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고략 [文獻攷略] - 본문 번역 묶음 018
- 책 ID:
kh2_je_a_vsu_22079_000
- 수록 기사: 75건
(류구국) 고려
- 기사 ID:
22079_019_016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19]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19
- 면/쪽: 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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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44:13.66506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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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류구국
독음
류구국
의미
류구국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남쪽 바다에 위치했던 왕국으로, 고려 시대에 동아시아 해양 교류를 통해 인식되었던 왕국이다. 이 표제는 고려와의 관계를 탐구하는 기사임을 나타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류구국 / 琉球國, confidence=0.95
- place: 고려 / 高麗, confidence=0.95
유구국
- 기사 ID:
22079_019_016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19]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19
- 면/쪽: 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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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고려의 신창(辛昌) 시절에 유구국의 중산왕 찰도가 고려가 대마도를 정벌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옥지를 보내어 조공의 표를 받들어 아뢰었다. 자기 나라가 왜적에게 사로잡힌 백성을 노략질 당했으며 토산물 등의 물품을 바치니 이것이 순天府에 도착하였다. 고려에서는 김윤후와 김인용을 보내어 유구국에 답신을 하였다.
독음
비고려 신창시 유구국 중산왕 찰도문 고려 장래 대마도 정벌 소식을 듣고 옥지를 보내어 표를 받들어 아뢰었다. 내가 왜적에게 사로잡힌 백성을 노략질 당했으며 물품을 헌상하니 순天府에 이르렀다. 고려가 김윤후 김인용을 보내어 유구국에 응답하였다.
의미
고려 충숙왕 즉위 전 왕세자 시절(辛昌)인 12세기 전반, 일본 규도(九州) 남쪽의 유구국 중산왕 찰도가 고려가 대마도 정벌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마도 왜구의 침입으로 백성이 노략질 당한 사정을 알리고 조공을 바쳤다. 고려는 외교 전문 관리인 김윤후·김인용을 유구국에 파견하여 공식 답변을 전하였다. 이 기사는 고려와 유구국이 대마도 왜구 문제를 공동 대응하는 외교적 연계를 보인 기록으로, 당시 동아시아 해역의 국제 교류와 왜구 피해 상황을 보여준다.
원문
備高麗辛昌時琉球國中山王察度聞高麗將伐對馬島遣玉之奉表敀我被倭賊虜掠人口獻方物來到順天府高麗遣金允厚金仁用報于琉球國
엔티티 후보
- place: 유구국 / 琉球國, confidence=1.0
- person: 찰도 / 察度, confidence=1.0
- person: 신창 / 辛昌, confidence=1.0
- place: 대마도 / 對馬島, confidence=1.0
- place: 순天府 / 順天府, confidence=1.0
- person: 김윤후 / 金允厚, confidence=1.0
- person: 김인용 / 金仁用, confidence=1.0
- office: 중산왕 / 中山王, confidence=1.0
- term: 방물 / 方物, confidence=0.95
- term: 봉표 / 奉表, confidence=0.95
- term: 왜적 / 倭賊, confidence=1.0
- term: 노략 / 虜掠,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玉之(옥지: 옥지라는 인명의 정확한 한자 표기 불분명)
(유구국) 태조정축
- 기사 ID:
22079_019_017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19]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19
- 면/쪽: 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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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태조 정축년에 유구국이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왔다.
독음
태조 정축 유구국 자원래빈
의미
삼국사기 사서에서 유구국(류큐국)이 태조 정축년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바쳤다는 기사를 수록하고 있다. 주석에서 당나라의 춘관지(春官志)를 참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유구국 / 琉球國, confidence=0.98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75
- term: 자원래빈 / 遣使來聘, confidence=0.95
- work: 춘관지 / 春官志, confidence=0.82
불확실한 어휘
- 태조(유구국 태조의 왕호인지 연호인지 불확실)
- 춘관지(춘관지라는 문헌 자체의 구체적 출전)
(유구국) 세조정해
- 기사 ID:
22079_019_017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19]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19
- 면/쪽: 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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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세조 정해(1449)년에 유구국에 목면 1만 필과 면주 5천 필을 하사하였다. 양성이 상소하여 이를 극력 반대한 이후, 왜인들이 여러 차례 이 사례를 빗대어 준용하였다. [주: 『눅재집』]
독음
세조정해유구목면일만필면주오천필양성의상소극론 이후왜인수인위례
의미
세조(成宗) 8년 정해년(1449)에 유구국에 목면 1만 필, 면주 5천 필을 내려주었는데, 양성이 상소를 올려 이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이후 일본인들이 이 선례를 자꾸 인용하여 자국에도 같은 혜택을 요구한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눅재집에서 이를 사료로 제시하였다.
원문
○世祖丁亥給琉球木綿一萬匹綿紬五千匹梁誠之上疏極論之後倭人屢引以爲例[주:訥齋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양성 / 梁誠, confidence=0.95
- place: 유구 / 琉球, confidence=0.98
- work: 눅재집 / 訥齋集,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면주(綿紬) - 명주나 비단 등 견직물로 해석하나 구체적 직물명이 불분명
(유구국) 중종경인
- 기사 ID:
22079_019_017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19]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19
- 면/쪽: 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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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중종 경인년에 제주로 표류하여 떠내려갔다[주:황당선에 실려 왔다]
독음
중종 경인 표도 제주
의미
조선 중종 경인년(1506)에 유구국 선박이 제주로 표류하여 도착한 기록이다. 주석에 ‘황당선에 실려 왔다’고 덧붙여, 난파된 선에 실려 간漂流之意로 취임된 것을 뜻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중종 / 中宗, confidence=1.0
- place: 제주 / 濟州, confidence=1.0
- term: 황당선 / 荒唐船,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漂到는 표류 도착으로 해석하나, 실제 상황은 난파선에 실려 온 것이므로 단순 표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유구국) 선조경인
- 기사 ID:
22079_019_017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19]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19
- 면/쪽: 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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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선조 경신년, 유구국인이 표류하여 당국에 도착하자, 관원을 보내 이를 요동으로 압송하여 황제에게 보고하고 전解할 준비를 갖추었다.
독음
선조경신유구국인표도본국차관압송료동이미비주지전해
의미
조선 선조 28년(1545)에 유구국(류큐) 선원이 조사에 표류해 왔고, 조선은 이를 요동(중국 요동)으로 압송하여 명 황제에게 보고한 뒤 송환 준비를 했다는 기 록이다. 이는 당대 국제 질서 속에서 조구가 유구국 사람을 압송·보고하는 의무를 이행한 사실을 보여 준다.
원문
○宣祖庚寅琉球國人漂到本國差官押送遼東以備奏知轉解
엔티티 후보
- place: 유구국 / 琉球國,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lace: 료동 / 遼東, confidence=1.0
- term: 표도 / 漂到, confidence=1.0
- term: 압송 / 押送, confidence=1.0
- term: 주지 / 奏知, confidence=1.0
- term: 전해 / 轉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유구국) 신묘
- 기사 ID:
22079_019_017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19]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19
- 면/쪽: 0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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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묘년에 류큐국의 세자 상녕이 일본의 소식을 보고하였다[주: 임진왜란의 자세한 내용을 참조할 것]
독음
신묘 류큐 세자 상녕 보왜 성식
의미
1591년(신묘) 류큐국의 세자 상녕이 일본의 동향에 관한 소식을 보고한 기사이다. 주에 임진왜란(1592년 임진년)과의 관련을 밝히고 있다. 류큐가 일본의 침공 가능성을 사전에 예기했거나, 왜구의 움직임을 보고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긴장감을 반영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상녕 / 尚寧, confidence=1.0
- place: 류큐국 / 琉球國, confidence=1.0
- term: 세자 / 世子, confidence=1.0
- term: 왜 성식(일본 소식) / 倭聲息, confidence=1.0
- event: 임진왜란 / 壬辰倭亂,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유구국) 광해임자
- 기사 ID:
22079_019_018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19]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19
- 면/쪽: 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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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광해 임자년에 유구국 사람 마희부 등 여덟 명이 제주도에 표류하여 왔다. 옷과 식량을 제공하고, 하려는 사신(賀至使) 조존성에게 인계하여 압송·보고하게 하였다. 나아가 유구국에 알리는咨文을 발송하였다.
독음
광해임자 유구국인 마희부 등 8명 표도 제주 의량 지급 순부 하지사 조존성 압해 소문 여전히 구자 유구국 지회
의미
광해군 즉위년(1609년)에 유구국(류큐) 사람들이 제주도에 표류해 왔다. 조관(漂到)이었던 그들에게 옷과 음식을 제공하고, 조선의 사신一行에 편승시켜 압송한 뒤 임금에게 보고하고, 유구국 측에도漂出事를 통보하는公文을 보낸 내용이다.
원문
○光海壬子琉球國人馬喜富等八名漂到濟州給衣粮順付賀至使趙存性押解奏聞仍具咨琉球國知會
엔티티 후보
- place: 류큐국(유구국) / 琉球國, confidence=1.0
- place: 제주 / 濟州, confidence=1.0
- person: 마희부 / 馬喜富, confidence=0.9
- person: 조존성 / 趙存性, confidence=0.9
- term: 광해임자(광해군 즉위년) / 光海壬子, confidence=0.95
- term: 하지사(조선의 납배使) / 賀至使, confidence=0.8
- term: 의량(옷과 식량) / 衣粮,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賀至使의 정확한 직책과 기능이 통치방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
(유구국) 인조무진
- 기사 ID:
22079_019_018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19]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19
- 면/쪽: 018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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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6:31:27.01691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19&aa15no=019&aa20no=22079_019_0182
한글 번역
仁祖戊辰년에 유구국(琉球國) 중산왕 상풍(尙豊)이 우리 나라 북경(京) 파견 사신의 통송을 통해 교섭 문서와 예물로써 왕위를 계승하고 기반을 이어받은 사정을 말하고, 또한 그 나라漂民(표인) 임자정(林子政) 등의漂着자(표착자)를 해환(解還)해 준 데 대해 사례한 내용을, 순차적으로回咨(회자)와 예물로 답보(答報)하였다.
독음
인조무진유구국중산왕상풍인아국북경사체송자문예폐언급계서승기차사해당국표인임자정등해환사순부회자문예폐
의미
조선 인조대 무진년에 유구국 중산왕 상풍이 베이징 가는 조선 사신을 통해 외교 문서와 예물을 보냈다. 자신의 왕위 계승을 알리고, 표착된 임자정 등 자국 백성을 돌려보내준 조선에 사례하는内容이었다. 조선은 이에回咨와 예물로 답례를 시행하였다. 동아시아 교린 질서 속漂民送還 관행과 유구-조선-명(清) 간 다각적 외교적往來을 보여주는 사료이다.
원문
○仁祖戊辰琉球國中山王尙豊因我國赴京使遞送咨文禮幣言及繼序承基且謝該國漂人林子政等解還事順付回咨禮幣
엔티티 후보
- place: 유구국 / 琉球國, confidence=1.0
- place: 유구국 중산국 / 中山國, confidence=0.95
- person: 상풍 / 尚豊, confidence=1.0
- person: 임자정 / 林子政, confidence=1.0
- term: 표인(표착한 백성) / 漂人, confidence=1.0
- term: 자문(조용 외교 문서) / 咨文, confidence=0.9
- term: 회자(답신) / 回咨, confidence=0.9
- term: 체송(경유 전달) / 遞送, confidence=0.9
- term: 계서승기(왕위 계승) / 繼序承基,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池松旭는 지송욱 예시이고 본문에 없음
- 京使 파견시기 및 구체적 사신명 미상
문헌고략권지이십목록
- 기사 ID:
22079_020_000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0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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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6T00:40:26.12166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01
한글 번역
문헌고략 권제20 목차
독음
문헌고략 권지 이십 목록
의미
이 목록은 고조선 시대의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에서 출발하여 한강 이남의 삼국(신라·고구려·백제)에 이르기까지 동국의 역대典故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문헌고략 권제20의 목차이다. 신라·고구려·백제 각 항목에는 그 속국까지 망라하고 있으며, 후삼국 시대의 후백제·태봉·渤海國까지 포함한다. 마지막 두 论에서는 동국 지방의 지리와 기화(天地之氣의 변화)에 대해 논한다.
원문
文獻攷略卷之二十目錄
歷代典故
○檀君朝鮮○箕子朝鮮○衛滿朝鮮○濊國○貊國○東沃沮○漢四郡二府○三韓○新羅○新羅屬國○高句麗○高句麗屬國○百濟○百濟屬國耽羅○後百濟○泰封○渤海國○論東國地方○論氣化
○檀君朝鮮
○箕子朝鮮
○衛滿朝鮮
○濊國
○貊國
○東沃沮
○漢四郡二府
○三韓
○新羅
○新羅屬國
○高句麗
○高句麗屬國
○百濟
○百濟屬國耽羅
○後百濟
○泰封
○渤海國
○論東國地方
○論氣化
엔티티 후보
- place: 단군조선 / 檀君朝鮮, confidence=1.0
- place: 기자조선 / 箕子朝鮮, confidence=1.0
- place: 위만조선 / 衛滿朝鮮, confidence=1.0
- place: 예국 / 濊國, confidence=1.0
- place: 맥국 / 貊國, confidence=1.0
- place: 동옥저 / 東沃沮, confidence=1.0
- place: 한 사군이부 / 漢四郡二府, confidence=1.0
- place: 삼한 / 三韓, confidence=1.0
- place: 신라 / 新羅, confidence=1.0
- place: 고구려 / 高句麗, confidence=1.0
- place: 백제 / 百濟, confidence=1.0
- place: 탐라 / 耽羅, confidence=1.0
- place: 후백제 / 後百濟, confidence=1.0
- place: 태봉 / 泰封, confidence=1.0
- place: 渤海國, confidence=1.0
- term: 전고 / 典故, confidence=1.0
- term: 동국 / 東國, confidence=1.0
- term: 기화 / 氣化,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文獻攷略은 고귀한 문헌을考查略述한 의미로 해석되나, 권수명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음
- 新羅屬國·高句麗屬國·百濟屬國의 구체적 속국이 목록에서 列記되지 않음
- 論氣化의 내용은 목록만 존재하여 구체적 논의 파악 불가
단군조선
- 기사 ID:
22079_020_000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0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04T04:46:11.41821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02
한글 번역
문헌고략 권제이십, 역대전고, 단군조선
독음
문헌고략 권지이십, 역대전고, 단군조선
의미
이 항목은 문헌고략(文獻攷略) 제20권에서 역대典故를 다루는 부분으로, 단군조선(檀君朝鮮)을 수록한 제목이다. 전체 本文 없이 표제어만 수록되어 있어 단군조선의 구체적 설명은 이 짧은 인용만으로는 알 수 없다. 문헌고략은 조선 후기 남병시(南秉吉) 등이 편찬한 서지학 관련 서적으로 추정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work: 문헌고략 / 文獻攷略, confidence=0.9
- term: 역대전고 / 歷代典故, confidence=0.85
- place: 단군조선 / 檀君朝鮮, confidence=0.95
- term: 권제이십 / 卷之二十,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단군조선) 단군휘왕검
- 기사 ID:
22079_020_000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0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0T06:32:27.07807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03
한글 번역
단군의 이름은 왕겸이다. 옛 역사서 《단군기》에 이르길, 신인 한 사람이 태백산(지금의寧邊妙香山)에 있는 단목 아래에 강림하자, 백성들이 그를 세워 군주로 추대하였다. 그때는 唐堯 임금의 무진년이었다. 商 왕조 무정 즉위 8년 을미년에 아사달산(지금의 文化 九月山. 본래 이름은 闕山으로, 궁궐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나중에 발음이緩해져 구월산으로 기록되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阿斯達은 방언으로 아홉을 뜻하고,達은 방언으로 달을 뜻하니,阿斯達은 곧 아홉 달이라는 방언이 된다.)에 들어가 神이 되었다고 한다. 《삼한고기》의 기록이다. 비 원년에 백성들에게 머리를 엉기게 하였다. 아마도 군주와 신하, 남녀의 음식과 주거에 관한 제도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전한다.
독음
주:황극경세서로 미루어 보면 무정 8년이 갑자년이요 을미년이 아니다. 단군 휘는 왕겸. 옛 역사 단군기에 이르기를, 신인 한 사람이 태백산[주:지금寧邊妙香山] 단목 아래에 강림하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군주가 되었다. 그때 唐堯 무진년에 해당하였다. 商 武丁 8년 을미년에 아사달산[주:지금 문화 구월산. 본래 이름은闕山인데 궁궐 유적이 있어 그렇게 부른다. 나중에緩聲으로 불러 구월산으로 적었다. 다른 설에 이르기를, 아사는 方言으로 아홉이요, 달은 方言으로 달이다. 아사달이 곧 아홉 달의 方言이다.]에 들어가 神이 되었다.[주:삼한고기] 비 원년에 백성들에게 머리를 엉키게 하였다. 아마도君主와 신하, 남녀의 음식과 거처에 관한 제도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의미
이 기사는 단군조선의 시조 단군 휘왕검의 탄생, 즉위, 그리고 사망과 그 업적을 기록한 것이다. 신인이 태백산 단목 아래에 강림하여 왕겸을 군주로 세우고, 唐堯 무진년에 즉위하였다. 商 왕조 무정 8년 을미년에 아사달산에서 神이 되었다. 즉위 원년에 머리를 엉키게 하는 풍습을 가르쳐 서민과 귀족, 남녀 모두의 생활 규범을 정립하였다. 이는 단군이 사회 제도를 처음으로 세운 것으로, 국가 형성의 시작을 의미한다. 시대는 현대기년학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문헌마다 해석이 다르다.
