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 고도서 한문 원문·한글 번역

고종태황제명성태황후부묘주감의궤 [高宗太皇帝明成太皇后祔廟主監儀軌n1-2책] - 해제

G002+AKS-AA55_22218_000 [정의] 1921年 3月 31日 오전 0시 高宗과 明成皇后를 종묘에 祔廟한 이후 祔廟에 관련된 일체의 사항을 종합하여 작성한 儀軌이다. [서지사항] 이 儀軌는 일제시대에 작성되었으므로 儀軌의 내용이나 형식이 조선시대에 비해 현격하게 축소되었다. 祔廟를 주관한 기구의 명칭도 조선시대의 祔廟都監에서 祔廟主監으로 바뀌었다. 작성된 양도 조선시대의 祔廟都監儀軌가 7건 또는 9건씩 작성된 것에 비해 단지 1건 만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체재 및 내용] 목록은 卷上에 時日·座目·下敎及上啓·儀註·班次이고 卷下에 徽號冊寶·冊寶封式·題主時諸具·龕室以下諸具·修理·輦轝儀物·儀仗·配享臣位版·配享臣敎書·軍丁人數·廟後燒火物種·附中和殿御眞奉安璿源殿이다. 時日은 高宗의 葬期가 끝나는 해인 1921年에 廟를 위해 2월 16일 祔廟主監의 提調와 郎廳이 창덕궁에서 회동한 것을 필두로 하여, 동일 종묘와 孝德殿 그리고 景孝殿을 봉심, 3월 8일 경효전의 冊寶封裹, 3월 27일 龕室이하 諸具陪進, 3월 29일 祔廟儀 연습, 3월 31일 오전 0시 祔廟 등 祔廟主監이 설치된 후 主監에서 수행한 祔廟관련업무를 일자 순으로 기록하였다. 「座目」은 祔廟主監의 담당자들 명단이다. 都提調는 1명으로 閔泳奎이다. 提調는 閔泳徽 등 10명이다. 顧問에는 朴泳效, 李完用 등 8명이 임명되었다. 都廳은 李德柱 등 4명이 기록되어 있다. 郎廳에는 鄭寅煥 등 22명이 수록되어 있다. 監造官에는 沈載德 등 15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 書記가 8명으로 되어 있다. 「下敎及上啓」는 祔廟와 순종의 지시 및 이에 대한 祔廟主監 그리고 李王職의 보고를 싣고 있다. 「儀註」는 祔廟에 관련된 각종 의식절차를 수록하였다. 「班次圖」는 高宗과 明成皇后의 신주를 종묘로 모셔오는 행렬도인데, 그림으로 되어 있지 않고 각각의 위치에 배치되는 사람의 이름과 의장, 기물명을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徽號冊寶」는 高宗과 明成皇后에게 올려진 각종 徽號를 새긴 玉冊과 玉寶의 종류와 수량을 기록하였다. 「冊寶封裹式」은 玉冊과 玉寶를 종묘에 봉안하기 위해 封하는 의식절차를 기록하였다. 「題主時諸具」는 종묘에 봉안할 高宗과 明成皇后의 神主에 題할 때 소용되는 각종 기구를 수록하였다. 「龕室以下諸具」는 종묘의 龕室에 부수되는 각종 기물의 종류와 수량을 기록하였다. 「修理」는 종묘의 수리를 기록하였으며, 「輦轝儀物」은 高宗과 明成皇后의 신주를 종묘로 옮겨갈 수레 및 이에 부수되는 각종 의장물을 정리한 것이다. 「儀仗」은 廟시에 소용되는 각종 의장물들을 기록하였다. 「配享臣位版」은 高宗의 廟廷에 같이 모실 배향공신들의 位版의 제작방법 및 모양을 그림과 함께 기록하였다. 「配享臣敎書」는 배향공신들의 교서이다. 「軍丁人數」는 廟에 동원된 각종 사람들의 수이다. 「祔廟後燒火物種」은 廟가 끝난 후 태워버린 물건의 종류와 수량을 기록하였다. 「附中和殿御眞奉安璿源殿」은 中和殿에 모시던 御眞을 璿源殿으로 옮겨갈 때의 의식절차에 관한 기록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儀軌는 高宗의 葬期가 끝난 후 高宗과 明成皇后를 종묘에 祔廟하면서, 일제 하에서 李王家의 太王으로 있던 高宗과 그의 황후인 明成皇后의 祔廟에 관련된 각종 의논, 기구, 규격, 종류, 의식절차, 참여자 등을 구체적이면서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이 儀軌는 조선시대의 祔廟都監에서 작성되던 의궤와 비교하여 명칭, 규모, 내용 등에서 상당한 정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조선시대 최고권력자로의 왕에서 일제시대 한 왕가의 수장으로 존재하던 이왕가의 위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 황실이 왕가로 격하되어 시행된 각종 왕가관련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소장현황 및 이본관계] 藏書閣에 소장된 (藏2-2218)과 (藏2-2217), (藏2-2219)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뒤의 두 건은 李王職 實錄編纂委員會에서 高宗純宗實錄을 편찬하기 위해 이왕직 원고지에 전사한 것이다. 이 3건은 모두 藏書閣에만 소장된 의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