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고략 [文獻攷略] - 본문 번역 묶음 003
- 책 ID:
kh2_je_a_vsu_22079_000
- 수록 기사: 75건
(문묘대성) 고려현종
- 기사 ID:
22079_003_002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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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7T11:59:05.94640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24
한글 번역
고려 현종은 최치원이 태조에게 편지를 보낼 때 이르기를 ‘계림의 누런 잎, 학령의 푸른 소나무’라고 한 것이 밀실에서 조업을 도왔으므로 그 공을 잊을 수 없다고 하여, 특별히 선聖의 묘정에 종사하도록 명하였다.
독음
고려현종이 최치원의 태조에게 보낸 편지에 이르기를 계림황엽학령청송(鷄林黃葉鵠嶺靑松)이라 한 것을 밀찬(密贊) 조업이라 하여 그 공을 잊을 수 없어 특별히 선성묘정에 종사(從祀)하도록 명하였다.
의미
고려 현종이 최치원이 태조에게 보낸 시 속의 표현을 조국의 업적을 위해 기린 것으로 평가하고, 그 공을 기리어 종사하도록 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한 반론이 이어진다.
원문
○高麗顯宗以崔致遠貽書太祖鷄林黃葉鵠嶺靑松之語爲密贊祖業功不可忘特令從祀先聖廟庭[주:芝峯類說]
我朝從祀之典多有未喩者如崔致遠徒尙文章而諂佛又甚每見集中佛疏等作未嘗深惡而痛絶之與享文廟豈非辱聖之甚乎[주:退溪集]
○開城府及各道界首官鄕校依太學之制餘州府郡殿內從享十哲兩廡只從享宋四賢[주:周程朱]及東國十五賢
엔티티 후보
- person: 고려현종 / 高麗顯宗, confidence=0.95
- person: 최치원 / 崔致遠, confidence=0.95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95
- place: 계림 / 鷄林, confidence=0.9
- place: 학령 / 鵠嶺, confidence=0.9
- term: 밀찬 / 密贊, confidence=0.85
- place: 선성묘정 / 先聖廟庭, confidence=0.9
- place: 지봉 / 芝峯, confidence=0.85
- place: 퇴계 / 退溪, confidence=0.85
- person: 개성부 / 開城府, confidence=0.9
- office: 계수관 / 界首官, confidence=0.8
- place: 향교 / 鄕校, confidence=0.9
- place: 태학 / 太學, confidence=0.9
- person: 주 / 周, confidence=0.85
- person: 정 / 程, confidence=0.85
- person: 주 / 朱, confidence=0.85
- person: 동국십오현 / 東國十五賢,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문묘대성) 태종칠년성균관상 전
- 기사 ID:
22079_003_002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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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5T22:22:33.13087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25
한글 번역
태종 7년(1397년)에 성균관에서 상소를 올려 촉(郕)과 기(沂)의 두 공을 선성(孔子)에 배향하고, 자장(子張)을 십철(十哲)에 올리며, 좌정승 하윤(河崙)도 또한 건의하여 이를 받아들였다. 이때 허조(許稠)가 조정에 나아가 베이징으로 가는 길에 그 마을을 방문하여 그 종사(從祀)의 승격과 축출의 제도를 보고 돌아와董仲舒를 종사하도록, 양웅의 향리를 축출하도록 요청하였다. 예관에서 상소를 올려 요청하자 임금이 이를 받아들였으며, 다시許衡을 종사하였다.
독음
태종칠년 성균관 상전 청촉기이공 배향어선성 이자장 급어십철 좌정승 하윤 역헌의이청 종지时许稠 조경도 갈력 문건 其 종사 승출지제 귀청 이董仲舒 종사黜 양웅지향 예관 상전 청지 상 종지 우以許衡 종사
의미
태종 7년 성균관에서 제기한文庙 배향 논의를 기록한 기사다. 성균관에서 상소하여 자장을 십철에 올리고 촉·기 이공을 선성에 배향할 것을 건의했으며, 좌정승 하윤이 이에 동의했다. 이어 허조가 명나라 베이징 방문길에 문묘 제도의 승강을 보고 돌아와董仲舒를 새로 종사하고 양웅을 종사에서 내보낼 것을 요청했고, 예관의 상소에 임금이 최종 허락했다. 또한許衡도 종사에 포함시켰다. 이는 조선 전기 문묘 종사 제도의 변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원문
○太宗七年成均館上箋請郕沂二公配享于先聖以子張躋于十哲左政丞河崙亦獻議以請從之時許稠朝京道謁厥里見其從祀陞黜之制歸請以董仲舒從祀黜楊雄之享禮官上箋請之上從之又以許衡從祀
엔티티 후보
- person: 허조 / 許稠, confidence=0.95
- person: 하윤 / 河崙, confidence=0.95
- person: 자장 / 子張, confidence=0.95
- person: 동중서 / 董仲舒, confidence=0.95
- person: 양웅 / 楊雄, confidence=0.95
- person: 허형 / 許衡, confidence=0.9
- person: 촉 / 郕, confidence=0.85
- person: 기 / 沂, confidence=0.85
- place: 성균관 / 成均館, confidence=0.95
- office: 좌정승 / 左政丞, confidence=0.9
- term: 배향 / 配享, confidence=0.9
- term: 종사 / 從祀, confidence=0.95
- term: 십철 / 十哲,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촉沂二公의 구체적 신원(촉숙공과 기숙공으로 추정되나 문헌 확인 필요)
- 京道謁厥里에서京의 구체적 지목(수도 베이징인지 특정 지역인지)
오현종향
- 기사 ID:
22079_003_002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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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오현(5현)을 종향에 함께 모시었다[주:김홍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독음
오현종향[주:김홍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의미
조선 시대 유학의 다섯 현자를 선현의 제사인 종향에 함께 모셨다는 기록이다. 김홍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의 다섯 학자를 오현이라 칭하고 그들을 종향에 합사했음을 보여준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김홍필 / 金宏弼, confidence=0.95
- person: 정여창 / 鄭汝昌, confidence=0.95
- person: 조광조 / 趙光祖, confidence=0.95
- person: 이언적 / 李彦迪, confidence=0.95
- person: 이황 / 李滉,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贒는 賢의 오기로 추정되지만 원문 그대로 번역
(오현종향 선조)갑술전적조헌청사현종…
- 기사 ID:
22079_003_003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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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17:01.21025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30
한글 번역
갑술년에 전적(관직) 조헌이 사현(四賢)의 종사(從祀)를 청하여 대략 이렇게 말하였다. 전하께서近来 학관에서 종사(從祀)를 청하는 상소를 여러 번 드렸으나 허락하지 않으셨고, 가까운 신하들이 경연에서 아뢸 것도 응낙하지 않으시어, 온 세상의 선으로 향하려는 마음을 막고 계십니다. 소신이 진실로 한심하게 여깁니다. 김홍필이 도학의 선구자가 되어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를 여는 사업을 이루었으며, 조광조가 이 도학을 밝히어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공을 세웠고, 이언영이 도를 체득하여 순수하고 깊으며 넘어지는 것을 붙잡고 위태로운 것을 유지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 세 사람을 중국에서 구하면 허형과 설현 밖에는 거의 비할 자가 없으며, 동방에서 구하면 설종과 최치원, 안역 등의 무리들도 그 경지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물며 이황은 동방 유학의 대성을 집대성하고 주자의 직계를 계승한 분으로서, 나가서는 군주를 도에 당당하게 이끄는 성실한 마음을 서간 사이에 간절하게 피력하시고, 물러나서는 사람의 재능에 따라 교육을 베푸는 마음으로 강론하는 자리에切切하게 임하셨습니다. 선한 자는 그 말을 듣고 존경하고 동慕하였으며, 악한 자는 그 풍격을 보고 저절로 두려워 감퇴하였습니다.当今之士로서 조금이나마 군주를 존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예의와 염치를 아는 자는 모두 그 덕에 닦여 일어나게 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나라는 이미 그 생존的时候就 대용하지 못하였으므로, 보는 이를 태평의难见을 한탄하게 하였는데, 또 죽은 뒤에도 숭상하지 않으시니, 이는 막는嫉如하고 방종한 무리들이 옆에서 은밀히 기뻐할 뿐 아니라, 앞서 일어나게 된 자들도 모두泄気하게 됩니다. 삼가 전하께서는速히 사현을 포상하여 종사 열에 올려주심을 간청합니다.
독음
갑술전적조헌청사현종사종서약일전하청어관학종사지소율진이불윤근신경석지계역불응가조일세향선지심진득멸언금홍필조창举起도학而有繼往開來지업조광조계명사의而有拯세숙인지공이언영체도순독而有부전지위지지력차삼인자구치중조즉허형설현지외선유윤비而来구지동방즉설종최치원안역지도未有及其성도처자况여이황집동유지대성而来소주자지적통진즉인군당도지의성간간호장서지간퇴즉 인재설교지의절절호장의언호경모악자망풍이지감당금지사稍稍지존군경친而有례의염치자개훈기덕이흥기사들도국가旣不能대용어생시식자길탄태평지난견而又不肯종재어사후불유모질방반관설희어석지흥기자감유조사지심복원전하급장사현열어종사
의미
조선 선조 연간, 전적 조헌이 사현(四賢) 추존 종사를 건의한 상언문이다. 김홍필·조광조·이언영의 도학 공헌과 이황의 유학集大成을 칭송하며, 그들이 생전에 대용되지 못한 데 이어,死後에도 종사되지 않는 것은 세상을 선으로 이끄려는 기운을 막는다고 하였다. 특히 이황의 경우 朱子 직계를 계승한 동방 유학의 대성자로서 进退 모두 치졸한 모습을 보여줌을 강조하고, 종사 이후 선한 이는景慕하고 악한 이는 自戢한다고 하였다. 결국 조헌은 이 四贤을速히 종사列에 올릴 것을 강력히 요청하며, 국가가人才을 기용하고 추모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원문
甲戌典籍趙憲請四贒從祀略曰殿下頃於館學從祀之疏屢陳而不允近臣經席之啓亦不頷可沮一世向善之心臣竊憫焉金宏弼肇倡道學而有繼往開來之業趙光祖繼明斯道而有拯世淑人之功李彦迪體道純篤而有扶顚持危之力玆三人者求之中朝則許衡薛瑄之外鮮有倫比而求之東方則薛聰崔致遠安裕之徒未有及其見到處者況如李滉集東儒之大成而紹朱子之嫡統進則引君當道之誠懇懇乎章疏之間退則因才設敎之意切切乎講論之際善者聞言而景慕惡者望風而自戢當今之士稍知尊君敬親而有禮義廉恥者皆薰其德而興起者也但國家旣不能大用於生時識者已歎其太平之難見而又不肯崇奬於死後不惟媢嫉放誕之輩傍觀竊喜而昔之興起者咸有沮喪之心伏願殿下亟奬四賢列于從祀云云[주:靜菴集]
엔티티 후보
- person: 조헌 / 趙憲, confidence=0.95
- person: 김홍필 / 金宏弼, confidence=0.95
- person: 조광조 / 趙光祖, confidence=0.95
- person: 이언영 / 李彦迪, confidence=0.95
- person: 이황 / 李滉, confidence=0.95
- person: 허형 / 許衡, confidence=0.9
- person: 설현 / 薛瑄, confidence=0.9
- person: 설종 / 薛聰, confidence=0.9
- person: 최치원 / 崔致遠, confidence=0.9
- person: 안역 / 安裕, confidence=0.9
- work: 정앙집 / 靜菴集, confidence=0.95
- term: 종사 / 從祀, confidence=0.95
- term: 도학 / 道學, confidence=0.9
- term: 경연 / 經席, confidence=0.85
- term: 전적 / 典籍, confidence=0.85
- term: 사현 / 四賢, confidence=0.95
- term: 주자 / 朱子, confidence=0.95
- office: 관학 / 館學,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오현종향 선조) 병자백인걸소
- 기사 ID:
22079_003_003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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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7T12:00:16.622188+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31
한글 번역
병자년 백인걸의”上書”를 대략 말하면 이러하다. 우리 나라 종사(從祀)의 현자(賢者) 중에 정몽주만이 사망의 기사에 합당하고, 나머지 설종·최치원·안량 등은 모두 조광조보다 크게 떨어진다. 그런데도 이들은 오히려 성대한 예禮를 누리며, 조광조는 그 학문과 공적에도 불구하고 홀로 보사(報祀)를 입지 못하고 있으니, 신은 실로 통탄한다. 삼가 대왕에게 아뢴다. 조광조를 종사의 전례에 넣도록 의논하게 할 것을 청원하노라, 이하 생략한다. [주: 정재집]
독음
병자백인걸소약왈아국종사지현유정몽주협회우사망기여설종최치원안유배개출조광조하원심조사향 행사예이광조지학지공독무보사신실통심복망상역대신비열종사지전운운
의미
백인걸이 병자년에 올린 상소문으로, 조선의 종사(從祀) 제도를 문제 삼고 있다. 정몽주 정도만 사망의 명분에 합당하고, 설종·최치원·안량 등은 모두 조광조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데, 오히려 그들이 성대한 제사를 받는 반면 조광조만 홀로 종사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개탄하며, 조광조를 종사의 전례에 포함시킬 것을 간청하고 있다. 이는 조광조의 학덕과 공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당시 배향 제도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서얼(疏議)이다.
원문
丙子白仁傑疏略曰我國從祀之賢惟鄭夢周協于士望其餘薛聰崔致遠安裕輩皆出趙光祖下遠甚尙享盛禮而以光祖之學之功獨無報祀臣實痛心伏望商議大臣俾列從祀之典云云[주:靜菴集]
엔티티 후보
- person: 백인걸 / 白仁傑, confidence=0.95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0.95
- person: 설종 / 薛聰, confidence=0.95
- person: 최치원 / 崔致遠, confidence=0.95
- person: 안량 / 安裕, confidence=0.95
- person: 조광조 / 趙光祖, confidence=0.95
- term: 종사 / 從祀, confidence=0.95
- term: 사의 명분에 합당함 / 協于士望, confidence=0.85
- work: 정재집 / 靜菴集, confidence=0.95
- term: 상소문 / 疏,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상표 ‘丙子白仁傑疏略曰我國從…‘에서 ‘略曰’는 원문의 약술 표현인지 소장(疏狀)의 제목 표기인지 명확하지 않음
이이성혼종사의
- 기사 ID:
22079_003_003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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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17:27.89511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35
한글 번역
이이(李珥)의 성혼(成渾)을 종시(從祀)할 것에 대한 의견
독음
이이성혼종시기의
의미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이이(李珥, 성혼)를 문묘에 종시하자는 상소문. 이이는 김정호와 함께 조선 성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문묘 종시는 효자·명현·선비 등의 신위(神位)를 문묘에 배치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성혼은 이이의 호(號)이므로 이이成渾은 이이를 가리킨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0.95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0.95
- term: 종시 / 從祀, confidence=0.9
- term: 기의 / 議,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종시(從祀)의 구체적儀式 범위, 종시 대상이 이이 개인인지 그의 학통 전체인지
(이이성혼종사의) 인조즉위초해서유생…
- 기사 ID:
22079_003_003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36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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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17:38.00119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36
한글 번역
인조(即位) 초기에 해서地方的 유생들이 첫째로 소를 올려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독음
인조 즉위 초 해서 유생首领 소서 청 이이 성혼 종사 문묘 불허
의미
조선 인조 즉위 초기에 서해 지역 유생들이 이이와 성혼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수용되지 않았다는 기사로, 이이·성혼의 문묘 종사 논의가 인조 연간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인조 / 仁祖, confidence=1.0
- place: 해서 / 海西, confidence=1.0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1.0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1.0
- term: 유생 / 儒生, confidence=1.0
- term: 소(상소) / 疏, confidence=1.0
- term: 종사 / 從祀, confidence=1.0
- place: 문묘 / 文廟,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성혼(成渾): 본명·세례명 확인 필요, 成渾이 成渾(성혼) 개인명인지 이이의 호와 연결된称呼인지 추가考证 필요
(이이성혼종사의 인조) 병자태학생윤…
- 기사 ID:
22079_003_003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38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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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02T01:58:26.78274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38
한글 번역
(인조 때) 병자년에 태학생 윤성 등이 상소하여 진사 이상진이 올린 상소에 욕하고 비방한 내용을 아뢴 것을 청원하다.
독음
병자태학생윤성등상소신청진사이상진상소추저
의미
1636년(인조 14년) 태학생 윤성과 그 동료들이 인조에게 상소를 올려, 과거 급제자 진사 이상진이 올린 상소에 욕설과 비방이 포함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그 내용을 처리해달라고 청원한 기록이다. 이 기사는 조선 왕조 실록에 수록된 항목으로, 관학에 재적 중인 학생들이 과거 합격자의 상소 내용을 문제 삼은 사건을 보여준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윤성 / 尹誠, confidence=0.95
- person: 이상진 / 李象震, confidence=0.95
- term: 태학생 / 太學生, confidence=0.95
- term: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상소 / 上疏, confidence=0.95
- term: 추저 / 醜詆, confidence=0.85
- term: 신청 / 申請, confidence=0.9
- year: 병자 / 丙子,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申請(신청의 구체적 의도가 문맥상 명확하지 않음 - 해당 상소의 심리·처리를 요청한 것인지, 다른 조치를 요청한 것인지)
- 醜詆(추저)의 구체적 범위와 정도
(이이성혼종사의) 효종기축태학생홍위…
- 기사 ID:
22079_003_003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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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1:18:35.94900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39
한글 번역
효종(조선 제16대 임금) 기축년에 태학생 홍위 등이 상소하여 신청하기를, 영남地方的 유생 유직이 상소하여 추문하고 비방한 것이 있다
독음
효종 기축 태학생 홍위 등 상소하여 신청하니 영남 유생 유직의 상소 추구한 바 있다
의미
조선 효종 즉위년 기축(1649년)에 태학생 홍위 등이 상소하여, 영남地方의 유생 유직이 이전에 상소하여 추문·비방한 내용이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이는 효종 즉위 직후 학자들 사이의 분쟁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孝宗己丑太學生洪葳等上疏申請嶺南儒生柳稷上疏醜詆
엔티티 후보
- person: 홍위 / 洪葳, confidence=0.95
- person: 유직 / 柳稷, confidence=0.95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0.98
- period: 기축 / 己丑, confidence=0.95
- office: 태학생 / 太學生, confidence=0.95
- place: 영남 / 嶺南, confidence=0.98
- person: 유생 / 儒生, confidence=0.92
불확실한 어휘
- 申請(신청)의 구체적 의미 범위
- 醜詆(추구)의 구체적 비방 내용
(이이성혼종사의) 현종기해
- 기사 ID:
22079_003_004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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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18:05.85469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40
한글 번역
현종 기해(1659)년에 태학생 윤항 등이 상소하여 남중유가 상소한 내용을醜詆하였다고 청해 올렸다.
