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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대비전윤발 [大王大妃殿綸綍] - 해제

G002+AKS-AA55_21828_000 【정의】 1834년(憲宗1, 甲午)부터 1865년(高宗2, 乙丑)년까지 大王大妃가 수렴청정 한 내용을 적은 책. 【서지사항】 이 책은 일본이 조선왕실을 전담하는 기관으로 설립한 李王職에서 1930년에 필사하여 완성한 편년체의 역사 사료이다. 각 책의 말미에는 ‘昭和五年 三月二十六日 檢査 徐晩淳’과 ‘昭和五年 一月十一日 朴鎬陽’ 등과 같이 기록자와 검사자의 이름과 연월일이 기록되어 있다. 책은 線裝으로 권수를 나누지 않았으며 총 9책이다. 크기는 26.8 × 19.6cm이다. 겉장에 ‘大王大妃殿綸綍’이라고 표제가 되어 있고, 표제 아래에 책의 수를 표기하였다. 겉장은 책의 내용에 해당하는 기간을 표기한 듯한 연월일이 적혀 있으나 알아보기 힘들다. 한 면에 10행 30자가 들어갈 수 있는 원고지를 사용하였으며, 판심 부분 하단에는 ‘李王職’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이 편년체 자료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1834년(憲宗1, 甲午)에서 1840년(憲宗6, 庚子) 사이에 대왕대비 金氏(純祖의 비)가 수렴청정한 내용이고, 두 번째는 1849년(哲宗1, 己酉)에서 1851년(哲宗2, 辛亥) 사이에 수렴청정한 내용이다. ‘綸綍’이란 원래 조선후기 정조부터 고종 연간에 이르기까지 왕의 전교 및 上疏文 草記 등에 대한 비답을 抄出하여 기록한 글로서, 실록의 史草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 가운데 대왕대비 김씨 純元王后의 수렴청정 기간 동안의 ‘윤발’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다. 글의 전체적 형식은 날짜순으로 정책이나 사안에 대해 수렴청정의 내용을 기입한 일종의 편년체이다. 첫 번째 부분은 1834년(甲午) 11월 13일부터 시작하며, “중궁전(憲宗의 비)이 안색을 전하고 입으로 지시사항을 전달하여 下敎를 받들어 말하길”이라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1834년 순조가 죽자 헌종은 8세의 나이로 왕위에 즉위하게 되자 金祖淳의 딸이자 대왕대비가 되는 純元王后가 대신 정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헌종의 어머니인 神貞王后는 풍양 조씨 趙萬永의 딸이었고, 안동 김씨인 대왕대비 사이에 권력다툼이 일어났다. 결국 풍양 조씨가 권력을 잡게 되지만, 약 6년 후(1846년) 조만영이 죽자 다시 대왕대비의 안동 김씨 세력이 잡게 된다. 이 책에 1840년 이후가 빠지고 1849년부터 시작하는 것은 대왕대비의 수렴청정 기간만을 기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된 내용은 언제 어디로 행차할 것이라는 사소한 것부터 정치에 관한 일까지 대왕대비가 지시한 사항들이다. 후사가 없던 헌종이 1849년 죽자 대왕대비 김씨는 강화도에 있던 철종을 궁으로 데려와 후계자로 삼았고, 역시 자신이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은 이 기간 동안의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을 기록한 것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책은 正祖부터 高宗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왕들의 여러 비답 내용을 적은 ‘윤발’에서 대왕대비 김씨 純元王后(純祖의 비)의 수렴청정 내용만을 발췌한 것으로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는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이 조선왕가의 사무를 전담케 하기 위해 세운 기관인 이왕직에서 왜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기간의 윤발만을 정리하도록 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마도 조선의 정치가 여성과 일개 가문에 좌지우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일제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정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 책은 일제의 숨은 의도를 말해주는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현재 장서각 소장본(K2-1828)이 유일하며 영인본은 없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哲宗實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