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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정선군일록 [江原道旌善郡日錄] - 해제

G002+AKS-AA55_24203_000 [1] 地理類-方志類-旌善叢錄 朝鮮朝 高宗 24년(1887) 3月에 旌善郡守에 除授된 郡守(吳宖黙)가 이해(丁亥年) 3月5일부터 다음해(戊子,1888) 8월23일까지 同郡의 行政業務 및 對物所感을 日記體로 記述한 日錄이다. 著者가 地方官에 任命되기 이전까지는 朝廷內臣으로 있었음이 本日錄에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古詩와 律詩에 能한 文人이었음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內職의 文臣이 外職에 除授되어 달라진 業務와 生活을 接하게 되면 일마다 感懷가 다를 것이며, 또 雜多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록을 남기지 않고서는 모두 記憶하기란 쉽지않다. 때문에 著者는 接하는 事件들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自己反省의 機會를 만들고, 아울러 民의 根本을 覺醒하는 契機로 삼고자 한 것이 이 日錄을 作成하게된 動機가 아닐까 思料된다. 첫째 張에는 旌善郡의 彩色地圖가 있고, 다음 張부터는 每張의 左上端에 月別을 표시하여 열람에 편리토록 했으며, 特記할 만한 事件이 있는 날짜마다 사건의 始末과 그 처리과정을 기록하고 이에 따른 所感이 있으면 반드시 古詩 또는 律詩로서 感懷를 피력하였다. 朝鮮 高宗 24년 3월 5일에서 동왕 25년 8월 23일까지 그 日錄의 量은 238페이지에 이르며, 記錄에서 重要한 부분과 詩律의 韻字 및 그 對字에는 朱砂로서 傍點을, 人名에는 零表(0)를, 地名에는 縱線을, 樓臺亭에는 波線을 標示하여 便覽을 도모하였다. 첫째張의 35.5×21.5cm×2의 旌善郡彩色地圖는 四方接界의 地名과 距離가 소개되어 있으며, 江, 山, 道路가 彩色되고, 面, 里, 驛, 山名, 嶺名, 邑舍의 位置 등이 표시된 古地圖이다. 日錄의 始作은 丁亥年 3월 5일에 著者가 임금의 부름을 받고 入對하여 下敎를 듣는 내용부터 記錄되고 있다. 이 下敎의 내용은 앞으로 全國의 各邑을 차례로 開하여 産金에 注力할 것인즉 著者인 吳宖黙을 旌善郡守에 特除하겠으니 需用에 차질이 없도록 마음을 傾注하라는 當付이다. 그런데 同月 23일자에 吏曹判書 鄭基會는 吳宖黙, 南基完, 崔星煥 3인을 推薦하는 擬望을 올리고 이에 著者가 비로소 郡守에 除授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當時의 人選이 該曺의 擬望에 依해서 選拔되었다기 보다는 이미 內定된 사실에 형식과 절차가 擬望이 뒤따르고 있었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3월 24일부터 4월 24일까지의 기록은 任地에 赴任하기 이전의 節次등인데 그 절차 중에는 처음으로 守令에 除授되는 사람은 司憲府와 司諫院 兩處에 父邊四祖, 母邊四祖, 妻邊四祖의 單子를 올려야 하며, 올려진 單子가 다시 複寫되어 내려지면 議政府의 領議政, 左議政, 判府事와 吏判, 兵判, 前營使, 原任將臣, 吏曹參議, 戶判, 吏曹正郞의 見解를 1次로 거쳐야하고, 2次로는 吏曹左郞, 禮判, 刑判, 工判을 거치며, 3次로 吏參, 左營使, 後營使, 海防使, 別營使… 등의 署名을 거쳐야하는 例規가 보인다. 다음에는 傳來 當時의 俗例가 기록하고 있는데 소위 新廷 절차이다. 부임지의 吏屬이 새로 부임할 守令을 上京하여 맞는 절차로서 이 기록에는 吏屬 12명, 吸唱 2명, 通引 2명, 使令 5명, 都合 21명의 旌善郡人이 上京하여 現謁을 요구하고 있으며, 新任者인 吳宖黙은 相面을 거절하며 돌아갈 것을 嚴命해도 轎軍까지 준비하고 葉錢 30兩, 大脯 2貼, 黃燭, 藥果, 燒酒, 白淸, 眞油, 栢子, 胡桃, 大 棗, 栗子, 銀杏, 乾脯 등을 新廷禮物로 지참하고 온 이들은 古禮라는 핑계로 命令을 따르지 않으며, 기여히 相面과 同時에 가지고 온 物品은 榮墳의 祭需라고 우겨서 上納을 하고 있다. 다음 注目할 만한 內容으로서는 赴任出發前의 下直節次인데 이 日錄에서는 閏 4월 1일자에 原任大臣, 將臣, 六曹堂上, 吏曹亞堂·三堂·銓郞 등에게 하직을 고하는데 3일이나 소요되고 있으며 下直 겸 出發節次는 延陽門 바깥에서 行해지는데 右承旨가 官服을 갖추고는 敎諭書를 大讀하고, 書吏는 守令七事를 지키겠다는 뜻을 대신하여 말한다. 이 수령칠사란 農桑盛, 戶口增, 學校興, 軍政修, 賦役均, 詞訟簡, 奸女骨息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儀式이 끝나면 곧 下堂하여 機務處의 入直堂上에게 가서 하직을 告하고, 午后에는 다시 지闕하여 明日出發의 뜻을 告하고 下敎를 듣는 것으로 절차가 끝나고 있다. 任地에 赴任한 이후의 記錄으로는 雜多한 事件의 處理始末이 詳細하게 記述되고 있는바 그 중에서 孝烈을 찿아서 褒賞는 일, 擊壤歌를 지어서 勤農에 힘쓰게 하는 일, 詩會를 開催하여 隣郡의 사람들까지도 參會케 하는 일,稅金을 減해 주고, 罪人을 悔改시키는 일 등 模範守令의 面貌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어떤 일을 만나서 그 일을 처리한 뒤에는 반드시 그 感悔는 詩로서 記錄되고 있는데, 이 日錄에 쓰여진 것만도 古詩가 32首, 律詩 125首, 絶句 61首 都合 218首나 된다. 日錄의 末尾를 이루는 戊子年 8月 23日의 기록은 吳宖黙의 遞職消息을 들은 旌善郡民이 善政을 記念하고 恩惠를 잊지 않기 위하여 邑面, 餘粮面, 巖石面등지에는 石碑를 세우고 儀尙臺에는 吳候의 五言詩를 板刻하여 달고, 심지어 生祠堂까지 建立하려는 움직임에 이를 거절하는 기록과 함께 이 郡의 근면과 태평을 비는 한 편의 古詩가 大尾를 이루고 있다. 어쨌든 이 日錄에서 朝鮮朝 末葉의 한 文臣이 地方官으로 赴任하여 治民에 最善을 다하고, 修養에 邁進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 日錄은 當時의 移就任에 對한 複雜한 儀式節次와 地方行政의 實務가 어떻게 進行되고 있었는가를 파악하고 연구하는 데에는 必讀의 資料임을 紹介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