延日移南海絞死[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황의헌 / 黃義軒, confidence=0.98
- person: 이포 / 李苞, confidence=0.95
- person: 유규 / 柳規, confidence=0.92
- person: 이석정 / 李石貞, confidence=0.95
- person: 석기 / 石奇, confidence=0.9
- person: 석동 / 石同, confidence=0.9
- person: 용 / 瑢, confidence=0.88
- place: 창원 / 昌原, confidence=0.95
- place: 안악군 / 安岳郡, confidence=0.95
- place: 남해 / 南海, confidence=0.9
- office: 희산군 / 檜山君, confidence=0.85
- office: 부사정 / 副司正, confidence=0.8
- office: 통례문사 / 通禮門使, confidence=0.85
- office: 첨지중추부사 / 僉知中樞府事, confidence=0.88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知(군사兼임 여부)
- 膂力絶人(초인적 체력 표현 해석)
- 獲禽必如矢數(구체적 사냥 성과 표현)
- 延日(유배 기간)
- 論如法(실제 법조문 대응)
(단종조)박하
- 기사 ID:
B9C^2_001_028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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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고양현감이었는데 유쾌하고 낙타한 성격이라 남들이 경시하였다. 한때 궁궐 서쪽 문을 지나가는데 마침 조준이 그를 보고 말을 걸어 매우 친밀해졌다. 조준이 생일에 마포강가의 정자에서 연회를 베풀자 박하가 술과 고기를 가져왔다. 계유년에 유배되었다가 교수형당했다.
독음
관 고양현감 희위해 낙타 불위인치 창과 궐서문 용 적견지 어어 극昵 용이 생조 설연어 마포강정 하 재주육 至 계유 안치 교사
의미
단종조 관리 박하의 기록이다. 유쾌하고 낙타한 성격으로 고양현감을 지냈으나 남들에게는 경시받았다. 조준과 친분을 맺어 그의 생일 연회에 술과 고기를 가져다주었다. 이후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계유년(1450)에 유배되고 교수형당했다. 『장릉지』에서 발췌.
원문
官高陽縣監喜詼諧落拓不爲人齒嘗過闕西門瑢適見之與語亟昵瑢以生朝設宴于麻浦江亭夏齎酒肉至癸酉安置絞死[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하 / 朴夏, confidence=0.95
- person: 조준 / 瑢, confidence=0.9
- place: 고양현 / 高陽縣, confidence=0.95
- place: 마포강정 / 麻浦江亭, confidence=0.85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0.9
- term: 궐서문 / 闕西門, confidence=0.85
- term: 계유 / 癸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闕西門」은 궁궐 서쪽 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궁궐 문 이름으로서의 구체적 칭호는 불확실
- 「爲人齒」는 ‘남들이 입에 올린다’는 뜻으로 해석하나 관용적 의미의 정확도는 중간
(단종조)봉여해
- 기사 ID:
B9C^2_001_029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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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자는 화부, 호는 묵헌, 하음 사람. 관직은 사옹별좌에 그쳤고, 병조판서 박첩의 아들이자 박彭년의 매부였다. 을묘년에 사건이 발각되자 박기년이 “여해가 음모에 사전에 참여했으며, 스스로 허리에 칼을 차고 궁궐에 들어가 거절하는 자를 찌르려 했다.”고 말했다. 결국 기년과 함께 죽었다[주: 동학사招魂記]. 아들이 둘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은행으로, 감찰과 헌사에서 서직했으며, 순조 을축년에 추증으로 좌승지를 받았다.
독음
자와화부호목헌하음인관지사옹별좌병조판서첩조사아들박彭년매서야병자사발박기년이언여해여모자언패도입궐유거자장자자여기년동사동사[주:동학사추혼기]유이남은행감찰헌사직순조을축증좌승지
의미
조선 단종 연간 관인 여해의传记이다. 여해는 하음 출신으로 병조판서 박첩의 아들이자 박彭년의 매부였다. 을묘년에 박彭년의 오빠 박기년이 사초 변명을 하면서 여해도 경오와 함께 역모에 가담했고, 칼을 차고 궁궐에 들어가 위험한 행위를 했다고 고발했다. 결국 여해는 박기년과 함께 사형되었다. 동학사에서 추혼记文이 남아 있으며, 아들 은행은后来 감찰과 헌사에서 활동하며 순조 연간에 추증으로 좌승지를 받았다.
원문
字和甫號默軒河陰人官止司甕別坐兵曹判書楫之子朴彭年妹壻也丙子事發朴耆年言汝諧預謀自言佩刀入闕有拒者將刺之與耆年同死[주:東鶴寺招魂記]有二男寅監察憲司直純祖乙丑贈左承旨
엔티티 후보
- person: 여해 / 奉汝諧, confidence=1.0
- person: 화부 / 字和甫, confidence=1.0
- person: 묵헌 / 號默軒, confidence=1.0
- place: 하음 / 河陰, confidence=1.0
- office: 사옹별좌 / 司甕別坐, confidence=0.9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person: 박첩 / 朴楫, confidence=1.0
- person: 박彭년 / 朴彭年, confidence=1.0
- person: 박기년 / 朴耆年, confidence=1.0
- work: 동학사추혼기 / 東鶴寺招魂記, confidence=0.9
- person: 은행 / 寅, confidence=1.0
- office: 감찰 / 監察, confidence=1.0
- office: 좌승지 / 左承旨,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단종조)심신
- 기사 ID:
B9C^2_001_029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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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부유한 인사인 호조정서 도원의 손자 심신은 문종 경오년(1450)의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에 재임하다가, 을자년(1456)에 조사를 받았다. 심신은 박팽년이 인접하여 거주하며 이정양과 이지영 등을 불러 모았고, 또한 정언 유계분의 집에서 사격을 함께한 일을 진술하였다. 유계분은 사실상 도원의 형의 아들이었다. 심신은 결국 모逆(반역)의 죄명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아들 오(吾) 역시 을미년(1475)에 함께 처형되었다. 주: 《동학사 초혼기》 이정양은 관직이 별시위였고, 심신의 이웃거주인으로서 이지영과 함께 죽었다.
독음
부유인호조판서도원손문종경오문과이조정랑병자피구신언박팽년거비린초취이정양이지영배우당회사어정언유계분가지계분성원형자야신수이모역론사자오을미병사[주:동학사초혼기]이정양관별시위심린인야여이지영동사
의미
단종 연간 을자년(1456)에 호조정서 도원의 손자이자 이조정랑 심신이 박팽년, 이정양, 이지영, 유계분 등과 반역 음모를 꾸미다는 혐의로 체포·조사받아 결국 모逆 죄로 처형된 사건이다. 심신의 아들 오 역시 을미년(1475)에 함께 처형되었고, 이 사건은 동학사 초혼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정양은 별시위로서 심신의 이웃집 거주인이었고, 이지영과 함께 처형되었다.
원문
富有人戶曹判書道源孫文宗庚午文科吏曹正郞丙子被鞫愼言朴彭年居比隣招聚李禎祥李智英輩又嘗會射於正言柳桂芬家桂芬誠源兄子也愼遂以謀逆論死子吾乙未竝死[주:東鶴寺招魂記]李禎祥官別侍衛沈隣人也與李智英同死
엔티티 후보
- person: 심신 / 沈愼, confidence=1.0
- person: 도원 / 曹道源, confidence=1.0
- person: 박팽년 / 朴彭年, confidence=1.0
- person: 이정양 / 李禎祥, confidence=1.0
- person: 이지영 / 李智英, confidence=1.0
- person: 유계분 / 柳桂芬, confidence=1.0
- person: 오 / 吾, confidence=1.0
- office: 호조정서 / 戶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이조정랑 / 吏曹正郞, confidence=1.0
- office: 별시위 / 別侍衛,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work: 동학사 초혼기 / 東鶴寺招魂記,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모역(반역) / 謀逆,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會射(사격을 함께함)의 구체적 행사 성격
- 東鶴寺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
(단종조)이의영
- 기사 ID:
B9C^2_001_029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9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2:57:43.11497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96
한글 번역
유응부는 딸의 남편으로 관리로서 선위에 있었는데, 이개(李塏)의 세력에 끼어 함께 죽었다. 의영의 아우 지영은 중서원 녹사로 벼슬했으나 심흡에게 연좌되어 형과 함께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고 죽었다. 유계분은 문화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음덕으로参議에 보任되었고, 승순의 아들이다. 단종 기유년(1453) 문과에 급제한 교리 정관과 이지영의 아내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이다. 이들이 조청로, 최득지 등과 함께 이개의 당이 되어 모두 죽었다.
독음
유응부녀서관별선위로이개우익사이영제지영관중서원녹사로위심흡소인여형말생구사유계분문화인음참의승순자단종기유문과교리정관이지영처동상이야조청로최득지등병)이개당사
의미
단종 연간 이개(李塏)의 당여와 관련하여 처형된 인물들을 적은史料이다. 유응부는 이개의 사위로서, 의영·지영 형제는 이개의 측근 세력으로서, 또 유계분·정관 등은 이개와 연좌되어 모두 사망하였다. 이 기록은 단종废母事件에 연루된 이개의 세력이 제거된 상황을 보여준다.
원문
兪應孚女壻官別侍衛以李塏羽翼死義英弟智英官中樞院錄事爲沈愼所引與兄末生俱死柳桂芬文化人蔭參議承順子端宗癸酉文科校理[주:國朝榜目]鄭冠李智英妻同產也與趙淸老崔得地等竝以李塏黨死[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의영 / 李義英, confidence=0.95
- person: 이개 / 李塏, confidence=0.95
- person: 이지영 / 李智英, confidence=0.95
- person: 유응부 / 兪應孚, confidence=0.95
- person: 심흡 / 沈愼, confidence=0.95
- person: 유계분 / 柳桂芬, confidence=0.9
- person: 조청로 / 趙淸老, confidence=0.9
- person: 최득지 / 崔得地, confidence=0.9
- person: 정관 / 鄭冠, confidence=0.85
- person: 승순 / 承順, confidence=0.85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0.95
- office: 별선위 / 別侍衛, confidence=0.85
- office: 중서원녹사 / 中樞院錄事, confidence=0.85
- office: 참의 / 參議, confidence=0.9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0.9
- place: 문화 / 文化, confidence=0.85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女壻官別侍衛- 딸의 남편으로서 별선위 직임을 관직 명칭과 겸명한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음
- 末生- 벼슬에 오르지 못한 채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 의미 미상
(단종조)유구산
- 기사 ID:
B9C^2_001_029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9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31:16.02974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97
한글 번역
무송인인 좌찬성 당자는 관직이 관찰사에 이르렀고, 아우 독산과 함께 순흥에 거처하며 금성대군의 옥사에 연루되어 함께 죽었다. (樗湖隨錄) 조유례는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렀는데, 을해년 윤유월(1455년)에 빈청에서 계(啟)를 올려 유례와 유가 난을 꾀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옥에 가두고 광양으로 유배하여 교수로 죽였다. (莊陵志)
독음
무송인 좌찬성 당자 관至관찰사 여제 독산 거순흥 인금성대군옥 동사 주:추호수록 조유례 관至동지중추원사 을해 윤유월 빈청계 유례 여유 모란 하옥 산광양 교사 주:장릉지
의미
단종조 시대 인물들의 관료 경력과 최후를 수록한史料이다. 좌찬성 당자와 그 아우 독산은 금성대군의 옥사에 연루되어 함께 처형되었다. 또한 동지중추원사 조유례는 을해년 윤여월(1455년)에 유와 함께 반란을 꾀했다는罪名으로 옥에 가둔 뒤 광양으로 유배하여 교수형으로 죽였다. 두 기록 모두功臣 및 문관의 최순祖 모습을 보여준다.
원문
茂松人左贊成鐺子官至觀察使與弟鰲山居順興因錦城大君獄同死[주:樗湖隨錄]趙由禮官至同知中樞院事乙亥閏六月賓廳啓由禮與瑜謀亂下獄竄光陽絞死[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당자 / 鐺子, confidence=0.95
- person: 독산 / 鰲山, confidence=0.95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0.95
- person: 금성대군 / 錦城大君, confidence=0.95
- person: 조유례 / 趙由禮, confidence=0.95
- person: 유 / 瑜, confidence=0.85
- place: 광양 / 光陽, confidence=0.95
- office: 좌찬성 / 左贊成, confidence=0.95
- office: 관찰사 / 觀察使, confidence=0.95
- office: 동지중추원사 / 同知中樞院事, confidence=0.95
- work: 추호수록 / 樗湖隨錄, confidence=0.9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0.9
- term: 빈청계 / 賓廳啓, confidence=0.85
- term: 윤유월 / 閏六月, confidence=0.9
- place: 무송 / 茂松,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瑜(유)의 구체적 신원정보), 賓廳啓(빈청의 계문 성격과 절차)
(단종조)윤령손
- 기사 ID:
B9C^2_001_029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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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관직刑曹正郞인 박彭年 등이 연회하는 날을 틈탄하여 음모를 일으키고자 집현전에서 회의를 열었다. 성삼문이 말하기를 “申叔舟는 나의 벗이나, 죄가 중하니 참수하지 않을 수 없다. 무사들에게 각각殺할 임무를 나누어 맡기라.” 하니, 윤鈴孫은叔舟를 맡게 되었다. 曾하여雲劍을 파면하면서 음모가 중지되었으나, 윤鈴孫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叔舟가 便房으로 물러가서 머리를 감고 있을 때, 윤鈴孫이 검을 차고殺하려고 다가갔다. 삼문이 눈빛으로 제지하자, 이에 물러났다. [주:秋江集] 삼문과 같은 날 죽었다. [주:蒼陵志]
독음
관형조정낭병자박팽년등모이연사일거사회의어집현전성삼문왈신숙주오소선연죄중불가불졸사무사각주기살영순주숙주증폐운검모중지,这部영순부지지숙주취편방목발영순안검욕전삼문목치지뇌
의미
조선 단종 즉위 직후 박彭年 등이 集賢殿에서 음모를 계획하고, 申叔舟의 罪를 들어 处断코자 하였다. 윤鈴孫은 叔舟를殺할 임무를 맡았으나, 이미 계획이 중지된 줄을 몰랐다.叔舟가 머리를 감고 있는 틈을 타殺하려다 삼문의 제지로 실패하였다. 결국 윤鈴孫은 삼문과 같은 날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원문
官刑曹正郞丙子朴彭年等謀以宴使日擧事會議于集賢殿成三問曰申叔舟吾所善然罪重不可不誅使武士各主其殺鈴孫主叔舟曾罷雲劍謀中止而鈴孫不之知叔舟就便房沐髮鈴孫按劍欲前三問目止之乃退[주:秋江集]與三問同日死[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팽년 / 朴彭年, confidence=1.0
- person: 윤령순 / 尹鈴孫, confidence=1.0
- person: 신숙주 / 申叔舟, confidence=1.0
- person: 성삼문 / 成三問, confidence=1.0
- person: 권찬 / 權踐, confidence=1.0
- office: 집현전 / 集賢殿, confidence=1.0
- office: 형조정낭 / 刑曹正郞, confidence=1.0
- work: 추강집 / 秋江集, confidence=1.0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단종조)이보흠
- 기사 ID:
B9C^2_001_029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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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2:57:56.28798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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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보흠은 자(표자)가 경부이고 호는 대전거사이다. 영천 출신으로 부사직(義禁府의 직명) 현실의 아들이다. 어려서 유방선에게 수업을 받았다. 세종 기유년(144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박사가 되었다. 문장에 능하고 벼슬 재주가 있었으며, 성격이 검소하여 옷이 더러워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단종이 왕위를 선위하자 벼슬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 한 번은 글을 지어 길재의 무덤에 제사 지내며 말했다. ‘주 무왕이 의를 일으키니 제齊가 초양에서 채薇을 따고, 한 무제가 중興하자 자陵이 富春에서 낚시하다.’ 정축년(1457년)에 순흥부사가 되었다. 금성대군 유가 순흥으로 유배되었는데, 보흠은 항상 보흠과 서로 마주하며 눈물을 흘렸다. 남중의 선비들과 밀의하여 상왕(단종)을 회복할 계책을 세웠으나, 일이 발각되어 온역에 처해졌다. 유선打过으로 처단 명령이 내려져 채로 유배되어 보천으로 갔다. 얼마 뒤 종부도사(宗府都事) 최수남을 보내어 그를 죽였다. 영조 무오년(1738년)에 이조전서佐에 추증하고, 을미년(1739년)에 시호로 충장(忠莊)을 내렸다.
