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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상시신실방위식 [奉常司神室方位式] - 해제

G002+AKS-AA55_22514_000 【정의】 【서지사항】 본 도서의 앞 표지(表紙)에 “奉常司”로 되어 있으나, 이는 작성 관청의 이름일 뿐이다. 다음 표지(表紙)에는 “奉常司神室方位式”라고 적혀 있다. 이는 권말에 “西紀一九七二年三月, 藏書閣再裝”이라는 내용으로 볼 때 다시 장정하는 과정에서 표지를 덧씌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표제는 “奉常司神室方位式”가 옳다. 장정은 선장(線裝)으로 되어 있으며, 1冊(3張), 사주단변(四周單邊)에 크기는 반곽(半郭) 20.3 × 13.9cm이다. 주사란(朱絲欄)에 반엽(半葉)은 10행(行)으로 글자수는 일정하지 않다. 【체제 및 내용】 봉상사는 1895년(고종 32) 봉상사(奉常司)로 고친 이름이다. 봉상시는 1392년(태조 1)에 설치한 것으로, 국가의 제사(祭祀)•시호(諡號)•적전(籍田)의 관장과 권농(勸農)•둔전(屯田)•기공(記功) •교악(敎樂) 등의 일을 맡아보았다. 1409년(태종 9) 일시 전농사(典農寺)로 이름을 고쳤다가 1420년(세종 23) 다시 봉상시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제례관리(祭禮管理)•악공(樂工)•제사(祭祀)•시의(諡議)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로 관원으로는 주임관인 장 1인, 판임관인 주사(主事) 3인을 두었는데, 1896년에 칙임관인 제조(提調) 5인, 주임관인 부제조(副提調) 10인을 두고, 1897년에는 도제조(都提調) 1인을 증원하였다. 개성부와 함경남도에 분봉상사(分奉常司)를 두고 주사를 각 2인씩 두었다. 1907년(융희 1)에 폐지하였다. 본서의 내용은 봉상사의 업무 중에 하나의 제향 관련 기록으로 신위의 방향을 기록한 것이다. 동방 팔위(八位)는 신농씨(神農氏)•구망씨(句芒氏)•후직씨(后稷氏)•성황위(城隍位)•동해위(東海位)•천사위(天駟位)• 선목위(先牧位)•동산천방(東方山川)를 두었다. 남방(南方) 칠위(七位)는 축융씨(祝融氏)•후토씨(后土氏)•지리산위(智異山位)•남해위(南海位)•웅진위(熊津位)•가야진위(伽倻津位)•남방산천(南方山川)을 두었다. 중앙(中央) 칠위(七位)는 천하명산위(天下名山位)•삼각산위(三角山位)•백악산위(白岳山位)•한강위(漢江位)•목멱산위(木覓山位)•천하대천위(天下大川位)•교단사토위(郊壇司土位)를 두었다. 서방(西方) 칠위(七位)는 욕수씨(蓐收氏)•송악산위(松岳山位)•서해위(西海位)•덕진강위(德津江位)•평양강위(平壤江位)•압록강위(鴨綠江位)•서방(西方)산천(山川)을 두었다. 북방(北方) 육위(六位)는 서릉씨(西陵氏)•현명씨(玄冥氏)•비백산위(鼻白山位)•두만강위(豆滿江位)•치우씨(蚩尤氏)•북방산천(北方山川)을 두었다. 각 신주에 맞는 청(靑), 백(白), 적(赤), 흑(黑) 등의 폐백(幣帛)은 신주 아래 기록하였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본 도서는 고종 년간의 봉상사의 신실의 신위(神位)와 그 방위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장서각 소장 이외에 확인이 되지 않아 유일본인 듯 싶다. 【참고문헌】 《참고문헌》『조선왕조실록』, 『국조오례의』, 『한국고서종합목록』(윤병태 편, 국회도서관,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