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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오충실기 [密陽朴氏五忠實紀] - 해제

G002+AKS-AA55_20417_000 【정의】 【서지사항】 임진왜란에 전공이 있는 박참군공의 9세손인 朴奎相이라는 사람이 박천붕과 그의 네 아들(元謙, 仁謙, 禮謙, 義謙)의 충성과 의리를 기리기 위해 그가 직접 쓴 글과 그밖에 여러 사람들의 기록을 모아서 편집하여 만든 것이다. 책의 목록 다음에는 경인년(1890) 중추일에 쓴 幸州 奇宇萬의 新刊 序文과 신묘년(1891) 이월 그믐에 쓴 光山 金洛鉉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책의 말미에는 1897년(上之三十四年丁酉)에 쓴 박규상 자신의 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1890년 전에 완성되었으나, 1897년 경 재발간된 것으로 보인다. 목활자본인 이 책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고, 네 가장자리가 두 개의 선으로 되어 있으며(四周雙邊), 행마다 경계가 있고(有界), 10행에 20자의 글자로 되어 있다. 판 중심에는 위아래에 안쪽으로 향한 어미가 있다(上下內向魚尾). 겉표지에는 『五忠實紀 單』으로 표기되어 있고, 3면에 걸쳐 目錄이 나오고, 신간서가 뒤따르며, 이후 소제목을 가진 본문이 나온다. 【체제 및 내용】 두 개의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권에 12개의 항목이 있고 제2권에는 부록으로서 29개의 항목이 있다. 제1권은 주로 박참군의 유문을 모아 놓은 것이고, 제2권은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기타 여러 가지 자료로 되어 있다. 1권의 「摎亭遺文」에서는 박참군이 남긴 글들을 수록하였는데, 거기서 그가 조헌의 금산전투 소식을 듣고 이에 격발하여 참전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勸學文」에서는 그가 학문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특히 愛親事君하는 효성과 충성을 강조하고 있다. 「家訓」에서는 학문할 것을 권면하고 충효를 실천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밖에도 선을 쌓은 집안은 흥하고 악을 쌓은 집안은 망하므로 선행을 많이 실천할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상스런 언동이 많은 시장이나 거리를 멀리하라는 내용도 있다. 2권 부록에서는 박천붕의 여러 행적에 관한 글들을 모아 놓았다. 「旌閭事實」에서는 박천붕의 인적사항과 그가 문열공 조헌에게 학문을 배웠다는 점, 그리고 上黨전투에서 殉義한 것을 기려 영조가 정려 하사를 명했다는 것을 기록했다. 「중봉훈사」에서는 스승인 조헌이 근면하게 경전을 공부하고 육예를 닦으라는 훈시를 주었다는 것을 기록하였다. 「부사자사적」에서는 박천붕의 네 아들, 즉 장남인 원겸, 차남인 인겸, 삼남인 예겸, 사남인 의겸의 인적 사항을 간략히 기술해 놓고 있다. 이 중 특히 삼남인 예겸에 대한 기술이 가장 긴데, 이는 그가 병자호란 때 儉川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병자기사」에서는 병자년의 전란에 있었던 일을 적고 있는데, 네 형제 모두 丁丑년에 순국하였다. 책 뒷부분에는 宋煥箕가 쓴「오충실기」의 서문을 비롯하여, 조혁이란 사람이 이들 부자에 관해 쓴 「五忠紀實」이라는 기록, 安邦俊이 요약한 「중봉선생항의신편초략」, 박유철이 쓴 「선조유적」, 任憲晦가 쓴 「정려기」, 박천붕의 일생을 기록한 「朴天鵬傳」, 閔胄顯이 쓴 「移板記」, 김상현이 박의겸에 대해 쓴 「산양삼강전」, 崔益鉉이 쓴 「정려비음기」, 박기훈이 쓴 오「충사실기」, 기우만이 쓴 「오충기실비」, 송병준이 박규상에 써준 글, 그리고 조원식의 발문과 박씨 후손들이 쓴 기록들이 이어진다. 이 글들은 모두 박천붕과 그 아들들의 행적과 충의에 관련된 사실들을 기록하거나 기린 글들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책의 특징은 편저자가 기록하려는 박천붕의 유문과 그에 관한 여러 기록들을 편집한 글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수많은 저자들의 글이 섞여 있다. 이 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박천붕과 그 네 아들들이 어떠한 일을 했고 어떠한 업적을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한 가문에서 부자의 일대기를 기록한 흔치 않은 전적이라 하겠다. 또한 이 책은 당시 사대부 가문이 임란과 호란을 맞아 어떤 정신적 상황에 있었는지를 가늠케 해주는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장 현황 및 영인관계】 이 책은 장서각 소장본(2-417) 외에 고려대에도 유사한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B12 A204). 그러나 고려대 소장본은 표지 서명이 『朴氏五忠錄』으로 되어 있어서 장서각본과 다른 판본으로 여겨진다. 영인본은 없다. 【참고문헌】 『밀양박씨족보』(박효원, 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