독음
(단종조)이보흠
의미
이보흠(字敬夫, 호 대전거사)은 세종 기유년(1449년) 문과 급제생으로 집현전 박사를 지냈다. 문장에 능하고 검소한 성품이었다. 단종이 왕위를 선위한 후 벼슬에 나가지 않았으며, 금성대군 유(단종의 아들)가 순흥으로 유배될 때 그와 함께 상왕 회복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유배 후 처형되었다. 이후 영조대에 이조전서佐에 추증되고 충장 시호를 받았다.
원문
字敬夫號大田居士永川人副司直玄實子少從柳方善受業世宗己酉文科爲集賢殿博士能文章有吏才性儉約衣垢弊不恥端宗禪位不樂仕進嘗爲文祭吉再墓曰周武擧義夷齊採薇於首陽漢武中興子陵垂釣於富春丁丑爲順興府使錦城大君瑜竄順興每與甫欽相對流涕潛結南中士人爲復上王計事覺當誅命杖流博川尋遣宗府都事崔秀男誅之英廟戊午贈吏曹判書乙未賜諡忠莊[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보흠 / 李甫欽, confidence=0.98
- person: 경부 / 敬夫, confidence=0.95
- person: 현실 / 玄實, confidence=0.9
- person: 유방선 / 柳方善, confidence=0.95
- person: 길재 / 吉再, confidence=0.95
- person: 금성대군 유 / 錦城大君瑜, confidence=0.95
- person: 최수남 / 崔秀男, confidence=0.95
- place: 영천 / 永川, confidence=0.95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0.95
- place: 보천 / 博川, confidence=0.9
- place: 초양 / 首陽, confidence=0.9
- place: 부춘 / 富春, confidence=0.9
- office: 부사직 / 副司直, confidence=0.85
- office: 집현전 박사 / 集賢殿博士, confidence=0.95
- office: 순흥부사 / 順興府使, confidence=0.95
- office: 이조전서佐 / 吏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종부도사 / 宗府都事, confidence=0.85
- term: 충장 / 忠莊,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선위 / 禪位,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衣垢弊不恥衣垢弊不恥는 옷이 더러워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되 문장이 비정연하여 장절 오류 가능성 있음
(단종조)조려
- 기사 ID:
B9C^2_001_030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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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주는 호를 어계라 하고, 함안군 사람이다. 단종 때 계유년에 급进士에 올랐으며, 사대의 명망이 매우 무거웠다.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돌아온 뒤로부터 갑자년을 기점으로 과거 시험을 폐지하고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내적 행실이 순수하고 완비되었으며, 집이 매우 가난했지만 어버이를 섬김에 극히 절로 맛보는 마음을 다했으며, 상제와 제사는 문공의 가례를 그대로 따랐다.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바른 자세로 독서하였으며, 손님이 와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오직 뽕나무와 삼뿐이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것으로는 채미의 유지를 따르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성품의 답답함이 없는 그 지혜로운 뜻을 갖추었다. 김시습과 같은 조화를 이루었으며, 순수하고 소박하여 화려함을 끊고 오직 해야 할 일만 하였으며, 격식에 지나친 것을 좋아하는 자는 깊이 제거하였다. 그래서 동리的人们는 다만 그 효도와 우애만 알았을 뿐, 그 안에 쌓인 바를 다 갖추어 말할 수 없었다. 스스로 묘지를鼎巖江 위에 정하여伯夷山에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시켰다. 정묘년에 十세 손孫重晦가其事의 처음부터 끝을 갖추어 아뢰어, 加贈하여 吏曹判書에 추증하고 시호靖節을 내렸다. [주: 장릉지] 함안군 서쪽 산의 서원에서 조려와 元昊, 김시습, 李孟專, 成聃壽, 南孝溫을 제향하였다. 오른쪽 여섯 현인을 함께 모셨으니, 세상에 生六臣이라 일컫는다.
독음
자주옹호어계함안인단종계유진사사망심중일일급제생귀자을해수폐과거두문부출내행순비가심핀양친극자미상제일준주문공가례변색이작정근독서객지소담유상마기견어시자주채미유지둔세무문지의여김시습동조혼벽장회절부화유위기당위위교격과정자통제지시향인유지기효우기온중자무득이칭언자복장어鼎巖江상거伯夷산어若干리정묘신축십세손중회소진陳본말가증료조판서시정절[주:장릉지]함안군서山西書院사조려원호김시습이맹전성담수남효온우육현세칭생육신
의미
조려는 단종조 급제생으로 사대 명망이 높았으나, 을해년 이후 과전을 폐지하고隐居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효도와 우애로 동리에서 칭송받았으며, 뽕나무와 삼 농사에만 마음을 두고 시를 지었다. 김시습과 사상을 함께하여 순수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였다. 사후에 十세손 重晦가其事를 아뢰어 吏曹判書靖節으로 추증받았으며, 김시습 등 여섯 충신과 함께 서원에 제향되었다. 이들은 후대에 생육신이라 불린다. 생육신은 단종을 배제한 세조에 대항하여 항거한 여섯 신하로, 조려·원호·김시습·이맹전·성담수·남효온이 있다.
원문
字主翁號漁溪咸安人端宗癸酉進士士望甚重一日揖諸生歸自乙亥遂廢科擧杜門不出內行純備家甚貧養親極滋味喪祭一遵朱文公家禮辨色而作正襟讀書客至所談惟桑麻其見於詩者往往採薇遺旨遯世無悶之志與金時習同調渾璞藏晦絶浮華惟爲其所當爲矯激過情者痛除之是以鄕人惟知其孝友其蘊于中者無得以稱焉自卜藏於鼎巖江上距伯夷山若干里正廟辛丑十世孫重晦疏陳本末加贈吏曹判書諡靖節[주:莊陵志]咸安郡西山書院祀趙旅元昊金時習李孟專成聃壽南孝溫右六賢世稱生六臣也
엔티티 후보
- person: 조려 / 趙旅, confidence=0.98
- person: 김시습 / 金時習, confidence=0.98
- person: 원호 / 元昊, confidence=0.95
- person: 이맹전 / 李孟專, confidence=0.95
- person: 성담수 / 成聃壽, confidence=0.95
- person: 남효온 / 南孝溫, confidence=0.95
- person: 중회 / 重晦, confidence=0.9
- place: 함안 / 咸安, confidence=0.98
- place: 백夷산 / 伯夷山, confidence=0.85
- place: 서산서원 / 西山書院, confidence=0.9
- place: 정암강 / 鼎巖江, confidence=0.88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7
- term: 생육신 / 生六臣, confidence=0.97
- work: 주문공가례 / 朱文公家禮, confidence=0.95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0.98
불확실한 어휘
- 鼎巖江
- 伯夷山의 실제 위치와 거리 表示 여부
- 咸安郡西山書院의 구체적 건립 연대와 소속 서원의 정확한 명칭
(단종조)권절
- 기사 ID:
B9C^2_001_030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0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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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2:59:37.79533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07
한글 번역
,字는 단조이고 호는 율정, 또 다른 호는 취옹이다. 안동 사람으로서 정랑 심자의 아들이자, 고려 시대 정승 왕휴의 현손이다. 어릴 때부터 기이한 용모가 있었고 팔臂의 힘이 매우 뛰어났다. 남要求和 함께 이름이 알려졌으며, 여러 서적을 두루 통달했다. 세종 정묘년(1467)에 문과에 급举하여, 임금이 그가 문武를 갖춘 인재임을 알고 궁술과 마술을 익히게 한 뒤, 특별히 사복시直長을授했으며,集賢殿 교리로 선발되었다. 세조가 태상황还没등극할 시절 자주 그 집을 찾아와 큰 일을 비밀스럽게 알렸으나, 권절은 문둥이를 가장하며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출仕與否를 종자 안에게 의논하고, 자신의才器를 감추는韜晦之术를 폈으며, 몸을 가지는法和를 갖지 않고 행동했다. 즉등극한 뒤 그 인재가 한스럽게 여겨僉知中樞府事로陞用하고禁兵을 관하게 하였으나, 미친 것을 가장하며 命令을 따르지 않았다. 사람을 볼 때마다 반드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국가태평 성주만년’이라고 하니, 이로 평생을 마쳤다. 숙종 갑신년에贈吏曹判書하고 시호는忠肅이다.
독음
자단조호율정일호취옹 안동인 정랑심자 고려정승왕휴현손 유유기상려력절인 여남제제명 박통군서 세종정묘문과 상지기유문무전재 비습궁마 특수사복사이직장 선위집현전교리 세조잠용 여림기제 밀유이대사 절양롱부감답 수모출처어기종자안 내위도혜지술 지신응사 불위검속 상즉위 희기지재 첩첨知중추부사 사전금병 양광 불응명 건인 구계수일왈국가태평 성주만년 이차종기신 숙종갑신 증리조판서 시충숙
의미
고려 말~조선 전기의 인물 권절의 전기이다. 세종 정묘년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의 측근으로 발탁되었으나, 왕권 교체기에 자신을 감추는韜晦之术를 실천하며 미친 것을 가장하고‘국가태평 성주만년’이라고 만세를 부르며 생을 마감했다. 결국 숙종대에 추증받아忠肅의 시호를 받았다. 정치적 변혁기에 자신을保全한 특이한 인생 궤적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원문
字端操號栗亭一號醉翁安東人正郞審子高麗政丞王煦玄孫幼有奇相膂力絶人與南怡齊名博通群書世宗丁卯文科上知其有文武全才俾習弓馬特授司僕寺直長選爲集賢殿校理世祖潛龍屢臨其第密諭以大事節佯聾不敢答遂謀出處于其從子晏乃爲韜晦之術持身應事不爲檢束上卽位惜其才器擢僉知中樞府事使典禁兵佯狂不應命見人輒稽首曰國家太平聖主萬年以此終其身肅宗甲申贈吏曹判書諡忠肅[주:莊陵志]
엔티티 후보
- person: 권절 / 權節, confidence=1.0
- person: 남怡 / 南怡, confidence=0.9
- person: 왕흡 / 王煦, confidence=1.0
- person: 안 / 晏, confidence=0.95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1.0
- office: 사복시직장 / 司僕寺直長, confidence=0.95
- office: 집현전교리 / 集賢殿校理, confidence=0.95
- office: 첨知중추부사 / 僉知中樞府事, confidence=0.95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work: 장릉지 / 莊陵志, confidence=1.0
- term: 도혜지술 / 韜晦之術, confidence=0.95
- term: 잠용 / 潛龍, confidence=0.9
- term: 현손 / 玄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膂力의 정확한 한자 의미
- 檢束의 구어적 해석
- 稽首의 구체적 예법 동작
(단종조)원주
- 기사 ID:
B9C^2_001_031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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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3:00:21.84399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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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원주 출신의 판사 학양간공(良簡公) 창명의 손자로, 관직이 직장에 이르렀다. 장릉에서 물러난 후에는 산수 사이를 떠돌았다. 꿈에서 산사에出游한다는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산사는 여전히 예전의游과 같다. 白雲과 红樹가 허虚한 누정을 둘러싸고, 스님이 탑 아래 삼경달을 타고 돌아오고, 白鹭가 냇가边上에 한 줄기 가을을 짓고 서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아마 우의를 두고寓意한 것이라 할 것이다. 하늘이 준자질이 순수하고 담박하여, 자신을 대해서는 겸손하고, 사물을 대해서는 너그럽다는 평이 있었다.
독음
원주인판사학양간공창명손관지직장장릉손위주방랑산수간유몽유산사시왈산사여란사구유백운홍수요허루승귀탑하삼경월로립제계변일점추개유의야천자쥐연처기이겸대물이서
의미
조선 초기 원주 출신 관료 학창명의 후손으로, 직장에 이르렀으나 장릉에서 물러났다. 이후隐逸生活으로山水 사이를 떠돌며 시를 짓고, 金安國이 지은 묘지에서 타고난 자질이 담백하고 待人处事가 겸손하고 너그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문은 현실逃离와隐逸 사상을 담고 있다.
원문
原州人判事學子良簡公昌命孫官至直長莊陵遜位柱放浪山水間有夢游山寺詩曰山寺依然似舊遊白雲紅樹繞虛樓僧歸塔下三更月鷺立溪邊一點秋蓋寓意也[주:金安國撰墓誌]天資粹然處己以謙待物以恕[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학양간공창명 / 学良簡公昌命, confidence=0.95
- person: 학주 / 学柱, confidence=0.7
- person: 금안국 / 金安國, confidence=0.98
- place: 원주 / 原州, confidence=0.98
- place: 장릉 / 莊陵, confidence=0.75
- office: 판사 / 判事, confidence=0.9
- office: 직장 / 直長, confidence=0.9
- work: 몽유산사시 / 夢游山寺詩,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장릉의 위치와 주인공과의 관계(단종 양위 관련 가능성 여부)
- 학주의 정확한 세자 명칭 및 가계 세부 연결
- 직장 관직의 정확한 직무 범위
(단종조)송간
- 기사 ID:
B9C^2_001_031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1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18:16:50.80964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15
한글 번역
(이 사람이) 호를 서재뇌산인이라 하였다. 을해년에 명을 받아 호남을 순찰安抚하다가 돌아가던 길에 단종이 내선禅位한 소식을 듣고, 이에 뇌산으로 돌아가 세속의 일을 멀리하고 문을 닫고 고요히 지냈다. 단종이 붕天하자 산으로 들어가 통곡하며 복상服喪하였다. 이에 따라 광류를 가장하여 흥양馬輪村에 숨겨 십여 년 동안 머물렀다. 술을 놓고 울며 걸 다니니 산의 늙은이들과 들의 원로들이 모두 이를 이상히 여겼다. 유언으로 말년을 낙안군薇原에 장사 지낼 것을 명하였다.
독음
호 서재뇌산인을하년 수명순무호남장환도문단종내선인지향뇌산병절세사문문자정단종빈천입산통곡복상수양광은어흥양마륜춘십여년종주행곡산수야로개괴지의명장우락군지薇원
의미
조선 단종 치세의 신하 宋侃의 행적을 적은 기사다. 을해년에 호남 순찰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단종의 내선退位 소식을 듣고 뇌산으로 돌아가 세속을 끊었다. 단종이 붕어하자 산에서 통곡하며 복상服喪하였다. 이후 광류를 가장하여 흥양馬輪村에서 십여 년간 숨어 살며 술을 마시며 울부짖는 이상한 행동을 하였다. 그가 남긴 유언에 따라 낙안군薇原에 안장되었다. 이는 단종 복위를 지원하는 인사들이世事를 버리고 은거한 흔적으로 해석된다.
원문
號西齋礪山人乙亥受命巡撫湖南將還道聞端宗內禪因向礪山屛絶世事杜門自靖端宗賓天入山痛哭服喪遂佯狂隱於興陽馬輪村十餘年縱酒行哭山叟野老皆怪之遺命葬于樂安郡之薇原[주:行狀]
엔티티 후보
- person: 송간 / 宋侃, confidence=1.0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1.0
- place: 뇌산(강화) / 礪山, confidence=0.9
- place: 호남 / 湖南, confidence=1.0
- place: 흥양마륜촌 / 興陽馬輪村, confidence=0.8
- place: 낙안군薇원 / 樂安郡薇原, confidence=0.9
- term: 내선(물러나位를 내어줌) / 內禪, confidence=0.9
- term: 빈천(임금이 죽음) / 賓天, confidence=0.9
- term: 문문(문을 닫고 물러남) / 杜門, confidence=0.9
- term: 서재(호) / 西齋,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馬輪村의 정확한 위치와 현재 지명 대응
- 薇原의 정확한 위치
- 腦山이 강화도 뇌산과 같은지 여부
(단종조)이수형
- 기사 ID:
B9C^2_001_031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1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18:16:52.29070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16
한글 번역
우계인 문절공 김淡의 사위로서, 벼슬은 평시서령이었다. 단종이 왕위를 내려놓았을 때,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벼슬을 버리고 융천으로 돌아가 한 칸 집을 짓고 능려궁이라 이름하였으며, 다만 북쪽 창문만을 내어 앉으면 반드시 북쪽을 향하였다. 이는 영월이 융천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평생 수도에 들어가지 않았고, 죽었을 때 아흔네 살이었다.
독음
우계인 문절공 김탄의 딸의 남편이다. 벼슬은 평시서령이었다. 단종이逊位할 때 나이 스물한 살이었으니, 벼슬을 버리고 융천으로 돌아가 한 개의 방을 지어 능려궁이라 이름하고, 다만 북쪽 창문만 설치하여 앉으면 반드시 북쪽을 향하였다. 이는 영월이 융천의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종신토록 경성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죽었을 때 나이 아흔네 살이었다.[주: 장릉속지]
의미
단종조 시대 평시서령을 지낸 우계인 김淡의 사위가 단종이逊位한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 융천으로 돌아가 94세까지 살아가는 내용이다. 그는 능려궁이라는 집을 짓고 북쪽 창문만 설치하여 앉으면 항상 북쪽을 향했는데, 이는 그가 단종을 끝까지 그리워한 효절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융천의 북쪽에 영월이 있어 단종이 流配된 곳을 직접 바라볼 수 있었으며, 종신 수도에 가지 않은 것은 불로이사를 뜻하는 것으로 왕명에 대한 충절을 보여준다.
