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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묘도감의궤 [祔廟都監儀軌] - 해제

G002+AKS-AA55_22242_000 [정의] 1739年(英祖13) 中宗妃 端敬王后의 復位 및 祔廟에 관한 기록한 의궤이다. [체재 및 내용] 端敬王后(1487~1557)는 愼守勤(1450~1506)의 딸로 1499年 晉城大君과 혼인하였다가 1506年 진성대군이 중종으로 추대되자 왕후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연산군의 매부로 中宗反正에 반대하여 반정공신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端敬王后도 곧 폐위되었다. 1515年(중종10) 장경왕후의 서거로 端敬王后의 복위운동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1739年 追復位되어 太廟에 祔廟하게 된 것이다. 이 의궤는 目錄이 없으나 卷首에 上疏와 收議과정을 기록하고, 都監郎廳儀軌(擧行日記, 座目, 啓辭秩, 移文秩, 稟目秩, 甘結秩, 來關秩, 禮關秩, 儀註秩, 賞典, 儀軌事目), 一房, 二房, 三房, 神主造成廳, 別工作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莊陵復位例를 참고하여 도감의 諸事를 진행하였다. 卷首에 1739年(英祖15) 3월 11일 幼學 金台南이 상소하여 중종의 원비로 폐위된 端敬王后 의 복위 및 부묘를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13일부터 27일까지 2品以上 大臣과 三司의 논의를 거쳐 복위와 부묘를 결정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擧行日記」를 보면 1739年 3월 28일 祠宇神主를 爲善堂으로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4월 중 3차례의 習儀과정을 거쳐 5월 1일 未時에 새로 조성한 神主를 위선당에 移安하였다가 5월 6일 太廟에 祔廟하였다. 도감의 都提調는 右議政 宋寅明(1689~1746)이 맡았으며, 提調는 申思喆(1671~1759), 尹淳(1680~1741), 洪鉉輔(1680~1740), 趙顯命(1690~1752), 兪拓基(1691~1767) 등이다. 3월 27일 15조의 都監事目을 마련하여 始役하였다. 도감에서는 당초에 諡冊文만 쓰기로 하였다가 유척기의 주장에 따라 玉冊文을 함께 마련하기로 하였다. 시책문 製述官은 李宜顯(1669~1745), 書寫官 尹淳, 옥책문 제술관 李德壽(1673~1744), 서사관 尹得和(1688~1759)가 差定되었으며 寶篆文書寫官은 홍현보, 題主官은 李匡世가 맡았다. 端敬王后의 복위와 부묘가 갑자기 결정되어 이에 필요한 物品과 工匠의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玉片의 경우 도감에서 정한 물량을 南陽府에서 시일을 맞추지 못하여 일정량이 마련되는 대로 上送하였으며, 玉 正鍊에 필요한 錠玉沙와 祭器 鑄成에 필요한 白土, 密木繩등도 어렵게 마련되었다. 工匠 가운데에도 朱簾匠과 刻手는 여주, 광주, 강화 등 경기도내에서 차출하기도 하였다. 부묘례에는 兵曹 木8同15疋과 錢 200냥, 戶曹 米 50石이 소요되었다. 「禮關秩」에는 각종 應行節目을 마련하였는데 4월 19일 端敬王后題主時應行節目 12조와 請諡宗廟上諡舊主時應行節目 등이 있다. 4월 26일에는 愼妃復位追上諡號를 端敬(守禮執義曰端, 夙夜儆戒曰敬), 徽號는 恭昭順烈, 陵號를 溫陵으로 정하였다. 儀註秩은 愼妃神主奉移于爲善堂儀, 端敬王后諡冊寶詣闕內入儀, 冊寶內出請諡宗廟儀, 爲善堂上冊寶儀, 爲善堂改題主時及入主尊親行儀, 祔廟親享儀, 祔廟親享後還宮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爲善堂改題主時及入主尊親行儀와 祔廟親享儀는 대단히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어 祔廟 時 군왕의 행동과 의례절차 등의 복원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賞典」은 祔廟가 끝난 5월 6일 시상을 위한 각 都監別單과 差備官 別單을 곧바로 올리고 8일에 각 건별로 備忘記를 내려 시상하였다. 儀軌事目은 復位祔廟都監儀軌 편찬을 위한 10개조의 應行事目을 마련하고 9건을 제작하여 각처에 분상하도록 하였다. 「一房」에서는 각 관청에서 보관하고 있는 물품을 대부분 수리하여 사용하도록 하였고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은 冊欌, 寶欌, 移安機, 卓床, 龕室小朱簾 등에 그쳤다. 「二房」은 金寶와 寶筒 등 宗廟殿內에 排設할 물건과 儀仗旗 165개를 준비하였다. 金寶는 ‘恭昭順烈端敬王后之寶’ 라 하였으며 加平郡守 趙命臣이 썼다. 金寶와 寶筒, 朱筒, 寶函, 朱函, 擔鞭 등은 도식적인 그림을 그려 놓았다. 「三房」은 諡冊과 玉冊, 龕室과 簠, 鉶, 坫, 簋, 爵 등의 祭器의 조성을 담당하였으며 시책문과 옥책문의 全文을 기록하였다. 諡冊, 玉冊, 朱紅內函, 黑漆外函, 祭器 등은 圖說을 두어 상세한 기록을 남겨 두었다. 神主造成廳을 별도로 두어 神主와 부속도구를 조성한 것이 특이하다. 別工作儀軌는 각방에서 필요한 연장 및 사무도구를 지급해 준 各房進排秩을 남기고 있다. 각방의궤에는 工匠별로 필요한 물품, 반차도제작에 필요한 물감의 수량, 중요 기구제작에 소요되는 물품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實入과 用還, 還下秩, 工匠秩 등을 상세하게 밝혀 놓았다. 班次圖는 12葉으로서 龍香亭, 神輦, 諡冊彩輿, 神輿, 復位玉冊腰輿, 諡冊腰輿 등의 순서로 배치하였다. 末尾에 儀軌纂輯에 참여한 都提調 등 8인의 官職과 手決이 있고 뒷 표지 안에 1919年 1월 裝幀을 개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의궤는 폐위되었다가 復位된 왕후의 부묘절차에 관한 기록으로 종묘배향과 관련한 儀禮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소장현황 및 이본관계] 현재 규장각에 五臺山본(奎13506), 太白山본(奎13507), 江華府본(奎13508), 議政府본(奎14881) 등 4건이 전하고, 파리국립도서관에 2건(BNF 2639 : 212장, BNF 2640 : 160장)이 전한다. (BNF 2640)이 御覽用으로 추정되지만 실사를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