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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뢰홀기 [동로홀긔] - 해제

G002+AKS-AA55_22637_000 【정의】 【서지사항】 표제는 ‘동로홀긔’이고 필사본이다. 장정은 선풍엽(旋風葉) 첩장(帖裝)이고 1첩(帖) 10절(折)이다. 여타의 홀기에 보이는 주석이 보이지 않는다. 홀기가 제작된 시기나 그 경위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기록도 나타나지 않는다. 【체제 및 내용】 동뢰연(同牢宴)은 가례 중의 한 행사로서 왕비나 세자빈을 맞이하여 대궐에 와서 함께 절하고 술을 마시는 의식이다. 『고종실록』에 의하면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純宗)은 1882년(고종19) 세자(世子) 시절에 안국동 별궁에서 가례를 행한 후 훗날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에 봉해진, 민태호(閔台鎬)의 딸을 세자빈(世子嬪)으로 맞이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1882년 2월 21일에 인정전(仁政殿)에서 초계례(醮戒禮)를 거행하고 별궁(別宮)에서 세자(世子)의 친영례(親迎禮)를 설행한 후, 같은 날 오시(午時)에 중희당(重熙堂)에서 동뢰연(同牢宴)을 열었다. 본 책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빈’은 순명효황후를 말하는 것이고 ‘왕셰’는 순종을 가리키는 것이다. 본 홀기는 빈이 중문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려 입차(入次)하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있다. 수칙(守則)의 요청에 따라 빈이 출차(出次)하고 수규(守閨)의 인도를 받으며 궁정의 서편에 동향으로 선다. 수칙이 홀을 잡을 것을 요청하면 왕세자는 여관(女官)이 주는 홀을 쥐고, 왕세자가 읍례(揖禮)를 행하면 빈은 입합(入閤)한다. 수규의 인도 하에 빈이 들어오면 왕세자는 가운데 계단으로 올라가고 빈도 수규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 오른다. 왕세자는 다시 읍례를 행하고 빈은 입실(入室)하여 서향(西向)으로 섰다가 다시 동향으로 선다. 수칙의 요청을 받고 빈과 왕세자가 차례로 몸을 굽혀 두 번 절하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왕세자가 읍을 하면 빈은 자리에 나아간다. 장찬(掌饌)은 찬탁(饌卓)을 두 사람 앞에 설치하고, 2인의 상찬(常饌)은 주탁(酒卓)에 나아가 잔에 술을 따른 후 왕세자와 빈에게 각각 바친다. 왕세자는 쥐고 있던 홀을 여관(女官)에게 주고 빈과 함께 좨주(祭酒)하고 장찬이 바친 탕(湯)을 먹는다. 다시 2인의 장찬이 주탁에 나아가 잔에 술을 따른 후 왕세자와 빈에게 바친다. 술을 마시고 나서 장찬이 다시 탕을 바친다. 수칙은 예가 끝났음을 아뢰고 왕세자는 여관(女官)에게 홀을 받아 쥔다. 왕세자와 빈은 수칙의 요청을 받고 일어난다. 왕세자는 수칙의 인도를 받으며 동방(東房)에 들어가고 빈은 수규의 인도를 받으며 위악(幃幄)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왕세자는 수칙의 인도 하에 위악에 들어간다. 빈의 시종인은 왕세자를 위한 찬(饌)을 준비하고 왕세자의 시종인은 빈을 위한 찬을 준비한다. 본 홀기는 동뢰의 절차를 미리 정해 그대로 시행함으로써 절차의 오류를 막고 시비의 근원을 방지하는 목적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는 1907년 설행된 순종과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동뢰연을 기록한 동뢰홀긔가 소장되어 있는데, 두 홀기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동뢰홀긔]는 서두에서 황태자의 복장과 위치 등을 기록하고 있지만 [동로홀긔]는 이를 생략하고 있다. 그리고 황태자가 행하는 일부 절차나, 장찬(掌饌)이 찬탁을 치우는 절차, 동뢰연을 마치고 나서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각각 면복(冕服)과 적의(翟衣)를 벗는 장면 등도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동로홀긔]에서는 동뢰연을 마치고 왕세자와 빈의 종자(從子)가 찬(饌)을 준비하는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동뢰홀긔]에 보이지 않는 기록이다. 아울러 [동뢰홀긔]에서는 절하는 절차가 ‘재배(再拜)’라 되어 있지만, [동로홀긔]에는 ‘국궁재배흥평신(鞠躬再拜興平身)’이라 되어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조선후기에 설행된 동뢰연(同牢宴)의 세부 절차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소장 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동뇌홀긔가 함께 소장되어 있다. 한편 동뢰홀긔는 위에서 살필 바와 같이 내용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