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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대왕수정실록의궤 [景宗大王修正實錄儀軌] - 해제

G002+AKS-AA55_23691_000 [정의] 英祖 때 편찬된 「景宗實錄(景宗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實錄)」을 정조 때 수정하면서 그 시말과 경과 및 세부사항을 기록한 의궤이다. [체재 및 내용] 먼저, 景宗實錄 수정의 발단과 경과를 기록하고 있고, 實錄廳儀軌事目, 摠裁官·都廳堂上 및 郎廳 명단과 관직에 있었던 기간, 粉板郎廳 명단과 관직 재임 기간, 印役工匠 명단, 인출에 소용된 도구과 장비, 실록 수정과 관련하여 외부와 오고 간 문서인 移文秩과 甘結秩, 물품 수수 현황인 實入秩과 用還秩, 끝으로 儀軌 堂上官과 郎廳이었던, 摠裁官 鄭存謙·堂上 李命植·編修官 黃昇源·洪明浩의 이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景宗實錄」을 수정하게 된 저간의 사정과 시말은 이러하다. 1728年(英祖4)부터 1732年(英祖8)까지 편찬된 「景宗實錄」은 모두 15권인데, 말미에 찬수관 명단이 빠져 있어서 일목요연하게 편찬에 참여한 인물의 면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英祖실록」에 의하면, 英祖 즉위 년에 영의정 李光佐와 우의정 趙泰億 등이 實錄廳 堂上官으로써 杆城郡守 李德壽와 尹淳을 추천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전례대로 英祖 즉위와 함께 「景宗實錄」 편찬을 도모했고, 그 논의는 소론 대신인 이광좌와 조태억이 주도한 것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이것은 景宗 대에 마무리하지 못한 숙종실록 편찬에 관한 기사이다. 「肅宗實錄」 편찬은 摠裁官이 鄭澔, 李觀命, 좌의정 閔鎭遠 등으로 바뀌면서 그 진척이 무척 더디었다. 「숙종실록」 편찬이 거의 이루어졌을 무렵인 1727年(英祖3)에 정미환국이 일어나고 다시 소론 대신 이광좌가 실록 총재관을 맡았다. 宋寅明을 實錄廳의 都廳堂上에 차임하여 노론 주도로 편찬된 「肅宗實錄」의 改修를 주도하게 하였는데, 이는 「肅宗實錄補闕正誤」로 남아 있다. 이렇게 해서 숙종실록 편찬에 이어, 1728年(英祖4)부터 시작된 景宗實錄 편찬은 이광좌가 총재관으로 임명되는 등 少論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景宗대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신임사화였고, 이로 인하여 노론 金昌集·이이명·이건명·조태채 등 이른바 4대신이 죽음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그 사건의 진실에 대한 실록의 기사에 대한 관심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정조가 즉위한 뒤이다. 정조실록 기사로 보면, 1777年(정조1)에 「景宗實錄」을 개수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개수 논의는 진작에 시작되었다. 이 의궤에 따르면, 1776年(正祖卽位) 8월 3일에 前 正郞 李師濂이 景宗實錄의 수정을 건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예문관에 봉직할 때, 太白山 史庫에 있는 실록을 포쇄하다가 景宗實錄을 보았는데, “四大臣의 貞忠과 偉烈은 만고에 惡逆으로 배척하고, 趙泰耈·崔錫恒 등 흉악한 역적의 魁首는 마음을 다하여 宗社를 붙잡은 것으로 推獎하였으며, 여타의 誣罔하여 더럽히는 말도 한두 가지만이 아니어서, 黑白이 뒤바뀌게 되고 충신과 반역이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景宗實錄의 개수는 이듬해인 1778年(正祖2) 2월 英祖실록 편찬을 위한 실록청이 마련되면서 본격화되었고, 1779年(正祖3) 7월 무렵엔 수정 작업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景宗實錄을 수정하였으니, 英祖 때 편찬한 景宗實錄 구본은 긴요하지 않으니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조는 우리나라에서도 정본과 구본을 함께 남겨둔 일이 있었고, 宋나라 때에 范祖禹가 수찬한 史書로 말하면, 章惇·蔡卞 등이 또 다시 고치고 그 뒤에 范沖이 다시 바로잡았는데 전후의 2본이 또한 함께 유행하였고 그때 사람들이 ‘朱墨史ꡑ라 하였다. 이것을 보면 두 본을 모두 남겨 두는 것은 또한 古例란 이유를 들어 반대하였고, 이로써 현재 景宗實錄과 景宗修正實錄 2본이 함께 전하는 것이다. 이는 실록 수정에 대한 평가도 궁극적으로 후인들의 손에 맡기는 대범하고 책임있는 역사의식의 소산이다. 그런데 본 의궤에 따르면, 景宗實錄 수정은 司直 黃景源이 교정 당상이 되어, 같은 당상인 蔡濟恭·趙埈·李命植 등과 작업을 같이 하였는데, 1781年(正祖5)에야 改修草本 8권이 마련되었고 英祖실록과 함께 봉안하였다고 되어 있어, 그 완성 시기에 자못 의문이 생긴다. 아무튼 이 개수초고 8권이 中草와 正草 작업을 거치면서 현재 남아 있는 景宗수정실록 5권이 되었고, 총재관 鄭存謙의 책임 하에 英祖실록 편찬과 함께 景宗實錄 수정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다. 景宗大王修正實錄儀軌는 다른 의궤들과 비교하면 英祖실록 편찬과 동시에 이루어진 탓인지 소략한 편이며 따라서 권질이랄 것도 없다. 또 景宗實錄儀軌가 없는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의궤의 배후를 이루고 있는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다면 그 아쉬움은 조금 덜어지리라 생각한다. [소장현황 및 이본관계] 규장각에 2건(奎14169, 奎14170)이 더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