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200_000G002+AKS-AA55_20200_000 【정의】 【서지사항】 불분권 1책. 필사본.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편찬자, 편찬과정 등은 알 수 없다. 편찬시기는 각 왕대별 공신과 상신, 배향공신, 청백리 등의 기록에서 경종조(景宗朝) 다음에 금상조(今上朝)라 한 것으로 보아 영조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목차 없이 본문이 곧바로 서술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항목을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본문을 시작할 때의 항목은 없고, 그 다음부터 삼한, 삼국, 고려, 성조조선(聖朝朝鮮), 국조보계(國朝譜系), 호당피선(湖堂被選), 빈관록(儐館錄), 문묘종향, 계성사(啓聖祠), 석채진설도, 석채축문의 순으로 항목을 나누었다. 부기사항은 겹줄로 해서 작은 글씨로 썼다. 본문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역대 왕조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단군조선부터 고려까지는 24장의 분량을 차지하며, 조선은 단 2장에 걸쳐 있다. 전자는 각 국가의 왕대별 연혁과 신이(神異)한 일을 간략하게 기술하였으며, 후자는 당대의 군현수와 국가의 사방 크기만을 소개하고 있다. 후반부는 조선시대의 왕실계보와 인물, 문묘에 관한 것이다. 전반부에서는 맨 먼저 조선이라는 명칭이 나오게 된 유래와 지리적 위치를 간략하게 소개한 후, 단군∙기자조선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삼한 조항에서는 기자조선 다음에 위만조선을 설정한 다른 사서들과 달리, 마한∙진한∙변한과 나란히 위만조선을 위치지우고 있다. 마한은 기준이 남천해서 금마군(익산)에 이르러 건국했다가 온조에게 멸망한 것으로 파악한 점에서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삼국 조항에서는 신라 고구려 백제 순으로 각 왕대의 중요기사를 수록하되 영적(靈跡)∙이사(異事)를 위주로 하였다. 특별히 수록할 기사가 없는 경우에는 역대순으로 각 왕명만이라도 기재해 놓은 점이 특징이다. 신라를 첫 번째로 다룬 것은 아마도 국가의 정통성을 신라에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명 신라의 뜻도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이며, 라(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첫 대목에 있어 그러한 의심을 더하게 한다. 신라는 혁거세의 탄생설화부터 시작해서 삼국의 통일 그리고 멸망에 이르기까지, 고구려는 주몽의 탄생설화부터 당나라에 멸망할 때까지를 기록하였다. 특히 백제는 거의 왕명의 나열이라 할 정도로 기록이 간단하고, 의자왕대의 멸망과정만 자세하게 수록하였다. 여기 삼국 항목에는 가락국과 탐라국, 기타 여러 소국들도 포함되어 있다. 가락국은 수로왕의 탄생설화와 함께 육가야의 명칭, 허황후에 대한 것만을 기록하였고, 탐라국은 신인(神人)의 출장(出長)과 농경의 시작, 신라에 내조한 사실 등을 기술하였으며, 각 소국은 현재의 위치만이 소개되어 있다. 고려 조항에서는 32세 475년간의 사실이 간략히 서술되었고, 조선 조항에서는 군현수와 전국 사방 경계의 이정(里程)만을 적어놓았다. 국조보계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시조(翰, 신라 司空)부터 시작해서 직계의 계보를 나열하고 있다. 목조부터는 시호와 이름, 벼슬, 식읍, 능호, 능의 소재지, 비(妃)의 시호와 성씨, 적(籍), 부명(父名), 능호, 능의 소재지 등을 기록하였으며, 태조부터는 생몰년(기일), 즉위년 및 자녀 등을 추가하였다. 각왕의 업적과 정치적 사건은 연도별로 구분하여 기술하였다. 이 계보에는 추존왕도 포함하였다. 그런데 영조에 관한 기록은 시호와 휘(諱), 자(字), 생년, 군호(君號), 즉위년, 기일, 능호, 비(妃)에 관한 기록만이 있고, 왕의 업적이나 정치적 사건 그리고 자녀에 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종에 이어 붙여서 기록할 만도 한데 면을 달리하였고 글자체도 서로 다른 것으로 보아, 영조에 관한 기록은 나중에 추기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의 기록은 항목 없이 각 왕대별로 공신과 상신, 배향공신, 문형, 청백리, 주(誅) 등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열거하였다. 공신의 경우에는 대표적인 인물 한 명과 함께 인원수로 나타냈다. 그런데 경종조(景宗朝) 다음에는 영종조(英宗朝)라 하지 않고 금상조(今上朝)라 한 것이 주목된다. 이를 근거로 추정해 보면, 이 책의 초고는 영조 때에 완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호당피선 항목에서 호당은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이다. 따라서 이 항목은 독서당에 선발된 인재의 명단이면서 실시된 시기를 나타내고 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세종 병오년(1426)의 인물들은 사가독서제를 처음 실시하면서 선발된 인재들이다. 이 때의 대제학이 변계량이었다. 제2차 사가독서의 시행이 세종 임술년(1442)에 있었다는 기록도 사실과 같다. 사가독서제는 간혹 폐지되기도 했지만, 성종년간에 독서당이 개설된 이후 대체적으로 영조 이전까지는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항목에서도 숙종 경인년(1710)까지 기록하고 있다. 독서당은 학문적 성격이 뚜렷한 연구기관으로 옥당인 집현전이나 홍문관 못지않게 권위 있는 기관이었다. 빈관록은 내조한 중국 사신의 명단이다. 건문 3년(태종원년, 1401)부터 호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천계 6년(인조4, 1626)까지 조선에 파견된 중국 사신의 직책, 품계, 이름을 기록하였다. 세주로는 원접사(遠接使), 영위사(迎慰使), 관반(館伴), 빈(儐), 종사관의 이름이 기록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원접사의 교체와 그 사유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문묘종향은 성균관 문묘에 위패를 모신 대성지성문선왕 공자를 주향으로 하여 중국의 4성, 10철, 송조6현 및 유현 그리고 동방18현의 명단을 적어놓은 것이다. 계성사는 중국의 5성(聖)의 부친을 모신 사당으로 그 위차를 나타내고 있다. 숙종27년(1701) 성균관 대성전의 서북쪽에 설립하였다. 그리고는 갑오년 8월에 위차가 이정(釐正)된 문묘의 정배위(正配位)를 다시 기록하였다. 석채진설도는 문묘의 석전대제 때 제상에 차리는 제수의 진설의 위치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석채축문은 역시 석전대제 때 사용하는 축문으로, 문선왕과 4성에 대한 것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삼국과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부분은 『삼국유사』나 『고려사』의 기사와 비교하여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수록하고 있지 못해 사료적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국조보계도 그러한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왕대별 인물 기록에서 청백리 명단을 제시하고, 호당피선과 빈관록에서 관련 인물을 한데 모아놓은 것은 매우 드물게 보이는 자료로서, 관련 분야의 연구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서울대 규장각에는 『東史撮要』(1책(25장), 목판본, 고4230-3)와 『東史撮要』(2책, 필사본, 규4756), 『東史撮要』(1책(25장), 목판본, 가람 고951-D717) 등 3종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