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509_000G002+AKS-AA55_20509_000 【정의】 【서지사항】 1책 73장 분량의 복판본으로 반곽의 크기는 21.4×16cm이고, 책의 크기는 29.4×20cm이다. 四周單邊이고, 반엽은 10행 18자의 형태다. 주석은 雙行이고, 판심에 內向二葉花紋魚尾가 보인다. 전반부에 편차된 「丁氏墓」 부분에는 6장의 묘소의 形局圖(山形圖)가 차제되어 있는데, 무덤의 위치와 형국이 구체적으로 표기되었다. 표제는 『押海丁氏述先錄』이고, 내제는 「羅州押海丁氏述先錄」이며, 판심제는 「丁氏述先錄」이다. 판심제 하단에는 張數가 새겨져 있다. 첫째 면에 ‘李王家圖書之章’이라는 소장인이 날인되어 있고, 권 말에 ‘太古亭藏’이라는 기록이 보이는바, 처음에 태고정에 소장하다가 李王家圖書로 유입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에 批點과 貫珠를 가하고 있다. 卷頭에는 1660년(顯宗 1) 1월 13일에 쓰인 丁時傑의 「押海丁氏述先錄序」 와 丁彦璿(1560~?)의 「水村錄敍語」가 보인다. 【체제 및 내용】 『羅州押海丁氏述先錄』는 丁時傑이 1660년(顯宗 1)에 押海丁氏의 시조인 丁允宗을 시작으로 丁時傑의 부친인 丁彦珪까지 行誼가 뛰어난 인물을 중심으로 年壽와 履歷, 忌辰, 葬地 등을 기록한 전적이다. 丁時傑의 부친인 丁彦珪은 壬亂이 끝난 후, 家藏 世系를 가지고 다른 派의 후손을 방문하여 族譜를 만들었으나, 丙子胡亂 때 망실되고 말았다. 다행히 丁時傑의 外弟인 權론이 필사했던 족보는 일실되지 않았으므로, 정시걸이 이를 수정하고 後生의 기록을 덧붙여, 刊行을 대비해 여러 본을 등사했다. 그리고 후대의 편의를 도모하고 훗날의 망실에 대비하고자, 작은 冊子本을 만들어 世系만을 취하되 分派는 소략히 하고, 직계 선대의 年壽와 履歷, 忌辰, 葬地는 상세히 기록한 후, 行蹟을 뒤에 소략히 덧붙였다. 그리고 이른바 家乘이라는 것에 比擬하여 「述先錄」이라 명명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羅州押海丁氏述先錄』이다. 丁時傑은 1638년(仁祖 16) 8월에 선조인 月軒公 丁壽崗(1454~1527)의 外 4代孫인 前郡守 李恪을 방문해 「月軒公帖子」를 보게 되었는데, 월헌공 先代의 성명과 생일 및 昭格令의 이력, 外先祖의 墳山, 忌日 등이 망라되어 있었다. 이에 「月軒公帖子」를 謄寫하여 『羅州押海丁氏述先錄』에 삽입하였다. 그리고 丁時傑의 족부인 丁彦璿은 만년에 淸風山 水村里로 낙향하여 先代의 世系와 履歷을 기록하여 譜錄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덧붙여 손자인 丁南一에게 주었다. 1660년 여름에 丁時述이 이 譜錄을 얻어 정시걸에게 보여주자 정시걸은 丁彦璿이 見聞한 내용을 『羅州押海丁氏述先錄』에 편입하였다.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冒頭에 丁時傑의 「押海丁氏述先錄序」(1660년), 「續敍兼例」(1660년), 丁彦璿(1560~?)의 「水村錄敍語」가 편차되어 있고, 「羅州押海志」와 「丁氏屬籍總抄」, 「羅州押海屬籍辨」, 「丁氏墓地」가 이어지고 있다. 「羅州押海志」는 『東國輿地勝覽』에서 轉寫한 것이고, 「丁氏屬籍總抄」는 湖南과 嶺南, 海西, 關西 네 지역으로 나누어 총 23개의 丁氏 관향을 소개한 것이다. 「羅州押海屬籍辨」은 押海라는 지명과 관향의 연원을 고구한 것이고, 「丁氏墓地」는 押海, 德水, 白川 江西, 白川 栗壑, 幸州 土堂과 茂院, 廣州 樂生, 忠州 丹月 등 일곱 지역에 분포된 丁氏 묘지를 소개한 것이다. 모두 6장의 形局圖(山形圖)를 활용하여 묘소의 위치와 형국을 상세히 표현하였다. 이어서 「羅州押海丁氏述先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丁允宗부터 시작하여 丁彦珪까지 50여 명의 생평을 적고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이 상세하거니와 丁時傑의 부친부터 고조까지는 더욱 세세하다. 인용된 문헌들을 살펴보면 『月軒帖』, 『水村錄』, 『月軒集』, 李濟臣의 『淸江瑣語』, 李睟光의 『芝峯類說』, 舊譜 등이고, 각종 墓道 文字와 丁彦璿의 「記聞」 등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丁時傑이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부분은 ‘謹按’이라 시작되고 있다. 여타 문인의 挽詩와 선조의 詩作 또한 간헐적으로 눈에 띈다. 『月軒帖』은 전술한 「月軒公帖子」를 가리키고, 『水村錄』은 丁彦璿이 찬술한 譜錄을 말한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왜란과 호란을 겪는 과정에서 상당량의 譜牒類가 유실되었고, 가문 의식의 성장과 맞물려 이를 재구하기 위한 노력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羅州押海丁氏述先錄』은 호란 직후에 제작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지니거니와, 이를 통해 보첩류의 재구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소장 현황 및 영인관계】 羅州丁氏月軒公派宗會에서 2003년에 『羅州押海丁氏述先錄』을 간행하였는데, 전문을 번역했고, 원문을 영인하여 부록하였다. 【참고문헌】 『增補文獻備考』. 『譯註經國大典』(韓㳓劤 외,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