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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조조조사적 [明太祖肇造事蹟] - 해제

G002+AKS-AA55_20882_000 【정의】 明나라 太祖 朱元璋이 건국하기까지의 초기 행적을 기록한 전기. 【서지사항】 이 책은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1328~1398)이 건국하기 전까지의 초기 행적을 기록한 일종의 전기 자료로서, 판각한 인쇄본이 아니라 필사한 것이다. 다른 역사 문헌에서 필요한 부분을 편집하여 베낀 것으로 보이는데, 편저자가 누구인지 언제 필사했는지 알 수 없다. 1책 11張의 분량이고 卷이 나눠져 있지 않다. 윤곽선과 행간의 선이 없으며, 한 면에 10行 24字이고, 판심이 없고 크기는 30.2 × 20cm이다. 【체제 및 내용】 주원장의 출생에서 명나라 건국까지의 행적을 시간 순서대로 기술한 일종의 편년체 형식을 띤다. 사안에 따라 원으로 항목을 표시하였다. 주요 내용은 주원장이 1328년(戊辰)에 탄생했다는 것, 부모형제가 연이어 죽어서 고아가 되었고, 皇覺寺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淮西 지방을 떠돌다가 濠州 지역 紅巾賊의 수장인 郭子興을 만나 그의 부하가 되었고, 자흥도 그의 기괴한 풍모에 이끌려 그를 호위병으로 발탁했다. 자흥의 양녀 馬氏와 결혼하였고, 이후 자흥과 주원장은 군대를 확대 편성하여 남방으로 진격하였으며, 1356년(乙未)에는 韓林兒의 宋 정권에 의해 자흥은 都元帥가 되고 주원장은 左副元帥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集慶을 점령한 후 應天府(지금의 南京)라 개명하고, 송의 한림아로부터 江南行省平章에 임명되어 吳國公이라 칭해졌다. 이후에 태조는 陳友諒을 격파하고 吳王이라 칭하였으며, 같은 동료였던 張士誠을 제거하고 한림아도 죽인 후 중원을 정벌하기에 이른다. 결국 홍무 원년 1368년(戊申) 春 정월 乙亥일에 남교에서 천지에 제사지내고 황제에 즉위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맺고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전기 자료는 여러 역사서에서 주원장의 초기 행적만을 발췌하여 편년체로 수록한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은 전문적 역사서로서 기획되었다기보다는 일반교양서와 교육용 전기로서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 주원장의 생애 연구에 참고가 되지만, 그 내용이 대체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현재 장서각 소장본(K2-882)이 유일하며 영인본은 없다. 【참고문헌】 『강좌중국사』, 지식산업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