독음
현종기해태학생윤항등상소신청남중유상소추탄지
의미
현종 원년(기해, 1659)에 태학생 윤항 등이 남중유의 상소文中醜詆한 내용을 청해 달라는 상소를 올린 역사적 기록이다. 南重維는 윤증·이이 등의 당원이었던 유교 학자로, 당파 논쟁 속에서 상소를 올린 인물로 추정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윤항 / 尹抗, confidence=0.95
- person: 남중유 / 南重維, confidence=0.9
- person: 조선 현종 / 顯宗, confidence=0.95
- year: 1659년 / 己亥, confidence=0.9
- office: 태학생 / 太學生,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이이성혼출향복향
- 기사 ID:
22079_003_004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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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이이가 벼슬에서 파직되었다가 다시 벼슬에 나아가다
독음
이이성혼출향복향
의미
조선 시대 문신 이이(李珥)가 벼슬길에서 한 차례 좌절을 겪어 관직에서 파직되었다가, 이후 다시 벼슬에 돌아간 일을 기록한 기사이다. ‘성혼(成渾)’은 관직 파직을 뜻하는 표현이고, ‘출향(黜享)’은 벼슬을 잃는 것, ‘복향(復享)’은 다시 벼슬을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0.95
- term: 출향 / 黜享, confidence=0.85
- term: 복향 / 復享, confidence=0.85
- term: 성혼 / 成渾,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성혼(成渾)의 구체적事由, 이이 개인의 경력 변동 시기와 배경
김장생종향
- 기사 ID:
22079_003_005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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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김장생이 종향(종사)되었다
독음
김장생 종향
의미
김장생(1544~1620)이 문묘나 서원 등 유교 사당에서 정주(正祠)에 딸린 종사(從祀)의 위치에 올랐다는 기사를 알리는 제목이다. ‘종향’은 대성(大成殿)의 정사를 제외한 별도 공간에 배치되어 함께 제사를 받는 것을 뜻하며, 유학자 개인의 사당이나 서원 내 종향 사례도 포함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장생 / 金長生, confidence=0.95
- term: 종향 / 從享, confidence=0.92
불확실한 어휘
- 정주 종향의 구체적 대상 사당(문묘/서원/서향)
(김장생종향 숙종) 임오삼월
- 기사 ID:
22079_003_005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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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경오년 3월 경기 진사 김유만 등이 상소하여 요청하였으나, 답하기를 “작년 회사의 비준은 어찌 도덕을 모르因此而 아니라 다만 삼가 신중히 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라.” 하고, 세 번의 상소에도 불구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독음
경오 삼월 경기 진사 김유만등 소서 신청 답왈 작년 수의지 비 기지도덕이연재재 개출어신중지의也已 삼소 불윤
의미
조선 숙종 임오년(1682) 3월 경기 진사 김유만 등이 상소하여 무언가를 요청하였으나, 임금은 작年的 회의를 통한 결정이 도리를 모르음이 아니라 신중함을 위한 것이라며 이를 세 번에 걸쳐 거절한 기록이다. 김장생(金長生)의 종향(從享) 문제와 관련된 상소로 추정된다.
원문
○壬午三月京畿進士金有萬等疏申請答曰昨年收議之批豈不知道德而然哉蓋出於愼重之意也三疏不允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유만 / 金有萬, confidence=0.95
- place: 경기 / 京畿, confidence=0.95
- office: 진사 / 進士, confidence=0.95
- term: 소 / 疏, confidence=0.85
- term: 불윤 / 不允, confidence=0.9
- term: 수의 / 収議, confidence=0.8
- term: 비 / 批,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収議의 구체적 의미와 절차, 此哉의 정확한 문맥 해석이 불확실함
(김장생종향 숙종임오) 칠월
- 기사 ID:
22079_003_005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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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칠월에 경상도 유학생 김극화 등이 삼(三)건의 상소문을 올렸으나 허가되지 않았다.
독음
칠월 경상도 유생 김극화 등 삼소 신청 불윤
의미
조선 왕조 시기 경상도 유학생 김극화 등이 칠월에 불이익 처분이나 정책에 대해 삼(三)건의 상소문을 올렸으나, 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이다. 경상도 유생이三人이 함께 연서 상소한 것으로 보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김극화 / 金克和, confidence=1.0
- place: 경상도 / 慶尙道, confidence=1.0
- term: 유생 / 儒生, confidence=1.0
- term: 상소문 / 疏, confidence=1.0
- term: 불윤 / 不允,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삼소(三疏)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음
(김장생종향 숙종임오) 시월
- 기사 ID:
22079_003_005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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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시월, 관학유생 윤봉조 등이 세 차례 소를 올려 신청하였으나, 답하되 차후에 대비하는 것이 삼가는 자세로 이롭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독음
십월 관학유생 윤봉조 등 삼소 신청. 답왈: 차대 후일, 불가위 신중지도이라.
의미
시월, 김장생 종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왕래서원(館學)의 유생 윤봉조 등이 세 차례 상소를 올렸다. 이에 대해 임오년(임금)이 조심·삼가는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라며 후일을 기약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당시 예송 논쟁의 여파 속에서 유생들이 김장생의 종향을 촉진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폈으나, 임금이 쉽게 응답하지 않은 사실을 보여준다.
원문
○十月館學儒生尹鳳朝等三疏申請答曰差待後日不害爲愼重之道也
엔티티 후보
- person: 윤봉조 / 尹鳳朝, confidence=0.95
- place: 관학 / 館學, confidence=0.85
- term: 삼소 / 三疏, confidence=0.9
- term: 신중 / 愼重,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삼소의 정확한 세 번 연속 상소 여부와 각 소의 구체적 내용, 차대후일의 구체적 시점
(김장생종향 숙종) 정유사십삼년하오월
- 기사 ID:
22079_003_005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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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정유년에 이르러 마침내 문묘 종향(從享)을 요청하여 허락받다.
독음
정유 주 사십삼년 하오월 시득청 종사
의미
조선 효종 8년(1657년) 음력 5월, 유학자 김장생이 문묘에 종향되기를 요청하여 마침내 허락받았음을 기록한 기사이다. 이는 당시 유학자 달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였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장생 / 金長生, confidence=0.95
- term: 종향 / 從享, confidence=0.92
- place: 문묘 / 文廟, confidence=0.9
- year: 정유년 / 丁酉, confidence=0.78
불확실한 어휘
- 주석의 ‘四十三年’이 丁酉年의 위치와 맞지 않음. 丁酉는 1567년(선조 10) 또는 1657년(효종 8)인데, ‘사십삼년’이 이를 뒷받침하는지 불확실함.
숭절사
- 기사 ID:
22079_003_005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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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숭절사(존절의 사당)
독음
숭절사
의미
崇節祠는 충절과 의리를 숭상하기 위해 세운 사당을 뜻한다. 주로 특정인의 절의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시설을 가리키며,地方的으로 그곳 사람들의 도덕적 가치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term: 숭절사 / 崇節祠, confidence=0.95
- place: 숭 / 崇, confidence=0.9
- term: 절 / 節, confidence=0.9
- term: 사 / 祠, confidence=0.9
(숭절사) 숭절사
- 기사 ID:
22079_003_005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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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숭절사는 반수 동쪽에 있다.
독음
숭절사 재 반수 동
의미
숭절사라는 건물(사당)의 위치가 반수 동쪽임을 기술하는 기사로, 地志(지리서) 계열의 짧은 주기 기사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숭절사 / 崇節祠, confidence=0.9
- place: 반수 / 泮水,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泮水는 학교(학궁) 앞의 반원형 연못 또는 그 부근 수로를 가리키는 지명일 수 있으며, 구체적 위치는 전거 의존 필요
(숭절사) 경종조
- 기사 ID:
22079_003_006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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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경종 시대 관학 유생 이기중 등이 상소하여 아뢰기를, 먼저 돌아가신 대왕님의 글에 하번 등의 사당을 세웠다는 글이 있는데,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아 그 이름만 있고 실정이 없다. 돌아가신 대왕님께서 절의(절操)를 숭상하고 선비들의 사기를 격려하신 깊은 뜻이 장차 잊혀지고 말게 될 것입니다.速히 그 일을 시행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독음
경종조 관학 유생 이기중등 소략하여 가라사대 복견 선대대왕 지문에 하번등 입사지의 어 있으되 아직 거행하지 아니하고 그 이름은 있으나 그 실체가 없으니 선대대왕 절의激士氣의 지意向이 장차 암몰에 귀결되겠나이다 속히 행할 것을 청하니 상이 이를 허락하였음
의미
경종조(景宗朝)에 관학 유생 이기중 등이 상소하여, 선대대왕(景宗)의 지문(誌文)에 이미 何蕃等人的 사당(立祠) 건의가 있었음에도 아직 실행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선대대왕이 절의(節義)를 숭상하고 선비의 사기를 격발하신 본뜻이 잊혀지지 않도록 즉시 시행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
원문
○景宗朝館學儒生李箕重等疏略曰伏見先大王誌文有何蕃等立祠之語而尙未擧行有其名而無其實先大王尙節義激士氣之至意將歸於湮沒請速行之上許之
엔티티 후보
- person: 이기중 / 李箕重, confidence=0.95
- person: 하번 / 何蕃, confidence=0.85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8
- office: 관학 / 館學, confidence=0.9
- work: 지문 / 誌文, confidence=0.9
- term: 입사 / 立祠,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지문 내 何蕃 등 입사 관련 구절의 구체적 의미, 激士氣의 정확한 해석 범위
(숭절사) 영종원년
- 기사 ID:
22079_003_006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61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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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7T12:04:11.10690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3&aa15no=003&aa20no=22079_003_0061
한글 번역
영종 원년에 숭절사를 낙성하여 동양(董養)과 하번(何蕃)과 진동(陳東)과 구양철(歐陽徹)을 제향하였다. 처음에는 본조의 윤지술을 함께 제향하였으나, 2년이 지난 정미년 8월에 이를 철거하였다.
독음
영종원년 숭절사성 향이동양하번진동구양철 초에 본조 윤지술 병향 월이년 정미팔월 적거
의미
조선 영조 원년에 숭절사(忠烈사당)가 완공되어, 남송 멸망 시 충절을 지킨 동양·하번·진동·구양철 등 4명의 중국 선비와 조선의 윤지술을 함께 제향하였다. 그러나 2년 후 인조 5년(1627년) 8월에 윤지술의 제향이 철거되었음을 기록하는 기사이다. 숭절사는 고려 말·조선 초에 중국 식목문란에 대응한 충절 교육을 위해 건립된 사당으로 파악된다.
원문
○英宗元年崇節祠成享以董飬何蕃陳東歐陽徹初以本朝尹志述幷享越二年丁未八月撤去
엔티티 후보
- person: 동양 / 董養, confidence=0.95
- person: 하번 / 何蕃, confidence=0.95
- person: 진동 / 陳東, confidence=0.95
- person: 구양철 / 歐陽徹, confidence=0.95
- person: 윤지술 / 尹志述, confidence=0.95
- place: 숭절사 / 崇節祠, confidence=0.95
- term: 제향 / 享, confidence=0.9
- term: 철거 / 撤去, confidence=0.9
- term: 정미 / 丁未,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동양·하번·진동·구양철 등 4인의 구체적 출신지와 활동 연도, 숭절사의 건립 연도와 위치, 윤지술 제향 철거의 구체적 사유
(숭절사 영종) 경진칠월
- 기사 ID:
22079_003_006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3]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3
- 면/쪽: 0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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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1:26.65622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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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경진년 7월, 임금이 태학을 행차하여 숭절사를 차례로 방문하시어 어필(임금의 글씨)로 ‘유방아동(流芳我東)’ 네 글자를 써서 사당에 걸어놓고, 전교하기를 ‘만약 네賢(四賢)보다 더 곧은 절개를 지닌 자가 있다면, 기꺼이 배향(配享)시키겠노라’고 하였다.
독음
경진칠월 상행태학력림숭절사 이어필서 유방아동 사자 게어진 종교왈 설혹유 직절유어사현자 결불첨배
의미
영종 때 경진년 7월, 임금이 태학을 행차하여 숭절사를 순시하고 현존하는 충절之士들을 기리기 위해 ‘유방아동’ 현판을 어필로 직접 썼다. 아울러 전교를 내리어 사현(四賢)보다 뛰어난 절의의 인물이 나타날 경우에만 배향시킬 것임을 밝혔다. 이는 숭절사의 배향 기준을 엄격히 하여 충절의 신단을 지키겠다는 임금의 의지를 보인 기사이다.
원문
○庚辰七月上幸太學歷臨崇節祠以御筆書流芳我東四字揭于祠仍敎曰設或有直節愈於四賢者決不添配
엔티티 후보
- place: 태학 / 太學, confidence=0.98
- place: 숭절사 / 崇節祠, confidence=0.98
- term: 어필 / 御筆, confidence=0.95
- term: 유방아동 / 流芳我東, confidence=0.92
- term: 사현 / 四賢, confidence=0.75
- term: 배향 / 配享,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사현(四賢): 숭절사에 이미 배향된 네 현자를 특정하지 못하여 구체적 인물이 불확실함
- 직절(直節): 곧은 절개라는 의미이나文中 맥락상 구체적 선행 유형이 명시되지 않음
문헌고략권지사목록
- 기사 ID:
22079_004_000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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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01
한글 번역
문헌고략 권4 목차 - 제사 전례에 관한 이야기
독음
문헌고략권지사목록
의미
「문헌고략」 제4권 목차. 제사 전례와 신도(祠堂)·사당(廟)·제단(壇)·서원(書院) 등의 시설 및 관련 인물을 항목별로 정리한 목록이다. 삼전(三祠)·삼성사(三聖祠)·숭령전(崇靈殿)·숭인전(崇仁殿)·숭덕전(崇德殿)·경순왕 사당·동명왕庙·온조왕庙·숭의전(崇義殿)·관왕庙·독신庙·선무사·무열사·충민사·청성묘·삼충사·소정방사·김유신사·을지문덕사·악해독산천·제단·서원·음사 등 다양한 제사 관련 명칭이 수록되어 있다.
원문
文獻攷略卷之四目錄
祀典典故
○諸祠○三聖祠○崇靈殿○崇仁殿○崇德殿○敬順王祠堂○東明王廟○溫祚王廟○崇義殿○關王廟○纛神廟○宣武祠○武烈祠○忠愍祠○淸聖廟○三忠祠○蘇定方祠○金庾信祠○乙支文德祠○嶽海瀆山川○諸壇○書院○淫祠
○諸祠
○三聖祠
○崇靈殿
○崇仁殿
○崇德殿
○敬順王祠堂
○東明王廟
○溫祚王廟
○崇義殿
○關王廟
○纛神廟
○宣武祠
○武烈祠
○忠愍祠
○淸聖廟
○三忠祠
○蘇定方祠
○金庾信祠
○乙支文德祠
○嶽海瀆山川
○諸壇
○書院
○淫祠
엔티티 후보
- work: 문헌고략 / 文獻攷略, confidence=1.0
- term: 제사 전례 / 祀典, confidence=1.0
- place: 삼성사 / 三聖祠, confidence=1.0
- place: 숭령전 / 崇靈殿, confidence=1.0
- place: 숭인전 / 崇仁殿, confidence=1.0
- place: 숭덕전 / 崇德殿, confidence=1.0
- person: 경순왕 / 敬順王, confidence=1.0
- person: 동명왕 / 東明王, confidence=1.0
- person: 온조왕 / 溫祚王, confidence=1.0
- place: 숭의전 / 崇義殿, confidence=1.0
- person: 관왕 / 關王, confidence=1.0
- place: 독신묘 / 纛神廟, confidence=1.0
- place: 선무사 / 宣武祠, confidence=1.0
- place: 무열사 / 武烈祠, confidence=1.0
- place: 충민사 / 忠愍祠, confidence=1.0
- place: 청성묘 / 淸聖廟, confidence=1.0
- place: 삼충사 / 三忠祠, confidence=1.0
- person: 소정방 / 蘇定方, confidence=1.0
- person: 김유신 / 金庾信, confidence=1.0
- person: 을지문덕 / 乙支文德, confidence=1.0
- term: 악해독산천 / 嶽海瀆山川, confidence=1.0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1.0
- term: 음사 / 淫祠, confidence=1.0
제사
- 기사 ID:
22079_004_000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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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1:37.01936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02
한글 번역
문헌고략 권지사, 제전 전고(祭典典故), 여러 신祠(제사)
독음
문헌고략권지사, 제전전고, 제사
의미
「문헌고략」 권4에 수록된 항목으로, 제전(祭典)의 유래와 전고를 다루는 절에서 여러 제사(諸祠)를 설명하는 서두에 해당한다. 이 제목 자체가 본문 내용이 여러 제사祠의 제도에 관한 것임을 나타낸다.
원문
엔티티 후보
- work: 문헌고략 / 文獻考略, confidence=0.95
- term: 제전 / 祀典, confidence=0.9
- term: 제사 / 諸祠,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제사) 삼성사
- 기사 ID:
22079_004_000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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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삼성사는 황해도 문화의 구월산에 있으며, 봄과 가을에 환인(환원)과 단군(단왕)의 신위에 분향을 드리고 제사를 지낸다.
독음
삼성사 재 황해도 문화구월산 향환인환웅단군춘추강향축치제
의미
삼성사는 황해도 문화지역 구월산에 위치한 사당으로,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을 합사하여 제사지내는 제향 장소이다. 춘추(봄·가을) 시기마다 향을 피우고 축문을 읽어 제사를 올렸다. 환인은桓儉의 아버지, 환웅은 조선의 시조, 단군(단왕)은 고려조선의 건국군주로서, 한문 고전에서 흔히 삼신(三神)으로 함께 모시는 대상이다.
원문
三聖祠在黃海道文化九月山享桓因桓雄檀君春秋降香祝致祭
엔티티 후보
- place: 삼성사 / 三聖祠, confidence=1.0
- place: 황해도 / 黃海道, confidence=1.0
- place: 구월산 / 九月山, confidence=0.9
- person: 환인 / 桓因, confidence=1.0
- person: 환웅 / 桓雄, confidence=1.0
- person: 단군 / 檀君, confidence=1.0
- term: 강향 / 降香, confidence=1.0
- term: 치제 / 致祭,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제사) 숭령전
- 기사 ID:
22079_004_000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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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04
한글 번역
충령전은 평안도 평양城外에 자리 잡고 있어, 단군과 고구려 동명왕을 모시고 춘추(봄가을)에 향을 내리며 축문을 읽어 제사지내니 중사(中祀)等级的祭禮였다. 숙종이 신하를 보내어 직접 제사를 드리고, 어제(御製)로 단군 사당에 바치는 시를 지어 말하기를 ‘동해의 성인이 일찍이 나았다 함을 들었으나, 방훈(堯)과竝肩하였다. 산꼭대기에 남은 옛 사당이 있는데, 단목(檀木)이 상운(祥雲)을 안고 있다’고 하였다. 영종 원년(1725년)에 편액을 내려 충령(崇靈)이라 하고, 기유년(1729년)에 전사(典祀)와 서방직(書房直)을 두었으며, 참참(參奉) 2인을 두었다.
