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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태황제행장 [高宗太皇帝行狀] - 해제

G002+AKS-AA55_20660_000 【정의】 高宗 승하 직후에 行狀製述員으로 임명된 李載完(1855~1922)이 1919년에 찬술한 高宗의 行狀. 【서지사항】 1책 16장의 필사본으로 四周雙邊이고, 반곽의 크기는 23.2×16.8cm이며, 각 면은 32.2×22cm이다. 반엽은 10행 21자이고, 隔間과 擡頭가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표제와 내제는 ‘高宗太皇帝行狀’이고, 첫 면에 ‘藏書閣印’이라 새겨진 소장인이 찍혀 있다. 권말에 ‘上輔國崇祿大夫完順君臣李載完謹撰’이라 하여 撰者를 명시하였다. 『純宗實錄』에 의하면, 李載完이 行狀製述員에 임명된 것은 1919년 1월 24일이었고, 동년 3월 4일조에 李載完이 찬술한 행장이 수록되어 있는 바, 본 행장은 1919년 1월 24일부터 3월 4일 사이에 찬술된 것이다. 그러나 필사자와 필사시기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본문 중에 보이는 임금의 諱와 字 등에는 첨지를 붙여 가려놓았고, 高宗을 ‘王’이라 적은 부분에는 첨지에 ‘帝’字를 써 붙여 두었다. 【체제 및 내용】 『高宗太皇帝行狀』은 조선의 제26대 임금인 高宗(1852~1919)의 행장이다. 고종의 아명은 命福이고, 초명은 載晃이었으나, 후에 熙로 개명했다. 字는 明夫이고, 號는 珠淵이다. 英祖의 玄孫 興宣君 李昰應의 둘째 아들이며, 모친은 驪興府大夫人閔氏이다. 즉위 후인 1866년에 驪城府院君 閔致祿의 딸을 왕비로 맞이했다. 1873년(고종10) 고종의 親政이 시작되었으나 정권은 민비의 척족들에 의해 장악되었다.민씨척족정권은 개방정책을 펴며 일본을 위시하여 구미 열강과 수호조약을 맺었다. 커다란 정치적 외교적 사건 속에서 국가의 체모는 추락했고, 1897년 10월에 建元稱帝를 선포했으나, 1907년 6년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일로 퇴위하게 되었다. 純宗이 즉위하자 고종은 太皇帝가 되었으나 虛位에 불과했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강점한 후, 李太王으로 불리다가 1919년 정월에 慶運宮 咸寧殿에서 승하하였다. 文憲武章仁翼貞孝이라는 諡號를 추상했고, 廟號를 高宗이라 하였다. 1919년 1월 21일 高宗이 승하하자 行狀製述員으로 侯爵 李載完을, 諡冊文製述官員으로 子爵 李載崑을, 哀冊文製述員으로 자작 閔泳徽를,誌文製述員으로 자작 金聲根을, 表石陰記製述員으로 후작 朴泳孝를 임명했고, 각각의 書寫員도 함께 임명하였다. 고종의 행장을 제술한 李載完(1855~1922)은 본관이 全州이고, 자는 舜七이며, 호는 石湖이다. 흥완군 晸應의 아들로, 대원군의 조카이며 徐相祖의 사위이다. 1875년(고종1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고, 홍문관제학과 이조판서·궁내부대신 등을 역임했으며, 국권피탈 후에 侯爵의 작위를 받은 바 있다. 李載完은 行狀을 찬술하며 高宗의 승하 직후에 諡號와 廟號를 추상한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는 高宗의 가계를 개괄하였다. 그리고 神貞王后의 명으로 翼成君에 봉해지고, 翼宗의 양자가 되어 등극한 사실부터, 神貞王后의 수렴청정, 철종의 장례 과정과 追崇, 翼宗과 憲宗·哲宗·孝顯王后·神貞王后·太祖·太宗·純祖·純元王后·英祖·仁祖·孝宗·明成王后 등에 대한 追尊, 驪興閔氏의 책봉, 顯隆園·建元陵·崇陵·緩陵·景陵·建陵·齊陵·厚陵 등 諸陵園에 제사를 설행한 사실, 都城의 門稅와 願納錢·結斂 등을 혁파한 일, 일본과 영국·미국·독일·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과의 조약 체결, 수차례에 걸쳐 尊號를 받은 일, 건원칭제한 일, 耆老所에 들어간 일, 을사조약의 체결 과정,皇太子의 대리청정, 英親王의 皇太子 책봉, 高宗의 승하 등을 차례대로 기록하였다. 국권이 침탈된 시기였던 바, 고종의 정치적 치적보다는 선왕의 추존과 능묘의 존숭, 先儒나 碩臣에 대한 恩典 등이 양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高宗이 승하한 시기는 일제 강점기이거니와 행장을 찬술한 李載完은 일본 천황이 정한 朝鮮貴族令에 의거하여 侯爵의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 행장은 국권 침탈과 일제와의 정치적 구도에 대한 역사적 포폄이 결여되고, 민족의식이 거세된 특징을 보여준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이와 동일한 문헌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장서각에 『高宗太皇帝山陵主監儀軌』(K2-2284), 『高宗太皇帝殯殿魂殿主監儀軌』(K2-2918), 『高宗太皇帝御葬主監儀軌』(K2-2920) 등이 소장되어 있어 고종의 장례 과정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增補文獻備考』, 『譯註經國大典』(韓㳓劤 외,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72) 『藏書閣의 歷史와 資料的 性格』(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