원문
羽溪人文節公金淡女壻也官平市署令端宗遜位時年二十一棄官歸榮川築一室名曰拱北只設北牖坐必向北蓋寧越在榮川北也終身不入京卒年九十四[주:莊陵續志]
엔티티 후보
- person: 우계인 / 羽溪人, confidence=0.95
- person: 김淡 / 金淡, confidence=0.95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0.99
- place: 융천 / 榮川, confidence=0.95
- place: 영월 / 寧越, confidence=0.95
- place: 경성 / 京, confidence=0.9
- office: 평시서령 / 平市署令, confidence=0.9
- work: 능려궁 / 拱北, confidence=0.85
- term: 슨위 / 遜位, confidence=0.95
- term: 북유 / 北牖,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拱北을 능려궁으로 해석한 것, 北牖를 단순히 북쪽 창문으로 해석한 것, 문절공의 구체적 신원
(단종조)서한정
- 기사 ID:
B9C^2_001_031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1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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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1:12:31.00912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17
한글 번역
달성 사람은 낙선이 덕을 닦고 행실을 갈고하여 세상에 존중받았다. 일찍이 진사에 중시하여 태학에 유학하였다. 단종이 물러나자 그날 남쪽으로 돌아가 집안을 이끌고 소백산 아래 미갈봉에 숨으니 스스로 호를 돈암이라 하였다. 문을 닫고 단정히 앉아 세상사를 버리고 날마다 경학으로 스스로 즐기어 마침내 그곳에서 세상을 마감하였다. 정조 무신년에持平을 증贈하였다. [주: 장릉속지]
독음
달성인낙선저행위세소중조중진사유태학단종손위즉일남환혜가가언어소백산미갈봉하자호돈암문단좌유기세사일일이경학자우수종로언정묘무신축충정
의미
조선 단종(端宗) 때의 인물 낙선(樂善)에 대한 기록이다. 낙선은 달성 출신으로 학문적 수양이 뛰어나 세상에 존중받았으며, 일찍이 진사에 합격하여 태학에 유학하였다. 단종이 왕위를逊位하자 그날 바로 남쪽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소백산 미갈봉에 숨겨졌다. 스스로 돈암(遯菴)이라 호를 지고 문을 닫고 고요히 앉아 세상사를 버리며 매일 경학으로 스스로 즐기어 결국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후대 정조 무신년(1778)에持平 관직을 증직 받았다. 단종의逊位라는 비극적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겪은 지식인의隐居生活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達城人樂善砥行爲世所重早中進士游太學端宗遜位卽日南還携家隱于小白山薇蕨峯下自號遯菴杜門端坐遺棄世事日以經學自娛遂終老焉正廟戊申贈持平[주:莊陵續志]
엔티티 후보
- place: 달성 / 達城, confidence=1.0
- person: 낙선 / 樂善, confidence=1.0
- person: 서한정 / 徐翰廷, confidence=0.7
- place: 태학 / 太學, confidence=1.0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1.0
- place: 소백산 / 小白山, confidence=1.0
- term: 손위 / 遜位, confidence=1.0
- term: 저행 / 砥行, confidence=1.0
- term: 분기 / 持平, confidence=1.0
- work: 장릉속지 / 莊陵續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낙선이 달성인樂善인지 徐翰廷의 호칭인지 확신 부족
- 小白山과 薇蕨峯의 정확한 위치 미확인
(단종조)윤혜
- 기사 ID:
B9C^2_001_031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1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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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7:19:35.56825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18
한글 번역
남원 사람으로 감찰사 임지의 손자이다. 세종조에 문과에 합격하였고, 단종이 왕위를 물러났을 때 예조 정랑이 되었다가 관직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갔다. 임종에 이르러 충과 효라는 두 글자를 써서 아들에게遗留하였다. 삼촌 임정의 딸이 권완에게 시집가서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상왕의 첩宮女가 되었다. 권완이 죽자, 윤譓이 밤에 몰래 신음을 벗고 강가로 도망쳐 이에 가족을 데리고 호남 장성地方에 숨어 살았다.
독음
남원인 감찰사 임지의 손자, 세종조 문과, 단종逊位할 때 예조 정랑이 되어 관직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갔다. 임종에 이르러 충효 이자를 써서 아들에게 주었다. 대동운옥. 삼촌 정의의 딸이 권완에게 출가하여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상왕의 첩이 되었다. 완이 죽자,譓가 밤에 신음을 벗고 강가로 도망쳐 이에 가족을 이끌고 호남 장성에 숨었다.
의미
윤譓는 남원 출신으로 세종조 문과에 합격하고 단종조에 예조 정랑을 지냈다. 단종이 퇴위하면서 관직을 버리고 산으로 은거했으며, 임종에 이르러 충과 효의 가르침을 아들에게 남겼다. 그의 삼촌의 딸은 권완에게 출가하여 상왕의 첩이 되었고, 권완이 죽자 윤譓가 밤에 신호를 벗고 강가로 도망쳐 가족을 이끌고 호남 장성에 숨었다.
원문
南原人觀察使臨之孫世宗朝文科端宗遜位時爲禮曹正郞棄官入山臨終書忠孝二字付其子[주:大東韻玉]叔父之定有女適權完生女爲上王媵御完之死譓侵夜脫履遁之江上因挈家隱湖南長城
엔티티 후보
- place: 남원 / 南原, confidence=1.0
- person: 윤譓 / 尹譓, confidence=1.0
- person: 임 / 臨, confidence=0.9
- office: 감찰사 / 觀察使, confidence=1.0
- person: 권완 / 權完, confidence=1.0
- office: 예조 정랑 / 禮曹正郞, confidence=1.0
- place: 호남 장성 / 湖南長城, confidence=0.9
- person: 상왕 / 上王,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脱履遁之江上의 정확한 행동 양상
- 大東韻玉의 구체적 저자·성격
(단종조)이축
- 기사 ID:
B9C^2_001_031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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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36:51.70622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19
한글 번역
자(字)는 윤보이고 한산(韓山) 출신으로, 문정공 섦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 숙야(叔野)의 아들이다. 계유년에 황해도관찰사로 되었다. 9월에 관직을 버리고 고양의 마을 집으로 돌아가서, 20여 년 동안 담담하고 한가하게 양성(養性)하며 세상에서 출세하기를 다시 바라지 않았다. [주: 묘표] 아들塤(손)은 자(字)가 화백(和伯)이고, 효령대군 보의 딸과 혼인하였다. 녹삼찬(錄三贊)에 오르고, 성종조에佐理한 공으로 한성군(韓城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효昭(孝昭)이다.塤의 아들惟淸(유청)은 문과에 급제한 사람으로 좌의정(左議政)을 역임하였다. [주: 국조방목]
독음
자 윤보 한산인 문정공 섦증손 목사 숙야자 계유위 황해도관찰사 구월 기관 귀 고양촌사 염한 양성 이십 여년 불복 희진 어세 유 자 화백 절차 영대군 보녀 음 삼찬 녹 성종조 좌리 공봉 한성장 호 효소 선 자 유청 문과 좌의정
의미
조선 단종(端宗)조 대신 李蓄(이자)의 행적을 적은 기사이다. 李蓄은 문정공 섦(文靖公穡)의 현손으로, 관직에 나아가 황해도관찰사가 되었으나 부임 후 얼마 되지 않아 9월에 사직하고 고양의 시골로 돌아갔다. 이후 20여 년 동안 관직을 구하지 않고 은거하며 양성하였다. 묘표에 의하면 아들塤(손)은 화백(和伯)이라는 자를 가지고 있었고, 효령대군 보의 딸과 혼인하였다. 녹삼찬에 오르고 성종조佐理 공으로 한성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효昭(孝昭)였다.孫의 아들 李惟淸은 문과에 급제하여 좌의정까지 오른 인물로, 国朝榜目에서 그 이름이 확인된다. 본문은 단종조 인물 李蓄의 가문과 후손의 관직 활동, 시호 등을 수록한 계열 기록이다.
원문
字閏甫韓山人文靖公穡曾孫牧使叔野子癸酉爲黃海道觀察使九月棄官歸高陽村舍恬閒養性二十餘年不復希進於世[주:墓表]有子塤字和伯娶孝寧大君補女蔭參贊錄成宗朝佐理功封韓城君諡孝昭塤子惟淸文科左議政[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자 / 李蓄, confidence=0.95
- person: 윤보 / 字閏甫, confidence=0.9
- person: 목사 숙야 / 牧使叔野, confidence=0.85
- person: 화백 / 字和伯, confidence=0.95
- person: 이유청 / 李惟淸, confidence=0.95
- place: 한산 / 韓山, confidence=0.8
- place: 고양촌사 / 高陽村舍, confidence=0.9
- place: 황해도 / 黃海道, confidence=0.95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85
- office: 관찰사 / 觀察使, confidence=0.95
- office: 삼찬 / 參贊, confidence=0.9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0.95
- person: 효령대군 보 / 孝寧大君補, confidence=0.9
- title: 문정공 / 文靖公, confidence=0.75
- title: 한성군 / 韓城君, confidence=0.95
- work: 묘표 / 墓表,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 term: 좌리공 / 佐理功,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문정공 섦의 구체적 신분(관직/시호)과 현손(玄孫)의 정확한 세대 수
- 牧使叔野의 어순과 문법 구조
- 蔭參贊錄의 정확한 용어 해독
(단종조)홍연
- 기사 ID:
B9C^2_001_032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2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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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1T18:17:22.65456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20
한글 번역
자(字)는 자원이고, 남양 사람이다. 중군사정(중군사감을 역임)을 지냈다. 척자의 아들이다. 세종조 기축(1444)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집의(집의관)에 오랐다. 단종이 양위한 뒤, 세상에서 발을 빼고 평생을 숨어 살았다. 문정공 김자지가 그의 외조부였다.[주:국조방목] 검력손을 따라갔는데, 자(字)는 길부이고, 호는 유국재이다. 세종 기미(1439)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동지성균사를 역임했다. 저서에 《유충음집》이 있다.
독음
씨 자원 남양인 중군사정 척자 세종 기축 문과 집의 단종 준위 돈적 종신 문정공 김자지 내 연지 외조부야[주:국조방목] 종견경손 씨 길부 호 유국재 세종 기미 문과 동지 성균사 유충음집
의미
홍연은 남양 출신으로 세종조 기축년(1444)에 문과에 합격하여 집의관에 오르고, 이후 단종 양위 후 관직을 버리고隐居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의 외조부는 문정공 김자지이다. 김자지의 자는 길부, 호는 유국재이며, 홍연보다 먼저 세종 기미년(1439)에 합격하여 동지성균사를 지냈다. 홍연은 문예적才學으로 《유충음집》을 저술한 관리였다.
원문
字子源南陽人中軍司正陟子世宗甲子文科執義端宗遜位遯跡終身文靖公金自知乃演之外祖也[주:國朝榜目]從見敬孫字吉甫號友菊齋世宗己未文科同知成均事有蟲吟集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연 / 洪演, confidence=0.95
- person: 자원 / 子源, confidence=0.95
- person: 홍척 / 洪陟, confidence=0.8
- person: 김자지 / 金自知, confidence=0.95
- person: 길부 / 吉甫, confidence=0.95
- person: 검력손 / 見敬孫, confidence=0.7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0.95
- office: 중군사정 / 中軍司正, confidence=0.9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0.95
- office: 동지성균사 / 同知成均事, confidence=0.95
- work: 유국재 / 友菊齋, confidence=0.95
- work: 유충음집 / 有蟲吟集,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陟子(홍연의 아버지 홍척과의 관계가文中 형식상 직접 명시되지 않음)
- 從見敬孫(검력손을 따랐다는 표현의 구체적 의미)
(단종조)김한계
- 기사 ID:
B9C^2_001_032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2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37:24.34617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21
한글 번역
(김한계는) 의성 태생으로, 현감(현감을 지낸 사람) 영명의 아들이며, 고려 때 전서(관직명)를 지낸 거두의 증손이다. 세종 무오년(1458년)에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급제하여 직제학에 올랐다. 세종대왕이 승하한 뒤 세조대왕이 즉위하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벼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장릉속지에 실려 있다.) 같은 문중의 형제인 김섭은 태조 경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에 이르렀다. (국조방목에 실려 있다.)
독음
의성인 현감 영명자 고려 전서 거두 증손 세종 무오 생원 문과 직제학 세종 수선 사병 귀 부복사 [주:장릉속지] 족형섭 태조 병자 문과 대사성 [주:국조방목]
의미
조선 초기 문신 김한계의 가계와 이력이다. 의성에서 현감 영명의 아들로 태어나 고려 때 벼슬한 조상 거두의 증손이다. 세종 무오년(1458)에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급제하여 직제학에 올랐다. 그러나 세조 즉위 직후 병을 칭송하고 벼슬을 그만두어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이는 장릉속지에 기록되어 있다. 같은 문중 형제 김섭은 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까지 오른 사람으로, 국조방목에 실려 있다.
원문
義城人縣監永命子高麗典書居斗曾孫世宗戊午生員文科直提學世祖受禪謝病歸不復仕[주:莊陵續志]族兄涉太祖丙子文科大司成[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한계 / 金漢啓, confidence=0.95
- person: 영명 / 永命, confidence=0.9
- person: 거두 / 居斗, confidence=0.8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0.95
- person: 김섭 / 金涉, confidence=0.9
- place: 의성 / 義城, confidence=0.9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
- office: 전서 / 典書, confidence=0.85
- office: 직제학 / 直提學, confidence=0.85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0.9
- work: 장릉속지 / 莊陵續志, confidence=0.8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족형 / 族兄,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장릉속지·국조방목의 상세 편찬년대
- 直提學의 정확한 관품
- 田監永命子의 田監이 현감의 오기인지 독립 표현인지
(단종조)이견기
- 기사 ID:
B9C^2_001_032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2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21:13:20.26425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22
한글 번역
자호는 피휴, 호는 남정. 성주 태생. 종제 수자의 아들이며 영상 직稷의 종자. 세종 무자(1439)년에 문과에 급제. 호조정서를 지내고 단종 때 벼슬을 내려놓음. 을해(1455)년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음. 장자로서 존경을 받음. 죽은 뒤 시호를 안성이라 함.
독음
자 피휴호 남정성주인 종제 수자 영상 직稷의 종자 세종 계해 문과 급제 호조정서 단종 때 퇴귀 을해 수차 천거되어 나아가지 아니하며 장자로 존칭됨 졸하여 시호 안성
의미
조선 세종 무자년 문과 급제자 이건기는 호조정서를 지내고 단종 치세에 벼슬을 내려놓은 뒤, 세조 즉위 직후인 을해년에 수차 천거되었으나 응하지 않았다. 장자의徳으로 알려졌으며 졸호는 安成이다. 「국조방목」에 수록된 인물.
원문
字匹休號枏亭星州人摠制穗子領相稷從子世宗己亥文科戶曹判書端宗時退歸乙亥屢徵不起以長者見稱卒諡安成[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건기 / 李堅基, confidence=1.0
- person: 직 / 稷, confidence=0.9
- person: 수자 / 穗子, confidence=0.9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office: 종제 / 摠制, confidence=1.0
- office: 호조정서 / 戶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종자(조카) / 從子, confidence=0.9
- term: 자(자호) / 字, confidence=0.8
- term: 호(문호) / 號, confidence=1.0
- term: 퇴귀(관직을 내려놓고 귀향) / 退歸, confidence=0.9
- term: 졸호(죽은 뒤의 시호) / 卒諡, confidence=1.0
- term: 장자(덕망 있는 어른) / 長者, confidence=1.0
- term: 수차 천거되어 나아가지 않음 / 屢徵不起,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字匹休의 匹休가 字(자호)로 해석되는지 명확하지 않음
- 領相稷 從子의 문장 구조가 불확실하여 직稷의 종자(조카)인지 추가 확인 필요
- 文科 直拜과 같은 특정 급제 방식의 의미 여부
(단종조)안상계
- 기사 ID:
B9C^2_001_032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2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18:17:25.94786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23
한글 번역
(단종(端宗) 치세) 호(號)는 전은(田隱), 죽산인(竹山人)이며, 연창위(延昌尉)孟聃子가 관직은 돈녕도정(敦寧都正)이었다. 단종 초기에 퇴거하여 저자도(楮子島)에 거주하였다.金係錦[주: ‘係綿’이라고도 쓴다]은 호(號)가 육일(六一)이고, 금해(金海) 사람이다. 단종 갑술(145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직임은持平(이)었고, 을해(1455)년 이후 벼슬하지 않았다. 文天鳳은 감천(甘泉) 사람이며, 관직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이고, 광(狂)을 가장하여 벼슬하지 않았으며, 함산(咸山)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金自仁은 나이 십이 살에 왕에게 손위(遜位)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自仁이 권력의 실권을 쥔 정인지(鄭麟趾)의 의견을 보고 가슴이 불꽃처럼 타오르렀다.