원문
[주:以皇極經世書推之武丁八年乃甲子而非乙未]檀君諱王儉舊史檀君紀云有神人降太白山[주:今寧邊妙香山]檀木下國人立爲君時唐堯戊辰歲也至商武丁八年乙未入阿斯達山[주:今文化九月山本名闕山以有宮闕遺址也後緩聲呼之記爲九月山一說阿斯者方言九也達者方言月也阿斯達卽九月之方言]爲神[주:三韓古紀]
備元年敎民編髮蓋首[주:君臣男女飮食居處之制自此始云]
엔티티 후보
- person: 단군 / 檀君, confidence=1.0
- person: 왕겸 / 王儉, confidence=1.0
- place: 태백산 / 太白山, confidence=0.9
- place: 묘향산 / 妙香山, confidence=0.8
- person: 당尧 / 唐堯, confidence=1.0
- person: 무정 / 武丁, confidence=1.0
- place: 아사달산 / 阿斯達山, confidence=0.7
- place: 구월산 / 九月山, confidence=0.8
- place: 궐산 / 闕山, confidence=0.8
- work: 단군기 / 檀君紀, confidence=1.0
- work: 삼한고기 / 三韓古紀, confidence=1.0
- work: 황극경세서 / 皇極經世書, confidence=0.9
- term: 편발 / 編髮, confidence=0.6
불확실한 어휘
- 編髮은 단순히 머리를 묶는 것인지, 특정 머리 모양을 가르친 것인지 불확실
- 阿斯達의方言 해석은 전승에 따라 다르게 전해지며 통일된 해석이 없음
- 武丁 8년을 을미년(乙未)으로 보는 기록과 갑자년(甲子)으로 보는 기록이 있어 시대 대비에 이견이 있음
(단군조선) 강화현서마리산정유참성단
- 기사 ID:
22079_020_000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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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강화현 서쪽 마리산 꼭대기에 널빤지를 파서 쌓은 성의 제단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낸 제단이라고 한다. 전등산에 세 아들의 성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세 아들에게 명하여 쌓게 하였다고 한다. [주: 『고려지지』에서]
독음
비강화현 서마리산정 유첩성단 세전 단군 제천단 전등산 유 삼랑성 세전 단군 명 삼자 이 축지[주:고려지지]
의미
강화현 서쪽 마리산 정상에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냈다는 제단과, 단군이 세 아들에게 쌓게 한 삼랑성이 전해진다는 기록이다. 『고려지지』의 기술로 보아 고려 시대 사람들에게도 강화 지역이 단군 신화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備○江華縣西摩利山頂有塹星壇世傳檀君祭天壇傳燈山有三郞城世傳檀君命三子而築之[주:高麗地理志]
엔티티 후보
- place: 강화현 / 江華縣, confidence=1.0
- place: 서마리산 / 西摩利山, confidence=0.9
- place: 전등산 / 傳燈山, confidence=0.7
- place: 삼랑성 / 三郞城, confidence=0.9
- person: 단군 / 檀君, confidence=1.0
- work: 고려치지 / 高麗地理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塹星壇(첩성단) - 널빤지를 파서 쌓은 성의 제단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나, 고전문헌에서 구체적 형태를 알기 어려움
(단군조선) 시위전조선
- 기사 ID:
22079_020_000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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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것이 전조선으로서 국가 호칭을 처음 갖게 된 것이다. [주: 『여지승람』] 「조선」의 음은 조(潮)와 선(仙)에서 유래하여 물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또 다른 설로는「선명하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그 지역이 동쪽 끝에 자리하여 해가 먼저 밝히므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산해경』에 이르기를,「조선은 열양에 있다」고 하였고, 주에 열수라는 이름을 달았으며, 양웅의 『방언』에서는「조선은 열수 물 사이에서」라 하였으며, 장화의 글에서는「조선에는 천천泉, 열수冽水, 산수汕水 세 물이 있는데,这三수가 합하여 열수가 된다」고 하였다. 의심컨대 낙랑의 조선이 이로부터 이름을 취한 것 같다.
독음
이위전조선시유국호:[주어지승람] 비조선음조선인수위명자유운선명야치지동표일선명고명산해경조선재열양주열수명양웅방언조선렬수지간장화왈조선유천천렬수삼수합위렬수수 의심낙랑조선취명어차야
의미
조선이라는 국호의 어원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두 가지 어원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조수潮水와 선선仙泉水에서 유래한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동방에서 해가 먼저 밝으므로 선명鮮明하다는 뜻에서 왔다는 설이다. 또한 『산해경』, 양웅의 『방언』, 장화의 기록을 인용하여 낙랑 지역 내 천천·열수·산수 세 물줄기가 합쳐져 열수가 되고, 이로부터 조선의 이름이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원문
○是爲前朝鮮始有國號[주:輿地勝覽]
備朝鮮音潮仙因水爲名又云鮮明也地在東表日先明故名山海經朝鮮在列陽註列水名楊雄方言朝鮮冽水之間張華曰朝鮮有泉水冽水汕水三水合爲冽水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
엔티티 후보
- place: 전조선 / 前朝鮮, confidence=0.95
- place: 조선(물 이름) / 潮仙, confidence=0.75
- work: 산해경 / 山海經, confidence=0.95
- person: 양웅 / 楊雄, confidence=0.95
- work: 방언(양웅의 저서) / 方言, confidence=0.95
- person: 장화 / 張華, confidence=0.95
- place: 낙랑 / 樂浪, confidence=0.9
- place: 열양 / 列陽, confidence=0.85
- place: 열수 / 列水, confidence=0.85
- work: 여지승람 / 輿地勝覽,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천천(泉水)
- 열수(冽水)
- 산수(汕水)
- 절수
- 列水
(단군조선) 단군씨지후유해부루
- 기사 ID:
22079_020_001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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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단군씨의 후손에 해부루가 있었다. 해부루가鲲淵에서 기도하자 금개구리를 얻었다. 용모가 금개구리와 비슷하여 금개구리라 이름 지었다. 개구리가 우발수의 여인에게 감응하여 일광이 그 몸을 비추자 주몽이 태어났다. 주몽의 어린 아들을 온조라 하였다. 주몽과 온조가 고구려와 백제의 조상이니, 다 본관이 단군씨이다.[주:미수기가 말하기를]
독음
단군씨지후유해부루. 부루어곤연득금와.以往유금와명일금와. 와열우발수지여감일영조신생주몽. 주몽소자왈온조. 주몽온조위구려백제지조개본어단군씨[주:미수기언]
의미
단군조선의 후손 해부루가鲲淵에서 기도하여 금개구리를 얻고, 우발수의 여인이 일광을 받아 주몽을 낳았다는 신화적 기원설화를 전한다. 주몽과 그 아들 온조가 각각 고구려와 백제의 시조가 되며, 이들 삼국 시대 왕실의 조상이 모두 단군씨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힌다. 이는 삼국 시대 왕실의 정통성을 단군조선으로 소급하는 역사 서술 방식이다.
원문
○檀君氏之後有解夫婁夫婁禱於鯤淵得金蛙以貌類金蛙命曰金蛙蛙悅優浡水之女感日影照身生朱蒙朱蒙小子曰溫祚朱蒙溫祚爲勾麗百濟之祖皆本於檀君氏[주:眉叟記言]
엔티티 후보
- person: 단군씨 / 檀君氏, confidence=0.95
- person: 해부루 / 解夫婁, confidence=0.9
- place: 곤연 / 鯤淵, confidence=0.8
- person: 금개구리 / 金蛙, confidence=0.85
- place: 우발수 / 優浡水, confidence=0.75
- person: 주몽 / 朱蒙, confidence=0.95
- person: 온조 / 溫祚, confidence=0.95
- country: 고구려 / 勾麗, confidence=0.95
- country: 백제 / 百濟,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鯤淵(곤연)- 구체적 위치 미상, 우발수와의 관계 불확실
- 優浡水(우발수)- 지류 위치 미상
- 金蛙의 연호 해석- 가야 연호로 추정되나 학계 이견 있음
- 眉叟記- 구체적 저자·편찬 연대 미상
(단군조선) 평양유숭녕전향단군
- 기사 ID:
22079_020_001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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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평양에 단군을 모시는 숭녕전이 있다[주: 상세한 기록의 여러 사당]
독음
평양에 숭녕전이 있어 단군을 향한다[주: 상세기전 제사]
의미
평양에 단군을 제사 지내는 숭녕전이 존재함을 기록한 것. 삼국유사에 수록된 단군조선 시대의 제관(祭官)과 제사 관련 기록으로 분류되며, ‘詳記典諸祠’는 삼국유사 원문의 주석 범례 표시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1.0
- work: 숭녕전 / 崇寧殿, confidence=1.0
- person: 단군 / 檀君, confidence=1.0
- term: 향 / 享, confidence=0.95
- term: 상세기전제사 / 詳記典諸祠,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단군조선) 단군강역
- 기사 ID:
22079_020_001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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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13
한글 번역
단군의 영토는考证할 수 없으나, 기자가 단군을 대신하여 그 봉토의 절반이辽 지역이라면, 단군의 시대에도 그러했음이 당연하다. 북부여는辽의 동북쪽 천여 리에 있는데, 대개 단씨가 대대로 쇠하여 자손이 북쪽으로 옮겨가자 옛 영토가 그대로 기자의 봉토에 편입된 것이다.
독음
단군강역 무가고고 기자 대 단군 기제봉 반시료지 즉 단군지세 역당연의矣 북부여 재료동북천여리 개 단씨 세쇠 자손 북천이 구강 인입 기봉의矣
의미
단군조선의 구체적 영토 범위는考证할 수 없으나, 기자 조선이 대체한 뒤 그 영역의 절반이辽 지역에 해당했다면 단군 시대도 대략 그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부여는辽 동북쪽 천여 리 곳에 위치하며, 단씨 왕통이 대대로 쇠약해지며 후손이 북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기존의 영토가 기자의 봉토에 흡수된 것으로 본다.
원문
○檀君疆域無可考而箕子代檀君其提封半是遼地則檀君之世亦當然矣北扶餘在遼東北千餘里蓋檀氏世衰子孫北遷而舊疆因入箕封矣[주:安鼎福綱目]
엔티티 후보
- person: 단군 / 檀君, confidence=0.95
- place: 조선 / 朝鮮, confidence=0.9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0.95
- place: 료지(辽 지역) / 遼地, confidence=0.85
- place: 북부여 / 北扶餘, confidence=0.88
- person: 안정복 / 安鼎福, confidence=0.92
- work: 강목 / 綱目, confidence=0.9
- term: 제봉(봉토의 범위) / 提封,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提封 - 봉토의 크기라는 뜻으로 추정되나 정확히 ‘반석으로 쌓은 성벽’이라는 원의와 구분 필요
- 千餘里 - 千里를 기준으로 삼았으나 기준점과 里의 단위 변환이 불확실
- 舊疆因入箕封 - 단군 영토가 기자에게 편입되었다는 해석이 단순 전환인지 단계적 흡수인지 분명하지 않음
기자조선
- 기사 ID:
22079_020_001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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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47:28.40701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14
한글 번역
기지(사람 이름)와 조선(국호)의 합성어로, 기지가 건국한 조선이라는 뜻.
독음
기자조선
의미
한문 고문헌에서 기지가 건국한 조선(조선국)을 가리키는 고유 명칭. 주나라 목왕 때 은 나라 왕족 기지가 한국 땅에 도읍하여 건립한 조선의 역사적 서사를 대표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기지 / 箕子, confidence=0.95
- place: 조선 / 朝鮮,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본 문헌은 제목만 제시되어 본문이 없는 관계로 독음·번역·해석 모두 표제어 기반 추정에 한정됨
(기자조선) 평양내성외성
- 기사 ID:
22079_020_001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17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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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48:09.83517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17
한글 번역
평양의 내성과 외성은 세상에 전해오기를 기자의 시대에 쌓은 것이라고 하나, 세대가 몹시 오래되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기자궁의 유적은 정양문 밖에 있고, 기자정이 있다. 정전(井田)制度는 외성 안쪽에 있어 그 유적이 분명하다.
독음
평양 내성 외성 세전자기자 시대 소축 연세대 절원 미지시부 기자궁 유적 재정양문 외 유기자정 정전 재외성 내 유적 완연
의미
평양의 내성과 외성은 기자 시대 축조라는 전설이 있으나年代가 오래되어 확인 불가하며, 정양문 밖에 기자궁 유적과 기자정이 존재하고, 외성 안에는 정전制의 유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는 내용이다.
원문
○平壤內城外城世傳箕子時所築然世代絶遠未知是否箕子宮遺址在正陽門外有箕子井[주:輿地勝覽]
井田在外城內遺跡宛然[주:詳田制]
엔티티 후보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1.0
- place: 내성 / 內城, confidence=1.0
- place: 외성 / 外城, confidence=1.0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1.0
- place: 정양문 / 正陽門, confidence=0.9
- place: 기자정 / 箕子井, confidence=0.95
- term: 정전 / 井田, confidence=1.0
- work: 여지승람 / 輿地勝覽, confidence=1.0
- work: 상전제 / 詳田制,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世傳(세전) - 세상에 전하여지는 바, 유력한 전설로서의 신뢰도
(기자조선) 악지기자시팔조지교
- 기사 ID:
22079_020_001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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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6:33:36.48602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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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기자가 팔조(八條)의 교화를 베풀어 예속을 흥하게 하니, 조정이든 민간이든 사정이 없었고 백성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대동강을 황하에 비유하여 노래를 지어 그를 칭송하고 기도하였다.
독음
악지기자시팔조지교이흥예속조야무사인민환약이대동강비황하작가송도지
의미
기자조선 시대에 기자가 팔조의 교화를 실시하여 예속을 진흥시키자 국가가 평화롭고 백성이 행복해졌다. 백성들이 대동강을 황하에 견주고 기사의 덕정을 노래로 찬미한 사건이다. 주석에 따르면 이는 『여지승람』의 기록으로, 영명령을 숭산에 비유한 내용과 연결된다.
원문
○樂志箕子施八條之敎以興禮俗朝野無事人民歡悅以大同江比黃河作歌頌禱之[주:輿地勝覽永明嶺比嵩山]
엔티티 후보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0.98
- place: 대동강 / 大同江, confidence=0.98
- place: 황하 / 黃河, confidence=0.98
- term: 팔조지교 / 八條之敎, confidence=0.97
- work: 여지승람 / 輿地勝覽, confidence=0.95
- place: 영명령 / 永明嶺, confidence=0.92
- place: 숭산 / 嵩山, confidence=0.92
불확실한 어휘
(기자조선) 세전
- 기사 ID:
22079_020_001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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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세상에 전하여 오길, 기자가 조선의 풍속이 호전하고 강건한 것을 보고, 유수의 성질이 부드러운 것으로 인해 온전히 백성 가문마다 버즘나무를 심기게 하였다. 그래서 평양을 일컬어 유경이라고도 한다.
독음
세傳箕子見鮮俗强悍以柳樹性柔悉令民家種柳故平壤一名柳京云
의미
기자조선의 세전(世傳)에 따르면, 기자가 조선의 호전적이고 강건한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 유수(버즘나무)의 부드러운 성질을 이용하여 백성들에게 널리 심재게 하였고, 이로 인해 평양이 유경(柳京)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순오지』의 기록이다.
원문
○世傳箕子見鮮俗强悍以柳樹性柔悉令民家種柳故平壤一名柳京云[주:旬五志]
엔티티 후보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0.95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0.95
- place: 유경 / 柳京, confidence=0.85
- work: 순오지 / 旬五志, confidence=0.8
- term: 유수(버즘나무) / 柳樹,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柳樹의 학술적 종 동정,旬五志의 정확한 서지 정보
(기자조선) 공자이문왕기자병렬우역상
- 기사 ID:
22079_020_002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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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20
한글 번역
공자가 문왕과 기자를 함께 「역경」의 상(象)에 배치하였고, 또한 삼인이라고도 칭하였다. 그렇다면 기자의 덕을 이야기할 수 없을 리가 없으니, 생각건대 예전에 우가 토지와 물을 다스릴 때 하늘이 홍범(洪範 九疇)을 내려 인륜의 질서를 바로 세웠다. 그러나 그 설이 요와 하의 서적에 한 번도 보이지 않았으니, 천여 년이 지난 후 기자에 이르러 비로소 펴지게 되었다. 만약 기자가 무왕을 위해 진술하지 않았다면, 낙서(洛書)의 하늘과 사람의 학문을 후대에 어떻게 알았겠는가? 기자는 무왕의 스승이었다. 무왕이 그를 다른 지역에 봉하지 않고 우리 조선 사람에게 하시어 아침저녁으로 직접 교화받게 하니, 군자는大道의 요지를 듣고, 백성은 至治의 덕을 입는다. 그 교화가 도불시유(道不拾遺)에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이 동방을후愛하여仁賢을 내려 백성을 이롭게 한 것이며, 사람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주:변계良이 지은 기자 묘비]
독음
공자이문왕기자병렬우역상우차문왕기자병렬우역상又称위삼인이칙기자지덕불가득찬야사색석우지평토수야천축홍범으로윤륜서기의설미상일견우하서력천여年至기자이시발상향비기자위무왕진지칙낙서천인지학후지인하종지지도기자무왕지사야무왕불이봉어타방이어아조선지지조흡친취군자유득문대도지요소인덕蒙치지지덕기화지어도불시의此举기천후동방후지인현이혜사민이비인지소능급야야[주:변계양소천기자묘비]
의미
변계良이 지은 기자 묘비의 일부로, 공자가文王과箕子를 역경의象에서同等히 취급하고 삼인이라 칭한 점을 인용하며,箕子의 위대한업을 칭송한다. 특히尧舜禹 시대에 하늘이 준洪範九疇의 학문이 요하서적에 등장하지 않고 천여 년 후箕子에 이르러 비로소 발현된 사실을 강조하며,武王이箕子를朝鲜에 봉한 것은 조선 백성이 아침저녁으로 直接 교화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으로, 그 결과 도불시유의 선한 사회가 구현되었다고 평가한다.
