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인물지 [國朝人物志n1-3책] - 본문 번역 묶음 002
- 책 ID:
kh2_je_a_vsu_B9C^2_000
- 수록 기사: 75건
(태종조)조말생
- 기사 ID:
B9C^2_001_012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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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2:35:13.36149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23
한글 번역
자(字)는 평중(平仲)이고 호(號)는 사곡(社谷)이자 화산(華山)이다. 양주(楊州) 사람이다. 어릴 적 문정공(文貞公) 조용(趙庸)에게 수학하였다. 태종(太宗) 신사년(辛巳年, 1401년)에 생원(生員)文科(文科)에 장원(壯元)으로 합격하고, 정해(丁亥)년 중시(重試)에 합격하였다. 벼슬이 병조판서(兵曹判書)와 집현전대제학(集賢殿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세종(世宗)에게 총애를 받았다. 관직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나이 일흔여덟에 사망하고 시호(諡號)는 문강(文剛)이다. 제(弟) 조종생(趙從生)은 같은 해에 생원·장원·문과에 연석으로 합격하여 참판(參判)을 지냈다. 형(兄) 조계생(趙啓生)은 문과에 급제하여 참찬(參贊)을 지냈고, 조계생의 아들 조극관(趙克寬)은 문과에 합격하여 병조판서가 되었다. 단종(端宗) 계유년(癸酉年, 1455년)에 어려움을 당하여 죽었다. 조극관의 아우(弟) 조수량(趙遂良)은 문과에 합격하여 호조참판(戶曹參判)이 되었다. 계유년(癸酉年)에 영광(靈光)으로 유배되었다가 곧 사형을赐하였다.
독음
씨 평중호 사곡우호 화산양주인소년수업어 문정공 조용태종신사생원문과장원졸정해중시력병조판서집현전대제학피세종전우관지금중추부사연칠십팔졸시문강주 동서사우록제地从생동년생원장원문과연벽참판주국조방목형계생문과참찬계생자극관문과병조판서단종계유사난극관제제수량문과호조삼판계유점영광심사사동서
의미
조말생은 양주 출신으로 문정공 조용에게 수학하고 1401년 생원文科에 장원 합격, 이후 병조판서·집현전대제학을 역임하고 세종에게 총애를 받았다. 영중추부사至高官에 올라 78세로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문강이다. 아우 조종생도 문과 장원 급제하여 참판에 이르렀고, 형 조계생의 아들 조극관은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단종 말년에 호형과 함께 어려움을 당하여 사망하였다. 조극관의 아우 조수량은 호조참판이었으나 계유년에 영광으로 유배되었다가 사형되었다.
원문
字平仲號社谷又號華山楊州人少受業于文貞公趙庸太宗辛巳生員文科壯元捷丁亥重試歷兵曹判書集賢殿大提學被世宗眷遇官至領中樞府事年七十八卒諡文剛[주:東儒師友錄]弟從生同年生員壯元文科聯璧參判[주:國朝榜目]*兄啓生文科參贊啓生子克寬文科兵曹判書端宗癸酉死難克寬弟遂良文科戶曹參判癸酉謫靈光尋賜死[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조말생, confidence=1.0
- person: 조용, confidence=1.0
- person: 조종생, confidence=1.0
- person: 조계생, confidence=1.0
- person: 조극관, confidence=1.0
- person: 조수량, confidence=1.0
- place: 양주 / 楊州, confidence=1.0
- place: 영광 / 靈光, confidence=1.0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집현전대제학 / 集賢殿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영중추부사 / 領中樞府事, confidence=1.0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1.0
- office: 참찬 / 參贊, confidence=1.0
- office: 호조참판 / 戶曹參判,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장원 / 壯元,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강 / 文剛, confidence=1.0
- term: 문과연벽 / 文科聯璧,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文科聯璧(문과연벽) - 같은 해에 생원·장원·문과에 연속 합격之意로 해석
(태종조)정흠지
- 기사 ID:
B9C^2_001_012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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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04:31.58446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24
한글 번역
자(字)는 요좌, 동래 사람이다. 한성윤 부자의 아들이 13세에 생원·진사에 합격하여 발탁되어持平에 임명되었다. 태종 신묘(신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시호는 문경이다. 아들의 증손이 좌찬성이 되고, 그 아들(창손)이 영의정이 되었다. [주:国朝榜目]
독음
자요좌 동래인 한성윤 부자년십삼 생원진사탁배持平 태종 신묘 문과 형조판서 시문경 国朝榜目 자갑손 좌찬성 창손 영의정
의미
동래 출신의 정흠지는 13세에 생원·진사에 합격한 神童이었다. 태종 치세인 신묘년(1411년경)에 문과에 급제하여持平·형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시호는文景이다. 그의 가문이 代代 관직에 진출하여 아들의 증손이좌찬성에, 그 아들(昌孫)이 영의정에 이르렀다.「国朝榜目」은조선 초 기력榜目(합격자 명부)을 인용한 주석으로 보인다.
원문
字堯佐東萊人漢城尹符子年十三生員進士擢拜持平太宗辛卯文科刑曹判書諡文景[주:國朝榜目]子甲孫左贊成昌孫領議政
엔티티 후보
- person: 정흠지 / 鄭欽之, confidence=0.95
- person: 요좌(정흠지의 자) / 堯佐, confidence=0.95
- person: 갑손(정흠지의 후손) / 甲孫, confidence=0.9
- person: 창손(갑손의 아들) / 昌孫, confidence=0.9
- place: 동래 / 東萊, confidence=0.95
- office: 평시(잡직 관직) / 持平, confidence=0.9
- office: 형조판서 / 刑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한성윤 / 漢城尹, confidence=0.95
- office: 좌찬성 / 左贊成, confidence=0.95
- office: 영의정 / 領議政, confidence=0.9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5
- term: 생원진사 / 生員進士,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符子의 구체적 인물 비적 및 가계 관계
- 국조방목 주석의 정확한 서지 정보
(태종조)박서생
- 기사 ID:
B9C^2_001_012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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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26
한글 번역
(박서생은) 안인 사람으로 중랑장 점자의 아들이다. 태종 신사(140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文科에 장원하고, 정해(1407)년에 중시(重試)에 응시한 바 있다. 일찍이 야은(冶隱) 吉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문장이 이름났다. 벼슬하여 양학성(揚臺省)을 거쳤다가 나갔으며, 안동부사로 나가 清白하다는 평을 들었다. 들어와서 이조참의가 되고, 사헌부의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아들 線(자: 瑔)이 참봉에 오르고, 그 아들 효원(자: 伯仁)은 세종 을유(1453)년에 태어나 생원 문과에 합격하여 대사헌에 이르렀다.(주: 《東儒師友錄》) (이 자녀 관계는) 《國朝榜目》에 보인다.
독음
비 안인 중랑장 점자 태종 신사 문과 급제 정해 중시 상수업어 야은 길재지 문 명력 양태성 출 위 안동부사 녹청백 입 위 이조삼의 사헌부 대사헌(주: 동유사우록) 자 선(주: 선) 참봉 선자 효원 자 백인 세종 을유 생원 문과 대사감(주: 국조사목)
의미
조선 태종 때 인물 박서생의 행적을 수록한 짧은 기문이다. 안인 출신으로 태종 1401년(신사) 문과에 급제하고 1407년(정해) 중시에 응시하였다. 학자 吉再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벼슬길에 올라 안동부사를 지내고 이조참의·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 清白한 관료였다. 아들 박선(瑔)이 참봉에 오르고, 손자 박효원(伯仁)은 세종 때 생원 문과에 합격하여 대사헌에 이르렀다. 조선 전기에 文科에 합격한 유학자의 가계와 관료 경력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比安人中郞將漸子太宗辛巳進士文科捷丁亥重試嘗受業于冶隱吉再之門有文名歷揚臺省出爲安東府使錄淸白入爲吏曹參議司憲府大司憲[주:東儒師友錄]子線[주:瑔]參奉瑔子孝元字伯仁世祖乙酉生員文科大司諫[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서생 / 朴瑞生, confidence=0.95
- person: 길재 / 吉再, confidence=0.95
- person: 박선 / 線, confidence=0.9
- person: 박효원 / 孝元, confidence=0.95
- person: 백인 / 伯仁, confidence=0.95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8
- place: 안인 / 安人, confidence=0.9
- office: 중랑장 / 中郞將, confidence=0.95
- office: 안동부사 / 安東府使, confidence=0.98
- office: 이조참의 / 吏曹參議, confidence=0.95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5
- office: 대사감 / 大司諫, confidence=0.95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5
- work: 동유사우록 / 東儒師友錄, confidence=0.95
- work: 국조사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5
- term: 문과 급제 / 文科捷, confidence=0.95
- term: 청백 / 淸白, confidence=0.95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점자(漸子)의 구체적 신원, 양태성(揚臺省)의 정확한 관칭과 직능
(태종조)고득종
- 기사 ID:
B9C^2_001_012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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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2:35:51.57910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29
한글 번역
글자는 자부이고, 제주도 사람이며, 상장군 봉지의 아들이다. 음보(先大父의 공로로 벼슬을 함)로 직장(군직의 하나)에 보직되었다. 태종 갑오(1394)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정미(1401)년에 중시로 제학에 뽑혔으며, 판한성윤을 지냈다. 성품이 지극한 효자로, 부모의 묘소에서 예에 따라 정성을 다했다. 그 집 문 앞에 정표(효행을 기려)를 내렸다. 조카 중에 유염이 있었는데, 생원으로 문과 갑오(1394)년에 삼촌과 같은 방에 함께 합격하여 벼슬이 검임에 이르렀다. 득종의 아들 태필은 문과에 합격하여 수에 올라, 태익은 자가 문좌로 문과에 정으로, 태정은 문과에 정으로 합격하였으니, 세 형제가 함께 과거에 합격하였다.
독음
자 자부 제주인 상장군봉지자 음보직장 태종갑오문과 정미중시제학 판한성윤 성지효 여묘진례 정표기문姪유염생원 문과갑오 여삼춘부모동반 관지검렴 득종자태필 문과수 수태익자문좌 문과정 태정 문과정 삼형제등제
의미
고득종은 제주도 출신으로 태종대에 문과에 합격하고 중시로 제학에 뽑힌 뒤 판한성윤을 지낸 관리였다. 지극한 효자로 여묘의 예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 정표를 받았다. 가족 모두가 과거에 합격한 인물이었는데, 조카 유염도 삼촌과 함께 갑오방 문과에 합격했고, 아들 태필·태익·태정의 세 형제도 모두 문과에 합격하여 문호가 대단했다.
원문
字子傅濟州人上將軍鳳智子蔭補直長太宗甲午文科丁未重試提學判漢城尹性至孝廬墓盡禮旌表其門[주:大東韻玉]姪有廉生員文科甲午與其叔父同榜官至檢閱[주:國朝榜目]得宗子台弼文科留守台翼字文佐文科正台鼎文科正三兄弟登第[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고득종 / 高得宗, confidence=0.95
- person: 자부 / 子傅, confidence=0.95
- place: 제주 / 濟州, confidence=0.95
- person: 봉지 / 鳳智, confidence=0.95
- office: 직장 / 直長, confidence=0.9
- person: 태필 / 台弼, confidence=0.95
- person: 태익 / 台翼, confidence=0.95
- person: 문좌 / 文佐, confidence=0.95
- person: 태정 / 台鼎, confidence=0.95
- person: 유염 / 有廉, confidence=0.95
- office: 판한성윤 / 判漢城尹, confidence=0.95
- office: 제학 / 提學,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0.9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0.9
- term: 여묘 / 廬墓, confidence=0.85
- term: 정표 / 旌表,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留守(수유로 해석하나職名確定아래 상황적 단서不足)
- 生員(생员은 조선시기에 급제 단계之하나 구체적 의미 文科不合格段階로 추정)
(태종조)마천목
- 기사 ID:
B9C^2_001_013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3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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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36:06.49893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30
한글 번역
장흥군 사람이었던 마천목은 체력이 월등하고 무예로 출세하였다. 태종이 아직 세자(潛邸)에 계실 때 천목이 어러운 상황에서 성스러운 군주를 호호하고, 내란을 평정하는 데 힘썼다. 경진년에 방향(芳幹)의 난을 평정하고 나서 추충분의역력대좌명功臣号를 하사받았으며, 장흥부원군에 봉해지고 삼등훈에 기록되었으며, 병조판서로 발탁되었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독음
장흥인려력절인이무예발신태종재잠저천목호성공어간의좌명명어내토경진평방간난사추충분’의역력대좌명공신호봉장흥부원군록삼등훈탁병조판서질충정
의미
조선 태종 즉위 전후의 인물 마천목의 주요 행적을 수록한 기사로, 태종의 잠저 시절 어려움 속에서 호종하고 내란 진압에 기여한 공으로功臣号와 벼슬 최고위직인 병조판서로 승진한 뒤 장흥부원군에 봉해졌음을 기록한다. 방향의 난은 1400년(태종 즉위 직전) 이방원과 이방원의 측근 세력이 일으킨 내란을 지칭하며, 마천목은 이 난,平定에 공헌한 인물로 추정된다.
원문
長興人膂力絶人以武藝拔身太宗在潛邸天牧護聖躬於艱危佐景命於內討庚辰平芳幹之難賜推忠奮義翊戴佐命功臣號封長興府院君錄三等勳擢兵曹判書諡忠靖
엔티티 후보
- person: 마천목 / 馬天牧, confidence=0.98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0.98
- place: 장흥 / 長興, confidence=0.97
- place: 장흥부원군 / 長興府院君, confidence=0.95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8
- term: 추충분의역력대좌명공신 / 推忠奮義翊戴佐命功臣, confidence=0.93
- term: 방간(방간난) / 芳幹, confidence=0.9
- term: 잠저(세자 시절 거처) / 潛邸, confidence=0.92
- term: 경진(1400년) / 庚辰, confidence=0.95
- term: 삼등훈 / 三等勳,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內討(내토)의 구체적指稱範囲이 내란 진압을 의미하는지 특정 사건인지 불분명
- 方向의 난 平定 주체와 시기 관련 추가史料 필요
- 諡號 충정 시호 수여 시기 미상
(태종조)연사종
- 기사 ID:
B9C^2_001_013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3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18:00:27.81649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31
한글 번역
곡산 사람이 군사적 공으로 출사하여 태종 원년(1400)에 화간(芳幹)의 난을 평정한 뒤,延嗣宗을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제수하고 곡산부원군(谷山府院君)에 봉하였다. 세종 2년(1420)에延嗣宗과 우의정(右議政) 조균(趙涓), 병조판서(兵曹判書) 조말생(趙末生) 등이 서로 소송하는 노비의 청탁을 받고 은밀히 힘을 쏟은 것이 득실이 되어, 헌부(憲府)에서 압핵(按覈)하여 실정을 알아냈다. 조균 등은 모두 중도에서 부처(付處)되었다. 임금이 이에 대해 헌부에 내세우기를 “나는 못나고 어리석은 자들이 소송하는 노비를 두고 관리가 인연하여 청탁을 받아冤抑이 되는 경우가 혹 있을 수 있다고 들었다. 지금 이 일은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긴다.” 하였다. 시호는靖厚(경후)이다.
독음
곡산인 무진하여 정종 경진에 화간을 평정하고난 뒤 사종을 정헌대부 곡산부원군에 봉했다. 세종 임인년에 사종과 우의정 조균, 병조판서 조말생 등이 서로 소송하는 노비를 받고 은밀히 힘을 쏟은 득실이 있어 헌부가 안핵하여 실정을 알아냈다. 조균 등은 모두 중도에서 부처되었다. 상이 이에 인해 헌부에 가르치기를 “나는 어리석고 못난 자들이 소송하는 노비를 듣고 관리가 인연하여 청탁을 받아 잘못된 억울함이 있게 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들었다. 지금 이 일은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긴다.” 하셨으니, 시호는 경후이다.
의미
조선 태종 연간功臣인 곡산부원군延嗣宗의 주요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延嗣宗은 武科로 출사하여 태종 연간 화간(芳幹)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정헌대부에 제수되고 곡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세종 임인년(1420)에延嗣宗과 우의정 조균, 병조판서 조말생 등이 소송 노비 관련 청탁을 받고 은밀히 관여한 사실이 헌부(憲府)의 감사(按覈)를 받아 드러나, 연루된 조균 등은 모두 중도에서 부처되었다. 태종은 이에 대해 평소의 어리석은 자들의 소송과 그것을 둘러싼 관리의 청탁으로 억울함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언급하면서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延嗣宗은 훗날 成宗 연간에 정3품 대부阶에追贈되었고, 시호靖厚가 추서되었다.
원문
谷山人以武進定宗庚辰平芳幹難拜嗣宗正憲大夫谷山府院君世宗壬寅嗣宗與右議政趙涓兵曹判書趙末生等受人相訟奴婢暗爲致力得失憲府按覈得情涓等竝中道付處上因敎憲府曰予聞迷劣之人所訟奴婢聽官吏夤緣請托以致冤抑者或有之今此之事予甚嘉之[주:昭代紀年]諡靖厚
엔티티 후보
- person: 연사종 / 延嗣宗, confidence=0.98
- person: 곡산인 / 谷山人, confidence=0.95
- person: 화간 / 芳幹, confidence=0.95
- person: 조균 / 趙涓, confidence=0.97
- person: 조말생 / 趙末生, confidence=0.97
- place: 곡산부 / 谷山府, confidence=0.92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8
- office: 병조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8
- office: 정헌대부 / 正憲大夫, confidence=0.95
- office: 헌부 / 憲府, confidence=0.97
- term: 중도부처 / 中道付處, confidence=0.9
- term: 경후 / 靖厚, confidence=0.97
- term: 소대기년 / 昭代紀年,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昭代紀年은 成宗 연간에编纂된功臣錄類의 주석 표기일 수 있으나, 원문의 정확한 위치와 기능이 불확실함
- 中道付處는 특정 관직명을 가리키는지 단순히 중도에서 처리한 것을 의미하는지 문맥상 명확하지 않음
(태종조)서선
- 기사 ID:
B9C^2_001_013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3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18:00:19.65099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32
한글 번역
이천 사람 현령 원자가 태조 무자년에 문과에 급제한後,文科 우대를 지내고, 태종 을미년에 서자(庶孼子) 손에게 동서반(東西班) 정직을 허락하지 말아嫡子와 서자를 구분할 것 을 건의하였다. 세종 무신년에 형조 판서가 되었고, 그의 아우 서달은 신창 현감이 되었다. 관리와胥吏를 죽이고 표운평 추관을 베어 목을 때 首從을 나누어, 그 노비(奴)를 首로 삼았으며, 또 그와 화해하도록 허락한 것이 드러났다. 상이 명하여 그 전후 추관과 본도 감사를 모두 금부로 내려 보내어 죄를 의논하게 하니差别이 있었다. 좌의정 황희, 우의정맹사정도 연루되어 옥에 갇혔다. 다음 날 명하여 그들만 놓아주고 다만 직을罢직하였다. 서달은 황희의 사위였다.
독음
이천인현령원자태조계유진사文科우대의태종을미청서벽자손물허동서반정직이별적서지분세종무신위형조판서기제달위신창현감살관려표운평추관분수종기이노위수차청화사각상명추기전후추관급본도감사병하금부의죄유차좌의정황희우의정맹사정역연하옥익일명방지만罢其직서달황희지서야[주:조대기년]
의미
이 기사는利川 출신 管領 원자의 관직 이력, 서자 차별 건의, 그리고 그의 아우 서달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서달이 신창 현감 재임 중 관리와胥吏를 죽이고奴를 首로 삼은案情으로 추관들이金部로 내려져 심문받았고, 좌의정 황희와 우의정맹사정까지 연루되었다가 다음 날 풀려났으나罢職되었다. 핵심은 서달이 황희의 사위라는 점이다. 사건의 주요 인물들 간 관계와罪名 처리 결과를 보여주는史料이다.
원문
利川人縣令遠子太祖癸酉進士文科右代言太宗乙未請庶孼子孫勿許東西班正職以別嫡庶之分世宗戊申爲刑曹判書其弟達爲新昌縣監殺官吏表芸平推官分首從以其奴爲首且聽其和事覺上命推其前後推官及本道監司竝下禁府議罪有差左議政黃喜右議政孟思誠亦辭連下獄翌日命放只罷其職徐達黃喜之壻也[주:昭代紀年]
엔티티 후보
- person: 서선 / 徐選, confidence=0.95
- person: 서달 / 徐達, confidence=0.95
- person: 황희 / 黃喜, confidence=0.95
- person: 맹사정 / 孟思誠, confidence=0.95
- person: 표운평 / 表芸平, confidence=0.85
- place: 이천 / 利川, confidence=0.9
- place: 신창 / 新昌, confidence=0.85
- office: 文科우대의 / 文科右代言, confidence=0.85
- office: 형조판서 / 刑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금부 / 禁府, confidence=0.9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0.95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5
- term: 동서반 / 東西班, confidence=0.85
- term: 서벽 / 庶孼, confidence=0.8
- term: 수종 / 首從, confidence=0.85
- work: 조대기년 / 昭代紀年,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표운평(추관 이름으로 표기가 다소 불확실)
- 서벽(庶孼과 庶孽 혼용 가능)
- 물허(勿許)의 구체적 해석)
(태종조)정역
- 기사 ID:
B9C^2_001_013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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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순지이고 호는 백정이다. 해평 사람으로, 부랑장(낮은 군직) 윤규의 아들이다. 고려 복지조에 문과에 합격하여 나와 태종이 같은 방(합격榜)에 되었다. 서로 매우 잘 어우러웠다. 조선이 하늘의 명을 받아 세워지자, 한 시대의 영걸들은 모두가 돌아와 마음을 기울이고 붙었으나, 역은 문을 닫고 병을 키우며 세상에 뜻이 없이泊然하였다. 태종이 오히려 그를 더 칭찬하며 친히 병을 문병하고 혼인을 약속하며 서로 돕자는 의리를 권유하였다. 역을 좌찬성에 임명하고, 집현전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정도이다. 아들 둘: 충경은 삼판(三判)을 지내고, 충석은 지사를 지냈다. 딸은 효영대군补에게嫁하여 태종의 둘째 아들을 배우게 되었다. 충경의 아들 종은 문종의 딸 경혜공주에게嫁하여 영양위(寧陽尉)에 봉해졌다. 딸은 영응대군琰(세종의 여덟째 아들)에게嫁하였다. 증손자 미수는 좌찬성에 이르렀다.
독음
자유순지호백정 해평인랑장윤규자 고려복지조 문과와 아태종동방 상득심환 급본조수명 일시영걸지사 막부귀심반부 역두문양질 박연무의어세 태종익가친신문병약위혼인 면이상조의拜역좌찬성 역사대제학 시정도 이자충경삼판충석치지사 녀적효영대군보 태종제이남也 충경자종문종녀 경혜공주봉영양위 숙세종제팔남 증손미수좌찬성
의미
조선 태종时期的관료 정역(鄭易)의 행적과 가문을 기록한 기사이다. 고려 우왕조에 문과에 합격하여 태종과 함께 방이 되었고, 조선建国後 英傑들이 모두 새 왕조에 붙었으나 정역은 세상에 무심하게 병을 키웠다. 그러나 태종이 오히려 그 清節을 칙찬하며 직접 문병하고 혼인을 약속하였다. 좌찬성·집현전 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정도 시호를 받았다. 아들 충경과 충석도 각각 삼판·지사로 관료가 되었고, 딸은 태종 아들 효영대군에게嫁하는 등 왕실과 복잡한 혼인 관계를 맺었다. 후손들도 문종·세종 왕실과 혼인하며 대제학·좌찬성 등 고위 관직을 이어갔다.
