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2284_000G002+AKS-AA55_22284_000 [정의] 1919年 3月 初4日 高宗을 洪陵에 장사한 후, 山陵을 看審하고 조성하는 과정, 山陵을 조성하는 데 투입된 각종 기구, 山陵에 설치한 각종 조성물 등 高宗의 洪陵에 관련된 일체의 사항을 종합하여 儀軌編纂所에서 1919年에 완성한 儀軌이다. [서지사항] 작성 건수는 조선시대의 山陵都監儀軌가 5건 또는 7건씩 작성된 것에 비해 단지 1건 만이 작성되었다. 藏書閣에 소장된 (藏2-2285)이 이 儀軌와 동일한데, 이것은 이 儀軌를 필사한 것이다. 이 2본은 모두 藏書閣에만 소장된 유일본이다. [체재 및 내용] 이 儀軌는 일제시대에 작성되었으므로 儀軌의 내용이나 형식이 조선시대에 비해 현격하게 축소되었다. 山陵造成을 주관한 기구의 명칭도 조선시대의 山陵都監에서 山陵主監으로 바뀌었다. 목록은 時日, 座目, 奉膳及典衛, 下敎及上啓, 陵上閣, 隧道閣, 鉤捧機, 別轆轤, 天中鐵, 輪轝平床, 貼木, 槊木, 寢殿內排設, 唐家, 神御床, 揷屛, 下平床, 欑宮, 回南首平床, 輪轝排設, 吉惟宮, 山陵裁穴封標時所入, 甕家, 隧道閣穿, 壙成, 墳時所入, 陵上石儀, 寢殿, 碑閣, 寢殿前石儀, 安香廳以下各處所間架圖, 附 諸尺, 儀軌編纂으로 되어 있다. 「時日」은 1919年 1월 21일 高宗이 승하한 지 3일 후인 1월 24일 慶運宮에서 山陵主監의 提調와 郎廳이 회동한 것을 필두로 하여, 26일 1차 山陵看審, 27일 2차 山陵看審하여 당일 정오 12시에 山陵을 결정하고 金谷에 封標, 당일에 擇日, 30일 山陵役事 시작, 2월 8일 隧道閣 역사 시작, 2월 10일 金井 역사 시작, 2월 12일 外梓宮 안치, 3월 3일 장례, 3월 20일 安陵奠까지 山陵主監이 설치된 후 主監에서 수행한 山陵관련업무를 일자순으로 기록하였다. 座目은 山陵主監의 담당자들 명단이다. 總護員은 1명으로 子爵 閔泳奎이다. 提調는 3명으로 男爵 金宗漢, 閔泳達, 男爵 金春熙이다. 都廳은 2명으로 李禹珪, 李丙瓚이다. 이외에 郎廳, 監造官, 別監董, 相地官, 擇日員 등이 기록되어 있다. 奉膳及典衛는 山陵에 장사하기 전후하여 高宗의 신위를 지키고 조석상식을 올리는 일에 관련된 기록이다. 下敎及上啓는 山陵 조성과 관련한 순종의 지시 및 이에 대한 山陵主監 그리고 李王職의 보고를 싣고 있다. 陵上閣부터 安香廳以下各處所間架圖까지는 山陵을 조성하기 위하여 이용된 각종 기구 그리고 산릉에 설치된 조성물들의 규격과 내용 등을 기록하였는데 그림이 같이 들어 있다. 「諸尺」은 산릉을 조성하면서 사용된 각종 尺數의 표준치를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儀軌編纂」은 산릉 조성이 완성된 후 儀軌를 편찬하는데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다. 顧問에는 子爵 閔泳徽, 男爵 李載克, 男爵 金宗漢, 男爵 金春熙이다. 編纂員에는 事務官 李源昇, 事務官 朴冑彬, 典祀 鄭萬朝, 典祀補 劉海鍾, 典祀補 李晦秀, 屬 林光勛, 屬 池尻萬壽夫, 屬 李鍾龍이다. 祭監에는 劉琪鍾, 屬 劉時燦, 屬 大浦常造, 屬 三原英彦, 屬 岡本正人, 屬 川瀨章三, 屬 片淵梅次郞이다. 技士에는 金倫求, 屬 丹羽賢太郞, 屬 竹內堯三郞이다. 臨時囑託에는 張浩鎭, 李哲宇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儀軌는 高宗이 승하한 이후 일제시대에 李王家의 太王으로 있던 高宗의 山陵 조성에 관련된 각종 의논, 기구, 규격, 종류, 의식절차, 참여자 등을 구체적이면서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조선시대의 山陵都監에서 작성되었던 의궤와 비교하면 명칭, 규모, 내용 등에서 상당한 정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조선시대 최고권력자로의 왕에 대한 산릉조성에서 일제시대 왕가의 수장으로 존재하던 이왕가의 위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왕가에 맞게 격하되어 시행된 각종 왕가관련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