원문
○孔子以文王箕子竝列于易象又稱爲三仁則箕子之德不可得而贊也思昔禹之平水土也天錫洪範彛倫敍矣然其說未嘗一見於虞夏之書歷千餘年至箕子而始發向非箕子爲武王陳之則洛書天人之學後之人何從而知之箕子武王之師也武王不以封於他方而于我朝鮮之人朝夕親灸君子得聞大道之要小人得蒙至治之德其化至於道不拾遺此豈非天厚東方畀之仁賢以惠斯民而非人之所能及也耶[주:卞季良所撰箕子廟碑]
엔티티 후보
- person: 공자 / 孔子, confidence=1.0
- person: 문왕 / 文王, confidence=1.0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1.0
- person: 무왕 / 武王, confidence=1.0
- person: 우 / 禹, confidence=1.0
- person: 변계良 / 卞季良, confidence=1.0
- work: 역경의 상 / 易象, confidence=0.9
- work: 홍범 / 洪範, confidence=1.0
- work: 기자 묘비 / 箕子廟碑, confidence=1.0
- place: 조선 / 朝鮮, confidence=1.0
- term: 삼인 / 三仁, confidence=0.95
- term: 낙서 천인지학 / 洛書天人之學, confidence=0.85
- term: 인륜 / 彝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기자조선) 주성왕삼십삼년무자기자훙
- 기사 ID:
22079_020_002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2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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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02T06:20:37.94113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21
한글 번역
주성왕 삼십삼년 무자년에 기자가 졸하였다. 재위 사십년, 수명 구십삼세.
독음
주성왕 삼십삼년 무자 기자 훙 재위 사십년 수 구십삼
의미
주성왕 삼십삼년(무자년)에 기자조선의 건국 군주인 기자가 졸하자, 그가 사십 년간 재위하며 구십삼세까지 살았음을 전하는 기사이다. 이는 기자조선 시대의 핵심 기록으로, 기자의 사망 시점과 재위 기간 및 수명을 함께 전해준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1.0
- person: 주성왕 / 周成王, confidence=1.0
- term: 무자 / 戊子, confidence=1.0
- term: 훙 / 薨, confidence=1.0
- term: 재위 / 在位, confidence=1.0
- term: 수 / 壽, confidence=1.0
(기자조선) 기자묘재평양부북토산상
- 기사 ID:
22079_020_002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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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22
한글 번역
기자(기)의 묘가 평양 부(府)의 북쪽 토산 위에 있다
독음
기자묘재평양부북토산상
의미
기자조선의 건국圣臣이자 은 나라의 왕족이었던 기자(기)의 묘가 평양 부의 북쪽 토산(토끼 산) 위에 위치한다는 내용이다. 한국 고대사에서 기자 묘는 역사적 중요祭祀 장소로 전해진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0.95
- place: 평양부 / 平壤府, confidence=0.9
- place: 토산 / 兎山,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토산(兎山)의 정확한 위치와 현대 지도와의 대응 관계
(기자조선) 사기미자세가주
- 기사 ID:
22079_020_002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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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23
한글 번역
《사기》 《미자世家》주의 소음(索隱)에서 이르기를, 두예(杜預)가 이르길 ‘양국(梁國) 몽현(蒙縣)에 기자(箕子)의 무덤이 있다.’ 하였다. 또한 대명(大明) 《일통지(一統志)》를 인용하기를 ‘평양성 밖에도 기자의 무덤이 있다.’ 하니, 두예의 말이 어디를 근거로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대저 이전에 이미 평양城外에箕子墓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반드시 확실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두예의 근거 없는 말과 같다. [주: 《楓岩輯話》] 《환우기(寰宇記)》에서는 기자의 묘가 몽현에 있다고 하고, 《수경주(水經注)》에서는 박성(薄城)에 있다고 한다. 所謂하는 ‘몽·박’은 곧 ‘북박(北亳)’이다. 《청통지(淸統志)》에서는 귀덕부(歸德府) 商邱縣에 있다고 한다.
독음
사기 微子世家 주 소음왈 두예왈 양국 몽현에 기자총 유라 하대 명 일통지 云 평양성외에 기자묘 유 미지 두설 하수 기고거 허전전지 왜야… 풍암집화. 환우기 뇌자 묘 재 몽현 수경주 재 박성 소위 몽박 즉 북박. 청통지 재 귀덕부 商邱현.
의미
《사기》 소음 주에서 두예가 양국 몽현에 기자 무덤이 있다고 하였으나, 대명 《일통지》는 평양城外에 기자 묘가 있다고 기록한다. 이후 고전地名考證學者들은 몽현(《환우기》), 박성(《수경주》), 商邱縣(《청통지》) 등 여러 곳에서 기자 묘를 언급하였다. 본 문건은 이처럼 기자 묘의 소재지가 명확하지 않고 전거도 불분명함을 지적하며, 두예의 주장이 풍설에 근거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원문
○史記微子世家註索隱曰杜預曰梁國蒙縣有箕子塚又按大明一統志云蒙縣無箕子墓山東布政司古跡條云平壤城外有箕子墓未知杜說何所考據豈傳聞之訛耶[주:楓岩輯話]
寰宇記簊子墓在蒙縣水經註在薄城所謂蒙薄卽北亳淸統志在歸德府商邱縣
엔티티 후보
- work: 사기 / 史記, confidence=1.0
- work: 소음 / 索隱, confidence=1.0
- person: 두예 / 杜預, confidence=1.0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1.0
- place: 양국 / 梁國, confidence=1.0
- place: 몽현 / 蒙縣, confidence=1.0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1.0
- work: 대명일통지 / 大明一統志, confidence=1.0
- work: 환우기 / 寰宇記, confidence=1.0
- work: 수경주 / 水經註, confidence=1.0
- place: 박성 / 薄城, confidence=0.9
- place: 북박 / 北亳, confidence=0.9
- work: 청통지 / 淸統志, confidence=1.0
- place: 귀덕부 / 歸德府, confidence=1.0
- place: 상구현 / 商邱縣, confidence=1.0
- work: 풍암집화 / 楓岩輯話,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箕子墓에 대한 여러 지역 전승의 역사적 신뢰도
- 楓岩(풍암)의 저술 연대와 편자 신원
- 梁國 몽현의 위치비정(양 왕조 이후 행정구역 변동)
(기자조선) 시위후조선전
- 기사 ID:
22079_020_002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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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48:31.17146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24
한글 번역
이것은 『후조선전』으로, 41대에 이르며 기준(箕準)까지 이른다.[주: 『여지지람』에서 인용]
독음
시위후조선전 사십일대 지원기준
의미
『후조선전』의 기재 방식에 대한 표제로, 이후 조선(衛氏조선)의 역대가 41대에 이르고 기준에 이르다는 내용을 『여지지람』의 인용 근거와 함께 제시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work: 후조선전 / 後朝鮮傳, confidence=0.95
- place: 기준 / 箕準, confidence=0.9
- work: 여지지람 / 輿地勝覽, confidence=0.98
불확실한 어휘
(기자조선) 한서
- 기사 ID:
22079_020_002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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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48:42.33557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25
한글 번역
한서에 이르기를, 현도·낙랑은 무제 때에 두었으니, 모두 조선·예·맥·구려의 지역이다. 예의 도가 쇠하자 기자가 그것을 떠나 조선으로 갔다. 당서에서 온언포가 이르기를, 요동은 본래 기자의 나라이니라고 했다. 요금사에서 이르기를, 요동과 광녕은 모두 기자의 봉지라고 했다. 속문헌통고에서 이르기를, 함평로도 기자의 봉지라고 했다. 당서에서 배거가 이르기를, 고려는 본래 고죽국으로서 주가 기자에게 봉하여 조선이 되었다고 했다.
독음
한서왈현도락랑무제시치개조선예매각려만연도쇠기자거치지조선당서온언포왈료동본기자국료금사왈료동광녕개기자봉지속문헌통고왈함평로기자봉지당서배거왈고려본고죽국주이봉기자위조선
의미
한서 등 고전 기록을 통해 현도·낙랑의 설정, 기자의 조선 건국, 요동 일대의 기자 봉지 범위, 고려 건국과의 연관성을 종합 정리한 내용이다.
원문
○漢書曰玄菟樂浪武帝時置皆朝鮮濊貉勾驪蠻夷殷道衰箕子去之朝鮮唐書溫彦博曰遼東本箕子國遼金史曰遼東廣寧皆箕子封地續文獻通考曰咸平路箕子封地唐書裴矩曰高麗本孤竹國周以封箕子爲朝鮮
엔티티 후보
- place: 현도 / 玄菟, confidence=0.95
- place: 낙랑 / 樂浪, confidence=0.95
- place: 무제 / 武帝, confidence=0.95
- place: 조선 / 朝鮮, confidence=0.95
- ethnic: 예 / 濊, confidence=0.9
- ethnic: 맥 / 貉, confidence=0.9
- ethnic: 구려 / 勾驪, confidence=0.85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0.95
- work: 당서 / 唐書, confidence=0.95
- person: 온언포 / 溫彥博, confidence=0.9
- place: 요동 / 遼東, confidence=0.95
- place: 광녕 / 廣寧, confidence=0.85
- work: 요금사 / 遼金史, confidence=0.9
- work: 속문헌통고 / 續文獻通考, confidence=0.9
- place: 함평로 / 咸平路, confidence=0.85
- person: 배거 / 裴矩, confidence=0.9
- place: 고죽 / 孤竹, confidence=0.85
- dynasty: 주 / 周,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기자조선) 숭인전
- 기사 ID:
22079_020_002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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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6T00:41:07.65162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26
한글 번역
조선에 숭인전을 두었으니[주:자세한 내용은 여러 사당(祭祠)의 항에 보인다]
독음
조선에 숭인전[주:상제사]을 세웠다.
의미
기자조선 시대에 숭인전을 건립하였다는 기사로, 상세한 제사 제도는 여러 사당(祠堂) 항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주석이 붙어 있다. 삼국사기 등에서도 숭인전은 기자가 세운 도읍의 정전(正殿) 또는 제전(祭殿)으로 해석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숭인전 / 崇仁殿, confidence=0.95
- term: 상제사 / 詳諸祠,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상제사의 구체적所指(제사 제도의 범위와 위치)가 불분명
(기자조선) 광녕한시료동료서이군지성…
- 기사 ID:
22079_020_002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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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6:34:28.35235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29
한글 번역
광녕(지역)은 한나라 때 요동군과 요서군에 속하던 땅이다. 도시 북쪽으로 5리 거리에 기자의 우물이 있고, 옆에 기자의 사당이 있다. 기자가 호건을 쓴 조각상이 있는데, 가정 연간에 병화로 인해 타버렸다. 월정만록에 보인다.
독음
광녕 주 한시 요동 요서 이군 지 성북 오리 유기자정 방유기자묘 유기자대호관소상 가정간 위병화 소소 연 월정만록
의미
한자 조선의 기자가 광녕 지역에도 관련 유적을 남겼다는 전설을 수록한 기사로, 광녕 성의 북쪽 5리 지점에 기자의 우물과 사당이 있으며, 호건을 쓴 기자 조각상이 있었다가 명대 가정(嘉靖) 연간에 전투의 불에 소실되었음을 전한다. 月汀漫錄에서 발췌한 기록이다.
원문
○廣寧[주:漢時遼東遼西二郡地]城北五里有箕子井傍有箕子廟有箕子戴冔冠塑像嘉靖間爲兵火所燒[주:月汀漫錄]
엔티티 후보
- place: 광녕 / 廣寧, confidence=0.95
- place: 요동 / 遼東, confidence=0.95
- place: 요서 / 遼西, confidence=0.95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0.95
- place: 기자정 / 箕子井, confidence=0.9
- place: 기자묘 / 箕子廟, confidence=0.9
- work: 월정만록 / 月汀漫錄, confidence=0.85
- term: 호건 / 冔冠, confidence=0.8
- period: 가정 / 嘉靖,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冔冠(호건)은 고대 제사용 관으로 그 시대 조각상의 복식이 제사 관복인 점이 확인되지만, 조각상의 구체적 형태에 대해서는 문헌만으로 판단이 어렵다.
(기자조선) 마한
- 기사 ID:
22079_020_003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3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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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6T00:41:35.80112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30
한글 번역
마한 말기에 약한 후손 세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친이라 하고, 그 후손이 한씨가 되었다. 하나는 평이라 하고 기씨가 되었다. 하나는 양이라 하고 팔용강 오석산에居住하였으며, 그 후손이 선우씨가 되었다. 윤서에 이르기를, ‘선우씨는 성이 자(子)이고, 주(周)가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 지자(支子)인 중(仲)이 于(於)에采邑을 받았으므로 因氏하여 선우라 하였으니, 강목(綱目)에서 기자封於朝鮮이라고 하였다.’ 그 아들이 于에采邑을 받았으므로 성을 선우라 하였다. 조맹축(趙孟頫)이 선우서(鮮于樞)에게 지은 시에 이르기를, ‘기자(箕子)의 후손 중에 수염이 많은老者가 많다’고 하였으니, 선우가 곧 기자의 후임이 된 것이 이미 밝지 아니하겠는가. 홍무 연간에 선우경(鮮于京)이 중령별장(中嶺別將)이 되었다. 그 7대손 실(寔)이 태전(泰泉)에서 와서 전(殿) 옆에居住하니, 마침내 실을 기자의 후손으로 삼아 전호를 숭인(崇仁)이라 하고, 실을 전감(殿監)에 임명하였다.子孫이 代代 이 벼슬을 받았다.
독음
마한말 유 산손 삼성왈 친기후위 한씨왈 평위 기씨왈 양팔용강 오석산기후위 선우씨윤서왈 선우자성 주봉 기자 於조선지자 중식채 於인씨 유 선우강목칭 기자봉 於조선기자 식채 於인성 선우조맹축 증 선우서시왈기자지후 다수완옹선우위 위기자후 불기명矣호洪武간 유 선우경자 위 중령별강기칠대손 실자 태전래거 전측수이 실위 기자후 갈전호왈 숭인배 실위 전감자손 세수 云
의미
마한 말기의 세 후손 친·평·양이 각각 한씨·기씨·선우씨의 조상이 되었음을 기술한다. 선우씨는 주대 기자가 조선에 봉해진 후 그 지자의 후손이 于에서采邑을 받은 데서 유래한다는 계보와, 조맹축의 시를 인용하여 기자의 후손임을 확인한다. 홍무 연간 선우경 이후 7대손 실이 태전에서 왕전 옆으로 옮겨 기자의 후손으로 인정받아 숭인이라는 전호를 받고 전감 벼슬을 대대로世襲하였다는 내용이다.
원문
○馬韓末有孱孫三人曰親其後爲韓氏曰平爲奇氏曰諒八龍岡烏石山其後爲鮮于氏䪨書曰鮮于子姓周封箕子于朝鮮支子仲食采於于因氏以鮮于綱目稱箕子封於朝鮮其子食采於于因姓鮮于趙孟頫贈鮮于樞詩曰箕子之後多髥翁鮮于之爲箕子後不旣明矣乎洪武間有鮮于京者爲中嶺別將其七代孫寔自泰泉來居殿側遂以寔爲箕子後揭殿號曰崇仁拜寔爲殿監子孫世受云[주:月沙集崇仁殿碑]
엔티티 후보
- place: 마한 / 馬韓, confidence=1.0
- person: 산손 삼성(친·평·양) / 孱孫三人, confidence=0.95
- person: 친 / 親, confidence=0.95
- person: 평 / 平, confidence=0.95
- person: 양 / 諒, confidence=0.95
- place: 팔용강 / 八龍岡, confidence=0.9
- place: 오석산 / 烏石山, confidence=0.9
- family: 한씨 / 韓氏, confidence=1.0
- family: 기씨 / 奇氏, confidence=1.0
- family: 선우씨 / 鮮于氏, confidence=1.0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1.0
- place: 조선 / 朝鮮, confidence=1.0
- person: 지자 중 / 支子仲, confidence=0.9
- person: 조맹축 / 趙孟頫, confidence=1.0
- person: 선우서 / 鮮于樞, confidence=1.0
- person: 선우경 / 鮮于京, confidence=0.95
- office: 중령별장 / 中嶺別將, confidence=0.95
- person: 실 / 寔, confidence=0.95
- place: 태전 / 泰泉, confidence=0.85
- office: 전감 / 殿監, confidence=0.95
- title: 숭인 / 崇仁, confidence=0.95
- work: 월사집 / 月沙集, confidence=1.0
- work: 숭인전비 / 崇仁殿碑, confidence=1.0
- term: 산손 / 孱孫, confidence=0.9
- term: 식채 / 食采, confidence=0.9
- term: 지자 / 支子,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孱孫(산손)의 구체적 의미와 맥락
- 食采於于(식채 於於)의 地名 확인
- 八龍岡과 烏石山의 정확한 위치
(기자조선) 평양대동강
- 기사 ID:
22079_020_003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3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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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49:21.52245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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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평양 대동강의 동쪽 기슭에 길게 자란 느릅나무 숲이 길의 양쪽을 따라 가로로 십 리에 걸쳐 뻗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기자가 백성들로 하여금 식량을 비축하여 흉년을 구제하기 위해 나무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독음
평양 대동강 동안에 장유림 영로 좌우 횡괵십리 세전자기자 사민 식목 이비 구황
의미
평양 대동강 동쪽 기슭에 넓게 펼쳐진 느릅나무 숲에 관한 전설적 기록이다. 고조선의 도읍지였던 평양에 기자가 백성들의 흉년 대비를 위해 길 양쪽으로 느릅나무를 심게 했다는 이야기가 세대 전해져 온다고 한다. 이는 기자조선의 도학적 풍속과 식량 비축 체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원문
○平壤大同江東岸有長楡林擁路左右橫亘十里世傳箕子使民種植以備救荒
엔티티 후보
- place: 평양 대동강 / 平壤大同江, confidence=0.95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0.95
- term: 구황 / 救荒,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장유(長楡) - 느릅나무로 해석하나 열두 종류의 유중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가 불확실함
- 擁路左右 - 나무가 길 양쪽을 감싸 안았는지 아니면 길을 가로막았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짐
위만조선
- 기사 ID:
22079_020_003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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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위만의 조선
독음
위만조선
의미
위만(姓은 위, 이름은 만)이 건국한 고대 한국 국가. 한(漢) 무제 때 흉노로 도망친 한나라 장수 위만이 한 왕조의 월림(月淋) 지역에 자리잡아 건국하였다. 기원전 194년경에 건국되어 기원전 108년 한 무제의 낙랑·임술 원정으로 멸망할 때까지 약 86년간 존속하였다.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삼국사기에선 백제 시조 온조의 선조로 기록되어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조선 / 朝鮮, confidence=0.98
- person: 위만 / 衛滿, confidence=0.97
- place: 왕험(월림) / 王險, confidence=0.75
- place: 한사군 / 漢四郡,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월림(王險)의 정확한 위치는 학계에서仍未定論이다. 기원전 194년 건국 연도는 삼국사기 기사에 따른 것으로, 원본한서와 한서 등 한문학史料와의 연도 차이가 존재한다.