원문
字順之號柏亭海平人郞將允珪子高麗禑朝文科與我太宗同榜相得甚歡及本朝受命一時英傑之士莫不歸心攀附易杜門養疾泊然無意於世太宗益嘉之親幸問疾約爲婚姻勉以相助之義拜易左贊成歷集賢殿大提學諡貞度二子忠敬參判忠碩知事女適孝寧大君補太宗第二男也忠敬子悰尙文宗女敬惠公主封寧陽尉女適永膺大君琰世宗第八男曾孫眉壽左贊成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역(인물) / 鄭易, confidence=0.95
- person: 윤규(정역의 아버지) / 允珪, confidence=0.9
- person: 충경(정역의 아들) / 忠敬, confidence=0.95
- person: 충석(정역의 아들) / 忠碩, confidence=0.95
- person: 효영대군补 / 孝寧大君補, confidence=0.9
- person: 문종 / 文宗, confidence=0.95
- person: 경혜공주 / 敬惠公主, confidence=0.95
- person: 영응대군琰 / 永膺大君琰, confidence=0.9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place: 해평(고향) / 海平, confidence=0.85
- office: 낭장(군직) / 郞將, confidence=0.9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office: 좌찬성 / 左贊成, confidence=0.95
- office: 집현전 대제학 / 集賢殿大提學, confidence=0.95
- office: 삼판 / 參判, confidence=0.9
- office: 지사 / 知事, confidence=0.95
- office: 영양위 / 寧陽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泊然(박연)
- 一時英傑之士莫不歸心攀附
- 女適永膺大君琰世宗第八男 曾孫眉壽左贊成
(태종조)최사유
- 기사 ID:
B9C^2_001_013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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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삭녕출신의 생원·진사으로서 태종 임오년(1402) 문과에 합격한 최사유(자휘지)였다. 사예, 직학사 등을 거치며 수직에서 통정으로 승진했다. 기개가 밝고 성품이 강毅하며 청렴하고 화목하여 덕이 넓고 재능이 빠짐없이 완전했다. 관직은 정2품에 이르렀고, 여든두 살까지 생을 누렸다. 선대의 영광을 더하고 후손에게 축복을 물려주었다. [주: 아들 자항이 행적을 지었다] 아들 자항은 문과에 합격하여 영상을 지냈다.
독음
삭녕인생원진사태종임오문과자휘지력사예직학사수직승통정기품영명부질강의이청혜화덕무불광유과구의재무불전관至이품지귀수향팔전지다광증선대경류후예[주:자항찬행정적]자항문과영상
의미
조선 태종조 문과 출신 관료 최사유(약 字휘지)의 행적을 수록한 행적문이다. 사예·직학사 등을 역임하고 수직에서 통정(정2품)으로 승진했으며, 기개가英明하고 성품이 清廉惠和하여 덕이 넓고 재능이 완전했다. 생존하여 여든두 살까지长寿였고, 선대의 영광을 이어받아 후손에게 福慶을 전해주었다는 평가를 담고 있다. 행적은 아들 자항(文科 합격, 영상 역임)이 지었음을注明한다.
원문
朔寧人生員進士太宗壬午文科字徽之歷司藝直學士壽職陞通政氣稟英明賦質剛毅夷淸惠和德無不宏由果求藝才無不全官至二品之貴壽享八耋之多光增先代慶流後裔[주:子恒撰行蹟]子恒文科領相
엔티티 후보
- place: 삭녕 / 朔寧, confidence=0.95
- person: 최사유 / 崔士柔, confidence=0.95
- person: 최휘지 / 崔徽之, confidence=0.95
- generation: 태종 / 太宗, confidence=0.95
- office: 사예 / 司藝, confidence=0.75
- office: 직학사 / 直學士, confidence=0.75
- office: 통정 / 通政, confidence=0.85
- person: 자항 / 子恒, confidence=0.95
- office: 영상 / 領相, confidence=0.9
- work: 행정 / 行蹟,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사예(司藝 직위의 정확한 직무 범위)
- 직학사(直學士 검인 직위 여부)
- 팔전(八耋, 80세 표기인지 명확한 연수 표기인지)
(태종조)박흥생
- 기사 ID:
B9C^2_001_013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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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 경천이고 호는 국당이다. 영동 사람이다. 13세에 진사에 합격하고 17세에 생원에 합격하였다. 금천(김항), 서항(서승항) 및 종제 랑계은(박문온)과 왕래하며切磋하였다. 상촌 김자순의 문하에서 수학한 적이 있다. 창평현감이 되어 관청에서의 백성 대하는 것이 너그럽고 간소하였으며, 스스로에게 대하는 것은 청렴하고 엄격하였다. 소송 판결을 명철하고 삼갔다. 감사 성억과 조계생이 대체로 도내에서 판결하기 어려운 사건을 그에게 맡겼다. 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돌아가니, 영동의 동향에서 제수 감찰 흥거와 함께 상을 당해 예를 다하였다. 또 산수 사이에 집을 짓고 서로 즐기는데, 서舍人 항이扁額에 이악(二樂)을 썼다. [주:송시열이 지은 묘표] 김천은 영동 사람으로서 찬성종경자의 아들이다. 생원 문과으로 소윤 병마사를 지냈다. [주:국조 방목]
독음
자경천호국당 영동동인년13세진사17세생원여금천서항급종제난계온내왕사절착상학업부모순가지창평현령관간이내민청엄이율기명신옥송감사성억조계생험인다내난단자귀치지상상해영동여제감찰흥거거상진례어측간수산수지역상탐락서사인항편인이악
의미
박흥생(태종조)은 영동 출신으로 13세 진사, 17세 생원에 합격한 인재였다. 금천(김항), 서항, 종제 박문온 등과 교류하며 상촌 김자순에게 수학했다. 창평현령으로 백성에게 너그럽고 스스로에게 청렴했으며, 소송 판단에 명철하여 감사들도 어려운 사건을 그에게 맡겼다. 상을 당해 돌아가 동생 흥거와 함께 상례를 갖추었다. 이후 산수 사이에서隐居하며 즐기는데, 서항이 이악(二樂)의 편액을 걸어주었다. 묘표는 송시열이 지었고, 동생 흥거는 생원 문과로 소윤 병마사가 되었다.
원문
字敬天號菊塘永同人年十三進士十七生員與金釧徐暭及從弟蘭溪渜來往切磋嘗受業于桑村金自粹之門爲昌平縣令寬簡以莅民淸嚴以律己明愼獄訟監司成抑趙啓生咸以道內難斷者歸之遭喪解歸永同與弟監察興居居喪盡禮又築室山水間相湛樂徐舍人暭扁以二樂[주:宋時烈撰墓表]金釧永同人贊成宗敬子生員文科少尹兵馬使[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흥생 / 朴興生, confidence=0.95
- person: 자경천 / 字敬天, confidence=0.9
- person: 호국당 / 號菊塘, confidence=0.9
- person: 김항 / 金釧, confidence=0.9
- person: 서항 / 徐暭, confidence=0.9
- person: 랑계은(박문온) / 蘭溪渜, confidence=0.85
- person: 김자순 / 金自粹, confidence=0.9
- person: 성억 / 成抑, confidence=0.85
- person: 조계생 / 趙啓生, confidence=0.85
- person: 흥거 / 興居, confidence=0.9
- place: 영동 / 永同, confidence=0.95
- place: 창평 / 昌平, confidence=0.95
- place: 상촌 / 桑村, confidence=0.85
- office: 현령 / 縣令, confidence=0.95
- office: 감찰 / 監察, confidence=0.95
- office: 병마사 / 兵馬使, confidence=0.95
- work: 묘표 / 墓表, confidence=0.95
- term: 이악 / 二樂,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扁以二樂의 정확한 문장 구조
- 상악과 하악을 특정할 수 없음
- 監司成抑赵啓生咸의 문장 끊는 위치
(태종조)이정녕
- 기사 ID:
B9C^2_001_014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4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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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38:11.49669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40
한글 번역
자(字)는 단부이고 성주 출신으로, 문경공 이稷의 손자이다. 태종의 딸인 숙혜옹주를 배우로 맞이하였으며, 성원군에 봉해졌다. 총명하고 고대 서적을 좋아하여 서적과 역사를 두루 섭렵하였다. 좌厢대장이 되어 군사 훈련을 지휘하는 데 방법이 있어, 군대가 점차 정예화되었다. 정묘년에 충청도 도관찰사로 부임하고, 을해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장절이다.
독음
자유단부 성주인 문경공稷의 손자 태종의 딸 숙혜옹주를 배필로 맞고 성원군에 봉해졌다. 총명하고 고전에 좋아하여 서력과 역사를 두루 섭렵하였다. 좌厢대장이 되어 훈련을 지도하는 데 요령이 있어 군사들이 차츰 정예화되었다. 정묘년에 나가 충청도 도관찰사가 되었고 을해년에 졸하니 시호는 장절이다.
의미
조선 태종 연간에 활동한武臣 이정녕의 행적을 수록한 기록이다. 고려 말~조선 초 명문家의 후손으로 태종의 딸 숙혜옹주와 혼인하여皇室外척이 되었고, 좌厢대장으로 군사 훈련을 잘 이끌어 부대를 정예화하였다. 이후 충청도 관찰사로 진출하였다가 을해년에 사망, 장절의 시호를 받았다.
원문
字端父星州人文景公稷孫尙太宗女淑惠翁主封星原君聰明好古博涉書史爲左廂大將訓鍊有方兵就精強丁卯出爲忠淸道都觀察使乙亥卒諡章節[주:成侃撰行狀]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정녕 / 李正寧, confidence=1.0
- person: 단부 / 端父, confidence=1.0
- person: 이직 / 李稷, confidence=1.0
- person: 숙혜옹주 / 淑惠翁主, confidence=1.0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place: 성원군 / 星原君, confidence=1.0
- place: 충청도 / 忠淸道, confidence=1.0
- office: 좌厢대장 / 左廂大將, confidence=1.0
- office: 도관찰사 / 都觀察使, confidence=1.0
- term: 자(본관·휘) / 字,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term: 정묘 / 丁卯, confidence=1.0
- term: 을해 / 乙亥,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厢(붉을 전, 군사편성 단위으로서 左厢은 左營에 해당하는 中央軍 편제로 보이나, 정확한 기능分化 시기는 文獻상 불분명함)
(태종조)윤평
- 기사 ID:
B9C^2_001_014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4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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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38:18.02204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41
한글 번역
파평 사람인 인수부윤 윤창자의 아들이 열여섯 살의 나이에 태종의 딸 숙순옹주를 정혼으로 맞이하여 파원군에 봉해졌다.[주:인물고]
독음
파평인 인수부윤 창자, 나이 열여섯에 태종녀 숙순옹주를 대하여 파원군에 봉해지다.[주:인물고]
의미
윤평은 파평 사람으로, 아버지 윤창자가 인수부윤이었다. 열여섯 살에 태종의 딸인 숙순옹주와 혼인하여 파원군에 봉해졌다는 인물 기록이다. 인물고(人物考)에서 보인다.
원문
坡平人仁壽府尹敞子年十六尙太宗女淑順翁主封坡原君[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윤평 / 尹泙, confidence=1.0
- place: 파평 / 坡平, confidence=1.0
- place: 파원 / 坡原, confidence=1.0
- office: 인수부윤 / 仁壽府尹, confidence=1.0
- person: 윤창 / 尹敞, confidence=1.0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숙순옹주 / 淑順翁主,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1.0
(태종조)김구경
- 기사 ID:
B9C^2_001_014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4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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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08:52.3989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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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광주 사람으로서 중진사가 되고 출가하여 중이 되었으나 세상에서 늘 희화되었다. 태종 즉위년인 을유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정해년에 중시에 발탁되어 집현전 직학사가 되었다. 그러나 춘정 변계양과 사이가 좋지 않아 크게 출세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때 죄를 물어 길주 하연으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시를 실었다. 「단풍잎 노란 꽃이 가을이 저물어 가고, 객지에서의 좋은 명절을 물이 함께 흘려보내네. 옛 친구는 어디서 백발을 더할꼬,羌족의 피리 서쪽의 호려 소리가 달빛으로 가득한 누대에 울어 퍼지누나.」 [주: 대동韻玉]」
독음
광주인 중진사 출가하여 중이 되어 세상에 희화되었으니, 태종 을유년에 문과에 올랐고 정해년에 중시에 발탁되어 집현전 직학사가 되었다. 춘정 변계양과 사이가 좋지 않아 크게 드러나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일찍이 사연이 있어 길주 하연으로 유배되었는데, 기별에 이런 시를 실었다. 「楓葉黃花欲暮秋 客中佳佳水同流 故人何處添華髮 羌笛胡笳月滿樓」 [주: 대동운옥]
의미
광주 출신 중진사 김구경이 출가하여 중이 된 뒤 세속에서 비판을 받았으나, 태종 즉위년인 을유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정해년에 중시에 발탁되어 집현전 직학사가 되었다. 그러나 동료 변계양과 갈등하여 출세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유배지 길주 하연에서 보낸 편지에서 가을의 쓸쓸함과 오랜 친구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먼 지방의 쓸쓸한 풍경을 담은 시를 전했다.
원문
光州人中進士出家爲僧爲世所譏太宗乙酉文科丁亥擢重試集賢殿直學士與春亭卞季良相忤不大顯早卒嘗坐事流吉州河演寄詩云楓葉黃花欲暮秋客中佳節水同流故人何處添華髮羌笛胡笳月滿樓[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김구경 / 金九冏, confidence=0.95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0.95
- office: 중진사 / 中進士, confidence=0.9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0.98
- year: 을유 / 乙酉, confidence=0.85
- year: 정해 / 丁亥, confidence=0.85
- exam: 중시 / 重試, confidence=0.9
- office: 집현전 직학사 / 集賢殿直學士, confidence=0.95
- person: 춘정 변계양 / 春亭卞季良, confidence=0.95
- place: 길주 / 吉州, confidence=0.95
- place: 하연 / 河演, confidence=0.8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하연(河演) - 유배지 구체 지명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 寄詩云 이하 시구 일부 표현의 해석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태종조)최흥효
- 기사 ID:
B9C^2_001_014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4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38:37.61118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43
한글 번역
자호는 백원이며 영천 출신이다. 아버지는 판사(判事) 일조(壹祖)이다. 태종조 신묘년에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급제하여 예서 필법에 능숙하여 한때 세상의 존경을 받았다. 특히 초서를 잘하여 관직이 제학에 이르렀다. [주:국조방목에 수록됨]
독음
자백원 영천인 판사일조자 태종신묘생원文科擅隷書筆法위일시소중 우선이어초서 관지제학주국조방목
의미
崔興孝의 기본 인적사항과 학력, 서예 능력을 기술한 기사이다. 태종조 신묘년(1401년)에 생원으로 등용되어 문과에 합격하고, 예서와 초서에 뛰어난 재주를 발휘하여 제학 벼슬에 올랐다. 서예가로 당시 존경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원문
字百源永川人判事壹祖子太宗辛卯生員文科善隷書筆法爲一時所重尤善於草書官至提學[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최흥효 / 崔興孝, confidence=1.0
- person: 백원 / 百源, confidence=1.0
- place: 영천 / 永川, confidence=1.0
- office: 판사 / 判事, confidence=1.0
- office: 제학 / 提學,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判事壹祖子 - ‘판사일조자’의 구조가 아버지 직위 기술인지 확인 필요
- 文科擅隷書筆法 - 원문 ‘文科善隷書筆法’의 구문 구조가 불확실하여擅자 탈락 가능성 있음
- 辛卯年 - 구체적 연도 확인 필요 (태종 즉위년 기준 1401년 추정)
(태종조)권맹손
- 기사 ID:
B9C^2_001_014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4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2T12:37:36.82686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44
한글 번역
자(字)는 효백이고 호는 송당이며 이천인이다. 목사(牧使) 상(詳)의 아들이다. 태종 무자년에 태어나 생원문과에 급제하고 정미년에 중시(重試)에 발탁되어 큰 명성을 얻었다. 태종 9년에 벼슬에 오르고 사진(四鎭)의 방면(方面)을 두루 지켰으며 모두 공평하고 청렴하다는 칭송을 받았다. 관직은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유태재와 가장 친분이 깊었다. 시호는 제평(齊平)이다. [주:대동윤어]
독음
자유효백호송당이천인목사상자태종무자생원문과정미탁중시유성명구년병전사진방면개이공청칭관치지조판서여유태재최선서제평
의미
조선 태종대에 활동한 관리 권맹손의 약력이다. 태종 무자년(1402)에 태어나 생원문과에 합격하고 정미년에 중시에 발탁되었다. 태종 9년(1409) 벼슬에 나아가 사진(四鎭) 방면을 두루 관리하며 청렴과 공정함으로 칭송받았다. 이후 이조판서까지 승진했으며, 유학과 유대(유교적 우정)를 맺었다. 시호는 제평이다. 묘旜(표석)에 새긴 묘사문(墓表文)의 일부로 보인다.
원문
字孝伯號松堂醴泉人牧使詳子太宗戊子生員文科丁未擢重試有盛名九年秉銓四鎭方面皆以公淸稱官至吏曹判書與柳泰齋最善諡齊平[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권맹손 / 權孟孫, confidence=0.95
- person: 권효백(권맹손의 자) / 權孝伯, confidence=0.95
- person: 유태재 / 柳泰齋, confidence=0.9
- place: 이천(지역명) / 醴泉, confidence=0.85
- office: 목사(지방 자치之长관) / 牧使, confidence=0.85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5
- term: 생원문과(과거 급제) / 生員文科, confidence=0.9
- term: 중시(특별 전시) / 重試, confidence=0.9
- term: 병전(벼슬에 오름) / 秉銓, confidence=0.85
- term: 사진방면(사방 요충지) / 四鎭方面, confidence=0.8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 work: 대동윤어(인용 주석) / 大東韻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牧使詳子(목사祥의 아들이라는 해석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원문에 따라牧使詳의 아들이거나牧使詳子로 고유명사일 가능)
- 四鎭方面(사진이 구체적으로哪些 네地方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불확실성)
(태종조)성녕대군종
- 기사 ID:
B9C^2_001_014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4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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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39:16.98382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47
한글 번역
태종의 넷째 아들은 여덟 살에 입학하여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웠고, 또한 궁술을 잘 익혀 백오십 보까지 쏠 수 있었다. 열 살에 대군에 봉해졌고, 사망 시 변한국공에 봉해진 뒤 시호는 소경을 받았다. [주: 변계량이 묘비문을 짓다.] 아들이 없어 안평대군 용을 후사로 삼았다.
독음
태종 제사남 팔세 취학학일신차선습사치백오십보 십세 봉대군급 졸 봉변한국공 시호 소경頃 무자 이안평대군용위사
의미
태종(太宗)의 넷째 아들 성녕대군이 여덟 살에 입학하여 학업에 힘쓰고 궁술에 뛰어났으며, 열 살에 대군에 봉해졌음을 기록한 기사이다. 사망 후 변한국공의 작위를 받고 시호는 소경이며, 아들이 없어 안평대군(瑢)을 후사로 삼았다.
원문
太宗第四男八歲就學學日新且善習射至百五十步十歲封大君及卒封卞韓國公諡昭頃[주:卞季良撰墓碑]無子以安平大君瑢爲嗣
엔티티 후보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성녕대군 / 誠寧大君, confidence=1.0
- person: 안평대군 용 / 安平大君瑢, confidence=1.0
- person: 변계량 / 卞季良, confidence=1.0
- place: 변한 / 卞韓, confidence=0.9
- work: 묘비문 / 墓碑, confidence=0.9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term: 후사 / 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頃 - 시호의 구성字符로 해독되나 단독으로 후사의 뜻이 있어 해석이 이원될 수 있음
(태종조)경녕군비
- 기사 ID:
B9C^2_001_014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4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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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39:45.45607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48
한글 번역
태종의 별자(直系 후손). 태종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다. 원경왕후闵씨에게서 양녕대군 이禔를 낳았다. 효녕대군 이補는 세종대왕의 아버지이다. 성녕대군 이종은 효빈 김씨에게서 낳았고,敬녕군裶은 신빈辛씨에게서 낳았다. 성녕군 인은 온녕군裎과 근녕군禯을 낳았다. 선빈安씨는惠녕군祉과익녕군袳를 낳았다. 숙빈崔씨는煕녕군袉과후녕군衦를 낳았다. [주: 모두 선원보략에서 따온 것임]
독음
태종별자 태종유십이남 원경왕후 민씨탄 양녕대군 제 효녕대군 보 세종대왕 성녕대군 종 효빈 김씨생 경녕군 비 신빈 신씨생 성녕군 인 온녕군 형 근녕군 누 선빈 안씨생 영녕군 지 익녕군 치 숙빈 최씨생 허녕군 이후녕군 개 주:병선원보략초
의미
이 기사는 태종 이방원의 열두 아들의 계보와 어머니를 기록한 것이다. 원경왕후闵씨 소생의 양녕대군 이방원과 효녕대군 이방원이 핵심 인물이며, 특히 효녕대군 이방은 세종세조의 아버지로 조선 왕조의 직계 혈통을 이은 중요인물이다. 나머지 아들들은 각 후궁에서 낳은君号를 받은皇子들로서 경녕군裶 등 10명의 동생들을 열거하고 있다. 왕실 가계도를 파악하는 기본 사료이다.
원문
太宗別子太宗有十二男元敬王后閔氏誕讓寧大君禔孝寧大君補世宗大王誠寧大君種孝嬪金氏生敬寧君裶信嬪辛氏生誠寧君禋溫寧君裎謹寧君禯善嬪安氏生惠寧君祉益寧君袳淑嬪崔氏生煕寧君袉厚寧君衦[주:竝璿源譜略抄]
엔티티 후보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양녕대군 / 讓寧大君, confidence=1.0
- person: 효녕대군 / 孝寧大君, confidence=1.0
- person: 세종대왕 / 世宗大王, confidence=1.0
- person: 성녕대군 / 誠寧大君, confidence=1.0
- person: 경녕군 비 / 敬寧君裶, confidence=1.0
- person: 원경왕후 민씨 / 元敬王后閔氏, confidence=1.0
- person: 효빈 김씨 / 孝嬪金氏, confidence=1.0
- person: 신빈 신씨 / 信嬪辛氏, confidence=1.0
- work: 선원보략 / 璿源譜略, confidence=1.0
- term: 별자 / 別子, confidence=0.9
- person: 온녕군 형 / 溫寧君裎, confidence=1.0
- person: 근녕군 누 / 謹寧君禯, confidence=1.0
- person: 영녕군 지 / 惠寧君祉, confidence=1.0
- person: 익녕군 치 / 益寧君袳, confidence=1.0
- person: 허녕군 / 煕寧君袉, confidence=1.0
- person: 후녕군 개 / 厚寧君衦,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別子는 왕의 직계 후손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文中에서의 구체적 용법이 일반 가계용어와 왕실 전용 용어 중 어느 것인지 문맥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 誠寧大君種의 경우 成宁大君으로 읽는 설과 성녕대군 종이라는 읽는 설이 모두 가능하며 원문 오기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태종조)안몽득
- 기사 ID:
B9C^2_001_015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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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6:57:34.55403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50
한글 번역
광주 사람인 사간공(思簡公)의 형제로서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총려하며 용모가 옥처럼 아름다웠다. 13세에 아버지가 전농사(典農寺)의 직임을 맡았을 때 그 기晬日(생일)에 만수정(萬壽亭)의 노래를 지어 생일 선물로 바치며 말하기를, ‘삼층 대 위에 세 줄의 분粉,’ ‘만세 정 곁에는 만수의 잔,’ ‘오늘 오늘 저물었다 말하지 마오,’ ‘해마다 오늘 이 연회가 열린다’ 하였다. 좌중의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며 ‘천하의 기재奇才라’ 하였다. 태종조에 관직이 전농사 판사에 이르렀다. 아들 용지는 현감을 지냈다. 용지의 아들 우는 字가 태허이고, 중종 갑신년에 진사文科에 합격하여 부사를 지냈다. 우의 아우 주는 字가 태고이고, 중종 무자년에 진사文科에 합격하여 문과 정[주:국조방목]이 되었다. 주의 아우 택은 字가 태거이고 호는 광릉자이며, 경자년에 생원이 되고 음보(소관 推荐으로 任官)로 도사가 되었다. 택의 아들 응銁은 字가 여량이고, 명종 병진년에文科에 합격하여 부사를 지냈다.[주:동상] 이상 태종조.