독음
충령전이 평안도 평양성외에 있으매 단군과 고구려 동명왕을 받들어 춘추에 향을 내리고 축문을 읽어 제사지내니 중사(中祀)라 하였으며, 숙종이 근신(近臣)을 보내어 제사를 드리고 어제(御製)로 단군 사당에 바치는 시를 지어 이르기를 ‘동해의 성인(聖人)이 일찍이 나았다는 말을 들었으나竝(竝)히 방훈(放勳)을 나이라 하였으나, 산수(山椒)에 남은庙(遺廟)가 있으니, 단목(檀木)이 상운(祥雲)을 품고 있다’고 하였다. 영종 원년(1725년)에 내려준 편액(額)이 충령(崇靈)이었으며, 기유(기酉, 1729년)에 전사(典祀) 서위직(書房直)을 두니참참(參奉) 2인을 두었다.
의미
충령전은 평안도 평양성 밖에 있는 사당으로, 단군과 고구려 동명왕을 매년 춘추에 제사지내던 곳이다. 숙종 임금 때 근신을 보내 제사를 올리고 직접 시를 지어 바쳤다. 영종 때 편액 ‘충령’을 내리고 기유년(1729년)에 관리 2인을 두었다.
원문
崇靈殿在平安道平壤城外享檀君及高句麗東明王春秋降香祝祭以中祀
肅宗遣近臣致祭御製檀君祠詩曰東海聖人作曾聞竝放勳山椒遺廟在檀木擁祥雲
英宗元年賜額崇靈己酉置殿參奉二人
엔티티 후보
- place: 충령전 / 崇靈殿, confidence=0.95
- place: 평안도 / 平安道, confidence=0.98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0.98
- person: 단군 / 檀君, confidence=0.98
- person: 동명왕 / 東明王, confidence=0.97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0.98
- person: 영종 / 英宗, confidence=0.98
- term: 중사 / 中祀, confidence=0.92
- term: 참봉 / 參奉, confidence=0.9
- term: 강향축제 / 降香祝祭,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参奉(參奉)
- 己酉년(1729년) 서방직(書房直)의 구체적 직무 범위
(제사) 숭덕전
- 기사 ID:
22079_004_000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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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07
한글 번역
숭덕전은 경상도 경주부 남월남리에 있다. 신라의 시조에게 제사지낸다. 세종 11년에 창건하고, 매년 음력 8월(중추)에 향을 내리고 축문을 읽어 제사지냈다.景宗(경종) 3년에 전액을 하사하고 참봉 1명을 두었다. (주: 박씨와 김씨의 참봉 2명) 영종(영조) 28년에 비를 세웠다.
독음
숭덕전 재 경상도 경주부 남월남리 향신라시조 세종십일년 창건 매중추강향축폐이제 경종삼년 사전액치참봉일인 주변 박씨김씨참봉이인 영종이십팔년 입비
의미
경상도 경주에 위치한 숭덕전은 신라 시조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세종 11년(1429년)에 창건된 사당이다. 이후景宗 3년(1723년경)에 전액을 하사받고 관리를 위해 참봉을 두었으며, 영조 28년(1752년)에 기립문을 세웠다. 박씨와 김씨 출신 참봉 2명이 교대로 근무하였다.
원문
崇德殿在慶尙道慶州府南月南里享新羅始祖
世宗十一年創建每仲秋降香祝幣以祭
景宗三年賜殿額置參奉一人[주:朴氏金氏參奉二人]
英宗二十八年立碑
엔티티 후보
- place: 경상도 / 慶尙道, confidence=1.0
- place: 경주부 / 慶州府, confidence=1.0
- place: 남월남리 / 南月南里, confidence=1.0
- place: 숭덕전 / 崇德殿, confidence=1.0
- person: 신라 시조(박혁거세) / 新羅始祖, confidence=0.95
- person: 조선 세종(4대 임금) / 世宗, confidence=1.0
- person: 조선 경종(5대 임금) / 景宗, confidence=0.9
- person: 조선 영조(21대 임금) / 英宗, confidence=0.85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1.0
- work: 비(기립문) / 碑,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景宗과 英宗의 정확한 재위 연호 혼동 가능성(고려와 조선 시대 교차), 주석의 박씨김씨 2인 배치와 本文의 1인 배치 불일치
(제사) 경순왕영당
- 기사 ID:
22079_004_000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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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경순왕의 영사는 경주 동북쪽 사리(四里)에 있다. 매 절일마다 주리(州吏)가 삼반(三班)을 이끌고 제사지냈다. 경종 3년에 편액(扁額)을 하사하고 참봉(參奉)을 두었으며, 영당은 이후 묘(廟)로 격을 높였다.
독음
경순왕 영당재 경주 동북 사리, 매 절일 주리 솔 삼반以来 제. 경종 삼년 지액 치 참봉, 영당 후 위 묘.
의미
경순왕 영당은 경주 동북 사리에 있었다. 매 절일 주리 등이 삼반을 이끌고 제사 지냈으며, 경종 3년 지액을 하사받고 참봉을 두었고 이후 묘로 변화했다.
원문
敬順王影堂在慶州東北四里每節日州吏率三班以祭
景宗三年賜額置參奉影堂後爲廟
엔티티 후보
- person: 경순왕 / 敬順王, confidence=0.95
- place: 경주 / 慶州, confidence=0.98
- person: 경종 / 景宗, confidence=0.97
- office: 참봉 / 參奉, confidence=0.9
- term: 영당 / 影堂, confidence=0.92
- term: 삼반 / 三班,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제사) 동명왕묘
- 기사 ID:
22079_004_000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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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동명왕묘. 고구려의 동명왕묘는 평양 성 밖에 있으며, 단군과 함께 제사지냈다. 고려 숙종 때 동명성제(동명성제)의 사당에 제사지내고 옷과 비단을 헌납하였다. 사당은 평양 인리방에 있는데, 읍里的人들이 일이 있으면 늘 빌었다. 세상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동명성제의 사당이다. 고려 시대의 동명 사당을 지금의 숭령전으로 의심하나, 다만 단군과 함께 받들어 모심에 창설된 시기를詳知하지 못한다. 평양지에 이르기를 “단군·동명 사당은 세종 11년에 비로소 설치하였다.” 하였다. 영종 을유년에 교지를 내리기를 “지금 고구려 동명왕의 建國之年이 곧 을유년이니, 이천 년 만에 다시 이 해를 맞는다.” 하였다.祭文을 지어以下的 도신에게祭奉行하게 명하였다.
독음
동명왕묘 고구려 동명왕묘재 평양성외완 여 탐군동사 고려 숙종 제 동명성제 사헌의사 사재 평양 인리방읍인 유사 척 도 영종 을유교 왈 금문 고구려 동명왕 창국지년 즉 을유운 이천년 중봉차세 제문 제하영 도신 행제
의미
고구려 동명왕을 모신 동명왕묘에 관한 기록이다. 고구려 때 평양 성밖에 단군과 함께 동명왕을 제사지냈던 사당이 있었다. 고려 숙종 때는 동명성제로 존봉하며 옷·비단을 헌납하고, 평양 인리방의 사당에서 주민들이 기도를 드렸다. 고려 시대의 동명 사당을 지금의 숭령전으로 추정하나 단군과의合享 시기는 알 수 없으며, 평양지에 따르면 세종 11년에 설치되었다. 조선 영종 을유년(1725)에 고구려 동명왕의 建國之年이 을유년이므로 2천 년 만에 그 해가 돌아왔다 하여祭文을 짓고 도신으로 하여금祭를執事하게 하였다.
원문
東明王廟高句麗東明王廟在平壤城外與檀君同祠
高麗肅宗祭東明聖帝祠獻衣幣祠在平壤仁里防邑人有事輒禱世傳東明聖帝祠
高麗時東明祠疑今之崇靈殿但與檀君竝享未詳剙自何時平壤志云檀君東明祠世宗十一年始置
○英宗乙酉敎曰今聞高句麗東明王剙國之年卽乙酉云二千年重逢此歲祭文製下令道臣行祭
엔티티 후보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0.95
- person: 단군(탐라군) / 檀君, confidence=0.95
- person: 동명왕 / 東明王, confidence=0.95
- person: 고려 숙종 / 高麗肅宗, confidence=0.95
- person: 세종(조선 세종) / 世宗, confidence=0.95
- person: 영종(조선 영종) / 英宗, confidence=0.95
- place: 숭령전 / 崇靈殿, confidence=0.85
- place: 인리방 / 仁里防, confidence=0.8
- office: 도신(관찰사) / 道臣, confidence=0.9
- term: 의비(제물로 바치는 옷과 비단) / 衣幣, confidence=0.9
- term: 을유(고구려 건국 연호로 추정되는 해) / 乙酉,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崇靈殿이 고려 시대 동명 사당인지 불확실
- 동명사 창설 시기 미상
- 동명왕 建國之年이 을유년이라는 판단의 근거
(제사) 관묘우재강진고금도
- 기사 ID:
22079_004_001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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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관왕묘(關廟)가 강진 고금도에 또 있다. 선조 정유년(1597)에 도독 진린이 창건하고, 숙종 갑자년(1684)에 개수하여 그 옆에 별도의 사당을 세워 진린을 주향으로 하고 이순신을 배향으로 삼았다. 주: 정조今上, 조정이 액액을 하사하고 탄보廟를 설치하였다.
독음
관묘又在강진고금도선조정유도독진린창건숙종갑자기수개별립일사어기방)이진린주향이순신위배[주:정종금상]조사액탄보묘
의미
강진 고금도에 관왕묘가 있으며, 1597년(선조 정유년) 명나라 도독 진린이 이순신과 함께 백절산 전투를 치른 뒤 이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1684년(숙종 갑자년) 개수 때 진린을 주향으로, 이순신을 배향으로 하는 별도의 사당을 곁에 세웠다. 이후 정조 대에 조정이 사액을 하사하고诞報廟를 설치하였다. 관왕묘는 삼국유사에도 보이는 전설적 유적으로, 이 기사는 조선 시대에 강진에도 관왕묘가 있었음을 기록한 것이다.
원문
○關廟又在康津古今島宣祖丁酉都督陳璘創建肅宗甲子改修別立一祠於其傍以陳璘主享李舜臣爲配[주:正宗今上]朝賜額誕報廟
엔티티 후보
- place: 강진 고금도 / 康津古今島, confidence=0.95
- person: 진린 / 陳璘, confidence=0.95
- person: 이순신 / 李舜臣, confidence=0.95
- place: 관묘 / 關廟, confidence=0.9
- term: 도독 / 都督, confidence=0.85
- term: 주향 / 主享, confidence=0.85
- term: 배향 / 配享, confidence=0.85
- term: 조사액 / 朝賜額, confidence=0.8
- term: 탄보묘 / 誕報廟, confidence=0.75
불확실한 어휘
- 誕報廟: 태어날 보, 좋은 소식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설과 별도의 제사를 위한 사당이라는 설이 있으며 정확한 의미가 불확실하다.
(제사) 일재안동부
- 기사 ID:
22079_004_001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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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5:06.35705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15
한글 번역
안동부에 있는 (이 기록은) 선조 무술년에 전정영 도사 설호신이 창건하여 봉안한石像이 처음에는 부성장문 안쪽 북산 꼭대기에 있었고, 또한石碑를 세워 그의 동정(東征) 싸움을 기록하였으며, 병오년에 서악의 동대로 옮겨 봉안한 것이다.
독음
일재안동부 선조 무술년 전정영 도사 설호신이 창건하여 봉안한石像이 처음에는 부성장문 안쪽 북산 꼭대기에 있었으며, 또한石碑를 세워 그의 동정(東征) 싸움을 기록하였는데, 병오년에 서악(西嶽) 동대(東臺)로 옮겨 봉안하였다.
의미
安東府(안동부)에 관한 제사 기록이다. 선조 무술(1552)년에 도사 설호신이 전정영에서 자신이 참여한 동정(동쪽 정벌) 싸움을 기념하여石像을 만들고城門 안 북산 꼭대기에安置한 후石碑를 세웠다. 이후 병오(1556)년에西嶽(서악) 동대로石像을 옮겨 다시 봉안한 사건을 기록한 내용이다.
원문
○一在安東府宣祖戊戌眞定營都司薛虎臣剙建奉安石像初在府城門內北山之頂且立石碑以記其東征之役丙午移安于西嶽東臺
엔티티 후보
- place: 안동부 / 安東府, confidence=0.98
- year: 선조 무술년(1552) / 宣祖戊戌, confidence=0.95
- place: 전정영 / 眞定營, confidence=0.9
- office: 도사 / 都司, confidence=0.93
- person: 설호신 / 薛虎臣, confidence=0.97
- place: 서악 / 西嶽, confidence=0.88
- place: 동대 / 東臺, confidence=0.88
- year: 병오년(1556) / 丙午, confidence=0.92
- term: 창건 / 剙建, confidence=0.95
- term: 봉안 / 奉安, confidence=0.97
- term: 동정(동쪽 정벌) / 東征,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眞定營(전정영)의 정확한 위치와 행정 구분이 불확실하며, 西嶽東臺의 지리적 실체에 대해서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제사) 일재성주목
- 기사 ID:
22079_004_001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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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5:25.92505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16
한글 번역
성주목에 있는 제사[一在] 중 하나. 선조 정유년(1596)에 하늘의 장수인 간국기가 처음 건립하여 조각상을 세웠는데, 매우 신령한 귀신의 현异함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성의 동문 바깥에 있었고, 영종 3년(1720)에 남정 아래로 옮겨 건립하였다.
독음
일재성주목 선조 정유년 천장 간국기 창업 유조상 심착영의 초재성동문외 영종삼년 이전건남정하
의미
조선 선조대에 성주목에 건립된 제사의 역사. 간국기가 천장의(하늘의 장수)라는 명목으로 조각상을 세웠으며, 원래 성 동문 밖에 있다가 영종 때 남정 아래로 옮겨졌다.
원문
○一在星州牧宣祖丁酉天將芉國器剙建有塑像甚著靈異初在城東門外英宗三年移建于南亭下
엔티티 후보
- place: 성주목 / 星州牧,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간국기 / 芉國器, confidence=0.8
- person: 영종 / 英宗, confidence=1.0
- term: 천장 / 天將, confidence=0.7
불확실한 어휘
(제사) 민충단
- 기사 ID:
22079_004_001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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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6:11.25294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19
한글 번역
민충단은弘濟院의 남쪽에 자리한다. 이는 명나라 조정이 내려 보낸 제물로 동쪽 원정에서 전사한 장사들을 기리는 곳이다. 처음에 선조 기묘년(1593년) 선조가 황제의 명을 받아 충민단을 쌓고, 그 위패를奉常寺의 신실에 모셨다. 영조 경진년(1700년) 영조임금이 직접 신실을 방문하여 이를 바라보고는,宣武祠 정자 동쪽에 방 하나 크기의 건물을 지을 것을 명했다. 이후宣武祠에서 제사를 지낼 때와 같은 날에 이 민충단에서도 함께 제사를 지냈다.
독음
민충단이弘濟院의 남쪽에 있다. 천조(명나라)가 내린 제물로 동정 전쟁에 전사한 장사들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처음에 선조 기사년(1593년)에 황제의 칙지를 받들어 충민단을 쌓고 위패를奉常寺 신실에 안치하였다. 영종 경진년(1700년)에 친히 신실에臨幸하여 이를 보고,宣武祠庭 동쪽에 한 칸짜리 집을 지을 것을 명하였다.宣武祠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에 함께 제사지냈다.
의미
민충단은 조선 선조 26년(1593년) 선조가 명나라 황제의 칙지에 따라 동정(동북면 정벌) 전쟁에 참여한 전사자 유족과 장수들을 위로하기 위해弘濟院 남쪽에 세운 제사 시설이다. 위패는奉常寺 신실에 보관되었다가 영조 36년(1700년) 영조임금이 직접 이를 방문하여 현지에 건물을 세우도록 명함으로써 독립적인 제사 공간으로 갖추어졌으며, 이후宣武祠와 함께 제사를 지냈다. 이 단은 동정 원정에서의 전사자를 기리는 충절을 기리는 의미를 지닌다.
원문
○愍忠壇在弘濟院南天朝賜祭戰亡東征壯士之所也初宣祖癸巳奉皇旨築忠愍壇位牌藏於奉常寺神室英宗庚辰親臨神室見之命建一間屋於宣武祠庭東宣武祠設祭日一體行祭
엔티티 후보
- place: 민충단 / 愍忠壇, confidence=0.97
- place: 홍제원 / 弘濟院, confidence=0.93
- place: 봉상사 / 奉常寺, confidence=0.96
- place: 선무사 / 宣武祠, confidence=0.88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9
- person: 영조 / 英宗, confidence=0.99
- term: 천조 / 天朝, confidence=0.85
- term: 동정 / 東征, confidence=0.9
- term: 위패 / 位牌, confidence=0.96
불확실한 어휘
- 庭東 (정자 동쪽으로 해석하나,宣武祠의 배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음)
(제사) 충민사
- 기사 ID:
22079_004_002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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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6:05.78520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21
한글 번역
충민사는 순천 좌수영 동문 밖 오리 떨어진 곳에 있다. 충무공 이순신과 수사 이억기, 보성군수 안홍국을 함께 배향하였으며, 선조 신축년에 창건하여 봄과 가을에 정화(降香)를 내리고 축문을 지어 제사를 거행한다.
독음
충민사 재 순천 좌수영 동문외 오리 향 충무공 이순신 수사 이억기 보성군수 안홍국 배 선조 신축 창업 춘추 강화축 행사
의미
충민사가 순천 좌수영 근처에 위치하며, 임란의 영웅 이순신과 함께 수사 이억기, 보성군수 안홍국을 배향함을 기록한 내용이다. 선조 신축년(1601년)에 창건되었고, 이후 춘추로 제사를 지냈다.
