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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지 [京山志n1-2책] - 해제

G002+AKS-AA55_55015_000 [1] 1668년(현종 9)에 편찬된 경상북도 성주군의 군지. 6권 2책. 1635년(인조 13)에 장현광(張顯光,1554-1637)이 ‘외가의 고향인 경산은 사림(士林)의 부고(府庫)인 때문에 문헌이 없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 고을 출신인 김주(金輳)와 여찬(呂燦)을 시켜서 경산지를 편찬하게 하자, 이들은 도세순(都世純)과 함께 집필에 착수했다가 실력의 부족을 느끼고 이 일을 박문강기(博聞强記)한 이도장(李道長,1603-1644)에게 부탁하였다. 이도장이 이 일을 맡아 편찬하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돌아가자, 그 원고는 상자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그 후 1668년에 이원정(李元禎,1622-1680) 이 그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체재에 의하여 경산지를 완성하게 되었는데, 내용이 비교적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편집체제를 살펴보면, 1책은 권두에 이원정의 서문을 싣는 것을 위시하여 1권에 경계도리(境界道里)·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성씨(姓氏)·풍속(風俗)·형승(形勝)·산천(山川)·토산(土産)·수택(藪澤)·각방(各坊)·호구(戶口)·전결(田結)·공부(貢賦)·군액(軍額)을, 2권에 성곽(城郭)·궁실(宮室)·누정(樓亭)·학교(學校)·사묘(祠廟)·역원(驛院)·창고(倉庫)·불우(佛宇)를, 3권에 고적(古跡)·총담(叢談)·총묘(塚墓)·제영(題詠)·명환(名宦)을, 그리고 2책은 4권-5권에 인물(人物)을, 6권에 효자(孝子)·열녀(烈女)·부행(婦行)·우거(寓居) 등을 싣고 있다. 이상과 같이 구성된 본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주목된다. 효자·열녀의 조항에서는 촌파천례(村婆賤隷)라 할지라도 행실이 효열(孝烈)에 관계된 것이면 아무리 하찮은 것도 빠뜨리지 않았고, 가담이어(街談里語)라 할지라도 전할 만한 것이면 항간에 떠도는 속된 말이라 해서 버리지 않았으며, 아무리 정사(正史)에 기록된 것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가차없이 변별하였고, 보첩(譜牒)에 기록된 근거 없는 것과 같은 것은 미련 없이 깎아버렸다. 그리고 팔거현(八莒縣)과 칠곡현(漆谷縣)의 사민(士民)은 모두 옛날의 동향인이라 해서 구분하지 않고 함께 취급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우는 인물에 있어서 전적으로 성관(姓貫)을 근거로 하였기 때문에 비록 평생 동안 발자취가 본 고을에 이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통성(土姓)에 해당되면 기록하고, 비록 본 고을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하더라도 성관에 해당되지 않으면 기록하지 않았는데, 본서는 이와 반대로 본 고을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토성(土姓)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행적을 자세하게 적었고, 다른 고을에 산 사람은 비록 성관에 관계된다 하더라도 그 대략만을 들거나 혹은 그 선조의 전기에 덧붙이는 등 성관위주로 하지 않고 거주지위주로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다른 점이다. 특히 영조 이후의 읍지에서 볼 수 없는 총담 조에는 이 지방의 전설·민속·민담 등이 많이 실려 있어서 지방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본서는 1682년(숙종 8)에 경상도관찰사 이계언(李季彦)에 의해 나라에 진상되었으나 서인(西人)인 이이(李珥)·조헌(趙憲)·정철(鄭澈) 등을 비난한 내용이 수록되었다는 이유로 환송되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