독음
광주인 사간공성제유총혜모여옥년십삼부전농사사기서진작만수정가헌수일삼층대상삼행분만세정변만수배금일막언금일모년년금일차연개좌중대왈천하기재태종조관지전농사판사자용지현감용치지우자태허중종갑신진사문과부사우제조사자태고중종무자진사문과정[주:국조방목]조사택자태거호광릉자경자생원음보도사택자응흠자여량명종병진문과부사[주:동상]이상태종조
의미
광주 출신의 안몽득이 13세에 아버지의 생일 잔치에서 지은 만수정가를 바치며 천하의 기재라 칭송받은 기록이다. 이후 태종조에 전농사 판사로 관료 생활을 하였고, 그 후손들이 代代文科 과거에 합격하여 부사·도사 등 중앙과 지방 관직을 역임한 가문 기록이다. 조선 초기 양반 가문의 세속化和 관료 세습 양상을 보여준다.
원문
廣州人思簡公省弟幼聰慧貌如玉年十三父典農寺事器晬辰作萬壽亭歌獻壽曰三層臺上三行粉萬歲亭邊萬壽杯今日莫言今日暮年年今日此筵開座中大悅曰天下奇才太宗朝官至典農寺判事子勇智縣監勇智子宇字太虛中宗甲申進士文科府使宇弟宙字太古中宗戊子進士文科正[주:國朝榜目]宙弟宅字太居號廣陵子庚子生員蔭補都事宅子應銁字汝亮明宗丙辰文科府使[주:同上]以上太宗朝
엔티티 후보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1.0
- person: 사간공 / 思簡公, confidence=0.9
- person: 안몽득 / 安夢得, confidence=1.0
- office: 전농사 판사 / 典農寺判事, confidence=1.0
- office: 전농사 직임 / 典農寺事, confidence=1.0
- person: 용지 / 勇智, confidence=1.0
- person: 우 / 宇, confidence=1.0
- person: 주 / 宙, confidence=1.0
- person: 택 / 宅, confidence=1.0
- person: 응銁 / 應銁, confidence=1.0
- work: 만수정가 / 萬壽亭歌,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1.0
- term: 도사 / 都事,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이수
- 기사 ID:
B9C^2_001_015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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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40:03.88205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51
한글 번역
봉산 출신이다. 태조 연간 병자년에 생원에 장원 합격하고, 태종 연간 갑오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세종이 잠저에 계실 때 사부가 되었고,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 판서로 발탁되었다. 예문관 대提학을 역임하고, 시호는 문정이며,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독음
봉산인 태조 병자생원 장원 태종 갑오년 문과 예수 잠저 사부 및 즉위 이조 판서 예문관 대提학 시 문정 배식 세종 묘정
의미
조선 세종대 왕조의 관리 이수(李隨)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로, 그가 봉산 출신으로 태조와 태종 연간에 과거에 합격하고 세종 즉위 후 중앙 요직을 역임한 후 문정 시호를 받고 세종묘에 배향되었음을记载한다.
원문
鳳山人太祖丙子生員壯元太宗甲午文科以世宗潛邸師傅及卽位擢吏曹判書藝文館大提學諡文靖配食世宗廟廷[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수 / 李隨, confidence=1.0
- place: 봉산 / 鳳山, confidence=1.0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예문관 대提학 / 藝文館大提學, confidence=1.0
- term: 생원 장원 / 生員壯元,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잠저 사부 / 潛邸師傅, confidence=1.0
- term: 배식 / 配食,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세종조)탁신
- 기사 ID:
B9C^2_001_015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5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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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40:16.61393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53
한글 번역
자는 겸부이다. 광주 사람으로, 간의대부 광茂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성리학에 전심하였다. 광茂가 말하기를 “우리 집의 증참이다.”고 하였다. 고려 우조 때에 문과에 합격하여 조선에 입조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독음
字謙夫光州人諫議大夫光茂子自少專心性理之學光茂曰吾家之曾參高麗禑朝文科入本朝累官至左參贊諡文貞
의미
탁신(卓愼)은 자가 겸부이고 본향은 광주이다. 아버지는 간의대부 광茂이고, 어려서부터 성리학에 힘썼다. 아버지 광茂는 자기를 “우리 집의 증참”이라 칭찬하였다. 고려 우조 때 문과에 합격하여 조선에 진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좌참찬(정一品에 가까운 고관)에 올랐으며, 죽어서 시호 문정을 받았다. 성리학修養과 과거 합격이라는 출세, 그리고 고관至라는 관료 경력을 갖춘 인물이다.
원문
字謙夫光州人諫議大夫光茂子自少專心性理之學光茂曰吾家之曾參高麗禑朝文科入本朝累官至左參贊諡文貞[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탁신 / 卓愼, confidence=1.0
- person: 광모 / 光茂, confidence=1.0
- person: 증참 / 曾參, confidence=1.0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1.0
- office: 간의대부 / 諫議大夫, confidence=1.0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성리학 / 性理之學, confidence=1.0
- term: 본조(조선) / 本朝,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卓愼(탁신)인지濯慎(탁신)인지一字的不同으로 동음이의 가능성 있으나, 주에서卓愼으로 확정함
(세종조)예승석
- 기사 ID:
B9C^2_001_015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5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10:14.71688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54
한글 번역
의흥군 부계현 출신으로, 세종조 정묘년에 진사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군현을 전전하며 벼슬길에 나섰다. 관료로서의 재능으로 이름을 얻었고, 관직은 감사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감무인 사문이요, 아내의 아버지는 서운정 벼슬을 한 탐진의 안복이다.
독음
의흥군 부계현인 세종 정묘 진사 문과 역시 군현 이력 간관至 감사 부 감무 사문 처부 서운정 탐진 안복
의미
세종조에 진사 문과에 급제하여 관료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감사까지 오른 인물이다. 출신지는 충청도 부여군에 속한 의흥군 부계현이고, 아버지와 아내의 아버지 신분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원문
義興郡缶溪縣人世宗丁卯進士文科歷試郡縣以吏幹稱官至監司父監務思文妻父書雲正耽津安福[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lace: 의흥군 / 義興郡, confidence=1.0
- place: 부계현 / 缶溪縣, confidence=1.0
- person: 예승석 / 芮承錫, confidence=1.0
- person: 사문 / 思文, confidence=0.9
- person: 안복 / 安福, confidence=0.9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office: 감무 / 監務, confidence=1.0
- office: 서운정 / 書雲正, confidence=1.0
- term: 정묘 / 丁卯, confidence=1.0
- term: 이간 / 吏幹,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耽津(탐진)
- 文科(문과)
- 歷試郡縣(역시 군현의 구체적 의미)
(세종조)정식
- 기사 ID:
B9C^2_001_015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55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40:34.76678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55
한글 번역
자는 빙부이다. 나주 사람으로, 고려 시대 정승 가신의 후손이다. 대호군 자신의 아들이며, 세종 임오년 문과에 합격하였다. 중추부사를 지임하고 벼슬을中外에서 두루 옮겼다. 정사를 행하여 청렴하고 곧으며 너그럽지 않았다. 시호는 경무이다.
독음
字는 빙부라羅州人高麗政丞可臣之後大護軍自新子世宗壬子文科知中樞府事歷揚中外爲政廉直不苛諡景武
의미
조선 세종대에 문과에 합격한 관료 정식의 행적을 수록한 짧은 전기이다. 나주 출신으로 고려 정승 가신의 후손으로서 중추부사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청렴하고 곧은 성품을 지닌 관료로 평가받았다. 시호는 경무이다.
원문
字憑甫羅州人高麗政丞可臣之後大護軍自新子世宗壬子文科知中樞府事歷揚中外爲政廉直不苛諡景武[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식 / 鄭軾, confidence=0.95
- person: 자 / 字, confidence=0.85
- person: 가신 / 可臣, confidence=0.85
- person: 자신 / 自新, confidence=0.85
- place: 나주 / 羅州, confidence=0.95
- office: 대호군 / 大護軍, confidence=0.9
- office: 중추부사 / 中樞府事, confidence=0.9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중외 / 中外, confidence=0.8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5
- term: 경무 / 景武,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字憑甫의 정확한 독음과 의미(자의 이름인지 별칭인지 불분명)
- 可臣의 정확한 인물 확인
- 自新의 인물 확인
- 세종 임오년의 정확한 서기 연도
(세종조)이의흡
- 기사 ID:
B9C^2_001_015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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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40:28.28782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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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전의인 부원군 이사의 손아버지는 고려 우조 때 과거에 합격하여 겸양왕 즉위기에持平을 지냈으나, 정몽주의 당파牵连으로 먼 지방에 유배되었다. 이의흡은 아버지의 관로로 광흥창사로 보임되었으며, 세종 기유년(1429년) 과거에 합격하여知申事가 되었다. 그가 재임한 곳에서 소문이 좋았다. 이의흡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元孝는 단종 갑술년(1454년) 과거에 합격하여 판결사로 있으면서愼孝를 낳았고,愼孝는 음보로 감사가 되었다. 아들 德崇는 예종 임오년(1462년)進士로 급제한 후 대사감이 되었다. 연산군 때 直言을 하여 화를 입었다. 德崇의 아우 命崇는 字가,居易이고, 성종 임진년(1492년) 과거에 합격하여 병신년(1536년) 重試에 뽑혀副提學이 되었다.命崇는 형 元孝의 後사를 이었다.命崇의 형祿崇도 성종 을미년(1495년) 과거에 합격하여寺正이 되었는데, 이 세 형제가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다.
독음
전의인 부원군 사안의 손아버지가 고려 우조 때 과거에 합격하여 겸양왕 때持平이었는데, 정몽주의 당파로 인해 먼 땅에 유배되었다. 이의흡은 음보로 광흥창사가 되었고, 세종 기유년(1429년) 과거로 知申事가 되어 재임하는 곳에서 명성이 있었다. 이의흡의 아들 元孝는 단종 갑술년(1454년) 과거에 합격하여 판결사이 되었고,愼孝는 음보로 감사가 되었고, 아들 德崇는世祖 임오년(1462년)進士로 과거에 합격하여 대사감이 되었다.燕山 朝에直言으로 화를 입었다. 德崇의 아우 命崇는 字가,居易이고,成宗 임진년(1492년) 과거에 합격하고,병신년(1536년) 중시에서 重試로,副提學이 되었다.出繼하여 元孝의 뒤를 이었는데,命崇의 형祿崇도 成宗 을미년(1495년) 과거에 합격하여寺正이 되었고, 三형제가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다.
의미
조선 세종조 인물 李宜洽의 가문과 관료 경력을 기술한 기사이다. 조부(전의인 부원군 이사의)는 고려 말 관료였으나 정몽주 사류에 연좌되어 유배되었고, 이의흡은 세종대에 음보로 관료에 발탁되어知申事로 재임하며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자손들은 成宗·연산군대에 세代人物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는 등 가문으로서의 번영을 이루었으며, 특히 德崇는直言으로 화를 입은 점이 특기된다.
원문
全義人府院君思安孫父作仕高麗禑朝文科恭讓王時爲持平以鄭夢周黨流于遠地宜洽蔭補廣興倉使世宗己酉文科知申事所莅有聲績[주:國朝榜目大東韻玉合錄]宜洽二子元孝端宗甲戌文科判決事愼孝蔭監司子德崇世祖壬午進士文科大司諫燕山朝以直言被禍德崇弟命崇字居易成宗壬辰文科丙申重試副提學出繼元孝命崇兄祿崇成宗乙未文科寺正三兄弟登第[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의흡 / 李宜洽, confidence=1.0
- person: 전의인 부원군 / 全義人府院君, confidence=1.0
- person: 이사(리사의) / 思安, confidence=0.9
- person: 원효 / 元孝, confidence=1.0
- person: 신효 / 愼孝, confidence=1.0
- person: 덕숭 / 德崇, confidence=1.0
- person: 명숭 / 命崇, confidence=1.0
- person: 록숭 / 祿崇, confidence=1.0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1.0
- office: 持平, confidence=1.0
- office: 집사 / 知申事, confidence=1.0
- office: 광흥창사 / 廣興倉使, confidence=1.0
- office: 대사감 / 大司諫, confidence=1.0
- office: 부提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사정 / 寺正,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作仕(작사)의 구체적 직위와 의미)
- 全義人府院君思安孫父(계승 관계의 정확한 해석)
- 出繼(어느쪽에서 어느쪽으로 양자되었는지의 상세)
- 重試(재시에서의 역할과 구체적 절차)
(세종조)서즐
- 기사 ID:
B9C^2_001_015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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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知禮人과 동현의 윤은보가 함께 장지도에게 배웠으며, 그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장지도가 죽자 검은 관을 쓰고 허리에 끈을 두르고 묘소 곁에 초막을 지어 직접 숯을 때어 제물을 바쳤다. 또 부모의 죽음을 당하여 6년간 상여에 거처 살았다. 세종 조에 이르러 명이 내려 그 집 문을 표창하게 하였다.
독음
지지인이 동현 윤은보와 함께 장지도에게 수학하고 그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장지도가 죽자 현관에 요절(腰絰)을 하고 묘측에 초를 세우고 친히 찬물로 공을 바쳤다. 또 부모의 상을 당하여 6년 동안 상여에 거했다. 세종조에命하여 그 문을표창하였다[주:대동윤옥]
의미
지지인(知禮人)과 윤은보가 장지도에게 수학하여 스승을 아버지처럼 섬겼다. 스승이 죽은 뒤 상복을 갖추고 묘측에 초막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이후 부모의 상까지 합하여 6년간 상여에 거했다. 세종대皇上이 이를 듣고 그 집 문을旌表(표창)하였다. 효도와 스승 존경의 실천을 함께 기른 인물에 대한 기록이다.
원문
知禮人與同縣尹殷保受學于張志道事之如父志道歿玄冠腰絰廬於墓側躬爨供奠又遭父母歿居廬六年世宗朝命旌其門[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지지인 / 知禮人, confidence=0.9
- person: 윤은보 / 尹殷保, confidence=0.9
- person: 장지도 / 張志道, confidence=0.95
- place: 동현 / 同縣, confidence=0.8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work: 대동윤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知禮人은 관명(官名)인지 호칭(號稱)인지 불분명
- 躬爨의 구체적 행위 범위가 명확하지 않음
- 旌其門의 구체적 표창 형식이 문헌상에 기록되지 않음
(세종조)윤은보
- 기사 ID:
B9C^2_001_015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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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예법을 통달한 윤은보와 같은 고을 사람 서측이 함께 장치지에게 수業을 받았다. 장치가 사망하자 그를 위해 복상하며 무덤 옆에 오막살이를 짓고 기거하였다. 어느 날 꿈을 꾸고 급히 돌아갔더니 아버지가 병에 걸려 곧 사망하였다. 장사지낸 뒤에도 아버지 무덤 옆 오막살이에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울부짖었으며, 보름과 초하루가 되면 장치의 무덤에 제사를 올렸다. 세종이 이를 듣고 그 이웃에 표액을 내리고 벼슬에 임명하였다.
독음
예를 아는 사람 윤은보와 같은 현 사람 서측이 장치지에게 수业하였다. 장치지 몯자为之복상, 죽庐墓측에 구축하였다.一日 감몽 급히 귀기, 부 병 작尋死, 기장又 수庐於 부분, 아침저녁 호곡至此막면 则 치奠 장분. 세종 문지命 표기력,拜之以관.
의미
윤은보는 스승 장치의 사망 후 무덤 옆에서 복상하며 살았고, 아버지가 사망하자 역시 무덤 옆에서 아침저녁으로 애도하며 보름과 초하루마다 스승의 무덤에도 제사 지냈다. 효행과 스승에 대한 충성을 모두 갖춘 인물로 세종이 이를 높이 사 표액하고 벼슬에 등용한 것이다.
원문
知禮人與同縣徐騭受業于張志道志道歿爲之服喪築廬墓側一日感夢急歸父病作尋死旣葬又守廬於父墳晨夕號哭至朔望則致奠張墳世宗聞之命旌其閭拜之以官[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은보 / 尹殷保, confidence=0.95
- person: 서측 / 徐騭, confidence=0.9
- person: 장치지 / 張志道, confidence=0.85
- office: 예를 아는 사람 / 知禮人, confidence=0.8
- work: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term: 표액 / 旌閭,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知禮人은 관직명이나 칭호로 해석할 수 있으나 정확한 지위를 단정하기 어려움
(세종조)장영실
- 기사 ID:
B9C^2_001_016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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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아산 출신으로 상호군에 올랐다. 임금이 비로소 아악(제사용 악곡)을 만들기 시작하자 영실과 박연이 함께 이를 도왔다. 사람들은 박연과 영실을 세종대 제작의 찬란한 시절에 맞추어 태어난 인물이라 여겼다.
독음
아산인위상호군상시제아악영실여박연찬성지인다개이위연여영실위세종제작지성응기생
의미
장영실이 아산 출신으로 상호군에 나아가면서, 세종이 아악을 새로 만들 때 박연과 함께 이를 도왔다. 당시 사람들이 박연과 영실을 세종조 제작 사업을 위해 시기를 맞춰 태어난 인물로 칭송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牙山人爲上護軍上始製雅樂英實與朴堧贊成之人皆以爲堧與英實爲世宗制作之盛應期而生[주:昭代紀年]
엔티티 후보
- person: 장영실 / 蔣英實, confidence=0.95
- person: 박연 / 朴堧, confidence=0.95
- place: 아산 / 牙山, confidence=0.9
- office: 상호군 / 上護軍, confidence=0.9
- work: 아악 / 雅樂, confidence=0.8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制作之盛應期而生의 정확한 구두점 범위와 문장 구조
(세종조)김지경
- 기사 ID:
B9C^2_001_016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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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가 유후이고, 선산 출신이다. 판서 김澍의 증손으로서 세종 시대에 조상의 관직으로 출사하여 차례로 대간 기관을 역임했으며, 논쟁에서 굽히지 않았다. 네 차례 감사를 지냈고, 어디를 가든 모두 잘 다스렸다. 관직이 중추부、知중樞府事에 이르렀고, 시호는 경질이다. 아들 김應箕는 문과에 급제하여 좌상에 이르렀다. 김之慶의 아우弟 成慶은 자가 자영이고, 성종 임진년(149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헌납이 되었다.
독음
자(字)는 유후, 선산인이다. 판서澍의 증손으로서 세종조에 음보로 출사하여 차례로 대간을 역임하고, 논사불요하였다. 네 번이나 감사가 되었고, 가는 곳마다 모두 잘 다스렸다. 관직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시호는 경질이다. 아들 응기는 문과에 급제하여 좌상에 이르렀다. 之慶의 아우 成慶은 자가 자영이고, 성종 임진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헌납에 이르렀다.
의미
조선 세종 시대 관인 김지경의経歴을 수록한 기사다. 음보로 출사하여 태학·비서간 등의 대간직을 역임하고, 네 차례 감사를 지내며 능직을 발휘했다. 관직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시호는 경질이다. 아들 김응기는 문과 급제 후 좌상에 올랐다. 아우,成慶도 성종 임진년(1492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헌납을 역임했다.
원문
字裕後善山人判書澍曾孫世宗朝以蔭進累歷臺諫論事不撓四爲監司所至皆治官至知中樞府事諡景質子應箕文科左相[주:大東韻玉]之慶弟成慶字子榮成宗壬辰文科獻納[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지경 / 金之慶, confidence=1.0
- person: 김숙 / 金澍, confidence=1.0
- person: 응기 / 應箕, confidence=1.0
- person: 성경 / 成慶, confidence=1.0
- place: 선산 / 善山,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대간 / 臺諫,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office: 지중추부사 / 知中樞府事, confidence=1.0
- office: 헌납 / 獻納, confidence=1.0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1.0
- term: 자(的字) / 字, confidence=1.0
- term: 음보 / 以蔭,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김맹
- 기사 ID:
B9C^2_001_016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6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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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41:41.06417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62
한글 번역
자가 자진이다. 김해 사람으로, 처사(관직에 나가지 않은 선비) 克一의 아들이다. 세종 무오년(1438)에 생원이 되었고, 진사 신유년(1461)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의가 되었다. 성품이 청렴하고 세도에 아부하지 않았다. 일흔네 살에 사망하였다. 아들 준, 손자 기, 손자 미, 손자 개는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다. 주:『국조방목』 김맹의 아우 勇은 세종 정묘년(1467)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역이 되었다. 주:같은 책
독음
자 자진 김해인 처사극일자 세종 무오 생원 진사 신유 문과 집의 성 염퇴 불부 세리 년 칠십사 졸 자 준 손 기 손 미 손 개登제 주:국조방목 맹 제 용 세종 정묘 문과 검역 주:同上
의미
조선 세종조 인물 金孟의 전기이다. 김해 태생으로 处士 克一의 아들이다. 세종 무오년(1438)에 생원, 신유년(1461)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의에 이르렀다. 성품이 청렴하고 세도에 아부하지 않는 점이 주목된다. 74세로 사망하였으며, 아들 준과 손자 기·미·개는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다. 아우 勇 역시 세종 정묘년(1467)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역이 되었다.
원문
字子進金海人處士克一子世宗戊午生員進士辛酉文科執義性廉退不附勢利年七十四卒子駿孫驥孫馹孫皆登第[주:國朝榜目]孟弟勇世宗丁卯文科檢閱[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맹 / 金孟, confidence=1.0
- person: 자진 / 子進, confidence=1.0
- place: 김해 / 金海, confidence=1.0
- person: 극일 / 克一, confidence=1.0
- term: 처사 / 處士, confidence=1.0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1.0
- office: 검역 / 檢閱,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 person: 용 / 勇,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김담
- 기사 ID:
B9C^2_001_016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6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8-01T18:02:20.32140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63
한글 번역
자(字)는 구성(巨源)이고 예안 출신으로, 현감 효양의 아들이다. 세종조 기묘(143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를 지냈다. 성격이 온화하고典雅하며, 노여움과 기쁨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천문에 정통했다. 정묘(1447)년에 중시에 발탁되어 급제하였다. 시호는 문절이다. 형의 이름은 김증(潧)인데, 다른 기록으로는 김증(曾)으로도 쓴다. 김증도 세종 기묘년 문과에 합격하여 형제가 나란히 급제하였다. 김담은 정묘년 중시에 급제하여 관직이 헌납에 이르렀고, 금산군으로 나가 수비하다가 관직에서 사망하자 백성들이 부모처럼 애도하였다. 「대동운옥」에서 발췌하였다.