원문
忠愍祠在順天左水營東門外五里享忠武公李舜臣水使李億祺寶城郡守安弘國配宣祖辛丑創建春秋降香祝行祀
엔티티 후보
- place: 충민사 / 忠愍祠, confidence=1.0
- place: 순천 / 順天, confidence=1.0
- place: 좌수영 / 左水營, confidence=1.0
- person: 이순신 / 李舜臣, confidence=1.0
- person: 이억기 / 李億祺, confidence=1.0
- person: 안홍국 / 安弘國, confidence=1.0
- place: 보성 / 寶城, confidence=1.0
- office: 군수 / 郡守, confidence=1.0
- title: 충무공 / 忠武公, confidence=1.0
- title: 수사 / 水使, confidence=1.0
- period: 선조 신축(1601년) / 宣祖辛丑, confidence=1.0
- term: 배향 / 配享,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降香
- 降香은 제사 시 향을 내리는 의식으로 보이나 구체적 의례 절차는 문헌 내 추가 설명 없어 확정 불가
(제사) 삼충사
- 기사 ID:
22079_004_002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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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23
한글 번역
삼충사는 영유현에 있으며, 제갈각주와 악무목왕과 문신국공을 함께 제사한다. 처음에 선조조에 절을 창건하고 제갈각주를 제사하였으니, 이는 현에 와류산이 있기 때문이다. 숙종조에 특별히 명하여 악무목을 합사하게 하였다. 교지(勅旨)에 이르기를, ‘내가 송사를 읽다가 악무목의사를 지날 때에 낯설지 아니한 감격을 금할 수 없으니, 천 년이 지나도 경의를 일으킨다. 특별히 제갈묘에 합사하여 백대의 풍습을 세우겠다’고 하였다. 영종 경오년에 또 문신국공을 합사하게 하였다. 교지에 이르기를, ‘지금 연행을 행하다가 대승상의 유상을 얻었는데, 영기가 사람을 꿰뚫는 것을 느끼니, 정충의 의열이 사람으로 하여금 경의를 일으키게 한다. 영유 와류사와 어룡만에서 지극히 세대를 면한 감격을 느꼈으므로, 무묵을 추배配享하게 한 것도 세대를 면한 감격이었다. 이제 信國을 보내配享하려 하니, 역시 세대를 면한 감격을 이어받은 까닭이다. 아, 와류와 악묵과 信國의 충성은 하나이다’고 하였다. 이에 근시近侍를 보내어 함께 제사를 드렸다.
독음
삼충사 재영유현 향제갈각호 악무목왕 문신국공 초선조조 창건사 향제갈호 현 유와류산야 숙종조 특명 이악무목 합향 교왈 여 독송사 지악무목사 불각 광세 상감 천재 기경 특위 합향 어제갈묘 이 수 백대 풍성 영종 경오 우 이문신국공 합향 교왈 금 감 연행 유 득 대승상 유상 불각 영기 지사진 정충 의렬令人 기경 영유 와류사 어룡만 시 광세 흥감 이命 건 무묵 추배 역 광세 흥감 금 욕送信국 역계속술 광세 흥감 이연 와류 악묵信國 기 충 일정야 근시 동 위 제사
의미
삼충사는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대에 영유현 와류산의 제갈각주 묘에 창건되었고, 숙종조에 송나라의 악희(악무목왕)가, 영종 경오년에는 남송의 문천祥(문신국공)이 차례로 합사配享되었다. 세 사람은 시대와 나라가 다르지만 충군애국의 절의가 같다는 점이 강조된다. 특히 이 기록은 숙종과 영종 두 임금이 각기 연행 중이나 사서 독서 과정에서 역사적 인물에 감동받아 합사를 명한 경위를 전하며, 조선 왕실의 충절 숭배와 제사 제도적 변화를 보여준다.
원문
三忠祠在永柔縣享諸葛武侯岳武穆王文信國公初宣祖朝剙建祠享武侯以縣有臥龍山也
肅宗朝特命以岳武穆合享敎曰予讀宋史至岳武穆事不覺曠世相感千載起敬特爲合享於武侯廟以樹百代風聲英宗庚午又以文信國公合享敎曰今覽燕行攸得大承相遺像不覺英氣之射人精忠義烈令人起敬永柔臥龍祠御龍灣時曠世興感而命建武穆追配亦曠世興感今欲配信國亦繼述曠世興感而然也噫臥龍武穆信國其忠一也遣近侍同爲致祭
엔티티 후보
- place: 영유현 / 永柔縣, confidence=1.0
- person: 제갈각주(제갈양) / 諸葛武侯, confidence=1.0
- person: 악무목왕(악희) / 岳武穆王, confidence=1.0
- person: 문신국공(문천祥) / 文信國公, confidence=1.0
- place: 와류산 / 臥龍山, confidence=1.0
- place: 와류사 / 臥龍祠, confidence=1.0
- place: 어룡만 / 御龍灣, confidence=1.0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 person: 영종 / 英宗, confidence=1.0
- work: 송사 / 宋史, confidence=1.0
- work: 연행 / 燕行,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大承相 - 직함이 확실하지 않으나 문신국공 관련 유상을 전달한 고위 관직자로 추정
- 合享와 合祠의 구분 -文中 合享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의미상 合祠와 혼용된 것으로 봄
- 諸祠는 제목의 범주提示일 뿐 원문 내용이 아님
(제사) 소정방사
- 기사 ID:
22079_004_002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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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1:25:18.18979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24
한글 번역
소정방사(蘇定方祠)는 대흥(大興) 대잠도(大岑島)에 있다. 이 지역이 바로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할 때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고려 시대에 봄과 가을에 향을 내리고 축원하여 제사를 지냈다. 김유신사(金庾信祠)는 진천현(鎭川縣) 길상산(吉祥山)에 있다. 신라 시대에 사당과 사당을 모실 집을 두었고, 봄과 가을에 향을 내리고 축원하여 제사를 행했으며, 고려 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본조(조선) 태조 8년에 이르러 향을 내리고 축원하는 것을 중지시키고, 해당 지역의 관리에게 명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독음
소정방사 대흥 대잠도에 있으므로 본 고을은 바로 정방이 백제를 공격할 때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고려 때 봄가을에 향을 내리고 축원하여 제사를 지냈다. 김유신사가 진천현 길상산에 있다. 신라 때 사당과 집을 두었고 봄가을에 향을 내리고 축원하여 제사를 행했으며, 고려도 그대로 따랐다. 본조 태조 8년에 이르러 향을 내리고 축원하는 것을 중지시키고 그곳 벼슬아치에게 명하여 제사를 지냈다.
의미
이 기사는 두 곳의 제사(祭祀) 시설에 관한 기록이다. 소정방사는 조선 초기 삼포사(三浦史) 지역 중 하나인 대흥 대잠도에 있으며, 백제 정벌 때 소정방이 남긴 유적으로서 고려 때 중앙에서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김유신사는 진천 길상산에 있으며, 신라의 장수 김유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고려까지 제사가 이어졌으나, 조선 태조 8년(1395년)에 이르러 중앙의 향축(降香祝) 제사를 폐지하고 해당 지역 관리의 책임으로 전환하였다. 이는 조선建国初期 중앙에서管的 방식으로 지방 유교 제사를 통합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원문
蘇定方祠在大興大岑島以本郡是定方攻百濟時遺跡所在也高麗時春秋降香祝致祭
金庾信祠在鎭川縣吉祥山新羅時置祠宇春秋降香祝行祭高麗仍之本朝太祖八年始停降香祝令所在官致祭
엔티티 후보
- place: 대잠도 / 大岑島, confidence=0.95
- place: 대흥 / 大興, confidence=0.95
- person: 소정방 / 蘇定方, confidence=0.98
- place: 백제 / 百濟, confidence=0.98
- person: 김유신 / 金庾信, confidence=0.98
- place: 진천현 / 鎭川縣, confidence=0.95
- place: 길상산 / 吉祥山, confidence=0.9
- person: 태조 / 太祖, confidence=0.98
- term: 향축 / 降香祝, confidence=0.85
- term: 치제 / 致祭, confidence=0.9
- term: 사우 / 祠宇, confidence=0.88
불확실한 어휘
- 본郡의 범위와 대흥의 구체적 행정 구역 관계
- 祠宇를祠堂으로 볼지 별도 건축물로 볼지
- 仍之(그대로 따랐다)의 구체적 변동 여부
(제사) 김유신사
- 기사 ID:
22079_004_002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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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6:41.941603+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25
한글 번역
김유신의 사당祠堂은 또한 군위현에 있는데, 단오날 그 고을 사람들이 제사지낸다.
독음
금유신사 유 재 군위현 단오 읖인 제지
의미
이 기사는 신라의 명장 김유신(금유신)을 기리는 사당이庆尚북도 군위현에 있으며, 매년 단오절에 현지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음을 전한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erson: 김유신 / 金庾信, confidence=1.0
- place: 군위현 / 軍威縣, confidence=1.0
- term: 사당 / 祠, confidence=1.0
- term: 단오 / 端午, confidence=1.0
- term: 읍인 / 邑人, confidence=0.95
(악해독산천) 인조십구년
- 기사 ID:
22079_004_002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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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02T02:06:12.65217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28
한글 번역
인조(仁祖) 19년에 마니산에 대한 제사를 처음 베풀었다.
독음
인조십구년 시제 마니산
의미
조선 인조 19년(1641년)에 마니산에 대한 제사를 시작하였음을 기록한 기사이다.嶽海瀆山川은 산악·해역·하천 등 제사 대상 자연지리를 총칭하는 표제어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마니산 / 摩尼山, confidence=0.85
- period: 인조 19년(1641) / 仁祖十九年,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嶽海瀆山川(악해독산천): 제사 대상 지리 범주를 통칭하는 표제로, 악(嶽)·해(海)·독(瀆)·산천(山川) 네 문을 하나의 표제어로 묶은 것으로 추정되나 해당 문헌에서의 구체적 표제 체계를 확인하기 어렵다.
(악해독산천) 숙종십육년
- 기사 ID:
22079_004_002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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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8-05T22:28:20.37345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29
한글 번역
숙종 16년(1690)에 서흥군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유행하여 백성이 많이 갑자기 사망하자, 임금이 직접 제문(祭文)을 지어 예관(禮官)을 파견하여 해당 도(道)의 명산에 제사를 지냈다. 만약 그때 한발이 들어 빈다 하면, 북교(北郊)에서 악해독(嶽海瀆)과 여러 산천(山川)의 신위를 설치하고 각각 그 방위에 따라 모두 안쪽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 기미일(己未日)에 북단(北壇)에서 기우제(祈雨祭)를 거행할 적에, 헌관(獻官) 영풍군(靈豊君) 㵓이 상疏하여 아뢨기를, ‘한 마리의 돼지를 제물로 악·해·독·산·천 십구 신위에 나누어 제사지내면 한 조각씩 잘라 묻으니 그 모습이 초라하고 불충분하다. 예조(禮曹)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이렇게 시행해 온 일이니 새로增设할 수는 없다’고 하자, 의논이 끝내 그만두어졌다.
독음
숙종십육년 서흥현에 독질이 있어 백성이 많이 급히 죽으니, 상이 친히 제문을 지어 예관을 파견하여 본도의 명산에 제사지냈다. 만일 때에 한해 빈다면 북교에 나아가 악해독 및 여러 산천의 신위를 설정하고 각각 그 방향에 있어 모두 안쪽을 향하여 빈다. 기미년에 북단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헌관 영풍군 㵓이 상疏하여 말하기를, ‘일미(一豕)의 제물로 악·해·독·산·천 십구 신위에 나누어,分享하면 한 조각씩 잘라 묻으니 그 보는 바埋沒이다. 예조에서 이미 오래 시행해 온 일이라,增設할 수 없다’고 하니 의論이 끝내 그만두어졌다.
의미
숙종 16년 서흥현에서 전염병이 유행하여 많은 백성이 죽자 임금이 직접 제문을 짓고 예관을 파견해 명산에 제사지냈다. 이후 한발이 들었을 때 북교에서 악해독과 산천의 신위를 세워祈雨祭를 거행하는 과정에서, 헌관 영풍군 㵓이 제물 부족 문제를 제기했으나, 예조에서 오래 시행해 온 방식이라 변경할 수 없다는 의논이 있었다. 결국 논의는 무산되었다. 이 기사는 조선 시대 국가재앙 시 제사 절차와 예관의 상疏議論 과정을 보여주는 사料다.
원문
○肅宗十六年瑞興縣有毒疾民多暴死上親製祭文遣禮官祭本道名山
○若時旱望祈則就北郊設嶽海瀆及諸山川神位各於其方俱內向望祈己未北壇祈雨祭獻官靈豊君㵓上疏言豕一之牲分享嶽瀆山川十九神位片片裁切所見埋沒禮曹啓行之已久不可增設議遂寢
엔티티 후보
- place: 서흥현 / 瑞興縣, confidence=0.95
- period: 숙종16년(1690) / 肅宗十六年, confidence=0.98
- person: 영풍군 / 靈豊君, confidence=0.95
- place: 북교 / 北郊, confidence=0.98
- place: 북단 / 北壇, confidence=0.98
- term: 악해독산천 / 嶽海瀆山川, confidence=0.95
- office: 예조 / 禮曹, confidence=0.98
- term: 기우제 / 祈雨祭, confidence=0.95
- term: 헌관 / 獻官, confidence=0.95
- term: 독질 / 毒疾,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㵓(인명 일부 불확실)
- 片片裁切所見埋沒(제물 나누기 관련 구체적 의전 의미 불확실)
(악해독산천) 숙묘
- 기사 ID:
22079_004_003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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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7:41.36975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31
한글 번역
숙묘(정종)가 온천 행차를 가시매, 예조에서 아뢴 바에 따르면, 행차 시 지나가는 일로의 명산대천에 제사지를 갖추는데, 한강에는 삼월 초삼일 제사를 행하고, 과천의 관악산과 직산, 성거산에서는 각각 주필한 날에 제를 행하며, 온천에는 초팔일에 제를 행한다. 향축의 제물은 서울에서 내려보내고, 희생은 해당 도에서 봉진하게 하였다. 이를 따랐다.
독음
숙묘 온천 행 예조계일우 행시 소경 일로 명산대천제 한강내 삼월 초삼일 과천 관악산 직산 성거산 각어 주필일설행 온정 초팔일 설립 향축제물 자경 하송 희성 해당도 봉진 종지
의미
조선 숙묘(정종)가 온천 행차를 갈 때, 예조에서 행차 경로상의 명산대천에 제사를 드리는 절차와 제물 준비 및 희생 봉진 방식에 대해 아뢴 내용이다. 한강과 과천 관악산, 직산, 성거산, 온천 등 각 행차 경유지에서 제사를 드리며, 제물은 중앙에서, 희생은 해당 지역에서 준비한다는 취재였다.
원문
○肅廟幸溫泉禮曹啓曰幸行時所經一路名山大川祭漢江來三月初三日果川冠岳山稷山聖居山各於駐蹕日設行溫井初八日設行香祝幣物自京下送犧牲該道封進從之
엔티티 후보
- person: 숙묘 / 肅廟, confidence=0.95
- place: 온천 / 溫泉, confidence=0.9
- office: 예조 / 禮曹, confidence=0.95
- place: 한강 / 漢江, confidence=0.95
- place: 과천 / 果川, confidence=0.95
- place: 관악산 / 冠岳山, confidence=0.9
- place: 직산 / 稷山, confidence=0.85
- place: 성거산 / 聖居山, confidence=0.9
- term: 명산대천제 / 名山大川祭, confidence=0.9
- term: 주필 / 駐蹕, confidence=0.85
- term: 향축제물 / 香祝幣物, confidence=0.8
- term: 희생 / 犧牲,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聖居山의 정확한 현대 지명과 是否는 과천 직산 일대와 연관지어 해석하며, 直山大川祭의 범위와祭祀 등급에 대해 추가 고찰 필요
(악해독산천) 영종정해
- 기사 ID:
22079_004_003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3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7T12:08:33.17023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32
한글 번역
영종 정해년에 좌상 한익막의 건의에 따라 백두산의 망제를 비백산의 전례를 따라 시행하고, 갑산부에서 80리 떨어진 망덕산에祭閣을 건립한다…
독음
영종정해 인한 좌상한익막의 언으로 백두산 망제를 명하여 비백산의 예를 의향而行한다. 갑산부 80리 밖의 망덕산에 영건할祭閣… [이하 문장 계속]
의미
영종 정해년에 백두산 망제를 시행하고 그 전례를 적용하며, 각 지역의祭禮 방식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내용
원문
○英宗丁亥因左相韓翼謩言命白頭山望祀依鼻白山例設行甲山府八十里望德山營建祭閣
○方岳海瀆之祀厥典甚尊古所謂冊有天子名者是也臣聞湖南人士之言智異山之祭地方官不肯自詣使校生代行祝辭稱以國王謹遣臣某而校生爲獻官則當稱謹遣臣校生其爲猥雜不敬也大矣非但地方官之罪監司難逭其責今後若踵此習則監司守令加以不敬之罪祭禮旣訖各道監司以某官某爲獻官行祭事隨卽啓聞則宿弊痛革而於敬神之禮庶乎其可矣[주:白軒集庚子箚]
엔티티 후보
- person: 영종 / 英宗, confidence=0.95
- person: 정해 / 丁亥, confidence=0.9
- person: 한익막 / 韓翼謩, confidence=0.95
- place: 백두산 / 白頭山, confidence=0.95
- place: 비백산 / 鼻白山, confidence=0.95
- place: 갑산부 / 甲山府, confidence=0.95
- place: 망덕산 / 望德山, confidence=0.9
- place: 호남 / 湖南, confidence=0.9
- place: 지리산 / 智異山, confidence=0.9
- office: 감시 / 監司, confidence=0.85
- office: 수령 / 守令, confidence=0.85
- work: 백헌집 / 白軒集, confidence=0.9
- term: 방악해독 / 方岳海瀆, confidence=0.9
제단
- 기사 ID:
22079_004_003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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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7:48.69009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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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여러 제단
독음
제단
의미
제단(祭壇) 관련 기사의 제목으로, 본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제단이란 제사를 지내는 단을 가리키며, ‘諸壇’은 여러 제단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원문
엔티티 후보
- term: 제단 / 壇, confidence=1.0
(제단) 영성단
- 기사 ID:
22079_004_003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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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35
한글 번역
영성단은 남교에 두었으며, 입추 후 신일(辰日)에 이를 봉祭하였다. 관三품이 사배(四拜)하며, 제사가 끝난 뒤에는 다만 축배(祝幣)를 소지(燒)하였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
독음
영성단이남교에있어립추후신일이에이를축사하니관삼품이사배하며제끝나고난후에다만축배를소지하고이제폐지되었다
의미
영성단에 대한祭祀 절차를 적은 기사이다. 영성단은 남교에 설치하여 입추 후 첫 신일에祭禮를 지냈으며, 관3품 이상의 관리 등이 사배(四拜)의 예를 갖추고祭事了後 축배를 소지하였다. 이후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영성단은 본래 하늘의 영성(靈星)에게 가을 수확의 감사를 올리던 제단으로,조선初期까지 시행되었다가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원문
靈星壇在南郊立秋後辰日祀之官三品四拜祭訖只燎祝幣今罷
엔티티 후보
- place: 남교 / 南郊, confidence=0.95
- term: 입추 / 立秋, confidence=0.98
- term: 신일 / 辰日, confidence=0.85
- term: 사배 / 四拜, confidence=0.92
- term: 축배 / 祝幣, confidence=0.8
- term: 소지 / 燎, confidence=0.75
- office: 관삼품 / 官三品,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祭訖只燎祝幣는 제사 후 축배만 소지하는 것인지, 아니면祭과燎를 동시에 행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제단) 노인성단
- 기사 ID:
22079_004_003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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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8:09.14988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36
한글 번역
노인성단(노인성 제단)은 남교에 설치되어 있으며, 그 제도는 영성(靈星)과 같고, 추분일에 제사 지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
독음
노인성단이 남교에 재하며 제도가 영성과 같고 추분일에 제사지내었으나 이제 폐했다
의미
노인성단(축하성을 상징하는 별의 제단)은 남교에 위치하며, 영성 제사와 같은 제도를 따르고 추분일에 제사하였다가 현재는 이미 폐지되었음을记载한 기사이다. 노인성은 남극 노인성을 가리키며, 그 제사는 축수와 국가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행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원문
엔티티 후보
- place: 남교 / 南郊, confidence=0.95
- term: 영성 / 靈星, confidence=0.9
- term: 추분 / 秋分, confidence=0.95
- term: 노인성 / 老人星,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제단) 제성단
- 기사 ID:
22079_004_003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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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5T05:35:24.29200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38
한글 번역
제성단은 함흥부 남쪽 사십 리에 있는 도련포에 있다. 태조가 잠룡(潛龍)하던 시절에的太白星을 제사하기 위해 처음으로 창설하였다. 나라 초기에 매해 단오에 중귀인을 파견하여 어의와 안마로써 제사를 지냈다. 그 이후 본궁에서 별도로 차를 보내어 의장을 갖추어 제사하였다.
