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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속지 [南殿續志] - 해제

G002+AKS-AA55_22436_000 【정의】 【서지사항】 개장•보수되었고 계판을 찍어서 필사한 형태이다. 표제는 ‘南殿續志 單’이라 표시되어 있다. ‘藏書閣圖書印’이 찍혀 있고 일부 장의 위 부분에 다른 쪽지를 붙인 흔적이 있다. 目錄을 따로 만든 후 책을 만든 취지를 적고 있으며 각 항목에 관련된 일의 전말을 소상히 기록하고 그림도 그려놓았다. 南殿에서 행해지는 여러 祭享儀式을 각각 따로 써 놓았고 卷末에 ‘歲己未季秋日參奉金啓鎭謹識’라 하여 作者를 밝히고 있고 그 위에 ‘哲宗己未’라고 따로 써서 붙여놓았다. 【체제 및 내용】 南殿은 원래 ‘南別殿’으로 1690년(肅宗 16)에 ‘永禧殿’이라 불렀으며 남부 훈도방(현재 중구 저동 2가 중부경찰서 자리)에 위치했다. 太祖•世祖•元宗•肅宗•英祖의 影幀을 奉安하고 있었는데 1858년(哲宗 9)에 純祖의 御眞을 봉안하면서 增建하여 모두 여섯 분의 영정을 모시게 되었다. 『남전속지』의 목록에서는 影幀位次, 親享, 御製, 御諭 등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고 그 아래 세부항목을 작성해 놓았다. 다음에는 金啓鎭이 『南殿續志』를 쓰게 된 취지를 모두 10개 조목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목차는 前志인『南殿志』를 따라 정했다고 한다. 또 影幀을 수리•보수하는 등에 관한 謄錄이 근래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정리하여 기록하는 것이 번다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祭享進排에 관련한 것은 前誌에 덧붙여서 부족한 부분만을 정리하고 그밖에 官員殿司式例 등의 沿革, 增減 등에 관해서는 간략히 서술한다고 하였다. 이런 관계들은 현재는『南殿志』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사항은 알기가 힘들다. 그런데 취지를 살펴보면 김계진은 당시에 南殿에 소속된 參奉이 아닐까 추정할 수 있다. 먼저 殿宇間架圖와 饌品陳設圖를 그려놓았고 南殿의 躋享•增建•重修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그 과정,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전말을 소상히 날짜별로 기록했다. 특히 增建항목에서는 ‘影幀位次’라 하여 正殿 제1실의 太祖大王 御容에서부터 제6실의 純祖, 즉 ‘淵德顯道景仁純禧王春秋四十一歲御眞’이라 하여 봉안한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또 各樣修補에서는 簾帳舖陳, 樑上塗灰 등 개보수한 사항을 수록했다. 親享과 酌獻禮에서는 실제 행한 날짜를 정확히 기록했고 祭享饌品, 祭享進排에서는 결정된 사항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祝文은 제5실의 영조와 제6실의 순조에 대한 것만 기록했다. 祭享儀註•雜儀를 각각의 항목을 정하여 영조•정조•순조 때의 행사를 서술했고 제5실과 제6실의 儀物祭器의 목록을 작성했다. 移安時所用樻袱秩에서는 물품 목록과 수량을 적었다. 영조•정조의 御製와 御諭를 정리했고 變通과 盜變 항목을 따로 만들었다. ‘上之九年戊午九月己亥南殿第六室成始躋’에서는 南殿에 관한 志•儀軌•謄錄을 참조하여 김계진이 續志를 쓰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글을 쓰는 방식은 특정 사실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承政院日記』에 쓰는 형식과 흡사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英宗丙戌八月十八日藥房入診時~’와 같은 형식이다. 따라서 이런 내용들은 김계진이 관에서 편집한 자료를 보고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南殿에 봉안된 御眞과 구조, 英祖 朝 이후 행해졌던 여러 의식 등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變通과 盜變 등의 항목을 만들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그 결말까지 적고 있어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관리의 시각이 엿보인다. 永禧殿과 관련된 다른 자료와 함께 변화해가는 영희전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장서각에 유일본이 소장되어 있다. 관련 사료로는 『永禧殿誌』(1751년, k2-2471), 『南殿增建都監儀軌』(1858년, 규14354, 규14920), 『永禧殿營建都監儀軌』(1900년, k2-3575, 2-3576) 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ꡔ奎章閣韓國本圖書解題』(서울대학교, 1984), 『藏書閣所藏儀軌解題』(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