독음
字는 구성(巨源) 예안인(禮安人) 현감(縣監) 효양(孝良)의 아들 세종(世宗) 기묘(乙卯) 문과(文科) 이조 판서(吏曹判書) 성격이 온화하고典雅(溫雅)하며 노여움과 기쁨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음(喜怒不形於色) 천문(天文)에 정통함 정묘(丁卯)에 중시(重試)에 발탁되어 급제함 시호는 문절(文節) 형(兄)은 김증(潧) 또 다른 기록으로는 김증(曾) 함 김증도 세종 기묘(乙卯) 문과에 급제하여 형제가 나란히 합격함(兄弟聯璧) 정묘(丁卯) 중시에 급제하여 관직이 헌납(獻納)에 이르렀고 금산군(金山水?)으로 나가 수비하다가 관직에서 사망하자 백성들이 부모처럼 애도함「大동운옥(大東韻玉)」에서 발췌
의미
세종조 문신 김담은 예안 출신으로 현감 효양의 아들이다. 1435년 기묘文科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까지 올랐으며, 성격이 온화하고 노여움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다. 천문에 정통했고 1447년 정묘重試에 발탁되었다. 형 김증도 같은 해 기묘文科에 합격하여兄弟聯璧(형제가 나란히 백옥같이 빛남)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김담은 관직이 헌납에 이르렀고 금산郡으로 수비에 나갔다가官에서 사망하자 백성들이 부모처럼 애도하였다. 시호는 문절이다.
원문
字巨源禮安人縣監孝良子世宗乙卯文科吏曹判書性溫雅喜怒不形於色精於天文丁卯擢重試諡文節[주:國朝榜目]兄潧[주:一作曾]世宗乙卯文科兄弟聯璧丁卯重試官至獻納出守金山卒于官吏民哀之如父母[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담 / 金淡, confidence=1.0
- person: 김증 / 金潧, confidence=1.0
- place: 예안 / 禮安, confidence=1.0
- place: 금산 / 金山, confidence=0.7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헌납 / 獻納,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 term: 형제 연벽 / 兄弟聯璧,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0.9
- term: 문절 / 文節,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金山卒于官吏民哀之如父母의金山이郡인지山인지 불분명하며丁卯重試가 정묘 1447년을 가리키는지 확인 필요
(세종조)박홍신
- 기사 ID:
B9C^2_001_016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64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42:05.32473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64
한글 번역
밀양 출신의 박홍신은 뛰어난 기개와 무예를 지니고 있었다. 사재감정에 나아가 관직에 올라 세종 기해년(1419년)에 좌군병마부사로 대마도를 정벌하는 데 참여하였다. 선봉에 나가 용력하게 싸우다 전사하자, 점필재 김종직이 그를 위해 전기를 지었다.
독음
밀양인 척탕유무간 위사재감정 세종기해 이내좌군병마부사로 정대마도 선등력전이자 점필재 김종직 위지작전
의미
조선 세종조의 무장 박홍신의 기록이다. 밀양 출신으로 용감한 성품과 무예에 능했던 그는 사재감정 관직에 있다가, 세종 1년(1419년) 대마도 정벌에 좌군병마부사로 참여하여 선봉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 당시 유명한 학자였던 점필재 김종직이 그를 기리며 전기를 지어주었다. 이 기록은 세종대 대마도 침탈 정벌의 역사적 사실과 그 과정에서殉國한 무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문
密陽人倜儻有武幹爲司宰監正世宗己亥以左軍兵馬副使征對馬島先登力戰而死占畢齋金宗直爲之作傳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홍신 / 朴弘信, confidence=0.95
- place: 밀양 / 密陽, confidence=0.95
- place: 대마도 / 對馬島, confidence=0.95
- office: 사재감정 / 司宰監正, confidence=0.85
- office: 좌군병마부사 / 左軍兵馬副使, confidence=0.9
- person: 김종직 / 金宗直, confidence=0.95
- term: 점필재 / 占畢齋, confidence=0.9
- term: 척탕 / 倜儻, confidence=0.85
- term: 무간 / 武幹, confidence=0.75
- term: 선등 / 先登, confidence=0.9
- term: 력전 / 力戰,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무간(武幹) - 무과(武科) 내지는 무예의 재능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해석이 불확실함
- 사재감정(司宰監正) - 궁중의 음식물 관리를 맡던 사재감의 정직으로, 무신이了这 관직에 오르는 것이 드물어 정확한 직무 범위가 불확실함
(세종조)조주
- 기사 ID:
B9C^2_001_016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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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42:12.57718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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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도곡이라는 호를 썼으며 강진 출신이다. 군수(郡守) 사순(士舜)의 아들이다. 세종조 임자(壬子)년에 문과 장원(壯元)에 급제했다. 만년에 나주 세화리(細花里)로 물러나 살았으며 명절이 되면 반드시 망궐례(望闕禮)에 참여했다. 대제학(大提學) 난계(蘭溪) 박연(朴堧)의 사위였다. 80여 년을 살아서 세상을 떠났다.
독음
호 도곡 강진인 군수 사순자 세종 임자 문과 장원 만년 퇴거 나주 세화리,遇 절일 필수 참여 망궐례 대제학 난계 박연 사위也 년 팔십 여 졸
의미
조선 세종조에 강진 출신으로 문과 장원에 급제하여 대제학 박연의 사위가 된 인물의 행적을 수록한 기록이다. 만년에 나주 세화리로 내려가 명절마다 망궐례에参与的 전 퇴직 관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인물은 도곡을 호로 칭했으며, 사망 시 80세 이상이었다.
원문
號道谷康津人郡守士舜子世宗壬子文科壯元晚年退居羅州細花里遇節日必參望闕禮大提學蘭溪朴堧壻也年八十餘卒[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도곡 / 道谷, confidence=0.95
- place: 강진 / 康津, confidence=0.98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8
- person: 사순 / 士舜, confidence=0.98
- term: 문과 장원 / 文科壯元, confidence=0.98
- place: 나주 세화리 / 羅州細花里, confidence=0.85
- term: 망궐례 / 望闕禮, confidence=0.92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0.98
- person: 박연 / 朴堧,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8
불확실한 어휘
- 세종 임자년이 1452년(단종 4년)인지 1456년(세종 38년)인지 추가 확인 필요
- 蘭溪가 인물 호/자还是 호칭인지 불확실
- 細花里의 정확한 위치와 현대 행정구역 대응
(세종조)이숙무
- 기사 ID:
B9C^2_001_016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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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67
한글 번역
한국산 사람이자 밀직(密直)으로 종학(種學)의 아들이자 문정공 이색(李穡)의 손자 이숙무(李叔畝)는 아버지가 무고하게 죽은 까닭에 평생 과거에 나가지 않았으며, 음직(蔭職)으로 올라가 판형조(判刑曹)가 되었다. 남의 원한을 묻는 데冤枉이 없었고, 관직을 차례로 오르며 知敦寧府事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양도(良度)였다. 아우 이숙지(李叔畤)는 세종조에 대사헌이 되어 곧은 명성이 있었으며, 관직은 좌참찬(左參贊)에 그쳤다. 아우 이숙복(李叔福)은 태종 무자년에 생원 문과에 합격하여 병조 정랑이 되었으나, 박습(朴習)에 연좌되어 참诛당했다. 이숙무의 아들 이형증(李亨增)은 첨지(僉知)가 되었다. 이형증의 아들 이인간(李仁堅)은 단종 계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전한(典翰)이 되었다. 이형증의 형 이원증(李元增)은 목사(牧使)였고, 이원증의 아들 이영은(李永垠)은 세조 병자년에 문과에 합격하고, 정축년 重試에서 장원했으며, 또 英試에 발탁되어 합격하여佐理功臣과 한국산군(韓山君)에 녹선되었다.
독음
한국산인밀직종학자문정공穡손숙무이부사비고종신불부거이의음진판형조숙문무누루관지촉녕부사혈양도제제숙무세종조위대사헌유직명관지좌참찬제숙복태종무자생원문과병조정랑좌박습피추숙무자형증첨지형증자인간단종계유문과전한형증형원증목사원증자영은세조병자문과정축중시장원우철발영시참판좌리공신한국산군
의미
조선 세종조의 문관 가문인 이색 가문의 계보이다. 문정공 이색의 손자 이숙무는 아버지가 무고하게 사망한 것을 원한하여 평생 과거에 불참하였으나, 음직으로 관직에 나아가 판형조 판관, 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아우 이숙지는 세종조 대사헌으로 곧은 명성을 떨쳤고, 이숙복은 태종 연간 병조 정랑이었으나 박습사건에 연좌되어 처형되었다. 이후 손자 대부터 가문의 관력이 회복되어, 이인간이 단종조 전한에 오르고, 이영은이 세조조 문과에 합격하여 重試 장원, 英試 발탁의 영예를 안았다.
원문
韓山人密直種學子文靖公穡孫叔畝以父死非辜終身不赴擧以蔭進判刑曹淑問無冤累官至知敦寧府事諡良度[주:大東韻玉]弟叔畤世宗朝爲大司憲有直名官止左參贊[주:同上]弟叔福太宗戊子生員文科兵曹正郞坐朴習被誅[주:國朝榜目]叔畝子亨增僉知亨增子仁堅端宗癸酉文科典翰亨增兄元增牧使元增子永垠世祖丙子文科丁丑重試壯元又擢拔英試參判佐理功臣韓山君[주:同上]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숙무 / 李叔畝, confidence=1.0
- person: 이숙지 / 李叔畤, confidence=1.0
- person: 이숙복 / 李叔福, confidence=1.0
- person: 이형증 / 李亨增, confidence=1.0
- person: 이인간 / 李仁堅, confidence=1.0
- person: 이원증 / 李元增, confidence=1.0
- person: 이영은 / 李永垠, confidence=1.0
- person: 이색 / 李穡, confidence=1.0
- place: 한국산 / 韓山, confidence=1.0
- office: 밀직 / 密直, confidence=0.95
- office: 판형조 / 判刑曹, confidence=1.0
- office: 촉녕부사 / 敦寧府事,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좌참찬 / 左參贊, confidence=1.0
- office: 병조정랑 / 兵曹正郞, confidence=1.0
- office: 첨지 / 僉知, confidence=1.0
- office: 전한 / 典翰, confidence=1.0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 term: 양도 / 良度, confidence=1.0
- term: 좌리공신 / 佐理功臣, confidence=0.95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0.95
- term: 영시 / 英試, confidence=0.95
- term: 음직 / 蔭, confidence=0.9
- person: 박습 / 朴習,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種學(종학) - 직위명 또는 별칭으로 해석 가능
- 被誅(피추) - 명문 가문의 경우 참诛으로 해석하나, 완전한 처형인지 정도의 문제로 확인 필요
(세종조)이영구
- 기사 ID:
B9C^2_001_016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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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세종 임자(1452)년에 태어난 이영구는 생원문과에 합격하여 평진에 이르렀다. 그가赴任한 곳마다 모두 훌륭한 명성과功績을 남겼다. 광주牧使로출임되어年老를 이유로 스스로 물러났으며, 특히 가선阶으로昇進하였다. [주1:국조방목] [주2:대동韻玉]
독음
세종 임자 생원문과 평진 주:국조방목 소리皆有聲績 출목 광주 인년 퇴특 승가선계 주:대동운옥
의미
이영구는 세종조 임자년(1452)에 태어나 생원문과에 합격해 평진 벼슬을 하였으며,赴任한 곳마다 모두 훌륭한업적과명성을 남겼다. 광주목사로 出牧한 後年老를 이유로辞退하였고, 특별히嘉善階로陞進되었다. 두 注疏는각각국조방목과대동운옥의略語로, 이 기사가 出처한 문헌을 가리킨다.
원문
世宗壬子生員文科持平[주:國朝榜目]所莅皆有聲績出牧光州引年辭退特陞嘉善階[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영구 / 李英耇, confidence=0.95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0.95
- office: 평진 / 持平, confidence=0.8
- office: 목사(광주목사) / 牧使, confidence=0.9
- office: 가선(직급) / 嘉善, confidence=0.8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7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75
- term: 문과(생원문과) / 文科, confidence=0.7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文科持平: 문과 합격자의 관직명 平進(평진)과混용된 것인지, 별도 직칭인지 未詳
- 出牧: 光州牧使赴任의 의미로 解讀하나, 原注의 句讀이 불확실
- 引年辭退: 年老致仕之意로 解讀하나, 引年의 具體적 年齡 기준은 불分明
- 陞嘉善階: 武階 清風의 正3品相当으로 解讀되나, 文臣과 武階授與 경위 未考
(세종조)조오
- 기사 ID:
B9C^2_001_016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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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횡성 출신으로, 군수 온보의 아들이다. 성품이 정직하고 청백하여, 세종 기묘년(1463) 생원 및 문과에 합격하고,提學을 지냈다. 본래 성품이 청렴하고 고졸하여 나가서陜川郡守를 역임하였으니, 청명한 절操가 비할 자가 없었다. 나이 75세에 졸하였다. [주:『대동운옥』국조방목] 아우 조장은 세종 병오년(1464) 생원·문과 합격으로 군수를 지냈다. [주:『국조방목』]
독음
횡성인 군수 온보의 아들 정직청백. 세종 기묘년 생원 문과提學. 성품이 본래 청결하고 간介하여 출수하여 살천군守를 지내고 청절이 비할 데 없으며 나이 75세에 졸.[주: 대동운옥 국조방목] 아우 장은 세종 병오년 생원 문과 군수.[주: 국조방목]
의미
조선 세종 때 인물 조오(趙珸)의 行錄이다. 횡성 출신으로 文科와 提學을 지내고陜川郡守를 역임하였으며, 청렴하고 절操가 바른 것으로 유명하였다. 75세에 졸한 후 아우 조장(趙璋)도 文科 관직에 오른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생원文科 합격 연도는 기묘(1463)와 병오(1464)이다.
원문
橫城人郡守溫寶子正直淸白世宗癸卯生員文科提學性本廉介出守陜川淸節無比年七十五卒[주:大東韻玉國朝榜目]弟璋世宗丙午生員文科郡守[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조오 / 趙珸, confidence=0.97
- person: 조장 / 趙璋, confidence=0.95
- place: 횡성 / 橫城, confidence=0.96
- place: 합천 / 陜川, confidence=0.94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3
- office: 제학 / 提學, confidence=0.89
- work: 대동운옥 국조방목 / 大東韻玉國朝榜目, confidence=0.92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
- term: 청백 / 淸白, confidence=0.91
- term: 청렴하고 고졸함 / 廉介, confidence=0.88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청명한 절조 / 淸節,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提學 앞의 文科가 직제상 直提學을 줄인 것인지 단순 文科와 合刻인지 명확하지 않음
(세종조)장계이
- 기사 ID:
B9C^2_001_017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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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70
한글 번역
인동인(仁同人)의 군수(郡守)였던 아자문(莪子文)은 문종 연간 신미년(辛未)의 진사(進士) 합격자이며 문과 사성(司成)으로서 유학이 정밀하고 박학했으며 품행 또한 바른 인물이었다. 일찍이 귀신의 이치를 논하며 이렇게 말하기를 ‘사람이 처음 죽었을 때에는 귀신이 있으나, 시간이 오래 지나면 귀신은 없어진다’고 했다. 아자문에게는 형제가 둘 있었는데, 형 계증(繼曾)은 세종(世宗) 임술(壬戌)년에 태어난 생원(生員)으로서 문과(文科)의 정랑(正郞)이었다.
독음
인동인 군수 아자문, 종신미진사, 문과사성, 이학이 정밀하고 박학하며 또한 품행이 있다. 일찍이 귀신의 이치를 논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처음 죽으면 귀신이 있으나, 오래되면 귀신이 없다’고 했다. 형제가 둘이었는데 형 계증은 세종 임술년에 태어난 생원 문과 정랑이었다.
의미
조선 문종 시대의 진사 합격자이자 문과 사성이었던 아자문이 귀신의 이치에 대해 ‘사람이 처음 죽으면 귀신이 있으나 오래되면 사라진다’는 독특한 주장을 했다는 내용이다. 아자문의 형제 계증도 세종 임술년에 태어난 생원 문과 정랑이었다. 고문헌 주해에 따르면 이 기사는 ‘대동운옥(大東韻玉)’과 ‘국조방목(國朝榜目)’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문
仁同人郡守莪子文宗辛未進士文科司成理學精博又有操行嘗論鬼神之理曰人之始死有鬼神久則無鬼[주:大東韻玉]兄繼曾世宗壬戌生員文科正郞[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아자문 / 莪子文, confidence=0.95
- person: 계증 / 繼曾, confidence=0.95
- person: 장계지 / 張繼馳, confidence=0.85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0.95
- office: 문과사성 / 文科司成, confidence=0.7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0.9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文科司成(문과사성) - 직위명이 불분명하며, 사성(司成)이 고려 광연루(廣延樓)를 지칭하는 호칭인지 명확하지 않음)
(세종조)김치
- 기사 ID:
B9C^2_001_017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7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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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43:28.32907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71
한글 번역
자호는 기보이며 선산 사람이다. 야은 길재의 문인에게 수학하였다. 일찍이 효행으로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의 명이 그의 고향 마을에 정려했다. 사예 벼슬 김숙자와 같은 마을에 함께 살았고, 도의로 서로切磋하였다. 김숙자는 자신의 아들 김종직을 보내 基甫에게 수학하게 하였다. 고려 우왕 연간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사간을 역임하고, 금해부사를 지냈다. 그 뒤 부성 서쪽迎鳳里에 물러나 생徒를 가르쳤으며, 또한家庙를 지어 제사를 받들었다. 그 영향을 받아 향인들이 교화되었다.
독음
자유를 기보 선산인 수업어 야은 길재문 조이 효행으로 문정에 문 형기려와 사예 김숙자 동거일리 도의상규 숙자 기자 종직 수학 고려욱조 문과 위 사간 역 금해부사 퇴거 부성장 서영봉리 교수 제자 우작 가묘 이 봉사 향인화지
의미
조선 세종대 부호 인물 基甫의 행적이다. 야은 길재의 문인이었고, 효행으로 조정에 표창받았다. 사예 김숙지와 도의로 교류하며, 숙지의 아들 김종직을 가르쳤다. 고려 우왕조에 문과에 합격하여 사간·금해부사를 역임한 뒤 은퇴하여 향리를 경영하고家庙를 세워 제사를 지냈다. 이로 인해 향인들이 교화되었다는 인물 평가가 담긴 기록이다.
원문
字基甫善山人受業于冶隱吉再門早以孝行聞朝廷命旌其閭與司藝金叔滋同居一里道義相規叔滋使其子宗直受學高麗禑朝文科爲司諫歷金海府使退居府城西迎鳳里敎授子弟又作家廟以奉祀鄕人化之[주:東儒師友錄]
엔티티 후보
- person: 기보 / 基甫, confidence=0.95
- person: 김숙자 / 金叔滋, confidence=0.95
- person: 김종직 / 金宗直, confidence=0.95
- person: 길재 / 吉再, confidence=0.95
- place: 선산 / 善山, confidence=0.9
- place: 금해부 / 金海府, confidence=0.95
- place: 영봉리 / 迎鳳里, confidence=0.85
- office: 사예 / 司藝, confidence=0.9
- office: 사간 / 司諫, confidence=0.95
- office: 금해부사 / 金海府使, confidence=0.95
- work: 동유사우록 / 東儒師友錄, confidence=0.95
- term: 정려 / 旌閭, confidence=0.9
- term: 가묘 / 家廟,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字基甫 - 기보가 자호인지 이름인지 확정적이지 않으나, 文科 합격 후 벼름을 했으므로 字일 가능성이 높다
- 迎鳳里 위치 - 부성 서쪽으로 소재지는 전남 부안군으로 추정되나 구체적 위치 미상
- 주석 내용 ‘東儒師友錄’의 편자 미상
(세종조)김윤수
- 기사 ID:
B9C^2_001_017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7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16:58:52.84716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73
한글 번역
선산 사람은 용기와 지혜를 두루 갖추고 활쏘기와 말을 배우며 병법을 연구하였다. 태종 신묘년에 무과에 합격하여 중앙과 외방을 두루 시험받았고, 세종은 무예와 능력을 이유로 그를 변경의 방패로 삼아 병마사로 임명하였다. 부임 3년 만에 오骑兵이 기습적으로 쳐들어 오자 윤수는 즉시 기지를 발휘하여 용맹스럽게 싸워 이를 대파하였다. 벼슬이 판서급에 이르고 사호를 胡襄이라贈하였다.[주:김성경이 지은 묘표]
독음
선산인 용지겸인업궁마학병법 태종신묘무과 역시中外 세종이 무예능을 위번병으로 삼아 직제 병마사로 서임하고 3년 재임하며, 오骑兵이 도둑같이 발동하자, 윤수가 즉시 기이하게 분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관至知事的, 시호를 胡襄이라 하다.[주:김성경이 지은 묘표]
의미
세종조 무과 출신 장수 김윤수의 행적. 선산 출신으로 태종 때 무과에 합격, 세종 때 병마사로 임명되어 3년간 재임하다 오騎兵의 기습을 기지로 대파한 공으로 관직이 知事了에 이르렀다. 묘표는 김성경이 지었다.
원문
善山人勇智兼人業弓馬學兵法太宗辛卯武科歷試中外世宗以武藝能爲藩屛除兵馬使莅官三年胡騎竊發允壽輒出奇奮擊大敗之官至知事諡胡襄[주:金成慶撰墓表]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윤수 / 金允壽, confidence=1.0
- place: 선산 / 善山, confidence=1.0
- person: 태종 / 太宗, confidence=1.0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1.0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1.0
- office: 병마사 / 兵馬使, confidence=1.0
- office: 지원 / 知事, confidence=0.9
- person: 김성경 / 金成慶, confidence=1.0
- work: 묘표 / 墓表, confidence=1.0
- term: 번병(변정의 방패) / 藩屛, confidence=0.9
- term: 오기(오骑·오족 기병) / 胡騎, confidence=0.8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藩屛(번병의 구체적 직위 체계와 번병 대 우마의 구분)
- 胡騎(오骑兵의 구체적 민족 소속과 시대적 배경)
- 知事的(전근대 벼슬 단계 체계상 정확한 직급 위치)
(세종조)김통
- 기사 ID:
B9C^2_001_017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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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의성 사람은 소윤 호리의 아들이었다. 세종 을묘년에 태어난 생원이었고, 문과 정묘 중시에 합격하여 정언과 지제교를 역임했다. 문雅한 성품으로 영달이나 진급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오래도록 살던 집은 패강 하류에 있었는데, 바로 수도 서쪽의 유명한 명승지였다. 통이 곧 가정을 데리고 돌아와 누우며江湖江湖에別墅를 지어, 강과 호수에 힘써 산수에 뜻을 두어 마치 그곳에서 종유할 듯하였다. [주: 김안국이 지은 묘표] 아들은 익령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가 되었고, 익령의 아들 연은 찬봉에 오르고, 연의 아들 안국은 호를 막재라 하였다.
독음
의성인 소윤 호리지 자 세종 을묘년 생원 문과 정묘 중시 정언 지제교 아성 불락영진 구업재 패강 하류 실수도 명승 통일 적가 귀와 축서 강호 치의 산수 약 장연언 주: 김안국 찬 묘표 자 익령 문과 부사 익령 자 연 찬봉 연 자 안국 호 막재
의미
김통은 세종조 의성 출신으로, 文科에 급제하여 정언·지제교 등을 지냈으나 문雅한 성품으로 관직의 영달을 탐하지 않았다. 패강 하류의 수도 명승지에 집을 정착시키고 가족과 함께江湖에別墅를 지어山水에 뜻을 쏟으며余生을 보내려 했다. 묘표는 김안국이 지었으며, 아들 김익령(문과 부사), 손자 김연(찬봉), 증손 김안국(호 막재)으로 그 子孫이 문반에랐다.
