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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시호 [東國諡號] - 해제

G002+AKS-AA55_21737_000 [정의] 1908년(융희 2) 10월 21일에서 1910년(융희 4) 8월 25일까지 종친과 문무 신하들에게 내린 시호를 정리 수록한 책. [서지사항] 필사본인 『동국시호』는 본문 이외에 서문이나 발문, 기타 편찬과 관련된 기록이 없어 편찬자와 편찬 경위, 시기 등을 알 수 없으며 필사된 시기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편찬시기는 수록 내용의 하한으로 보아 1910년 이후로 추정된다. 장서각에는 동일 서명의 『동국시호』가 1책 있는데(K2-1736) 수록 시기와 내용이 본서와 다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동국시호』는 4책으로 되어 있으며 선조조부터 고종조까지 1,364명을 수록하고 있어 본서와는 내용이 다른 것으로 파악된다. [체제 및 내용] 서술 형식은 관직, 성명, 시호가 議望된 시기를 한 행에 적고, 備三望과 각 시호에 대한 字意를 열거하고 하비된 시호에는 落點이라고 표시하였다. 半葉 7행에 字數가 일정하지는 않으나 관직명에서 자수의 차이가 날 뿐 諡法에 따른 두 글자의 시호와 네 글자의 자의가 일정하며 한 인물 당 4행을 할애하고 있는 체제가 정형적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祭酒任憲晦諡號望 隆熙二年十月 二十一日 議諡 文敬 道德博聞曰 文 夙夜儆戒曰 敬 落點 文簡 道德博聞曰 文 一德不懈曰 簡 文憲 道德博聞曰 文 行善可紀曰 憲 1908년(융희 2) 10월21일에 의망된 祭酒 任憲晦를 비롯하여 朴定陽, 徐相祖 등 총 11회에 걸쳐 144인에게 올린 시호가 수록되어 있다. 의망된 시기와 인원의 내역은 다음과 같다. 융희 2년(1908) 10월 21일 - 5명 융희 3년(1909) 10월 4일 - 3명, 10월 9일(改諡) - 1명, 10월 4일 - 2명 융희 4년(1910) 4월 13일 - 1명 6월 20일 - 1명, 6월 30일 - 4명 7월 15일 - 3명, 7월 19일 - 28명 8월 18일 -35명, 8월 25일 - 61명 시호를 의정할 때는 三望(세 가지 시호를 올리는 것)을 갖추는 것이 원칙이다. 임헌회에게는 文敬, 文簡, 文憲이 천망되었는데 첫번째 文敬이 낙점된 것과 같이 三望 중에 첫 번 째 올린 시호에 낙점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 『동국시호』에 게재된 144인 중 贈提學安敏學을 제외하고 전원이 첫번째 올린 시호에 낙점이 되어 있다. 안민학에게 올린 시호는 孝定, 簡憲, 文靖인데 이중 세 번째 文靖이 낙점되었다. 시호는 왕·왕비를 비롯해 벼슬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의 행적에 따라 국왕으로부터 받은 이름이다. 조선 초기까지는 왕과 왕비, 왕의 종친, 실직에 있었던 정2품 이상의 문무관과 공신에게만 주어졌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대상이 완화, 확대되었다. 생전에 낮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도 증직되어 시호를 받는 일이 있는데 이를 贈諡라 하고, 후대에 추증해 시호를 내리면 追諡라 하였다. 처음 내렸던 시호를 나중에 다른 시호로 고쳐서 내리는 것을 改諡라 한다. 시호는 평생의 공과를 포폄하는 의미가 강하였으며 시법에 따라 이루어졌다. 시호에 사용하는 글자의 수가 정해져 있었는데, 1438년(세종 20) 봉상시에서 사용하던 글자는 194자였다. 글자수가 부족하여 시호를 의논할 때 사실과 맞게 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세종 때 집현정전에서 새로 107자를 첨가하여 시법에 쓸 수 있는 글자는 모두 301자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자주 사용된 글자는 文·貞·恭·襄·靖·良·孝·忠·莊·安·景·章·翼·武·敬·和·純·英 등 120자 정도이며 모두 좋은 뜻을 담고 있다. 또한 한 글자의 뜻이 여러 가지로 풀이되어 시호법에 나오는 의미는 수천 가지가 된다. 예를 들어, ‘文’은 道德博聞, 勤學好問, 忠信接禮, 博聞多見, 博學多聞 등 그 의미가 15가지로 쓰였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시법은 벼슬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의 한 평생을 公議에 부쳐 엄정하게 평론하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죽은 한 사람의 선악을 나타내어 후세 사람들에게 권장과 징계를 보여주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소장현황 및 이본관계] 원본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열람자의 편의를 위해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되어 있다. 또한 전자도서관에서는 원문을 이미지로 제공하고 있어 온라인을 통해 열람, 복사할 수 있다. [참고문헌] 박홍갑,「조선시대의 시호제도」, 『한국중세사회의 제문제』《김윤곤교수정년기념논총》. 대구: 한국중세사학회, 200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