독음
제성단재함흥부남사십리도련포태조잠룡시창설제태백성국초매세단오견중귀인이어의안마致祭其后本宫别差设仪仗致祭
의미
咸興府 도련포에 있던 제성단의 역사이다. 태조(고조선 건국伝説의 태조)가龍이 되기 전 지封하기 어려웠던 시절에金星(太白星)을 제사하기 위해祭壇을 처음 세웠다. 고려 초에도 매년 단오에宮중의관을 파견하여御衣鞍馬등으로祭를 지내고, 후에本宮에서 별도의仪仗를 갖춘祭官을 보내어祭를執하였다.
원문
祭星壇在咸興府南四十里都連浦太祖潛龍時剙設祭太白星國初每歲端午遣中貴人以御衣鞍馬致祭其後本宮別差設儀仗致祭
엔티티 후보
- place: 함흥부 / 咸興府, confidence=0.95
- place: 도련포 / 都連浦, confidence=0.85
- person: 태조(단군) / 太祖, confidence=0.7
- term: 태백성(금성) / 太白星, confidence=0.9
- date: 단오 / 端午, confidence=0.95
- office: 중귀인 / 中貴人, confidence=0.65
- term: 의장 / 儀仗,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中貴人(중귀인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직칭 여부 불확실)
(제단) 선농단
- 기사 ID:
22079_004_003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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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1:27:04.76766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39
한글 번역
선농단은 서울 동쪽 외곽에 있으며, 신농과 후직의 신위를 모신다. 신농의 신위는 북쪽에 안치하고 남쪽을 향하게 하고, 후직의 신위는 동쪽에 안치하고 서쪽을 향하게 한다. 경칩절 이후, 길한 일인 해시에 제사를 지낸다.[주: 동대문 밖 보제원(普濟院) 동洞(동洞)에 관경대(觀耕臺)가 있다]
독음
선농단이 동교에 있으니, 신농씨와 후직씨의 신좌를 받들어祭祀하는데, 신농은 북쪽에 있어 남향을 향하고, 후직은 동쪽에 있어 서향을 향한다. 경첩 이후, 길한 해시에 기사한다.[주: 동대문 밖 보제원 동동에 관경대가 있다]
의미
선농단의 위치와 배치를 설명한 기사로, 동교인 서울 동쪽 외곽에 있었고, 농업의 신인 신농과 곡식의 신인 후직을 모셨다. 신위는 신농이 북쪽에 남향, 후직이 동쪽에 서향으로 배치되었으며, 경칩절 이후 해시(亥日)에 제사 지냈다. 주석에 보제원 동쪽에 관경대가 있었다는 정보를 보충한다.
원문
先農壇在東郊[주:東大門外普濟院東洞有觀耕臺]享神農氏后稷氏神座神農在北南向后稷在東西向驚蟄後吉亥享之
엔티티 후보
- place: 선농단 / 先農壇, confidence=0.98
- place: 동교 / 東郊, confidence=0.95
- person: 신농씨 / 神農氏, confidence=0.98
- person: 후직씨 / 后稷氏, confidence=0.98
- place: 보제원 / 普濟院, confidence=0.95
- place: 관경대 / 觀耕臺, confidence=0.95
- term: 기지하다 / 享之, confidence=0.85
- term: 길亥(길한 해시) / 吉亥,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惊蟄後吉亥享之의 경칩 후 해시 제사 시기와 간격, 보제원 동洞의 구체적 위치
(제단) 서자전
- 기사 ID:
22079_004_004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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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02T02:07:47.25867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40
한글 번역
서쪽의 제전(천자가 직접 갈아보는 전답)은 개성부 동쪽 스물두 리 되는 마을에 있는데, 이름하여 전농이라 한다. 궁중에 관청인 형향각이 있고, 제사용 각색 곡물을 저장해 두는 곡창이 있다. 본래 고려 시대에 행하던 교재(교외의 제사用的 공전)이었으나, 고려를 대치한 조선 왕조가 이를 제전으로 삼아, 본래의 제전 소속 노비와 예속된 노비로 하여금 경작하게 하고, 그로써 종묘 이하 일년의 제향에 바치는 지시와 종묘의 여섯 가지 곡물로 하는 천신(荐新)을 공급하게 하였다.
독음
서개전재개성부동십이리 촌왈전농 유궁해왈형향각 유고저제용각곡 본고려시대 교채공전 고려를 내왕하여 제전위하여 본적 노비개간하여 종사이하 연간 제향지시 및 종묘 육곡천신
의미
개성부 동쪽 이십 리 마을 전농에 소재한 서쪽 제전(서개전)의 현황을 적은 기사로, 본래 고려 시대의 공전에서 유래하여 조선 왕조가 제전 제도를 시행하며 소속 노비로 경작시켜 그 수확물로 종묘 이하 일년간의 제향 지시와 종묘 六穀荐新을 공급하던 관리 기구와祭祀 재정의 성격을 보여준다.
원문
○西藉田在開城府東二十里村曰典農有宮廨曰馨香閣有庫貯祭用各穀本高麗時郊采公田國朝因爲藉田使本藉奴婢耕作以供宗社以下一年元行祭享粢盛及宗廟六穀薦新
엔티티 후보
- place: 개성부 / 開城府, confidence=1.0
- place: 전농 / 典農, confidence=1.0
- place: 형향각 / 馨香閣, confidence=1.0
- place: 서개전(서쪽 제전) / 西藉田, confidence=1.0
- term: 제전 / 藉田, confidence=1.0
- term: 교채 / 郊采, confidence=0.9
- term: 공전 / 公田, confidence=1.0
- term: 지시 / 粢盛, confidence=1.0
- term: 육곡 / 六穀, confidence=1.0
- term: 천신 / 薦新, confidence=1.0
- term: 적노비(제전 소속 노비) / 籍奴婢, confidence=0.9
- office: 본적 노비 / 本籍奴婢,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郊采는郊外 제사用 채취의 약어로 보이나 정확히郊祭公田인지郊野外采擇之意인지 불확실,祠享은祠祭의 오기 가능성 있음
(제단) 동자전
- 기사 ID:
22079_004_004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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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8:48.730024+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41
한글 번역
동쪽 제전은 동교에서 십 리 거리에 있으며, 전농(典農)이라고도 부른다. 궁의 관청인 뾰분각(苾芬閣)이 있는데, 제사에 사용할 각종 곡물을 저축하는 고(庫)가 있어 종묘 이래의 무시별제(無時別祭)의 자성(粢盛)과 종묘의 육곡(六穀) 찬신(薦新)에 공급한다.
독음
동제전재동교십리역명전농유궁해왈벌분각유고저제용각곡이공종묘이하무시별제자성급종묘육곡천신
의미
동제전의 위치와 기능을 설명하는 기사이다. 동교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쪽 밭으로, 전농(典農)이라는 별칭이 있다.宫女 관청인 뾰분각 내에 제사용 곡물을 저장하는 고창이 있어, 종묘의 수시 제사供奉과 육곡 헌신에 필요한 곡물을 공급하였다.
원문
○東藉田在東郊十里亦名典農有宮廨曰苾芬閣有庫貯祭用各穀以供宗廟以下無時別祭粢盛及宗廟六穀薦新
엔티티 후보
- place: 동제전 / 東藉田, confidence=0.95
- place: 동교 / 東郊, confidence=0.95
- place: 전농 / 典農, confidence=0.9
- place: 뾰분각 / 苾芬閣, confidence=0.85
- term: 자성 / 粢盛, confidence=0.9
- term: 육곡 / 六穀, confidence=0.95
- term: 천신 / 薦新,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뾰분각(苾芬閣) -宫女의 관청명인데 宫女의 범위와 성격이 불분명
(제단) 영제
- 기사 ID:
22079_004_004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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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29:10.45336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45
한글 번역
영제는 장마로 오래 비가 내리면 도성의 사문 누상에 올라 행한다. [주: 예전에는 문 안에서 행하였으나, 동문에서 물에 잠기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누상에서 행한다]
독음
영제 구우 즉 취 도성 사문루 상행 [주:구의 문내행 인 동문 수침 금행 어루상]
의미
장마로 오래 비가 내릴 때 시행하는 영제 제사를 도성 사문의 누상 위에서 거행한다는 내용이다. 기존 문 내 제사 방식이 동문 침수 문제로 누상 이동으로 변경된 절차 변화를 주석으로 밝히고 있다.
원문
禜祭久雨則就都城四門樓上行[주:舊於門內行因東門水沈今行於樓上]
엔티티 후보
- term: 영제 / 禜祭, confidence=0.97
- place: 도성 / 都城, confidence=0.95
- place: 사문루 / 四門樓, confidence=0.88
- place: 동문 / 東門, confidence=0.93
불확실한 어휘
- 樓 (누) - 게이트 위의 누정·廊 구조로 해석되나, 문上楼阁의 구체적 형태와 규모가 불확실함
- 水沈 - 동문 일대가 물에 잠겼다는 의미이나, 영구적 지형 침강인지 일시적 범람인지는 추가 근거 필요
(제단) 마제단
- 기사 ID:
22079_004_004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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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1:28:29.96905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49
한글 번역
마제단(軍神之祭壇)은 도성 동북쪽 외지에 두어蚩尤신을 받들었고, 군사 훈련 전 날 제사를 지냈다. 신위는 곰 가죽 자리를 깔고, 앞에서 활과 화살을 놓았으며, 뒤에서 기를 세웠고, 남문 밖에는 큰 기旗 두 개를 세웠다. 지금은 이미 폐지되었다.
독음
마제단이 동북교에 있으며蚩尤신을 받들어 武를 강론하기 전날에 제사지냈다. 신위는熊席을 까고,弓矢를 앞에 놓으며,弰을 뒤에 세웠고,대기를 두 개를 남문 밖에 세웠다. 지금은 폐지되었다.
의미
고대 왕실에서 군사 훈련 전 흉악한战神(蚩尤)을 제사지내기 위해 동북 교외에 설치했던 마제단의 위치와 제사 방법, 설비(熊席,弓矢,弰,大旗)를 기술한 기사이다. 제단 배치의 공간 구조와 제사 절차가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으며,末尾「今罷」는 이후 이 제도가 폐지되었음을 알려준다.
원문
禡祭壇在東北郊享蚩尤神講武前一日祭之神位藉以熊席置弓矢於前建弰於後樹大旗二於南門外今罷
엔티티 후보
- place: 동북교 / 東北郊, confidence=0.95
- person: 치우 / 蚩尤, confidence=0.95
- term: 초(기旗의 일종) / 弰, confidence=0.7
- term: 곰자리 / 熊席, confidence=0.9
- term: 대기(큰 기旗) / 大旗, confidence=0.85
- place: 남문 / 南門,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弰(기·旗의 명칭으로 고전문헌 등장 빈도 낮아 정확한 기능 불확실)
- 마제단 제도의 실효성·실행 주체에 대한 구체적 기록 부재
(제단) 포단
- 기사 ID:
22079_004_005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5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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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1:28:47.06863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50
한글 번역
포단(祭酺祭壇)은 마보(馬步)와 같은 단(壇)에서 포신(酺神)을 받들며, 그 제사는 정해진 날이 없다. 누리它와 멧붕충이 발생하면 그때 제사를 지낸다.
독음
포단 여 마보 동단 향 포신 주:주례주 재해 인물지 신 사 무상일 유퇑면칙사지
의미
포단은 마보와同一祭壇에서 포신(재해·해로운 존재를 관할하는 신)을 제사하는祭壇이다. 제사의 날짜는 고정되지 않았으며, 누리它나 멧붕충 등虫害가 발생하면 그때마다祭사를 행하였다.
원문
酺壇與馬步同壇享酺神[주:周禮註災害人物之神]祀無常日有蝗螟則祀之
엔티티 후보
- term: 포단 / 酺壇, confidence=0.95
- term: 마보 / 馬步, confidence=0.85
- term: 포신 / 酺神, confidence=0.9
- term: 누리它·멧붕충(虫害) / 蝗螟, confidence=0.9
- work: 주례 / 周禮,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포신의 구체적 제사 대상 범위
- 馬步의祭壇 성격(군사祭인지 수령祭인지)
(제단) 정충단
- 기사 ID:
22079_004_005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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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1:29:09.38886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52
한글 번역
정충단은 진주 칵석강가에 있다. 임진년에 순절한 사람들을 제향하며, 해마다 봄가을에 향을 내리고 축원을 빌어 제사를 지낸다.
독음
정충단재진주칵석강변형임진사절인매세춘추강향축행사
의미
정충단은 진주 칵석강가에 위치한 제단으로, 임진년(임진왜란) 때 순절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향을 내리고 제사를 올렸다. 기열 대상은 1592년 임진왜란기의 순절자들이다.
원문
旌忠壇在晉州矗石江邊享壬辰死節人每歲春秋降香祝行祀
엔티티 후보
- place: 진주 / 晉州, confidence=1.0
- place: 칠석강 / 矗石江, confidence=0.9
- term: 정충단 / 旌忠壇, confidence=1.0
- term: 임진년 순절인 / 壬辰死節人, confidence=0.9
- term: 제향하다 / 享, confidence=1.0
- term: 강향축 / 降香祝, confidence=0.85
- term: 제사행하다 / 行祀,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칠석강(矗石江)의 정확한 위치와 현대 지명 대응
(제단) 민충단
- 기사 ID:
22079_004_005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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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53
한글 번역
민충단은 하나는 서쪽 교외 홍제원 옆에 있으며, 명나라 동쪽 정벌 관군을 제사 지낸다[주:상세한 내용은 위의 선무사조에서 확인]. 하나는 평양 을밀대 북쪽에 있다. 또 개성부와 벽제역에 있는 것들은 지금考证할 수 없다.
독음
민충단일재서교굥제원측제대명정동관군[주:상선무사하상세]일재평양을밀대북、又재개성부와벽제역자금불가고
의미
민충단의 위치와 관련 사항을 기록한 기사로, 동쪽 정벌(일본출병 관련)으로 전사한 명나라 관군을 제사하기 위해 서郊弘제원 옆에 설치되었다가 평양 을밀대 북쪽으로도 이전되었음을 보여준다. 개성부와 벽제역의 민충단에 대해서는史料가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원문
愍忠壇一在西郊弘濟院側祭大明征東官軍[주:詳上宣武祠下]一在平壤乙密臺北○又在開城府與碧蹄驛者今不可攷
엔티티 후보
- place: 민충단 / 愍忠壇, confidence=0.95
- place: 홍제원 / 弘濟院, confidence=0.85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0.95
- place: 을밀대 / 乙密臺, confidence=0.9
- place: 개성부 / 開城府, confidence=0.95
- place: 벽제역 / 碧蹄驛, confidence=0.9
- term: 대명정동관군 / 大明征東官軍, confidence=0.85
- work: 선무사 / 宣武祠, confidence=0.8
불확실한 어휘
- 弘濟院(홍제원)
- 征東官軍(정동관군)
- 乙密臺(을밀대)
(서원) 백천문회서원
- 기사 ID:
22079_004_005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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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56
한글 번역
백천문회서원. 선조의 어필로 하사한 편액인데, 임진년에 난로(임진왜란) 때 서원의 편액이 전쟁의 불타리에 타销毁되었다. 숙조(영조)가 어필로 다시 그 편액을 추서 하사하였다.
독음
백천문회서원 선조 어필 사액 임진지란 서원액액 훼 於 병선 숙묘 부의 어필 추사 기액
의미
충청도 예산군에 있었던 백천문회서원은 선조가 어필로 직접 쓴 편액을 내렸다. 임진왜란(임진년, 1592년) 때 서원 건물과 함께 편액이 불에 탔으나, 숙조(영조) 때 어필로 다시 써서 내려주었다. 서원 편액이 두 번에 걸쳐 왕의 친필로 하사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기사이다.
