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3610_000G002+AKS-AA55_23610_000 【정의】 沈頣之가 1780년(正祖4) 3월 27일부터 동년 10월 12일까지 충청도 관찰사 재직 중에 자신의 근무 내용과 생활을 기록한 사환일기. 【서지사항】 1책 17장 분량의 필사 원본으로 한 면의 크기는 28.8×22.5cm이다. 四周單邊이고, 반곽의 크기는 22.6×17.8cm이며, 반엽의 글자 수는 11行 20字이다. 판심에는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가 보이고, 주석은 보이지 않는다. 표제와 내제는 모두 ‘錦營日記’이다. ‘李王家圖書之章’이라 새겨진 소장인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錦營日記』는 沈頣之가 1780년(正祖4) 3월 27일부터 동년 10월 12일까지 충청도 관찰사 재직 중에 자신의 근무 내용과 생활을 기록한 사환일기이다. 표제에 보이는 ‘錦營’은 忠淸道監營의 별칭으로 忠淸道觀察使가 근무하는 營門이다. 『금영일기』에는 撰者를 확인할 수 있는 서발문이나 여타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冒頭의 첫 번째 기록인 ‘庚子三月二十七日政下批’을 통해 찬자를 확인할 수 있다. ‘庚子’年은 1780년(正祖4)으로 『正祖實錄』 3월 27일조에 ‘충청도관찰사 姜潤을 체차하여 沈頣之로 대신한다.(遞洪忠道觀察使姜潤, 以沈頣之代之)’는 기록이 보이는 바, 沈頣之가 작성한 일기임이 분명하다. 沈頣之(1735~1796)는 1763년(英祖39) 增廣試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4년 후인 1767년 다시 重試에 丙科로 급제한 인물이다. 본관은 靑松이고, 자는 養吾로 同知經筵事, 戶曹判書, 判中樞府事 등을 역임했다. 1796년(正祖20) 冬至正使로서 燕京으로 가는 도중에 薛劉站에 이르러 사망했다. 『금영일기』에는 충청도감영의 통제를 받는 수많은 지방관의 來謁 기사와 迎命 기사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이는 심이지가 敎書와 兵符, 印信을 받은 후 관찰사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임할 때와 체직될 때 병부와 인신을 인수인계[交龜]하는 장면도 자세하거니와 春夏等褒貶을 封啓하고, 選武都試를 실시하며, 매월 1일과 15일에 客舍에 나아가 望闕禮를 행하는 기사도 보인다. 심이지는 각 지역을 주유하며 鳳凰臺, 挽河樓, 及將臺, 雙樹亭, 義林池, 俗離山 등지를 유람하기도 하였고, 여러 書院을 奉審하였으며, 인근에 지인의 무덤이 있을 경우 성묘를 실시하고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관찰사의 부임 과정과 실제 임무에 대해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이와 동일한 서책은 보이지 않는다. 장서각에 『錦營公案』(K2-508)이 있어 역대 忠淸道觀察使와 都事를 역임한 인물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錦營公案』(藏書閣所藏本, K2-508).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72). 『藏書閣의 歷史와 資料的 性格』(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