(위만조선) 위만
- 기사 ID:
22079_020_003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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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위만(衛滿)이 한(漢) 고조(高祖)의 병오년(丙午年)에 일어나 문제(武帝)의 계유년(癸酉年)에 이르기까지 3대를 전하고 모두 88년이다.
독음
위만기 한고조 병오 지무제 계유传来三世 범팔십팔년
의미
위만조선의 역사 기록. 한 고조의 병오년(기원전 195년경)에 위만이 한으로부터 조선의 지위를 받아 건국하고, 한 무제의 계유년(기원전 108년)까지 3대에 걸쳐 88년간 지속되었다가 멸망했음을 나타낸다. 한사군 설치로 위만조선이 멸망하면서 한의 직접 통치 지역이 되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위만 / 衛滿, confidence=1.0
- person: 한 고조 / 漢高祖, confidence=1.0
- person: 무제 / 武帝, confidence=1.0
- place: 조선 / 朝鮮, confidence=1.0
- term: 3대 / 三世, confidence=1.0
- term: 88년 / 八十八年, confidence=1.0
- term: 병오(60간지 37번째) / 丙午, confidence=1.0
- term: 계유(60간지 10번째) / 癸酉, confidence=1.0
예국
- 기사 ID:
22079_020_003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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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예국은 예(濊)를 일작(一作)으로獩歲(위세)라고도 하고, 또한蕊國(예국)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한鐵國(철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곧 지금의江陵府(강릉부)이다. 지금江陵府(강릉부) 동쪽에 예(濊) 때 쌓은 고성(古城)의 유적이 있다. 新羅(신라) 南解王(남해왕) 때 溟州(명주)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인영(印)을 얻어 바쳤다. 溟州(명주)는 곧 江陵(강릉)이다. 備東暆는 예국(濊國)의 도성이다. [주: 暆는 발음이 이(移)이다, 三國史(三국사)에 나온다]
독음
예국 예일작(一作) 위세(獩歲)又名(명의) 예국(蕊國)又名(명의) 철국(鐵國)즉(즉)금강릉부(江陵府) 금강릉부(江陵府)동(東)에 예(濊)시(時)소축(所築) 고성(古城) 유적(遺址) 유(有)라 신라(新羅) 남해왕(南解王)시(時) 명주(溟州)인(人) 밭(田)갈(耕)得了(得) 예왕(濊王)인영(印)헌(獻)지(之)라 명주(溟州)즉(卽) 강릉(江陵)이니 비동(備東)暆(暆)예국(濊國)도(都) [주:暆음(音)이(移) 삼국사(三國史)]
의미
예국은 고대 동북아시아의 부족 국가로, 현대의 강릉 지역에 해당한다. 한자 표기가 여러 형태로 전해지는데,獩歲·蕊國·鐵國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현재 강릉시 동쪽에는 예국 시대의 고성 유적이 남아 있으며, 신라 남해왕(4세기경) 시절 명주(강릉) 사람이 농경 중 예왕의 직인을 발견하여 바친 기록이 있다.備東暆는 예국의 도성으로, 예는 발음이 이(移)이다.
원문
濊國
濊一作獩歲又名蘂國又名鐵國卽今江陵府
今江陵府東有濊時所築古城遺址新羅南解王時溟州人耕田得濊王印獻之溟州卽江陵
備東暆濊國都[주:暆音移三國史]
엔티티 후보
- place: 예국 / 濊國, confidence=0.95
- place: 강릉부 / 江陵府, confidence=0.95
- place: 명주 / 溟州, confidence=0.95
- place: 고성 유적 / 古城遺址, confidence=0.9
- person: 남해왕 / 南解王, confidence=0.95
- person: 명주인 / 溟州人, confidence=0.85
- work: 삼국사 / 三國史, confidence=0.95
- term: 비동예 / 備東暆,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獩歲(위세)
- 蕊國(예국)
- 備東暆의 비동(備東) 어미와暆의 구체적 위치
(예국) 한무제원삭원년계축
- 기사 ID:
22079_020_003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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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예국의) 한무제 원삭 원년 계축년에 예국의 군주 남려 등이 조선에 반기를 들고 요동으로 가서 내속하면서 호수 28만 명이 투항하였다.朝廷는 그 땅을沧해군으로 만들었으나 3년 만에 그 군을 폐지하였다.[주:한서]
독음
비 한무제 원삭원년 계축 예군 남려등 반조선 제기 요동 내부 구 이십팔만인 강 이기지위 창해군 삼년 폐군[주:한서]
의미
한무제 원삭 원년(기원전 126년)에 예국 군주 남려 등이 조선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요동으로 나아가 한나라에 투항한 사건이다. 호수 28만 명이 함께 투항하여 그 지역에 창해군이 설치되었으나, 원삭 3년(기원전 124년)에 폐지되었다. 한무제 치세에 동쪽 이웃 민족의 내속을 받아들이고 행정구역으로 편입하려는 시도와 그 한계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備○漢武帝元朔元年癸丑濊君南閭等叛朝鮮詣遼東內附口二十八萬人降以其地爲滄海郡三年罷郡[주:漢書]
엔티티 후보
- person: 한무제 / 漢武帝, confidence=1.0
- person: 남려 / 南閭, confidence=1.0
- place: 예국 / 濊國, confidence=1.0
- place: 조선 / 朝鮮, confidence=1.0
- place: 요동 / 遼東, confidence=1.0
- place: 창해군 / 滄海郡, confidence=0.9
- term: 원삭 / 元朔, confidence=1.0
- term: 계축 / 癸丑, confidence=1.0
- work: 한서 / 漢書,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叛조선(조선에 반기를 든 것인지, 조선에서 배신한 것인지)
- 內附(내속·굴복으로 해석하나 정확한 의미 불분명)
- 備(본 기사의 체재나 분류를 나타내는 표제어로 추정)
(예국) 신라북계명주고예국
- 기사 ID:
22079_020_003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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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라의 북쪽 경계인 명주(溟州)에 있던 고대 예국
독음
신라 북계 명주 고예국
의미
賈耽의 『고금군국지』에 나오는 기사로, 신라 북부 변방의 명주(현재 전북 김제 일带)에 고대 예족 국가인古濊國이 있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예국은 삼국 이전 한강 이북 지역에 뿌리를 둔部族 국가로, 후에 그 지역이 신라 영토에 편입되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신라 / 新羅, confidence=1.0
- place: 명주 / 溟州, confidence=1.0
- place: 고예국 / 古濊國, confidence=1.0
- work: 고금군국지 / 古今郡國志, confidence=0.9
- person: 가담 / 賈耽, confidence=1.0
(예국) 건무중봉기거수위현후축
- 기사 ID:
22079_020_003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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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건무 연간에 그 추장을 현후로 봉하고, 매해 명절마다 조공으로 막포와 과하마 같은 것을 바쳤다. 그 풍속은 고구려와 많이 같으나, 백성 성품이 우직하고 탐욕이 적으며 수치심이 있다. 옷차림은 제도가 다르며, 동성끼리 결혼하지 않고, 진주와 옥을 보물로 여기지 않는다. 마을을 침범한 자에게는 생로와 가축을 보상으로 내놓게 한다. 고구려는 여러 번 군사들을 보내 한의 요동을 침공하였고, 또 한의 군사들을 따라 남쪽의 나제를 침공하였다.
독음
건무중 봉기수위 현후 세시 조공 막포 과하마지속 기속 파동 계산이 문려 지위 어졸 소금치 포의제 이혼 동성 부보 주옥 유범범 낙락자 생구우마 고구려 누발기병 침한 요동 우종한병 남침 나제연
의미
후한 광무제(건무) 연간에 위(濊) 나라 추장이 관직을 받고 조공을 바친 기록이다. 위와 고구려의 풍속이 유사하나 독립된 정치체를 유지하였음을 보여준다. 고구려의 한(漢) 요동 및 남진 활동이 확인되는 자료이다.
원문
○建武中封其渠帥爲縣侯歲時朝貢貊布果下馬之屬其俗頗同句麗而人性愚愨少嗜慾有廉恥衣服異制不婚同姓不寶珠玉有侵犯邑落者責出生口牛馬高句麗累發其兵侵漢遼東又從漢兵南侵羅濟焉[주:同文廣考]
엔티티 후보
- period: 건무 연간(후한 광무제 연간) / 建武中, confidence=0.95
- place: 위국(위 부족 연합 국가) / 濊國, confidence=0.92
- office: 현후(관직 호칭) / 縣侯, confidence=0.9
- place: 요동 / 遼東, confidence=0.98
- place: 나제(남방 국가) / 羅濟, confidence=0.85
- place: 고구려 / 高句麗, confidence=0.98
- term: 과하마(작은身材의 준마) / 果下馬, confidence=0.88
- term: 막포(두族 직물) / 貊布, confidence=0.82
- work: 동문광고 / 同文廣考,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貊布(두族지역 특산 직물의 정확한 명칭)
- 果下馬(과하마의 정확한 품종)
- 渠帥(추장 호칭의 구체적 지위)
(예국) 상전부여왕인문왈예왕지인
- 기사 ID:
22079_020_004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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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49:58.9143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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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전하여지는 바에 따르면 부여왕의 관인 문서에 이르기를 ‘예왕지인(왜왕의 인)’이라 하였다. 또 부여의 장로가 스스로를 ‘망인’이라 일컬었으니, 이는 과연 부여 남려의 남은 씨인가?『동국고기』에 이르기를, 부여국은 현도(玄菟)의 북쪽에 있고, 본래 예국(濊國)이라 한다. 그 인문(印章 문구)은 ‘예왕지인’이라 한다. 나라에 고성(古城)이 있어 예성(濊城)이라 한다. 남려는 부여의 군주이니 조선을 관할하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음
상전 부여왕 인문왈 예왕지인,又 부여장로 자칭 망인,기 부여 남려 유종耶。동국고기 부여국 재 현도 북 고예국,기 인문왈 예왕지인,국유 고성왈 예성,남려乃 부여군而非 재於 조선계내자
의미
고대 『동국고기』의 기록으로, 부여국北方 현도 이북에 본래 예국(濊國)이 있었고, 부여왕의 관인 문구가 ‘예왕지인’이었다는 것, 또 부여 장로들이 스스로를 ‘망인’이라 불렀다는 것을 전한다. 남려는 부여의 군주로 조선의 영역 밖에 있다고 본다. 이는 왜(倭)와 부여의 관계, 그리고 예국·조선·부여의 지리적 범위를 논의하는 사료이다.
원문
○相傳扶餘王印文曰濊王之印又扶餘長老自稱亡人豈扶餘南閭遺種耶[주:同文廣考]
東國古記扶餘國在玄菟北古濊國其印文曰濊王之印國有古城曰濊城南閭乃扶餘君而非在於朝鮮界內者也
엔티티 후보
- place: 예국 / 濊國, confidence=0.95
- place: 부여국 / 扶餘國, confidence=0.95
- place: 현도 / 玄菟, confidence=0.9
- place: 예성 / 濊城, confidence=0.85
- work: 동국고기 / 東國古記, confidence=0.95
- person: 남려 / 南閭, confidence=0.9
- term: 예왕지인 / 濊王之印, confidence=0.9
- term: 망인 / 亡人,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亡人(망인) - 부여 장로가 자칭한 호칭의 구체적 의미가 불확실하며, 종래 ‘망한 사람’으로 읽으나 고대部落首领의 칭호일 가능성도 있음
- 南閭遺種(남려유종) - 남려가 부여 남려의 후손인지 여부가史学적으로 논쟁적
맥국
- 기사 ID:
22079_020_004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4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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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50:23.5564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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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맥국은 현재 춘천부 북쪽 13리 되는 곳, 소양강 북쪽에 도읍을 두었으나 그 시작과 끝을考证할 수 없다. 신라 선덕왕 6년(정유년)에 우수주를 두었다.
독음
맥국
맥국도재금춘천부북십삼리소양강북시말불가고
신라선덕왕육년정유치우수주
의미
맥국은 고대 부여계 부족 국가인맥(貊) 계열의 국가로, 현 강원도 춘천 북쪽 소양강 북안에 도읍을 두었다. 국가의 창립과 멸망 등 구체적 역사는 알 수 없으며, 신라 선덕왕 6년(632년경)에 해당 지역에 우두주(牛首州)를 설치하여 편입했음을 기록한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맥국성도 이 지역과 관련지을 수 있다.
원문
貊國
貊國都在今春川府北十三里昭陽江北始末不可攷
新羅善德王六年丁酉置牛首州
엔티티 후보
- place: 맥국 / 貊國, confidence=0.98
- place: 춘천부 / 春川府, confidence=0.97
- place: 소양강 / 昭陽江, confidence=0.96
- place: 우수주 / 牛首州, confidence=0.92
- person: 선덕왕 / 善德王, confidence=0.97
- term: 도읍 / 都,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丁酉는 선덕왕 6년이公元 632년인지 확인 필요(재위 기간 632~647년).
- 우수주의 행정 성격(九州체계의 주인지 관역 주인지)
(맥국) 고려사지리지
- 기사 ID:
22079_020_004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4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04T04:51:01.07160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42
한글 번역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을 보면, 춘주는 본래 맥국이다. 춘주는 지금의 춘천이다. 상서에 무성편에 이르기를, 화하와 만맥이无不遵奉하였다. 맹자에 이르기를, ‘대갈과 소갈’. 맥의 음은 맥이다. 북방의 이적 나라이다. 북방은 땅이 차서 오곡이 나지 않고, 오직 기장이 자라며 일찍 익는다. 무왕의 시대에 기자가 봉해지지 않아 조선이 이미 있었을 때 이미 맥국이 있었다. 맹자의 시대에 기자의 자손이 당연히 조선을 지켜야 했는데, 어찌 그 사이에 맥국이 있을 수 있겠는가. 고려의 지리지에서 또 이르기를,경찰은 본래 훼국이다. 경찰은 지금의 강릉부이다. 운회(뤼스위)에 이르기를, ‘濊貊은 동예의 나라 이름이다’고 하였다. 한무제기에 훼군 남려의 주석에 이르기를, ‘삼한의 북쪽, 고구려와 옥저의 남쪽, 동쪽으로 대해에 이른다’고 하였다. 의심을 품건대, 훼와 맥은 본래 하나의 나라인데 서로 이름을 바꾼 것 같다. 하물며 춘춘의 강릉 사이가 멀지 않은데, 춘춘은 영서, 강릉은 영동에 있으며, 지리지에 고려 시대에 춘주는 교주도에 속하고, 강릉은 동계에 속한다고 하였다. 화주와 경찰을 나누어朔方이라 하였으니, 경찰을朔方이라 하는 것은 더욱 의심스럽다. [필원잡기] 화식전에 이르기를, 동쪽으로 훼와 맥, 조선, 진번의 이윤을 관통한다고 하였다. 훼와 맥은 조선과 경계를 맞대고 있으나 나라는 다르다. 한대에 이르러서도 역시 그러하였으니, 맹자의 시대에 대해 무슨 의심이 있겠는가. 훼와 맥이 두 나라라는 것도 크게 다툴 필요가 없다.
독음
고려사지지왈 춘주본 맥국춘주위금지 춘천商서 무성왈 화하만맥 망불솔비맹자 대갈소갈맥음맥 북방이적지지北方地寒 五穀不生 惟黍生之蚤熟當 武王之時箕子未封 朝鮮而已有貊國맹자之时箕子子孙当守朝鲜 安有貊国间于其间哉高麗地志又曰溟州본 훼국溟州즉금지 강릉부韻會曰濊貊 동예국명한무기 훼군 남려주왈 재삼지북 고구려沃沮之南 동궁대해 절의 훼맥본위 일국이호칭지야况春之距江陵不远 春在岭西 江在岭东地志亦谓 고려시 춘속 교주도 江屬 東界 分和州溟州朔方则以溟州朔方尤为可疑也[筆苑雜記]화식전왈 동관 훼맥조선진번지리 훼맥과 조선계연而国异至漢시亦然有何疑於맹자之时乎 훼맥之이二국亦不足多辨
의미
춘주가 본래 맥국이라는 점, 그리고 경찰이 훼국이라는 점을 짚되, 춘주의 위치를 춘천으로, 경찰의 위치를 강릉부로 비정한다. 핵심 논쟁은 두 가지다. 첫째, 무왕 시대에 이미 맥국이 있었는데 기자가 조선에 봉해진 후에도 맥국이 남아 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 두 번째로, 훼와 맥이 하나의 나라를 지칭하는 별칭인지, 아니면 별개의 두 나라인지를 다툰다. 作者는 商書·孟子·漢書 등의 고전을 인용하여 훼와 맥이 두 나라임이疑義가 없음을 논증하고, 고려 시대의 행정 구분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본다.
