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209_000G002+AKS-AA55_20209_000 【정의】 【서지사항】 불분권 1책. 필사본. 찬자는 남정철. 편찬시기는 1884년 이후. 【체제 및 내용】 표지는 ‘北洋衙門談艸’로 되어 있다. 남정철과 이홍장의 문답은 첫 칸에 ‘南’, ‘李’라고 작은 글씨로 쓰고 다음 줄부터 한 칸을 내려 썼다. 경우에 따라서는 겹줄로 세주를 달았다. 「海關道盛宣懷初次來舘談艸」와 「額勒精額來舘談艸」가 부록되어 있다. 남정철은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치상(穉祥), 호는 하산(霞山)이다. 현감 홍중(弘重)의 아들이며, 유신환(兪莘煥)의 문인이다.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음관(蔭官)으로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익위가 되었다. 1882년(고종19) 11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여러 관직을 거쳐 한중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884년 2월 톈진주차독리통상사무(天津駐箚督理通商事務)가 되어 임지에 주재하는 동안 보정부(保定府)에 있는 흥선대원군을 문안, 그 해 7월에 복명하고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갑신정변 당시에는 김윤식(金允植)과 함께 청나라 병영에 가서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당의 축출을 위해 출병을 요청하였다. 정변의 실패 후 수구파 중심의 정부에서 호조참판에 기용되었다. 그 해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한로수호통상조약(韓露修好通商條約) 비준사건의 양해를 구하는 고종의 친서를 휴대하고 톈진(天津)으로 가서 북양대신 이홍장의 동의를 얻었다. 이 필담은 바로 이 때 남정철이 이홍장을 만나 나눈 대화내용의 일부이다. 1884년(고종21) 7월 15일에 동지부사로 임명된 남정철은 11월 2일에 하직인사를 하고 청국으로 출발하였다. 보정부 문안의 사명도 띤 그는 19일에 재주관 이용준을 데리고 북양아문에 가서 자문 2통과 어찰 1통을 전한 후에 앉아서 이홍장과 대담하였다. 교통편과 방문목적에 대한 말을 주고받은 후에 이홍장은 러시아와 이태리의 통상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먼저 언급하면서 러시아의 출력(出力)을 우려하였다. 이에 대해 남정철은 어찰의 내용을 소개하였다. 러시아공사와의 육로통상 협의에 관한 것으로, 중당의 협조를 요청하였다. 정약(訂約)할 때에 외무독판 및 제협판은 판리목(辦理穆)을 방조할 뿐이지 무슨 출력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면서 그 가능성을 일축한 남정철은 이번 방문의 목적이 상무(商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청국의 번위(藩衛)에도 있음을 밝혔다. 조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청국은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따라 일실(一室)로서 위호(衛護)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의지할 사람은 오직 합하 한 사람 뿐이라고 한 그의 말에서 당시 국제정세에서 조선은 청의 이홍장에게 상당한 의존 태도를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이홍장은 기밀을 요하는 말은 수시로 필담을 주고받으면 되나, 그렇지 않은 사건은 진해관도에 속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즉답을 피했다. 그러자 남정철은 조선이 청국을 섬긴 오랜 전통을 강조하고 임오지변 때의 원조를 사례하면서 조선은 청국에 대해 사대의 예를 등지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다. 그리고는 일본과 서양 제국과의 외교관계 그리고 지난해에 조약을 개정하기로 한 약속 등에 대한 전말을 진술하였다. 당시는 청국의 조선 속방 문제가 민감한 현안이었으므로 조선의 청국에 대한 사대가 강조되는 측면이 있었다. 청을 중국이라 하지 말고 천조(天朝) 혹은 상국(上國)이라고 하도록 요구한 것도 조선이 청국의 속국임을 공인하고자 한 것으로 이 필담에서도 그렇게 칭하고 있다. 반면에 조선과 고종을 가리킬 때에는 폐방(敝邦), 과군(寡君)이라 칭하였다. 이러한 양국관계 속에서 남정철이 언급한 바, 불령한 무리들이 원한을 풀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설에 대해, 이러한 사실은 청국이 통연히 이미 양찰하고 있는데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조선 사정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였다. 청국인 주가록이 조선 영접사에게 준 시 한 구절 즉 ‘陰謀捨周者 誠萬萬屈抑’을 들면서 반청에 대한 혜량을 바란 것은 갑신정변 이후의 반청파의 등장으로 청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조선의 현실인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홍장은 이 문제에 대해 태서 각국과의 통상조약 체결을 권한 것은 일본을 견제하여 농단 병탄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신당(新黨) 한 무리가 저들의 사주를 받아 사대를 이간질하는 음모에 국왕과 원로숙덕이 현혹되지 말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 다음으로 남정철은 네 가지 사항을 건의하였다. 첫째, 상무(商務)에 대한 사항이다. 조선은 이익을 이웃나라에 빼앗기고 백성은 곤궁하여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상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 상무 일반을 알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다. 둘째, 조선에 이익이 되는 상무의 규례 및 방략을 가르쳐 달라는 청이다. 셋째, 청국에서 활동하는 조선인 판상(販商)의 입송(入送) 절차와 규례를 정하는 일이다. 넷째, 중국의 세무와 해관의 정형을 시찰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요청이다. 남정철은 또 고종이 명한 보정부 문안에 관한 건을 설명하고 태공을 석방하여 돌려보낼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 문의하였다. 이에 대해 이홍장은 대원군을 석방하여 돌려보내는 일은 나에게 그 권한이 있으나 10월설은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하면서 이홍장은 국왕과 정부 및 왕비에 대해서도 운운하였으나, 여기에는 생략되어 있다. 남정철은 그의 이러한 언급 중에 대해 ‘勿引’ 이하의 9자와 그 중간 2자를 변명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지난 해 서울에서 있었던 최택영의 명안(命案)에 관한 일을 사과하였다. 「海關道盛宣懷初次來舘談艸」는 5월 16일 하오에 해관도 성선회가 처음으로 남정철 일행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찾아와서 나눈 필담이다. 청국의 러시아공사와의 의약(議約), 조아(朝俄)육로통상, 가뭄, 학문, 문헌 등을 소재로 나눈 대화내용이다. 「額勒精額來舘談艸」는 5월 22일 상오에 액륵정이 숙소로 찾아와서 나눈 필담이다. 각국통상, 철로병륜학(鐵路兵輪學), 수차(水車), 농상, 사교, 아편, 단오를 맞아 부채 선물, 주과(酒果) 등을 소재로 나눈 대화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장래를 이끌어나갈 사람이 몇인가를 묻자, 좌찬성 민태호, 상서 민영목, 김윤식, 시랑 윤태준, 민응식, 이조연, 어윤중 등을 들었다. 제일 끝 면에는 남정철이 고종에게 올리는 계사가 실려 있다. 고종이 윤선(輪船)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뜻을 받든 남정철이 이를 알아본 결과를 보고한 글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남정철의 청국 방문은 통상과 종속이라는 두 가지 큰 임무를 띠고 이루어졌다. 러시아와의 통상 및 방아정책(防俄政策), 조선과 청의 종속문제 등은 당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외교현안이었다. 이홍장과의 필담은 이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 자료는 이러한 외교현안을 조선은 어떻게 극복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해 나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소장. 【참고문헌】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霞山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