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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선생실적 [江湖先生實蹟] - 해제

G002+AKS-AA55_20684_000 【정의】 【서지사항】 1책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사본이다. 紙面은 無郭 無絲欄이고, 半葉은 10행으로 1행의 字數는 24자이며, 크기는 31.7×20.8cm이다. 版心은 없으며, 종이는 楮紙이다. 이 冊의 撰者는 金叔滋의 증손자인 金紐 등이고, 편찬 연대는 조선 正祖朝 이후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자는 미상이다. 글씨는 行書이다. 表題는 『江湖先生實錄』이다. 【체제 및 내용】 이는 조선 전기의 유학자인 金叔滋의 일생을 기록한 행적기와 그 밖의 관련 기록물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江湖先生實錄』이라는 큰 제목 속에 金叔滋의 생애를 기록한 金紐 撰 『江湖先生實錄』 외에 金叔滋와 관련한 기록물인 「海東名臣錄」, 「趙靜菴伸理疏」, 「國朝寶鑑」, 「洛峰書院請額疏」, 禮曹의 回啓와 批答, 「再啓」, 「宣額賜祭文」, 「請諡疏」, 「遺詩」 등 총 10여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강호선생실록』은 김숙자의 가계, 출생, 관력, 학문, 사상 등 일생의 행적을 기술한 것으로, 지은이는 김숙자의 曾孫 金紐이고 지은 연대는 1642년(仁祖 20, 崇禎 15)이다. 이 『강호선생실록』은 이 책의 주요 부분으로, 총 36쪽 중 12쪽의 분량을 차지하는데, 그 내용은 대개『彛尊錄』에서 발췌한 것이라 하였다. 金叔滋는 초명이 滋였으나, 司馬試에 합격한 뒤 ‘叔’자를 더하여 叔滋로 改名하였다. 그의 字는 子培이고, 號는 江湖散人이며, 本貫은 善山이다. 그의 아버지는 進士試에 합격하고 兵曹參判에 추증된 金琯이며, 어머니는 高麗 때 少尹을 지낸 兪仁貴의 딸이다. 김숙자는 1389년(고려昌王 1, 洪武 22)에 태어나 1456년(世祖 2, 景泰 7)에 68세로 卒하였다. 그는 12세 때인 1400년(定宗 2)에 冶隱 吉再의 문하에 나아가 수업하고 1414년(太宗 14, 永樂 12)에 司馬試에 합격하여 成均館에 들어갔다. 그리고 3년 뒤인 1419년(世宗 1, 永樂 17)에는 文科에 及第하고 學諭에 임명됨으로써 宦路에 들어섰다. 1421년(世宗 3)에는 學錄에서 史官으로 선발되었으나 타인의 방해로 임명되지 못했는데, 이는 그가 문과에 급제한 해를 전후하여 부친의 명으로 韓氏 婦人과 이혼하고 朴氏 婦人과 재혼한 일에 대해 주위에서 문과급제 후 조강지처를 내쫓았다고 무고한 데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의 재혼 경력은 그의 관직생활에서 종종 문제가 되었다. 그는 그 뒤 1423년(世宗 5)에 관직을 그만두고 歸鄕한 이래로 1435년(世宗 17)에 成均主簿에 임명되기까지 12년 동안 벼슬길을 떠나 江湖散人이라 自號하고 野人으로 지냈다. 1439년(世宗 21)에 外職으로 나와 善山敎授가 되었으며, 그 뒤 金海敎授, 高靈縣監, 成均主簿 兼南學敎授, 田制敬差官, 開寧縣監, 司宰監副正, 成均司藝 등을 역임하고 1455년(世祖 1)에 辭職함으로써 관직생활을 그만두었다. 그는 死後 1459년(世祖 5)에 中直大夫 藝文館直提學 春秋館記注官에 追贈되었고, 1489년(成宗 20) 資憲大夫 戶曹判書 兼知春秋館事에 추증되었다. 김숙자는 성품이 자상하면서 동정심이 많았고 단정하면서 소박하였다. 부모에게는 효성스러웠고 居官 時에는 청렴하였으며, 사람들을 대함에는 꾸밈이 없고 온화하였다. 주자학(程朱學)을 신봉하고 道·佛을 배척하였으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으되 특히『小學』을 중시하여 제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가르쳤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의 實踐儒學인 道學의 學脈을 열고, 이를 寒暄堂 金宏弼, 一蠹 鄭汝昌 등에게 전하였다. 박씨 부인과의 사이에 3남을 두었으니, 宗碩, 宗裕, 宗直이다. 「海東名臣錄」에 실린 관련 내용은 위의 『강호선생실록』의 그것과 대동소이한데, 특히 김숙자의 효행과 후진 교육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였다. 「趙靜菴伸理疏」는 己卯士禍 때 희생된 靜菴 趙光祖를 억울하게 여겨 伸寃해줄 것을 요청한 성균관 유생의 상소문 초록으로, 1545년(仁宗 1)에 올린 것이다. 조광조는 김굉필을 통하여 鄭夢周, 吉再, 김숙자, 김종직의 학맥을 이어받았다. 「國朝寶鑑」은 김숙자의 아들 김종직이 成宗에게 올린 進言과 김종직을 전후한 師承 關係를 뽑아 실은 것이다. 進言은 지방의 風敎를 위해 鄕射禮와 鄕飮酒禮를 실시할 것을 주장한 것이고, 김종직의 제자로는 金宏弼, 鄭汝昌, 南孝溫, 金馹孫 등이 있다. 「洛峰書院請額疏」는 1786년(正祖 10)에 생원 金光형 등 四道의 儒生들이 金叔滋의 位牌를 主享으로 모신 洛峰 書院에 대해 賜額해줄 것을 요청한 상소문이다. 「禮曹回啓」와 「批答」은 위의 「洛峰書院請額疏」에 대해 임금에게 올린 禮曹의 의견과 임금이 예조에 내린 회답을 뽑아 적은 것이다. 예조는 이 회계에서 賜額함이 마땅하다는 뜻을 표하였고, 임금은 이 문제의 當否를 領相과 의논하여 다시 아뢰도록 하라고 하였다. 「再啓」는 위의 批答에 따라 예조에서 領相과 의논한 결과를 임금에게 다시 보고한 것으로, ‘영상은 예조의 의견대로 賜額함이 좋겠다고 말했다’는 취지를 적었다. 이에 대해 임금은 그대로 시행하라고 傳敎하였다. 「宣額賜祭文」은 낙봉 서원에 賜額한 뒤 金叔滋 등에게 賜祭하면서 지은 祭文인데, 1787년(正祖 11)에 洪義浩가 지은 것으로 4言으로 된 韻文이다. 「請諡疏」는 戊寅年에 儒學 李明峻 등이 金叔滋와 金就文에게 시호를 내려주기를 요청한 상소다. 이에 대한 批答에서는 ‘廟堂으로 하여금 稟處하게 하겠다’ 하였다. 「遺詩」는 김숙자가 남겨 놓은 시 3首를 적어 놓은 것이다. 그 3수는 7言絶句 2수와 5言排律 1수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江湖先生實錄』은 金叔滋라는 인물과 사상 등을 연구하는 데 기초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소장 현황 및 영인관계】 이 책의 원본은 고서로 분류되어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원문 이미지 파일과 마이크로 필름을 열람할 수 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世祖實錄』. 『한국인물대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