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207_000G002+AKS-AA55_20207_000 【정의】 【서지사항】 불분권 1책, 한문필사본. 나만갑(1592~1642)은 병자호란 당시 전란시에 중요한 군복∙무기∙군량 등을 관리하는 양향사(糧餉使)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러므로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측근에 있으면서 보고 들은 일을 일기로 엮었다. 본서에는 연도가 명확히 나타나 있지 않으나 국립중앙도서관본에는 임오년(1642)의 일을 기록하고 있어 본서는 저자가 죽은 해인 1642년에 탈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이 책의 구성은 서두에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가 건주여진(建州女眞)에서 일어나 세력을 떨쳐 후금을 세운 일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며, “병자년 봄(丙子春初)”으로 시작되는 「시초의 곡절(記初頭委折)」(이하 논의의 편의를 위해 국립중앙도서관본 소제목을 제시하도록 한다)에서는 병자년 3월부터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이전의 청나라와의 갈등상황을 날짜별로 정리하였다. “십이일오후(十二日午後)”로 시작되는 「급보 이후의 일록(急報以後日錄)」에서는 병자년 12월 12일 청나라 군대가 우리나라에 침입했다는 도원수 김자점의 장계를 받은 날로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2월 8일 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심양으로 떠나간 날까지 57일 동안의 일기를 기술하였다. 이어서 “조선국왕(朝鮮國王)”으로 시작되는 1637년(丁丑) 4월 19일에 쓴 사은표(謝恩表)가 있는데 여기서 인조를 조선국왕으로 청나라 태종을 “황제폐하(皇帝陛下)”로 명명하고 있다. “남병사 서우신(南兵使徐祐申)”으로 시작되는 「각처에서 근왕한 일(記各處勤王事)」은 병자호란 때 남병사 서우신(徐祐申), 전라 병사 김준룡(金俊龍), 평안감사 홍명구(洪命耈), 강원감사 조정호(趙廷虎), 원수 김자점(金自點), 재령군수 최택선(崔擇善), 전라감사 이시방(李時昉), 경상감사 심연(沈演), 좌병사 허완(許完), 우병사 민영(閔栐) 등이 임금을 돕기 위해 수행했던 일의 전말을 수록하였다. “서울을 떠날 때(當去邠之時)”로 시작되는 「강도에서 있던 일(記江都事)」에서는 검찰사 김경징과 부사 이민구 등이 비빈∙대군 등을 모시고 강화도에 갔다가 제대로 방비하지 않아 적에게 함락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자결하거나 도망간 인물들의 행적을 기술하였으며 그 후 이들에 대한 처분까지 다루었다. “윤황∙유황∙이일상(尹煌兪榥李一相)”으로 시작되는 「척화하여 의에 죽은 분들(記斥和死義諸公事)」는 척화를 주장한 인물로 윤황, 유황, 이일상 등과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홍익한(洪翼漢) 등 삼학사의 일화를 수록하였다. “병자년 겨울(丙子冬)”로 시작되는 「난리가 지난 뒤의 일(雜記亂後事)」에는 광해군의 죽음과 전란 때 7천여 명이나 뽑은 무과 급제생의 악영향, 인조가 항복한 삼전도에 세운 청나라 태종의 송덕비의 내용 등을 수록하였다. “백관에게 상을 더할 때 김상헌이 사양하며 상소하기를(百官加賞金尙憲辭資上疏曰)”로 시작하는 「청음이 무고를 당한 일(記淸陰被誣事)」은 국립중앙도서관본에 없는 내용으로 청음 김상헌의 상소글을 비롯해서 1638년 7월 29일 장령(掌令) 유석(柳碩), 박계영(朴啓榮) 등이 김상헌의 논죄를 청한 글 등이 실려 있다. “기묘년 가을(己卯秋)”로 시작되는 「청에게 곤욕당한 일(受淸之困辱事)」에는 1639년 명나라 공격을 지원하라는 청의 요구에 대한 김상헌의 상소, 1640년 청나라 용골대 등이 조선의 처사를 힐책한 일, 그리고 청에 정복된 뒤에도 의를 굽히지 않은 김상헌 등이 받은 곤욕을 다루었다. 이 책에는 이 뒤에 “얼마 후 청의 사신이 왔는데(頃於胡差之來)”로 시작하여 영의정 홍서봉(洪瑞鳳)과 이조판서 이현영(李顯英)이 오직 적군 용호(龍胡)를 거든 일 및 청나라에서 한국의 포수들을 대대적으로 보내게 한 일 등을 기술하였는데 국립중앙도서관 본에는 이 내용이 「난리가 지난 뒤의 일」 뒷부분에 실려 있다. 저자의 발문에는 병자호란을 천고의 드문 일로 정의하고 병자록 저술 방법에 대해 “먼저 그 화가 일어나게 된 연유를 들고, 다음에 내가 눈으로 직접 자세히 본 것을 기록했으며, 남에게서 전해들은 것은 널리 찾아보고 물어 보고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 보아 일의 잘잘못과 사람의 착하고 악함을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남김없이 죄다 말했으며, 친하고 소원함을 가리지 않고 사실을 들어 똑바로 썼다”고 하여 일어난 일의 본말을 사실대로 기술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병자록의 대표적 사본은 이 책과 국립중앙도서관본인데 국립중앙도서관본에는 소제목이 있는 반면 이 책은 소제목이 없으며 오탈자도 많은 편이다. 소제목으로 나뉘는 부분조차 이어서 기술되어 있어서 편집체계를 갖춘 국립중앙도서관본보다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국립중앙도서관본과 장서각 본이 대표적이다. 1928년 조선박문사에서 신활자로 발행한 『임진급병자록(壬辰及丙子錄)』이 있는데 이것은 한문에 토를 달았으며 앞의 두 사본과는 순서가 다르고 내용이 더 자세하다. 【참고문헌】 羅萬甲 著, 李基奭 譯, 『丙子南漢日記』, 瑞文堂, 1977, 羅萬甲 著, 尹在瑛 譯, 『丙子錄』, 正音文庫 169, 1979. 권인혁, 「석지형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소재영, 「병자록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