독음
호전은죽산인연창위맹담자관돈녕도정단종초퇴거저자도금계금[주:일작계면]호육일금해인다종갑술文科持平을의해후불사[주:국조사목]문천봉감천인관한성판윤양광불사볌사함산[주:추어수록]금자인년십이상왕손위자인인권남정인지지의흥여화염[주:추강냉화]
의미
단종조 시대 인물 관련 기사를 수록하였다. 첫째,孟聃子는 단종 즉위 초에楮子島로 퇴거하여隐居한 인물이다. 둘째,金係錦은 금해 출신으로 1454년 문과 합격 후持平에 올랐으나 1455년 이후 벼슬을 떠났다. 셋째,文天鳳은 한성판윤을 지내고 광을 가장하여 벼슬을 끊었으며, 함산으로 유배되어 사망하였다. 넷째,金自仁은 열두 살의 나이에 단종에게 양위 상소를 올렸으며, 권신을 행사하던 정인지의 논의에 격분한 사연을 가을강냉화에서 전한다. 이 기사는 단종 즉위와 그에 따른 정변, 그리고 왕위 찬탈에 연루된 인물들의 행적을 담고 있다.
원문
號田隱竹山人延昌尉孟聃子官敦寧都正端宗初退居楮子島[주:樗湖隨錄]金係錦[주:一作係綿]號六一金海人端宗甲戌文科持平乙亥後不仕[주:國朝榜目]文天鳳甘泉人官漢城判尹佯狂不仕貶死咸山[주:樗湖隨錄]金自仁年十二上王遜位自仁見權擥鄭麟趾之議胸如火焰[주:秋江冷話]
엔티티 후보
- person: 맹담자 / 孟聃子, confidence=0.95
- person: 김계금 / 金係錦, confidence=0.85
- person: 문천봉 / 文天鳳, confidence=0.95
- person: 김자인 / 金自仁, confidence=0.95
- person: 정인지 / 鄭麟趾, confidence=0.95
- place: 저자도 / 楮子島, confidence=0.85
- place: 금해 / 金海, confidence=0.9
- place: 감천 / 甘泉, confidence=0.85
- place: 함산 / 咸山, confidence=0.85
- office: 持平, confidence=0.95
- office: 돈녕도정 / 敦寧都正, confidence=0.9
- office: 연창위 / 延昌尉, confidence=0.9
- office: 한성판윤 / 漢城判尹, confidence=0.95
- work: 추어수록 / 樗湖隨錄, confidence=0.95
- work: 추강냉화 / 秋江冷話, confidence=0.95
- work: 국조사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金係錦의 독음(계금 또는 계면 가능, 주에서 ‘係綿’으로도 썼음을注明)
- 號田隱竹山人의 구두 해석(田隱·竹山人이 별개의 인물인지 동일 인물 내 호와 출신지인지 불분명)
(단종조)신말주
- 기사 ID:
B9C^2_001_032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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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자楫이고 호(號)는 귀래정이다. 고령 사람이다. 숙주의 아우이다. 단종 때 갑술년에 태어났다. 생원·문과에 합격하여 대사감을 지내고 여러 벼슬을 승进清顯한 관직에 이르렀다. 성품이 담담하고 관직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단종이 물러난 후 숙주가 정권을 잡았을 때, 말주는 순창으로 물러나山水로 스스로를 즐겼다. 조정이 강력히 기용하려 하지 않았고, 세종이 특별히 전주부윤에 임명했으나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주:대동운옥국조방목] 아우 송주는 세종 정축년 문과 장령, 안동부사를 지냈다. [주:국조방목] 종제자橋는 자(字)가惠翁이고, 감찰을 지냈다. 체자는 문종 경오년 문과에 합격하여 사간이 된 후 눈이 먼 사람이 되었다. [주:동상]
독음
자 자楫호 귀래정 고령인 숙주제 단종갑술생원문과 대사감력려 청현성 담탄불락자동 단종손위후 숙주당국 말주퇴거 순창 이 산수자오 조정불위강기 세종특배 전주부윤 사병불부[주:대동운옥국조방목]제 송주 세종정축문과 장령 안동부사[주:국조방목]종제 자교 자혜옹 감찰 체자 문종경오문과 사간후위맹인[주:동상]
의미
신말주는 단종 때 갑술년에 태어난 고령 출신으로, 문과에 합격하고 대사감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나 성품이 담담하여 관직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단종이 양위한 후 숙兄 숙주가 권력을 잡았으나, 말주는 정치를 떠나 순창에 은거하며山水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세종이 전주부윤을 제수했으나 병을 칭탁으로 사양했다. 아우 송주와 종제자橋도 각각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진출했으나, 자橋는 후에 실명했다.
원문
字子楫號歸來亭高靈人叔舟弟端宗甲戌生員文科大司諫歷莅淸顯性恬淡不樂仕進端宗遜位後叔舟當國末舟退居淳昌以山水自娛朝廷不爲強起世祖特拜全州府尹謝病不赴[주:大東韻玉國朝榜目]弟松舟世祖丁丑文科掌令安東府使[주:國朝榜目]從弟子橋字惠翁監察梯子文宗庚午文科司諫後爲盲人[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신말주 / 申末舟, confidence=1.0
- person: 자楫 / 子楫, confidence=1.0
- person: 신숙주 / 叔舟, confidence=1.0
- person: 신송주 / 松舟, confidence=1.0
- person: 신자교 / 子橋, confidence=1.0
- person: 혜옹 / 惠翁, confidence=1.0
- place: 고령 / 高靈, confidence=1.0
- place: 순창 / 淳昌,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work: 귀래정 / 歸來亭, confidence=1.0
- office: 대사감 / 大司諫, confidence=1.0
- office: 부윤 / 府尹, confidence=1.0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office: 감찰 / 監察, confidence=1.0
- office: 사간 / 司諫,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청현 / 清顯, confidence=0.9
- term: 력려 / 歷莅,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莅(관직에 재임하다, 고전 한문의 일반적 용어이나 고유 불확실성 없음)
- 淸顯(청현, 요직 일반을 가리키는 표현)
- 從弟(종제, 동족 중 근친에 해당하는 아우)
(단종조)민심언
- 기사 ID:
B9C^2_001_032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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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여흥 사람으로, 관직은 형조삼반에 이르렀다. 처음으로 태조의 시종으로 일할 때, 효도의 직을 베풀어 정직하고 굽히지 아니한 뜻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여(直不阿)鄭煒에게 시호를 올릴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뜻에 어긋나서 직을 그만두고 순천에 유배되었다. 세조가 즉위하자 심사언은 개성留守의 벼슬을 버리고 배를 타고 서강을 거쳐 뒤따라 통진의 봉상리로 돌아왔다. 조정에서 형조삼반으로 다시 등용을 청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아흔여섯을 훌쩍 넘겨 세상을 떠났다. [주] 『송자대전』. 아들 등원은 삼군이었고, 등원의 아들 정은 자가 자간으로, 문종 경오(년)에 생원文科에 합격하여 판결사를 지냈다. 등원의 아우 충원은 을義執로 벼슬이 낮았고, 충원의 아들 수는 세조 기묘(년)에文科에 합격하여 벨슬에 올랐으나 나중에 사옥으로 인해 유배되었다. 정의 아들 상안은 자가 국서이고, 성장 경자(년)에文科에 합격하여 좌윤이 되었다. [주] 『국조방목』.
독음
여흥인 관지형조삼반 시사태조상정의용희계시이직불아오지 유류순천세조즉위 심사언以来성수유 수관승주 종후서강 귄통진지봉상리 조정以来형조삼반정 불기 연구십여종[주:송자대전] 자등원 삼군 등원자정 자자간 문종경오생원문과 판결사 등원제충원 일집의 충원자수 세조기묘문과 정 후以来사옥 좌 정치자상안 자국서 성장경자문과 좌윤[주:국조방목]
의미
이 기사는 여흥闵氏의 인물 심사언과 그 가문의 관직적 행적을 기록한다. 심사언은 태조(단종) 때 朝議에서 정직하게 의견을 올렸다가 뜻에 어긋나 유배되었다가, 세조 즉위 후 개성留守에서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조정이 다시 기용을 청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아흔여섯 이상의 장수를 살았다. 그의 후손들은生員文科 시험에 합격하여 판결사, 좌윤 등 여러 벼슬에 올랐다. 특히 일부는史獄으로 인해 유배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당시 정치적 사건의 여파를 보여준다.『宋子大全』과『國朝榜目』이 참고 문헌으로 딸려 있다.
원문
驪興人官止刑曹參判始事太祖嘗議鄭煕啓諡以直不阿忤旨流于順天世祖卽位審言以開城留守棄官乘舟從後西江歸通津之鳳翔里朝廷以刑曹參判徵不起年九十餘終[주:宋子大全]子澄源參軍澄源子貞字子幹文宗庚午生員文科判決事澄源弟沖源逸執義沖源子粹世祖己卯文科正後以史獄坐貞子祥安字國瑞成宗庚子文科左尹[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민심언 / 閔審言, confidence=0.98
- person: 정휘 / 鄭煒, confidence=0.85
- person: 등원 / 澄源, confidence=0.95
- person: 충원 / 沖源, confidence=0.95
- person: 상안 / 祥安, confidence=0.95
- place: 여흥 / 驪興, confidence=0.98
- place: 순천 / 順天, confidence=0.97
- place: 개성 / 開城, confidence=0.97
- place: 통진 / 通津, confidence=0.95
- place: 봉상리 / 鳳翔里, confidence=0.92
- office: 형조삼반 / 刑曹參判, confidence=0.97
- office: 개성수유 / 開城留守, confidence=0.95
- office: 판결사 / 判決事, confidence=0.95
- office: 좌윤 / 左尹, confidence=0.95
- work: 송자대전 / 宋子大全, confidence=0.9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5
- term: 文科(문과) / 文科, confidence=0.97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始事太祖嘗議鄭煒啓諡以直不阿忤旨流于順天句의 구두점과 의미 구조가 불확실하여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
- 純源子粹의 ‘粹’를 원문상 ‘粹’로 읽었으나 전사 오류 가능성 있음
- 世祖己卯文科正후以史獄坐의斷句와 사건 내용이 불확실함
(단종조)조완규
- 기사 ID:
B9C^2_001_032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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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한양 사람인 절제사 김(琠)의 아들 영(英)의 손자完珪는 의지와 절개, 재능과 학식으로 당 시대에 명성을 떨쳤다. 일찍이 사마 중과에 급제하여 금종서와 함께 국정을 의논하고 공을 도모하였다. 이때 철(如意)이 침상 위에 있었는데,完珪가 한 말 한마디로서 한 가지 기회에 끊임을 맺었다. 이는 대개 분노에 사로잡혀 한 행동이었다. 계유년(1453)에 금종서가 화를 당하자,完珪는 변방 군현에 유배되었다가 갑술년(1454)에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아우完珠와 사촌完敬도 동시에 죽었다. 익종이 대리摄政을 행하게 되자, 명에 따라持平으로 추증하였으며, 두 아들範과篩가 있었다.
독음
한양 사람 절제사 김(琠)의 아들 영(英)의 손자로, 지절과 재학으로 당세에 기대를 모으고 일찍이 사마 중과에 올라 금종서와 함께 국사를 의논하고 공을 꾀하였다. 이때 철(如意)이 침상 위에 있었는데, 공이 한 말로서 한 가지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 대개 분노에 비롯된 것이다. 계유년에 종서가 화를 당하자 완구는 변방 군현에 유배되었다. 갑술년에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아우 완주와 종제 완경도 동시에 죽었다. 익종이 대리摄政을 행하자 명으로持平에 추증하였으니, 두 아들이 있으니 범(範)과 소(篩)라. [주:梅山集]
의미
조선 단종 때完珪는 한양 출신으로, 금종서와 함께 국정을 논하던 중 철(如意)과 관련된 한 말로 사건에 연루되었다. 금종서가 사육신의 난(1453)으로 화를 당한 뒤完珪는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익종이摄政을 대리하면서 그를持平으로 추증하였다.完珪의 비극은 금종서와 관련된 정국 속에서 한 말 한마디가 원인이 되어 화를 자초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원문
漢陽人節制使琠子英茂孫以志節才學負望當世早中司馬金宗瑞與議國事謀及于公時鐵如意在床公一語而絶一節蓋憤所激也癸酉宗瑞被禍完珪安置邊郡甲戌處絞弟完珠從弟完敬亦同時死翼宗代理命贈持平有二男範篩[주:梅山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완구 / 趙完珪, confidence=0.95
- person: 금종서 / 金宗瑞, confidence=0.98
- person: 절제사 김 / 節制使琠, confidence=0.85
- person: 익종 / 翼宗, confidence=0.95
- person: 조완주 / 趙完珠, confidence=0.9
- person: 조완경 / 趙完敬, confidence=0.9
- place: 한양 / 漢陽, confidence=0.95
- office: 절제사 / 節制使, confidence=0.9
- office: 사마 / 司馬, confidence=0.88
- office: 평지 / 持平, confidence=0.85
- term: 철(如意) / 鐵如意, confidence=0.75
- term: 대리摄政 / 代理, confidence=0.8
- work: 매산집 / 梅山集,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鐵如意의 실체와 정확한 사건 맥락
- 處絞이 교수형인지其它 처형인지
- 完珠完敬의 정확한 관계 표기
(단종조)심선
- 기사 ID:
B9C^2_001_033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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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31
한글 번역
자는 윤부, 호는 망세정, 청송 사람이다. 좌상 덕부의 증손으로서 관직은 관찰사에 이르렀다. 을축년에 상지를 사직하고 스스로 경계하여 어부(漁夫)와 벌꾼(樵夫)의 삶을 살며 생을 마감하였다.[주: 묘갈(墓碣)]
독음
자윤부호망세정청송인좌상덕부증손관관찰사병자상치지정어초이종신
의미
조선 단종 시대 인물 심선의 행적을 묘갈에서 기록한 내용이다. 명문 가문 출신으로 관직에 올랐으나 을축년에 관직을 버리고 스스로 검소하게 살아 어로와 벌목을生業으로 삼아 은거 생활을 영위하다 사망하였다. 좌상 德符의 증손으로, 관직은 관찰사에 이른다.
원문
字閏夫號忘世亭靑松人左相德符曾孫官觀察使丙子尙志自靖漁樵以終身[주:墓碣]
엔티티 후보
- person: 심선 / 沈璿, confidence=0.95
- person: 윤부(자) / 閏夫, confidence=0.95
- person: 덕부 / 德符, confidence=0.85
- place: 청송 / 靑松, confidence=0.95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0.95
- office: 관찰사 / 觀察使, confidence=0.95
- term: 상지(관직 사직) / 尙志, confidence=0.8
- term: 어초(은거 생활) / 漁樵, confidence=0.85
- term: 묘갈 / 墓碣,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德符(덕부의 정확한 시호인지 확인 필요)
- 丙子年(정확한 서기 연도 확인 필요)
(세조조)이사철
- 기사 ID:
B9C^2_001_034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4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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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3:06:55.33103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45
한글 번역
자의는 성지이며, 전주 사람이다. 도조의 적출 아들이자 완창대군 자흥의 증손이다. 종친록에 의해 여러 차례 발탁되어 세종 임자(1422)년 생원문과에 합격하였다. 세종의 난을 평정한 기록을 편찬하는 데 협력하고, 난을 평정하고 보위를 보좌한 공신으로 책록되어甄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을해(1455)년에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며, 이내 좌의정에 이르렀다. 체질이肥大大하고 식사량이 남들보다 많았다. 시호는文安이었다.
독음
자성지 전주인 도조일남 완창대군자흥 증손으로 종첩으로 여러 번 발탁되어 세종 임자년 생원문과에 합격하고 세종조 난을 평정하는 기록을 도왔으며, 난을 진정하고 보좌한 공신으로서 전주부원군에 봉해졌고, 을해년에 우의정에 나아가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체질이肥大大하고 식사량이 남보다 많았으며, 시호는文安이었다.
의미
세조대의 문신 이사철의 개략적인 행적을 수록한 기사로, 전주 이씨 출신으로 세종 임자년(1422) 생원문과에 합격하고 세종의 정치적 혼란을 평정한 기록 편찬에 협력한 공으로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을해(1455)년 우의정에 나아가 좌의정에 이르렀던人物이다.肥大大한 체질과 식사량이 많았던 점이 특기되었고, 사후 시호는文安이다.
