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4766_000G002+AKS-AA55_24766_000 【정의】 【서지사항】 책의 표지 왼편에 ‘보고급회첩존당(報告及回牒存擋)’이라 되어 있고, 우측 편에는 본묘(本廟)라고 소속 계통을 밝히고 있으나 내용상으로 볼 때 본묘는 종묘(宗廟)를 가리킨다. 【체제 및 내용】 종묘(宗廟)는 현재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의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가 봉안되었고, 국가적 제례를 수행하던 장소였다. 표제의 ‘존당(存檔)’에서 당(擋)은 문서를 의미하며, 존안(存案)과 같이 폐기하지 않고 보존하여 두는 문건을 가리킨다. 이 글의 작성주체는 종묘의 장원계(掌苑係)에 소속된 이재덕(李載德)을 비롯한 전사(典祀), 전사보(典祀補) 등이고, 수신주체는 이왕직(李王職) 사무관(事務官)인 무라카미 유키치(村上龍佶), 주임(主任) 아리마 슈이치(有馬秀一) 등이다. 작성연대는 서두에 ‘명치(明治) 44年 2月 起’라고 씌어 있고, 이 해 2월 18일부터 회첩(回牒) 제 1호를 시작해서 같은 해 12월 28일의 문서까지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11년에 작성되었다. 이왕직(李王職)은 1910년 망국과 함께 대한제국황실(大韓帝國皇室)이 이왕가로 격하되면서 일본의 궁내성(宮內省)에 소속된 기구였다. 일제는 자신들의 왕실봉작제(王室封爵制)를 이용해 이왕직을 일본 천황가의 하부단위로 편입시켰다. 이왕직의 관제는 1910년 12월 30일 발표된 [황실령 제34호]>에 의해 재가되었다. [이왕직 관제(李王職官制)]의 제1조에 이왕직(李王職)은 궁내 대신(宮內大臣)의 관리에 속하여 왕족(王族) 및 공족(公族)의 가무(家務)를 관장한다고 되어 있는데, 초대 이왕직 장관에는 민병석(閔丙奭)을 임명하고 서무(庶務)∙회계(會計)∙장시(掌侍)∙장사(掌祀)∙장원계(掌苑係)를 두어 왕실업무를 담당케 하였다. 이는 1894년부터 마련된 궁내부 산하의 기구들을 통폐합하여 5개 기구로 축소한 것이다. 종묘에서 설행된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등에게 제사를 올렸던 기능은 이 중 장사계에서 담당하였는데, 장사계는 1911년(純宗 4)에 규정된 [사무분장규정] 5조에 따르면 1. 제사에 관한 사항 2. 묘(廟), 전(殿), 궁(宮) 및 분영(墳塋)의 관수(管守)에 관한 사항 3. 아악(雅樂)에 관한 사항을 도맡게 되어 있었다(『純宗實錄』純附2卷, 純宗 4年 2月 1日). 따라서 종묘의 직원들은 위 [사무분장규정]에 따라 이왕직 사무관인 무라카미 유키치에게 결재문서를 전송했고, 회첩(回牒)의 형식으로 승인받아야 했다. ‘보고급회첩존당’에 수록된 문서들의 형식은 ‘1. 보고(혹은 통첩(通牒)) 제○호 2. 날짜 3. 발신자 성명과 날인 4. 수신자 직위 성명 5. 내용’의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구결로 한글을 사용하였다.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은 살펴보자면 종묘 직원들에 대한 임금 지급 위임건, 천신(薦新), 춘향대제(春享大祭) 등 각종 종묘 제사에 쓸 각종 물품 및 기물에 대한 지출 요청건, 제사에 사용된 제향 음식(生石首魚, 燔肉, 葦魚蕨菜, 直魚竹笋, 中脯 등)을 창덕궁과 덕수궁에 분배하는 건, 종묘 직원의 결원 시 신규로 채용하거나 해임하는 건, 건축물 등 파손된 곳의 수리를 요하는 건 등에 대한 요청과 결재 사항 등이었다. 각 보고 마다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우측에 ‘존당건(存擋件)’이라 표시하고, 이 책의 마지막에는 3월, 6월, 9월간의 남아있는 물품 수량을 명세서를 표로 남겨 놓고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문서집은 일제하에서 이왕직의 실체를 보여주면서 종묘의 운영과 관련된 제반 사무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高宗實錄』解題編. (國史編纂委員會. 2006). 『조선의 왕』(신명호, 가람기획,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