원문
○白川文會書院宣祖御筆賜額壬辰之亂院額燬於兵燹肅廟復以御筆追賜其額
엔티티 후보
- place: 백천문회서원 / 白川文會書院, confidence=0.95
- person: 선조 / 宣祖, confidence=0.98
- person: 숙조(영조) / 肅廟, confidence=0.95
- term: 어필(임금이 직접 쓴 글씨) / 御筆, confidence=0.95
- term: 병선(전쟁의 불타리) / 兵燹, confidence=0.9
- term: 서원액(서원 현판) / 院額, confidence=0.92
- term: 임진지란(임진왜란) / 壬辰之亂,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서원) 광해시평양건인현서원
- 기사 ID:
22079_004_005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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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광해군 때 평양에 건인현서원을 세웠다. 조정이 그 제사 예우의 예절을 의심하였다. 감사 김진국이 아뢴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제사 예우의 잘못은 금계휘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대저 기자는 동방의 성스러운 군주로서 이미 국가의 제사에 올려졌는데, 다시 선비들에게 사사로이 제사 지내게 한다면 이것은 참람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팔조의 교화가 구이에 먼저 시행되었는데, 이제 옛 도성인 평양에 서원을 세워 많은 선비들이在那里에서 수양하고 강론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제기和제상(俎豆)은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독음
광해시 평양 건인현서원 조정에서향사지례를 의심하였다 감사 김진국이계하기를 “향사의 오류는 금계휘로부터 비롯되었다. 대저 기자는 동방의 성군으로서 이미 사전에 실렸는데, 다시 사사로이 서원에서 제사지내니 어찌 참람되지 않겠습니까? 팔조지교가 구이에 먼저 시행되었는데, 이제 옛 도성에 서원을 세워 다수의 선비들이 저수하고 강명한데 충분하되, 조두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의미
광해군 즉위기에 평양에 건인현서원이 세워졌으나, 조정에서 그곳에서 기자를 제사하는 것이 예우상 올바른지 논쟁이 벌어졌다. 감사 김진국은 기자가 동방의 성군으로서 이미 국가祀典에 포함되어 있는데, 사설 서원에서 다시 제사하는 것은僭越이라며 반대 의견을 제기했다. 다만 서원 자체를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고, 기자의 제사만은 삼가고 교육 기능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이 논쟁의 시초는 과거 금계휘의 조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원문
○光海時平壤建仁賢書院朝廷疑享祀之禮監司金藎國啓曰享祀之誤始於金繼輝夫箕子東方之聖君旣載祀典復以士子而私祠無乃僭乎八條之敎首被於九夷今者立院於舊都多士藏修而講明足矣俎豆則不可也[주:恬軒集]
엔티티 후보
- place: 평양 / 平壤, confidence=0.95
- person: 김진국 / 金藎國, confidence=0.95
- person: 금계휘 / 金繼輝, confidence=0.95
- person: 기자 / 箕子, confidence=0.95
- work: 점전집 / 恬軒集, confidence=0.85
- term: 향사 / 享祀, confidence=0.9
- term: 조두 / 俎豆, confidence=0.85
- term: 팔조지교 / 八條之敎,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藏修는 선비의 수양을 의미하나 현대 학술용어로 완전히 대응하는 단어 부재, 建仁賢書院의 정확한 설립 연도 미확인
(서원) 경성북유조계동
- 기사 ID:
22079_004_005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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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59
한글 번역
경성의 북쪽에 조계동이 있다. 이이첨이 조(曺)가 바로 측(測)의 성이라고 생각하여 사당을 세워 그를 제사지내려 하고, 서원을 열어 제자들를 모아 자기 꾼랑이를 삼았다. 임숙영이 이것을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조계를 제사지내면서 남명(南冥)과 공덕리(孔德)를 합쳐 먼저 성인(先聖)을 제사지내는 것이겠소?” 하였다. 계해(癸亥) 반정 이후에 예조에서 아뢰기를, “선정 신하(先正臣)인 측(測)의 서원이 근년에 중흥동에 세워졌는데, 방금 들은바 사람이 능히 이를 모두 헐어 없애 그 위패까지 던졌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황송한 일입니다. 이 서원은 적괴(賊魁)인 이이첨이 주장한 것이므로, 식견 있는 선비들은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처음 창건한 뒤로부터 지금까지 지키는 자는 모두가 무뢰한 흉악한 무리들이라 경성과 외부에까지的危害를 끼치고坊閭에 피해를 입혀 원망하는 자가 많아서 이렇게 화근이 생긴 것입니다. 원망을 끼친 것은 비록 이이첨에게 있으나, 측(測)은 원래 유학의 선구자입니다. 어찌 이이첨의 사적인 사람일 뿐입니까.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으니 실로 선비 계층의 수치입니다.谨하여 본관에 군사를 많이 두어 엄하게 금단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독음
경성북유조계동 이이첨이조는측식당서원을건립하여제자를모아자기의흑견이되고임숙영들은이것을웃으며말하기를 조계는남명공덕리와합쳐선제를모시는것이니 어떠냐하였다.계해반정후 예조에서 아뢰기를 “선정 신하曺植의 서원이 중흥동에 근년에 건설되었으나 이르길 사람이 가를 파괴하여 그 위패마저 던졌다고 하니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 서원은 적괴 이이첨이 주장한 것이므로 덕이 있는 선비들은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처음 창건한 뒤로 지금까지 지키는 자는 모두 무뢰한 흉악한 무리들이니 경성과 외윤을 괴롭히고 민가에 피해를 끼쳐 원망하는 자가 많으므로 이러한 화근이 생긴 것이다. 원망을 끼친 것은 비록 이이첨에게 있으나曺植은 원래 유학의 선구자인데 어찌 이이첨의 사적인 사람이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으니 실로 선비들의 수치이다.谨하여 본관에 군사를 많이 두어 엄하게 금단하기를 바라노라 하시니라. 전하기를 ‘允[疏菴集월사남관록]’
의미
조선 광해군 때 이이첨이 측(測)의 서원을建设中흥동에 세워 그를 제사지내려 했으나, 선비 임숙영이 南冥·孔德과 합쳐 성인을 제사지내려 한다며 비판하였다. 계해(1683) 반정 이후 의식(義式)을 중심으로 朝官들이 측 서원을 헐고 위패를 던졌다. 예조는 서원이 이이첨 등 무리들이 경성을 괴롭힌 데 대한 원한이 원인이지만, 측은 유학의 선구자이므로 사적인 사람이 아니며 이런 일은 선비 계층의 수치라며, 해당 지역에 군사를 배치해 엄히 금단할 것을 요청하였다. 서원建设和毁撤가 정치적 당파 갈등과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원문
○京城北有曹溪洞李爾瞻以曹是曺植姓欲立廟祀之闢書院聚其徒爲己鷹犬任叔英聞而笑之曰曹溪祀南冥孔德里合祀先聖耶癸亥反正後禮曹啓曰先正臣曺植書院頃年建設於中興洞口卽聞有人盡撤毁至於擲其位牌云極爲可駭此書院乃賊魁爾瞻所主張故有識士子無一人與焉而自初剙建至今守直皆是無賴凶徒浸虐京外作弊閭閻怨之者多乃有此患致怨雖由於爾瞻曺植自是儒先豈爾瞻之私人哉人心如此實爲士林之羞辱請令本官多定軍人嚴加禁斷傳曰允[주:疎菴集月沙南官錄]
엔티티 후보
- place: 경성 / 京城, confidence=0.95
- place: 조계동 / 曹溪洞, confidence=0.95
- place: 중흥洞口 / 中興洞口, confidence=0.9
- person: 이이첨 / 李爾瞻, confidence=0.95
- person: 측 / 曹植, confidence=0.9
- person: 임숙영 / 任叔英, confidence=0.95
- person: 남명 / 南冥, confidence=0.85
- person: 공덕 / 孔德, confidence=0.85
- office: 예조 / 禮曹, confidence=0.95
- work: 소안전월사남관록 / 疏菴集月沙南官錄, confidence=0.9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0.95
- term: 반정 / 反正, confidence=0.95
- term: 선정신하 / 先正臣,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정과 연호 계해(癸亥)가 1683년 광해군 반정인지 확인 필요
- 공덕(孔德)의 구체적 인물 동일성
- 남명(南冥)의 구체적 인물 동일성
(서원) 효종조
- 기사 ID:
22079_004_006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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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31:41.97630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60
한글 번역
효종(孝宗) 시대에 서필원(徐必遠)의 상소로 인해 비로소 조정이 서원(書院) 금지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숙종(肅宗) 갑오년(甲午)에 이르러 여러 도(道)에 명을 내려 사사로이 서원을 건립하는 것을 금지하게 되었다. 영종(英宗) 신유년(辛酉)에는 갑오년 이후에 새로 만든 서원은 모두 헐어 없애버렸다. 이는 금령을 어기고 사사로이 건립했기 때문이다. 서필원의 상소문.
독음
효종조 인 서필원 지 소 조가 시의 설금 지 숙묘 갑오 명 제도 금기 사건 영종 신유 범 갑오 이호 창설자 개 훼철언개 인 모금지 이 사건 고야 서필원 소
의미
조선 효종 시대 서필원의 상소를 계기로 서원 금지 논의가 시작되어, 숙종 갑오년에 각도에 서원 사설 건립 금지령을 내리고, 영종 신유년에는 갑오년 이후創設된 모든 서원을 철거하였다는 역사적 내용이다. 서원 파탄의 근본 이유는 금지령을 어기고 사사로이 건립한데 있다.
원문
○孝宗朝因徐必遠之疏朝家始議設禁至肅廟甲午命諸道禁其私建英宗辛酉凡甲午以後創設者皆毁撤焉蓋以冒禁令而私建故也
徐必遠疏
엔티티 후보
- person: 서필원 / 徐必遠, confidence=1.0
- person: 효종 / 孝宗, confidence=1.0
- person: 숙종 / 肅廟, confidence=1.0
- person: 영종 / 英宗, confidence=1.0
- place: 제도(여러 도) / 諸道, confidence=1.0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1.0
- term: 소(상소문) / 疏, confidence=1.0
- term: 훼철(헐어 철거) / 毁撤, confidence=1.0
- term: 모금(금령 어김) / 冒禁, confidence=0.9
(서원 영종신유) 시월
- 기사 ID:
22079_004_006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6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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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1:30:55.68924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62
한글 번역
십월에 정언 어석윤의 소(疏)에 답하여 대략 이르길, 아, 저 태학(太學)을 보라. 이미 성묘를 모셨으니, 각 도의 향교를 돌아보라. 대聖(성인)을 모시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이 어디 있겠으며, 어찌 감히 사사로이 봉안하기를 삼감(山川)이라고 칭하겠으며, 하찮은 부유(浮儒)도 어찌 감히 자의로 서원을 건립하겠으며, 이런 폐단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태학을 도외시하고 오히려 사설 서원을 중시하게 될 것이니, 학교를 세우는 도리는 선비의 기풍을 바로잡고 성인을 존중하는 의미를 바로잡는 것인데, 그렇게 된다면 태산(泰山)의 제사(旅祭)마저 능멸할 것이니, 과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위패를 향교에 안치하고 그림을 성전에 모시는 것이 그 존중의 도리가온전히 갖추어진 것이니, 사사로이 서원을 세우는 것은 마땅하지 않은 일이다. 영종조에 조서하여 예안의 도산과 해주의 소식의 그림을 바치게 하여 어람하였다.
독음
십월 답정언 어석윤 소략 왈 억 연 피 태학 기 봉 성묘 고 제 열도 향교 재 언 막중대 성岂敢 以 사자 건봉 산명 수 동 비 조소 명 요묘 부유 亦岂敢 임 자 건원 차 폐 불 거 시 태학 호 반경 사원 우 이 귀중 설 태학 학교지도 정사습 존성의之意 기장 능이 여 태산지교岂曰 과 호 매위패 於향교 봉 화상 於성전 존지 중지 개 위 비 의 영종조 조 명 도진 예안지도 해주 소식 어람
의미
영종(英宗) 연간에 정언 어석윤이 사설 서원 건립의 폐단에 대해 간쟁(諫諍)하는 소(疏)를 올렸고, 이에 대한 답으로 태학(太學)과 향교의 존엄을 강조하면서 사설 서원의 문제를 비판하였다. 특히 성인의 위패나画像를 향교와 성전에 모시는 것이 이미 충분하며,私自 건립하는 서원은 학교의 도리를 해친다고 논하였다. 이 시기 조정은 예안 도산과 해주 소식 등 유명한 서원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바치게 하였다.
원문
○十月答正言魚錫胤疏略曰噫瞻彼太學旣奉聖廟顧諸列道鄕校在焉莫重大聖豈敢以私自建奉山名雖同非朝所命幺麽浮儒亦豈敢任自建院此弊不去視太學乎反輕私院宇而歸重設太學學校之道正士習尊聖之意其將凌夷旅泰山之敎豈曰過乎埋位牌於鄕校奉畵像於聖殿尊之重之蓋爲備矣
○英宗朝命圖進禮安之陶山海州之紹賢御覽
엔티티 후보
- person: 어석윤 / 魚錫胤, confidence=1.0
- person: 영종 / 英宗, confidence=1.0
- place: 태학 / 太學, confidence=1.0
- place: 향교 / 鄕校, confidence=1.0
- place: 도산 / 陶山, confidence=1.0
- place: 해주 / 海州, confidence=1.0
- office: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work: 서원 / 書院, confidence=1.0
- term: 위패 / 位牌,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서원) 경기도개성부
- 기사 ID:
22079_004_006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63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02T02:10:33.17626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63
한글 번역
경기도 개성부에 네 개의 서원이 있었다. 송양서원은 만력계유년에 세워졌고, 선조계축년에 사액을 내려받았다. 고용된 인물은 정몽주(고려의 절친한 신하), 서경덕(중종 때의 은일자), 김상헌(인조의 수상), 김윤(효종의 수상), 조익(효종의 수상)이다. 꽃골 서원은 만력기유년에 서경덕의 옛터에 세워졌고, 선조갑인년에 사액을 내려받았다. 고용된 인물은 서경덕, 박순(선조의 수상), 허엽(선조의 명신), 민순이다. 다섯 정상 서원은 신유년에 세워지고 을축년에 사액을 내려받았다. 고용된 인물은 박상충(자는 성부, 호는 남, 시호는 문정, 고려 보문각 직제학, 목은의 문인), 박세채(숙종의 수상)이다. 숄절 서원은 현종병오년에 세워지고 숙종계유년에 사액을 내려받았다. 고용된 인물은 송상현(선조 임진년에 난관을 막아낸 명신), 김연광(호는 송암, 개성에 거처하면서 임진년에淮陽府使로 순절하고 예조参知에 추증됨), 유극량(선조 임진년에 난관을 막아낸 명신)이다.
독음
경기도개성부 송양서원 주:만력계유건선조계축사액정몽주 주:고려절신 서경덕 주:중종유일 김상헌 주:인조상 김윤 주:효종상 조익 주:효종상 방유정몽주화상 화곡서원 주:만력기유건화담유기선조갑인사액 서경덕 박순 주:선조상 허엽 주:선조명신 민순 주:추서 오관서원 주:신유건을축사액 박상충 주:자성부호남시문정고려보문각직제학목은문인 박세채 주:숙종상 숄절서원 주:현종병오건숙종계유사액 송상현 주:선조임진명신 김연광 주:호송암거송도임진淮陽府使사절증예삼 유극량 주:선조임진명신
의미
개성부에 소재한 네 서원의 기록이다. 송양서원은 정몽주, 서경덕 등 고려와 조선의 명현을 모셨고, 화곡서원은 서경덕의 유적에 세워졌다. 오관서원은 목은 이곡의 문인 박상충과 박세채를 모셨으며, 숄절서원은 임진왜란에서 순절한 유극량과 김연광을 모셨다. 각 서원마다 건립 연대와 사액(하시) 연대가 주석으로 달려 있다.
원문
京畿道開城府
崧陽書院[주:萬曆癸酉建宣祖癸丑賜額]鄭夢周[주:高麗節臣]徐敬德[주:中宗遺逸]金尙憲[주:仁祖相]金堉[주:孝宗相]趙翼[주:孝宗相○傍有鄭夢周畵像]
花谷書院[주:萬曆己酉建花潭遺基宣祖甲寅賜額]徐敬德朴淳[주:宣祖相]許曄[주:宣祖名臣]閔純[주:追託]
五冠書院[주:辛酉建乙丑賜額]朴尙衷[주:字誠夫號潘南謚文正高麗寶文閣直提學牧隱門人]朴世采[주:肅宗相]
崇節書院[주:顯宗丙午建肅宗癸酉賜額]宋象賢[주:宣祖壬辰名臣]金鍊光[주:號松巌居松都壬辰淮陽府使死節贈禮參]劉克良[주:宣祖壬辰名臣]
엔티티 후보
- place: 경기도개성부 / 京畿道開城府, confidence=0.98
- place: 송양서원 / 崧陽書院, confidence=0.95
- place: 화곡서원 / 花谷書院, confidence=0.95
- place: 오관서원 / 五冠書院, confidence=0.95
- place: 숄절서원 / 崇節書院, confidence=0.95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0.98
- person: 서경덕 / 徐敬德, confidence=0.98
- person: 김상헌 / 金尙憲, confidence=0.98
- person: 김윤 / 金堉, confidence=0.98
- person: 조익 / 趙翼, confidence=0.98
- person: 박순 / 朴淳, confidence=0.98
- person: 허엽 / 許曄, confidence=0.98
- person: 민순 / 閔純, confidence=0.98
- person: 박상충 / 朴尙衷, confidence=0.98
- person: 박세채 / 朴世采, confidence=0.98
- person: 송상현 / 宋象賢, confidence=0.98
- person: 김연광 / 金鍊光, confidence=0.98
- person: 유극량 / 劉克良, confidence=0.98
- office: 淮陽府使, confidence=0.85
- office: 보문각직제학 / 寶文閣直提學, confidence=0.9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0.98
- term: 사액 / 賜額,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花潭(서경덕의 호인지 확인 필요)
- 傍有鄭夢周畵像(서원 옆에 정몽주 초상화가 있다는 기록의 추가 의미)
(서원) 강화
- 기사 ID:
22079_004_006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64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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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64
한글 번역
강화 강하(江華) 충렬사[주: 인조 임오년에 건립하고 무술년에 편액을 하사받음]에 김상용[주: 인조 때의 재상]·이상길·이시직·홍명형·황선신·권순장·김익겸[주: 이상 동쪽 월랑에 봉안됨]과, 심괄·윤경·송시영[주: 야은]·구원일·강흥업[주: 이상 서쪽 벽면에 함께 봉안되었으며, 모두 강화도에서 충절로 순절한 인물임]의 위패를 모셨다. 강하 영당[주: 갑자년에 건립]에는 이민서와 조관빈의 영정을 모셨다[주: 병술년에 건립]. 이인엽의 영정도 있었다. 보명 영당[주: 영종 기축년에 건립, 갑괄진에 있으며 중국인의事迹을 상세히 기재함]에는 이성樑[주: 황조(明)의녕원백]과 이여매[주: 황조의 도독]의 영정을 모셨다.