원문
字誠之全州人度祖一男完昌大君子興曾孫以宗籍屢擢世宗壬子生員文科贊世祖靖亂錄靖難佐翼功臣封甄城府院君乙亥拜右議政至左議政體質豐大飮食過人諡文安[주:名臣小傳]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사철 / 李思哲, confidence=1.0
- person: 자의 성지 / 字誠之, confidence=1.0
- person: 도조 / 度祖, confidence=1.0
- person: 완창대군 / 完昌大君, confidence=1.0
- person: 이흥 / 李興,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1.0
- offic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1.0
- work: 정난록 / 靖亂錄, confidence=0.9
- term: 임자 / 壬子, confidence=0.8
- term: 을해 / 乙亥, confidence=0.8
- term: 생원문과 / 生員文科, confidence=0.9
- term: 시호 문안 / 諡文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세조조)심회
- 기사 ID:
B9C^2_001_035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5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43:48.21175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51
한글 번역
(세조조)심회. 자는 청부, 청송 사람이다. 아들 온자가 태종에게 죽임을 당하고 처자식이 관에 붙잡혀 들어갔다. 세종 초에 좌의정 이직이 아뢴 바에 따르면, 지금 공비가国母가 되어 있는데 어머니 안씨가 관에 들어와 천한 노역을 하고 있으니 대단히不便하다. 한 소제 때 상관황후의 아버지 안이 복诛되었으나 그 아내는追尊되어 경부인이 되고 원읍에 두었으니, 한의 옛 이야기를 본떠贱案을 삭감하고 작첵을 다시 내리라고 하였다. 태종이 이를 따랐다. 회는 아버지의 음직으로 선발되어 조력한 공으로 청송부원군에 봉해졌다. 세조 병술년에 수상에 오르고 영의정에 이르렀으니, 우리 나라에서 3대에 걸쳐 재상에 오른 것은 심씨 집안이 처음이다. 성종조에 폐비 논쟁에 참여했고, 연산군의 갑자 화(甲子禍)가泉壤까지 미쳤다. 중종이 왕위를 되찾고 내려冤屈를 풀어주어 시호를 공숙으로 내렸다. 아들 중에 하나는 심원을 지어 판관을 지냈고,湲의 아들 순문자의敬之는 병오년 진사가 되었고, 연산군 을묘년에 문과 사인이었으나 갑자년에 화를 입었다.
독음
자청부청송인온자태종시온사처자몰입관세종초좌의정이자적주왈금공비방위국모而来母안씨입관전역심위미변한소제시아관황후부안복수而来기처추존위경부인치원읍청법한고사삭전안환시첵종지측종지흡독이근삼세입상자심씨가위시여출원군세조병술배상지영의정과조삼세입상자심씨가위시여출云성종조삼폐비의연산군갑자화급천양중종개옥신설질공숙자원판관원자순문자경지병오진사연산을묘문과사인갑자피화
의미
심회는 청송 출신으로, 아들 온자가 태종에게 숙배된 뒤 처자식이 관에 붙잡힌苦命을 겪었다. 세종 때는 좌의정 이직의奏請으로 한漢代 고사를 인용하여 아들의 贱案을 삭감받고 작첵을 도로 받았다. 이후 세조대에 재상에 오르며 영의정까지 승진하여, 조선에서 3대에 걸쳐 재상 자리에 오른 첫 가문이 되었다. 성종조에는 폐비 논쟁에 관여했고, 연산군 치세의 갑자 화(갑자사화)에 연좌되어 유족까지受害를 받았다가 중종反正 후 평호를받고 시호를贈받았다.
원문
字淸甫靑松人溫子太宗賜溫死妻子沒入官世宗初左議政李稷奏曰今恭妃方爲國母而母安氏入官賤役深爲未便漢昭帝時上官皇后父安伏誅而其妻追尊爲敬夫人置園邑請法漢故事削賤案還賜爵牒從之澮以蔭參翊戴佐理功封靑松府院君世祖丙戌拜相至領議政我朝三世入相自沈氏家爲始云成宗朝參廢妃議燕山君甲子禍及泉壤中宗改玉伸雪諡恭肅子瑗判官湲子順門字敬之丙午進士燕山乙卯文科舍人甲子被禍[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심회 / 沈澮, confidence=0.95
- person: 심온 / 沈溫, confidence=0.95
- person: 이직 / 李稷, confidence=0.95
- person: 공비 / 恭妃, confidence=0.85
- person: 안씨 / 安氏, confidence=0.9
- person: 심원 / 沈瑗, confidence=0.9
- person: 심원 / 沈湲, confidence=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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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ce: 청송 / 靑松, confidence=0.95
- place: 천양 / 泉壤, confidence=0.85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0.95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0.95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0.95
- offic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0.95
- term: 음직 / 蔭, confidence=0.9
- term: 역대조리 / 翊戴佐理, confidence=0.8
- term: 전안 / 賤案, confidence=0.9
- term: 작첵 / 爵牒, confidence=0.9
- term: 개옥 / 改玉, confidence=0.9
- term: 갑자화 / 甲子禍,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泉壤(천양) - 묘지·무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으로 정확한 지명이 아닌 관념적 표현일 가능성 있음
- 字敬之의 소유권 - 원문에서 순문의 字인지湲의 字인지 문맥상 명확하지 않음
- 丙午進士의 연도 -文中에서 이 进사가 심회 직계인지 계열손인지를 특정하기 어려움
(세조조)어유소
- 기사 ID:
B9C^2_001_035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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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충주 사람의 먼 조상은 지중익으로 사환 아래에 세 개의 비늘 같은 갑각이 있었다. 고려 태조가 이를 보고 기이히 여기며 ‘네가 물고기이로다’라고 하며 그에게 어(魚)씨 성을 하사했다. 어유소는 사격의 묘기가 빼어나武科 시험에서 장원하였다. 세조 시대에 이시애를 토벌하고 건주위를 평정하여 공으로 적개 공신호를 하사받고 1등 훈을 기록하며 예성군에 봉해졌고, 병조정서에 발탁되어 승진하여 좌참찬에 이르렀다. 옛 명장의 풍도가 있었으니, 성 아래의 야인(野人)이 은밀히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임금이 특명으로 유沼를 보내어 위문하고 안무하게 하였다. 유沼는 이전에 북도 병마사로 있을 때 이미 오랑캐들의 마음을 완전히 다스린 바 있었는데, 먼저 사람을 보내어 교윤서를 보여주고 말했다. 야인들이 처음에는 믿지 아니하며 ‘우릴 속이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서신을 땅에 던졌다. 사자가 ‘어공이 오고 있다’라고 하니, 야인들이 ‘어공은 나의 아버지이다. 났을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유沼가 이를 듣고 달려가 그 부락으로 들어갔다. 야인들이 모두 늘어 앉아 절을 하니, 유沼가 성의를 열어 다정히 교유하니 모두 기꺼이 복종하였다. 그들에게 우두머리를 거느리고 본래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가 오랑캐에게 신망을 얻은 것이 이처럼 깊었다. 성종이 대통을 이어받았을 때, 유沼에게 정책의로를 끼친 공로가 있다 하여 좌리 공훈을 기록하였고, 시호를 정장이라 하였다.
독음
충주인 원조 지중익협하에 삼린갑고려태조견이,奇之曰,여여사어야잉시황성 어氏有沼사예절륜괴무과세조조정리시애탐건주위평지야공훈황금적괴공신호녹일등훈봉예성군초수병조정서누관지좌참찬유고명장풍성도저야인선이거이처상명유沼왕뇌안지유沼증위북도병마사복융허심선사인개시교윤서야인초불신曰광아야투서지지使曰어공래의야인曰어공시아아부可得見호유沼문지치입기부야인개로배유沼개성부유뇌흡도감율기추장환거고지其見孚于夷루차유조종입승대통이유沼유정책로녹좌리공훈시정장
의미
충주 출신의 어유소는 고려 태조로부터 어씨 성을 하사받은 인물의 후손으로, 武科에 장원하여 세조 시대에 이시애 토벌과 건주위 정립에 공을 세웠다. 적개功臣에 녹임되고 예성군에 봉작되었으며 병조정서에서 좌참찬에 이르렀다. 북도 병마사로 오랑캐들의 마음을 얻은 바 있어, 성 아래 야인들이 이주할 때 특명으로 파견되어 서신만으로는 불신을 샀으나 ‘어공(魚公)’ 부르면 곧 아버지로 받들며 환영받았다. 성의로 다독이니 야인들이 스스로 돌아가 복종하였다. 성종 즉위 시 정책 공로로佐理功臣에 기록되고 시호는 정장(貞莊)이었다.
원문
忠州人遠祖池重翼脅下有三鱗甲高麗太祖見而奇之曰汝是魚也仍賜姓魚氏有沼射藝絶倫魁武科世祖朝征李施愛討建州衛平之以功賜敵愾功臣號錄一等勳封蕊城君超授兵曹判書累官至左參贊有古名將風城底野人潛移他處上特命有沼往慰安之有沼曾爲北道兵馬使服戎虜心先使人開示敎諭書野人初不信曰誑我也投書于地使者曰魚公來矣野人曰魚公是我父也可得見乎有沼聞之馳入其部野人皆羅拜有沼開誠撫諭皆悅服令率其酋長還居舊地其見孚于夷虜如此成宗入承大統以有沼有定策勞錄佐理功諡貞莊
엔티티 후보
- person: 어유소 / 魚有沼, confidence=0.98
- person: 지중익 / 池重翼, confidence=0.95
- person: 이시애 / 李施愛, confidence=0.98
- person: 고려 태조 / 太祖, confidence=0.99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0.98
- person: 성종 / 成宗, confidence=0.98
- place: 충주 / 忠州, confidence=0.97
- place: 예성 / 蕊城, confidence=0.92
- place: 건주위 / 建州衛, confidence=0.95
- place: 북도 / 北道, confidence=0.96
- office: 병조정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0.96
- office: 병마사 / 兵馬使, confidence=0.95
- term: 무과 / 武科, confidence=0.98
- term: 적개공신 / 敵愾功臣, confidence=0.95
- term: 좌리공신 / 佐理功臣, confidence=0.95
- term: 정책공신 / 定策功臣, confidence=0.94
- term: 야인 / 野人, confidence=0.93
- term: 성도야인 / 城底野人, confidence=0.92
- term: 정장 / 貞莊,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협하삼린갑(脇下三鱗甲) - 사환 아래의 비늘 갑각은 한국 속설의 용어와 일치하는지 확인 필요
- 교윤서(敎諭書) - 정확한 성격과 내용을 뒷받침할 사료 부족
- 적개공신호(敵愾功臣號) -功臣 호칭의 정확한 등위 구분 불분명
(세조조)구치홍
- 기사 ID:
B9C^2_001_035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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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능성인 구치관의 아우인 구치홍은 궁마의 기술을 익힌 뒤에도 더욱 부지런했다. 소탈하고 사치를 멀리하며 조용하고 말수가 적어서 사람들이 감히 그를 무사로 대하지 못했다. 세조는 전선 근무자의 선발을 중시하면서 반드시 문武의 재능을 갖추어 장래에 쓸 수 있는 자를 뽑아 윗사람에게 맡겼다. 이에 치홍의 사람됨을 보고 이 직을 제수하였다. 관직을累计하여 지중추복사에 이르렀다. 여든 살을 넘었지만 총명하고 강건하여 젊은 사람과 같았다. 매번 조정에서의 참례와 하례에 반드시 찾아가 꾸물거리지 않았으며, 말을 탈 때에는 발 없이도 잘 통했으며, 걸을 때에는 굽지 않았고, 서 있을 때에는 곧게 섰다. 시호는 호양이었다.
독음
능성인 구치관 제제 업궁마기술 기성而行역근 탈략부과 점정과언 인상不敢以무사우지도。世祖방중전선지선필작문무재재가비타일용자내수지현 치홍지위인명제실직 누관지지중추복사 년유팔순 총명강건여소년인 매조정참화필왕불해 기불견마행불외로 기립여식 휘호양
의미
조선 세조 연간에 활동한 무신 구치홍의 전기이다. 능성出身으로 무과가 아닌 문과로 벼슬에 진출하여 무관의 전선직을 제수받았다. 여든 살이 넘도록 총명하고 강건하여 젊은 듯한 모습을 유지했으며, 조정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게으름 없이 기른것으로 나타났다. 궁마 기술을 익혔음에도 소탈하고 조용한 성품으로 무사로 인식되지 않았던 점이 특징적이다.
원문
綾城人致寬弟業弓馬技旣成而行益勤脫略浮誇恬靜寡言人不敢以武士遇之世祖方重宣傳之選必擇文武才可以備他日用者乃授之上賢致洪之爲人命除是職累官至知中樞府事年踰八旬聰明剛健如少年人每朝廷參賀必往不懈騎不牽馬行不傴僂其立如植諡胡襄[주:人物考]從叔綱判事成亮子太宗戊子生員文科執義綱子信忠世宗甲子生員文科兵曹參議[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lace: 능성 / 綾城, confidence=0.95
- person: 구치홍 / 具致洪, confidence=0.98
- person: 구치관 / 具致寬, confidence=0.97
- person: 구강 / 具綱, confidence=0.92
- person: 구성량 / 成亮, confidence=0.93
- person: 구신충 / 具信忠, confidence=0.92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0.97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7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0.97
- office: 지중추복사 / 知中樞府事, confidence=0.95
- office: 병조참의 / 兵曹參議, confidence=0.94
- office: 지의정 / 執義, confidence=0.93
- office: 판사 / 判事, confidence=0.9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8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세조조)권득평
- 기사 ID:
B9C^2_001_036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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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안동 사람은 세조 임오년의進士이다. 아버지가 눈이 멀자 사람들이 부축하여 도와드렸고, 음식은 반드시 친히 올렸다. 부모가 사흘 사이에서 함께 돌아갔다. 3년간 상여에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친히 제사를 지냈다. 또 어머니를 위해 제복을 입고 3년을 지냈다. 가묘를 지어 아침저녁으로 제물을 올렸고, 나가고 들어올 때 고하고 물으며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예우했다. 이 사실이 전해져 표창을 받았다.[주:대동운옥]
독음
안동인 세조임오진사 부실명 출인 지지 식필친봉 부모간사일구몰 삼재거庐 친奠조석 우위모제제삼년 위가묘 조석상식 출고반면 여생시 사문문영거려[주:대동운옥]
의미
안동 출신 권득평이 세조 임오년(1422년)에進士에 급제한 인물임을记载한다. 그의 아버지가 실명하자 사람들이 부축하여 도와드렸고, 음식은 반드시 직접 올렸다. 부모가 사흘 사이에 연이어 돌아가자 3년간 상여에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지냈고, 어머니를 위해 제복을 입고 3년간 제사를 지켰다. 가묘를 세워 아침저녁으로 제물을 올렸으며, 출입할 때 상주하듯 예를 갖추어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섬겼다. 이러한 효행이 알려져 표창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원문
安東人世祖壬午進士父失明出人扶持食必親奉父母間四日俱歿三載居廬親奠朝夕又爲母齊衰三年爲家廟朝夕上食出告反面如生時事聞旌閭[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person: 권득평 / 權得平, confidence=1.0
- period: 세조 / 世祖, confidence=1.0
- term: 임오 / 壬午, confidence=1.0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1.0
- term: 실명 / 失明, confidence=1.0
- term: 거庐 / 居廬, confidence=1.0
- term: 제제 / 齊衰, confidence=0.9
- term: 가묘 / 家廟, confidence=1.0
- term: 정려 / 旌閭,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세조조)최지
- 기사 ID:
B9C^2_001_036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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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전주 사람은 여석의 아들이다. 세종 무오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어느 봄날,(그는) 노래를 부르며 느리게 걸어 후원에 이르렀다. 마침 세조가 평민 복장을 하고 원을 나서다가 그곳에서 만났다. 지가 길게 인사하며 절하지 않았다. 임금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사람이기에 함부로 안으로 들어와서 이렇게 무례한가?” 대답했다. “저는 문사(文士)입니다. 궁중에 있으면只知道 임금님만 있을 뿐입니다. 어찌 감히 왕자께 별도의 예절을 드리오겠습니까?” 지는 이에 마음으로 그가 일왕자(一位王子)임을 알았다. 이에 길가에 쭈그려 앉았다. 임금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원양(原壤)처럼 행동하는 것인가? 어찌 그렇게 웅크리고 있느냐?” 잠시 후 시녀와 내竖가 이어서 도착했다. 지가 놀라 두려워하며 사죄했다. 임금님께서는 곧 편전에서 지를召하여 경사(經史)를 토론하게 하였다. 물을 때마다 대답하고, 미묘한 글귀와 깊은 의미를 하나하나 정밀하게 해설하였다. 임금님이 매우 기뻐하며 직접 술잔을赐하셨다. 지는 쾌히 여러 순서를 넘길 정도로 마셨으나 안색이 여전하였다. 임금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유학자는 이학(理學)에 정통한데, 이것을 얻은 것이 늦은 것이 한스럽다.” 곧 지를 사성(司成)으로 발탁하였다.
