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 고도서 한문 원문·한글 번역

덕산현읍지(충청북도) [德山縣邑誌(忠淸北道)] - 해제

G002+AKS-AA55_24231_000 【정의】 1896년(高宗33) 직후에 제작된 忠淸南道 德山縣의 邑誌. 【서지사항】 1책 28장의 필사본으로 각 면의 크기는 21.6×20.8cm이다. 匡廓과 版心, 魚尾, 絲欄은 보이지 않고, 반엽의 行數와 字數도 일정치 않다. 표제는 ‘德山縣邑誌’이고, 내제는 ‘邑誌’이다. 표제 아래에 ‘忠淸南道’라는 부제가 작은 글씨로 씌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서체가 상이한 것으로 보아 여러 사람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총 28장의 분량 중에서 先生案이 무려 18장을 차지한다. 선생안에 의하면 마지막으로 德山縣監을 역임한 인물은 趙鍾緖인데, 성명 아래에 ‘丙申二月二十日政本職除授’라는 기록이 보인다. 조종서가 덕산현감에 제수된 것은 1896년(高宗33) 2월 20일인 것이다. 그러나 체직 날자가 명시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1896년이나 그 직후에 본 읍지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고종실록』에 의하면, 조종서는 1900년(高宗37)에 務安監理 兼務安府尹에 임명되었는데, 이 때 벼슬은 平山郡守였다. 읍지의 첫째 면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라 새겨진 소장인이 찍혀 있다. 【체제 및 내용】 1896년(高宗33)이나 그 직후에 제작된 忠淸南道 德山縣의 邑誌이다. 수록 항목의 구성을 살펴보면, 建置沿革, 程道, 坊里民戶, 道路, 郡名, 姓氏, 形勝, 古蹟, 祠廟, 驛院, 城池, 關阨, 津梁, 堤堰, 寺刹, 館宇, 稅路, 倉庫, 軍兵, 進貢, 田摠, 糶糴, 俸廩, 土産, 先生案 등의 순서이다. 건치연혁조에서는 德山縣과 伊山郡의 연혁을 설명하고 있다. 形勝條에서는 ‘동쪽으로 큰 들판을 끼고, 북쪽으로 앵산을 등지고 있다.(東挾大野, 北負鶯山)’고 덕산현의 지세를 개괄한 후, 石門과 臥龍潭, 石門潭, 玉屛溪, 德崇山, 揷橋川 등을 소개하고 있다. 古蹟條에는 伊山鎭을 위시하여 義馬場, 金塔雲梯, 岩上古字, 竹亭 등이 보이고, 堤堰條에는 城洞堤와 猪池堤, 國只堤 등 총 8곳의 제방이 보이며, 進貢條에는 조정에 공물로 바치던 덕산의 특산물이 기재되어 있다. 軍兵條에는 兵曹, 訓練都監, 司僕寺, 掌樂院, 監營, 兵營, 水營, 左營 등에 배속된 병사의 숫자를 직책별로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先生案條에는 역대로 현산현을 다스렸던 206명의 지방관을 낱낱이 나열하고 있는데, 성명 아래에 해당 지방관의 부임 시기와 체직 시기, 구체적인 치적, 遷拜된 관직, 사망 사실, 공적비의 건립 등이 세필로 적혀 있다. 선생안에 첫 번째로 보이는 인물은 1436년(世宗18) 진휼 정책을 훌륭하게 시행한 田珪이고, 마지막으로 보이는 인물은 전술한 바와 같이 1896년(高宗33) 2월에 부임한 趙鍾緖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조선후기 지방의 軍制나 田制, 稅制 등을 연구하는데 유효한 자료를 제공하거니와 충청남도 덕산 지역의 미시적인 향토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이와 동일한 전적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72). 『藏書閣의 歷史와 資料的 性格』(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