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3801_000G002+AKS-AA55_23801_000 【정의】 1790년(正祖14) 9월 28일에 赤裳山史庫의 璿源閣을 補修하고 소장된 전적을 포쇄한 사실을 기록한 문건. 【서지사항】 1책 2장의 필사본으로 반곽의 크기는 39.4×22.8cm이고, 각 면은 42.7×29cm이다. 판심에는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가 새겨 있고, 형지안 첫 면에 ‘奉使之印’과 ‘李王家圖書之章’, ‘茂朱赤裳山史庫所藏朝鮮總督府寄贈本’이라 새겨진 인장이 찍혀 있다. 표제는 ‘茂朱赤裳山城形止案’이고, 표제 우측에 ‘正祖十四年’, ‘庚寅九月二十八日’이라 씌어 있으며, 표제 좌측에는 ‘乾隆五十五年庚戌’이라 적힌 첨지가 붙어 있다. 내제는 ‘乾隆五十五年九月 日’이다. 【체제 및 내용】 『赤城志』 古蹟條에는 “其後萬曆庚戌, 因巡按御史崔睍之疏論, 遣官相視, 粤四年甲寅, 創建實錄殿, 戊午奉安史册, 辛巳創建璿源殿, 十一月奉安璿錄”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를 통해 1614년(光海6년)에 實錄殿을 창건한 후, 1618년에 實錄을 봉안했고, 1641년(仁祖19)에 璿源殿을 창건하고는 璿源錄을 봉안했음을 알 수 있다. 實錄의 봉안은 春秋館 관원이 담당한 반면, 璿源錄에 관한 것은 宗簿寺에서 담당하였다. 『世宗實錄』 10년 10월 24일조에 의하면, 宗簿寺에서 10년에 한 번씩 璿源錄을 修撰하고, 3년마다 宗室譜牒을 續寫하도록 되어 있었다. 통상 璿源錄을 奉安·奉審·曝曬하거나, 璿源閣을 改修·改構할 때는 形止案을 작성하여 소장 전적의 규모와 보관 상태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러나 본 형지안에는 소장 전적의 목록이 전혀 보이지 않고, 봉안을 담당한 관원의 성명만이 명시되어 있다. ‘奉安使春秋館堂上兼宗簿寺提調臣具㢞’과 ‘龍潭縣令兼任茂朱府使臣李勉輝’가 그것이다. 茂朱府와 龍潭縣, 錦山縣 등의 고을은 赤裳山城史庫에 配屬되어 史庫의 관리와 수비, 경비 충당 등을 담당했으므로, 茂朱府使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관례였다. 형지안의 끝에는 書吏 洪昌彦의 성명이 보인다. 이때 史庫參奉과 庫直, 營吏 등도 참여했을 터이나, 본 형지안에는 적혀 있지 않다. 奉安使 具㢞 아래에는 ‘璿源閣修補及曝曬後上京’이라 씌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본 형지안이 1790년(正祖14) 9월 28일에 赤裳山城의 璿源閣을 修補하고 소장 전적을 曝曬하며 작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장서각에 소장된 각종 璿源閣 形止案을 통해 조선후기 璿源閣의 전적 실태와 藏書의 증감 추이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現藏書閣 소장본의 소유래를 구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이와 동일한 형지안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문헌】 『赤城誌』(奎1708), 『世宗實錄』, 『正祖實錄』, 『奎章閣所藏儀軌解題集1』(서울대 규장각, 2003) 『藏書閣所藏儀軌解題』(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2)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1984, 探究堂) 『譯註經國大典』(韓㳓劤 외,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