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 고도서 한문 원문·한글 번역

단종대왕실록부록봉안급포쇄시형지안 [端宗大王實錄附錄奉安及曝曬時形止案] - 해제

G002+AKS-AA55_23695_000 【정의】 이 책은 茂朱 赤裳山史庫에 ‘端宗大王實錄附錄’을 奉安하고 아울러 포쇄한 사정을 왕이나 상부에 보고하기 위하여 그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적은 것이다. 【서지사항】 표지의 명칭은 ‘實錄曝曬後形止案’이며 내제는 ‘端宗大王實錄附錄奉安及曝灑時形止案’이다. 또한 표지에 ‘康熙四十四年乙酉三月’이라는 刊記가 있는데, 이 때가 1705년(肅宗31)이다. 따라서 1705년 3월 ‘端宗實錄附錄’을 무주의 적상산사고에 奉安을 주 목적으로 와서 아울러 포쇄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총36장 1책으로 되어 있으며, 이 때의 曝曬官은 宣敎郞行藝文館奉敎兼春秋館記事官으로 있던 李縡이다. 李縡(1680년(肅宗6)~1746년(英祖22))는 호가 陶菴으로 본관은 牛峯이며 金昌協의 門人이다. 1702년(肅宗28)에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藝文館 檢閱로『端宗實錄附錄』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大司成, 大司憲 등을 역임하였으며, 英祖朝에 들어서는 吏曹參判, 大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李縡는 禮學에 밝아서 많은 저술을 남기고 제자들을 길렀다. 포쇄관이 된 것은 1704년(肅宗30)에 設書로 있다가 다음해 춘추관의 기사관이 되어『端宗實錄附錄』봉안과 포쇄의 임무를 맡은 것이다. 특히 李縡는 이미『端宗實錄附錄』의 편찬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적임자였다고 하겠다. 【체제 및 내용】 形止案은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사정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여 왕이나 상부기관에 보고 하기 위하여 작성한 기록이다. 현재 남아있는 形止案으로는 實錄形止案이 가장 많은데, 각 史庫에 實錄을 봉안하거나 이미 봉안된 實錄, 御製, 書冊 등을 曝曬, 考出할 때 작성하는 것이다. 이 책도 무주부 적상산사고에 있던『端宗實錄附錄』을 奉安하면서 그곳에 소장되어 있던 實錄과 儀軌, 書冊 등의 포쇄 사정을 기록한 것이다. 체제는 전체 目錄은 없으며, 크게 實錄과 書冊秩로 나누어져 있다. 實錄은 먼저 樻區分, 實錄名, 卷數의 차례로 기록되어 있으며, 각 궤의 마지막에 실록 총책수를 적고 있다. 實錄은 전체 36개의 궤가 있으며, ‘선조대왕실록’이 시작되는 제14궤부터는 궤구분의 내부에 다시 ‘第一樻’로 구분하여 각각의 왕별 실록의 궤구분을 별도로 하고 있다. 특히 전체 궤구분 중 ‘第二十三樻’는 ‘선조대왕’으로 실록의 궤구분을 하고 다시 내부 궤구분으로 ‘修正實錄一樻’라고 하여 명칭을 달아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孝宗實錄이 시작되는 30궤부터는 궤구분, 실록명, 내부궤구분, 권수만을 기록하던 방식과는 다르게 권수 다음에 해당기간까지 添記하고 있다. 書冊秩은 實錄이 36궤로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데, 전체 궤구분도 다시 ‘제1궤’로 시작하고 있으며, 총 13궤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궤는 儀軌와 誌文을, 2궤와 3궤는 儀軌만 기록되었다. 4궤에서 6궤까지는 儒家經典 및 諺解書이고, 7궤는 樂學軌範 등이다. 8궤는 文集類, 9궤는 綱目, 10궤는 高麗史, 11궤는 다시 文集類이고, 12궤와 13궤는 形止案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때 봉안된『端宗實錄附錄』은 1704년(肅宗30) 그동안『魯山君日記』라고 되어 있던 것을『端宗大王實錄』이라고 고치고, 다시 端宗이 追復된 사실을 모아 따로 기록으로 남기자는 주청을 받아들여 편찬된 것이다. 여기에는 中宗朝 이후의 모든 追復 과정을 먼저 서술하고,또 復位 때의 상소와 의논과 諡冊, 祝, 告由, 頒敎 등의 글을 類別로 차례로 편입하여 만든 것이다. 이 부록편찬의 일은 당시 대제학으로 있던 宋相琦의 지휘로 이루어졌으며, 이해 11월에 완성되었다. 본래 무주 적상산사고는 1617년(광해9) 선조실록을 제일 먼저 奉安하였으며, 그 후 1634년(仁祖12)에 묘향산사고의 實錄과 書冊을 모두 옮겨 봉안하면서 비로소 완전한 史庫를 이루었다. 이러한 사정은 이 形止案의 기록방식에서 알 수가 있다. 선조대왕실록 이후의 보관은 전체적인 궤구분 아래 각각의 實錄마다 다시 궤구분을 하고 있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적상산사고의 설립과정과 實錄과 書冊의 봉안 시기, 보관 방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形止案의 포쇄 목록을 보면 조선 제2대 왕인 定宗의 호칭을 ‘恭靖大王’이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定宗’의 묘호는 이미 1681년(肅宗7)에 올려졌는데, 20여년이 지난 시기까지도 ‘定宗大王’이라고 호칭하지 않는 것도 특이한 사항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무주 적상산사고본 形止案은 대부분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책도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유일본으로서 귀중본으로 분류되어 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申炳周,「『조선왕조실록』의 봉안의식과 관리」,『한국사연구』, 2001. 千惠鳳, 尹炳泰 共著,『藏書閣의 歷史와 資料的 特性』,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