독음
전주인 여석자 세종 무오文科춘일장영완호행지 후원절봉세조미복출원중지장익불배상왈여시하인선입내지무예약설대왈아문사궁중단지의유상인기완감별예어자호지어시심지기위일왕자야수돈좌로방상왈여비원양호하심기돈사어이내시내속제리지경포사죄상즉어편전호지고강론경사수문수대미자원旨일일정해상대환수제공주주지쾌도수순안색자약상왈차유정어리학한기득지만야즉배지위사성
의미
세종 무오년 문과에 합격한 전주 출신 최지가 봄날 후원에서 평민으로出游한世祖를 만나 우연히 대면한故事이다. 임금에게도失礼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才学을 과시한 최지에게 세조는 경사 토론을 통해 그의 학식을 확인하고 직접 술을 대접하며 사성 벼슬에 발탁하였다. 임금의훼손을 발견한 문사가 오히려 인재로 등용된 일화로서, 조선 왕조의 인재 등용 방식과 문인 정신을 보여준다.
원문
全州人汝碩子世宗戊午文科春日長吟緩步行至後苑適逢世祖微服出苑中池長揖不拜上曰汝是何人擅入內地無禮若是對曰我文士宮中但知有上而已豈敢別禮於子乎池於是心知其爲一王子也遂蹲坐路傍上曰汝非原壤乎何其蹲俟俄而侍女內豎繼至池驚怖謝罪上卽御便殿呼池講論經史隨問隨對微辭奧旨一一精解上大喜手賜巵酒池快倒數巡顏色自若上曰此儒精於理學恨其得之晚也卽拜池爲司成[주:昭代紀年]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지 / 崔池, confidence=0.95
- person: 여석 / 汝碩, confidence=0.8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0.95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0.95
- place: 후원 / 後苑, confidence=0.9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office: 사성 / 司成, confidence=0.95
- term: 원양 / 原壤, confidence=0.8
- term: 이학 / 理學, confidence=0.95
- term: 편전 / 便殿, confidence=0.9
- term: 내속 / 內豎,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 內豎 (궁정의 어린 내시)’, ‘原壤 (고대의 풍류 선비로 예礼를 갖추지 않은 인물)
(세조조)정숭조
- 기사 ID:
B9C^2_001_037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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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효숙이고 호는 삼성재이며, 하동 사람이다. 인지자의 아들로, 아버지의 직첩으로 출사하여 호조정서가 되었고,佐理功으로 인해 하남군에 봉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무를奉行하여 사십여 년 동안 충성과 근면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이가 점점 들자, 하남군으로奉朝賀하고 집에 거처하면서 생산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다만 마음을 전적으로 실크와 죽竹(악기)와 문아(문화 예술)에 쏟아 즐겼다. 날마다 손님을 불러酒를 마시며, 취하면 경사와 역사를 이야기하고 시를 지었으며, 변설이 물 흐르듯이 솟아올랐다. 탁 트인 마음으로 귀족 가운데 처하면서도 부와 관직에 연루되지 않았다. [金安國이 지은 묘지] 아우는敬祖인데, 성종 병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감사가 되었다.敬祖의 아우는尙祖이며,尙祖의 아들은虎臣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독음
자유효숙호 삼성재 하동인 인지자 음진 호조정서 녹조리공 봉 하남군 수미봉공 사십여년 충근불懈 기이而来년익고 하남군 봉조호家居 불이생산위意 전이 사죽문아자오 일요객음취철탄 경사자산 시변약 현하 황연처 당귀중 이불 위富贵소로야[金安國撰墓志] 제 경조 성종 병오文科 감사 경조 제尙祖尙祖 자 호신文科
의미
세조 연간에 활동한 관료 정숭조의 행장을 수록한 묘지문이다. 음직으로 출사하여 호조정서와 하남군에 오르고, 사십여 년간 공직에 충성한 인물이다. 퇴직 후에는 부와 귀족의 속박에서 벗어나 음악과 문학, 시문으로 여가를 즐기며 세속에 연연하지 않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아우敬祖와 조카虎臣도 문과에 급제하여 가문의 문화를 이어갔다.金安國이撰한墓志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원문
字孝叔號三省齋河東人麟趾子以蔭進戶曹判書錄佐理功封河南君首尾奉公四十餘年忠勤不懈旣而年益高以河南君奉朝賀家居不以生產爲意專以絲竹文雅自娛日邀客飮醉輒談經史賦詩辯若懸河曠然處當貴中而不爲富貴所累也[주:金安國撰墓志]弟敬祖成宗丙午文科監司敬祖弟尙祖尙祖子虎臣文科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숭조 / 鄭崇祖, confidence=0.95
- person: 효숙 / 孝叔, confidence=0.95
- person: 금안국 / 金安國, confidence=0.95
- person: 경조 / 敬祖, confidence=0.95
- person: 상조 / 尙祖, confidence=0.95
- person: 호신 / 虎臣, confidence=0.95
- place: 하동 / 河東, confidence=0.9
- place: 하남 / 河南, confidence=0.9
- office: 호조정서 / 戶曹判書, confidence=0.9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봉조호 / 奉朝賀, confidence=0.9
- term: 삼성재 / 三省齋, confidence=0.9
- work: 묘지 / 墓志,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絢竹(사죽) - 원문 ‘絢竹’이 实竹(실크와 대나무)인지 사료(색사竹)인지 불확실; 文雅(문아) - 문화 예술 전반을 의미하는 용어로 현대 한국어 대응이 다소 불확실함
(세조조)허유례
- 기사 ID:
B9C^2_001_037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7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49:02.54421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73
한글 번역
양천사람이代代 걸쳐吉州에 거주하면서 李施愛의 아내의 조카가 되었다. 여러 관직을 두루 겪으며 司甕別坐를 지냈는데, 성품이 어지고 절개가 확고하며 부모님께 효도가 깊고 늘 의열로 스스로 삼았다. 세조조에 李施愛가 반란을 일으키자,惟禮는 아버지가 적贼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몸을 일으켜 나아갔다. 임금은 그의 충성과 용기를 기꺼이 여기어 허락하였다.惟禮는 적진으로 말을 달려가 적들이 술에 취해 잠든 사이에 그 목을 베어 효수하였다. 싸움이 이기고 이어지는 보고에 임금이 그 공을 높이 사서 물건으로 훙미하여 나아가기를, 이미 아버지를 죽음의 강에서 건져냈을 뿐 아니라 나를 대신하여 원수를報帢하였으니, 편안하거나 위험하거나 한결같은 절개로 충성과 효도가 모두 갖춰졌다고 하였다. 적과 원수 갚는 공로로 二等을 기록하고 吉城君에 봉하며 同知中樞府事로 승진시켰다. 工曹判書를 추증하고 시호를 孝壌이라 하였다. (인물고)에서 나왔다. 증손자 珍, 오세손 大成은 임신년에 일어난 왜란에 정문부의 의거에 호응하여 적을 치고 대첩에 그 이름이 새겨졌다. 현손 구, 오세손 成一과 뱌갑자년의 적란이 있을 때 오박과 함께 역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최석정이 지은 묘갈)
독음
양천인세거길주위이시애부제력사옹별좌질인이조확독어효친상소의열자허세조조사애반유례문기부함적정신청행상장기충용허지유례치부적진승기졸수첨수이준절소상황제공기서포미일개부어장망차적여지개해건험일절충효양전록적개공이등봉길성군승동지중추부사증공조판서시효장재손진오세손대성정인왜란종정문보창의부적륵명어대첵현손구오세손성일급뱌갑자적란종오박토역저공최석정撰묘갈
의미
허惟禮는 양천 사람으로 李施愛의 처족이다. 세조조에 李施愛가 반란을 일으키자, 아버지가 적에게 잡힌 소식을 듣고 스스로 달려가 적진에서 술에 취한 적을 습격해 아버지를 구하고 원수까지 갚았다. 임금이 충성과 효도가 모두 갖춰졌다고 훙미하여 그를 吉城君에 봉하고 重任시켰다. 그 가문의 후손들도 나라의 위기에 맑은義를 펼쳐 大捷에 이름이 올랐고, 나라를 위해 역적을 토굴하는 공로를 세웠다.
원문
陽川人世居吉州爲李施愛妻甥歷司甕別坐質仁而操確篤於孝親常以義烈自許世祖朝施愛反惟禮聞其父陷賊挺身請行上壯其忠勇許之惟禮馳赴賊陣乘其醉睡斬首以徇捷奏上嘉其功璽書褒美曰旣脫父於將亡且敵予之所愾夷險一節忠孝兩全錄敵愾功二等封吉城君陞同知中樞府事贈工曹判書諡孝壯[주:人物考]曾孫珍五世孫大成壬辰倭亂從鄭文孚倡義膊賊勒名於大捷玄孫球五世孫誠一及汴甲子适亂從吳博討逆著功[주:崔錫鼎撰墓碣]
엔티티 후보
- person: 허惟禮 / 許惟禮, confidence=1.0
- person: 이시애 / 李施愛, confidence=1.0
- place: 양천 / 陽川, confidence=1.0
- place: 길주 / 吉州, confidence=1.0
- place: 길성 / 吉城, confidence=1.0
- office: 사옹별좌 / 司甕別坐, confidence=0.8
- office: 동지중추부사 / 同知中樞府事, confidence=1.0
- office: 공조판서 / 工曹判書, confidence=1.0
- person: 진 / 珍, confidence=0.9
- person: 대성 / 大成, confidence=0.9
- person: 정문부 / 鄭文孚, confidence=1.0
- person: 구 / 球, confidence=0.9
- person: 성일 / 誠一, confidence=0.9
- person: 오박 / 吳博, confidence=0.9
- person: 최석정 / 崔錫鼎, confidence=1.0
- term: 적개 / 敵愾, confidence=1.0
- term: 시호 효장 / 諡孝壯,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膊賊
- 역적의 시체를 목에 걸었다는 뜻으로 추정되나 고어적 표현으로 정확한 번역이 불확실함
(세조조)한치례
- 기사 ID:
B9C^2_001_037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7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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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1:23:44.44484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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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자절, 청주출신이다.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우니, 옷을 정돈하고 조정에 서 있으니 바라보는 이는 선진과 같았다. 무과에 올라 능연궁에功臣으로 그려질 공로를 세우고, 나서는 군사들을 훈련시키며, 들어와서는 금(金)여(旅)를 총관하였다. 충성과 근면으로 세력을 펴낸 지 사십여 년,佐理功을 기록받아 서릉부원군에 봉해지고,돈녕부사를兼任하였다. 시호는 장간이다.[주: 홍귀달이 지은 묘비]
독음
자자절 청주인 확자용의단려 곡대립어조망지선진여재 등무과 공재능연 출이훈련사졸 입즉총관금여 충근선력자여사십년 록좌리공 봉서릉부원군 영돈녕부사 시장간[주:홍귀달 찬 묘비]
의미
조선 세조 연간 무과 출신 관료의生平기록이다. 용모가 단정하여 조정에 서면 선진과 같았다는 찬사를 갖추고, 무과에 합격하여 능연궁功臣도감을 달성하였다. 군사指班主任으로서士兵를 훈련하고禁旅를統管하는 등武力 분야에 기여하였으며, 약 사십 년간 충근히근무한 공로로佐理功을 인정받아 서릉부원군에 봉해지고돈녕부사를兼任하였다. 홍귀달이撰한 묘비문이다.
원문
字子節淸州人確子容儀端麗束帶立於朝望之仙眞如才登武科功在凌煙出而訓鍊士卒入則摠管禁旅忠勤宣力者餘四十年錄佐理功封西陵府院君領敦寧府事諡莊簡[주:洪貴達撰墓碑]
엔티티 후보
- person: 한치례 / 韓致禮, confidence=0.95
- person: 자자절 / 字子節, confidence=0.95
- person: 홍귀달 / 洪貴達, confidence=0.95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0.95
- place: 능연 / 凌煙, confidence=0.85
- place: 서릉 / 西陵, confidence=0.95
- office: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0.95
- office: 돈녕부사 / 敦寧府事, confidence=0.95
- work: 묘비 / 墓碑, confidence=0.95
- term: 좌리공 / 佐理功, confidence=0.9
- term: 금여 / 禁旅,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曲帶立於朝의 정확한 문장 끊김 여부
- 望之仙眞如才의 의미 해석
- 錄佐理功에서 錄의 의미와 용법
(세조조)이형손
- 기사 ID:
B9C^2_001_037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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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아호)는 창백이고, 가평인으로서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을 차례로 올라 부총관에 이르렀다. 정해년 여름에 박중선과 함께 평안도의 갑졸을 거느리고 이시애를 격파하여, 돌아와서 적개공 2등훈을 기록하고 가평군에 봉해졌다. 임자년 겨울에 성종이 서얼의 인재를 등용하고자 처음으로 어염림위를 설치하면서, 형손을 장으로 삼았다. 시호는 평호이다. [주: 인물고]
독음
자 창백 가평인 무과 누적관至 부총관 정해 여름 동 박중선 영 평안도 갑졸 파 이시애 개선 록 적개공 이등훈 봉 가평군 임자 겨울 성종 욕 수 서얼 지재자 조설 어염림위 이 형손 위 장 시 호평호[주: 인물고]
의미
이형손은 가평 출신으로 무과에 합격하여 부총관까지 올랐으며,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가평군에 봉해졌다. 1492년 성종이 서얼 출신 인재 등을 위한 어염림위를 새로 설치하면서 이형손을 그 장수로 삼았다.
원문
字昌伯加平人武科累官至副摠管丁亥夏同朴仲善領平安道甲卒破李施愛凱旋錄敵愾功二等勳封嘉平君壬子冬成宗欲收庶孼之才者肇設羽林衛以亨孫爲將諡平胡[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이형손 / 李亨孫, confidence=1.0
- person: 박중선 / 朴仲善, confidence=0.95
- person: 이시애 / 李施愛, confidence=1.0
- person: 성종 / 成宗, confidence=1.0
- place: 가평 / 加平, confidence=1.0
- place: 평안도 / 平安道, confidence=1.0
- office: 부총관 / 副摠管, confidence=1.0
- office: 어염림위 / 羽林衛, confidence=1.0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term: 가평군 / 嘉平君, confidence=1.0
- term: 적개공 / 敵愾功, confidence=0.95
- term: 서얼 / 庶孼, confidence=0.95
- term: 갑졸 / 甲卒,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갑졸(병사 유형), 적개공(상세 내력)
- 서얼(서출과 혼용 여부)
- 어염림위(설치 취지와 세부 직제)
(세조조)손비장
- 기사 ID:
B9C^2_001_038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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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50:56.16220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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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영석이고, 부안 사람이다. 현감 민자의 아들로 문장이 있었다. 세조 갑신년에 생원문과에 합격하고, 을신년에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부제학이 되었다. 아우 손상장은 자가 유구인데, 성종 신묘년에 생원문과에 합격하여 군수가 되었다. 손상장의 아들 손세용은 연산 을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정언이 되었다.
독음
자영석 부안인 현감 민자 유문명 세조 갑신 생원문과 을신 중시 부제학 아우 상장 자유구 성종 신묘 생원문과 군수 상장자 세용 연산 을묘 문과 정언
의미
조선 시대 학자 관료 가문의 승계 기록이다. 손비장은 부안 출신으로 세조 연간에 문과에 합격하여 부제학에 이르렀고, 아우 손상장도 성종 연간에 합격하여 군수가 되었다. 그 아들 손세용은 연산 연간에 정언에 올랐다. 본문은 국조방목(國朝榜目)이라는 과거 합격자 명단에서 발췌한 것이다.
원문
字永叔扶安人縣監敏子有文名世祖甲申生員文科丙申重試副提學弟尙長字悠久成宗辛卯生員文科郡守尙長子世雍燕山乙卯文科正言[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손비장 / 孫比長, confidence=0.95
- person: 손상장 / 孫尙長, confidence=0.95
- person: 손세용 / 孫世雍, confidence=0.95
- person: 영석 / 永叔, confidence=0.9
- person: 유구 / 悠久, confidence=0.9
- place: 부안 / 扶安, confidence=0.9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5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0.95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5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5
- term: 생원문과 / 生員文科, confidence=0.95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敏子(인물의 이름인지 관직인지 불확실)
- 重試의 구체적 시험 제도 내용
(세조조)이숙감
- 기사 ID:
B9C^2_001_038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8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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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7:30:20.51509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86
한글 번역
자는 차공이고 호는 몽암이며 또 호는 양원이다. 연안 사람으로서 판관 벼슬의 최하위까지 올랐다. 정축(1453)년에 단종 즉위와 함께 갑술(1454)에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합격한 후 정축(1457)년에 중시에 응시하여 병술(1466)년에 발영시에서 급제하여 문名이 있었다. 이조참판 벼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장이다. 형 이숙황은 세조 무자(1466)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직강에랐다. 같은 기록에 따르면, 백부 이보정의 자는 순甫이고, 세종 경자(1420)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연천군에 봉해졌다. 이숙황의 현손白光과白光 이후,白光과白光 모두 귀하게 되었다.
