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2589_000G002+AKS-AA55_22589_000 [정의] 顯宗의 王世子(후의 肅宗)와 金萬基의 딸(뒤의 仁敬王后)의 가례 행사 顚末을 기록한 의궤이다. [체재 및 내용] 1651年 가례도감의궤와 마찬가지로 목록이 일목요연하게 작성되지 않았고 庚戌年(1670) 9월 2일의 禮曹 啓辭로부터 기록하였다. 즉 二揀擇이 이미 끝났고 三揀擇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도감을 설치해야 함을 건의하여 上의 允許를 받은 것이다. 9월 20일 「吏曹別單」에 의하면 都提調에 처음에는 領議政 鄭太和가 임명되었으나 그는 21일 上疏를 올려 사임하고 결국 右議政 洪重普가 都提調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였다. 도감의 업무분담은 一房, 二房, 三房, 그리고 別工作으로 좀더 세분되었으며 분담 내역은 1651年 가례행사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一房에서 屛風과 班次圖를 담당한 것이 명시되어 있으며 別工作에서는 각종 小品(卓子, 그릇 등)을 준비하였다. 二揀擇 이후 3개월 餘의 시일이 경과된 후 12월 26일에 三揀擇이 실시되고 실제 혼례는 이듬해 3월 8일에 納采를 시작으로 4월 3일에 親迎과 同牢宴이 거행되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의궤 역시 12면의 「가례반차도」가 있는데 “빈께서 대궐로 납시는 그림(嬪自別宮詣闕圖)”이라고 명시되어 있어 세자빈이 대궐로 들어가는 행렬임을 알 수 있다. 세자빈의 輦과 기타 敎命, 命服, 印을 실은 彩輿와 儀仗隊, 기타 관원들로 이루어진 行列圖가 그려져 있다. 이 반차도는 嘉禮班次圖 가운데 처음으로 肉筆과 版畵가 혼합된 것으로, 반복되어 나오는 비슷한 인물들의 윤곽선은 판화로 하고 특별한 持物들을 육필화로 그렸다. 이 행사를 위해서도 1651年과 같은 종류의 각종 병풍 5坐가 제작되었다. 韓時覺을 위시한 11명의 화원들이 봉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소장현황 및 이본관계] 御覽用을 포함하여 모두 6건이 제작되었는데 그 가운데 御覽用은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고(BNF 2526), 규장각에는 五臺山(奎13079)과 江華(奎13080) 禮曹(奎13081) 太白山(奎13078) 史庫分上本 등 4건이 더 있어서 결국 6건 모두 현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