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4894_000G002+AKS-AA55_24894_000 【정의】 【서지사항】 연대는 이 자료의 말미에 쓴 발문에 의거하여 1910년(융희4) 4월임을 알 수 있다. 편찬자는 이 업무를 지시한 궁내부이며, 담당관인 궁내부사무관 촌상용길이 주관한 것으로 보인다. 편찬목적은 무주군 적상산사고의 실태를 통해 현재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장차의 조사에서 이를 참고자료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다. 【체제 및 내용】 표지는 왼쪽에 ‘史閣調査形止案’이라는 표제를 쓰고, 중앙에서 약간 좌측에 ‘茂朱郡赤裳山城’이라 쓰고, 오른쪽 상단에는 ‘隆熙四年四月’이라는 연기를 기록하였다. 종이는 판심의 하단에 궁내부라 인쇄되어 있다. 이 사각조사형지안은 무주군 적상산성에 소재한 사고의 현재의 전적 보존현황을 조사하여 기록한 문서이다. 소위 적상산사고라 불리는 이 史庫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적상산성 안에 설치했다. 1614년에 實錄殿, 1641년에 璿源閣을 건립한 이래로 실록과 『선원록』 등 국가의 각종 문헌들이 봉안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사고가 퇴락해 1872년(고종9)과 1902년에 개수공사를 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실록을 구황실문고로 편입해 장서각에 보관시켰으나, 실록전과 선원각의 건물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미상이다. 다행히 선원각은 부근의 安國寺 경내로 옮겨져 천불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형지안은 크게 上庫奉安秩과 下庫秩로 구분되어 있다. 상고봉안질은 궤의 순서대로 정리하되 그 궤안에 보관중인 전적의 제목과 그 전적에 수록된 내용의 편년의 自至를 기재하였다. 책수도 기록되었는데, 그 방식은 권1부터 권5까지의 경우에 第一之五라 쓰고, 권6부터 권9까지는 第六之四라 썼다. 그러나 정조실록부터는 1년간의 기사가 한 책으로 장정되어 제 몇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각 실록의 말미에는 책수가 ‘이상 몇 책’으로 기록되고 각 궤의 말미에는 합계가 기록되었다. 제1궤 新備 : 태조대왕실록, 정종대왕실록, 태종대왕실록. 제2궤-제3궤 : 세종대왕실록. 제4궤 신비 : 세종대왕실록, 문종대왕실록, 단종대왕실록. 제5궤 신비 : 세종(세조의 오기)대왕실록, 예종대왕실록. 제6궤-제7궤 : 성종대왕실록. 제8궤 신비 : 성종대왕실록, 연산군일기. 제9궤 신비 : 중종대왕실록. 제10궤 : 중종대왕실록. 제11궤 신비 : 중종대왕실록. 제12궤 : 중종대왕실록, 인종대왕실록, 명종대왕실록. 제13궤 : 명종대왕실록. 제14궤-제23궤 : 선조대왕실록. 제24궤-제25궤 : 광해군일기. 제26궤-제29궤 : 인조대왕실록. 제30궤-제31궤 : 효종대왕실록. 제32궤-제33궤 : 현종대왕실록. 제34궤-제36궤 : 현종대왕개수실록. 제37궤-제43궤 : 숙종대왕실록. 제44궤 : 경종대왕실록. 제45궤 : 경종대왕개수실록. 제46궤-제53궤 : 영종대왕실록. 제54궤-제60궤 : 정종대왕실록. 제61궤-제63궤 : 순조대왕실록. 제64궤 : 헌종대왕실록. 제65궤 : 철종대왕실록. 이외에 號外樻 6개가 있다. 여기에는 홍재전서 100책이 네 개의 궤안에 들어있고, 능허관만고 3책과 헌종대왕어제 3책이 각각 한 궤에 보관되어 있다. 그 다음으로는 天字樻부터 천자문의 순서대로 月字樻까지의 보관현황이 정리되어 있다. 