원문
義城人少尹好智子世宗乙卯生員文科丁卯重試正言知製敎雅性不樂榮進舊業在浿江下流實西都名勝統卽携家歸臥築墅江湖致意山水若將終焉[주:金安國撰墓表]子益齡文科府使益齡子璉參奉璉子安國號慕齋
엔티티 후보
- place: 의성 / 義城, confidence=0.95
- person: 김통 / 金統, confidence=0.95
- person: 김안국 / 金安國, confidence=0.95
- person: 김익령 / 金益齡, confidence=0.95
- person: 김연 / 金璉, confidence=0.95
- office: 소윤 / 少尹, confidence=0.85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5
- office: 지제교 / 知製敎, confidence=0.95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0.95
- office: 찬봉 / 參奉, confidence=0.95
- place: 패강 / 浿江, confidence=0.8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0.9
- work: 묘표 / 墓表,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西都(수도 서쪽으로 해석, 安동 일帶로 추정)
- 攜家歸臥(귀가 후臥하여隐居함을 뜻하는 것으로 解讀)
(세종조)정사
- 기사 ID:
B9C^2_001_017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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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동래 사람으로, 현감 구령의 아들이다. 세조 경자(1420)년에 생원과 문과에 합격하고, 직제학에 올랐다. 호는 서백당이다.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판서를 지냈다. [주:]『인물고』 정환의 형 정용은 본래 이름이 희이고, 태조 정유(1417)년에 태어나 생원과 문과에 합격하여 응교를 지냈다. [주:]『국조방목』
독음
동래인 현감 구령자 세조 경자 생원 문과 직제학 자란 종호 서백당 문과 이조판서 주 인물고 서용 초명희 태종 정유 생원 문과 응교 주 국조방목
의미
조선 전기 문신 정환(鄭賜)에 대한 기록이다. 동래 출신으로 현감 구령의 아들이며, 세조 경자년(1420)에 생원·문과에 합격하여 직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호는 서백당이다. 형 정용은 본래 이름이 희이고 태조 정유년(1417)에 태어나 생원·문과에 합격하여 응교를 지냈다. 출전은 『인물고』와 『국조방목』이다.
원문
東萊人縣監龜齡子世宗庚子生員文科直提學子蘭宗號虛白堂文科吏曹判書[주:人物考]賜兄雍初名煕太宗丁酉生員文科應敎[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lace: 동래 / 東萊, confidence=1.0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1.0
- person: 구령 / 龜齡, confidence=1.0
- person: 세조 / 世宗, confidence=1.0
- term: 경자 / 庚子, confidence=1.0
- office: 직제학 / 直提學, confidence=1.0
- person: 자란 / 子蘭, confidence=1.0
- work: 서백당 / 虛白堂, confidence=1.0
- office: 이조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1.0
- person: 용 / 雍, confidence=1.0
- person: 희 / 煕, confidence=1.0
- office: 응교 / 應敎,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종호(宗號)는 호와 유사한 개념이나 정확한 구분 불확실
(세종조)모순
- 기사 ID:
B9C^2_001_017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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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진주 사람으로, 태종 정유(丁酉)년에 태어난 원문과 합격자이다. 사간대부(司諫大夫)를 역임하고, 의정부의 사인을 지냈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똥을 맛보며 종기를 빨아주고 치료하여 병이 곧 나았다. 효행으로 마을에 표창을 받았다.
독음
진주인 태종 정유생 원문과 사감 역 의정부사인 당위모친상분선종병즉유 이효정려
의미
세종조 인물 모순의 행적을 적은 기사이다. 진주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사간, 의정부 사인 등을 역임했다. 어머니가 종기(혹집합물)가 부은 병에 걸리자 똥을 맛보고 종기를 빨아주는 치료를 행하여 병이 곧 나았다. 이러한 효행으로 마을에 표창을 받은 기록이다. 이 일화는 후대 사전 『대동운구』에 수록되었다.
원문
晉州人太宗丁酉生員文科司諫歷議政府舍人嘗爲母嘗糞吮腫病卽愈以孝旌閭[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모순 / 牟恂, confidence=0.95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0.97
- office: 사간 / 司諫, confidence=0.92
- office: 의정부 사인 / 議政府舍人, confidence=0.9
- term: 문과 합격자 / 員文科, confidence=0.93
- work: 대동운구 / 大東韻玉, confidence=0.88
- term: 효행 표창 / 旌閭, confidence=0.89
- term: 분과 종기를 치료하는 효행 / 嘗糞吮腫,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員文科는 원문과 합격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문과 급제 후 관직명인지 확인 필요
- 吮腫의 종기 위치와 질환명이 불확실
(세종조)조근
- 기사 ID:
B9C^2_001_017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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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는 유규, 양주 사람이다.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 임금 때 무오년(1438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신유년(1441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관찰사가 되었다. 성품이 바르고 어질며 마음이 솔직하고 훤하다. 친구와 사귀는 데는 충성과 공경을 다한다. 글을 짓기 시작하면 펜을 세워 빠르게 써 내려가는데, 당대의 문인들 모두 이를 높이 쥐어쳤다. 특히 예서를 잘 썼으며, 외교 서신과 내외에 간행된 전적에 그의 서체가 많이 쓰였다. 태부와 청요직을 오가며 출입하면서 그곳에 나아가 누차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가 도달한 곳마다 명성이 자자하게 울려 퍼졌다. 학식이 있고 문장이 있으며, 지혜와 능력이 갖추어진, 세상을 써먹을 만한 인재라 할 만하다.
독음
자는 유규, 양주 사람. 막내 아들이다. 세종 임금 원년 무오년(1438년) 진사, 신유년(1441년) 문과 급제. 관찰使之官을 지냈다. 성품이 바르고 우아하며 마음이 훤히 트여 있다. 친구와 사귀는 데는 충성과 공경을 다한다. 글을 지으면 벼락같이 써 내려가는데, 한때 문사들이 모두 이를 쯤파이 여기었다. 특히 예서(楷書)를 잘 썼으며, 이웃 나라와 교류하는 외교 문서를 비롯하여 중앙과 지방의 간행된 전적(典籍)을 많이 서체의 글씨로 썼다. 태省的 벼슬을 출입하며 누차 청要(요직)에 나아가 뜻을 펼쳤다. 그가 간 곳마다 이름이 두루 들리며, 학식이 있고 문장이 있으며, 곧은 도량을 지닌, 세상을 써먹을 만한 인재라 할 만하다.
의미
조선 세종 시대 양주 출신 문신 조근의 행장을 적은 글이다. 문과에 급제하고 관찰사, 벼슬을 거쳐 요직을 역임했다. 특히 글씨에 능해 외교 문서와 전적에 그의 서체가 많이 쓰였다. 학식과 문장, 도량을 갖춘 세종조의 인재로 평가받았으며, 이了承召가 비문을 지었다.
원문
字穉圭楊州人末生子世宗戊午進士辛酉文科觀察使性端雅坦夷與朋友盡其忠敬爲文肆筆而書一時文士咸推之尤善楷字交隣之書內外刊典多書之出入臺省歷踐淸要所至籍籍有聲稱可謂有學有文有猷爲用世之才[주:李承召撰碑]
엔티티 후보
- person: 조근 / 趙瑾, confidence=0.98
- person: 이승조 / 李承召, confidence=0.98
- place: 양주 / 楊州, confidence=0.95
- period: 세종 / 世宗, confidence=0.99
- year: 무오 / 戊午, confidence=0.92
- year: 신유 / 辛酉, confidence=0.92
- office: 관찰사 / 觀察使, confidence=0.9
- office: 태성 / 臺省, confidence=0.85
- office: 청요 / 淸要,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안초
- 기사 ID:
B9C^2_001_017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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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호)는 자邇이고, 죽산 사람이다. 세종조에 신유년에 태어나 생원(생원)에 올랐고, 정묘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삼판(三判)을 역임하였다. 하늘이 준 성품이 정밀하고 민감하며, 학문과 행동이 바르고 크다. 이것이 실행에 나타났을 때 또한 모두 넉넉하였다. 보내진 곳마다 모두 좋은 명성을 남기고 업적을 이루었다. 아들에게 시(시)와 예(예)로 가르쳤으며, 그들도 모두 능히 그를 닮았다. 성품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일찍이 안색을 잃거나 말을 그르친 적이 없다. 사람과 교제할 때 언제나 온화한 기운이 한團으로 맺어졌다.[주: 서거정이 비문을 지었다]
독음
자 자이대죽산인세종신유생원정묘문과삼판천자정민학문정대견어설시역개유여所在菀有声绩교자이시례역개극효성불희주미상실색실언여인교제총시一团화기[주:서거정찬비]
의미
안迢(자 자邇, 죽산 출신)의 인물기로, 세종조 신유년(1441)생으로 정묘년(1467) 문과에 합격해 삼판(三判)을 지냈음을 기록한다. 천성이 정밀하고 민감하며 학문과 행실이 바르고 컸고, 출근한 곳마다 호평을 받은 뛰어난 관리였다. 아들에게 시와 예로 교육해 아들도 훌륭하게 성장했으며, 술을 멀리하고 늘 온화하고 절정한 인물이었다. 서거정이 찬한 비문의 일부이다.
원문
字自邇竹山人世宗辛酉生員丁卯文科參判天資精敏學問正大見於設施亦皆有裕所至菀有聲績敎子以詩禮亦皆克肖性不喜酒未嘗失色失言與人交際總是一團和氣[주:徐居正撰碑]
엔티티 후보
- person: 안迢 / 安迢, confidence=1.0
- person: 서거정 / 徐居正, confidence=1.0
- place: 죽산 / 竹山, confidence=1.0
- term: 자(호) / 字,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삼판 / 參判, confidence=1.0
- term: 명성·업적 / 聲績, confidence=1.0
- term: 시와 예 / 詩禮, confidence=1.0
- term: 안색 잃음·말 잘못 / 失色失言, confidence=1.0
- term: 화기(온화한 기운) / 和氣, confidence=1.0
- term: 비문 / 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조계팽
- 기사 ID:
B9C^2_001_017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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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풍양 출신의 부정 유의 증손으로, 세종조 을묘년(1455)에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다. 통정대부로서 남원부사를 지내고, 죽은 뒤 증직으로 예조참의를 받은 인물로서 6대손이 익좌상을 역임하였다. [주: 7대손 복양이 지문을 지었다.]
독음
풍양인 부정 유자밀직신혁 증손 세종 을묘년 생원 문과 통정대부 남원부사 증례조삼의 육대손 익좌상[주:칠대손 복양 찬지문]
의미
조계팽의 가문 내 위치와 관직 이력을 적은 유골 기록이다. 풍양 출신으로 세종조 을묘년 문과 급제하여 통정대부 남원부사에 이르렀으며, 6대손이 좌상을 지내고 7대손 복양이 묘지문을 찬술하였다.
원문
豐壤人副正玗子密直臣赫曾孫世宗乙卯生員文科通政大夫南原府使贈禮曹參議六代孫翼左相[주:七代孫復陽撰誌文]
엔티티 후보
- place: 풍양 / 豐壤, confidence=0.95
- person: 조계팽 / 趙季砰, confidence=0.95
- office: 부정 / 副正, confidence=0.9
- person: 유(조유) / 玗, confidence=0.85
- person: 혁 / 赫, confidence=0.8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8
- term: 을묘 / 乙卯, confidence=0.9
- office: 통정대부 / 通政大夫, confidence=0.95
- place: 남원부 / 南原府, confidence=0.95
- office: 남원부사 / 南原府使, confidence=0.95
- office: 예조참의 / 禮曹參議, confidence=0.95
- office: 좌상 / 左相, confidence=0.9
- person: 복양 / 復陽, confidence=0.9
- work: 지문 / 誌文,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子密直臣赫曾孫의 구체적 관계 해석
- 翼左相의 정확한 직제 명칭
(세종조)박규
- 기사 ID:
B9C^2_001_018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8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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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11:56.47049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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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반남 사람은 은자이다. 세종조에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백성이 아뢴 말이 있었으니, ‘여의주(如意珠)가 지리산에 있으니 그것을 맞이하면 가물에 비를 일으킬 수 있다.’ 하였다. 박규가 아뢴 말에 ‘그 구슬은 주먹만 한 크기의 물의 정수(修改)일 뿐 다른 이상한 일이 없습니다.’ 하니, 그대로 그만두게 되었다.
독음
반남인 은자 세종조 위 경상도 관찰사. 민유 상언 여의주 재 지리산 영지 호 가치 치우. 규계 왈: 주 내 권 대 수정 무 타 이사 수침.
의미
세종 때 경상도 관찰사 박규(潘南人 因子)가 재임 중 백성이 여의주가 지리산에 있다며 그것을 맞이하면 가물에 비를期할 수 있다고 상언하자, 박규는 그 구슬이 주먹만 한 크기의 수정일 뿐이라고啟奏하여 이 일을 그만두게 했다. 합리적 판단으로 미신을 근절한 사례이다.
원문
潘南人訔子世宗朝爲慶尙道觀察使民有上言如意珠在智異山迎之旱可致雨葵啓曰珠乃拳大水精無他異事遂寢[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박규 / 朴葵, confidence=0.95
- person: 은자 / 訔子, confidence=0.9
- place: 반남 / 潘南, confidence=0.9
- place: 지리산 / 智異山, confidence=0.95
- place: 경상도 / 慶尙道, confidence=0.95
- office: 관찰사 / 觀察使, confidence=0.95
- term: 여의주 / 如意珠, confidence=0.85
- term: 수정 / 水精, confidence=0.8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拳大(권대): 주먹만 한 크기라는 표현이 원문에서 ‘拳大水精’인지 ‘權大水精’인지 미확인
(세종조)이계손
- 기사 ID:
B9C^2_001_018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8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46:20.35538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82
한글 번역
자의는 인지이며, 본관은 여흥 출신이다. 부승의 아들이자 이인의 아들이다. 세종 즉위년인 정묘(1447)년에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기축(1469)년에 함경도 안찰사가 되었다. 그 지역이 북쪽 오랑캐에 가까이 접해 있고, 백성들이 활쏘기와 말을 타는 것을 좋아하는 풍속이었으므로, 조정에 건의하여 학교를 일으키고 세웠다. 총명하고 밝은 학생들을 가려 뽑아 모아 가르쳤으며, 또 여러 군현에 경서를 반포하고 문신 가운데서 교관을 뽑아 임명하였다. 사시마다 도회(都會)를 설치하여 시험을 보이고 독려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학문에 뜻을 두게 되었고, 이때부터 북쪽에서 생원·진사에 합격하는 자가 많아졌다. 벼슬에 올라 관직에 이르자, 북쪽 백성들이 그를 사모하고 사랑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주: 인물고] 이 사람은 이인수의 재종형제(再從孫)이다. [주: 국조방목]
독음
자 인지의 여흥인 부승 이인자 세종 정묘년생원 문과 병조 판서 기축 안찰 함경도. 지 가까이 북적(북쪽 오랑캐)에 접해 있고 습속이弓馬를 좋아하였다. 이에 조정에 건의하여 학교를 일으키고 세웠다. 총명하고 밝은 학생들을 가려 뽑아 모여서 가르쳤다. 또 군현에 경적을 반포하고 문신을 선거하여 교관(교관,校官)으로 삼았다. 사시(사시,四時)都会를 설치하여課試를 행하고勉勵하였다. 백성이 학문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로부터北方에서 生員進士 된 자가 많아졌다.科擧에 뽑혀 벼슬에 오르자北方 사람들이 사랑하고 받들어 사당에 모시고 제사지냈다. [주: 인물고] 이 사람은 이인수의 재종형(再從孫)이다. [주: 국조방목]
의미
이 기사는 세종대 함경도 안찰사 이계손의 업적을 기록한 것이다. 북방 접경 지역에서 군사적 기풍이 강했으나 학문이 부족한 상황에 대하여, 학교 설립, 우수 청소년 교육, 경적 반포, 문신 교관 파견, 정기 시험 시행 등의 교육을 혁신하였다. 그 결과 북방에서도 학업으로 출세하는 인물이 많아졌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아 사당에 제사 지내게 되었다. 한시(漢詩)와 경서(經書)를 보급하고 교관을 두어 교육 기반을 조성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인물고와 국조방목이라는史書를 참조 출처로 밝히고 있다.
원문
字引之驪興人副丞依仁子世宗丁卯生員文科兵曹判書己丑按察咸鏡道地近北狄俗喜弓馬乃申于朝修起學校選子弟之開敏者聚而敎之又請頒經籍於郡縣擇文臣爲校官設四時都會課試以勸勵之人樂爲學自是北方爲生進者多至擢科躋仕北人愛戴之立祠以祭[주:人物考]吏曹參判審再從孫也[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계손 / 李繼孫, confidence=0.97
- person: 자의 인지 / 字引之, confidence=0.95
- place: 여흥 / 驪興, confidence=0.98
- person: 이인 / 依仁, confidence=0.96
- office: 부승 / 副丞, confidence=0.94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9
- year: 정묘(1447) / 丁卯, confidence=0.95
- person: 생원 / 生員, confidence=0.98
- office: 병조 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0.97
- year: 기축(1469) / 己丑, confidence=0.94
- office: 안찰사 / 按察, confidence=0.96
- place: 함경도 / 咸鏡道, confidence=0.98
- term: 학교 / 學校, confidence=0.98
- term: 경적(경서의 총칭) / 經籍, confidence=0.92
- term: 교관(교관, 교육 담당 관료) / 校官, confidence=0.85
- term: 사시 도회(사철 거행한 교육集会) / 四時都會, confidence=0.8
- term: 과시(시험으로课業을驗察함) / 課試, confidence=0.88
- person: 이인수 / 吏曹參判, confidence=0.93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0.9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校官: 교관으로 解釋하나, ‘校正(校正官)’이나 ‘校事(교사)’의 오기 가능성도 完全히 배제할 수 없음
- 四時都會: ‘사시 도회’의 형태로 期시(기회)마다 거행한 지역 교육모임으로 解釋하나, 구체적 制度的內容이 불분명함
(세종조)윤사로
- 기사 ID:
B9C^2_001_018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83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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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46:27.85565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83
한글 번역
자의 과옹, 파평 사람으로, 윤곤의 증손이다. 나이 14세에 세종(世宗)의 딸 정현공주(貞顯公主)를 배우고,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에 봉해졌다.佐翼功臣의 공로로 좌찬성(左贊成) 겸 판리조사(判吏曹事)가 되었다. 나이 사십한 살에 졸했다. 임금이 조상님들의 제도가 내려온 지 거의 백 년이 되어 법이 폐해지고, 옛것과 새것이 뒤섞여 분란하니 공물과 부역의 조달이 때에 따라 늘리고 줄이는 일에,官들이 혼란스럽게奉行하여 백성이 혹시 피해를 받을까 하여, 크게詳定하여 하나로 귀합시키고자 하여師路로 하여금 그 일을 맡게 하였다. 종합하여詳明하고 연습하며, 마음셈이 정밀하고 민감하여 한 치의遺漏도 없었다. [주:申叔舟가 비문을 지음]
독음
자 과옹 파평인곤 증손년 십사尙 세종녀 정현 공주봉 영천 부원군록 좌 찬성 판 이조사년 사십일 졸 상염조상 지정 태백년 법 폐 수개 신구 분란 공부 조도 인시 증감 리 미 봉행 민 혹 수 폐욕 대상정 귀일사 로서 이 장其事 종상 명련 심계 정민 일호 불유 유주: 신숙주 찬비
의미
조선 세종 연간에 활동한 문신 윤사로(尹師路)의 개요이다. 파평 윤씨 출신으로, 14세에 세종대왕의 딸 정현공주와 혼인하여 영천부원군에 봉해졌다.佐翼功臣의 공로로 좌찬성 겸 판리조사로 승진하였으나 41세의 젊은 나이에 졸하였다. 당시 조상 제도가 백 년간 지속되어 법이 문란해진 것을憂慮한 임금이 공물과 부역의 조정을 위해師路에게詳定 일을 맡겼으며,師路는精 明하고 계산에 빠르기로 유명하였다. 비문은申叔舟가 지었다.
원문
字果翁坡平人坤曾孫年十四尙世宗女貞顯公主封鈴川府院君錄佐翼功拜左贊成判吏曹事年四十一卒上念祖宗定制垂百年法弊隨改新舊棼亂貢賦調度因時增減吏迷奉行民或受弊欲大詳定歸一使師路掌其事綜詳明練心計精敏一毫不遺[주:申叔舟撰碑]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사로 / 尹師路, confidence=0.98
- person: 과옹 / 果翁, confidence=0.95
- person: 윤곤 / 坤, confidence=0.9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9
- person: 정현공주 / 貞顯公主, confidence=0.97
- person: 신숙주 / 申叔舟, confidence=0.96
- place: 파평 / 坡平, confidence=0.93
- place: 영천부원군 / 鈴川府院君, confidence=0.95
- office: 좌찬성 / 左贊成, confidence=0.97
- office: 판리조사 / 判吏曹事, confidence=0.85
- term: 좌익공신 / 佐翼功臣, confidence=0.88
- term: 공부 조달 / 貢賦調度, confidence=0.9
- term: 상정 / 詳定, confidence=0.92
- work: 비문 / 碑,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棼亂」: 뒤섞여 어지러운 상태를 이르는 표현으로 보이나, ‘棼錯流亂’ 계열의 오기 가능성 있음
- 「錄佐翼功」:功臣 칭호와 관직 임명 연결 표현의 정확한 구성이 불확실
- 「判吏曹事」: 현존 관제와 대조 시 ‘判’자의 사용 빈도나 관직명의 정확한 표기가 남아 있는 문헌 간 차이가 있음
(세종조)최사강
- 기사 ID:
B9C^2_001_018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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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84
한글 번역
전주 출신으로서 아버지의 관직을 이어받아 벼슬에 나아가 대사헌과 병조 판서를 역임하고 우찬성으로 승진하였다. 세종 기해년에 59세로 사망하여 시호는 경절을 받았다. 인물고에 따르면, 사강의 아내의 어머니가 사망하자 명을 내려 관곽과 송지를 하사하였다.
독음
전주인 음보관 역대사헌 병조판서 승우찬성 세종 기해년 오십구세 졸 시호 경절 인물고 사강 처모 사명뇌관곽 송지
의미
조선 세종대 신료 최사강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그는 전주 출신으로 음보 제도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여 대사헌·병조 판서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우찬성까지 승진했으며, 세종 23년(1461년)에 59세로 사망하여 시호 경절을 받았다. 또한 그의 처모(아내의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왕이 직접 관곽과 송지를 하사받은 것으로 보아宫中에서의 신임을窥窺할 수 있다.
원문
全州人以蔭補官歷大司憲兵曹判書陞右贊成世宗癸亥年五十九卒諡敬節[주:人物考]士康妻母死命賜棺槨松脂
엔티티 후보
- person: 최사강 / 崔士康, confidence=1.0
- place: 전주 / 全州,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병조 판서 / 兵曹判書, confidence=1.0
- office: 우찬성 / 右贊成, confidence=1.0
- work: 인물고 / 人物考, confidence=1.0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1.0
- term: 관곽 / 棺槨, confidence=1.0
- term: 송지 / 松脂, confidence=1.0
- term: 시호 / 諡,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주석 위치와文中配列이 불확실하여 ‘인물고’와의 관계를 명확히 알 수 없음
- 처모의 호칭이 어머니인지 처자의 어머니인지文中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려움
(세종조)이명신
- 기사 ID:
B9C^2_001_018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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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字)는伯扶이고, 덕수 출생이다. 아버지의 벼슬길로 남작하여 돈녕부사가 되었다. 진위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기묘년에 사망하여 향년 68세였다. 관직에 있을 때 업적이 있었다. 홍주 사람들이 기록한 대로, 점필재(金宗直)의 만시(輓詩)에 이르기를 ‘진실하고 순박한 뛰어난 덕행이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하게 하고, 호서地方的 정사가 남긴 사랑이 깊으니, 한 잔의 술을 위해 도문에서 배웅하며 보내는 눈물이 江風이 불고 이슬이 내리는 새벽에 깊이 가라앉는다’고 하였다. [주: 李植이 전기를 지음]
독음
자 패부 덕수인 음지돈녕부사 이진위사로 명에 가서 기묘년에 사망하니 향년 68세, 관직에 있을 때 업적이 있었으니 홍주 사람의 기재한 점필재 김종직의 만시에서云 진순 숙德使人钦 정재 호서에 유爱 깊으니 一작 도문 상송涙 강풍 취로晓沈沈.
