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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묘일기 [文禧廟日記] - 해제

G002+AKS-AA55_22449_000 【정의】 【서지사항】 1책 106장 짜리 필사본으로 1904년(光武 8)에 필사되었는데, 문효세자가 昌慶宮 慈慶殿에서 薨逝한 1786년(乾隆 51년, 병오) 5월 11일부터 1789년(기유) 4월 26일까지 4년 동안 문희묘의 일들을 매일 매일 빠짐 없이 자세히 기록했다. 【체제 및 내용】 문효세자의 묘당인 문희묘는 당시 종로구 통의동 彰義宮내에 있었는데, 이 일기는 세자의 薨逝한 날로부터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창경궁 자경전에서의 기록으로 시작된다. 일기의 체제는 우선 東宮日記나 侍講院日記처럼 그 날의 날짜와 그 날의 干支, 날씨의 상태, 바람의 상태는 반드시 기록되어 있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三時無事’라고 기록했고, 매일 들어와 제사를 지내는 享官에 대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우선 처음 1786년(병오) 5월 11일 저하의 환후가 위중하여 약방에서 약을 올리고, 전하가 친히 납시었으나, 끝내 未時에 창경원 자경전에서 薨逝했다고 했다. 이에 전하께서 친림해 애통해 하셨다고 했다. 계속해서 일기는 그날 그날에 벌어진 일들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정조 대왕이 매일 친림한 일, 아침, 점심, 저녁에 奠을 행하는 일, 장례에 따른 여러 일들에 대한 것, 廟號를 文禧로 정한 일, 墓號를 孝昌으로 정한 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윤7월 19일 發靷하던 날 梓室(왕세자의 棺)은 泰安門을 거쳐 연희문을 지나 종묘 동구에 이르러 조상들에게 예를 갖춘 뒤 숭례문 밖에서 路祭를 치루고 나서, 효창원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후에 기록된 일들은 대개 소상이 있기 전까지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제사 및 제사에 관련된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다음해인 1787년 5월 11일 4경 1점에 小祥을 행할 때 임금이 친림하사 곡을 하셨다고 했고, 더불어 예에 따라서 여러 신하들이 소상을 행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역시 매일 매일 하루에 세 번씩 때에 따라 이루어지는 제사의 진행 내용과 정해진 날에 따라 문효세자의 능원에 가서 제사를 행하는 일, 내명부와 종친부에서 와서 제사지낸 일, 제수들의 들고남에 대한 기록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다음해인 1788년 5월 11일 4경 1점에 다시 大祥을 맞아 임금이 친히 행행하여 제사를 행했다고 했다.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앞서 벌어진 일들이나 절차와 대동소이하게 제사의 진행 내용과 정해진 날에 따라 문효세자의 능원에 가서 제사를 행한 일, 내명부와 종친부 등에서 와서 제사 지낸 일, 제수들의 들고남에 대한 기록들이다. 다음해인 1789년 마지막으로 기록된 날인 4월 26일에 임금이 친림하시어 奠酌禮를 행하시고, 大祝官이 神主를 받들어 神擧에 싣고서 泰寧門, 金商門, 興化門, 布廛, 鄕校洞, 문희묘의 대문을 거쳐 正堂에 이르러 신주를 넣어두는 곳인 神欌에 봉안했다. 卯時(아침 5시에서 7시)에 中宮殿에서 다례를 행할 때 임금이 친림했다. 午時에 대전과 중궁전이 궁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궁중의 여러 일기들의 기술 형식에 준하여 문희묘에서 벌어지는 날마다의 일을 자세하고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기록된 내용들을 통해 당시 문희묘에서 하루 세 번 벌어지는 각종 제사들과, 이를 집전했던 享官들과 내관들이 문희묘에서 행했던 일들을 잘 살필 수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文禧廟가 세워지는 경위를 謄錄한 前記인 『文禧廟營建廳謄錄』과 관련해서 이 기록은 주로 문효세자의 묘당인 문희묘에서 4년 동안 벌어진 제반 제사, 제사에 참석했던 임금, 내명부의 사람들, 여러 신하 등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등. 【참고문헌】 『정조실록』, 『文禧廟營建廳謄』, 『국조오례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