독음
강화 충렬사 주인조 임오건 무술사액 김상용 주인조상 이상길 이시직 홍명형 황선신 권순장 김익겸 주이상동무 심괄 윤경 송시영 주야은 구원일 강흥업 주이상서벽병상강도사절 강하영당 주갑자건 이민서 조관빈영당 주병술건 이인엽 보명영당 주영종 기축건 재갑괄진 수사중국인 이성樑 주황조녕원백 이여매 주황조도독
의미
강화도 서원에 관한 기록이다. 충렬사는 인조 임오년(1642)에 건립되어 강화도에서 순절한 열사들의 위패를 모셨으며, 서쪽 벽면의 인물들은 모두 강화도 최후에 충절을 지킨 인물들이다. 강하 영당과 보명 영당은 강화도 갑괄진 지역에 건립된影堂으로, 강화와 관련된 조선과 중국 인물들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특히 보명 영당의 이성樑·이여매는 명나라 장수로서 조선과 교류한 인물로 기록되었다.
원문
江華
忠烈祠[주:仁祖壬午建戊戌賜額]金尙容[주:仁祖相]李尙吉李時稷洪命亨黃善身權順長金益兼[주:以上東廡]沈誢尹烇宋時榮[주:野隱]具元一姜興業[주:以上西壁幷詳江都死節]
江河影堂[주:甲子建]李敏敍趙觀彬影堂[주:丙戌建]李寅燁
保明影堂[주:英宗己丑建在甲串津詳中國人]李成樑[주:皇朝寧遠伯]李如梅[주:皇朝都督]
엔티티 후보
- place: 강화도 / 江華, confidence=1.0
- place: 갑괄진 / 甲串津, confidence=0.95
- office: 충렬사 / 忠烈祠, confidence=1.0
- office: 영당 / 影堂, confidence=1.0
- person: 김상용 / 金尙容, confidence=1.0
- person: 이상길 / 李尙吉, confidence=1.0
- person: 이시직 / 李時稷, confidence=1.0
- person: 홍명형 / 洪命亨, confidence=1.0
- person: 황선신 / 黃善身, confidence=1.0
- person: 권순장 / 權順長, confidence=1.0
- person: 김익겸 / 金益兼, confidence=1.0
- person: 심괄 / 沈誢, confidence=1.0
- person: 윤경 / 尹烇, confidence=0.9
- person: 송시영 / 宋時榮, confidence=1.0
- person: 구원일 / 具元一, confidence=1.0
- person: 강흥업 / 姜興業, confidence=1.0
- person: 이민서 / 李敏敍, confidence=1.0
- person: 조관빈 / 趙觀彬, confidence=1.0
- person: 이인엽 / 李寅燁, confidence=1.0
- person: 이성량 / 李成樑, confidence=1.0
- person: 이여매 / 李如梅, confidence=1.0
- term: 동쪽 월랑 / 東廡, confidence=0.95
- term: 서쪽 벽면 / 西壁, confidence=0.95
- term: 녕원백 / 寧遠伯, confidence=0.95
- term: 도독 / 都督,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 李成樑의 한자성 李 성이 成인지 朴성 李朴 혼동 가능성
- 尹烇의 정확한 음독 윤경 외 가능성
(서원) 적성
- 기사 ID:
22079_004_006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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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32:42.55652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66
한글 번역
적성(서원 이름). 임첨서원[주: 임진년에 창건을 당정에서 갑진년에 편액을 하사받아 정절이라 했다]. 남을진[주: 고려 문하부사, 호는 사천]. 조견[주: 태조 시기 고려의 절신(충절한 신하)]
독음
적성 임첨서원 주: 임진건 당정 갑진사액 정절 남을진 주: 고려 문하부사 호 사천 조견 주: 태조조 고려 절신
의미
임진년(1592)에 창건되고 갑진년(1604)에 당정(경상도 당주군)에서 정절이라는 편액을 하사받은 임첨서원의 적성 서원(書院). 이 서원은 고려 문하부사 남을진(호 사천)의 후손이거나 관련인사로, 고려 태조时期的 절신(충절한 신하) 조견과 연관이 있다. 서원 편액의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문
積城
臨澗書院[주:壬辰建當宁甲辰賜額貞節]南乙珍[주:高麗門下府事號沙川]趙狷[주:太祖朝高麗節臣]
엔티티 후보
- place: 적성 / 積城, confidence=0.9
- place: 임첨서원 / 臨澗書院, confidence=0.85
- place: 당정 / 當宁, confidence=0.75
- person: 남을진 / 南乙珍, confidence=0.9
- office: 문하부사 / 門下府事, confidence=0.9
- person: 조견 / 趙狷,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壬辰建 (임진건) - 서기 1592년으로 추정되나 해당 연호 확인 필요
- 當宁 (당정) -的地名으로 당주군 일대 추정, 완전한 위치 미확인
- 甲辰 (갑진) - 서기 1604년 추정
- 節臣 (절신) - 구체적 직위他还是관직의 의미 여부
(서원) 파주
- 기사 ID:
22079_004_006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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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20T01:31:43.71290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67
한글 번역
파주 파산서원(파악서원)[주:용경 무진년(1572년)에 건립하고, 효종 경인년(1660)에扁額을 내려赐액] 성수琛[주:명종 때의 유逸] 성수琮 백인傑[주:선조의 명신] 성혼[주:선조의 유현] 자운서원[주:만력 기유년(1609년)에 건립하고,崇祯 연간에扁額을 내려赐액] 이역[주:선조의 유현] 김장생 박세채 풍계사우[주:숙종 갑술년(1694년)에 건립하고 을해년(1695)에扁額을 내려赐액] 오두인 이세화 박태보
독음
파주 파산서원[주:용경무진건효종경인사액]성수琛[주:명종유일]성수琮백인傑[주:선조명신]성혼[주:선조유현] 자운서원[주:만력기유건숭정사액]이역[주:선조유현]김장생박세채풍계사우[주:숙묘갑술건을해사액]오두인이세화박태보
의미
파주 지역에 소재한 세 곳의 서원·사우와 그 추존 인물 목록이다. 파산서원(파악서원)은 1572년 건립되어 1660년 효종이 친필 편액을 내린 곳으로, 명종 유逸 출신의 成守琛, 成守琮 형제와 선조 명신 白仁傑, 선조 유현 成渾을 배향하였다. 자운서원은 1609년 건립되어崇祯 연간에 편액을 받은 곳으로, 선조 유현인 李珥(율곡 이이), 김장생, 박세채를 배향하였다. 풍계사우는 1694년 숙종이 친필 편액을 내려준 사우로, 오두인·이세화·박태보 등 효종·숙종 연간 清要직을 역임한 重臣들을 배향하였다. 서원편액(書院扁額)은 임금의 서명이나 친필로 내려지는 최고荣誉称号으로, 각 서원의 건립 연대와恩賜 시기가 괄호 주석으로 기재되어 있다.
원문
坡州
坡山書院[주:隆慶戊辰建孝宗庚寅賜額]成守琛[주:明宗遺逸]成守琮白仁傑[주:宣祖名臣]成渾[주:宣祖儒賢]
紫雲書院[주:萬曆己酉建崇禎賜額]李珥[주:宣祖儒賢]金長生朴世采豊溪祠宇[주:肅廟甲戌建乙亥賜額]吳斗寅李世華朴泰輔
엔티티 후보
- place: 파주 / 坡州, confidence=1.0
- place: 파산서원(파악서원) / 坡山書院, confidence=1.0
- place: 자운서원 / 紫雲書院, confidence=1.0
- place: 풍계사우 / 豊溪祠宇, confidence=1.0
- person: 성수琛 / 成守琛, confidence=1.0
- person: 성수琮 / 成守琮, confidence=1.0
- person: 백인傑 / 白仁傑, confidence=1.0
- person: 성혼 / 成渾, confidence=1.0
- person: 이역(율곡 이이) / 李珥, confidence=1.0
- person: 김장생 / 金長生, confidence=1.0
- person: 박세채 / 朴世采, confidence=1.0
- person: 오두인 / 吳斗寅, confidence=1.0
- person: 이세화 / 李世華, confidence=1.0
- person: 박태보 / 朴泰輔, confidence=1.0
- work: 편액 / 扁額, confidence=1.0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1.0
- term: 사우 / 祠宇, confidence=1.0
(서원) 여주
- 기사 ID:
22079_004_0068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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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27T12:12:13.68769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68
한글 번역
여주 沂川書院[만력 기축년에 세우고, 임진년의 병화로 잿더미가 되었으며, 기유년에 다시 세우고, 인조 을축년에 액을 하사받았다] 김안국[기묘년의 명현] 이언제[중종대의 유현] 홍인우 정효 이원익[선조의 재상] 홍명수 이식 孤山書院[숭정 병인년에 세우고, 무자년에 액을 하사받았다] 이존오[자호는 순경, 호는 石灘, 경주 사람, 고려의 正言으로 신곤을 꾸짖어 남쪽 변방의監務로 벼슬하다가 죽었다]
독음
여주 이천서원[만력기축건임진병화회진기유중건인조을축사액]김안국[기묘명현]이언제[중종유현]홍인우정효이원익[선조상]홍명수이식 고산서원[숭정병인건무자사액]이존오[자순경호석탄경주인고려정언상서책신곤점장사감무졸]
의미
여주 지역에 있던 두 서원의 기록이다.沂川書院은 만력 기축년(1589)에 처음 세워지고 임진왜란 병화로 소실된 후 기유년(1609)에 재건되어 인조 을축년(1625)에 내림어액을 받은 곳으로, 김안국·이언제·홍인우·정효·이원익·홍명수·이식 등 한국의 유명한 유현들을 배향하였다. 孤山書院은 숭정 병인년(1636)에 창건되어 무자년(1648)에 어액을 받은 서원으로, 이존오를 모셨는데, 이존오는 고려 시대에 정언으로서 신곤을 비판하다 남쪽 변방 관리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죽은 인물이다.
원문
驪州
沂川書院[주:萬曆己丑建壬辰兵火灰燼己酉重建仁祖乙丑賜額]金安國[주:己卯名賢]李彦迪[주:中宗儒賢]洪仁祐鄭曄李元翼[주:宣祖相]洪命耉李植
孤山書院[주:崇禎丙寅建戊子賜額]李存吾[주:字順卿號石灘慶州人高麗正言上疏責辛旽眨[교정주:貶]長沙監務卒]
엔티티 후보
- place: 여주 / 驪州, confidence=1.0
- place: 이천서원 / 沂川書院, confidence=1.0
- person: 김안국 / 金安國, confidence=1.0
- person: 이언제 / 李彦迪, confidence=1.0
- person: 홍인우 / 洪仁祐, confidence=1.0
- person: 정효 / 鄭曄, confidence=1.0
- person: 이원익 / 李元翼, confidence=1.0
- person: 홍명수 / 洪命耉, confidence=1.0
- person: 이식 / 李植, confidence=1.0
- place: 고산서원 / 孤山書院, confidence=1.0
- person: 이존오 / 李存吾, confidence=1.0
- term: 정언 / 正言, confidence=1.0
- term: 감무 / 監務,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서원) 광주
- 기사 ID:
22079_004_006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69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20T01:32:02.16702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69
한글 번역
광주 현절사는 무진년에 세워지고 임금의 편액을 받은 사당이다. 김상헌, 정온(인조의 명신), 홍익한, 윤집, 오달제(이 세 분은 모두 학사)를 모셨다. 귀암서원은 정사년에 세워지고 을해년에 편액을 받았다. 이집(자를 호연, 호를 도촌, 광주인, 고려 판봉사상사), 이양중(자를 호, 호를 석탄, 고려 형조삼의), 정성근(갑자 화적), 정曄, 오윤겸, 임숙영(명신)을 모셨다. 수곡서원은 을축년에 세워지고 숙종 때 을해년에 편액을 받았다. 이의건(자를 의중, 호를 동은, 완산인, 공조정랑, 증집의), 조凁, 이후원(효종의 재상)을 모셨다. 명고서원은 신축년에 세워지고 기유년에 편액을 받았다. 조익, 조복양, 조지겸을 모셨다.
독음
광주 현절사[주: 무진 건지 액]김상헌정온홍익한윤집오달제[주: 이상이 삼 학사] 귀암서원[주: 정사 건 을해 지 액]이집[주: 자호연호도촌광주인고려판봉사상사]이양중[주: 자호석탄고려형조삼의]정성근[주: 갑자 화적]정曄 오윤겸임숙영[주: 명신] 수곡서원[주: 을축 건숙종을해지 액]이의건[주: 자의중호동은완산인공조정랑증집의]조凁이후원[주: 효종상] 명고서원[주: 신축 건기유 지 액]조익조복양조지겸
의미
조선 시대 광주 지역에 있던 네 곳의 서원(서당·사당 성격의 교육기관)을 정리한 기사이다. 현절사는 조정에 충절을 다한功臣을 모신 사당이고, 나머지 세 서원은 학문을启迪하고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대부분 임금의 공식 편액(寺額)을 받아 인정받은 서원이며, 모신 인물들은 고려 말~조선 시대의 문신·학자들이다. 효종 때首相 이후원이 수곡서원에 함께 모시된 점이 눈에 띈다.
원문
廣州
顯節祠[주:戊辰建賜額]金尙憲鄭蘊[주:仁祖名臣]洪翼漢尹集吳達濟[주:以上三學士]
龜巖書院[주:丁巳建乙亥賜額]李集[주:字浩然號遁村廣州人高麗判奉常寺事]李飬中[주:字號石灘高麗刑曹參議]鄭誠謹[주:甲子禍籍]鄭曄
吳允謙任叔英[주:名臣]
秀谷書院[주:乙丑建肅宗乙亥賜額]李義健[주:字義仲號峒隱完山人工曹正郞贈執義]趙凁李厚源[주:孝宗相]
明皐書院[주:辛丑建己酉賜額]趙翼趙復陽趙持謙
엔티티 후보
- place: 광주(경기 광주) / 廣州, confidence=1.0
- place: 현절사 / 顯節祠, confidence=1.0
- place: 귀암서원 / 龜巖書院, confidence=1.0
- place: 수곡서원 / 秀谷書院, confidence=1.0
- place: 명고서원 / 明皐書院, confidence=1.0
- person: 김상헌 / 金尙憲, confidence=1.0
- person: 정온 / 鄭蘊, confidence=1.0
- person: 홍익한 / 洪翼漢, confidence=1.0
- person: 윤집 / 尹集, confidence=1.0
- person: 오달제 / 吳達濟, confidence=1.0
- person: 이집 / 李集, confidence=1.0
- person: 이양중 / 李飬中, confidence=1.0
- person: 정성근 / 鄭誠謹, confidence=1.0
- person: 오윤겸 / 吳允謙, confidence=1.0
- person: 임숙영 / 任叔英, confidence=1.0
- person: 이의건 / 李義健, confidence=1.0
- person: 이후원 / 李厚源, confidence=1.0
- person: 조익 / 趙翼, confidence=1.0
- person: 조복양 / 趙復陽, confidence=1.0
- person: 조지겸 / 趙持謙, confidence=1.0
- office: 판봉사상사 / 判奉常寺事, confidence=1.0
- office: 형조삼의 / 刑曹參議, confidence=1.0
- office: 공조정랑 / 工曹正郞, confidence=1.0
- office: 집의 / 執義, confidence=1.0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1.0
- term: 학사 / 學士, confidence=1.0
- term: 명신 / 名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정曄(정엽인지 확정 불가)
- 조凁(조심과 다른 인물인지 불확실)
(서원) 수원
- 기사 ID:
22079_004_007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70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02T09:33:14.141801+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70
한글 번역
수원(서원 이름). 매곡사(奉宋時烈을 모신 사당)[주:숙종 갑술년에 창립하고 을해년에 어필을 하사받았으며, 갑진년에 멸망하고 을사년에 다시 어필을 환부받았다] 송시열[주:화상이 있다].
독음
수원 매곡사[주:숙종갑술건을해사액갑진파을사환액] 송시열[주:유화상]
의미
수원 서원은 경기도 수원 지역에 설립된 서원으로, 충의공 송시열을 모신 매곡사를 갖추고 있었다. 숙종 갑술년(1694)에 창건되어 을해년(1695)에 현존 어필을 하사받았다. 이후 갑진년(1724)에 화재로 훼손되었다가 을사년(1725)에 어필을 다시 환부받았다. 송시열의 화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원문
水原
梅谷祠[주:肅宗甲戌建乙亥賜額甲辰毁乙巳還額]宋時烈[주:有畵像]
엔티티 후보
- place: 수원 / 水原, confidence=1.0
- work: 매곡사 / 梅谷祠, confidence=0.9
- person: 송시열 / 宋時烈, confidence=1.0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1.0
- term: 어필 / 額, confidence=0.95
- person: 숙종 / 肅宗,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매곡사(제향 대상의 호칭인지 장소 기술인지 불분명)
(서원) 남양
- 기사 ID:
22079_004_007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7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27T12:12:41.891132+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71
한글 번역
남양(南陽)에 있는 용백사[주:병오년에 건립하고, 현종 때 기유년에 편액을 내림] 한(漢)의 제갈량, 송(宋)의 호안국, 윤기를 모셨다. 안곡서원[주:현종 무신년에 건립하고, 경기종 신유년에 편액을 내렸다가 기유년에 철거하고 경신년에 다시 복립함] 박세훈[주:호를 백촌이라 하고, 첨정 벼슬에 올라 능을 증진시켜리议事에 추증함], 박세희[주:기묘년에 명현(名賢)으로 선정됨], 홍첩[주:선조의 재상임]이 배향되었다.
독음
남양용백사[주:병오건 현종 기유사액]한 제갈량송 호안국윤기안곡서원[주:현종 무신건 경기종 신유사액 기유철경신복]박세훈[주:호 백촌첨정 증리의]박세희[주:기묘 명현]홍첩[주:선조 상]
의미
조선 시대 남양 지역에 두 개의 서원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첫째 용백사는 병오년에 건립되어 한·송의 명현 제갈량·호안국과 조선의 윤기를 모셨다. 둘째 안곡서원은 무신년에 건립되었다가 신유년에 편액을 받았다가 철거, 경신년에 복립된 학교로, 조선의 박세훈·박세희·홍첩 세 학자를 배향하였다. 서원의 건립과 편액, 폐지, 복립 과정이 춘추전 시대 이후 서원의 변천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원문
南陽
龍栢祠[주:丙午建顯宗己酉賜額]漢諸葛亮宋胡安國尹棨
安谷書院[주:顯宗戊申建景宗辛丑賜額己酉撤庚申復]朴世勳[주:號栢村僉正贈吏議]朴世熹[주:己卯名賢]洪暹[주:宣祖相]
엔티티 후보
- place: 남양 / 南陽, confidence=0.95
- place: 용백사 / 龍柏祠, confidence=0.9
- place: 안곡서원 / 安谷書院, confidence=0.95
- person: 제갈량 / 諸葛亮, confidence=0.98
- person: 호안국 / 胡安國, confidence=0.98
- person: 윤기 / 尹棨, confidence=0.95
- person: 박세훈 / 朴世勳, confidence=0.97
- person: 박세희 / 朴世熹, confidence=0.97
- person: 홍첩 / 洪暹, confidence=0.97
- office: 첨정 / 僉正, confidence=0.88
- office: 리의 / 吏議, confidence=0.88
- term: 사액(편액 하달) / 賜額, confidence=0.85
- term: 철(철거) / 撤, confidence=0.9
- term: 복(복립) / 復,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 주석 내 한국의 연호(병오, 무신 등)가 현종 즉위년 기준인지, 왕비 윤씨가 죽은 해 기준인지 확인 필요
- 朴世熹의 ‘기묘 명현’ 선정 연도가 태종·성종·선조 연간인지 특정 연호 확인 필요
(서원) 장단
- 기사 ID:
22079_004_007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72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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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34:33.699545+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72
한글 번역
장단의 임강서원은 인조 임신년에 창건되고 숙종 갑술년에 서액을 하사받았다. 안裕(개명하여 珦, 호는晦軒, 시호는文成, 문묘에 배향되었다)과 이色(고려의 절신), 김安國, 김正國([기묘]년에 호된 명현) 등의 서적이 있다.