의미
세종조 벼슬아치 이명신의 행장을 수록한 기사이다. 덕수 출신으로 아버지의 관직으로 남작하여 돈녕부사가 되었고, 진위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68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재임 중 좋은 업적을 남겼다. 그가 근무한 호서 지역 유민들이 그를 그리워하여, 문인 金宗直이 만시로 추모하였다. 이 전기는 李植이撰写하였다.
원문
字伯扶德水人蔭知敦寧府事以陳慰使如明己卯卒年六十八居官有績洪州人紀之佔畢齋金宗直挽詩云眞淳宿德使人欽政在湖西遺愛深一爵都門相送淚江風吹露曉沈沈[주:李植撰傳]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명신 / 李明晨, confidence=1.0
- person: 패부 / 伯扶, confidence=1.0
- person: 김종직 / 金宗直, confidence=1.0
- person: 이식 / 李植, confidence=1.0
- place: 덕수 / 德水, confidence=1.0
- place: 홍주 / 洪州, confidence=1.0
- office: 돈녕부사 / 敦寧府事, confidence=1.0
- office: 진위사 / 陳慰使, confidence=1.0
- term: 음 / 蔭, confidence=1.0
- work: 점필재집 / 佔畢齋集, confidence=0.9
- term: 만시 / 挽詩,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居官有績(관직에 있을 때 구체적인 어떤 업적인지 불분명)
- 一爵(한 잔의 술로 배웅이라는 맥락이나, 一爵의 구체적 의미와 문맥 해석이 명확하지 않음)
- 死亡 연도(文中에 68세와 기묘년이 상호矛盾하나, 원문 그대로 기록)
(세종조)유익명
- 기사 ID:
B9C^2_001_018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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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88
한글 번역
(세종조)금산 사람은 세종대에 무예를 통해 발탁되어 동북 변경을 20여 년간 지키며 그때 능武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주:대동운옥] 이호성은 성주 사람으로, 세종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무용과 청렴한 절개로 당대에 명성을 얻었다. 서북 변경을 여러 차례 지키며 고대 명장의 기풍을 보였고, 관직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靖武였다. [주:동일 문헌] 김효성은延安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부모께尽孝하였다. 세종대에 여러 武臣職을 두루 역임하고靖難에 참여하여 공을 세워 一等勳을 기록에 올렸으며, 延山君에 봉해졌고, 시호는孝襄이었다.
독음
금산인 세종조 무예로 발탁되어 드러나 동북계에 나가鎭守二十여 년 그때 능武라 불림 [주:대동운옥] 이호성 성주인 세종조 무과 무용과 清介함으로 이름天下에 떨쳐 서북계를 여러 차례鎭守하여 고대 명장의 풍모가 있었음. 관직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靖武 [주:同上] 김효성延安인 어려서부터 부모를盡孝 세종조에 여러 관직에 任官하고靖難에 참여하여功을 세워 一等勳을 기록에 올렸으며, 延山君에 봉해졌고, 시호는孝襄
의미
세종조에 활동한 세 명의 武臣에 관한 기록이다. 금산 출신자는 동북계 변경을 20여 년간 지키며武才를 인정받았고, 이호성은 무과 급제 후 서북 변경을 여러 차례 지키며 名將의 풍모를 보였으며 최종 관직이 지중추부사였고, 김효성은盡孝와靖難軍功으로一等勳을 받고 延山君에 봉해졌다. 세 사람 모두 세종대의武臣으로边防과 국가 安保에 기여한 인물들이다.
원문
金山人世宗朝以武藝顯出鎭東北界二十餘年時稱能武[주:大東韻玉]李好誠星州人世宗朝武科以武勇淸介名世累鎭西北界有古名將風官至知中樞府事諡靖武[주:同上]金孝誠延安人自少事親盡孝世宗朝累授閫寄參靖難功錄一等勳封延山君諡孝襄
엔티티 후보
- person: 금산 출신 장수 / 金山人, confidence=0.85
- person: 이호성 / 李好誠, confidence=0.95
- person: 김효성 / 金孝誠, confidence=0.95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0.95
- place: 연안 / 延安, confidence=0.95
- place: 연산 / 延山, confidence=0.9
- office: 지중추부사 / 知中樞府事, confidence=0.95
- office: 무과 / 武科, confidence=0.95
- office: 윤寄(군사직책) / 閫寄, confidence=0.8
- term: 정무(시호) / 靖武, confidence=0.95
- term: 효양(시호) / 孝襄, confidence=0.95
- term: 정난(세종 즉위 과정의 군사적 난재) / 靖難, confidence=0.9
- term: 일등훈 / 一等勳, confidence=0.9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金山(금산)의 정확한 위치特定, 閫寄(윤寄)의 구체적 직역사함
(세종조)이함녕
- 기사 ID:
B9C^2_001_0190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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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7:00:34.23347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90
한글 번역
성주 출신의 한성윤 사후의 아들이자 영의총 직의 손자이다. 세종 을묘(1459)년 문과 장원 합격자로 교리를 역임하고 시로 이름을 떨쳤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우 계녕은 첨직을 지냈고, 아들 함녕의 자식 숙생은 부사가 되었다. 숙생의 아들 윤탁은 연산 신유(1501)년进士科 합격자로 정자관에 올랐으며, 형 윤식은字淸源으로 연산 갑인(1504)년 문과 합격자로 정자관이었다.
독음
성주인 한성윤 사후의 아들 영상 직의 손자 세종 을묘 문과 장원 교리 시로 이름이 났으나 일찍 사망하였고 아우 계녕은 첨직이다. 함녕의 아들 숙생은 부사이고, 숙생의 아들 윤탁은 연산 신유进士科 정자였으며, 윤탁의 형 윤식은 연산을 만나 한문 번역과 역사 기록에 깊은 조예를 보였다. 윤탁의 형 윤식은字清源으로 연산 갑인 문과 정자였다.
의미
이 기문은 조선 세종조 문신 이咸寧의 가계를 수록한 것이다. 성주 출신으로 한성윤 사후의 아들로서 세종 을묘년 문과 장원 합격자였으나 교리 재직 중 시명으로 이름난 뒤 일찍 사망하였다. 아우 계녕은 첨직에 올랐고, 자신의 아들 숙생은 부사가 되었으며, 손자 윤탁은 연산 신유년进士科 합격 후 정자관에 진출하였다. 아들 윤탁의 형 윤식은 연산 갑인년 문과 합격 후 정자관이었다. 세종·연산 시대를 관통하는 문과 장원 가문이다.
원문
星州人漢城尹師厚子領相稷孫世宗乙卯文科壯元校理有詩名早歿弟繼寧僉知咸寧子叔生府使叔生子允濯燕山辛酉進士文科正字允濯兄允湜字淸源燕山丙寅文科正
엔티티 후보
- person: 이咸寧 / 李咸寧, confidence=1.0
- person: 이계녕 / 李繼寧, confidence=1.0
- person: 이숙생 / 李叔生, confidence=1.0
- person: 이윤탁 / 李允濯, confidence=1.0
- person: 이윤식 / 李允湜, confidence=1.0
- person: 한성윤 사후 / 漢城尹師厚, confidence=1.0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1.0
- office: 영의총 / 領相, confidence=0.9
- office: 교리 / 校理, confidence=1.0
- office: 첨직 / 僉知,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office: 정자 / 正字, confidence=1.0
- term: 문과 장원 / 文科壯元, confidence=1.0
- term: 문과 정자 / 文科正, confidence=1.0
- term: 문과 정자 / 文科正字, confidence=1.0
- term: 장원 / 壯元, confidence=1.0
- term: 자(자호) / 字, confidence=1.0
- term: 진사문과 / 進士文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직계(稷孫의 정확한 계통 관계)
- 淸源의 인물 확인
(세종조)권진
- 기사 ID:
B9C^2_001_019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19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48:40.91129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196
한글 번역
안동출신으로, 고려창왕 3년(137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자 곧名声을 떨쳤다. 조선에 들어와陕주목사에 나가 재임하였다. 정종 경진년(1400년)에 조보의 옥사에牵连되어宁海 축산도에 유배되었다. 이내 사면되어 돌아왔고, 세종 기해년(1421년)에 우의정에 임명된後 좌의정으로 옮겼다. 그가 죽자 세종이 친臨하여 근조하며 문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독음
안동인 고려창왕조 삼년 문과소려첩유성적 입본조 출지훈주 정종 경진 릴조보옥 편어영해축산도심 유슈환 세종기해배우의정 전좌의정 급솔 세종 임상 시문경
의미
권진(權軫)은 고려安東출신으로, 고려창왕 3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료로 입신하였다. 조선 태조·정종대에陕주목사 등을 지냈으며, 정종 원년(1398년)에 조보의 옥사에 연루되어 축산도(丑山島)에 유배되었다가 이내 사면 환귀하였다. 세종 즉위년인 기해년(1421년)에 우의정에 올랐고, 곧 좌의정으로 전임하였다. 사망 시 세종이 친臨하여 문경(文景) 시호를 추서하였다. 고려말~조선 초기의 文科出身 관료이자, 정치적 역경 후 복귀하여 重輔에 이른 인물이다.
원문
安東人高麗禑朝三年文科所莅輒有聲績入本朝出知陜州定宗庚辰罹趙璞獄貶于寧海丑山島尋宥還世宗辛亥拜右議政轉左議政及卒世宗臨喪諡文景
엔티티 후보
- person: 권진 / 權軫, confidence=0.97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9
- place: 훈주 / 陜州, confidence=0.97
- place: 영해 축산도 / 寧海丑山島, confidence=0.95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0.99
- office: 우의정 / 右議政, confidence=0.99
- office: 좌의정 / 左議政, confidence=0.99
- event: 조보옥사 / 趙璞獄, confidence=0.93
- person: 조보 / 趙璞, confidence=0.93
- term: 시문경 / 諡文景,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丑山島의 정확한 위치와岛屿 크기, 貶于寧海丑山島의 구문 구조에서「丑山島」를「島」로 볼지 하나의 지명으로 볼지의解釈
(세종조)서강
- 기사 ID:
B9C^2_001_020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0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15:38.70349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01
한글 번역
서강의 자는 후산이고, 이천 사람이다. 삼의(一說 混子)의 아들이다. 세종 정묘(年)에 生員文과에 합격하고 대사성이 되었으며, 강직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주:대동운옥에서]. 세조대에 불교를 논하다가 처참을 당했다[주:국조방목에서]. 조상은 서晉으로서 자가 휘지이고, 태종 신사(年)에 生員文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正(正朝?)에 이르렀다[주:위와 같다]. 서晉은 判書이며, 효손의 아들이고, 고려 시대 内史令 至煕의 후손이다.
독음
자 후산 이천인 삼의혼자 세종 정묘 생원 문과 대사성 이 강직하여 칭하라[주:대동운옥] 세조조 불론하여 피주[주:국조방목] 조상은 진 자는 휘지 태종 신사 생원 문과 관至정[주:상동] 진 판서 효손지자 고려 내시령 至煕 이후
의미
徐岡은 조선 세종과 세조대에 활동한 유학자이자 관리이다. 이천 출신으로, 세종 정묘(年)에 문과에 합격하여 대사성에 올랐으며, 강직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세조대에 불교 비판을 논하다가 처형되었다. 그의 조상은 고려 말 내시령 至煕에서 이어지며, 조부 서晉은 태종 신사(年) 문과 출신으로 正朝 벼슬에 이르고 판서를 지냈다. 조선 초 불교와 유교의 충돌 속에서 유교적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원문
字后山利川人參議混子世宗丁卯生員文科大司成以剛直稱[주:大東韻玉]世祖朝論佛被誅[주:國朝榜目]祖晉字晦之太宗辛巳生員文科官至正[주:上同]晉判書孝孫之子高麗內史令煕之後
엔티티 후보
- person: 서강 / 徐岡, confidence=0.95
- person: 서진 / 徐晉, confidence=0.9
- person: 지煕 / 至煕, confidence=0.85
- place: 이천 / 利川, confidence=0.95
- place: 후산 / 后山, confidence=0.8
- office: 삼의 / 參議, confidence=0.7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0.9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0.9
- office: 내시령 / 內史令, confidence=0.9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85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5
- term: 자(별칭) / 字, confidence=0.95
- term: 생원문과 / 生員文科, confidence=0.9
- term: 강직 / 剛直,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混子 (삼의혼자 또는 이천의 아들로 해석이 불분명)
- 官至正 (정2품 또는 正朝 관직으로 해석 상이)
- 孝孫 (이름인지 신분인지 명확하지 않음)
- 주석의 위치와 범위가 원문 구조상 명확하지 않음
(세종조)정전
- 기사 ID:
B9C^2_001_020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0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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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02
한글 번역
초계 태생으로 고려 시대에 전객령을 지냈고, 습인자라는 이름으로 우왕조에 문과에 합격하여 문장이 유명하였다. 조선에 편입되어 세종조에 벼슬이 예문관 제학에 이르렀으며, 관직을 사양하고 물러나 양도에서 노년을 보냈다. 시文集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독음
초계인 고려 전객령 습인자 숙윤조선 문과 유문명 입장조선 세종조 관至 예문관 제학 기해 퇴로하여 양도에 유집 행어세
의미
고려 말기에 벼슬했던 학자 정悛이 조선 세종대에 합류하여 예문관 제학까지 출사한 인물임을記한다. 고려직신으로 조선에 재임용된 인물사로 주목되며, 시文集이编纂되어 유행한 점도特筆한다.
원문
草溪人高麗典客令習仁子禑朝文科有文名入本朝世宗朝官至藝文館提學乞骸退老于咸陽有集行于世[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정悛 / 鄭悛, confidence=0.95
- place: 초계 / 草溪, confidence=0.95
- office: 전객령 / 典客令, confidence=0.85
- office: 예문관 제학 / 藝文館提學, confidence=0.95
- place: 양도 / 咸陽, confidence=0.9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권전
- 기사 ID:
B9C^2_001_020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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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7:03:21.56084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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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안동 출신으로서 한성부윤 백종의 아들로 태어나 관직이 판한성부사에 이르렀다. 실로 나의 현덕왕후를 낳아 나의 문종과 배필이 되었고, 단종을 낳았다. 화산부원군에 추증되고 시호는 경혜이다. 아들 자진은 관직이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세조 병자년에 자진이 성삼문, 박彭년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처참되었다. 시호는 충민이고 능월 장릉에 배식되었다.
독음
안동인 한성부윤 백종(伯宗)의 아들이官至判漢城府事)에 이르렀으니, 실로 나의 현덕왕후를 낳고, 나(文宗)와 배필이 되어 단종을 낳았다. 화산부원군에 추증되고, 시호는 경혜(景惠)이다. [주:璿源譜略] 아들 자진(自愼)은 예조판서(官至禮曹判書)에 이르렀다. 세조 병자년(1466)에 자진이 성삼문, 박彭年 등과 함께 상왕(上王:단종)을 회복할 음모를 꾸몄다. 발각되어 목베었다. [주:大東韻玉] 시호는 충민(忠愍)이고, 영월 장릉(莊陵)에 배식(配食)하였다.
의미
이 기문은 문종비 현덕왕후 가문의 계보와 그 아들 자진의 최면을 서술한다. 현덕왕후의 부친이 화산부원군에 추존되었고 아들 자진은 예조판서까지 올랐으나, 세조 연간에 성삼문, 박彭년 등과 함께 단종 복위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처형된 인물이다. 이후 충민의 시호를받고 영월 장릉에 배식되었다. 이는 조선 왕실의 보선(補蟬)과 그에 연좌된 가문의 운명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安東人漢城府尹伯宗子官至判漢城府事寔生我顯德王后配我文宗誕端宗贈花山府院君諡景惠[주:璿源譜略]子自愼官至禮曹判書世祖丙子自愼與成三問朴彭年等謀復上王事覺被誅[주:大東韻玉]諡忠愍配食寧越莊陵
엔티티 후보
- person: 한성부윤 백종 / 漢城府尹伯宗, confidence=0.95
- person: 현덕왕후 / 顯德王后, confidence=0.98
- person: 문종 / 文宗, confidence=0.98
- person: 단종 / 端宗, confidence=0.98
- person: 자진 / 自愼, confidence=0.98
- person: 성삼문 / 成三問, confidence=0.98
- person: 박彭년 / 朴彭年, confidence=0.98
- person: 화산부원군 / 花山府院君, confidence=0.95
- person: 경혜 / 諡景惠, confidence=0.95
- person: 충민 / 諡忠愍, confidence=0.95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0.98
- place: 한성부 / 漢城府, confidence=0.98
- place: 영월 장릉 / 寧越莊陵, confidence=0.95
- office: 판한성부사 / 判漢城府事, confidence=0.95
- office: 예조판서 / 禮曹判書, confidence=0.95
- work: 선원보략 / 璿源譜略, confidence=0.9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5
- term: 배식 / 配食, confidence=0.95
- term: 상왕 / 上王,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권륜
- 기사 ID:
B9C^2_001_020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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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50:13.18109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04
한글 번역
안동 사람으로,功臣贊成의 손자이다. 세종조 정묘년(1427) 문과에 장수하여 오래도록 충축건에 있었는데,장으로 불리었으며,대사성이 되어 나가 강원도监司가 되었다. 만년에德源府에 퇴休闲식하며 소요정을 쌓고 스스로 즐겼다.
독음
안동인찬성충지손세종정묘文科장구장축건이장자로칭하면서대사성출위강원감사만년퇴수어덕원부구소요정인이락
의미
權綸은安동출신으로功臣贊成의 손자이다. 세종 정묘년(1427) 문과에 及第하여 成均館 계열 관직에 오랫동안 재임하며長者의 칭호를 얻었다. 이후 대사성으로 나가 강원도监司를 역임하고,만년에 德源府로 퇴休闲식하여 소요정을 짓고 스스로의 낙을 즐긴 인물이다.
원문
安東人贊成衷之孫世宗丁卯文科久長胄監以長者稱以大司成出爲江原監司晚年退休于德源府搆逍遙亭以自樂[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권륜 / 權綸,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place: 덕원부 / 德源府, confidence=1.0
- place: 강원 / 江原, confidence=1.0
- office: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office: 축건 / 胄監, confidence=0.9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work: 소요정 / 逍遙亭, confidence=1.0
- term: 찬성 / 贊成, confidence=0.8
- person: 충 / 衷,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축건(胄監)의 정확한 직속 관청과 품階)
- 찬성(贊成)이功臣號인지 관직명인지 불분명
(세종조)정초
- 기사 ID:
B9C^2_001_020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0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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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2:43:54.18740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05
한글 번역
하동인(강원도 동해지역 출신) 정초는 고려 승성(찬성) 승경의 증손(손자의 아들)이다. 총명하고 과인하여 문장으로 세상을 밝혔다. 태종 을유년(태종 9년, 1409년)에 생원이 되고, 문과에 합격하였다. 정해년(세종 19년, 1427년) 중시(복시험)에 합격하였다. 이조 판서,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세종이 간의 대(간이 천문대)를 만들게 하여, 금돈, 금소 등과 함께 이에 참여하였다. 모두에게 시호로 문경을 내렸다[주:대동음옥에서 확인]. 아우 정제도 감찰을 지냈고, 아들 정수충은 문과 출신으로 이조 판서를 지내고 시호는 문절이었다[주:국조방목에서 확인].
독음
하동인집의희자고래찬성승경증손총명과인이문명세태종을유생원문과정해중시역뇌조판서예문관대제학세종명제간의대와금돈금소등동위문의경주:대동음옥제제도감찰제자수충문과판서문절주:국조방목
의미
정초는 강원도 동해 지역 출신으로 고려 승성(찬성) 승경의 4대손이다. 태종 때 문과에 합격하고 세종대에 이조 판서, 예문관 대제학 등 요직을 거쳤다. 세종 임금的命令으로 금돈, 금소 등과 함께 간의 대(簡儀臺)를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아우 정제도는 감찰이었고, 아들 정수충도 문과 출신 이조 판서가 되었다. 정초와 아들 수충은 각각 문경, 문절의 시호를 받았다. 가족이 모두 문과 합격자로 대제학, 이조 판서 등 높은 관직에 오른 기록이다.
원문
河東人執義煕子高麗贊成承慶曾孫聰明過人以文鳴世太宗乙酉生員文科丁亥重試歷吏曹判書藝文館大提學世宗命製簡儀臺與金墩金銚等同爲諡文景[주:大東韻玉]弟提監察提子守忠文科判書諡文節[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초 / 鄭招, confidence=0.98
- place: 하동(강원도 동해) / 河東, confidence=0.97
- person: 승경 / 承慶, confidence=0.95
- person: 금돈 / 金墩, confidence=0.92
- person: 금소 / 金銚, confidence=0.92
- person: 정수충 / 守忠, confidence=0.96
- person: 정제도 / 提, confidence=0.93
- office: 이조 판서 / 吏曹判書, confidence=0.97
- office: 예문관 대제학 / 藝文館大提學, confidence=0.95
- work: 간의 대 / 簡儀臺, confidence=0.93
- term: 문경(시호) / 文景, confidence=0.95
- term: 문절(시호) / 文節,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提監察提 - ‘제’로 읽었으나 原文中 ‘弟提監察提子’의 정확한 구성이 불분명하여 장의(兄의 오기 또는 관직명 미상) 가능성 있음
(세종조)여효온
- 기사 ID:
B9C^2_001_020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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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51:15.04506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08
한글 번역
의녕인(宜寧人)인 余孝溫은 부사(府使) 德潤의 아들이며, 고려 시대 의서(典書)를 지낸 仲淹의 증손(曾孫)이다. 부제학(副提學) 밀양의 朴剛生이 딸을 그에게 배우자로 삼게 하였으며, 세종 갑인년에 생원·문과에 합격하여文科代言을 역임하였다.
독음
의녕인은 부사 德潤의 아들이며 고려 의서(典書) 仲淹의 증손이다. 부제학 밀양朴剛生이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으니, 세종 갑인년에 생원문과에 합격하여文科代言을 역임하였다.
의미
余孝溫은 지금의 충남 의령 출신으로, 부사 德潤의 아들이자 고려 벼슬을 지낸 仲淹의 증손이다. 부제학 朴剛生이 딸을 그에게 시집보였고, 세종 치세의 갑인년(1454년)에 생원·문과에 합격하여文科代言 벼슬에 올랐다. 조선 전기 문관 가문의 혼인 관계와 과거 합격 이력을 보여주는 기사로, 출전은『國朝榜目』이다.
원문
宜寧人府使德潤子高麗典書仲淹曾孫副提學密陽朴剛生以女妻之世宗甲寅生員文科代言[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lace: 의녕 / 宜寧, confidence=1.0
- person: 여효온 / 余孝溫, confidence=1.0
- person: 덕윤 / 德潤, confidence=1.0
- person: 중엄 / 仲淹, confidence=1.0
- person: 박강생 / 朴剛生, confidence=1.0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office: 의서 / 典書, confidence=1.0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1.0
- office: 문과대언 / 文科代言, confidence=0.9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文科代言: 문과의 임금을 대표하던 벼슬로, 정확히 ‘문과대언’인지 ‘문과참서’ 등 유사 직칭과 구분이 불확실하다.
