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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호일기 [蓬壺日記] - 해제

G002+AKS-AA55_20896_000 【정의】 蓬壺 趙鎭宅(1746~?)이 1756년(英祖32) 2월부터 1795년(正祖19) 9월까지 약 30년 동안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하고, 자신과 주변 인물의 관력과 정치적 행보 등을 적은 일기. 【서지사항】 不分卷 2책의 필사본으로 각 면의 크기는 27.6×18.3cm이다. 四周單邊이고, 반곽의 크기는 19.8×14.8cm이며, 반엽의 글자 수는 10行 20字이다. 판심에는 上二葉花紋魚尾가 보이고, 주석은 雙行이다. 표제와 내제는 모두 ‘蓬壺日記’이다. ‘李王家圖書之章’이라 새겨진 소장인이 찍혀 있다. 【체제 및 내용】 『蓬壺日記』는 趙鎭宅(1746~?)이 1756년(英祖32) 2월부터 1795년(正祖19) 9월까지 약 30년 동안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하고, 주변 인물과 자신의 관력 등을 적은 公私日記이다. 조진택은 본관이 豊壤이고, 호는 蓬壺이다. 부친은 吏曹參議 晸(1719~1775)이고, 모친은 全州柳氏 判書 復明(1685~1760)의 딸이다. 1773년(英祖49) 增廣文科에 丙科로 급제하였고, 1780년(正祖4)에는 홍문관교리가 되어 玉堂에 들어갔으며, 벼슬은 慶尙道觀察使에 이르렀다. 『蓬壺日記』 上冊은 1756년(英祖32) 2월 저자의 家親이 泰仁縣監으로 부임하였기 때문에 家廟를 받들고 태인으로 향하는 대목에서 시작되어, 1783년(正祖7) 12월 昌陵을 떠나 鄕第로 돌아올 때까지이다. 그리고 下冊은 1784년(正祖8) 1월 저자의 관직 생활의 포폄이 담긴 봉투를 개봉하며 “정성을 다하여 봉직했으니, 上의 성적이다.(殫誠奉職, 上)”라는 내용을 확인하는 부분부터 1795년(正祖19) 9월 昌原府使 李汝節이 인명을 함부로 살상했음에도 저자가 慶尙道觀察使로서 이를 소홀히 여기며 이여절을 두둔한 죄를 입어 의금부에 끌려와 추고를 받고 安樂郡으로 유배된 뒤 다시 관직이 삭탈된 부분까지를 수록하고 있다. 조진택의 유년기나 청년기의 기사는 부친과 伯父의 관직 제수와 부임 과정, 지방에서 설행되는 백일장, 친인척의 질병이나 출산, 지방의 승경에 대한 세세한 관찰과 설명, 渼湖 金元行을 배알하며 자신의 조부가 農庵을 사사했던 점, 선조의 신주를 改題하고 遞遷하는 일, 泮試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등 정형화하기 곤란할 만큼 다양한 내용을 간략한 편폭 안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다 문과 급제 이후에는 조진택 자신의 관력과 임무가 주요 테마로 자리 잡는다. 특별한 사안이 없을 경우에는 해당 날짜의 기술을 과감히 생략하고 있다. 1788년(正祖12) 3월 12일 기사는 유독 장문의 글이다. 당시 연명으로 箚子를 올려 領議政 金致仁을 탄핵한 玉堂官들이 北道로 찬배되었는데, 李百亨은 明川으로, 趙鎭宅은 吉州로, 吳泰賢은 端川으로, 金履翼은 利城으로, 金熙采는 北靑으로, 宋祥㾾은 洪原으로 귀양 보냈다. 그 과정에서 임금과 주고받은 논의와 義禁府의 상주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동년 9월에 영의정 김치인은 부모의 장사를 지내고 유배지로 간 정황과 위독한 병세, 堂箚를 올릴 때 參論하지 않은 점을 들어 조진택의 방면을 임금께 주달하였고 정조 또한 이를 윤허했다. 이때의 기록 역시 매우 상세하게 씌어 있다. 그리고 1794년(正祖18) 7월 이후의 기록은 대부분 昌原府使 李汝節이 자행한 무고한 백성에 대한 濫殺과 경상도관찰사 조진택의 책임론에 관한 것들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18세기로 접어들면서 개인사의 기록에 대한 욕구가 한층 강해져 이전에 비해 많은 양의 日記類들이 제작되었다. 예전처럼 한 지방에 부임하거나 기거할 때의 견문과 치적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유년기부터 중장년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을 거쳐 기록하였고, 심지어 일기의 형태로 문집을 엮는 경우까지 등장하였다. 벼슬살이의 실상을 기록한 일기류는 ‘仕宦錄’, ‘立朝錄’, ‘從宦錄’, ‘科宦錄’, ‘日記’, ‘亂藁’ 등의 제목으로 제작되었다. 『봉호일기』는 이와 같은 당대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자료라 하겠다. 아울러 이와 같은 자료를 통해 조선 후기 사대부의 구체적인 생활사를 면밀히 검토할 수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이와 동일한 서책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조진택의 문집인 『蓬壺遺稿』가 불분권 3책 분량의 필사본으로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아울러 『봉호유고』와 『봉호일기』는 豊壤趙氏大宗會에서 최근에 편찬한 『豊壤趙氏文集叢書13』에도 영인되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蓬壺遺稿』, 藏書閣所藏本, K4-6078. 『豊壤趙氏文集叢書13』, 豊壤趙氏大宗會, 2004.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72. 『藏書閣의 歷史와 資料的 性格』, 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