독음
장단 임강서원[인조계미건숙종갑서사액] 안정[개명양호회현시문성문묘배향] 이색[고려절신] 김안국 김정국[기묘명현]
의미
장단 지역에 있던 임강서원의 기본 정보와 해당 서원에 서적을 남긴 인물들을 기재한 항목이다. 인조 연간에 창건되고 숙종 연간에 서액을 하사받은 서원으로, 고려 말 충신 이색, 문묘 배향賢臣 안정, 그리고 기묘년(1519)에 뽑힌 명현 김정국 등 당대 유학자들이 서적을 남겼다.
원문
長湍
臨江書院[주:仁祖癸未建肅宗甲戌賜額]安裕[주:改名珦號晦軒謚文成文廟配享]李穡[주:高麗節臣]金安國金正國[주:己卯名賢]
엔티티 후보
- place: 장단 / 長湍, confidence=1.0
- work: 임강서원 / 臨江書院, confidence=1.0
- person: 안녕하세요 / 安裕, confidence=0.8
- person: 이색 / 李穡, confidence=1.0
- person: 김안국 / 金安國, confidence=1.0
- person: 김정국 / 金正國, confidence=1.0
- office: 절신 / 節臣,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장단 지명의 정확한 현대 행정구역 대응 여부
- 安裕의 정확한 생몰 연도 및 세부 경력
(서원) 용인
- 기사 ID:
22079_004_0073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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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7-02T02:11:19.711497+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73
한글 번역
용인 심곡서원은 효종 경인년에 건립되어 편액을 내려주었고 조광조가 관련되었다. 충열사는 만력 병자년에 건립되어 광해군 기유년에 편액을 내려주었고 정몽주가 모셔져 있다.
독음
용인 심곡서원 주 효종 경인년 건립사액 조광조 충열사 주 만력 병자년 건립 광해 기유년 사액 정몽주
의미
조선 시대 용인 지역에 있었던 두 곳의 서원·사묘 기록이다. 심곡서원은 효종대에 건립된 유교 교육시설로 조광조(중종대의名臣)가 관련되었고, 충열사는 선조·인조대에 정몽주(고려 말 충절을 떨친 重臣)를 모신 사당으로 만력 연간 건립 후 광해군대에 공식 인정받았다. 두 시설 모두 지방의学和 名賢을 기리는 유교 관련 유적으로 보인다.
원문
龍仁
深谷書院[주:孝宗庚寅建賜額]趙光祖
忠烈祠[주:萬曆丙子建光海己酉賜額]鄭夢周
엔티티 후보
- place: 용인 / 龍仁, confidence=1.0
- work: 심곡서원 / 深谷書院, confidence=1.0
- work: 충열사 / 忠烈祠, confidence=1.0
- person: 조광조 / 趙光祖, confidence=1.0
- person: 정몽주 / 鄭夢周, confidence=1.0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1.0
- term: 사당 / 祠, confidence=1.0
- term: 건립 / 建, confidence=1.0
- term: 사액(편액 하사) / 賜額, confidence=1.0
- term: 경인 / 庚寅, confidence=1.0
- term: 병자 / 丙子, confidence=1.0
- term: 기유 / 己酉, confidence=1.0
- term: 효종 / 孝宗, confidence=1.0
- term: 만력(명나라 연호) / 萬曆, confidence=1.0
- term: 광해(광해군) / 光海,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深谷의 정확한 위치와 현재 잔존 여부
- 忠烈祠의 상세 건립 경위와 규모
(서원) 양근
- 기사 ID:
22079_004_0074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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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양근의 미원서원은 현종 신축년(1661)에 건립되었고, 조광조·김식(기묘년(1519)의 명신)·김유·남언경·이제신(선조의 명신을 추존)을 배향하였다.
독음
양근 미원서원 현종 신축년에 건립 조광조 김식 기묘 명신 김유 남언경 이제신 선조 명신 추享
의미
충청도 부여군에 있던 양근 미원서원은 1661년(현종 신축)에 설립되어 조선의 名臣 조광조, 김식, 김유, 남언경, 이제신을 추존 배향한 서원이다. 김식은 1519년(기묘) 명신으로 추존되었고, 이 다섯 명은 모두 선조 시대의 명신으로 기려졌다.
원문
楊根
迷源書院[주:顯宗辛丑建]趙光祖金湜[주:己卯名臣]金堉南彦經李濟臣[주:宣祖名臣追享]
엔티티 후보
- place: 양근 / 楊根, confidence=0.95
- work: 미원서원 / 迷源書院, confidence=0.95
- person: 조광조 / 趙光祖, confidence=1.0
- person: 김식 / 金湜, confidence=0.95
- person: 김유 / 金堉, confidence=0.95
- person: 남언경 / 南彦經, confidence=0.95
- person: 이제신 / 李濟臣, confidence=0.95
- term: 추향 / 追享, confidence=0.9
불확실한 어휘
(서원) 안성
- 기사 ID:
22079_004_0075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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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안성(安城)에 두 개의 서원이 있다. 도기서원(道基書院)은 무술년에 건립되고 기유년에 서액을 하사받았으며, 김장생이 건립하였다. 남파서원(南坡書院)은 신미년에 건립되었으며, 홍우원이 건립하였다.
독음
안성 도기서원 무술선건 기유서액 김장생 남파서원 신미건 홍우원
의미
조선 시대 안성 지역에 소재한 두 서원의 기록이다. 도기서원은 선비 김장생이 1620년(선조 53)에 창건을 요청하고 1629년(인조 7)에 효종이 서액을 내린 유学和之地基 서원이다. 남파서원은 신미년인 1621년에 홍우원이 건립한 서원으로, 홍우원은 인조 때 도학修學에 힘쓴 선비이다.
원문
安城
道基書院[주:戊申建己酉賜額]金長生
南坡書院[주:辛未建]洪宇遠
엔티티 후보
- place: 안성 / 安城, confidence=1.0
- work: 도기서원 / 道基書院, confidence=1.0
- person: 김장생 / 金長生, confidence=1.0
- work: 남파서원 / 南坡書院, confidence=1.0
- person: 홍우원 / 洪宇遠, confidence=1.0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1.0
- term: 서액 / 賜額, confidence=1.0
불확실한 어휘
- 도기(道基)의 구체적 어원, 남파(南坡)가的地名인지 별칭인지
(서원) 포천
- 기사 ID:
22079_004_0076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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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포천에는 용연서원이 있다. 숙종 병진년에 세워지고 신미년에 편액을 하사받았으며, 이덕형(선조의 재상)과 조경이 관련되어 있다. 또 화산서원이 있다. 숭정 을해년에 세워지고 현종 경자년에 편액을 하사받았으며, 이항복(선조의 재상)이 관련되어 있다.
독음
포천 용연서원 이덕형 조경 화산서원 이항복
의미
조선 시대 포천 지역의 서원 두 곳을 수록한 기록이다. 용연서원은 숙종 때 건립되었고, 화산서원은 숭정 연간에 건립되었다. 두 서원 모두 선조 때 재상을 지낸 인물이 관여한 유서 깊은 서원이다.
원문
抱川
龍淵書院[주:肅宗丙辰建辛未賜額]李德馨[주:宣祖相]趙絅
花山書院[주:崇禎乙亥建顯宗庚子賜額]李恒福[주:宣祖相]
엔티티 후보
- place: 포천 / 抱川, confidence=1.0
- work: 용연서원 / 龍淵書院, confidence=1.0
- person: 이덕형 / 李德馨, confidence=1.0
- person: 조경 / 趙絅, confidence=1.0
- work: 화산서원 / 花山書院, confidence=1.0
- person: 이항복 / 李恒福, confidence=1.0
(서원) 김포
- 기사 ID:
22079_004_0077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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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금포 우渚서원. 무자(1648년)에 세우고 신해(1651년)에 어가를 받들어 편액을 내렸다. 조헌(임진년의 의병장).
독음
금포 우渚서원 무자건 신해사액 조헌 임진의병장
의미
금포에 세워진 우渚서원은 1648년(무자)에 창건되어 1651년(신해)에 나라에서 서액(서원의 편액)을 내려준 서원이다. 서원에 배향된 인물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조헌이다.
원문
金浦
牛渚書院[주:戊子建辛亥賜額]趙憲[주:壬辰義兵將]
엔티티 후보
- place: 김포 / 金浦, confidence=1.0
- place: 우渚서원 / 牛渚書院, confidence=1.0
- person: 조헌 / 趙憲, confidence=1.0
- term: 의병장 / 義兵將, confidence=1.0
(서원) 교하
- 기사 ID:
22079_004_0079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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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35:04.741419+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79
한글 번역
교하. 신곡서원[주:계해년에 건립하고 을해년에 하사액을 내림] 설립자 윤선거, 풍덕. 구암서원[주:을묘년에 건립하고 신유년에 하사액을 내림] 설립자 이이
독음
교하 신곡서원(주:계해건을해투자액) 윤선거 풍덕 구암서원(주:을묘건신유투자액) 이이
의미
이 기사는 교하 지역에 있던 두 서원에 대한 기록이다. 신곡서원은 윤선거가 풍덕에 건립했고, 구암서원은 이이가 풍덕에 건립했다. 각 서원의 건립 연도와 하사액(당상에게 하사한 서원 편액) 수여 연도가 표기되어 있다.
원문
交河
新谷書院[주:癸亥建乙亥賜額]尹宣擧
豊德
龜巖書院[주:乙卯建辛酉賜額]李珥
엔티티 후보
- place: 교하 / 交河, confidence=0.95
- place: 풍덕 / 豊德, confidence=0.95
- work: 신곡서원 / 新谷書院, confidence=0.95
- work: 구암서원 / 龜巖書院, confidence=0.95
- person: 윤선거 / 尹宣擧, confidence=0.95
- person: 이이 / 李珥, confidence=0.95
- term: 서원 / 書院, confidence=0.95
- term: 투자액 / 賜額, confidence=0.85
- term: 건립 / 建, confidence=0.95
불확실한 어휘
(서원) 이천
- 기사 ID:
22079_004_0080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80
- 번역 모델: MiniMax-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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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시각: 2026-06-02T09:35:15.04196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80
한글 번역
이천의 운봉서원은 기축년에 건립되었다. 서희(호는 복천, 시호는 장성, 태종대왕의 내시령을 지냄)와 이관의(호는 율정, 증직으로 이조판서를贈職 받은 사람)와 김안국이 있다.
독음
이천 운봉서원 주기축건 서희 주호복천 첩장성 태종내시령 이관의 주호율정 증리판 김안국
의미
이천에 있는 운봉서원은 기축년에 건립되었으며, 서희(복천)·이관의(율정)·김안국 등 세 인물을 함께 모신다. 서희는 태종时期的 내시령이었고, 이관의는 졸후 증직으로 이조판서를 받은 인물이다. 운봉서원은 이 인물들의 유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원문
利川
雲峯書院[주:甲子建]徐熈[주:號福川謚章盛太宗內史令]李寬義[주:號栗亭贈吏判]金安國
엔티티 후보
- place: 이천 / 利川, confidence=0.95
- place: 운봉서원 / 雲峯書院, confidence=0.95
- person: 서희 / 徐熈, confidence=0.95
- person: 이관의 / 李寬義, confidence=0.95
- person: 김안국 / 金安國, confidence=0.95
- office: 태종내시령 / 太宗內史令, confidence=0.85
- office: 이조판서 / 吏判, confidence=0.9
- term: 기축건립 / 甲子建, confidence=0.85
불확실한 어휘
- 태종내시령의 구체적 직역과 직급
- 금안국이 서원 건립에 관여한 구체적 역할
- 세 인물의 정확한 관계와 서원 건립 경위
(서원) 금천
- 기사 ID:
22079_004_0081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81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6-02T09:35:24.260146+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81
한글 번역
금천에 있는 충현서원[주:효종 갑오년에 건립하고 숙종 병인년에 편액을 하사받음]에는 강한찬[주:고려의 태사, 시호는 인헌], 서전[주:고려의 절신], 이원익을 함께 모셨다.梧里影堂[주:인조가 하사한 집의 옛터에 그 유상을 모심]에는 이원익을 모셨다.
독음
금천 충현서원[주:효종 갑오년에 건립하고 숙종 병인년에 액액을 하사받음] 강한찬[주:고려의 태사, 시호는 인헌] 서전[주:고려의 절신] 이원익 오리영당[주:인조가 하사한 집의 옛터에 유상을 모심] 이원익
의미
충현서원은 경기도 금천(현재 성남시 수정구 금곡동 일대)에 있었던 서원으로, 고려의 충절한 신하인 강한찬, 서전, 이원익을 배향했다. 서원은 1654년(효종5) 갑오년에 건립되어 1686년(숙종12) 병인년에 숙종으로부터 편액을 하사받았다. 오리영당은 인조가 이원익에게 하사한 집의 옛터에 그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서원 건립과 편액 시기, 제향 인물은 한국 서원 역사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원문
衿川
忠賢書院[주:孝宗甲午建肅宗丙寅賜額]姜邯贊[주:高麗太師謚仁憲]徐甄[주:高麗節臣]李元翼
梧里影堂[주:仁祖賜第舊址奉遺像]李元翼
엔티티 후보
- place: 금천 / 金川, confidence=0.95
- place: 오리 / 梧里, confidence=0.85
- work: 충현서원 / 忠賢書院, confidence=0.98
- work: 오리영당 / 梧里影堂, confidence=0.95
- person: 강한찬 / 姜邯贊, confidence=0.99
- person: 서전 / 徐甄, confidence=0.99
- person: 이원익 / 李元翼, confidence=0.99
불확실한 어휘
- 주석의 연호 기록이 2개의 서원(충현서원과梧里影堂)에 공통 적용되는지, 아니면 각각 다른 시기에 건립된 것인지 문맥상 명확하지 않음
(서원) 과천
- 기사 ID:
22079_004_0082
- 권책: 문헌고략[文獻攷略 v4]
- 권책 ID:
kh2_je_a_vsu_22079_004
- 면/쪽: 0082
- 번역 모델: MiniMax-M2.7
- 프롬프트: hanmun-ko-v1
- 번역 시각: 2026-07-02T02:11:38.658600+00:00
- 출처: http://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2079_004&aa15no=004&aa20no=22079_004_0082
한글 번역
과천 민절사[성종 신유년(1681)에 건립하고 청인시기에 편액을 하사받음] 성삼문 박팽년 이석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이상 단종 때의 六臣]鹭江書院[을해년(1755)에 건립하고 편액을 하사받음] 박태보 호계서원[성종 신유년(1681)에 건립] 조종경[호는 독암, 전직 벼슬은 문관兼司書院事에 추증하여承旨를 추증함] 조졀[조종경의 손자] 四忠書院[영종 을사년(1765)에 건립하고 정미년(1767)에 멸망했으며 을해년(1755)에 재건, 각각 화상이 딸림] 김창집 이희명 조태채 이건명
독음
과천 민절사[주:성종 신유에 건립하고 신미에 편액을 하사받음] 성삼문 박팽년 이석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주:이상 단종 육신]鹭江書院[주:을해에 건립하고 편액을 하사받음] 박태보 호계서원[주:성종 신유에 건립] 조종경[주:호는 독암 전翰林典籍赠承旨] 조졀[주:종경의 손자] 사충서원[주:영종 을사에 건립하고 정미에 멸망하고 을해에 재건 각각 화상이 있음] 김창집 이희명 조태채 이건명
의미
경기도 과천에 있던 서원들에 대한 기록이다. 민절사는 단종을 위해 죽은 成三問 등 六臣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고,鹭江書院은 朴泰輔를 모셨다. 호계서원은 趙宗敬과 그 손자 趙졀를 모셨으며, 四忠書院은 金昌集 등 清인四位重臣을 모셨다가 파괴 후 재건되었다. 주석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이 성종과 영종 시기에 건립되고 궁정의 편액을 하사받았다.
원문
果川
愍節祠[주:肅宗辛酉建辛未賜額]成三問朴彭年李塏
河緯地柳誠源兪應孚[주:以上端宗六臣]
鷺江書院[주:乙亥建賜額]朴泰輔
虎溪書院[주:肅宗辛酉建]趙宗敬[주:號獨菴典翰贈承旨]趙洓[주:宗敬孫]
四忠書院[주:英宗乙巳建丁未毁乙亥重建各有畫像]金昌集李頤命趙泰采李健命
엔티티 후보
- place: 과천 / 果川, confidence=0.98
- place: 민절사 / 愍節祠, confidence=0.95
- place: 鹭江서원 / 鷺江書院, confidence=0.92
- place: 호계서원 / 虎溪書院, confidence=0.92
- place: 사충서원 / 四忠書院, confidence=0.92
- person: 성삼문 / 成三問, confidence=0.97
- person: 박팽년 / 朴彭年, confidence=0.97
- person: 이석 / 李塏, confidence=0.97
- person: 하위지 / 河緯地, confidence=0.97
- person: 유성원 / 柳誠源, confidence=0.97
- person: 유응부 / 兪應孚, confidence=0.97
- person: 박태보 / 朴泰輔, confidence=0.96
- person: 조종경 / 趙宗敬, confidence=0.96
- person: 조졀 / 趙洓, confidence=0.95
- person: 김창집 / 金昌集, confidence=0.96
- person: 이희명 / 李頤命, confidence=0.96
- person: 조태채 / 趙泰采, confidence=0.96
- person: 이건명 / 李健命, confidence=0.96
- term: 육신 / 六臣, confidence=0.93
불확실한 어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