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728_000G002+AKS-AA55_20728_000 【정의】 【서지사항】 2권 2책의 필사본으로 匡郭과 絲欄 및 版心은 보이지 않는다. 半葉은 11행 24자이고, 책의 크기는 32.5×23.5cm이다. 주석은 雙行이다. 표제는 『晩雲遺蹟』이고, 첫 면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라는 소장인이 날인되어 있다. 간행 시기와 간행자, 간행 경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여타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체제 및 내용】 鄭忠信은 본관이 光州이고, 字는 可行이며, 호는 晩雲이다. 부친은 贈判中樞府事 錦川君 綸이고, 모친은 永川 李氏 禦侮將軍 仁祚의 딸이다. 조부인 鄭錫柱부터 鄭忠信에 이르기까지 兵營 正兵에 충군하였다. 壬辰倭亂이 일어나자 光州牧使 權慄의 휘하에서 종군하여, 적진을 뚫고 권율의 장계를 행재소에 전달하였다. 兵曹判書 李恒福이 그에게 『左傳』, 『國語』, 『史記』 등을 가르쳤고, 行在所에서 실시하는 武科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1621년(光海君 13) 滿浦鎭 僉使로 국경을 수비했고, 1624년(仁祖 2) 李适의 난이 발발하자 都元帥 張晩의 휘하에서 前部大將으로서 이괄의 군사를 鞍峴에서 大破하여 振武功臣 1등으로 錄勳되고 錦南君에 봉해졌다. 丁卯胡亂 때에는 부원수를 지냈고, 1633년 조정에서 後金에 대한 歲幣의 증가에 반대하여 후금과의 단교를 위하여 사신을 보내게 되자 金時讓과 함께 이를 반대하여 唐津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長淵으로 이배되었고, 곧 풀려나와 이듬해 포도대장, 경상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사망한 후에 光州 景烈祠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忠武다. 저서로는 『晩雲集』, 『錦南集』, 『白沙北遷日錄』 등이 있다. 『晩雲遺蹟』은 乾冊과 坤冊으로 구성되었다. 건책에는 「世系」와 「年譜」, 「言行」이 수록되었다. 「世系」는 정충신의 9대조 景烈公 鄭地부터 부친 錦川君 綸까지 기재되어 있는데, 증조부 臨陂縣令 荐부터는 配位까지 소개되고 있다. 시대순으로 기술한 「年譜」는 각각의 단락을 干支와 年月로써 구분하고 있다. 주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입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주석 중에 ‘公自註…’, ‘公自書日記曰…’, ‘見文稿’로 시작되는 부분이 도처에 확인되는바, 정충신의 생전 저술과 일기 등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言行」은 정충신의 儉素하고 手不釋卷하는 기질과 통찰력, 威儀 등을 부각시키는 17개 항목의 逸話가 실려 있다. 「言行」의 마지막 부분에 公於平生所爲事, 輒逐日箚記, 且家無一長物, 惟有書籍揷家. 戊辰(1628년, 仁祖 6) 年間, 因墻壞盜入, 而無所得, 仍偸去其書簏. 故丁卯(1627년, 仁祖 5)以前日記在其中, 遂失之, 只有戊辰日記一冊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정충신은 자신의 일과를 날마다 일기에 기록했으나, 1627년(仁祖 5) 이전의 일기를 모두 도난당했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年譜」 주석에 보이는 ‘公自書日記’가 1628년 이후의 일기임을 알 수 있다. 坤冊에는 「行狀」과 「諡狀」, 「鄭將軍忠信傳」, 「賞加敎書」, 「勳錄」, 「副元帥鄭開拆」, 「副元帥敎書」, 「副元帥錦南君敎書」, 「祭文」, 「挽詞」, 「延陽諡狀一段」, 「與張巡察晩」, 「破寂錄」, 「漫筆」, 「靑興君碑文」, 「甲子記事」, 「丁卯記事」, 「書蟾江圖」, 「鄭節度忠信擊賊歌」, 「新安館得鄭可行詩戒行甚勤次韻以謝」 등이 수록되어 있다. 「行狀」은 1684년(肅宗 10)에 芝湖 李選(1632~1692)이 찬술했고, 「諡狀」은 1684년에 瑞石 金萬基(1633~1687)가 찬술했으며, 「鄭將軍忠信傳」은 蒼霞 元景夏(1698~1761)가 지었다. 「賞加敎書」는 1624년(仁祖 2) 7월에 정충신이 安州牧使를 역임할 때 받은 敎書로 鞍峴에서 李适의 군대를 大破한 공로를 인정받아 正憲大夫로 가자하고 平安監司에 제수한다는 내용이다. 「勳錄」은 振武功臣에 錄勳된 27인의 공신을 적은 것이다. 1등에는 張晩·鄭忠信·南以興 등 3명이, 2등에는 李守一·柳孝傑·金慶雲·李希健 등 9명이, 3등에는 申景瑗·金完·李愼·李休復 등 20명이 책훈되었다. 「副元帥鄭開拆」는 1627년(仁祖 5)에 지은 것이고, 「副元帥敎書」와 「副元帥錦南君敎書」는 1630년(仁祖 8)과 1632년(仁祖 10)에 내려진 敎書다. 「輓詞」를 지은 인물은 崔鳴吉과 李曙, 具宏, 張維, 李時白, 李顯英, 金大德, 金省曾, 鄭弘溟, 鄭廣成, 鄭太和, 權垈 등이다. 「延陽諡狀一段」은 同春堂 宋浚吉이 제작한 李時白의 시장으로 정충신과 관계된 기사를 발췌한 것이다. 「與張巡察晩」와 「破寂錄」, 「漫筆」도 白沙 李恒福과 荷潭 金時讓(1581~1643), 谿谷 張維의 저술에서 鄭忠信 기사를 가려 뽑은 것이다. 「書蟾江圖」은 白沙 李恒福이, 「鄭節度忠信擊賊歌」는 白洲 李明漢이, 「新安館得鄭可行詩戒行甚勤次韻以謝」는 天坡 吳䎘이 각각 제작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鄭忠信의 文集인 『晩雲集』은 1759년(英祖 35)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나 이는 현존하지 않는다. 그 후 1894년(高宗 31)에 정충신의 7대 傍孫인 鄭鳳鉉이 초간본을 증보하여 6권 2책의 활자본으로 重刊하였다. 본 『晩雲遺蹟』은 초고본의 저본으로 여겨진다. 【소장 현황 및 영인관계】 이와 동일한 필사본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규장각에 『晩雲遺稿』(奎6900)와 『錦南事蹟』(奎7682)이 소장되어 있는데, 『晩雲遺蹟』과 비슷한 시기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晩雲遺稿』(奎章閣所藏本, 奎6900). 『仁祖實錄』. 『增補文獻備考』. 『譯註經國大典』(韓㳓劤 외,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72). 『韓國文集叢刊解題』(民族文化推進會,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