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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적상산성열성실록포쇄형지안 [茂朱赤裳山城列聖實錄曝曬形止案] - 해제

G002+AKS-AA55_23715_000 【정의】 무주 적상산 사고의 왕조실록을 1880년에 春秋館에서 포쇄 점검한 보고서임. 【서지사항】 1책 5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表題와 表題記는 ‘光緖六年庚辰三月二十四日 赤裳山城 史庫藏 列聖朝實錄曝曬形止案’ 으로 기재되어 있다. 印章은 史館藏, 茂朱赤裳山史庫所藏…本, 李王家圖書之章이 찍혀있다. 종이재질은 楮紙이다. 卷末에는 포쇄 점검자인 ‘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別兼春秋臣 趙秉升으로 기재되어 있다. 첫 장에는 표제와는 달리 ‘광서육년삼월 ○일 무주적상산성 열성실록포쇄형지안’으로 표기되어 있다. 즉 표제에는 ‘朝’가 나오는데, 뒷장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 보인다. ‘王朝實錄’은 일시에 편찬된 史書가 아니라 대대로 편찬한 것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대체로 조선시대에는 왕이 승하하면 다음 왕 때에 임시로 ‘實錄廳’을 설치하여 전 왕대의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상례였다. 실록 편찬시 이용되는 자료는 ‘春秋館時政記’와 전왕 재위시의 사관들이 각각 작성해 둔 史草를 비롯하여 ‘承政院日記,’ ‘議政府謄錄’ 등 각 주요관청의 기록과 개인 文集 등이었다. 후세에는 ‘朝報’, ‘備邊司謄錄’, ‘日省錄’ 또한 중요자료로 추가되었다. 이 가운데에서 특기할만한 자료는 史官의 사초이다.사관은 넓게는 춘추관 관직을 겸임한 관원이 모두 해당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記事官을 겸임하고 있는 예문관의 從七品 奉敎 2인, 從八品 待敎 2인, 從九品 校閱 4인이 바로 專任史官들이다. 이들은 품계는 비록 낮았지만 청화한 벼슬로서 항상 궁중에 들어가 입시하였다. 그리고 임금의 언행을 비롯하여 임금과 신하가 국사를 논의, 처리하는 것과 정사의 득실 및 풍속의 미악과 향토의 사정 등을 보고 들은대로 직필하여 사초를 작성하였다. 전임사관 외에 修撰官 이하의 겸사직자도 사초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본직에 분주했기 때문에 질이나 양에 있어서 전임 사관의 사초에는 크게 미흡하였다. 따라서 사초는 전임 사관의 것이 중심이 되었다. 【체제 및 내용】 『무주적상산성열성실록포쇄형지안』은 전임사관 1인이 적상산사고에 소장되어 있는 왕실자료 모두를 사고 밖으로 꺼내어 포쇄 점검한 기록이다. 그 내용은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이다. 실록 이외에 자료는 正祖의 ‘弘齋全書’, ‘景慕宮資料’, ‘璿源系譜 資料’, ‘列聖御製資料’, ‘御製資料 등이다. 이는 모두 왕실자료로서 매우 귀중한 것이다. 형지안의 체제 중에서 독특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千字文의 첫 구절인 ‘天 ·地 ·玄 ·黃 ·宇 ·宙 ·弘 ·荒’ 을 빌려 쓴 형식의 ‘字樻’이다. 내용에 나오는 범례를 들면, ‘천자궤’ ‘지자궤’, ‘현자궤’, ‘황자궤’,‘우자궤’, ‘주자궤’, ‘홍자궤’, ‘황자궤’ 등이다. 맨 마지막에는 포쇄한 연월일과 ‘봉장’이라고 쓰고, 실록의 포쇄 점검을 진두지휘한 관직자의 관직명과 성명을 기재하였다. 이 실록의 포쇄점검자는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과별겸춘추신 조병승’이다. 포쇄와 포쇄절차는 책에 바람을 쏘이게 하여 습기를 제거하고 부식 및 충해를 방지시킴으로써 서적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것은 과거식년처럼 3년마다 행하여졌다. 헌종 이후에는 국내외 사정으로 3년마다 하는 정식마저 지키지 못하여 5년 또는 10년에 한 번씩 포쇄하는 일도 있었다. 포쇄식년에는 다른 정무의 중복을 피하여 봄·가을에 청명한 길일을 택하여 포쇄하였는데, 장마철을 지난 8·9월이 가장 많았고, 3·4·10월에도 많이 시행되었다. 실록 포쇄는 춘추관에서 담당하였으므로 춘추관사고의 실록은 춘추관당상이, 外사고에는 記事官인 正6品에서 正9品이 파견되었다. 절차는 사관이 사고에 당도하여 관복의 하나인 ‘黑團領’을 입고 四拜한 다음 개고하였고, 사고 내를 살펴본 뒤 책궤를 열었다. 그 뒤 서적을 꺼내어 포쇄청에서 포쇄하고 끝나면 먼지를 털고 책과 책 사이에 초주지를 2장씩 넣어 油芚(이어붙인 두꺼운 기름종이)으로 싼 다음 다시 홍보로 싸서 궤 속에 넣고 봉안하는데, 이 때 川芎(미나리과의 여러해살이 풀)·창포를 함께 넣었다. 이는 충해와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며 궤 속에 넣고 印封한 다음 사고의 외문도 인봉하고 ‘모일인봉’이라고 기록한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실록의 포쇄를 매우 엄격히 하였으며, 포쇄하면서 점검하고 그 기록을 남겼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무주적상산성열성실록포쇄형지안』은 외사고의 하나인 ‘적상산본’에 대한 포쇄를 전임 사관 1인이 파견되어 일정한 규례에 따라 점검한 것을 기록한 형지안이다. 이 자료는 춘추관에서 파견된 관원을 통해 적상산사고의 포쇄 점검 실태를 파악한 중요한 보고서로서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무주 적상산성열성실록포쇄형지안』은 장서각에 소장된 원본 유일본이다. 영구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마이크로필름 MF35-2287로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장서각에 소장된 ‘적상산성본’ 관련 자료는 70책이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朝鮮王朝實錄』 『韓國史料解說集』(申奭鎬, 韓國史學會, 1964) 「朝鮮朝 史庫의 藏書管理」(배현숙,『규장각 2』,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