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55011_000G002+AKS-AA55_55011_000 [1] 조선 후기의 문신인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1653-1733)의 저서. 고본(稿本). 1책. 주로 일본관계를 적은 것이다. 그는 소서(小序)에서, “내 이미 북설습령(北屑拾零)과 남환박물(南宦博物)을 짓고, 다시 동이산략을 지은 것은 3변(三邊)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라고 하여 우리나라의 북·남·동 3변에 대한 기록임을 밝히고 있다. 그가 이처럼 3변에 주목한 것은 우리나라의 국방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이산락의 편차는 여지(輿地)·기내오국(畿內五國)·동해도십오국(東海島十五國)·동산도팔국(東山道八國)·북육도칠국(北陸道七國)·산음도팔국(山陰道八國)·산양도팔국(山陽道八國)·남해도육국(南海道六國)·서해도구국(西海道九國)·대마도(對馬島)·도로(道路)·거추(巨酋)·왜국백관도(倭國百官圖)·풍속(風俗)·문자(文字)·군제(軍制)·선박(船舶)·인검(刃劒)·술업(術業)·구술(寇術)·호상(好尙)·조공중원(朝貢中原)·아국기미(我國羈縻)·약조(約條)·접대(接待)·서계(書契)·진상(進上)·숙배(肅拜)·차왜(差倭)·임진출래왜장(壬辰出來倭將)·정유출래왜장(丁酉出來倭將)·기여소추(其餘小酋)·평수길(平秀吉)·가강(家康)·휘원(輝元)·청정(淸正)·전전비전수(前田肥前守)·경승(景勝)·정종(政宗)·축전중납언금오(竺前中納言金吾)·비전중납언풍수가(備前中納言豊秀家)·의홍(義弘)·평의지(平義智)·안국사(安國寺) 등의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요한 내용을 제목별로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여지(輿地): ‘일본 지형이 비파와 같이 생겨서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으며, 서남쪽은 바다에 이르고, 동북쪽은 큰산에 격해 있다.’는 등 일본의 영토에 대한 것이다. 기내오국(畿內五國)~대마도(對馬島): 각각 관할 군(郡)의 이름 및 폭원(幅圓)·기후(氣候)·토산(土産)·노정(路程) 등을 적고 있다. 도로(道路): 우리나라 부산포(釜山浦)에서부터 일기도(一岐島)의 풍동포(風東浦), 축전주(筑前州)의 박다(博多), 장문주(長門州)의 적간관(赤間關) 등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거리를 구간별로 적고 있다. 거추(巨酋): 일본 왕의 성호(姓號) 문제를 비롯하여 천황(天皇)의 실시연대, 관백(關白)의 칭호 등장 관계, 성씨의 유래 및 국도(國都)·직전(職田)·봉호(封戶) 등을 다루었다. 특히 성씨문제에 있어서는 백제 온조왕의 후손이 일본에 들어가 다다량포(多多良浦)에 정박하고 이내 ‘다다량’으로 성을 삼았던 것도 밝히고 있다. 문자(文字): ‘일본에는 반자언문(半字諺文)과 문자언문(文字諺文)이 있는데, 반자언문은 부녀들도 모두 아는 것이고, 문자언문은 우리나라의 이두(吏讀)와 같은 것이다.’라는 것과 ‘일본 사람은 오경(五經)에 있어서는 서경(書經)과 예기(禮記)는 귀중하게 여기고 주역(周易)·시경(詩經)·춘추(春秋)는 소홀하게 여기며, 사서(四書)에 있어서는 논어(論語)·대학(大學)·중용(中庸)은 귀중하게 여기고 맹자(孟子)는 싫어하며, 불경(佛經)은 중요시하고 도덕경(道德經)은 무시하며, 가장 의서(醫書)를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아국기미(我國羈縻): 원씨(源氏)가 홍무(洪武) 초에 나라를 세우고 우리나라와 우호관계를 갖게 된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가 사신을 보내 경조례(慶弔禮)를 닦은 일, 세종 원년에 장수를 보내서 대마도를 친 일, 세종 25년에 왜구가 우리나라 제주를 노략한 일, 중종 5년에 삼포(三浦)의 왜노(倭奴)가 제포(薺浦)를 함락한 일 등을 연도별로 체계 있게 적고 있다. 약조(約條): 일본과의 교역에 있어서의 그 수량 등을 정한 조약이다. 서계(書契): “도주(島主)의 서계에는 ‘예조대인합하(禮曹大人閤下)’라 칭하고, 예조의 회서(回書)에는 ‘족하(足下)’라고 칭한다.”는 등을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 동이산략은 옛날의 한일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