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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도감의궤 [嘉禮都監儀軌] - 해제

G002+AKS-AA55_22592_000 [정의] 1627年(仁祖5, 天啓7, 丁卯) 昭顯世子와 世子嬪 姜氏의 嘉禮 행사를 기록한 의궤이다. [체재 및 내용] 현존하는 가례도감의궤 가운데 가장 연대가 이른 것이다. 이 儀軌는 1冊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가례도감에서처럼 一房, 二房, 三房으로 都監 內에서 업무를 분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都提調는 당시의 左議政 申欽(1566~1628)이 맡았다. 이 당시만 해도 의궤의 체제가 정비되지 않은 듯 座目이 후대의 것과 같이 일목요연하지 않고, 座目에 나타난 職銜이 班次圖에 실제로 나타난 관원들의 직함과 일치하지 않는 예도 있다. 各房의 업무분담 상황은 嘉禮儀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이 도감에서는 일방에서 敎命, 衣襨, 輦의 제작을 담당하고 병풍은 二房에서 담당하였으나 1638年 嘉禮 시에는 一房에서 屛風, 班次圖, 기타 鋪陳을 담당하였다(李成美, 姜信沆, 劉頌玉 共著, 「藏書閣所藏 嘉禮都監儀軌硏究」,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4, pp. 79-85. 의 표에는 각 가례도감 의궤의 各 房의 업무 분담 상황과 이에 봉사한 화가들의 이름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班次圖는 모두 8면으로 가례도감 의궤 가운데 가장 짧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행렬의 구성요소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이 반차도는 “세자빈이 별궁에서 대평관으로 나아갈 때의 반차도(世子嬪自別宮詣大平館時班次圖)”라고 반차도가 끝나는 다음 면에 명시되어 있다. 別宮은 三揀擇에서 선택된 處子가 私家로 돌아가지 않고 嘉禮날 入宮할 때까지 머물러 事前 교육을 받고 혼례 이전의 納采 이하 모든 의식을 치르도록 한 장소이다. 반차도에서 중요한 부분을 보면 敎命文(世子嬪을 冊嬪할 때 訓諭하는 글)을 실은 敎命輿, 冊封文을 적은 竹冊을 실은 竹冊輿, 세자빈의 尊號를 새긴 도장인 玉印을 실은 印輿, 世子嬪의 正服인 命服이 안치된 命服輿 (이상을 모두 彩輿라고 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자빈의 輦이 제 6면에 보인다. 이 연의 양쪽에는 상궁, 시녀, 乳母등이 시위하고 있다. 다음 면에 도감의 堂上官들과 都提調가 등장하고 마지막은 제일 앞과 같이 시위대가 뒤를 따른다. 각종 彩輿의 양옆으로도 儀仗隊, 騎馬忠贊尉 등이 대칭형으로 시위한 것을 볼 수 있다. 제일 짧은 이 반차도에도 43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보아 嘉禮 행렬은 당시에 큰 구경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班次圖는 완전히 肉筆로 그린 것이다. 간략한 필선으로 인물들과 기물들을 묘사하고 채색을 가하였다. 병풍 등 각종 기물과 반차도를 그린 화원들의 이름이 모두 열거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李澄(1581~1674)이 병풍을 그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등 화원들이 궁중 행사에 참여한 구체적인 기록이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嘉禮時 제작되고 사용된 병풍의 종류도 명시되어 있는데 이 때에는 十長生十貼大屛風과 花草十貼 대병풍이 同牢宴을 치른 장소에 사용되었으며, 牡丹十貼中屛風은 改服廳에서, 蓮華十貼中屛風은 別宮에서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嘉禮 때 제작되고 사용된 병풍의 종류를 조사한 표에 따르면 17세기부터 20세기 초기까지 병풍 主題의 推移를 알 수 있다. [소장현황 및 이본관계] 藏書閣에만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