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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도감의궤 [嘉禮都監儀軌n1-2책] - 해제

G002+AKS-AA55_22595_000 [정의] 1802年(純祖2, 嘉慶7, 壬午)에 純祖와 永安府院君 金祖淳 의 딸인 純元王后 金氏(1787~1858)와의 혼례행사를 기록한 의궤이다. [체재 및 내용] 이전의 가례도감의궤에 비하여 그 체제가 잘 정비된 것을 다음과 같은 일목요연한 嘉禮都監儀軌의 目錄으로부터 알 수 있다. 座目·擧行日記·傳敎(擧條啓辭並)·移文·來關·禮關·甘結·米布式(쌀과 布로 도감 종사자들에게 준 朔 給與의 명세)·賞典(附 儀軌事目)·一房(附儀註 尙衣院 司甕院 內資寺)·二房·三房(附工曹)·別工作·修理所. 上冊에는 目錄부터 一房까지, 下冊에 二房부터 修理所까지, 그리고 목록에는 명시되지 않았으나 52면의 班次圖가 수록되어 있다. 「都廳儀軌座目」에 의하면 都提調는 議政府 領議政 徐龍輔가 맡았고 기타 提調 3人 (5人이 열거되었으나 그 중 2人은 중간에 교체됨), 그리고 都廳, 郎廳 등의 이름이 보인다. 역시 일목요연한 「擧行日記」가 그 다음에 보이는데 이에 의하면 1801年(庚申) 2월 26일에 初揀擇하였고, 閏 4월 9일에 再揀擇하였다. 이듬해 1802年(壬戌) 8월 15일에 觀象監에서 처음으로 都監 會同이 있었으며, 9월 6일에 三揀擇이 거행되었다. 이어 18일 納采, 20일 納徵, 10월 3일 告期, 13일 冊妃, 16일에 親迎과 同牢宴, 그리고 17일에는 王大妃殿에, 18일에는 大王大妃殿에 朝見禮를 행하였다. 이 밖에도 좀 더 자세한 각 단계 習儀日字 등이 명시되어 있다. 「一房儀軌」에는 敎命式·敎命櫃·排案床 등의 圖式이 있고, 「三房儀軌」 「圖式秩」에는 玉冊, 玉冊匣, 金寶 등의 圖式과 同牢宴圖가 있으며 冊末에는 班次圖가 있다. 各房 儀軌의 시작부분에는 또 그 방의 업무담당자들의 座目이 일목요연하게 기재되어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도감에서는 이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많은 화원들이 종사하였다. 一房에 33人, 二房에 5人, 三房에 4人의 延人員 42人이다. 각 방에 중복되게 종사한 5人을 제하면 실제 37人인이다. 이 가운데 申漢枰, 張漢宗, 李壽民, 李寅文, 金得臣 등 오늘날 널리 알려진 화가들이 다수 보인다. 屛風은 2坐만 新造되었으며, 그 중 처음으로 (汾陽行樂圖) 8貼 병풍이 등장한다. 나머지는 (翎毛大屛風)이다. 班次圖는 일방의에서 제작 것으로 보이며, 그 구성은 1759年 英祖의 嘉禮班次圖와 大同小異하다. 몇몇 새로운 등장인물 가운데 金冠朝服 차림의 騎馬像인 奎章閣臣(제27면) 2人이 있는데 이들은 1776年 정조가 奎章閣을 설치한 후 처음으로 거행된 가례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소장현황 및 이본관계] 이 의궤는 奎章閣에 太白山本(奎13122), 五臺山本(奎13123), 그리고 鼎足山城本(奎13124)의 세 본이 있고 규장각에서는 그 중 五臺山本을 영인하였다(서울대학교 규장각 1994年 규장각 자료총서 금호시리즈 의궤편). 파리국립도서관에는 御覽用이 있다. 그런데 朴炳善의 조사에 의하면 BNF 2537이 上冊이고 BNF 2536이 下冊이며, 下冊의 장수는 177장이라고 하니(朴炳善 編著, 「朝鮮朝의 儀軌」,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5, pp.29- 30.), 규장각, 藏書閣, 파리국립도서관 소장본의 철저한 대조와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