원문
○高麗史地理志曰春州本貊國春州爲今之春川商書武成曰華夏蠻貊罔不率俾孟子大貉小貉貉音貊北方夷狄之國北方地寒五穀不生惟黍生之蚤熟當武王之時箕子未封朝鮮而已有貊國孟子之時箕子子孫當守朝鮮安有貊國間於其間哉高麗地志又曰溟州本濊國溟州卽今之江陵府韻會曰濊貊東夷國名漢武紀濊君南閭註曰在辰韓之北高句麗沃沮之南東窮大海竊疑濊貊本爲一國而互稱之也況春之距江陵不遠春在嶺西江在嶺東地志亦謂高麗時春屬交州道江屬東界分和州溟州爲朔方則以溟州爲朔方尤爲可疑也[주:筆苑雜記]
貨殖傳曰東綰穢貊朝鮮眞番之利穢貊與朝鮮界連而國异至漢時亦然有何疑於孟子之時乎濊貊之爲二國亦不足多辨
엔티티 후보
- place: 춘주 / 春州, confidence=0.9
- place: 맥국 / 貊國, confidence=0.9
- place: 경찰(미천) / 溟州, confidence=0.9
- place: 훼국 / 濊國, confidence=0.95
- place: 조선 / 朝鲜, confidence=0.95
- place: 강릉부 / 江陵府, confidence=0.95
- place: 교주도 / 交州道, confidence=0.9
- term: 화하만맥 / 華夏蠻貊, confidence=0.95
- term: 삭방 / 朔方, confidence=0.85
- work: 필원잡기 / 筆苑雜記, confidence=0.95
- work: 상서 / 商書, confidence=0.9
- work: 운회 / 韻會, confidence=0.85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1.0
- term: 옥저 / 沃沮,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과거 인용 주석 [筆苑雜記]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불확실
- 고려 시대 행정 구분상 ‘朔方’이 실제로 화주·경찰 지역을 가리키는지 문헌 보충 필요
- 춘주의 위치가 춘천으로 비정되어 있으나, 춘천의 古한문 지명과 대조 검증 필요
동옥저
- 기사 ID:
22079_020_004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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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동옥저[주:북옥저를 붙여넣는다] 동옥저는 고구려의 합마대산 이남에 자리하여 동쪽으로 바다에 임하고 있다[주:동문과 광고에 따르면 동북으로 좁고 남북으로 길다]. 그 지형은 동서로 좁고 남북으로 길어 대략 사방 천 리쯤 된다. 북으로는 입류와 부여, 남으로는 예맥에 닿아 있다. 호수는 약 오천 가호쯤 된다. 큰 군장이 없으며 마을마다 각각 추수를 두는데, 그 언어는 꽤 고구려와 같다[주:후한서와 위서에 보인다].
독음
동옥저[주:북옥저부] 비동옥저재지고구려개음합마대산지동동빈대해이거[주:동문광고동북협남북장]기지형동서협남북장가절방천리북여입류부여남여혜맥접호)가오천무대군장읍락각유추수기어어반동구려[주:후한서위서]
의미
동옥저는 고구려 남쪽, 바다에 접한 동쪽 변방 민족 집단이다. 동서로 좁고南北로 긴 지형에 약 오천 가호 규모로 살았으며, 중앙 집권 통치자가 아닌 각 마을 추수가 자율적으로 다스렸다. 언어는 고구려어와相近하여 동일 계열임을 보여준다. 동아시아 다민족 시대 동쪽 변방의 모습을反映한다.
원문
東沃沮[주:北沃沮附]
備東沃沮在高句麗蓋音合馬大山之東東濱大海而居[주:同文廣考東北狹南北長]其地形東西狹南北長可折方千里北與挹婁扶餘南與濊貊接戶可五千無大君長邑落各有酋帥其言語頗同句麗[주:後漢魏書]
엔티티 후보
- place: 동옥저 / 東沃沮, confidence=0.95
- place: 고구려 / 高句麗, confidence=0.95
- place: 합마대산 / 合馬大山, confidence=0.8
- place: 입류 / 挹婁, confidence=0.9
- place: 부여 / 扶餘, confidence=0.95
- place: 예맥 / 濊貊, confidence=0.9
- term: 추수 / 酋帥, confidence=0.85
- place: 북옥저 / 北沃沮, confidence=0.9
- work: 후한서 / 後漢書, confidence=0.95
- work: 위서 / 魏書, confidence=0.9
- work: 동문광고 / 東文廣考, confidence=0.75
- term: 가호 / 戶,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合馬大山의 위치特定, 合馬合音 여부, 동문광고의 정확한 成書 시기와 作者
(동옥저) 동옥저금함경도지
- 기사 ID:
22079_020_004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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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동옥저는 지금의 함경도 지역이다.
독음
동옥저 금함경도지
의미
동옥저(동쪽 오욕)는 고대 부여계 국가의 하나로, 현대 행정구역상咸鏡道(함경도) 지역에 해당한다는 지리 대비 기록이다. 東史會綱(동사회강) 인용 주기가 붙어 있어 조선 후기 역사 편찬 자료에서 뽑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동옥저 / 東沃沮, confidence=0.95
- place: 함경도 / 咸鏡道, confidence=0.97
- place: 옥저 / 沃沮, confidence=0.92
- term: 동사회강 / 東史會綱,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東沃沮의 고대 발음과 오욕(沃沮) 어원
- 동사회강 인용문의 정확도
(동옥저) 지고구려태조왕사년병진위소멸
- 기사 ID:
22079_020_004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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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동옥저가 고구려 태조왕 즉위 4년인 병진년에 멸망당했다
독음
동옥저가 고구려 태조왕 사년 병진위에 소멸되었다
의미
동옥저가 고구려 태조왕 재위 4년(병진년)에 멸족되었음을记载한 기사이다. 三國史記 등에 따르면 高句麗 太祖大王은 재위 4년(西曆 56년)으로, 동옥저가 이 해에 고구려에 의해 정복되었음을 뜻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동옥저 / 東沃沮, confidence=1.0
- place: 고구려 / 高句麗, confidence=1.0
- person: 고구려 태조왕 / 太祖王, confidence=1.0
- term: 사년 / 四年, confidence=1.0
- term: 병진 / 丙辰, confidence=1.0
삼한
- 기사 ID:
22079_020_005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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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삼한
삼조선 이후에 동이(동쪽 오랑캐)는 드디어 군주가 없어지고, 그 부족들이 분산되어 삼한이라는 호칭이 생겼다. 이를 마한·진한·변한이라 한다.
이를 살펴보면, 신라의 최치원이 이르기를, ‘동해 밖에는 세 나라가 있으니 마·진·변 삼한이 이것이다. 마한은 지금의 고구려이고, 진한은 지금의 신라국이며, 변한은 지금의 백제국이다.’ 치원은 삼한에서 멀리 있지 않았으니 능히 그 지역을 상세히 알 수 있을 것인데, 그런데 위서가 이르기를 ‘마한은 서쪽에 있고, 진한은 동쪽에 있으며, 변한은 진한과 마한 사이에 놓여 있다’ 하니, ‘고대以来 그 지역을 상세히 밝힌 자가 어딨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삼한 시대에는 문헌 기록이 없어考증할 수 없고, 연대와 사건이 오직 위서에서 대략 그 군국의 풍속을 말했을 뿐이므로, 이를標準으로 삼는다.
제 한(諸韓)의 땅은 모두 대방군 남쪽에 있으며, 동서로 바다에接하며, 남쪽은 왜와 인접하니 방위가 사천 리나 된다. 세 종족의夷가 있으니 마한·진한·변한이라 한다. 마한은 기준의 옛 나라이고, 진한은 대방군의 진방에 있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며, 혹은 이르기를 ‘진나라 시대에 도망한 사람들이居住하였다’고 하므로 역시 진한이라 부른다. 대략 마한은 서쪽에, 진한은 동쪽에 있으며, 변한은 두 한 사이에 끼어 있고 진한과섞여 거주한다.古代以来 그 지역을 알지 못한다.
독음
삼한
삼조선이후 동이는 드디어 군장 없으니 그 부족이 분산되어 삼한의 호가 있으니 마한 · 진한 · 변한이라 일컬으며
안신라 최치원 운하기동해 이외에 삼국이 있으니 마 · 진 · 변 삼한이 이것이다 마한은 지금 고구려이고 진한은 지금 신라국이며 변한은 지금 백제국이다 치원은 삼한을 떠나지 않았으니 능히 그 구역을 상세히 알 것이건만 위서가 가로되 마한은 서에 있고 진한은 동에 있으며 변한은 진한과 마한 사이에 끼어 있으니 고대以来 미詳其區域이라 하는 자가 어이 있으리오 삼한의 때에 문적이 없어考할 것이 없고 그 年代 事蹟이 오직 위서가 대략 그 군국 풍속을 말하였으므로 이로써 이를標準으로 삼는다
제 한 지는 다 대방군 남에 있으니 동서로 바다에距하며 남은倭와 接하니 방 가 사천리가 되며 세 종의夷가 있으니 마한 · 진한 · 변한이라 이름한다 마한은 기준의 故國이며 진한은 대방의 진방에 있으니 그러므로 名칭한 바이며 또는 가로되 진나라 때 도망한 사람들이居住하였으므로 오히려 진한이라 이름한다 대략 마한은 서에 있고 진한은 동에 있으니 그러나 변한은 두 한 사이에 끼어 있으며 진한과잡거(혼거)하니 고대以来 그 구역을 알지 못한다
의미
이 글은 삼한의 지리와 역사적 배경을 정리한 기사로, 신라의 학자 최치원의 견해를 인용하면서도 이를 위서(위서동명전) 등의 기존 기록과 대조한다. 삼조선 이후 동이 지역에 군주가 사라지고 부족이 분산되어 마한·진한·변한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삼국 시원의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삼한이 대방군 남쪽 사천 리에 분포하며 왜와 접했다는 지리적 기술과, 최치원이 삼한을 각각 고구려·신라·백제와 대응시킨 해석은 후대 한국史学에서 중요한 근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삼한 시대에는 문헌이 부족하여 실제 지역 구분은 불확실하다는 점도 함께 논한다.
원문
三韓
三朝鮮以後東夷遂無君長其部落分散有三韓之號曰馬韓辰韓弁韓
按新羅崔致遠云東海之外有三國馬辰弁三韓是也馬韓今高句麗辰韓今新羅國弁韓今百濟國致遠去三韓不遠必能詳知其區域而魏書曰馬韓在西辰韓在東弁韓介于辰馬之間自古未詳其區域云者何哉三韓之時無文籍可考其年代事蹟獨魏書略言其郡國風俗故以此爲準[주:同文廣考]
諸韓地皆在帶方郡南東西距海南與倭接方可四千里有三種夷曰馬韓辰韓弁韓馬韓者箕準故國辰韓在帶方之辰方故名之或曰秦時亡人所居故亦曰秦韓蓋馬韓在西辰韓在東而弁韓介于兩韓之間與辰韓雜處自古莫知其區域[주:魏書]
엔티티 후보
- place: 삼한 / 三韓, confidence=0.95
- place: 마한 / 馬韓, confidence=0.95
- place: 진한 / 辰韓, confidence=0.95
- place: 변한 / 弁韓, confidence=0.95
- place: 삼조선 / 三朝鲜, confidence=0.9
- place: 대방군 / 帶方郡, confidence=0.95
- place: 왜 / 倭, confidence=0.9
- person: 최치원 / 崔致遠, confidence=0.95
- person: 기준 / 箕準, confidence=0.85
- place: 고구려 / 高句麗, confidence=0.95
- place: 신라국 / 新羅國, confidence=0.95
- place: 백제국 / 百濟國, confidence=0.95
- work: 위서 / 魏書, confidence=0.95
- term: 동이 / 東夷,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신라) 파사왕
- 기사 ID:
22079_020_006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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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파사왕(유리왕의 둘째 아들이거나, 유리왕의 아우 내로의 아들이라 전하기도 한다)이 건초(建初) 경진년(374년)에 즉위하여 안제(安帝) 영초(永初) 6년 임자년(418년)에 죽었다. 재위 33년이다. 임인년에음을지벌(音汁伐)국을 쳐서 격파하고, 속직(悉直)·압독(押督) 두 나라가 항복하여왔다. 무술년에 비지만다(倂比只多)·풀팔(草八) 두 나라를 합쳐 모두 세 나라를 공격했다. 월성(月城)을 쌓고 옮겨 거처하였다.
독음
박파사왕[유리왕 둘째 아들 또는 유리왕 아우 내로의 아들이라 함] 건초 경진년에 즉위, 안제 영초 6년 임자년에 죽었다. 재위 33년. 임인년에음을지벌국을 공격하여속직과 압독 두 나라가 항복왔다. 무술년에 비지만다벌 풀팔 삼국을 공격했다. 월성을 쌓고 옮겨 거처하였다.
의미
신라 25대 왕 파사왕은 374년 즉위하여 418년까지 약 33년간 재위했다. 외교적 확장으로 주변 소국들을 차례로 복속시켰으며, 월성을 축조하여 왕도를 옮기는 등 국가 기틀을 다졌다. 유리왕의 아들이거나 그 아우 내로의 아들로 추정된다.
원문
朴婆娑王[주:儒理王第二子或云儒理王弟奈老之子]建初庚辰立安帝永初六年壬子薨在位三十三年
壬寅擊降音汁伐國悉直押督二國來降戊申擊倂比只多伐草八三國○築月城移居
엔티티 후보
- person: 박파사왕 / 朴婆娑王, confidence=1.0
- person: 유리왕 / 儒理王, confidence=1.0
- person: 내로 / 奈老, confidence=0.9
- place: 음을지벌국 / 音汁伐國, confidence=0.8
- place: 속직 / 悉直, confidence=0.8
- place: 압독 / 押督, confidence=0.8
- place: 비지만다벌 / 比只多伐, confidence=0.7
- place: 풀팔 / 草八, confidence=0.8
- place: 월성 / 月城,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음지벌국(音汁伐國)의 구체적 위치와 소속
- 비지만다벌(倂比只多伐)의 정확한 지명
- 월성(月城)의 위치 (대가구칠곡 월성설과 논의 있음)
(신라) 지마왕
- 기사 ID:
22079_020_006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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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54:22.58602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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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지마왕은 유사의 장남으로, 영초 임자년에 즉위하였다. 순제 양가 3년 갑술에 세상을 떠났으며 재위 23년이었다. 뒤를 이을 자손이 없었다.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노하여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며, 대령의 촬(요새)을 공격하여泥河를 건넜다. 신라 사람이 백제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독음
박지마왕[유사왕 장자]영초 임자년에 세우고 순제 양가 3년 갑술에 사망, 재위 23년[후사 없음] 말갈이 북쪽 변경을 노략질하여 살육하고 약탈하며 대령栅를 습격하여泥河를 건넜다. 신라 사람이 백제에게 원조를 요청하였다.
의미
신라의 지마왕은 재위 23년(432~455) 동안 치세하였으나 후사가 없었다. 말갈이 북쪽 변경을 대규모로 침공하여 大嶺栅를突破하고泥河까지进军하자 신라가 백제에 원조를 요청한 사실을 기록한다. 신라와 백제가 군사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던史實을 보여주는史料이다.
원문
朴祗摩王[주:婆娑王長子]永初壬子立順帝陽嘉三年甲戌薨在位二十三年[주:無嗣]
靺鞨寇北邊殺掠襲大嶺柵過泥河羅人請救於百濟
엔티티 후보
- person: 박지마왕 / 朴祗摩王, confidence=1.0
- person: 유사왕 / 婆娑王, confidence=0.9
- place: 니하 / 泥河, confidence=0.7
- place: 북쪽 변경 / 北邊, confidence=1.0
- term: 말갈 / 靺鞨, confidence=1.0
- place: 대령찰 / 大嶺柵, confidence=0.6
불확실한 어휘
- 大嶺柵(대령찰) -古代 长城的防御设施(栅), 具体位置和名称考证有分歧
- 泥河(니하) - 具体河道不明, 有可能是东北亚某条河流
(신라) 일성왕
- 기사 ID:
22079_020_006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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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6:39:18.1363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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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박일성왕[유리왕의 장자]이 양가년 갑술에 즉위하고 환제 영흥 2년 갑오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21년이었다. 박아도를 추봉하여 갈문왕이라 하였는데, 갈문이란 추존한 칭호이다.
독음
박일성왕[유리왕 장자] 양가갑술에 즉위하다 환제 영흥 2년 갑오에 붕어 재위 21년 박아도를 추봉하여 갈문왕이라 하다 갈문은 추존한 칭호이다
의미
신라의 박일성왕(逸聖王)이 유리왕의 장자로 양가년 갑술에 즉위하여 21년간 재위하고 영흥 2년 갑오년에 사망하였다는 기록이다. 아들 박아도를 갈문왕으로 추봉하였으며, 갈문(葛文)은 추존해서 내린 칭호임을 밝히고 있다. 三國史記 五王卷에 등장하는 기록으로, 五王 시대의 왕위 계승과 추존 사례를 보여준다.
원문
朴逸聖王[주:儒理王長子]陽嘉甲戌立桓帝永興二年甲午薨在位二十一年
追封朴阿道爲葛文王葛文追尊之稱
엔티티 후보
- person: 일성왕 / 逸聖王, confidence=0.95
- person: 유리왕 / 儒理王, confidence=0.95
- person: 박아도 / 朴阿道, confidence=0.85
- person: 환제 / 桓帝, confidence=0.9
- title: 갈문왕 / 葛文王, confidence=0.85
- era: 양가 / 陽嘉, confidence=0.8
- era: 영흥 / 永興, confidence=0.8
- term: 추봉 / 追封, confidence=0.9
- term: 추존 / 追尊,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陽嘉는 원문의 연호가 高句麗 陽祖 또는 百濟 陽嘉인지 분명하지 않음
- 葛文王의 추봉 관계가 일성왕이 박아도를 추봉한 것인지 추가 확인 필요
(신라 )아달라왕
- 기사 ID:
22079_020_006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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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4T04:54:25.10363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65
한글 번역
박阿達羅王[주:逸聖王의 장자] 영흥 갑오년에 즉위하고, 靈帝 중평 원년 갑자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31년[주:후사가 없었다] 병신년에 鷄立嶺路를 열었고, 무술년에 竹嶺路를 열었다.
독음
박아달라왕 [주:일성왕장자] 영흥갑오립 영제중평원년갑자혼 재위삼십일년 [주:무사] 병신개계립로 무술개죽영로
의미
박아달라왕은 신라의 왕으로, 이전 왕인 일성왕의 장자였다. 영흥 갑오년(514년)에 즉위하여 31년간 재위했고, 영제가 중평 원년(520년)에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한 해가 갑자년이므로 재위 기간은 514년부터 520년까지이다. 후사가 없어 왕위가 끊겼다. 재위 중 병신년(515년)에鷄立嶺路를, 무술년(518년)에 竹嶺路를 각각 개척하였다.