독음
자차공호몽암우호양원연안인판관말정자단종갑술생원문과정축중시병술발영시유문명이조참판시문장 형숙황세조무자문과직강 백부보정자순푸세종경자문과참판봉연천군 숙황현손우백후백개귀
의미
이숙감은 조선 세조 때 연안 출신으로, 정축(1453) 단종 즉위那年에 갑술(1454)에 생원이 된 뒤 문과에 합격하고 중시·발영시를 거치며 관직을 올라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장이다. 형 이숙황도 세조조 문과 급제자였고, 백부 이보정은 세종조 선조로서 문과 급제 후 이조참판에 오르고 연천군에 봉작되었다. 이숙황의 현손白光과白光 이후 백부 가문의 인물들도 모두 귀한 벼슬에 올랐다. 국조방목에 수록된 세 인물이다.
원문
字次公號夢菴又號楊原延安人判官末丁子端宗甲戌生員文科丁丑重試丙戌拔英試有文名吏曹參判諡文莊[주:國朝榜目]兄淑璜世祖戊子文科直講[주:同上]伯父補丁字淳甫世宗庚子文科參判封延川君[주:同上]淑璜玄孫友閔後白皆貴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숙감 / 李淑瑊, confidence=1.0
- person: 이숙황 / 李淑璜, confidence=1.0
- person: 이보정 / 李補丁, confidence=1.0
- person: 백광 / 白光, confidence=0.7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1.0
- place: 연천 / 延川, confidence=0.9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이조참판 / 吏曹參判, confidence=1.0
- office: 직강 / 直講,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발영시 / 拔英試,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term: 자 / 字, confidence=1.0
- term: 호 / 號,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白光 이후 白光 사이의 관계와 白光의 정확한 독음 및 신원, 文科丁丑重試의 정확한 시험 성격
(세조조)안요경
- 기사 ID:
B9C^2_001_038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8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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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51:24.70684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87
한글 번역
순흥 출신으로 첨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종의의 손자격을 이어받아 음직으로 장령에 올라 여러 번 풍자적으로 간언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온 힘을 다해 충성을 다하여 순이 요를 섬긴 것처럼 하였다”고 하며 이름을尧卿으로 하사하였다. 문성공 이유의 8세손이다.
독음
순흥인 첨지중추부사 종의손 음장령 다 풍간上证曰 실력진충 약순지사고 차명尧卿 문성공유 팔세손야
의미
순흥 출신의 관리安堯卿은 첨지중추부사와 장령을 역임하고 풍자를 통한 간언을 많이 하였다. 세종이尧舜의 관계에 비유하며 그 충성을 칭찬하고尧卿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그는 문성공 이유의 8대 후손으로서的家系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원문
順興人僉知中樞府事從義孫蔭掌令多諷諫上曰悉力盡忠若舜之事堯賜名堯卿文成公裕八世孫也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요경 / 安堯卿, confidence=1.0
- person: 순흥 / 順興, confidence=1.0
- office: 첨지중추부사 / 僉知中樞府事, confidence=1.0
- office: 장령 / 掌令, confidence=1.0
- person: 문성공 이유 / 文成公裕, confidence=1.0
- person: 순 / 舜, confidence=1.0
- person: 요 / 堯,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蔭掌令 - 음직으로 장령에 오른 것인지 음직과 장령의 결합인지는 문맥상 명확하지만 관직 체계상 특이한 표현으로 용어 해석이 불확실
(세조조)김길통
- 기사 ID:
B9C^2_001_038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8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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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1:26:05.43930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89
한글 번역
자는叔經이고 清風郡 사람이다. 세종 임자년(1452)에 文科 장원으로 합격하여 集賢殿에 들어갔고, 호조판서를 지냈다. 성종조에 左理功으로 기록되었고 월천군에 봉작되었다. 시호는 文平이다. 아들 順命의 자는 賢甫이고,世祖 丙子년(1456)에 生員文科에 합격하여 參判이 되었다. 적개좌리 양훈을 기록하고 清陵君에 봉작되었으며, 시호는 恭襄이다. 순명의 아우 順生은 相禮였다. 순생의 아들 世俊의 자는 君弼이고, 중종 정묘년(1527)에 文科에 합격하여牧使가 되었다.
독음
자숙경 청풍인 세종 임자文科 장원 선입집현전 호조판서 성종조 좌리공봉 월천군 시 문평자 순명 자현부世祖丙子 생원文科 참판 녹 적개 좌리 양훈 봉 청릉군 시 공양 순명 제 순생 상례 순생 자시군필 중종 정묘文科 목사 동상
의미
조선 시대 문신 金吉通의 가문 기록이다. 김길통은 세종 때 문과 장원 출신으로 호조판서를 지내고 월천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文平이다. 아들 金順命도世祖 때 문과에 합격하여 清陵君에 봉작되고 恭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손자 金世俊은 중종 때 문과에 합격해牧使가 되었다. 清風은 현재 충북 청원군 지역이다.
원문
字叔經淸風人世宗壬子文科壯元選入集賢殿戶曹判書成宗朝錄佐理功封月川君諡文平[주:大東韻玉]子順命字賢甫世祖丙子生員文科參判錄敵愾佐理兩勳封淸陵君諡恭襄[주:國朝榜目]順命弟順生相禮順生子世俊字君弼中宗丁卯文科牧使[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김길통 / 金吉通, confidence=0.95
- person: 김순명 / 金順命, confidence=0.95
- person: 김순생 / 金順生, confidence=0.95
- person: 김세준 / 金世俊, confidence=0.95
- place: 청풍 / 淸風, confidence=0.95
- place: 월천 / 月川, confidence=0.95
- place: 청릉 / 淸陵, confidence=0.95
- office: 집현전 / 集賢殿, confidence=0.95
- office: 호조판서 / 戶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5
- office: 상례 / 相禮, confidence=0.95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0.95
- term: 문과장원 / 文科壯元, confidence=0.95
- term: 생원문과 / 生員文科, confidence=0.9
- term: 좌리공 / 佐理功, confidence=0.9
- term: 적개좌리 / 敵愾佐理, confidence=0.85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세조조)류규
- 기사 ID:
B9C^2_001_039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9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3:16:35.12220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390
한글 번역
영광 출신의 대언 두명자는 벼슬을 처리하는 재능으로 칭송받았으며, 여러 명의 군을 차례로 맡아 좋은 업적과 명성을 쌓았다. 성품이 단정하고 엄격하여 아들 자환과 자광이 벼슬에 귀하게 올랐음에도 여전히 매질하여 피를 흘렸다. 벼슬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시호는 정의숙이었다. 두명자의 아들 자황이 이름을 바꿔 자환이 되었다. 삼찬 윤경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고, 문종 신미년(1451) 무과에 합격하여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세조의 정난록으로 삼등훈을 받고 전산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양이었다. 자황에게 서제로 자광이 있었는데, 자는 우복이다.
독음
영광인 대언 두명자 이력간칭 누적 전명군 유성적 성방엄 자 자환 자광 수귀현 유 타지유혈 관지知己樞府事 시호 정의숙[주:대동운옥] 자 자황 개명 자환 취삼찬 윤경녀 문종 신미文科 이조삼반 세조 정난록 삼등훈 봉 전산군 시호 문양[주:국조방목] 자 황 유 서제 우 자광 자 우복
의미
조선 세조조 영광 출신 관리 두명자와 그 가문의 기록이다. 두명자는 능률적인 관료로서 명성을 얻었고 아들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다. 아들 자환은 벼슬길에 올라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삼찬 윤경의 딸과 혼인하여 문종 신미년에 급제한 뒤 이조참판까지 승진했다. 세조의 정난에 참여하여 삼등훈에 봉군되었고 문양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자환에게 자광이라는 서제가 있었음을 전한다.
원문
靈光人代言斗明子以吏幹稱累典名郡有聲績性方嚴子子煥子光雖貴顯猶撻之流血官至知中樞府事諡貞肅[주:大東韻玉]子自晃改名子煥娶參贊尹炯女文宗辛未文科吏曹參判世祖靖難錄三等勳封䇺山君諡文襄[주:國朝榜目]子晃有庶弟曰子光字于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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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ce: 영광 / 靈光, confidence=0.95
- person: 두명자 / 斗明子, confidence=0.9
- office: 대언 / 代言, confidence=0.95
- person: 자환 / 子煥, confidence=0.95
- person: 자광 / 子光, confidence=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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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ffice: 지중추부사 / 知中樞府事, confidence=0.95
- person: 윤경 / 尹炯, confidence=0.95
- office: 이조참판 / 吏曹參判, confidence=0.95
- work: 세조정난록 / 世祖靖難錄, confidence=0.95
- person: 윤경 / 尹炯, confidence=0.95
- place: 전산 / 䇺山, confidence=0.8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
- term: 삼등훈 / 三等勳, confidence=0.9
- term: 서제 / 庶弟,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䇺山君의䇺자는 전산(箏山) 지역으로 보이나 한자 확인 필요
(세조조)선형
- 기사 ID:
B9C^2_001_039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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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보성 사람이 무예로 등용되었으며 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세조조에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선형이康純 등을 따라 그들을 토평하였다. 공으로 적개 3등훈에 기록되고 우수군에 봉해졌다. 주(大東韻)에 “력사발신”이라 기록.
독음
보성장인무예진능시세조사이시애반형종강순등토평지의공록적개삼등훈봉여성군대동윤어력사발신
의미
조선 세조 연간 보성 출신의 선형(宣炯)이 무예와 문학을 겸한 인물이었다. 1457년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장수 康純 등과 함께 이를 평정하고, 공으로 적개 3등훈을 받고 우수군에 봉해졌다. 본래 무예로 세상에 발탁된 인물이다.
원문
寶城人以武藝進又能詩世祖朝李施愛反炯從康純等討平之以功錄敵愾三等勳封楡城君[주:大東韻玉]力士發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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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선형 / 宣炯, confidence=1.0
- person: 이시애 / 李施愛, confidence=1.0
- person: 강순 / 康純, confidence=1.0
- place: 보성 / 寶城, confidence=1.0
- place: 우수 / 楡城, confidence=1.0
- term: 적개 / 敵愾, confidence=1.0
- term: 삼등훈 / 三等勳, confidence=1.0
(세조조)권극화
- 기사 ID:
B9C^2_001_039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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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표자는 용부이고, 안동 출신으로 태종 신묘년에 장원하고 갑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참판이 되었다.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으며,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화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아우 克中도 태종 신묘년에 문과 정랑에 급제했다.
독음
자(표자)는 용부, 안동 사람이다. 태종 신묘년에 장원, 갑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참판이 되었다.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고,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화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아우 克中도 태종 신묘년에 문과 정랑에 급제했다.
의미
권극화는 安東 태종 신묘년(1395) 장원생원 및 갑오년(1454) 문과 급제자로 참판에 올랐으며, 문장으로 명성을 얻었다.死后 영의정에 추증되고 화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아우 권극중도 同년 文科 정랑에 급제했다.
원문
字庸夫安東人太宗辛卯壯元生員甲午文科參判以文章鳴於世後贈領議政花山府院君[주:國朝榜目]弟克中太宗辛卯文科正郞[주: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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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권극화 / 權克和, confidence=1.0
- person: 권극중 / 權克中,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office: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1.0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1.0
- place: 화산부원군 / 花山府院君, confidence=1.0
(세조조)최경지
- 기사 ID:
B9C^2_001_039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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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의는 화부이다. 전주 출신이다. 아들 유悰이 벼슬길에 올라弼善이 되었다. 세조 임금 때 경진년에 生員文科에 합격하고, 을신년重試에 합격하였으며, 을술년에 拔英科에 합격하여 才名이 났다. 기개가 있어 한명힐의 狎鷗亭에 시를 지어 적었는데, 꽤 풍자를 섞은 글이었다.
독음
자화부 전주인 필선유종자 세조경진생원문과 부제학 을신중시 을술발영과 유재명기개제시 于한명힐압오정 부산유급 풍유기풍
의미
崔敬止는 全州 출신으로 字는 和甫이다. 세조 연간에 文科와 重試, 拔英科에 합격하며 才名을 얻었다. 아들 有悰은弼善 벼슬을 지냈다. 한명힐의 狎鷗亭에 풍자적 시를 남겨, 才氣와 비꼬는 기풍이 있었다.
원문
字和甫全州人弼善有悰子世祖庚辰生員文科副提學丙申重試丙戌拔英科有才名氣槪題詩于韓明澮狎鷗亭頗有譏諷[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최경지 / 崔敬止, confidence=1.0
- person: 유종 / 有悰, confidence=0.95
- person: 한명힐 / 韓明澮,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필선 / 弼善, confidence=1.0
- place: 압오정 / 狎鷗亭, confidence=1.0
- term: 발영과 / 拔英科,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세조조)운산군계
- 기사 ID:
B9C^2_001_039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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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 사람은 자가 신옹이고, 밀성군으로 봉해졌다. 세조 갑신년에 군에 봉해졌다. 중종의 왕위 회복 때 대신으로서 이 사람을 큰일에 맡겨도 좋을 줄 알고, 이내 그를 찾아 가서 말했다. ‘이는 하늘의 명이다.’ 그러자 마침내 달려가 중종의 서울 어전으로 가서 큰 계책에 참여하여 결정하였다. 그날 당일에 황실의 수레를 받들어 경복궁에서 즉위하도록 하였다. 나라를 안정시킨 공로로 이등 훈장을 받았다. 계책을 세운 공을 세운 뒤로부터부터는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입으로 국가의 일을 말하지 않았으며, 방 안이 적적하기만 하였다. 시호는 공소이다.
독음
자 신옹, 밀성군, 세조 갑신에 봉군하다. 중종의 복위 때 대부가 되어 큰일을 도움받을 수 있음을 알고, 이에 대해 말하기를, ‘이는 천명이다.’ 이에 중종의 잠저로 달려가 큰 계책을 돕고 결정하였다. 그날 당일에 병거를 받들어 경복궁에서 즉위하였다. 청국 이등훈을 기록하였다. 계책의 공을 세운 후로부터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입으로 국가의 일을 말하지 않고 한 방이 쓸쓸하기만 하였다. 시호는 공소이다.
의미
밀성군의 인물사로, 자는 신옹이다. 세조 갑신년(1464)에 밀성군에 봉해졌다. 중종反正时, 대부로서重用되어 왕위 회복의 음모를 함께 하고 ‘이는 천명이다’라고 말한 뒤 중종의 잠저로 달려가 대계책에 가담하였다. 그날 경복궁에서 중종이 즉위하도록 길을 터주었고, 이에 대한 공로로靖國二等勳을 받았다. 그러나 공을 세운 뒤에는隐退하여 국가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고, 방 안이 쓸쓸하기만 하였다. 사후 시호는恭昭이었다.
원문
字愼翁密城君子世祖甲申封君中宗反正時大臣知誡可屬大事遂告以謀誡曰此天命也乃馳詣中宗潛邸贊決大計卽日奉乘輿卽位于景福宮錄靖國二等勳自策功後斂就故常口不言國家事一室蕭然而已諡恭昭
엔티티 후보
- person: 밀성군 / 密城君, confidence=0.95
- person: 중종 / 中宗, confidence=0.98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0.98
- place: 경복궁 / 景福宮, confidence=0.98
- place: 잠저 / 潛邸, confidence=0.9
- term: 복위 / 反正, confidence=0.95
- term: 청국이등훈 / 靖國二等勳, confidence=0.9
- term: 시호 공소 / 諡恭昭,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字愼翁 앞부분 ‘字愼翁密城君子’의 실제 끊어읽기가 이 인물과 정확한지 미확인
- 靖國勳 등功臣授錄 관련 직위나 공신 호칭의 구체적 위치
- 이 인물의 본명이確實하지 않음
(세조조)부임군식
- 기사 ID:
B9C^2_001_040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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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字(아호)는 랑옹이며, 강남군[江陽君]의 아우이다. 스스로 사우정(四雨亭)이라 호칭하였다. 시를 지었는데 온화하고 평담하며 전고하고 함축이 있어서, 시집이 세상에 유통되었다.
