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2438_000G002+AKS-AA55_22438_000 【정의】 【서지사항】 표지는 붉은색의 화려한 꽃무늬 비단으로 처리했고 제목은 다른 색의 비단으로 덧붙였다. 주묵으로 계판을 찍어 필사한 형태이다. ‘藏書閣印 ’이 찍혀 있으며 양력을 먼저 쓰고 음력 날짜를 덧붙이는 형식를 취하고 있다. 수정한 방법은 얇은 종이를 대충 잘라 글자를 고쳐서 붙여 놓았는데 매우 조잡한 형태이다. 표지 이면에 ‘昭和午年七月九日入鑑十日還下’라는 표시가 되어 있어 1930년에 확인한 사항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고종의 후궁이자 英親王 李垠의 생모인 嚴氏는 1897년 영친왕을 낳은 뒤 貴人으로 책봉되었고 1900년에 淳嬪으로 봉해졌으며 1903년 皇貴妃로 진봉되었다. 이때부터 慶運宮 안의 明禮宮 터에 慶善宮을 세우고 이곳에서 살다가 1911년 7월 사망한 이후 ‘德安宮’이라고 고쳤다. 황귀비의 시호는 閔丙奭의 제청으로 ‘純獻’이라 했고 이 때 宮號를 ‘望德’, 능원의 園號를 ‘永徽’라 하였다. 이후 1913년에 엄비의 묘우로 새로 궁을 짓고 덕안궁이라 했고 1929년 7월에 덕안궁을 毓祥宮으로 옮겨 ‘七宮’으로 불리게 되었다. 毓祥宮은 원래 영조대왕의 私親 즉 생모인 淑嬪 崔氏를 봉하는 사당이었다. 숙빈 최씨는 영조가 즉위하기 8년 전 1718년(肅宗 44)에 세상을 떠났으며 또 신분이 正妃가 아니라 후궁 출신의 嬪이었기 때문에 국가적인 은전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1724년(景宗 4) 8월, 영조가 이복 형인 경종을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에 私親을 추념하여 사당을 짓고 봉사하며 ‘毓祥廟’라 했으며 후에 ‘毓祥宮’으로 개칭되었다. 그런데 일제의 세력이 확장될 무렵인 1908년(隆熙 2)에는 이 육상궁에 儲慶宮•大嬪宮•延祐宮•宣禧宮•景祐宮의 5궁 신위를 함께 奉享하여 六宮으로 불렀으며 1929년에 德安宮마저 옮겨 ‘七宮’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 『德安宮祭文』은 이런 과정에서 德安宮과 永徽園에 고한 여러 祭祝文을 정리하고 있는 형태이다. 1911년 7월 20일 (음력 6월 25일)에 貴妃嚴氏가 사망하여 宗廟와 永寧殿에 고하고 있는 사실부터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날짜를 ‘明治’로 표기하고 있어 이미 국권을 상실하고 있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으며 다시 ‘辛亥’로 표기하여 음력날짜를 附記하고 있다. 喪禮 절차를 진행시키면서 祝文이나 祭文 쓰는 방법을 정확히 기록하였다. 즉 德壽宮殿下•昌德宮殿下•王妃 등의 親奠酌祭文, 李堈公•李王職 進香文을 쓰는 방법을 기록했다. 發引, 贈諡 등의 과정에 告由祭祝文과 普濟院 前路 路祭祭文의 문구에 대한 내용과 園所祀后土祭, 天秀山祭, 德安宮初虞祭, 德安宮二七日奠, 德安宮再虞祭, 德安宮望祭, 園所望祭, 德安宮三七日奠, 德安宮卒哭祭, 德安宮永徽園冬至別茶禮祭文, 德安宮永徽園冬享祝文 등에 대하여 일부문구를 따로 기록했다. 그 뒤에 다시 이들을 喪禮의 각 단계마다 祭祝文의 全文을 모두 상세히 수록해 놓았다. 대부분 親撰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再虞祭•三虞祭•四虞祭•五虞祭•六虞祭•七虞祭 까지의 祝文이 모두 親撰이라 되어 있고 二七日奠•三七日奠•四七日奠•五七日•六七日奠•七七日奠•百日奠 祭文까지 親撰으로 모두 기록했다. 1911년부터 1913년 사이에 德安宮과 永徽園에서의 행사에 고한 祭祝文을 날짜별로 수록했다. 望祭•七夕別茶禮•八月朔望祭•秋夕晝茶禮•九日晝茶禮•卒哭日晝茶禮•冬至日別茶禮•冬至日晝茶禮•生辰日別茶禮•冬享親•冬享日晝茶禮•歲暮茶禮•歲暮日晝茶禮•正朝朔祭•正朝日晝茶禮•上元日望祭•上元日晝茶禮•春享•春享日晝茶禮•淸明•淸明日晝茶禮•上巳日晝茶禮•八日晝茶禮의 祭文을 수록했다. 또 告由祭•告安祭•練祭•練祭日晝茶禮•夏享•夏享祭日晝茶禮•流頭日晝茶禮•祥祭•祥祭日晝茶禮•七夕日晝茶禮•禫祭•禫祭日奠酌禮의 제문을 모두 기록했고 淸明祭•端午祭•秋夕祭•冬至祭•忌辰祭•四仲朔祭의 祝文도 있다. 1914년에는 回甲誕辰을 기념하여 德壽宮殿下•昌德宮殿下•王世子殿下의 親撰文이 실려 있으며 이 행사에 동원된 인원들의 수와 직책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또한 1929년 5월 29일 (음력 4월 17일)에는 德安宮移奉告由祭•移安告由祭•奉安祭의 祝文을 수록하고 있어 毓祥宮으로 옮겨간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德安宮과 永徽園에 관련된 모든 祭祝文을 貴妃嚴氏의 사망 이후로부터 차례대로 모두 수록하였다. 비록 국권을 상실하여 한 왕실의 儀禮로서의 위치가 격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여전히 殿下, 王世子 등의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을 작성한 李王職은 일제강점기 때 왕실과 관련된 일들을 전담하던 기구로서 이 『德安宮祭文』또한 왕실의례를 정리하는 하여 편찬한 일련의 업무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한편 일련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지어진 여러 祭의 축문과 제문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아서 당시의 왕실 의례 모습을 구성하기로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德安宮이 설치되고 옮겨간 사실들을 祭祝文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고 날짜별로 수록하고 있어 祭祝文을 위주로 수록하고 있지만 日誌적인 성격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李王職이 작성한 儀禮書 연구에도 참고할 수 있겠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장서각에 유일본으로 소장되어 있으며 德安宮과 관련된 자료로서 『德安宮朔祭祝式』(k2-2437)도 참고할 수 있다. 【참고문헌】 『增補文獻備考』,『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