원문
朴阿達羅王[주:逸聖王長子]永興甲午立靈帝中平元年甲子薨在位三十一年[주:無嗣]
丙申開鷄立嶺路戊戌開竹嶺路
엔티티 후보
- person: 아달라왕 / 阿達羅王, confidence=1.0
- person: 일성왕 / 逸聖王, confidence=1.0
- person: 영제(전한) / 靈帝, confidence=1.0
- era: 영흥(신라 연호) / 永興, confidence=1.0
- era: 중평(전한 영제 연호) / 中平, confidence=1.0
- place: 계립령로 / 鷄立嶺路, confidence=0.9
- place: 죽영로 / 竹嶺路, confidence=0.9
- term: 장자 / 長子, confidence=1.0
- term: 무사(후사 없음) / 無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鷄立嶺路의 구체적 위치가 삼국사기·삼국유사와 비교할 때 명확하지 않으나, 基良·金海 방면의 산길로 추정됨
- 竹嶺路의 위치는 현재 경상북도 문경·점곡 일대로 추정되나 문헌과의 대응이 불확실함
(신라) 벌휴왕
- 기사 ID:
22079_020_006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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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옛날 벌휴왕[주: 탈해왕의 손자이며, 삼국사에서 발휘왕이라고도 쓴다]은 중평 갑자년에 즉위하고, 헌제 건안 원년 병자에 사망하였다. 재위 13년이었다.[주: 태자 조비가 어려서国人들이왕의 둘째 아들伊買의 아들奈解를 세웠다] 왕은 풍운을 점치고 수재와 한풍의 풍년을 알며 사람의 사악하고 바른 것을也知道하였다.国人들은 그를 성이라 불렀다.
독음
석벌휴왕[주:탈해왕손 삼국사 일작 발휘왕] 중평갑자립 헌제건안원년 병자흠 재위십삼년[주:태자조비유国人립왕제이자이매치지내해] 왕능점풍운지수한풍凶급인지제정国人칭성
의미
삼국사기 신라 열전에 수록된 벌휴왕의 전기이다. 그는 탈해왕의 손자로 중평 갑자년(184년)에 즉위하여 건안 원년(196년)에 사망하였으며 재위 13년이었다. 즉위 당시 어린 태자 조비가 있었으므로国人들이王의 둘째 아들伊買의 아들奈解를後嗣로 세웠다. 벌휴왕은 풍운을 점치고 수해와 가뭄의豊凶을 예지하며人心邪正을 알아国人들의 칭송을 받은聖君으로 기록되었다.
원문
昔伐休王[주:脫解王孫三國史一作發暉王]中平甲子立獻帝建安元年丙子薨在位十三年[주:太子助賁幼國人立王第二子伊買之子奈解]
王能占風雲知水旱豊凶及人之邪正國人稱聖
엔티티 후보
- person: 벌휴왕 / 伐休王, confidence=0.95
- person: 탈해왕 / 脫解王, confidence=0.95
- person: 조비 / 助賁, confidence=0.85
- person: 이매 / 伊買, confidence=0.85
- person: 내해 / 奈解, confidence=0.85
- work: 삼국사 / 三國史, confidence=0.95
- term: 점풍운 / 占風雲, confidence=0.85
- term: 풍흉 / 豊凶, confidence=0.9
- term: 사정 / 邪正,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중평갑자년의 음력换成이 西曆 184년으로 정확히 일치하는지 확인 필요
- 브해왕 이명 발휘와의 관계가 삼국사에서 다르게 전하는바, 本文에서 ‘一作發暉王’이라는 주석의 신뢰성
(신라) 내해왕
- 기사 ID:
22079_020_006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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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옛날에 내해왕[벌휴왕의 손자]이 건안(建安) 병자년에 즉위하였다. 후주(後主) 건흥(建興) 8년 경술년에 사망하였으니, 재위 35년이었다. 유명을 따라 그 사위인 조분을 세웠다.
독음
석내해왕[벌휴왕손] 건안병자립 후주건흥팔년 경술홍 재위삼십오년[이유명립기서당조분]
의미
내해왕은 벌휴왕의 손자로, 건안 병자년(기원전 196년경)에 즉위하여 35년간 재위하였다가 건흥 8년 경술년에 사망하였다. 그가 남긴 유명에 따라 사위인 조분이後任으로 세워졌다. 내해왕은 시조와 화백의 位를 연결하는 中間代 왕으로, 이후 内해王과 照知王을 거치는 왕위계승 과정의 첫 단계이다. 注에 따르면 内해王의 即位가 伐休王의 遺命에 따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원문에서는 오히려 내해왕 자신의 遺命으로 그 사위인 助賁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어 注와 원문의 서술이 서로 다른 정보를 담고 있다.
원문
昔奈解王[주:伐休王孫]建安丙子立後主建興八年庚戌薨在位三十五年[주:以遺命立其婿助賁]
엔티티 후보
- person: 내해왕 / 奈解王, confidence=1.0
- person: 벌휴왕 / 伐休王, confidence=1.0
- person: 조분 / 助賁, confidence=1.0
- era: 건안 / 建安, confidence=0.9
- era: 건흥 / 建興, confidence=0.8
- celestial_stem: 병자 / 丙子, confidence=1.0
- celestial_stem: 경술 / 庚戌,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建興八年의 연호 소속 (원문대로 독음하되, 신라와 東晉 後主 중 어디의 것인지 특정 어려움)
(신라) 조분왕
- 기사 ID:
22079_020_006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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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예전에 조분왕[주: 발휴왕 태자 골정의 아들 나해왕의 사위였다]이 건흥 경술년에 즉위하여 연희 10년 정묘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18년이었다.[주: 삼국사에서 작 제왕(諸賁王)이라 기록한 것이 있다] 신해년에 감문국을 멸망시켰고, 을묘년에 골벌국이 항복하였다.
독음
작 주분왕
의미
신라의 조분왕이 건흥 경술년에 즉위하여 18년간 재위했고, 연희 10년 정묘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기간 중 감문국을 멸하고 골벌국을 항복시켰다.
원문
昔助賁王[주:伐休王太子骨正之子奈解王婿也]建興庚戌立延熈十年丁卯薨在位十八年[주:三國史一作諸貴王]
辛亥滅甘文國丙辰骨伐國降
엔티티 후보
- person: 조분왕 / 助賁王, confidence=1.0
- person: 발휴왕 / 伐休王, confidence=1.0
- person: 골정 / 骨正, confidence=0.9
- person: 나해왕 / 奈解王, confidence=1.0
- place: 감문국 / 甘文國, confidence=0.8
- place: 골벌국 / 骨伐國, confidence=0.8
- term: 건흥 경술 / 建興庚戌, confidence=0.9
- term: 연희 정묘 / 延熈丁卯, confidence=0.9
- term: 신해 / 辛亥, confidence=0.9
- term: 을묘 / 丙辰,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감문국(甘文國)의 정확한 위치와 성격
- 골벌국(骨伐國)의 위치와 멸망 시기
(신라) 첨해왕
- 기사 ID:
22079_020_006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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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옛날 점해왕[주: 조빈왕의 아우]이 연희 정묘년에 즉위하여, 영요 4년 경신년에 붕어하였다. 재위 15년이었다.[주: 후사가 없었다] 정묘년에 아버지 골정을 추증하여 세신 갈문왕에 추봉하였다. 기사에 사발국을 멸하였다.
독음
작 점해왕 주 조빈왕 모제 연희 정묘립 경요 사년 경신 훤 재위 십오년 주 무사 정묘 추증 부골정을 위세신 갈문왕 기사 멸 사발국
의미
신라 점해왕이 연희 정묘년(기원전 263년 또는 4세기경 추정)에 즉위하여 15년간 재위했고, 사발국을 멸하는 업적을 남겼으나 후사가 없었다. 즉위 직전 아버지 골정을 세신 갈문왕으로 추증하였다. 삼국사기 핵피계에는 조빈왕의 아우로 기록되어 있다.
원문
昔沾解王[주:助賁王母弟]延熈丁卯立景耀四年辛巳薨在位十五年[주:無嗣]
丁卯追贈父骨正爲世神葛文王○己巳滅沙伐國
엔티티 후보
- person: 점해왕 / 沾解王, confidence=1.0
- person: 조빈왕의 아우 / 助賁王母弟, confidence=0.95
- person: 골정 / 骨正, confidence=1.0
- person: 세신 갈문왕 / 世神葛文王, confidence=1.0
- place: 사발국 / 沙伐國, confidence=0.9
- term: 연희 / 延熈, confidence=1.0
- term: 영요 / 景耀, confidence=1.0
- term: 추증 / 追贈,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영요·연희 연호의 절대년대(삼국사기 핵피계에는 조신왕대 후반~소해왕으로 보는 설이 있으나 학계마다 편차가 크며, 점해왕 재위 15년의 절대 위치는 불확실)
- 사발국 멸망의 구체적 경위와 시기
- 골정의 인물로서 신라 왕실 계보 내 위치
(신라) 미추왕
- 기사 ID:
22079_020_007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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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미추왕[주:성은 김씨로 알지의 6세손인 조비의 사위, 다른 기록에서는 미추왕, 『삼국사기』에서는 미조로도 표기] 이때부터 박씨와 석씨, 김씨 세 성이 돌아가며 왕위를 계승하였다. 경요 임오년에 즉위하여 진(晋) 무제의 태강(太康) 5년 갑진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23년이었다. 계미년에 아버지 김구도를 추증하여 갈문왕에 추존하였다.
독음
김미추왕[주:씨 김씨 알지 육세손 조비의 사위, 일작 미추왕, 삼국사에 일작 미조] 자차 박석김 삼성 설왕 경요 임오에립 진 무제 태강 오년 갑진에 훤 재위 이십삼년, 계미에 아버지 김구도를 추증하여 갈문왕으로 삼았다
의미
신라의 미추왕에 대한 기록이다. 미추왕은 김씨 알지의 6세손 조비의 사위로, 박·석·김 三姓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던 시기에 즉위하였다. 경요(景耀) 임오년에 즉위하여 진 무제 태강 5년(284년)에 사망할 때까지 23년간 재위하였다. 사후인 계미년에 아버지 김구도를 갈문왕으로 추증하였다. 삼국사기에선 미조(味照)라는 이름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원문
金味鄒王[주:姓金氏閼智六世孫助賁之婿一作未鄒王三國史一作味照]自此朴昔金三姓迭王景耀壬午立晋武帝太康五年甲辰薨在位二十三年
癸未追贈父金仇道爲葛文王
엔티티 후보
- person: 미추왕 / 金味鄒王, confidence=0.95
- person: 김구도 / 金仇道, confidence=0.9
- office: 갈문왕 / 葛文王, confidence=0.9
- person: 조비 / 助賁, confidence=0.85
- term: 삼성설왕 / 三姓迭王,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三姓迭王의 정확한 관용적 의미
- 주석 내 未鄒王 표기의 유래
(신라) 유례왕
- 기사 ID:
22079_020_007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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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옛적에 유례왕(자비왕의 장자)이 태강(太康) 갑진년에 즉위하여惠帝 원강 8년 무오년에 사망하였으니, 재위 15년이었다.
독음
석 유례왕[주:조비왕 장자] 태강 갑진년에 즉위하여惠帝 원강 팔년 무오년에 훙하였으니 재위 15년이었다.
의미
이 기사는 신라 유례왕의 즉위 연도와 사망 연위, 재위 기간을 기록한 것이다. 전통력에 따르면 유례왕은 자비왕의 장자로, 서진(西晉) 태강 갑진년(284년)에 즉위하여 원강 8년 무오년(291년)에 사망하였고, 재위는 15년이었다. 다만 현대 학계에서는 진구(眞具)씨 묘역 출토 묘비 등의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유례왕 재위 기간을 262~284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본 기사는 『삼국사기』 卷第一 新羅本紀 第一의冒頭 기사이다.
원문
昔儒禮王[주:助賁王長子]太康甲辰立惠帝元康八年戊午薨在位十五年
엔티티 후보
- person: 유례왕 / 儒禮王, confidence=1.0
- person: 조비왕(자비왕) / 助賁王, confidence=1.0
- era: 태강 / 太康, confidence=1.0
- term: 원강 / 元康, confidence=1.0
- term: 훙 / 薨, confidence=1.0
- term: 즉위 / 立,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원문 卷首에 위치하여 별도의 연호 전환 절차 없이 갑진·무오를 바로 서진 태강·원강의 간지(干支)로 볼 수 있으나, 기년 방식이 삼국사기 권1 本文과 동일한 체계인지 확인 필요
(신라) 기림왕
- 기사 ID:
22079_020_007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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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예전에 기림왕(조비왕의 손자 또는 증손자이며, 삼국사에는 基立王으로 고쳐 쓴 경우도 있다)이 원강 무오년에 즉위하였고,懷帝의 영嘉 4년 경오년에 죽었다. 재위 13년이었다. 경신년에 낙랑과 대방 두 나라가 와서 복종하였다. 정묘년에 국호를 신라로 바꾸었다.
독음
석기림왕(조비왕의 손자 또는 증손자, 삼국사에서는 基立王으로也表示하였다] 원강 무오년에 즉위하였다. 회제 영가 4년 경오년에 사망하였으니 재위 13년이었다. 경신년에 낙랑과 대방 두 나라가 와서 항복하였다. 정묘년에 국호를 신라로 고쳤다.
의미
신라 기림왕의 즉위와 사망, 재위기간, 주변국의 항복, 그리고 국호 변경을記錄한 기사이다. 기림왕은 원강 무오년(298년)에 즉위하여 경오년(310년)에 사망하였고, 재위 13년간統治하였다. 재위 기간 중 경신년에 낙랑·대방 두 나라가 신라에 복종하였으며, 정묘년에 국호를 新羅로更改하였다.
원문
昔基臨王[주:助賁王孫或云曾孫三國史一作基立王]元康戊午立懷帝永嘉四年庚午薨在位十三年
庚申樂浪帶方二國來服○丁卯改國號新羅
엔티티 후보
- person: 기림왕 / 基臨王, confidence=1.0
- person: 조비왕 / 助賁王, confidence=0.9
- place: 낙랑 / 樂浪, confidence=1.0
- place: 대방 / 帶方, confidence=1.0
- place: 신라 / 新羅, confidence=1.0
- term: 재위 / 在位, confidence=1.0
- term: 국호 / 國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주석 내 조비왕의 子孫인지 曾孫인지 불확실함
- 삼국사에서 基立王으로 고쳐 쓴 사실의 정확성
- 원강 무오년의 서기 환산 연도
- 懷帝의 환관(永嘉는 西晉 멸망 전후의 연호로 추정)
(신라) 흘해왕
- 기사 ID:
22079_020_007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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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옛날에 흘해왕[주:나해왕의 손자 각간 우로의 아들]은 영가 경오년에 즉위하고, 목제 영화 십이년 병진년에 훙했으며, 재위 사십칠년이었다[주:후사가 없었다].
독음
석 흘해왕[주:나해왕의 손자 각간 우로의 아들] 영가 경오년에 즉위하고 목제 영화 십이년 병진년에 붕어했으며 재위 사십칠년[주:후사가 없었다]
의미
흘해왕은 나해왕의 손자 각간 우로의 아들로, 서진 영가 경오년(310년)에 즉위하여 동진 목제 영화 십이년(356년)에 붕하였다. 재위 사십칠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재위기간과 불일치가 지적되며, 또한 후사가 없었다고 전한다. 原典 注記에 의하면 나해왕의 系譜가 通说와 다른 점이 있어 血統에 관한疑義가 있다.
원문
昔訖解王[주:奈解王孫角干于老之子]永嘉庚午立穆帝永和十二年丙辰薨在位四十七年[주:無嗣]
엔티티 후보
- person: 흘해왕 / 訖解王, confidence=1.0
- person: 나해왕 / 奈解王, confidence=1.0
- person: 각간 우로 / 角干于老, confidence=1.0
- term: 영가(서진 문제 연호) / 永嘉, confidence=1.0
- term: 경오(간지) / 庚午, confidence=1.0
- term: 목제(동진 목제) / 穆帝, confidence=1.0
- term: 영화(동진 목제 연호) / 永和, confidence=1.0
- term: 병진(간지) / 丙辰, confidence=0.8
- term: 붕(임금의 죽음) / 薨,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재위 사십칠년의 실제 기간 일치 여부
- 병진년의 간지 오기 가능성
- 나해왕·흘해왕 系譜의 原典 注記와 通說의 차이
(신라) 실성왕
- 기사 ID:
22079_020_007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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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실성왕[주:알지의 현손 이식의 아들 대서지의 아들] 원흥 임인년에 즉위하여, 의희 13년 정사년에 뇌기왕에게 살해되었다. 재위 16년. 임인년에 왜인이 대마도에 진영을 설치하였다.
독음
실성왕[저주:알지현손 이식대서지조사]원흥임인년에 즉위하여 의희13년정사년에 뇌기왕에게 살해되었다. 재위16년. 임인년에 왜인이 대마도에 영을 두었다.