독음
자 랑옹, 강남군 제, 자호 사우정. 시를 지었으니 화이 평담하고 전실 온재하니, 유집 행어세라
의미
세조 때 인물인 富林君 湜은 강남군(江陽君)의 동생이다. 字는 랑옹이고 自號는 사우정(四雨亭)이다. 시풍이 온화하고 담담하면서도 전고하고 함축적이어서 시집이 널리流传되었다는 인물 소개 기사이다.
원문
字浪翁江陽君弟自號四雨亭爲詩和易平淡典實醞藉有集行于世
엔티티 후보
- person: 부임군 식(세조 때 사람) / 富林君湜, confidence=0.95
- person: 랑옹 / 浪翁, confidence=0.95
- place: 강남군 / 江陽君, confidence=0.85
- term: 사우정 / 四雨亭,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江陽君弟의 정확한 계통 관계(형 또는 아우)
- 四雨亭의 정확한 유래와 의미
(세조조)거평군복
- 기사 ID:
B9C^2_001_040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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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진남군이 마침내 정종왕손을 낳았다. 무진(년)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평소에 사복장직을 겸임하였다. 예종조에 남이·강순 등을 처형하였다. 수충보사병기정난역대공신호를 하사받고 2등훈에 기록되었다. 성종 갑인년에 우의정에 오랐으나 곧 정학되었다.
독음
진남군 종생자 정종왕손 이무진 상겸 사복장 예종조 남이 강순 등 주赐 수충보사병기정난역대功臣호 녹 이등훈 성종 갑인년 배 우의정 심사 정학
의미
진남군 작위의 보유자로, 정종 왕실의 손종(孫宗) 출신이다. 무진에 과거에 합격하여武職으로 관직에 올라 사복장을 겸임했다. 예종조에서 남이·강순 등의 반란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功臣호와 2등훈을 받았다. 성종 갑인년(1474)에 우의정에 나아가 곧 정학된 인물이다.
원문
鎭南君終生子定宗王孫以武進常兼司僕將睿宗朝誅南怡康純等賜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號錄二等勳成宗甲寅拜右議政尋改正
엔티티 후보
- person: 진남군 / 鎮南君, confidence=0.95
- person: 남이 / 南怡, confidence=0.98
- person: 강순 / 康純, confidence=0.98
- person: 정종 / 定宗, confidence=0.85
- office: 사복장 / 司僕將, confidence=0.92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8
- title: 수충보사병기정난역대공신 / 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 confidence=0.85
- term: 2등훈 / 二等勳, confidence=0.95
- term: 무진 / 武進,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終生子定宗王孫의 구어적 연결 관계
- 以武進의 구체적 해석(연호/천간/특정 시기 표기 여부)
- 常兼司僕將의 상시 겸임 구조
- 成宗甲寅拜右議政尋改正의 事實經過
(세조조)덕원군서
- 기사 ID:
B9C^2_001_040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40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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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7:32:01.83974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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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세조의 서자(別子)인 근빈 박씨가 낳은 덕원군 서와 창원군晟가 있다. 예종 무자년에 남의 등을 주살하고, 익대훈(翊戴勳) 2등에 책봉되었다.
독음
세조별자 근빈 박씨생 덕원군 서 창원군晟 예종 무자주 남의등 책익대훈 이등
의미
세조의 서자(側室子) 근빈 박씨 소생의 두 아들, 덕원군 서와 창원군晟의 기록이다. 예종 무자년(1428)에 남의 등을 처형하고, 익대훈 2등 서임된 내용을 수록한 세조조 왕실 계통 기록이다. 德源과 昌原은 각각 봉해진 도호부(都護府) 이름이며, 曙·晟은 각각의 이름이다. 다만 예종 치세와 남의 처형은 1453년 문종 연간과 연관이 있어, 원문 전개의 문맥에 일부 불확실성이 있다.
원문
世祖別子謹嬪朴氏生德源君曙昌原君晟睿宗戊子誅南怡等冊翊戴勳二等
엔티티 후보
- person: 덕원군 서 / 德源君曙, confidence=0.97
- person: 창원군 성 / 昌原君晟, confidence=0.97
- person: 남의 / 南怡, confidence=0.92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0.99
- person: 근빈 박씨 / 謹嬪朴氏, confidence=0.95
- place: 덕원(현재 함남 덕원) / 德源, confidence=0.88
- place: 창원(현재 경남 창원) / 昌原, confidence=0.88
- term: 별자(서자) / 別子, confidence=0.92
- term: 익대훈 / 翊戴勳, confidence=0.85
- person: 예종 / 睿宗, confidence=0.72
불확실한 어휘
- 睿宗의 문맥적 위치(별도 왕 항목 또는 수식어 여부), 戊子년(1428)과 남의 처형 연도(1453)의 연결 방식, 別子가 직접 서자를 의미하는지 여부
(세조조)한백윤
- 기사 ID:
B9C^2_001_040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40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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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1:29:30.85441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404
한글 번역
자(字)는 자후(子厚)이고, 청주 사람이다. 고려 수문전 대학사 방신(方信)의 증손이다. 경술에 통달하고 기략이 있었다. 은전으로 벼슬을 보충받았다. 실로 그가 낳은 이는 안순왕후인데, 그가 안순왕후를 우리 예종에게 배속시켰다. 예종이 즉위하자 보국숭록대부에 피,拜하여 청천군에 봉해졌다. 성종이 왕위를 이어받을 때 정책의 공으로 좌리공을 세웠다고 기록하여 부원군에 봉작되고, 进拜하여 우의정이 되었다. 나이 사십팔에 졸했으며, 시호는 양혜(襄惠)이다.
독음
자 자후 청주인 고려수문전대학사방신증손 통경술 유기략이음보관 실탄아 안순왕후 배아 예종 즉위拜 보국숭록대부 청천군록 익대공 성종 입통 대통 이정책 노무 좌리공 봉 부원군 进拜 우의정 년사십팔 졸 시 양혜
의미
한백윤은 고려 수문전 대학사 방신의 증손으로 태어나, 경술과 기략을 갖추고 은전으로 관직에 올랐다. 그는 안순왕후의 오빠로서 안순왕후가 예종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예종 즉위 후 보국숭록대부·청천군에 봉작되었으며, 이후 성종 즉위 과정에서 정책의 공을 세워 부원군에 봉작되고 우의정에 进拜하였다. 48세에 사망하여 양혜의 시호를 받았다. 성종 즉위 과정에서의 定策 공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연산군廃立이나 그 이전 왕위 계승 정국에 관여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원문
字子厚淸州人高麗修文殿大學士方信曾孫通經術有器略以蔭補官寔誕我安順王后配我睿宗睿宗卽祚拜輔國崇祿大夫淸川君錄翊戴功成宗入承大統以定策之勞錄佐理功封府院君進拜右議政年四十八卒諡襄惠
엔티티 후보
- person: 한백윤 / 韓伯倫, confidence=1.0
- person: 자후 / 子厚, confidence=1.0
- person: 방신 / 方信, confidence=1.0
- person: 안순왕후 / 安順王后, confidence=1.0
- person: 예종 / 睿宗, confidence=1.0
- person: 성종 / 成宗, confidence=1.0
- place: 청주 / 淸州, confidence=1.0
- office: 수문전 대학사 / 修文殿大學士, confidence=0.9
- office: 보국숭록대부 / 輔國崇祿大夫, confidence=1.0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1.0
- work: 부원군 / 府院君, confidence=1.0
- work: 청천군 / 淸川君, confidence=1.0
- term: 음보관 / 蔭補官, confidence=0.9
- term: 정책지노 / 定策之勞, confidence=0.9
- term: 좌리공 / 佐理功, confidence=0.9
- term: 시양혜 / 謚襄惠, confidence=1.0
- term: 입통대통 / 入承大統,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入承大統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세를 가리키는지(성종 즉위 경위 관련)
- 佐理功이 定策之勞와 구분되는 구체적 행위가 무엇인지
(세조조)류자한
- 기사 ID:
B9C^2_001_040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40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53:50.49759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405
한글 번역
진주 사람인 참판 양식의 아들 양자한은 세조 경진(1460)년에 생원에 합격하고 문과에 합격하여 보학으로 시작하여 전한을 역임하고 양양부사가 되었다. 유금시습서를 지었다. 을유(1466)년 중시에서 급제하여 관직이 교리까지 올랐다. 형 양자빈은 세조 임오(1462)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사인이 되었고 아우 양자분은 음보로 현감이 되었으며, 세조조에 문과에 합격하여 전첨까지 올랐다. 세 형제가 모두 급제하여 모두 청백한 명사로 널리 알려졌다.
독음
진주인삼판양식자세조경진생원문과보학전한역양양부사유금시습서을유중시관지교리[주:대동운옥]형자빈세조임오문과사인제자분음보현감세조조문과관지전첨삼형제등제개이청명한저[주:인물고]
의미
양자한은 진주 출신으로 세조조 문과 급제자이며, 보학·전한·양양부사를 역임하고 을유중시에서 교리까지 승진했다. 유금시습서를 저술한 학자였다. 형 자빈은 사인, 아우 자분은 전첨까지 이르렀으며, 세 형제 모두 급제하여 청백한 명사로知晧되었다는 인물이다.
원문
晉州人參判陽植子世祖庚辰生員文科補典翰歷襄陽府使有遺金時習書丙戌重試官至校理[주:大東韻玉]兄自濱世祖壬午文科舍人弟自汾蔭補縣監世祖朝文科官至典籤三兄弟登第皆以淸名著[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양자한 / 柳自漢, confidence=1.0
- person: 양식 / 陽植, confidence=1.0
- person: 양자빈 / 柳自濱, confidence=1.0
- person: 양자분 / 柳自汾, confidence=1.0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1.0
- place: 양양 / 襄陽,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
- office: 전한 / 典翰,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사인 / 舍人, confidence=1.0
- office: 전첨 / 典籤, confidence=1.0
- work: 유금시습서 / 遺金時習書, confidence=0.9
- term: 생원문과 / 生員文科,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term: 등제 / 登第, confidence=1.0
- term: 청백 / 淸白, confidence=0.9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유금시습서(저작 내용 미상)
- 음보縣監(자분 급재 경위 불분명)
- 대동운옥·인물고(원서 확인 필요)
(세조조)이륙
- 기사 ID:
B9C^2_001_040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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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방옹이고 호(號)는 청파이며 고성 사람이다. 사간 이치지의 아들이며 좌상 이원서의 손자이다. 세조조 기사(1555)년에 태어나 생원·진사가 되었다. 갑신(1564)년에 문과 장원이 되고, 병술(1566)년에 발영과에 합격하고, 무자(1568)년에 중시官을 뽑혔다. 관직은 이조참판에서 그쳤다. 시문은 전실하고 충담하다. 청파집과 청파극담이 있는데 세상에 유통된다.
독음
자방옹호청파고성인사간치지좌상이원손세조사축생원진사갑신문과장원병술발영과학자중시관지고조참판시문전실충담유청파집급청파극담행어세
의미
이 인물은 조선 세조조 기사(1555)년에 태어난 이륙으로, 사간 이치지의 아들이자 좌상 이원서의 손자이다. 갑신(1564)년 문과 장원, 병술(1566)년 발영과, 무자(1568)년 중시官 합격 등 과거에 연달아 합격하며 관료 길에 올랐다. 벼슬은 이조참판에 이르렀고, 시문은 평실하고 담백한 풍격으로 청파집과 청파극담을 남겼다.
원문
字放翁號靑坡固城人司諫墀子左相原孫世祖己卯生員進士甲申文科壯元丙戌拔英科戊子重試官止吏曹參判詩文典實沖澹有靑坡集及靑坡劇談行于世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륙 / 李陸, confidence=1.0
- person: 방옹 / 放翁, confidence=1.0
- term: 청파 / 靑坡, confidence=1.0
- place: 고성 / 固城, confidence=1.0
- person: 사간 이치지 / 司諫墀, confidence=1.0
- person: 좌상이원 / 左相原,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
- term: 문과 장원 / 文科壯元, confidence=0.9
- term: 발영과 / 拔英科,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office: 이조참판 / 吏曹參判, confidence=1.0
- work: 청파집 / 靑坡集, confidence=1.0
- work: 청파극담 / 靑坡劇談,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문과 장원 및 발영과 합격 연도, 重試官의 구체적 직制 분류
(세조조)이언
- 기사 ID:
B9C^2_001_040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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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흥양 사람은 찬성서원후이다. 뒤에 성품이 청렴하고 담백하며 굳셍고 곧았다. 한번 전주 부윤을 지냈는데 다스림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세조가 조서를 내리어 포상하고 진진시켰다. 고만 벼슬에 이르러 물러나 선산에 거처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독음
흥양인찬성서원후후성렴담경직창윤전주이자치세조치교포승급고만퇴거선산이 졸
의미
이 기사는 세조대신 이언의 행적을 수록한 것이다. 그는 흥양 출신으로 성품이 청렴하고 곧으며, 전주 부윤으로 재임하여 최고의 치적을 올렸다. 세조의 특별 조서를 받을 정도로 출세했으나 벼슬이 고만에 이르러 물러나 선산에서 생을 마쳤다. 인물평价为 清淡勁直(청렴하고 담백하며 곧음)인 清官으로 평가된다.
원문
興陽人贊成舒原後性廉澹勁直嘗尹全州以治最世祖賜敎褒陞及苽滿退居善山而卒[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lace: 흥양 / 興陽, confidence=0.9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0.95
- place: 선산 / 善山, confidence=0.95
- person: 이언 / 李堰, confidence=0.95
- office: 찬성 / 贊成, confidence=0.8
- office: 부윤 / 尹, confidence=0.95
- term: 치최(다스림이 가장 뛰어남) / 治最, confidence=0.9
- term: 포상(포상하고 진급시킴) / 褒陞, confidence=0.85
- term: 고만(벼슬이 가득 찼음, 정년 퇴직) / 苽滿, confidence=0.7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0.9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苽滿(고만)_벼슬이 한任에 찼다는 표현으로 해석하지만 관직명인지 기간 표현인지 불확실
(세조조)봉석주
- 기사 ID:
B9C^2_001_040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40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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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21:30:34.35991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409
한글 번역
하음(河陰) 사람은 용맹하고 몽시 잘 쏘았으며 격구(擊毬)를 잘 쳤다. 정난(靖難)의 공에 참여하여 군(君)에 봉封되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올라갔다. 성격이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한번은 사람에게 명하여 수(水) 위에서 나무를 베게 하고, 그곳에的铁정(철釘)을 나무 위에 많이 꽂아둔 채 물에 띄워 남강(南江)으로 흐르게 한 뒤 그것을 자신의 물건으로 인정하여, 빼앗기는 사람이 많았다. 조정에서 난신(亂臣)의 처첩을 공신에게 노비로 주었는데, 석주는 용색이 있는 자를 구해 첩으로 삼고 낮과 밤으로 음욕을 마음껏 벌렸다. 나중에 반역을谋划하여 죽임을 당했고, 정조(正祖)대에 그 본손(本孫)이 상소하여冤을 펴고, 다시 공功을 기록받아江城君에 봉封되었다.
독음
하음인 교용선습격구참정난공봉군배병조판서위인탐람촉폭탕염견인수상상벌목처잠지지철정무수착목두급류하남강인위자기물견탈자다조정란혼제처급공신위노비석주구유자색자위첩일야종음不已후이모반복치정조조본손상소신원갱록훈봉강성군
의미
세조 연간 인물인 石柱의传记이다. 정난 공에 참여하여 요직에 진출했으나, 성격이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남강의 나무를铁정으로 표시하여 빼앗는 등 횡령 행위를 되풀았다. 난신의 가산을 노비로 받은 후 첩을 구해 사치하게 살았다가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이후 정조대에 그의 후손이 상소하여 신원을 호소하고, 다시勋功을 인정받아江城君에 봉封받았다.
원문
河陰人驍勇善射擊毬參靖難功封君拜兵曹判書爲人貪婪酷暴嘗遣人水上伐木處潛持鐵釘無數着木頭及流下南江認爲己物見奪者多朝廷以亂臣妻妾給功臣爲奴婢石柱求有姿色者爲妾日夜縱淫不已後以謀反伏誅正祖朝本孫上疏伸冤更錄勳封江城君[주:大東裨林]
엔티티 후보
- person: 석주 / 石柱, confidence=1.0
- place: 하음 / 河陰, confidence=1.0
- place: 남강 / 南江, confidence=1.0
- place: 강성군 / 江城君, confidence=1.0
- office: 병조 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term: 정난 / 靖難, confidence=1.0
- term: 봉군 / 封君, confidence=1.0
- term: 격구 / 擊毬,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鐵釘(철정): 나무에 꽂은 철钉의 구체적 용도가 수몰 목재 식별용인지 다른 목적이었는지 불분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