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3631_000G002+AKS-AA55_23631_000 【정의】 「雇用外國人」은 조선후기 개항 이후부터 대한제국기 사이에 한국의 관료나 민간인이 일본의 외국인 고용 현황, 마필의 수입 상황을 조사해서 정리한 책이다. 【서지사항】 「雇用外國人」은 일본에 체류했던 외국인에 대한 내용으로 저작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청일전쟁 이전으로 생각된다.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면서 서영제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었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많은 외국인이 고문이나 정식 채용의 방법으로 일본에 도항하였다. 그리고 일본인의 식생활 개선을 위해 다양한 서양의 소와 말 등이 수입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본다. 일본은 청일전쟁 이후로 완전히 서양제국의 위협과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며 각종 불평등조약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雇用外國人은 현재 장서각 소장 유일본으로 장서각도서한국판총목록에 기재된 서지사항을 보면, 1책 6페이지의 線裝本이며, 책의 크기는 26.3×19.8cm이고 한문으로 기재하였으며, 마이크로필름 번호는 35-698이다. 【체제 및 내용】 「雇用外國人」은 별도의 목차가 없이 본문의 내용이 시작되며 외국고용인과 거류민의 수치, 일본의 각 목장에 수입한 소, 말, 양 등이 도표식으로 수치화되어 정리하였다. 예를 들어 외국 고용인의 경우 고용 외국인이 소속된 관공서를 상단에 두고 우측 하단에는 고용인의 출신 국가를 기록하였으며, 좌측에는 합계와 통계를 적고 있다. 그러므로 도표상으로 보면 당시 일본의 관공서와 학교 등에서 고용한 외국인의 출신국가와 명수가 간결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순서대로 메이지시대 일본 정부에 고용된 외국인과 수입된 가축의 수치를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官에 고용된 외국인을 보면, 外務省(영국인 1명, 프랑스인 1명, 미국인 1명), 內務省(네덜란드 3명), 大藏省(독일인 1명, 이탈리아 1명, 오스트리아 1명), 陸軍省(프랑스인 2명), 海軍省(영국인 4명, 독일인 4명, 포르투칼인 1명), 文部省(영국인 3명, 미국인 7명, 독일인 3명, 러시아인 1명, 스웨덴인 2명, 오스트리아인 1명), 工部省(영국인 19명, 이탈리아인 2명), 司法省(프랑스인 2명), 東京府(영국인 2명), 大政官(프랑스인 1명, 미국인 1명, 독일인 1명), 農商務省(영국인 1명, 미국인 2명, 독일인 6명, 청국인 3명) 등 총 90명이다. 이 중 영국인은 30명, 프랑스인은 9명, 미국인은 11명, 독일인은 25명, 네덜란드인 3명, 포르투칼인 1명, 스웨덴인 2명, 러시아인 1명, 오스트리아인 2인, 청나라인 3명 등이다. 당시 일본에 고용된 외국인의 수치상으로 보면 30명이 고용된 영국이 제일 많으며 그 다음으로 독일→미국→프랑스의 순이다. 그리고 고용된 외국인의 분포를 보면 당시 제국주의 반열에 있던 서양제국은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고용외국인 중에 청국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이 책자의 제작이 청일전쟁 이전이라는 것이 증명되기도 한다. 청국인은 농상무성에 3명이 채용되고 있는데, 농업과 상업에 대한 일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외에 일본이 채용한 외국인에 동양인은 보이지 않아서 이때부터 일본의 서양 제국주의 추종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민간에 고용된 외국인을 보면, 동일한 국가 분포에 남녀가 채용되고 있다. 英學(남자: 영국인 6명, 여자: 영국인 1명), 佛學(영국인 1명), 商船學(영국인 1명), 簿記(영국인 1명), 製鐵師 (영국인 1명), 製靴職 (네덜란드 1명), 船長(영국인 21명, 미국인 6명, 네덜란드인 3명, 오스트리아인 3명), 商船司管(영국인 24명, 미국인 10명, 독일인 12명, 丁人 13명, 오스트리아인 2명, 스웨덴인 5명, 이탈리아인 3명, 스페인인 3명), 機關手(영국인 50명, 미국인 15명, 네덜란드인 1명, 丁人 10명, 오스트리아인 4명, 러시아인 1명, 스페인인 1명, 火手(영국인 3명, 미국인 2명, 丁人 1명, 청국인 60명, 水手(영국인 10명, 미국인 2명, 丁人 1명, 청국인 63명), 書記(영국인 9명, 미국인 8명, 丁人 2명, 청국인 1명), 料理人 (이탈리아인 1명, 청국인 51명), 木工(청국인 3명), 醫師(미국인 1명), 機械學(독일인 1명), 石版彫刻師(프랑스인 1명), 製圖(독일인 1명), 化學圖學敎師(프랑스인 1명), 建築師(프랑스인 1명), 各國軍談(영국인 1명), 牧畜敎師(프랑스인 1명), 支那語學(청국인 1명) 등 총 429명으로 여자는 英學에 소속된 1명뿐이다. 이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영국인으로 남녀 합하여 129명으로 30%에 해당하고 있다. 그리고 청국인의 수치가 182명으로 그 다음인데 이들이 고용된 것은 火手와 水手書記, 木工, 支那語學으로 말단직이거나 청국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청국인의 고용은 전체 외국인 고용에서 내용이나 숫자 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직업의 비중을 기준으로 본다면 영국인 다음으로는 48명이 고용된 미국이다. 또한 당시 일본에 고용된 외국인의 직업이 製靴와 木手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는 것과 동시에 이들 직종이 일본을 비롯한 동양에도 전통적으로 존재했음에도 새롭게 서양에서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 사회의 모든 부분을 서양에 맞추어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일본 거류 외국인의 직종과 수치가 정리되어 있다. 醫術(영국인 2명, 독일인 1명), 傳敎師(남자: 영국인 8명, 프랑스인 11명, 미국인 23명, 여자: 영국인 6명, 프랑스인 4명, 미국인 28명), 畵工(청국인 1명), 裁縫職(청국인 2명), 英學(영국인 1명), 製靴職(네덜란드인 1명), 戱藝(청국인 2명), 兩贊(청국인 1명), 石版彫刻師(오스트리아인 1명), 鑛山師(프랑스인 1명, 오스트리아인 1명), 雇役人(영국인 3명, 미국인 3명, 청국인 1명), 雜業(영국인 5명, 미국인 3명, 독일인 1명, 오스트리아인 1명, 스페인인 1명, 청국인 10명), 油淶職(청국인 1명) 등 총 121명으로 남자가 86명, 여자가 36명이다. 마지막으로 목장에 분포된 일본 국산 牛馬羊과 외국산이 도표로 정리되었다. 각 목장은 開拓使 목장, 農務局 農學校, 由利公正 목장 등 3곳이며, 목장이 위치한 지역은 下澁谷村 14번지의 6,651평, 荏原郡 上目黑村 駒場野의 66,200평, 北豐島郡 下板橋宿字金澤의 49,800평 등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참고문헌】 【자료적 특성 및 가치】 「雇用外國人」은 일본이 미국에 의해 개항한 이후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제국주의의 반열에 이르는 과정에 정부와 민간에서 고용하였던 외국인과 수입한 牛馬羊의 수치를 도표로 정리한 것으로 당시 일본의 서구화 정책의 일면을 살피는데 도움을 주겠다. 【참고문헌】 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所藏 『王室圖書解題 1-일제시기』,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