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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왕묘:[축식] [關王廟:[祝式]] [關王廟:[祝式]] - 해제

G002+AKS-AA55_22424_000 【정의】 【서지사항】 표지는 노란색 비단을 사용했고 제목 부분은 다른 색 비단으로 따로 처리했다. ‘藏書閣印’이 찍혀 있고 계선을 그어서 필사한 형태이다. ‘隆熙’ 부분은 모두 다시 쓰고 있는데 이는 隆熙年間이전에 제작된 것을 이 시기에 맞도록 고쳐서 사용했음을 뜻한다. 【체제 및 내용】 掌禮院은 조선 후기 궁내부에 속하여 궁중의 儀式•祭享•朝儀•諡號•陵園•宗室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1895년(고종 32) 乙未改革 때 宗伯府를 장례원으로 개칭하고 奉常司•諸陵司•宗正司•貴族司를 두었다. 관원으로는 처음에 卿(勅任官) 밑에 掌禮(奏任官)•主事(判任官)를 두었으나, 1897년(光武 1) 卿 밑에 少卿(勅任官)과 주임관인 左•右掌禮•贊儀•相禮 및 주사를 두었다. 關王廟는 壬辰•丁酉亂에 關王이 여러 번 그 靈이 나타나서 神兵으로써 싸움을 도왔다는 설에 의하여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숭례문 밖 산기슭에 廟宇를 세우고 상을 만들어 세웠다. 이후 동대문 밖, 全羅道 康津 古今島, 慶尙道 安東, 星州, 전라도 南原 등지에 만들어졌다. 한편 1902년(고종 39) 1월 27일에 關王을 황제로 높여 關帝廟로 승격하였는데 이런 변화는 여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축식에는 東南北廟, 慶尙道 安東, 星州, 平壤, 開城, 全州, 全羅道 古今島, 全羅道 南原의 관왕묘에 올린 축식과 東廟配位, 南廟配位, 東南廟門神位를 기록하였고 纛祭의 형식도 기록했다. 纛祭는 軍旗인 纛의 神에게 지내는 제사로 조선시대 유일하게 武班에 의해 거행된 군대 제향이다. 始祖祭로서 京畿의 崇義殿에 올린 축식이 있으며 高麗 太祖•顯宗의 축식을 기록하면서 文宗과 元宗王의 형식을 같다고 했다. 또 平安道의 崇仁殿에는 後朝鮮의 箕子, 崇靈殿에서는 前朝鮮의 檀君, 高句麗 始祖 東明王에 대한 축식이 있다. 그 뒤로 三聖祠의 檀君에 대한 축식을 기록하면서 桓雄과 桓因은 그 형식이 같다고 하였다. 慶尙道의 崇德殿에서는 新羅의 始祖王, 廣州 崇烈殿에서는 百濟 始祖王, 崇善殿에서는 二八月節祭로 駕洛國 始祖王, 慶尙道 慶州의 崇惠殿에서 二八月節祭로 新羅 味鄒王, 文武王, 敬順王에게 올리는 축식을 썼다. 다음에는 箕子陵, 東明王陵에 寒食과 告由祭 때 올리는 축식과 高麗顯陵에 올리는 것이다. 嶽海瀆名山大川에 관해서는 松嶽山神•白頭山神•東海神•熊津神•雉嶽山神•楊津溟所之神에 올리는 축식이 있고 慶尙道 崇信殿에서 新羅 脫解王에 올리는 축식이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濟州에서 행했던 風雲雷雨之神에 대한 제사, 華城城神祠春秋節祭와 寧越配食壇致祭의 축식을 수록하고 있다. 이 축식은 미리 지방에 보내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 寧越配食壇致祭 축식에서는 ‘皇帝’를 ‘李王’으로 써서 붙여 놓고 ‘臣’을 가려 놓았다. 이런 점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에 수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축식의 主祭者 호칭은 대부분 ‘皇帝’로 되어 있으며 …에만 ‘朝鮮國王’으로 되어 있다. 국왕에서 황제로의 지위상승에 따라 축식의 문구 역시 수정되어 있다. 조선시대 始祖廟와 嶽海瀆에 대한 축식은 일반적으로 ‘朝鮮國王 姓 謹遣 臣 敢昭告于 … 伏以 … 謹以牲幣醴齊粢盛庶品式陳明薦尙饗’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개정된 축문의 형식은 ‘皇帝 (謹)遣 臣 致祭于 … 曰 …謹以牲帛庶品用申祀禮尙饗’(始祖祭)나 ‘皇帝 (謹)遣 臣 致祭于 … 曰 …謹具牲醴庶品用申常祭尙饗’(嶽海瀆名山大川)으로 되어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자료는 대한제국기에 마련된 축식으로서 조선과는 달리 皇帝國의 격에 맞는 축식을 다시 만들어 기록하고 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廟와 殿에 올리는 축식을 망라하고 있으며 각 殿에서 모시고 있는 분들과 그들의 호칭, 제사를 지내는 주체와 격식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추가 수정된 부분을 통하여 光武에서 隆熙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걸친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이 『關王廟祝式』은 장서각에 유일본이 소장되어 있고 이보다 조금 이른 시기의 관왕묘 축식으로 『關王廟儀軌』(k2-2422)를 참고할 수 있다. 【참고문헌】 『增補文獻備考』,『國朝五禮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