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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일기 [岡營日記] - 해제

G002+AKS-AA55_23281_000 【정의】 閔成鎬가 1878년(高宗15) 1월부터 1880년(高宗17) 2월까지 黃海道 兵馬節度使 재직 중에 자신의 근무 내용과 생활을 기록한 사환일기. 【서지사항】 1책 65장 분량의 필사본으로 한 면의 크기는 30.1×21.2cm이다. 四周單邊이고, 반곽의 크기는 24.1×16.9cm이며, 반엽은 11행으로 글자 수는 일정치 않다. 판심에는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가 보인다. 표제와 내제는 모두 ‘岡營日記’이다. ‘李王家圖書之章’이라 새겨진 소장인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岡營日記』는 閔成鎬가 1878년(高宗15) 1월 2일부터 1880년(高宗17) 2월 9일까지 黃海道 兵馬節度使 재직 중에 자신의 근무 내용과 생활을 기록한 사환일기이다. 표제에 보이는 ‘岡營’은 黃州 兵營의 이칭으로 황해도 병마절도사가 근무하는 營門이다. 『금영일기』에는 撰者를 명시한 서발문이나 여타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冒頭의 첫 번째 기록인 ‘무인년 정월 초2일에 진주 병마절도사로서 본직에 제수되었다.(戊寅正月初二日政以晋州兵使本職除授)’를 통해 찬자를 확인할 수 있다. 戊寅年은 1878년(高宗15)으로, 『高宗實錄』 14년 12월 28일조에 閔成鎬를 慶尙右道 兵馬節度使에 임명하였다는 기사가 보이고, 15년 1월 2일조에 민성호를 黃海道 兵馬節度使로 임명하였다는 기사가 보이는 바, 『금영일기』는 민성호에 의해 찬술된 것이 분명하다. 閔成鎬(1821~1883)는 본관이 驪興이고, 자는 聖和로서 副摠管 哲의 손자이다. 민씨 척족으로 무과에 등제한 뒤, 鐘城府使, 黃海水使, 護軍 등을 역임했다. 민성호는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는 동안 매일의 날씨와 인사 왕래, 공문 수수, 업무 처리 및 國忌와 國慶의 행사 등을 본 일기에 기록하였다. 기록할 만한 사안이 없을 경우에는 날짜와 날짜만을 적었다. 大妃殿이 승하하자 대왕대비전과 왕대비전을 애도하는 陳慰箋文을 작성했는데, 진위전문을 담는 봉투와 이를 싸는 보, 끈 등을 마련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대비전이 승하한 뒤에 황해도 병마절도사로서 설행한 각종 祭禮 의식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國恤時에 행하는 望闕禮의 지침을 하달한 巡營의 甘結이 보인다. 또한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 행렬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일과 각종 都試의 설행에 관한 狀啓, 因山 뒤에 호조로 발송한 山陵祭需物種代錢, 世子宮의 병환이 차도가 있음을 경하하는 稱慶陳賀箋文의 작성, 迎勅禮의 실시, 대전과 대왕대비전에게 봉송한 正朝方物膳狀 등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지방에서 國忌日에 행하는 祭禮 의식의 실상을 살필 수 있거니와 황해도 병마절도사의 부임 과정과 실제 임무 등을 고찰할 수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이와 동일한 서책은 보이지 않는다. 黃海水營에서 올린 報牒을 수록한 『黃海水營報牒』(奎15133)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72). 『藏書閣의 歷史와 資料的 性格』(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