(세종조)이영서
- 기사 ID:
B9C^2_001_0209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09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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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7:03:46.59114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09
한글 번역
자의는 석류이고, 호는 희현당이다. 평창 사람으로서, 판관(군수) 종미의 아들이자, 시랑(대부) 천곡의 증손이다. 세종 임금 즉위년인 갑인년에 태어났으며, 원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예조의정랑을 지내고, 광주목사를 역임했다. 안염경이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독음
자석류 호희현당 평창인 판관종미자 시랑천곡증손 세종갑인생 원인문예조정랑 목사광주 안염경이여아처지
의미
조선 세종대 관료 이영서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이다. 字錫類, 호希賢堂, 평창 출신으로 판관 종미의 아들이자 시랑 천곡의 증손이다. 세종 갑인년생으로 과거文科에 합격하여 예조정랑, 광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安淹慶의 딸과 혼인하였다. 「국조방목」의 기록이다.
원문
字錫類號希賢堂平昌人判官宗美子侍郞天驥曾孫世宗甲寅生員文科禮曹正郞牧使廣州安淹慶以女妻之[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영서 / 李永瑞, confidence=1.0
- person: 석류 / 錫類, confidence=1.0
- person: 종미 / 宗美, confidence=1.0
- person: 천곡 / 天驥, confidence=1.0
- person: 안염경 / 安淹慶, confidence=1.0
- place: 평창 / 平昌, confidence=1.0
- place: 광주 / 廣州, confidence=1.0
- office: 판관 / 判官, confidence=1.0
- office: 시랑 / 侍郞, confidence=1.0
- office: 정랑 / 正郞, confidence=1.0
- office: 목사 / 牧使,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8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김돈
- 기사 ID:
B9C^2_001_021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1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51:44.29951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11
한글 번역
안동 사람은 대제학 김승용의 증손으로서 중전 김방경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태종 정유(정유)년에 생원으로 문과에 합격하였다. 세종이 왕세자로 있을 때 그의 이름을 듣고 부르려 하였으나 김돈은 사양하였다. 과거에 합격한 뒤 임금이 끌어내어 만나며 말씀하였다. “내가 당신을 보하고자 하였는데 당신은 나를 피하였으나 이제는 당신이 내 신하가 되었다.” 어머니를 위해 여러 번 외직 보직을 청하자 특별히 역마차를 하사하여 어머니를 데리고 수도로 와서 봉양하게 하니 학식 있는 선비들이 이를 영광으로 여겼다. 김돈은 의장과 천문상수리에 정통하였으며, 임금이 간의대(간이 천문 관측기)와 보루각(漏刻을 보고 시간을 알려주는 누각)을 만들 때 김돈이 이에 참여하였다.承旨(각사편집관)로 7년 동안 재임하고 관직은直提學에서 끝났다. 형제 김전은 태종 갑오(갑오)년에 생원으로 문과에 합격하여 직학사에 이르렀다.
독음
안동인 대提學承用의 증손 중輦방경의 후손으로 어려서부터力学하여 태종정유년 생원文科에 급제하였다.世宗이潜邸에 있을 때 그 이름을 듣고 불러으셨으나墩는 사양하였다. 及第登시 후 임금이 만나며 말씀하였다. “내가卿를 보하고자 하였는데卿는 나를 피하였으나 이제는 내 신하라.” 어머니를 위하면서 수차外補를 청하여 특별히驛馹을 내려 어머니를 데리고 수도로 와奉養하도록 하니士林이 이를 영예롭게 여겼다.墩는儀象에 정통하였으며 임금이簡儀臺와報漏閣을 제작할 때墩가 이에 참여하였다.承旨로 凡7년 재임하고官은直提學에까지 이르렀다.[주:昭代紀年] 형제塡은 태종갑오년 생원文科 출신으로直學士에 이르렀다.[주:國朝榜目]
의미
조선 세종대 신료 김돈(金墩)의 전기 기사이다. 안동 출신으로 대제학 김승용의 후손으로서 태종 정유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세종이 왕세자 시절 그의 학문을 높이 평가하여 부르려 하였으나 고향의 어머니를 떠나올 수 없어 사양하였다. 과거 합격 후 임금의 만남에서 “원래는 관계를 피하였으나 이제는 내 신하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를 간청하여 특별히 역마를 하사받고 어머니를 데리고 올라와 봉양하였다. 김돈은 의례와 천문 관측기구를 정통하여 간의대와 보루각 제작에 참여하였고,承旨로 7년간 근속한 뒤直提學에서 관작이 끝났다. 형제 김전도 태종 갑오년 문과 출신으로 직학사에 이르렀다. 이 기록은 조선 전기 문신의 가계, 관료생활, 기술 업무 참여 실록을 보여준다.
원문
安東人大提學承用曾孫中輦方慶之後自少力學太宗丁酉生員文科世宗在潛邸聞其名召之墩辭焉及登第上引見曰我欲見卿卿避我今則爲我臣矣爲母屢求補外特賜驛馹奉母來京以便養士林榮之墩精於儀象上製簡儀臺報漏閣墩與焉爲承旨凡七年官止直提學[주:昭代紀年]兄塡太宗甲午生員文科直學士[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돈 / 金墩, confidence=1.0
- person: 김승용 / 金承用, confidence=1.0
- person: 김전 / 金塡, confidence=1.0
- person: 방경 / 方慶, confidence=1.0
- place: 안동 / 安東, confidence=1.0
- place: 수도(한양) / 京, confidence=0.9
- office: 대제학 / 大提學, confidence=1.0
- office: 직提學(직제학) / 直提學, confidence=1.0
- office: 직학사 / 直學士, confidence=1.0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1.0
- work: 간의대 / 簡儀臺, confidence=1.0
- work: 보루각 / 報漏閣, confidence=1.0
- term: 생원문과 / 生員文科, confidence=1.0
- term: 잠저(왕세자 거처) / 潛邸, confidence=1.0
- term: 역마차 / 驛馹, confidence=1.0
- term: 의상(의례와 천문) / 儀象, confidence=0.9
- term: 사림(학자층) / 士林,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중輦(역임 관직의 하나인지 인명인지 문맥상 김방경의 호칭으로 보이나 완전한 확신 어려움)
(세종조)이선제
- 기사 ID:
B9C^2_001_021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1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4T10:17:01.59578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12
한글 번역
자(字)는 가부이다. 광주 출신이다. 밀직제학 홍길의 손자이다. 세종조 기해년에 생원이 되었고,文科 예문提學 관직에 이르렀으나 끝내参判에서 그쳤다. 아들이 둘 있었다. 시원은 문종 경오년에 文科에 합격했고, 헌납 형원은 文宗 신미년에 生員이 되었다. 조부와 손자, 증손이 삼대에 걸쳐 이어서 제학을 역임하였다.
독음
자(字)는 가부(家父). 광주인. 밀직제학(密直提學) 홍길(弘吉)의 손자. 세종조 기해년에 생원이 되었고, 문과에 합격하여 예문제학에 이르렀으나 관작은 참판에서 멈췄다. 두 아들이 있었다. 이시원(始元)은 문종 경오년에 문과에 합격했고, 이헌납(獻納) 이형원(亨元)은 문종 신미년에 생원이 되었다. 조부와 손자 및 증손이 삼세에 걸쳐 연쇄적으로 제학 직위를 역임하였다.
의미
조선 세종조 출신 관료 이선제의 가계와 이력을 수록한 기사이다. 광주 출신으로 밀직제학 홍길의 손자이며, 세종 기해년(1419)에 生員이 된 뒤 예문제학으로 승진했으나 最终 관직은 參判에 머물렀다. 두 아들 중 시원은 문종 경오년(1450)에, 형원은 문종 신미년(1451)에 각각 文科와 生員에 합격하였다. 특히 조부와 자손이 삼대에 걸쳐 제학 직위를 연속으로 역임한 것이 특기 사항이다. 注기에 ‘대동운옥(大東韻玉)’이 인용되어 있다.
원문
字家父光州人密直提學弘吉孫世宗己亥生員文科藝文提學官止參判有二子始元文宗庚午文科獻納亨元文宗辛未生員文科副提學祖及孫曾三世連爲提學[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선제 / 李先齊, confidence=0.95
- person: 가부 / 家父, confidence=0.9
- place: 광주 / 光州, confidence=0.95
- person: 홍길 / 弘吉, confidence=0.9
- office: 밀직제학 / 密直提學, confidence=0.95
- office: 예문제학 / 藝文提學, confidence=0.95
- office: 참판 / 參判, confidence=0.95
- person: 시원 / 始元, confidence=0.9
- person: 형원 / 亨元, confidence=0.9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祖及孫曾三世連爲提學文中 三世가 이선제 기준인지 홍길 기준인지 불분명하여 구체적 세대 관계 확정 곤란
(세종조)정척
- 기사 ID:
B9C^2_001_021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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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글자는 明之이고 호는 整菴이다. 진주 사람으로 향공생원이다. 태종 갑오년 문과에 급제하여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맑고 곧은 성품을 가졌다. 春亭 卞季良에게 배우고 관직을 승진하여修文殿大提學에 이르렀다. 수명궁을 먼저 지을 것을 건의하자 조정이 이를 채택하여 長生殿을 세웠다. 한번 명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가니 그때 몽골의 乜先이 반역을 일으켜 영종이 북쪽으로 피신하였는데,陟은 태연자약한 낯빛으로 어려움 없이 燕京에 들어가代宗이 즉위하자 예법에 따라 조현하였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음력 초일과 보름이면 반드시 가묘에 제사를 지냈고, 얻은 귀한 음식이나 명절 물건, 하사받은 생선이나 고기라도 반드시 제사지냈다. 대개 조정의 의례에 대하여 많이 의논하고 아뢰었다. 세조가 항상 말씀하기를 “내가 세종으로 하여금 ‘청직(淸直)’二字로 너를 칭찬하게 하였는데 그 말이 아직 귀에 있다.”고 하였다.陟은 여섯 조정을 섬기고 年八十六에 入耆社하였으며, 清白을 선거하여 시호는 恭戴였다. [주:人物考] 아들 誠謹이承旨를 역임하였다.
독음
자유명지호정암진주인향공생원태종갑오문과근각청개종춘정변계양학누관至修文殿大提학청역조태조수궁조정시지시건장생전상봉사입명시몽골야선범순영종북수적역연무난색입연경대종즉위적조조알여의성지효삭망필전於가묘소득이어상절물수시어육소비필천지범조정의례다소어의세조상어왈아세종이청직二字허경언유재이적역력료조년팔십육입기사선록청백시공대[주:인물고]자성근승지
의미
鄭陟는 태종 갑오년 문과 급제자로, 春亭卞季良门下에서 수학하고修文殿大提學至,官至에 이르렀다. 명나라 사신 시절 영종이 몽골의 침입으로 북쪽으로 피신한 상황에서 태연히燕京에抵해 조정을 대리하던代宗을 조현하는 등 통찰력과 용기를 보였다. 지극한 효성과 清直한 성품을 갖추어世宗의 칭찬을 받았으며, 여섯朝를 섬기고 86세까지 생존하여 入耆사하였다. 清白한 행실로 恭戴라는 시호를 받았다.
원문
字明之號整菴晉州人鄕貢生員太宗甲午文科勤恪淸介從春亭卞季良學累官至修文殿大提學請豫造壽宮朝廷是之始建長生殿嘗奉使入明時蒙古乜先犯順英宗北狩陟毅然無難色入燕京代宗卽位陟朝謁如儀性至孝朔望必奠於家廟所得異味節物受賜魚肉亦必薦之凡朝廷儀禮多所擬議世祖常語曰我世宗以淸直二字許卿言猶在耳陟歷事六朝年八十六入耆社選錄淸白諡恭戴[주:人物考]子誠謹承旨
엔티티 후보
- person: 정척 / 鄭陟, confidence=0.98
- person: 변계양 / 卞季良, confidence=0.97
- person: 야선 / 乜先, confidence=0.92
- person: 정성근 / 鄭誠謹, confidence=0.94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0.97
- place: 연경 / 燕京, confidence=0.93
- office: 수문전대提學 / 修文殿大提學, confidence=0.89
- office: 승지 / 承旨, confidence=0.96
- work: 장생전 / 長生殿, confidence=0.9
- term: 향공생원 / 鄕貢生員, confidence=0.82
- term: 기사 / 耆社, confidence=0.85
- term: 청백 / 淸白,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字明之호整菴의,整菴이 ‘整菴’인지 ‘整菴’인지 확인 필요
- 字의 용법이 字號(자호)인지 명확한 字(실명)인지 미확인
- 鄕貢生員의 정확한 직제 분류
- 修文殿大提學官名 최종 직급 확인
- 入耆社와 清白選錄의 구체적 운영 방식
(세종조)김문
- 기사 ID:
B9C^2_001_021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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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호는 서헌이고, 언양 사람이다. 전서 복의 아들이며, 고려의 정승 윤의 증손이다. 재종형제는 학식이 넓고 경사를 꿰뚫었다. 세종 경자(세종 2년, 1420년)의 문과에 급제했으며, 총명함이 보통 사람을 지나쳤다. 특히 사학에 뛰어나, 사람으로 하여금 사략강목을 묻게 하면, 김문이 즉석에서 대답하기를 어느 권, 몇 장에 있다 하니, 백에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종종 명령을 받아 진실로思政殿訓義를 지어 바쳤다. 국조 이래로 사학에 통달한 자로서 김문을 으뜸으로 삼았다. 세종이 총애하고 대우함이 날로隆하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 도를 크게 베풀지 못했으며, 벼슬은 집현전 직학으로 그쳤다. 동知成均事林薰은 김문에게 수학하였고, 김문은 사藝 李陽明에게 배웠으며, 李陽明은 鄭夢周에게 배웠다.
독음
호서헌언양인전서복자기고려정승윤증손자재종제학경사세종경자문과총명과인유장어사학인유문목자은응성대왈재구권제几张백불일상승명천진진사훈의국조이래능통사학이汶위수세종권의일상조조직학대동운악동지성균사임훈수학어김문문학어사의이양명양명학어정몽주
의미
조선 세종조의 학자 金汶의 행장을 적은 기사이다. 서헌이라는 호로 불렸으며, 고려 시대 정승 윤의 가문 출신으로, 세종 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사학에 조예가 깊었다.史学綱目을 논할 때 권수와 장수를 즉시 답할 정도로 뛰어나, 国朝 이래 사학의第一人으로 평가받았다.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나 요절하여 재능을充分发挥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자 林薰과 学統 系譜도 기록되어 있다.
원문
號西軒彥陽人典書復子高麗政丞倫曾孫赭再從弟博學經史世宗庚子文科聰明過人尤長於史學人有問綱目者汶應聲對曰在某卷第幾張百不一失常承命撰進思政殿訓義國朝以來能通史學以汶爲首世宗眷遇日隆早卒不大厥施官止集賢殿直學[주:大東韻玉]同知成均事林薰受學于金汶汶學于司藝李陽明陽明學于鄭夢周[주:東儒師友錄]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문 / 金汶, confidence=0.95
- person: 임훈 / 林薰, confidence=0.9
- person: 이양명 / 李陽明, confidence=0.9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0.9
- person: 윤 / 倫, confidence=0.85
- place: 언양 / 彦陽, confidence=0.9
- office: 집현전 / 集賢殿, confidence=0.9
- office: 성균관 / 成均館, confidence=0.85
- office: 전서 / 典書, confidence=0.85
- work: 사정전훈의 / 思政殿訓義, confidence=0.85
- term: 정승 / 政丞, confidence=0.8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
- term: 강목 / 綱目,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赭再從弟의 정확한 문중 관계
- 直學의 관품
- 學藝李陽明의 표기
(세종조)황현
- 기사 ID:
B9C^2_001_021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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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평해(平海) 출신으로, 시중(侍中) 유중(裕中)의 증손(曾孫)이며, 제학(提學) 근(瑾)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유정(有定)으로서 관직이 전서(典書)에 이르렀고, 상서(尙書) 봉화(奉化) 정 云敬의 따님을 아내로 맞이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현(鉉)이다. 현은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이 단정하여 당세의 스승으로서 유학자의 표상이 되었다. 중생원(中生員)으로서 장원(壯元)에 뽑혔고, 태조(太祖) 계유(癸酉)년 문과(文科)에 합격하였다. 태종(太宗) 정해(丁亥)년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대사성(大司成)에 오르며, 세종(世宗)조에 이르러 유생(儒生)들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공적으로는 현을 으뜸으로 삼았다.
독음
평해인 시중 유중 증손 제학 근 손부 유정 관至 전서 취 상서 봉화 정 云敬 여생 현 경제행수 위세사유 중생원 장원 태조 기사酉 문과 태종 정해 重試 대사성 세종조 교수 유생훈적지의공 이내 현 위수
의미
조선 시대 유학자 황현의 가계와 학력·관력 경력을 적은 기사로, 태조·태종·세종 三朝에 걸쳐 문과 급제와 요직을 역임하고, 특히 세종조에서 유학 교육에 크게 기여하여 그 공을 으뜸으로 평가받았음을 보여준다. 동유사우록에서 수록된 인물이다.
원문
平海人侍中裕中曾孫提學瑾孫父有定官至典書娶尙書奉化鄭云敬女生鉉經明行修爲世師儒中生員壯元太祖癸酉文科太宗丁亥重試大司成世宗朝掌敎儒生訓迪之功以鉉爲首[주:東儒師友錄]
엔티티 후보
- person: 황현 / 黃鉉, confidence=1.0
- person: 황유중 / 黃裕中, confidence=1.0
- person: 황근 / 黃瑾, confidence=1.0
- person: 황유정 / 黃有定, confidence=1.0
- person: 정云敬 / 鄭云敬, confidence=1.0
- place: 평해 / 平海, confidence=1.0
- place: 봉화 / 奉化, confidence=1.0
- office: 시중 / 侍中, confidence=1.0
- office: 제학 / 提學, confidence=1.0
- office: 전서 / 典書, confidence=1.0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1.0
- office: 상서 / 尙書, confidence=1.0
- work: 동유사우록 / 東儒師友錄,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term: 중생원 / 中生員, confidence=1.0
- term: 장원 / 壯元, confidence=1.0
- term: 경제행수 / 經明行修, confidence=1.0
- term: 사유 / 師儒, confidence=1.0
(세종조)김반
- 기사 ID:
B9C^2_001_022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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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4T10:18:56.73941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22
한글 번역
호는 시원이고 자는 송정이다. 강서江西省출신으로 양촌 권근에게 수업하였다. 경학에 정통하였다. 정종 기묘년(1399년)의 생원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이 되었다. 성균관에 전후 사십 년간 교화를 멈추지 않아 유명한 선비들이 그 문하에서 많이 나왔다. 한때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올 적에, 물고기와 용 그림묶음에 제호를 구하였다. 반이 제호하기를, 누가 가벼운 비단을 펼쳐 풍파와 구름 안개가 어둡게 드리운 가운데 번개 같은 비늘이 푸른 바다를 뒤집고 신물이 푸른 하늘로 치솟는다. 잠복과 현현하는 형상은 비록 다르나 비상하려는 뜻은 같다. 만약 꼬리를 불에 그을려 끊는다 해도 하늘의 용에 매달리겠노라 하였다. 명나라 사람들이 감탄하여 이를 연단미(燒斷尾) 선생이라 불렀다. 반은 재산을 꾸미지 않았고, 첨지중추원사로 물러나 고향으로 퇴거하여 조석으로 부족함이 있을 정도로 살다 죽었다. 매월당 김시습이 반에게 수학하였다. 선조가 서쪽 행차할 때 명을 내려 그 무덤을 고치고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냈다.
독음
자시원호송정강서인수업어양촌권근정어경학정종기묘생원문과대사성재성균관전후사십년교훈불권지명치지다출기문상인입명유구제어어용용족자반제왈수화경소폭풍도운무몽금린번벽해신물상청공잠견형수이비등지측동약위소연단미반부재용명인탄삼위지소연단미선생반불영산업)이첨지중추원사고퇴로본현조석불급이죽매월당김시습종학우반선조서행명수기묘관치제[주:동서사우록]
의미
조선 세종조 학자 김반의 행장을 기록한 기사이다. 권근의 제자로 경학에 정통하여 성균관 대사성으로 오랫동안 교육에 힘썼다.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올 때 물고기와 용 그림에 即興으로 지은 제영시에서 꼬리를 그을려 끊어도 하늘의 용에 매달리겠다는 비상하는 이상을 표현하였다. 명나라 사람들이 감탄하여 연단미 선생이라 불렀으며, 이는 자신의 불우한 상황에서도 꿈을 놓지 않았던 그의 학자적 풍모를 보여준다. 재산을 모으지 않고 빈곤하게 살았으나 문하에서 유명한 선비들을 배출하였다. 유명한 제자 김시습(매월堂)이 선조에게 청하여 그 무덤을 보수하고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원문
字詞源號松亭江西人受業于陽村權近精於經學定宗己卯生員文科大司成在成均館前後四十年敎誨不倦知名之士多出其門嘗以書狀官入明有求題魚龍簇者泮題曰誰畫輕綃幅風濤雲霧濛錦鱗翻碧海神物上靑空潛見形雖異飛騰志則同若爲燒斷尾攀拊在天龍明人歎賞謂之燒斷尾先生泮不營產業以僉知中樞院事退老本縣朝夕不給而卒梅月堂金時習從學于泮宣祖西幸命修其墓遣官致祭[주:東儒師友錄]
엔티티 후보
- person: 김반 / 金泮, confidence=1.0
- person: 권근 / 權近, confidence=1.0
- person: 김시습 / 金時習, confidence=1.0
- person: 세종 / 世宗, confidence=0.9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정종 / 定宗, confidence=1.0
- place: 강서 / 江西, confidence=1.0
- place: 성균관 / 成均館, confidence=1.0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1.0
- office: 서장관 / 書狀官, confidence=1.0
- office: 첨지중추원사 / 僉知中樞院事, confidence=1.0
- work: 동서사우록 / 東儒師友錄, confidence=1.0
- term: 생원문과 / 生員文科, confidence=1.0
- term: 어용족 / 魚龍簇,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정자영
- 기사 ID:
B9C^2_001_022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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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54:10.31350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23
한글 번역
영덕군 사람이었던 봉례 도자는 오경을 통달하고 여러 역사를 널리 섭렵하며 『주역』의 이치에 정통했다. 세종 갑인년(1454)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판서가 되었다. 문학으로 이름을 드러내 사유(스승의 직위)로서 40여 년을 가르치며 세조에게 깊이 존중받았다.死后 시호는 문장이었다. [주: 『동서사우록』]
독음
영덕인 봉례 도자 오경을 통달하고 여러 역사를 박학하게 섭렵하며 역리에 정통하다. 세종 갑인(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판서가 되었다. 문학으로 발호하여 사유로 40여 년이 되었고 세조에게 중시받았다. 시호는 문장이다. [주: 동서사우록]
의미
조선 세종 시기 학자 정자영(道子)의 행적을 수록한 기사다. 영덕군 출신으로 오경과 역리에 정통했으며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판서까지 역임했다. 이후 40여 년간 학문 교육에 힘써 세조에게 중시받았고, 사후 시호로 문장이 내려졌다. 『동서사우록』에서 채록된 인물이다.
원문
盈德人奉禮道子通五經博涉諸史精於易理世宗甲寅文科禮曹判書以文學顯爲師儒四十餘年爲世祖所重諡文長[주:東儒師友錄]
엔티티 후보
- place: 영덕 / 盈德, confidence=0.95
- person: 정자영 / 鄭自英, confidence=0.95
- person: 도자 / 道子, confidence=0.95
- office: 봉례 / 奉禮, confidence=0.9
- office: 예조 판서 / 禮曹判書, confidence=0.95
- office: 사유 / 師儒, confidence=0.85
- work: 동서사우록 / 東儒師友錄,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term: 오경 / 五經, confidence=0.95
- term: 역리 / 易理, confidence=0.9
- term: 시호 / 諡, confidence=0.9
- term: 문장 / 文長,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동서사우록』의 구체적 편찬 연대와 편집자에 대한 기록이 없어 신뢰도 검증이 어렵습니다.
