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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식계초 [敎式啓草] - 해제

G002+AKS-AA55_22100_000 【정의】 【서지사항】 표제(表題)는 ‘교식계초(敎式啓草)’이고 표지 우측 상단에 ‘哲宗朝己未至 當宁朝甲子起’라고 하여 수록된 내용의 시기가 명시되어 있다. 본문 첫 장에는 ‘李王家圖書之章印’이라 새겨 있는 장서인(藏書印)이 찍혀 있다. 선장(線裝) 1책이고 81장 중에 19장은 여백이다. 광곽(匡郭)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곽(半郭)은 27.7×18.2이다. 반엽(半葉)은 12행인데 자수(字數)는 일정하지 않다. 주석은 쌍행(雙行)이고 어미(魚尾)는 내향이엽화문(內向二葉花紋)이며 판심(版心) 하단에는 장차(張次)가 매겨져 있다. 누락된 내용을 보충할 경우에는 서미(書眉)의 여백을 활용하여 주석의 형태로 기록하고 있다. 본 책이 제작된 연도는 1889년 이후로 추정될 뿐, 구체적 시기나 경위를 보여주는 여타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체제 및 내용】 『고종실록(高宗實錄)』 3월 16일조에 의하면, 영의정(領議政) 조두순(趙斗淳)은 『대전통편(大典通編)』이 편찬된 것이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후의 임금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든가 제의하여 승인을 받아 규례로 정한 것으로서 규정과 관련되는 것들을 한 곳에 묶어 참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청했고, 이에 고종의 승인을 받아 교서관(校書館)에 ‘교식찬집소(敎式纂輯所)’를 설치한 바 있다. 이때 조두순(趙斗淳), 이유원(李裕元), 김병학(金炳學)이 교식 찬집총재관(敎式纂輯總裁官)으로 임명되었고, 상호군(上護軍) 김학성(金學性), 우찬성(右贊成) 정기세(鄭基世), 대호군(大護軍) 남병길(南秉吉), 남릉군(南綾君) 홍종서(洪鍾序), 대호군(大護軍) 박규수(朴珪壽)가 교식찬집소교정당상관(敎式纂輯所校正堂上官)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새로운 규례를 정할 때면 찬집소(纂輯所)에 명하여 이를 명문화했다. 『敎式啓草』는 이조(吏曹)에서 1859년(철종10)년 1월 4일부터 1889년(고종26) 7월 19일까지 임금이 하교(下敎)한 것들과 계문(啓聞)하여 승인을 받은 사항들을 초록(抄錄)한 책으로, 새로운 규정의 성문화(成文化), 혹은 정교의 이론적 근거로서의 활용을 염두하고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本曺別單’, ‘本曺啓曰’ 등의 표현을 통해 이조(吏曹)가 본 책의 간행을 주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좌근(金左根), 정원용(鄭元容), 조두순(趙斗淳), 임백경(任百經), 박회수(朴晦壽), 김병학(金炳學) 등 삼상(三相)의 계문이 자주 보이고, 승문원초기(承文院草記), 종친부초기(宗親府草記) 등의 내용도 인용되고 있으며, 비변사(備邊司), 의정부(議政府) 등 여러 관청의 계문도 실려 있다. 임금의 하교에 의해 마련된 제반 규정은 대부분 ‘傳曰’의 투식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고종 초기에는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수렴청정으로 인해 ‘大王大妃殿答曰’, ‘大王大妃傳曰’의 투식도 자주 보인다. 아울러 ‘以司謁口傳下敎曰’로 시작되는 경우도 보인다. 1865년(고종2) 6월 13일에는 교식찬집소에서 주문과 함께 올린 총 31개 조항의 별단(別單)이 실려 있다. 대부분 중앙과 지방의 관리 임용 자격과 임기 등의 규정에 관한 것들인데, 마지막 조항은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사위의 이름이 처부(妻父)와 같아 개명(改名)하는 것은 법전에 실려 있지 않으므로 영원히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纂輯所兵房, 議政府, 吏曹 등에서 올린 여러 조항의 별단도 실려 있다. 1869년(고종6) 1월 24일조에는 종식(宗室) 관직제도 개정에 관한 계문과 별단이 실려 있는데, 대군(大君)과 왕자군(王子君), 적왕손(嫡王孫)과 왕손(王孫)의 적서중자(嫡庶衆子)들에게 처음 주는 벼슬과 품계를 비롯하여 적왕손(嫡王孫) 부인과 왕손(王孫) 부인의 작위와 품계에 관한 세부 규정을 신설하고 있다. 이외에 적왕손, 왕손의 사위와 옹주(翁主)의 사위, 군주(郡主), 현주(縣主)의 아들과 사위에게 처음 주는 벼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 세부 규정으로는 “대군과 왕자군은 7살에 작위를 봉하고 적왕손(嫡王孫)과 왕손(王孫)은 10살에 작위를 봉한다(이상은 모두 읍호(邑號)를 사용한다)”, “공주(公主)와 옹주(翁主)는 7살에 작위를 봉하고 군주(郡主), 현주(縣主)는 10살에 작위를 봉합니다. 이상 작위의 호칭을 써서 내려보내면 승정원(承政院)에서 임명을 청하여 비준 받아 내란다”, “대군, 왕자군, 적왕손, 왕손의 적서, 중자들은 15살에 벼슬을 준다(적녀 사위와 서녀 사위도 마찬가지이다)”, “공주, 옹주, 군주, 현주의 아들은 15살에 벼슬을 준다(사위도 이와 같다)”, “대군, 왕자군, 적왕손, 왕손의 서중자에게는 처음 벼슬을 준 후에는 품계가 종2품까지 올라가도 군으로 봉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는다”, “대군, 왕자군, 적왕손, 왕손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조(外曹)의 규례대로 과거에 응시하거나 벼슬길에 진출하는 데 장애가 없이 한다”, “세습한 군의 품계가 상보국숭록대부에까지 이르러 죽으면 영의정을 추증한다(사위도 이와 같다)” 등이 보인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교식계초』는 19세기 중후반에 새롭게 마련된 규정을 초록해 놓은 책으로 조선후기 제반규정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본책과 동일한 여타의 이본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