의미
삼국사기에 나오는 실성왕 기사의 핵심이다. 실성왕은 알지의 후손으로 원흥 임인년(402년)에 즉위하여 재위 16년을 지냈으며, 의희 13년(417년) 뇌기왕에게 살해당했다. 또한 임인년(402년)에 왜인이 대마도에 진영을 설치한 사실도 함께 전하고 있다. 실성왕은 삼한씨 계통의 왕으로 이식과 대서지의 아들이며, 즉위 후 뇌기왕에게 선위를 강요받았다가 결국 암살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원문
實聖王[주:閼智裔孫伊飧大西知之子]元興壬寅立義熈十三年丁巳爲訥祗王所弑在位十六年
壬寅倭人置營於對馬島
엔티티 후보
- person: 실성왕 / 實聖王, confidence=1.0
- person: 알지 / 閼智, confidence=1.0
- person: 이식 / 伊飧, confidence=1.0
- person: 대서지 / 大西知, confidence=0.9
- person: 뇌기왕 / 訥祗王, confidence=1.0
- period: 의희 / 義熈, confidence=1.0
- period: 원흥 / 元興, confidence=0.9
- era: 임인 / 壬寅, confidence=1.0
- era: 정사 / 丁巳, confidence=1.0
- place: 대마도 / 對馬島, confidence=1.0
- term: 왜인 / 倭人, confidence=1.0
- term: 영 설치 / 置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원흥(원문 연호 표기가 삼국사기 本文과 일치하는지 불확실)
- 대서지(人名 독음, 三國遺事에서는 ‘대서지’로 등장)
- 伊飧(저주 부분의 계보 연결 고리로서 이 식의 아들인지 이 식이 이름인지 문맥이 불분명)
(신라) 자비왕
- 기사 ID:
22079_020_007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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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자비왕(慈悲王, 눅제왕의 맏아들)은 대명(大眀) 무술년에 즉위하여 기미년에 훙서하였다. 재위 기간은 22년이었고, 왜인이 여러 차례 침입하여 월성을 포위쌌으며, 이에 명활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독음
자비왕[주:눅제왕장자] 대명 무술에 즉위하여 기미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22년. 왜인이 여러 번 침입하여 월성을 포위하고, 이에 明活城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의미
신라 자비왕이 즉위 후 재위 22년간 왜인의 반복적 침입에 시달리다가 월성이 포위당하자 명활성으로 천도한 기록. 재위 연수와 왜침의 위협, 왕도 천도를 수록한 삼국사기의 전형적 기사 형식.
원문
慈悲王[주:訥祗王長子]大明戊戌立齊高帝建元元年己未薨在位二十二年
倭人屢入寇進圍月城○移居明活城
엔티티 후보
- person: 자비왕 / 慈悲王, confidence=1.0
- person: 눅제왕 / 訥祗王, confidence=1.0
- place: 월성 / 月城, confidence=1.0
- place: 명활성 / 明活城, confidence=1.0
- group: 왜인 / 倭人, confidence=1.0
- term: 대명(년호) / 大明, confidence=0.9
- term: 건원(연호) / 建元,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建元(건원): 주변국의 연호나 신라 내부 연호로 해석 가능성 있음
- 大明(대명): 연호 명의 및 구체적 대응 왕조 불확실
(신라) 소지왕
- 기사 ID:
22079_020_007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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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초지왕[주:자비왕의 장자]이 즉위하여 기미(己未)년에 건원(建元)을 정하고, 영원(永元) 2년 경진(庚辰)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재위 22년이었다[주:후사가 없었다]. 정묘(丁卯)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우역(郵驛)을 설치하였다. 무인(戊辰)년에는 왕비와 분수승이 함께 화를 입어 처형당하였으며, 이때부터 처음으로糯米(찹쌀밥)로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냈다.
독음
초지왕[주:자비왕장자]건원기미립지보권영원이년경진훤재위이십이년[주:무사]정묘시치우역무인시제오미식제오
의미
초지왕은 자비왕의 아들로, 기미년에 즉위하여 22년간 재位하였다. 재위 기간 중 정묘년에 전국적으로 우역(역站과 말을 배치한 교통·통신 제도)을 처음 설치하였고, 무인년에는 왕비와 불교 승려가 연좌제로 처형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糯米로 까마귀를 제사하는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었다. 초지왕은永元 2년 경진년에 사망하였으나 직계 후사가 없었다.
원문
炤知王[주:慈悲王長子]建元己未立至寶卷永元二年庚辰薨在位二十二年[주:無嗣]
丁卯始置郵驛○戊辰妃與焚修僧伏誅始以糯飯祭烏
엔티티 후보
- person: 초지왕 / 炤知王, confidence=1.0
- person: 자비왕 / 慈悲王, confidence=1.0
- person: 왕비 / 王妃, confidence=1.0
- person: 분수승(불교 수도승) / 焚修僧, confidence=0.9
- period: 건원기미(초지왕 즉위 연호) / 建元己未, confidence=0.95
- period: 영원 2년 경진(초지왕 사망 연도) / 永元二年庚辰, confidence=0.95
- period: 정묘(우역 설치 연도) / 丁卯, confidence=0.95
- period: 무인(왕비 처형 연도) / 戊辰, confidence=0.95
- office: 우역(역마制度和 역站 시설) / 郵驛, confidence=0.9
- term: 찹쌀밥 / 糯飯, confidence=0.85
- term: 보권(왕의 휘호) / 寶卷,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寶卷(보권의 구체적 의미와 용도)
- 焚修僧(구체적 죄명과 역할)
- 烏祭(까마귀 제사의 의례적 배경)
(신라) 진지왕
- 기사 ID:
22079_020_008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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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진지왕(휘는 함윤, 또는 금륜진흥왕의 둘째 아들로도 표기된다)은 대건 연간 을신년에 즉위하여 11년이 되던 해인 기해년에 붕어하였다. 처음 기록에서 재위 기간은 40년이다.
독음
진지왕[주:휘 함윤, 또는 금륜진흥왕의 차자로도 표기] 대건 을신년에 즉위하여 11년 만에 기해년에 붕어하였다. 처음에 재위 40년
의미
신라의 진지왕에 대한 기본 기록이다. 그의 이름(휘)은 함윤이며, 금륜진흥왕의 차자(둘째 아들)로도 기록된다. 즉위 연도는 대건 연간 을신년(572년경), 붕어 연도는 기해년이며 재위 기간은 40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원문에서 11년과 40년이 서로 다른 연도를 가리키는 것인지, 같은 기간을 두고 다르게 표현한 것인지 해석에 다소 불확실함이 있다.
원문
眞智王[주:諱含輪一作金輪眞興王次子]大建丙申立十一年己亥薨在位四十年
엔티티 후보
- person: 진지왕 / 眞智王, confidence=0.98
- person: 함윤 / 含輪, confidence=0.85
- person: 금륜진흥왕 / 金輪眞興王, confidence=0.9
- term: 대건 / 大建, confidence=0.92
- term: 재위 / 在位, confidence=0.98
- term: 붕어 / 薨, confidence=0.98
불확실한 어휘
- 대건(大建)의 정확한 연호 대조와 기해년의 구체적 서기 연도
- 재위 40년과 11년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해석
- 금륜진흥왕 차자(次子) 표현의 정확한 계통 관계
(신라) 진평왕
- 기사 ID:
22079_020_008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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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진평왕(휘호 백정)은 대건 기해년에 즉위하여 唐 태종 시기 정기 6년에 사망하였으며, 총 재위 기간은 54년이다
독음
진평왕[주:휘 백정] 대건을해에 즉위,唐 태종 정기 6년 임진에 사망,在位 54년
의미
진평왕의 즉위와 사망 시기, 재위 기간에 대한 역사적 기록
원문
眞平王[주:諱伯淨一作白淨眞興王太子銅輪之子]大建己亥立唐太宗貞觀六年壬辰薨在位五十四年[주:無嗣新唐書及資治通鑑幷作貞觀辛卯王卒]
辛巳遣使朝唐○滅加羅任羅二國○與百濟高勾麗相侵伐無寧歲
隋冊王爲上開府樂浪公新羅王及薨唐贈左光祿大夫
엔티티 후보
- person: 진평왕 / 眞平王, confidence=0.95
- period: 대건 / 大建, confidence=0.9
(신라) 진덕여주
- 기사 ID:
22079_020_008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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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진덕여주[이름은 승만, 진평왕의 아우 갈문왕의 딸 국반의 딸]는 강화정관 정미년에 즉위했으며, 고종 영휘 5년 갑인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재위 8년이었다. 키가 7자이고 손을垂면 무릎을 넘었다[이때 당에 무씨의 변란이 있었다]. 연호를 태화)로 고쳤다. 唐에서 主를柱國樂浪郡王에 책봉하였다. 기유년에 이르러 비로소 중화式 관복으로改살하였다. 百濟가 여러 해 계속 쳐들어와 성을 빼앗고 땅을略奪하였다. 金庾信이 이를 격파하였다. 金春秋가 당에 나아가兵력을 요청하였고, 唐太宗이 소정방에게命하여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원정하여 百濟를 공격하였다.
독음
(신라) 진덕여주, 휘 승만, 진평왕제 갈문왕국반녀, 강화정관 정미년에 즉위, 고종 영휘 5년 갑인년에 붕어, 재위 8년, 신장 7자 수수과슬, 당 무씨의 변란, 개원 태화, 당 책주위 서국 낭서군왕, 기유년에 비로소 중화관복을 개편, 백제가 连년 침공하여 성을陷하고 땅을略, 김유신이 격파, 김춘추가 당에 나아가 请兵, 태종이 소정방에게 명하여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원정하여 백제를 치다
의미
진덕여주(승만)는 신라의 女王으로 강화정관 5년(629)에 즉위하여 8년간 재位하였다. 그녀는 진평왕의 왕녀 출신으로 당의 연호强化정관을 사용하며 당과의 외교를深虑하였다. 치세 중百濟의 침공이 있었으나 김유신이撃退하고, 김춘추의 당 파병 요청으로 소정방이率군하여 백제를攻擊하였다. 재위 8년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신라와 당의 관계를深耕한君主였다.
원문
眞德女主[주:諱勝曼眞平王弟葛文王國飯女]貞觀丁未立高宗永徽五年甲寅薨在位八年身長七尺垂手過膝[주:時唐有武氏之變]
改元太和唐冊主爲柱國樂浪郡王○己酉始改中華冠服○百濟連年來侵陷城掠地金庾信擊破之金春秋朝唐請兵太宗詔蘇定方率師東征百濟
엔티티 후보
- person: 진덕여주 / 眞德女主, confidence=0.98
- person: 승만 / 勝曼, confidence=0.97
- person: 김유신 / 金庾信, confidence=0.99
- person: 김춘추 / 金春秋, confidence=0.99
- person: 소정방 / 蘇定方, confidence=0.97
- place: 신라 / 新羅, confidence=0.99
- place: 백제 / 百濟, confidence=0.99
- place: 낭서군 / 樂浪郡, confidence=0.95
- place: 당 / 唐, confidence=0.99
- office: 서국 / 柱國, confidence=0.94
- term: 중화관복 / 中華冠服, confidence=0.93
- term: 무씨의 변란 / 武氏之變, confidence=0.88
- work: 고종 영휘 / 高宗永徽, confidence=0.96
- work: 태종 강화 / 太宗貞觀, confidence=0.96
- work: 태화 / 太和, confidence=0.92
불확실한 어휘
- 國飯女(국반녀)의 구체적 신분과 역할이 불확실
- 垂手過膝의 정확한 측정기준이 현대 기준과 달라 실체 파악이 어려움
- 柱國樂浪郡王爵號의 당시 정치적 의미와 직책 범위가 명확하지 않음
- 中華冠服의 구체적服制 변화 내용이 미상
(신라) 효소왕
- 기사 ID:
22079_020_008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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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효소왕[이름은 이홍, 또는 이공이라도 하고 신문왕의 태자였다] 사성(嗣聖) 임진년에 즉위하여 십구년에 임인년에 졸하였다. 재위 십일년이었다.[주:후사 없이死去하여 자치통감에는 대족(大足) 삼년 계묘년에 왕이 죽은 것으로 기록하였다] 당(唐)이 왕을 신라왕에 책봉하고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鷄林都督에 임명하였다
독음
효소왕[주:휘 이홍 일작 이공 신문왕 태자] 사성 임진에립 십구년 임인에 세상을 떠나거니 재위 십일년[주:무사 자치통감에 대족 삼년 계묘에 왕 졸한 것으로 작음] 당이 왕을 새羅王에 책하여 보국大将军鷄林都督으로 삼았다
의미
효소왕(이홍)은 신문왕의 태자로 즉위하여 재위 십일년간 치세하였다. 삼국사기에선 사성 연간에, 자치통감에선 则天天授 연간에 사망 기록이 엇갈린다. 당나라는 효소왕을 신라왕으로 책봉하고 보국대장군·鷄林都督직을 수여하여 신라와 당의 종속 관계를 확인하였다. 부호와 직위 명칭은 한자 표기 그대로 보존한다.
원문
孝昭王[주:諱理洪一作理恭神文王太子]嗣聖壬辰立十九年壬寅薨在位十一年[주:無嗣資治通鑑作大足三年癸卯王卒]
唐冊王爲新羅王輔國大將軍鷄林都督
엔티티 후보
- person: 효소왕 / 孝昭王, confidence=1.0
- person: 이홍 / 理洪, confidence=1.0
- person: 이공 / 理恭, confidence=0.8
- person: 신문왕 / 神文王, confidence=1.0
- title: 사성 / 嗣聖, confidence=0.9
- title: 대족 / 大足, confidence=0.7
- title: 책(임명) / 冊, confidence=0.9
- title: 보국대장군 / 輔國大將軍, confidence=1.0
- title: 계림도독 / 鷄林都督, confidence=1.0
- work: 자치통감 / 資治通鑑, confidence=1.0
- place: 당 / 唐, confidence=1.0
- place: 신라 / 新羅, confidence=1.0
- era: 임진 / 壬辰, confidence=1.0
- era: 임인 / 壬寅, confidence=1.0
- era: 계묘 / 癸卯,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鷄林都督은 신라 가칭 지위인지 당의 실제 직역인지는 문헌상 명확하지 않음
- 사성 임진년이 692년인지 695년인지 삼국사기와자치통감의 해석에 따라 상이
- 대족 삼년과 사성 연간 사이 왕 사망 연도에 이견 존재
(신라) 성덕왕
- 기사 ID:
22079_020_009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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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7T15:49:27.5030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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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성덕왕(휘는 융기. 당 황제의 칙으로 왕이 되면서 이름을 흥광으로改了. 당서에는 지성이라고 기록했다. 효소왕의 어머니의 아우다)이 계성 임인년에 즉위하였다. 唐 현종 개원 25년 정축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36년이었다. 당 황제의 칙으로 패강 이남의 땅을 하사받았다.
독음
성덕왕[주:휘는 융기 당칙으로 왕이 되고 이름을改成흥광 당서에 작지성 효소왕 모제] 계성 임인년에 즉위했다. 현종 개원 25년 정축년에 사망했다. 재위 36년. 당의 칙으로 패강 이남의 땅을 내렸다.
의미
신라 성덕왕(재위 707~737)의 즉위와 사망, 재위 기간, 그리고 당으로부터 패강 이남 지역을 하사받은 사실을記錄한 기사이다. 성덕왕의 휘는 융기이며, 당 황제의 칙으로 흥광으로改名했다. 당서에는 지성으로 기록되었고, 효소왕의 어머니의 아우弟로서 계성 임인년(707년)에 즉위하여 开元 25년(737년)에 사망할 때까지 36년간 재위했다.
원문
聖德王[주:諱隆基唐勅王改名興光唐書作志誠孝昭王母弟]嗣聖壬寅立玄宗開元二十五年丁丑薨在位三十六年
唐勅賜浿江以南地
엔티티 후보
- person: 성덕왕 / 聖德王, confidence=0.95
- person: 융기 / 隆基, confidence=0.95
- person: 흥광 / 興光, confidence=0.95
- person: 지성 / 志誠, confidence=0.9
- person: 효소왕 / 孝昭王, confidence=0.95
- place: 패강 / 浿江, confidence=0.9
- period: 계성 임인(707년) / 嗣聖壬寅, confidence=0.85
- period: 개원 25년(737년) / 開元二十五年, confidence=0.9
- term: 당칙 / 唐勅,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唐書作志誠의 정확한 문맥(唐書에서 지성으로 기록한 것이 성덕왕을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음)
- 孝昭王母弟에서 모제(母弟)의 정확한 계통 관계
- 패강 이남 지역의 정확한 범위와 당시 상황
(신라) 효성왕
- 기사 ID:
22079_020_009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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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6:43:33.20036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91
한글 번역
효성왕(임금 이름은 승경, 성덕왕의 차남)은 개원(開元) 정축년(737년)에 즉위하여 천보(天寶) 원년인 임오년(742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기간은 6년이었으며, 유언에 따라 법류사에서 관을 불태우고 뼈를 바다에 뿌렸다. 이 왕 이후로 불교와 도교를 숭상하게 되어 나라 풍속이 그것에 물들었다. 이로부터 왕위 찬탈이 연달아 일어났다.
독음
효성왕[주:휘 승경성덕왕 제이자] 개원정축에 입천보원년임오에 훙재위 6년 유명으로 관을 법류사에서焚하여 해동으로 유골을 뿌렸다. 왕 이후로부터 불도를 숭상하여 국속이 이것으로 화하였다. 이로부터 찬탈이 서로 이어졌다.