(세종조)최만이
- 기사 ID:
B9C^2_001_022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2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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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11T17:06:26.93731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24
한글 번역
자는 자명, 해주 출신이다. 소윤(少尹)荷의 자식 문헌공 충의 후손으로, 갑오년에 생원이 되었다. 세종 기해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도 감사를 지내고 홍문관에 선발되어 부제학이 되었다. 10여 년 동안 재임하면서 한 번은 환관들이 사모(紗帽)를 쓰고 다니는 것이 고제(古制)에 맞지 않는다 하여 중국의 예를 따를 것을 상주했으므로, 여러 환관들이 노려보았다. 『청백록』에 기록되었고, 정미년에 중시(重試)를 치렀으며, 『국조방목』에 실렸다.
독음
자자명해주인소윤하자문헌공충후갑오생원세종기해문과강원감사선입홍문관위부제학십여년상론환자저오사모부합고제청의중국저례제환측목시之家선록청백정미중시국조방목
의미
조선 세종~성종대에 활동한 문신 최만의 약력이다. 문과 급제 후 강원도 감사와 홍문관 부제학을 역임했다. 환관들이 사모를 쓰는 것이 옛 제도에 어긋난다며 중국의 예를 따를 것을 건의했다가 여러 환관들의 원한을 샀다. 청백한 관료로 평가받아 『청백록』에 이름이 올라갔고, 이후 중시를 통해 다시 한번 시험에 합격했다.
원문
字子明海州人少尹荷子文憲公沖後甲午生員世宗己亥文科江原監司選入弘文館爲副提學十餘年嘗論宦者着烏紗帽不合古制請依中國着例諸宦側目視之選錄淸白[주:昭代紀年]丁未重試[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최만리 / 崔萬理, confidence=0.95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0.75
- place: 해주 / 海州, confidence=0.95
- office: 강원도 감사 / 江原監司, confidence=0.95
- office: 홍문관 / 弘文館, confidence=0.95
- office: 부제학 / 副提學, confidence=0.95
- work: 청백록 / 淸白錄, confidence=0.8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세종조)설위
- 기사 ID:
B9C^2_001_022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2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54:53.61327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28
한글 번역
순창 사람으로 중랑장 응자의가 세종 기해년에 교육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이 되었다. 일찍이 현감으로 있으면서 청렴하고 검소하였으나, 그른 이유로監司에게 비난을 받고는 분하여 벼루를 던져 떠났다. 시에 이르기를, ‘여러 해 강준에서 홀로 거문고를 울렸으니 다만 산이 높고 물이 깊을 뿐이다. 세상에서鍾子期를 만나기 어렵거늘 현악기 속에서 누가伯牙의 마음을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독음
순창인 중랑장 응자의 세종 기해년에 교육으로 문과에 오르니 대사성이었다. 일찍이 현감으로 있으면서 청렴하고 검소하였으나 그른 이유로監司의 비난을 받고 이에 벼루를 던져而去하였으니,[/] 시에 이르기를,<數年江郡獨鳴琴秪在山高與水深世上難逢鍾子耳絃中誰會伯牙心>이라하였다.數年江郡獨鳴琴秪在山高與水深世上難逢鍾子耳絃中誰會伯牙心>
의미
순창 출신 인물 응자의가 세종대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까지 올랐으나, 현감 재임 중监司의 실격 비난을 받고 벼슬을 떠났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시를 통해 세상에서 이해자를 찾기 어려움을伯牙와鍾子期 고사를 인용하여 드러낸다.
원문
淳昌人中郞將凝子世宗己亥以敎導登文科大司成[주:國朝榜目]嘗爲縣監廉謹誤被監司之詆遂投笏而去有詩曰數年江郡獨鳴琴秪在山高與水深世上難逢鍾子耳絃中誰會伯牙心[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lace: 순창 / 淳昌, confidence=0.95
- person: 응자 / 凝子, confidence=0.8
- office: 중랑장 / 中郞將, confidence=0.85
- office: 대사성 / 大司成, confidence=0.85
- office: 현감 / 縣監, confidence=0.9
- person: 감사 / 監司, confidence=0.7
- person: 종자기 / 鍾子, confidence=0.9
- person: 백아 / 伯牙, confidence=0.9
- work: 대동운어 / 大東韻玉,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凝子(명자 또는 성 응)
- 監司(이 문맥에서 감사 또는 수어)’, ‘投笏而去(표현의 정확한 뜻)
(세종조)남간
- 기사 ID:
B9C^2_001_0231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3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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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5-16T19:55:32.36448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31
한글 번역
유의 사람은 재孫景文의 아들로, 기해(1439)년 생원 진사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아버지의庇蔭으로 형조 좌랑에 보직되었고, 세종조 정미(1461)년 문과에 합격하여直提學을 역임했으며, 청렴하고 고고한 것으로名声을 떨쳤다. 주: 《대동운옥》에 실려 있다. 아들 南俊은監察이 되었고, 南俊의 아들 南悌는 成宗 신묘(1471)년 문과에 합격하여寺藝에 오르고, 南悌의 형 南慄은 字를 子直이라 하니, 成宗 기유(1489)년 생원 문과에 합격하여大司諫에 이르렀다.
독음
유의남인 재손경문 자 기해 진사 음보 형조 좌랑 세종 정미 문과 직提학 이 염개칭 [주: 대동운옥] 자 준 감찰 준 자 제 成宗 신묘 문과 사예 제 형 졸 자 직 成宗 기유 생원 문과 대사감
의미
조선 세종조 인물 南簡의 가계와 관직 이력을 수록한 계보문이다. 南簡은宜寧 출신으로 현사孫景文의 아들이며, 세종 치세 정미(1461)년 문과 합격 후 直提學을 지냈고, 청렴한 인격으로 칭송받았다. 아들 南俊, 손자 南悌, 종손(?) 남慄에 이르기까지 문과 급제와 요직 기록이 이어진다.
원문
宜寧人在孫景文子己亥進士蔭補刑曹佐郞世宗丁未文科直提學以廉介稱[주:大東韻玉]子俊監察俊子悌成宗辛卯文科司藝悌兄慄字子直成宗己酉生員文科大司諫
엔티티 후보
- place: 유의 / 宜寧, confidence=0.95
- person: 남간 / 南簡, confidence=0.98
- person: 손경문 / 孫景文, confidence=0.95
- term: 음보 / 蔭補, confidence=0.9
- office: 형조 좌랑 / 刑曹佐郞,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7
- office: 직提학 / 直提學, confidence=0.85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
- person: 남준 / 南俊, confidence=0.95
- office: 감찰 / 監察, confidence=0.97
- person: 남제 / 南悌, confidence=0.95
- office: 사예 / 司藝, confidence=0.95
- person: 남률 / 南慄, confidence=0.95
- term: 자(호) / 字, confidence=0.97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0.95
- office: 대사감 / 大司諫,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直提學: 直提學의 정확히 직제학(직제학)인지 직提學의 준말인지는 확신하기 어려움
- 在孫景文: ‘在’를 人名 前後의 系連結用法으로 解讀하였으나 다른 解釋 가능성 있음
- 子俊監察: ‘子俊’과 ‘監察’을 한 사람 南俊으로 解讀하였으나 원문의 구두가 불분명함
- 悌兄慄: 남悌의 형이 남慄이라는 系屬關係가 명확하지 않음
(세종조)이문형
- 기사 ID:
B9C^2_001_0232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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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경주 출신의 인물이다. 아버지 이희(李暿)는 음직으로 감사를 지냈고, 판서 안등(安騰)의 딸에게서 이문형(李文炯)을 낳았다. 이문형은容貌风姿가 옥처럼 윤기롭고 문雅함이 세상에 널리 칭송되었다. 세종 즉위년인 정묘년(1427년)에 문과 삼장 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조 참판에 올랐다.[주: 『국조방목』에서 발췌한 기사임]
독음
경주인 아버지 희음 감사를 맞아 판서 안등의 딸에게서 문형을 낳았다. 풍채와 자태가 옥처럼 윤기롭고 문雅함이 세상에 칭송되었다. 세종 정묘년에 문과 삼장에서 발괴로 급제하여 예조 참판에 오랐다. [주: 국조방목]
의미
조선 세종대 신료 이문형의 가계와 인물적 특징, 과거 급제 경위를 수록한 짧은 전기 기사다. 아버지 이희의 관료 경력, 모친 안등의 가문, 문형의 풍채와才學, 丁卯년(1427) 문과 삼장 시험에서 발괴(장원) 급제하여 예조 참판에 任官한 사실이記錄되어 있다. 『국조방목』의 条目을 원문으로 삼은 주석이 붙어 있다.
원문
慶州人父暿蔭監司娶判書安騰女生文炯風姿玉裕文雅稱世世宗丁卯文科三場拔魁禮曹參判[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이문형 / 李文炯, confidence=1.0
- person: 이희 / 李暿, confidence=1.0
- person: 안등 / 安騰, confidence=1.0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1.0
- office: 감사 / 監司, confidence=1.0
- office: 판서 / 判書, confidence=1.0
- office: 예조 참판 / 禮曹參判,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 term: 문과 삼장 발괴 / 文科三場拔魁,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삼장: 문과 시험 단계가 3단계라는 설과地方 향시 체제에서의 의미 해석이 불확분
(세종조)이계수
- 기사 ID:
B9C^2_001_0233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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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33
한글 번역
용안 출신으로 세종 임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판사가 된 이 사람이, 계모가 나이를 먹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孝敬하여 모셨으므로 효행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독음
용안인 세종 임자 문과 판사 계모가 나이 들어 관직을 버리고 돌아와 양로하니 효행으로 이름이 들렸다
의미
용안 출신 이계수는 세종 임자년(태종 12년, 1412년) 문과에 급제하여 판사가 되었다. 그의 계모가 나이가 들어後 사정이 달려지자, 벼슬을버리고 귀향하여 계모를奉養하며孝敬하였고, 이 효행이之名으로傳承되었다는記事이다.
원문
龍安人世宗壬子文科判事繼母年老棄官歸養以孝聞[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계수 / 李桂遂, confidence=0.95
- place: 용안 / 龍安, confidence=0.95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0.95
- office: 판사 / 判事, confidence=0.95
- term: 귀양 / 歸養,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歸養 - 귀향하여 봉양한다는意的로解되나, 귀양(귀양流配)으로도讀이 가능하다.다만 이 文脈에서는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여奉養한다는意的로 보며, 流配의 의미보다는退休 후 귀향한다는解釈이更适合하다.
(세종조)배윤
- 기사 ID:
B9C^2_001_0234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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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34
한글 번역
성주 사람은 아버지 배규가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감이 되었고 곧은 명성이 있었다. 좌대언 수원의 김승득의 딸에게 장가 들어 배윤을 낳았다. 배윤은 태종 신묘년(1419)에 생원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검阅관에 보충되었으며 관직은 집현전 직제학에서 그쳤다. 배윤의 아들 구성도 태종 신묘년에 생원 문과에 급제하여 부자가 같은 해 같은 과에 합격했다. 배윤의 아우 문의도 태종 갑오년(1414)에 생원 문과에 급제하고 정언이 되었으며, 구성은 헌납이 되어 부자·형제가 연이어 첩원(비서관)에 나가 예우를 받았다.
독음
성주인 부규 문과 대사감 유직성 취좌대언 수원 김승득 여생 문 태종 신묘년 생원 문과 보검阅관 지 집현전 직제학 문자충 태종 신묘년 생원 문과 부자 동방 문의제헌납 부자 형제 제입 첨원 시인영지
의미
성주 출신의 배윤 가문이 세대에 걸쳐 문과에 연달아 합격하고 첩원에 진출한 사실을 기록한 기사다. 아버지 배규는 대사감으로 곧은 명성을 떨쳤고, 아들 배윤은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으며, 아우 문은 정언, 아들 구성은 헌납이 되어 부자·형제가 모두 言官인 첩원에 나가当时 사람들이 크게 기렸다. 부자 구성이 아버지 배윤과 같은 해 같은 과에 합격한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원문
星州人父規文科大司諫有直聲娶左代言水原金承得女生閏太宗辛卯生員文科補檢閱官止集賢殿直提學閏子樞太宗辛卯生員文科父子同榜閏弟閒太宗甲午生員文科正言樞爲獻納父子兄弟繼入諫院時人榮之[주:大東韻玉]
엔티티 후보
- place: 성주 / 星州, confidence=0.95
- person: 배윤 / 裴閏, confidence=0.98
- person: 배규 / 裴規, confidence=0.98
- person: 배구성 / 裴樞, confidence=0.97
- person: 배문 / 裴閒, confidence=0.97
- person: 김승득 / 金承得, confidence=0.97
- office: 대사감 / 大司諫, confidence=0.92
- office: 집현전 직제학 / 集賢殿直提學, confidence=0.9
- office: 헌납 / 獻納, confidence=0.92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0.9
- term: 동방 / 同榜, confidence=0.93
- term: 첨원 / 諫院, confidence=0.88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보검阅관: 직제 명칭이 불확확하며 보검(補闕)과 검阅(검열)의 혼용 가능성 있음
(세종조)강신
- 기사 ID:
B9C^2_001_0235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35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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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2T12:47:36.01832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35
한글 번역
신천 사람으로, 아버지 거의는 관직이 부사에 머물렀고, 빈궁사(按廉使) 거주(鵝洲)의 신우의 딸을 맞이하여 자녀를 두었다. 그가 낳은 사람이 康愼이다. 康愼은 세종 임술년(1443)에 생원에 합격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이 벽선(弼善)에 이르렀다. 시로 이름이 있었는데, 대동운옥(大東韻玉)에 수록되어 있다.居義의 형인 居禮는 군사를 지냈고,居禮의 아들 惕의 아들 백진은 무오년에 명현으로 이름났다.
독음
신천인 부친 거의 관지 부사취 빈궁사 거주 신우녀 생겼다 세종 경자 생원 문과 관 至 벽선 유 시명[주:대동운옥]거의 형 거례 지군사 거례자 격 격자 백진 무오 명현
의미
신천 출신 康愼의 가계와 이력을 적은 기사다. 康愼은 세종 25년(1443) 문과에 급제하여 벽선까지 관직에 올랐고 시로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 居義와 형 居禮 등 가족의 관직과 후손 伯珍의 활동을 함께 수록하여, 한 문장으로 인물의 배경과 후손 정보를 압축 전달하는 체로 서술되어 있다.
원문
信川人父居義官止府使娶按廉使鵝洲申祐女生愼世宗庚子生員文科官至弼善有詩名[주:大東韻玉]居義兄居禮知郡事居禮子惕惕子伯珍戊午名賢
엔티티 후보
- person: 강신 / 康愼, confidence=1.0
- person: 거의 / 居義, confidence=1.0
- person: 신우 / 申祐, confidence=1.0
- person: 거례 / 居禮, confidence=1.0
- person: 격 / 惕, confidence=1.0
- person: 백진 / 伯珍, confidence=0.9
- place: 신천 / 信川, confidence=1.0
- place: 아주 / 鵝洲, confidence=0.9
- office: 부사 / 府使, confidence=1.0
- office: 빈궁사 / 按廉使, confidence=0.9
- office: 벽선 / 弼善, confidence=1.0
- office: 군사 / 郡事,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생원 / 生員, confidence=1.0
- term: 명현 / 名賢,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文科은 과거 급제 자격(生員)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나, 문과 합격자격을 줄여 쓴 표현인지 여부
- 伯珍의 한자 표기가伯(백)인지佰(백)인지 원문만으로는 확신하기 어려움
(세종조)전효종
- 기사 ID:
B9C^2_001_0236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36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17:07:29.82920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36
한글 번역
의령 사람은 나이가 열두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자 효종이 복상 중에 초막에 거처하였다. 어머니가 만류하였으나 듣지 아니하고 3년을 마치였다. 이 일이 세종에게 알려지자 세종은 명하여 장서랑으로 임명하였다. 최치안은 수원 사람으로 나이가 열네 살에 아버지의 병을 대신하여 조부모의 묘를 지키며 3년을 지냈다. 세종은 명하여 벼슬에 임명하였다.
독음
의령인년십이부몰효종거려모지치지불청종삼년사문세종명제장서랑최치안수원인년십사대부병수조분삼년세종명제직
의미
세종조에 두 인물이 효행으로 포상받은 기록이다. 의령 출신 효종은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이 후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년간 복상 초막에 거처하며 효를 행하였고, 수원 출신 최치안은 열네 살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조부모 묘를 3년간 지키며孝敬을 실천하였다. 세종은 두 사람의 효행에 감동하여 각각 장서랑과 관직에 임명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조선 시대 유학 중심 효행관이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원문
宜寧人年十二父歿孝終居廬母止之不聽終三年事聞世宗命除將仕郞[주:大東韻玉]崔致安水原人年十四代父病守祖墳三年世宗命除職[주:上同]
엔티티 후보
- person: 효종 / 孝終, confidence=0.95
- person: 최치안 / 崔致安, confidence=0.95
- place: 의령 / 宜寧, confidence=0.95
- place: 수원 / 水原, confidence=0.95
- office: 장서랑 / 將仕郞, confidence=0.9
- term: 초막에 거처하다 / 居廬, confidence=0.85
- term: 조부모 묘를 지키다 / 守祖坟,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代父病의 구체적 의미(아버지 병 간호 대행 여부)
- 除職의 구체적 직위
- 주석 大東韻玉과 上同의 정확한 주석 대상
(세종조)로숙동
- 기사 ID:
B9C^2_001_0237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37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11T17:07:45.37860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37
한글 번역
자(字)는 화중이고 호(號)는 송재이며, 풍천 출생으로 시的名望이 있었다. 세종 정미(1457)년 문과에 급제하고, 병진(1466)년에 중시에도 합격하였다. 대사헌으로 선발되었고, 清白함을 본받아 文學으로 이름을 드러냈다[주:대동운옥]. 아들 노윤(昐)의 자(字)는 영승이고 호(號)는寧極堂이다. 세조 임오(1462)년 문과에 급제하고, 병술(1466)년에 拔英科에 합격하여 응교가 되었다. 나이 사십이(42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주:국조방목].
독음
자로화중호송재풍천인이시명세종정미문과병진중시대사헌선록청백이문학자로[주:대동운옥]자윤자동영승호녕극당세조임오문과병술발영과응교연사십이조조질[주:국조방목]
의미
조선 세종 연간에 활동한 文臣 노숙동의 인물록이다. 풍천 출신으로 시로 名望을 얻었고, 문과에 급제한 뒤 대사헌까지 역임하여 清白하고 文學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들 노윤도 세조 연간에 문과에 합격하여 응교가 되었으나, 불과 42세에 요절하여 아쉽게도 큰 管고로 남지 못하였다.
원문
字和仲號松齋豐川人有詩名世宗丁未文科丙辰重試大司憲選錄淸白以文學著[주:大東韻玉]子昐字彥昇號寧極堂世祖壬午文科丙戌拔英科應敎年四十二早卒[주:國朝榜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노숙동 / 盧叔仝, confidence=1.0
- person: 노윤 / 昐, confidence=1.0
- place: 풍천 / 豐川, confidence=1.0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1.0
- office: 응교 / 應敎, confidence=1.0
- work: 대동운옥 / 大東韻玉, confidence=1.0
- work: 국조방목 / 國朝榜目, confidence=1.0
- term: 자(별칭) / 字, confidence=1.0
- term: 호(예호) / 號, confidence=1.0
- term: 문과 / 文科, confidence=1.0
- term: 중시 / 重試, confidence=1.0
- term: 발영과 / 拔英科, confidence=1.0
- term: 청백 / 淸白,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拔英科(발영과): 정확한 시험 등급·성격이 미확인됨
(세종조)안숭효
- 기사 ID:
B9C^2_001_0238
- 권책: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v1]
- 권책 ID:
kh2_je_a_vsu_B9C^2_001
- 면/쪽: 0238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5-16T19:56:30.99636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B9C%5E2_001&aa15no=001&aa20no=B9C%5E2_001_0238
한글 번역
자(字)는 계충이고, 호(號)는 한백堂이며, 순흥 출신이다. 충선의 아우이다. 진사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대사헌에 오르고,畿(경부)·完(완성)·錦(금성)·三營(三營)을 두루 역임하였다. 사무를 익히고 도리를 살펴 임무에 닥치는 것이 칼이 베듯 용이하였다. 교화를 펼치는 업적이 크게 드러났다. 세종 원년(1456)에 병을 고쳐 산으로 돌아갔다. 5년이 지난 뒤 호서(湖西)에 큰 흉년이 들자, 임금이 재덕이 있고 존망이 높은 자를 보내야 한다고 여겼으나 마땅한 인물을 찾기 어려웠다.朝堂에서 모두 천거하기를, 「안숭효는 재덕이 둘 다 갖추어졌을 뿐 아니라, 그 가문이 해당 도에 유임된 사랑이 있다. 마땅히 이 직에 부응할 것이다」하였다. 곧 도관찰사로 임명하였다. 부임하자 마자 오탁한 관리들을 논박하여 파면하고, 떠도는 백성을 위로하고 구제하였다.全省이 편안하고安宁하게 되었다. 관에서 사망하였다.
독음
자곡충호한백당 순흥인 충선제 진사음보 대사헌 역안畿完錦三營 슬럼석련사리 영인이해 선화대저 세종원년,呈病환산 월5년 호서대침,上欲遣재덕중한망자치지난기人,朝堂咸천지曰:안숭효비특재덕겸지차기세유유애어해도 합응시선 즉배도관찰사 기치론오오리,부진류민 전성내영 졸어관.
의미
안숭효는 세종조 문신으로, 충선의 아우이다. 진사 합격 후 음보로 대사헌에 오르고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여 사무를 능히 파악하였다. 세종 원년 병으로 사퇴하였다가, 5년 후 호서에 흉년이 들자朝堂의 추천으로 도관察使에 임명되었다. 부임 후 부패관을 척결하고 유민을 구휼하여 호서全局을 안정시켰으며, 최종적으로 관직에서 사망하였다. 재덕겸비와 유임된民心을 겸비한 관리로서 평가받은 인물이다.
원문
字季忠號寒柏堂順興人崇善弟進士蔭補大司憲歷按畿完錦三營諳鍊事理迎刃而解宣化大著世祖元年呈病還山越五年湖西大侵上欲遣才德重望者治之難其人朝堂咸薦之曰安崇孝非特才德兼之且其世有遺愛於該道合膺是選卽拜都觀察使旣至論罷汚吏撫賑流民全省賴寧卒于官[주:人物考]
엔티티 후보
- person: 안숭효 / 安崇孝, confidence=0.99
- person: 안충선 / 安崇善, confidence=0.98
- person: 세조 / 世祖, confidence=0.99
- place: 순흥 / 順興, confidence=0.99
- place: 호서 / 湖西, confidence=0.98
- place: 해당도(호서) / 該道, confidence=0.9
- office: 대사헌 / 大司憲, confidence=0.99
- office: 도관찰사 / 都觀察使, confidence=0.99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9
- office: 음보 / 蔭補, confidence=0.97
- work: 한백당 / 寒柏堂, confidence=0.98
- term: 영인이해(칼날을 맞닿으면 풀리듯) / 迎刃而解, confidence=0.98
- term: 유애(남긴 사랑·유지된 은혜) / 遺愛,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完(完城?)
- 三營(군사편제 구체 확인 필요)
- 完錦三營의 문맥상 관직 또는 직역 구분
- 汚吏를 오탁한 관리로 해석하였으나, 오오(汚) 자의 구체적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