이 궤에는 선원계보와 열성어제, 어필, 誌狀, 誌文, 행장, 비문, 보감, 갱장록, 어제 등 왕실 관계자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능전지, 의식, 언해본 책자류, 윤음, 절목, 사목, 의궤, 定例, 문집, 목록류 등이 있다. 하고질은 상고질의 월자궤에 이어서 盈字樻부터 시작하고 있다. 果字樻 아래에는 “夜字下光字逸”이라 쓰여 있어, 야자궤 다음부터 광자궤까지는 잃어버렸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帝字樻 아래에도 “師字下火字逸”이라 쓰여 있다. 개중에는 별궤에 보관되어 있음을 표시한 곳도 있다. 이 하고질에 보관되어 있는 문헌의 종류로는 문집, 경전, 법전, 역사서, 의례서, 의서, 방목, 족보류, 언해본 책자류, 의궤, 빈흥록, 음운서, 병서, 비문, 형지안, 지장, 주의조령류, 일기 등이 있다. 이중에서 의궤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상고질의 조선왕조실록은 그 보관상태가 대체로 양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지만 하고질의 경우에는 濕侵이나 파손, 濕破, 散秩 등 포쇄나 보수 등의 조치들이 필요한 사례가 꽤 있었다. 이를 들어보면, 『구판열성어제는 본래 11책인데 3책이 결락되어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肅宗大王宸章』과 『諸祀儀軌』, 『사전별의궤』, 『지천집』, 『자치통감』, 『의례경전』, 『내훈』, 『내훈사』, 『좌전』, 『주서절요』, 『황화집』, 『문원보불』, 『소학』, 『속삼강행실』, 『의례집전』, 『노사영언』, 『박정자집』, 『백사집』, 『명재집』, 『청풍김씨족보』, 『양조조씨족보』, 『고려사』, 調字樻(『의례문답』 등), 『이충무공비명』, 『도암집』, 『정서분운』, 『병장도설』, 『경과문과방목』, 『이계집』, 『헌종조실록의궤』 등은 전부 혹은 일부가 濕侵된 상태이고, 파손된 책은 『황명유민전』, 『시전언해』, 『부묘도감의궤』 등이 있으며, 濕破는 『남양홍씨세보』, 『여지승람』, 『만회집』, 『홍문관지』, 散秩은 『주역언해』 등이 있었다. 말미에는 궁내부사무관 촌상용길과 무주군수 박태영이 쓴 일종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촌상용길(무라카미 유키치)은 궁내부사무관으로서 순종의 南巡과 西巡에 참여하였으며, 한일합방 후 9월에는 북도의 8릉을 조사하고, 이왕직사무관으로서 덕수궁의 업무를 겸하기도 한 인물이다. 융희4년(1910) 4월 14일에 쓴 이 발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본 사고를 조사하라는 명을 받고서 4월 9일에 본 산성에 도착하였다. 다음날 10일에 무주군수와 입회하여 사각을 열고 10일, 11일 양일간에 사고 상하고의 서책을 조사하고 포쇄를 행한 즉, 상고에 보관하고 있는 실록과 기타 책자에는 별로 이상이 없었으나, 하고의 책자에는 습기가 침투하고 부식된 것이 있으며 또 궤짝의 자물쇠가 분실되거나 훼손된 것이 많았고, 또한 방충제가 많이 그 효력을 잃은 것과 같은 것들을 인정한다. 궤짝에 보관하는 책자 중 종래의 형지안과 어긋나는 것은 금회에 이를 정리 수정하여 후일의 대조에 편의할 바를 제공한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형지안은 한일합방 직전에 조사한 적상산사고의 현황보고서이므로 일제시기와 그 이후의 적상산사고 소장 문헌들의 현존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된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의 유일본이다. 【참고문헌】 『高純宗實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