의미
효성왕(재위 737~742년)의 즉위와 사망, 장례 방식, 그리고 이후 신라 왕실에서 불교를 숭상하게 된 변화와 권력 찬탈의 연쇄라는 정치적 혼란을 기록한 기사이다. 유언에 따른 수장(焚骨) 방식은 당시 불교적 장례 관습을 반영하며, 이후 신라 왕실의 불교 수용이 급격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孝成王[주:諱承慶聖德王第二子]開元丁丑立天寶元年壬午薨在位六年以遺命焚柩於法流寺散骨東海
自王以後崇奉佛道國俗化之自此簒奪相尋
엔티티 후보
- person: 효성왕 / 孝成王, confidence=0.95
- person: 승경 / 承慶, confidence=0.95
- person: 성덕왕 / 聖德王, confidence=0.95
- place: 법류사 / 法流寺, confidence=0.9
- place: 동해 / 東海, confidence=0.85
- term: 찬탈 / 簒奪, confidence=0.95
- term: 불도 / 佛道, confidence=0.95
- term: 분구(관을 불태움) / 焚柩, confidence=0.85
- term: 산골(뼈를 뿌림) / 散骨,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孝成王는 삼국사기 표기이며 원문의 효성王은 후대 혼용 가능성 있음
- 開元丁丑은 개원 25년으로 737년인데, 天寶 원년이 丁丑과 어긋나며 천보는 742년부터 적용됨. 연호 기록에 오류 가능성 있음
- 佛道는 통상적으로 불교를 가리키나 도교와 혼용된 표현일 수 있음
(신라) 혜공왕
- 기사 ID:
22079_020_009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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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02T06:29:44.18433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20&aa15no=020&aa20no=22079_020_0093
한글 번역
혜공왕(휘호는 건운, 경덕왕의 태자)이 영태(乙巳)년에 즉위하였다. 적종(德宗) 건중(建中) 원년 경신(庚申)년에 선덕왕에게 살해되었으며, 재위 16년이었다. (문헌통고에는 건중(建中) 계해(癸亥)년에 왕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이 어릴 적에 어머니 만월부인이 섭정하였다. 두 개의 해가 함께 나타났고, 별이 떨어졌으며, 서성이 출현하였다. 길선, 대공 등이란 이·阿찬 금융(等人阿飡金溶), 이찬 금은거(伊飡金隱居), 이찬 염상(伊飡廉相) 등이 차례로 반역을 도모하다가 잡혀 죽임을 당하였다. 왕은 음악과美色에 빠져 방종하게 돌아다녔다. 금지정이 난을 일으켜 왕궁을 포위하자,上大等(상대등) 금양상과敬信이 군사들을 일으켜 지정을 토灭하였다. 왕은 난병에게害를 입어 죽었고, 양상은 이에 스스로 왕이 되었다.
독음
혜공왕[휘건운경덕왕태자]영태을사립적종건중원경신위선덕왕소살재위십육년[문헌통고작건중계해왕졸]왕유모만월부인섭정양일병출성윤혜출길선대공등아찬금융이찬금은거이찬염상등상속모반복추왕음어성색순유무도금지정작란위왕궁상대등금양상과경신거병퇴지정왕위난병소해양상수립치
의미
혜공왕은 경덕왕의 태자로 영태(765)년에 즉위하였으나 어릴 때 만월부인이 섭정하였다. 재위 기간 중 이문(日暈), 星隕, 서성 출현 등 이변이 잦았고, 阿찬금융, 伊飡금은거, 伊飡염상 등이 연이은 반역을 일으켰다. 방종한 왕을 둘러싸고 있던 금지정이 난을 일으켜 왕궁을 포위하자, 上大等 금양상과敬信이 토灭하였다. 그러나 왕은 결국 난병에게杀害되었고, 금양상은 스스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16년의 치란이었으며,殺害 연도는 선덕왕에 의한 것인지 측천무후의 명에 의한 것인지 논쟁이 있다.
원문
惠恭王[주:諱乾運景德王太子]永泰乙巳立德宗建中元年庚申爲宣德王所殺在位十六年[주:文獻通考作建中癸亥王卒]王幼母滿月夫人攝政兩日幷出星隕彗出吉飧大恭等阿飡金融伊飡金隱居伊飡廉相等相繼謀反伏誅王淫于聲色巡遊無度金志貞作亂圍王宮上大等金良相與敬信擧兵誅志貞王爲亂兵所害良相遂自立
엔티티 후보
- person: 혜공왕 / 惠恭王, confidence=0.98
- person: 건운 / 乾運, confidence=0.95
- person: 경덕왕 / 景德王, confidence=0.97
- person: 선덕왕 / 宣德王, confidence=0.97
- person: 만월부인 / 滿月夫人, confidence=0.93
- person: 금지정 / 金志貞, confidence=0.97
- person: 금양상 / 金良相, confidence=0.96
- person: 금은거 / 金隱居, confidence=0.85
- person: 염상 / 廉相, confidence=0.88
- office: 상대등 / 上大等, confidence=0.93
- office: 아찬 / 阿飡, confidence=0.88
- office: 이찬 / 伊飡, confidence=0.88
- term: 섭정 / 攝政, confidence=0.95
- work: 문헌통고 / 文獻通考,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신라) 선덕왕
- 기사 ID:
22079_020_009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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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선덕왕[이름은 양상, 나말왕의 10세손]은 건중(建中) 연호 경신년에 스스로 왕位에 올랐다. 숙정(貞元) 원년 을축년에 죽었고, 재위 기간은 6년이었다. 후사가 없었다. 유언대로 불을 지르고 뼈를 동해에 뿌렸다.
독음
선덕왕[휘 양상 나말왕 십세손] 건중 경신년 스스로 즉위 숙정원년 을축년에 졸하다 재위 육년 유언으로 불을 놓아 유해를 동해에 뿌리다
의미
신라의 선덕왕(양상)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6년간 통치했으며, 후사 없이 사망한 후 유언에 따라 불을 지르고 뼈를 동해에 뿌렸다.
원문
宣德王[주:諱良相奈勿王十世孫]建中庚申自立貞元元年乙丑薨在位六年[주:無嗣]遺令燒火散骨東海
엔티티 후보
- person: 선덕왕 / 宣德王, confidence=0.98
- person: 양상 / 良相, confidence=0.95
- person: 나말왕 / 奈勿王, confidence=0.97
- era: 건중 / 建中, confidence=0.92
- era: 숙정 / 貞元, confidence=0.97
- place: 동해 / 東海,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신라) 원성왕
- 기사 ID:
22079_020_009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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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원성왕(휘는 경신, 내물왕의 12세 손)이다. 정원(貞元) 을축(乙丑)년에 즉위하고, 14년째 되는 무인(戊寅)년에 붕어하였다. 재위 14년이었다. 유언으로 관을 봉덕사 남쪽에서 태우라고 명하였다. 무진(戊辰)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독서출신법(讀書出身法)을 정하였다. 그 전에는 오직 사격으로 사람을 뽑기만 하였으나, 이제 이것을 바꾸었다.
독음
원성왕[주:휘 경신내물왕십이세손]정원을축에 입 십사년 무인에 훤 재위 십사년 유명 소구 於 봉덕사 남쪽 무진에 처음으로 독서출신법을 정립하기 전에는 다만 사로 사람을 뽑았으나 이에 이르러서改为함
의미
원성왕은 내물왕의 12세 손으로, 794년(정원 갑자년)에 즉위하여 808년까지 14년간 재위하였다. 사망 후 유언에 따라 관을 봉덕사 남쪽에서 장졸火葬하였다. 핵심 개혁으로, 그 전까지 인물을 뽑는 데 오직 사격(射技)만을 기준으로 삼던 것을改为하여, 독서출신법을 새로 제정하였다. 이것은 신라관에서 과거(과거)에 해당하는 제도改革的 발단이 되었다.
원문
元聖王[주:諱敬信奈勿王十二世孫]貞元乙丑立十四年戊寅薨在位十四年遺命燒柩於奉德寺南
戊辰始定讀書出身法前此但以射選人至是改之
엔티티 후보
- person: 원성왕 / 元聖王, confidence=1.0
- person: 경신 / 敬信, confidence=1.0
- person: 내물왕 / 奈勿王, confidence=1.0
- place: 봉덕사 / 奉德寺, confidence=1.0
- term: 독서출신법 / 讀書出身法, confidence=1.0
- term: 사선인 / 射選人, confidence=0.9
- term: 소구(화장) / 燒柩, confidence=0.95
- term: 정원(唐 연호) / 貞元, confidence=1.0
- term: 을축(년간) / 乙丑, confidence=1.0
- term: 무인(년간) / 戊寅, confidence=1.0
- term: 무진(년간) / 戊辰,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改之의 구체적 시행 범위
- 奉德寺의 정확한 위치
(신라) 소성왕
- 기사 ID:
22079_020_009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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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소성왕(昭聖王, 휘는 준옹)은 원성왕의 태자 인겸의 아들이다. 태자에 봉해졌으며, 정원(貞元) 기묘년(805년)에 즉위하여 16년째 되는 해인 경진년에 훙하였다. 재위 2년이다.
독음
조사성왕(주:휘준옹원성왕태자인겸지자봉태자)정원기묘립십육년경진훙재위이년
의미
신라 소성왕의 기본 신상과 재위 기간을 수록한 짧은 기사이다. 즉위 연도를 정원 기묘년(805년)으로, 사망 연도를 경진년(820년)으로 각각 간지로 표기하며 재위 연수를 2년이라고 밝혔다. 본문 괄호 내 주석은 왕의 휘, 출자, 태자 시절 봉호를 기재한 것이다.
원문
昭聖王[주:諱俊邕元聖王太子仁謙之子封太子]貞元己卯立十六年庚辰薨在位二年
엔티티 후보
- person: 소성왕 / 昭聖王, confidence=0.98
- person: 준옹 / 俊邕, confidence=0.95
- person: 원성왕 / 元聖王, confidence=0.98
- person: 인겸 / 仁謙, confidence=0.95
- era: 정원(唐 연호) / 貞元, confidence=0.92
- term: 훙(왕의 사망) / 薨, confidence=0.97
불확실한 어휘
- 경진년(820년)의 절대 연도와 원문 연도 기록 간 불일치, 특히 16년이 재위 기간과 어떻게 관계하는지에 대한 추가 확인 필요
(신라) 애장왕
- 기사 ID:
22079_020_009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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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애장왕[주: 이름은 청명인데改为重熙昭聖王의 태자] 정원 경신년(794년)에 세워졌고, 헌종元和 4년 기축(820년)에 헌덕에게 살해되었다. 재위 10년[주: 문헌통고에는 재위 7년, 이름作重興이라고 했다]
독음
애장왕주왈휘청명개중희소성왕태자정원경신입헌종원과사년기축위헌덕소식재위십년주문헌통고작재위칠년왈작중흥
의미
신라 애장왕은 정원 경신년(794년)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元和 4년(820년) 자신의 아우 헌덕에게 살해당했다. 삼국사기 등 주요 기록은 재위 10년으로 전하지만, 문헌통고는 재위 7년, 이름 중흥이라는 이설이 있다고 전한다. 왕의 휘(諱)가 청명에서 重熙昭聖王 태자로 변경되었다는 점도 확인된다.
원문
哀莊王[주:諱淸明改重熙昭聖王太子]貞元庚辰立憲宗元和四年己丑爲憲德所弑在位十年[주:文獻通考作在位七年諱作重興]
엔티티 후보
- person: 애장왕 / 哀莊王, confidence=0.95
- person: 청명(애장왕 본명) / 淸明, confidence=0.9
- person: 중희소성왕 / 重熙昭聖王, confidence=0.9
- person: 헌덕왕 / 憲德王, confidence=0.95
- person: 헌종(당나라 헌종) / 憲宗, confidence=0.85
- term: 식(윗사람을 살해) / 弑, confidence=0.95
- work: 문헌통고 / 文獻通考, confidence=0.9
- term: 휘(이름을 가리키는 경어) / 諱,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改重熙昭聖王太子句讀 및 해석
- 文獻通考의 重興이 실재 호칭인지 불확실
(신라) 흥덕왕
- 기사 ID:
22079_020_009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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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흥덕왕은 이름이 수종이고, 경휘왕의 아우로 헌덕왕의 서동이었다. 보력 병오년에 즉위하여 문종 개성 원년 병진년에 세상을 떠났다. 재위 십일 년이었다.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종제 균정과 균정의 아들 태륭이 서로 다툼으로 왕위를 건드리니 나라 안이 크게 어지러웠다. 김양 등이 균정을 받들어 왕으로 세웠으나, 김명리와 이홍 등이 군사를 이끌고 포위 공격하였다. 균정이 살해당하자, 태륭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독음
흥덕왕은 휘가 수종이요, 경휘(景徽)의 아우로 헌덕왕의 서동이다. 보력(寶曆) 병오년에 즉위하였고, 문종(文宗) 개성(開成) 원년 병진년에 붕어하였다. 재위 십일 년이었다.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종제(從弟) 균정과 종제의 아들 태륭이 다툼으로 왕위를争立하니 나라 안이 크게 어지러웠다. 김양 등이 균정을 받들어 세웠으나, 김명리와 이弘 등이 군사를 이끌고 에워쌌다. 균정이 살해를 당하니, 태륭을 세워 왕을 삼았다.
의미
흥덕왕은 보력 병오년(826년)에 즉위하여 재위 11년 만에 붕어하였다. 아들이 없어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종제 균정과 그 아들 태륭이 대립하였다. 김양 등이 균정을 추대하였으나, 김명리·이홍 등이 군사력으로 반격하여 균정을 살해하였다. 결국 태륭이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는 신라 후기 왕위 계승 다툼과武臣 세력의 개입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원문
興德王[주:諱秀宗改景徽憲德王母弟]寶曆丙午立文宗開成元年丙辰薨在位十一年[주:無嗣]
從弟均貞從弟之子悌隆爭立國中大亂金陽等奉立均貞金明利弘等引兵圍之均貞遇害立悌隆爲王
엔티티 후보
- person: 흥덕왕 / 興德王, confidence=0.98
- person: 수종 / 秀宗, confidence=0.97
- person: 균정 / 均貞, confidence=0.97
- person: 태륭 / 悌隆, confidence=0.97
- person: 김양 / 金陽, confidence=0.95
- person: 김명 / 金明, confidence=0.9
- person: 이홍 / 利弘, confidence=0.92
- period: 보력 병오 / 寶曆丙午, confidence=0.96
- period: 개성 원년 병진 / 開成元年丙辰, confidence=0.96
- term: 종제 / 從弟, confidence=0.95
- term: 쟁립 / 爭立, confidence=0.94
- term: 훙( 붕) / 薨, confidence=0.96
- term: 무사 / 無嗣,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높은 확률로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나, 從弟 均貞과 從弟之子悌隆의 계통 관계가 다른 사료와 대조할 필요 있음
- 金陽·金明·利弘의 구체적 관직과 가계가 미상
(신라) 희강왕
- 기사 ID:
22079_020_010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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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희강왕[주: 본명은 태隆, 또는 태顒, 원성왕의 증손자] 개성(연호) 병진년에 즉위하여 3년 후 무오년에 민이 되었다.
독음
희강왕[(주) 위 뗄 융 일작 뗄 융 원인성왕 증손자] 개성 병진에 입 3년 무오에 위 민
의미
희강왕(위 태隆)은 원성왕의 증손자로, 개성 연간 병진년에 즉위하여 3년 후인 무오년에閔(민)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임금의 호칭이 아닌 벼슬官職名으로 추정되며, 三國史記의 다른 기사와 대조할 때 즉위 및 사망 시점을 추정하는 단서로 활용된다.
원문
僖康王[주:諱悌隆一作悌顒元聖王曾孫]開成丙辰立三年戊午爲閔
엔티티 후보
- person: 희강왕 / 僖康王, confidence=1.0
- person: 태隆 / 悌隆, confidence=0.95
- person: 원성왕 / 元聖王, confidence=1.0
- era: 개성 / 開成, confidence=0.95
- term: 민 / 閔, confidence=0.6
불확실한 어휘
- 閔(민) - 관직명인지 신분 호칭인지 불확실, 三國史記 本文과의 교차 검증 필요
(신라) 애왕
- 기사 ID:
22079_020_010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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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애왕은 살해되었으며, 재위 기간은 삼 년이었다.
독음
애왕 소시 재위 삼년
의미
신라의 애왕이 암살당했으며 재위 기간은 삼 년이었다는 짧은 역사 기록이다. 왕이 재위 기간 도중에 살해되었음을 나타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애왕 / 哀王, confidence=0.95
(신라) 신무왕
- 기사 ID:
22079_020_010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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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신무왕(휘는 유징, 원성왕의 증손)이 개성 기미년에 김양에게 받들어 군주가 되었으나, 같은 해에 사망하였다.
독음
신무왕[주:휘 유징, 원성왕의 증손] 개성 기미년에 김양이 받들어 군주가 되었다 같은 해에 졸았다
의미
신라 신무왕이 김양의 지지를 받아 즉위했으나 재위 기간이 극히 짧아 같은 해에 사망한 사실을 전하는 기사로, 신무왕이 원성왕의 4대손(증손의 손자)임을 확인해준다. 원문에서 사용된 연호 ‘개성(開成)’과 간지 ‘기미(己未)’는 삼국사기 기록과 정합성이 의심되어 전하고자 하는 연도가 불확실하며, 김양이 즉위를 주도한 인물임이 재확인된다.
원문
神武王[주:諱祐徵元聖王曾孫]開成己未金陽奉而爲君同年薨
엔티티 후보
- person: 신무왕 / 神武王, confidence=1.0
- person: 유징 / 祐徵, confidence=1.0
- person: 원성왕 / 元聖王, confidence=1.0
- person: 김양 / 金陽, confidence=1.0
- place: 개성(금양) / 金陽,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 開成(개성, 일본 연호 가세이와 혼동 가능성 있음)
- 기미(己未, 간지에 의한 연도 특정 불확실 - 삼국사기 기사와 상이함)
(신라) 문성왕
- 기사 ID:
22079_020_010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20]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20
- 면/쪽: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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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문성왕(휘는 경응, 신무왕의 태자였다)은 개성 기미년에 즉위하여 선종대중 11년 정축년에 사망하였으며, 재위 기간은 19년이었다.
독음
문성왕[주:휘 경응 신무왕 태자] 개성 기미에 즉위 선종大中11년 정축에 햗하여 재위 19년
의미
신라 문성왕이 개성 기미년(839년)에 즉위하고 대중 11년 정축년(857년)에 사망할 때까지 19년간 재위했음을 나타낸다. 원문에는 주석으로 문성왕의 휘가 경응이며 신무왕의 태자였다는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원문
文聖王[주:諱慶膺神武王太子]開成己未立宣宗大中十一年丁丑薨在位十九年
엔티티 후보
- person: 문성왕 / 文聖王, confidence=1.0
- person: 경응 / 慶膺, confidence=1.0
- person: 신무왕 / 神武王, confidence=1.0
- era: 개성 / 開成, confidence=0.95
- era: 선종 / 宣宗, confidence=1.0
- era: 대중 / 大中,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주석의 계승 관계는 삼국사기 기사와 맞지 않으므로 전거考證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