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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안사록 [東北按使錄] - 해제

G002+AKS-AA55_20197_000 【정의】 【서지사항】 불분권 1책. 필사본. 유일본. 찬자는 심수. 북행일록(北行日錄)과 북순일기(北巡日記)가 부록되어 있음. 찬술시기는 일기가 시작되는 1757년 8월 27일부터 북순일기가 끝나는 1768년 9월 11일까지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글씨체가 일정한 것으로 보아 찬자 본인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 찬술시기 이후에 다시 필사된 것으로 보이나 편찬시기는 알 수 없다. 【체제 및 내용】 안사록(按使錄)이란 제목에서의 안사는 관찰사의 전신인 고려의 안찰사(按察使) 또는 안렴사(按廉使)라는 직명에서 볼 수 있듯이 관찰사(감사)의 별칭이다. 심수가 정축년(영조33, 1757) 8월 15일에 영에 도착하고 27일에 출순을 시작하면서부터 9월 26일까지 매일의 일기를 써내려갔다. 이후의 이 일기의 구성은 무인년 2월 21일부터 4월 26일까지, 무인년 8월 27일부터 9월 24일까지, 기묘년 4월 16일부터 22일까지의 단종릉 봉심, 기묘년 9월 초6일부터 이튿날까지로 되어 있다. 북행일록은 무자년 3월 27일부터 4월 초10일까지, 북순일기는 무자년 8월 초10일부터 9월 11일까지이다. 날짜별로 기록한 이 일기의 형태는 날짜, 간지, 날씨, 일과 등으로 되어 있다. 이 자료는 주로 심수가 강원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세 차례에 걸쳐 관할지역을 순행할 때의 여정을 쓴 일기이다. 관찰사의 역할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외관(外官)의 규찰이다. 국왕의 특명을 받은 사신으로서 일년에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도내를 순력하면서 수령을 비롯한 모든 외관에 대한 성적을 평가, 보고하는 일이었다. 둘째는 지방 장관으로서 도내의 모든 민관군의 업무를 지휘 통제하였다. 관찰사가 업무를 보는 관청은 감영(監營)∙영문(營門)∙순영(巡營) 등으로 불렸으며, 강원도 감영은 원주에 있었다. 심수는 영조33년 7월 29일(기미)에 강원감사에 제수되었다. 부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순(秋巡)을 실시한 그는 그 여정을 일기로 적어 내려갔다. 날씨는 ‘晴平明’이니 ‘朝微雨卽止晩晴’, ‘雲陰或晴大風’이라 한 것처럼 매우 자세하게 표현하였다. 의당 대령해야 할 순행하는 지역과 인근의 수령, 관직자들 그리고 감사가 지나는 길에 방견(訪見)한 지인이나 토호들 등의 직역과 인명은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순행과정에서 관찰사의 역할을 시행한 사례를 살펴보면, 관정(館庭)에서 망곡례(望哭禮)를 행하고, 선무도시(選武都試)를 실시하여 무사를 시취하였으며, 점열군기(點閱軍器), 백일장, 중군(中軍)의 사조(私操), 정조(正操), 군병호궤, 사후오순(射帿五巡), 점고(點考), 군병 시사(試射) 등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이 일기에는 여정 뿐 아니라 특히 각 지역의 명산이나 승경을 많이 기록하였다. 한 예를 살펴보자. ‘화천을 지나 신읍에서 중화를 먹고 장안사를 향했다. 묵희령을 넘어오니 동쪽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하늘에 꽂힌 듯하였다. 그 이름을 물어보니, 장경봉과 관음봉이라 하였다. 금강의 진면이 여기에서 비로소 나타났다. 심경이 활연하였다. 5리도 채 못 된 곳에 소나무 숲이 있는데, 중들이 가마를 가지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절 앞에는 만천교의 옛 터가 있는데, 다리는 큰물로 무너졌다고 한다. 바로 산영루에 도착하여 조금 쉬었다. 산세는 맑고 기이하며, 누각은 장려하여 과연 소문과 같았다. 단풍든 잎새가 색을 잃은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라 하고, 이튿날 지장봉, 석가봉, 옥경담, 옥경대, 영원암, 삼불암, 백화암, 표훈사 등을 지나면서 역시 금강산 만이천봉의 기이하고 장려함을 찬탄하고 있다. 그 이튿날에도 또 그 이튿날에도 마찬가지였으며, 그 노정은 동해에까지 이르렀다. 이 행로에는 장안사 승통 보감(寶鑑)과 유점사 주지 등이 배행하였다. 그 이후의 여정은 삼일포, 사선정, 고성 해산정, 해금강, 영랑호, 선종암, 청간정, 낙산사, 강릉 경포대 등으로 계속되고 있다. 9월 25일에 원주에서 자고 그 이튿날에 영으로 돌아왔으니, 감사의 순행기간은 모두 31일간이었다. 이 일기에는 이정(里程), 중화(中火) 및 지숙(止宿) 장소, 말마(秣馬)∙체마(替馬)한 역참 등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이 일기는 순행기간만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해 10월부터 무인년(1758년) 2월 20일까지의 기록은 없다. 춘순(春巡)이 시작되는 2월 21일자부터 다시 기록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의 춘순은 4월 26일까지 35일간에 걸쳐 실시되었다. 그 노정을 살펴보면, 감영을 출발하여 주천(酒泉), 영월, 평창, 삼척, 울진, 평해, 척주, 강릉, 횡계, 횡성, 홍천, 춘천, 양구, 낭천, 금화, 철원, 삭녕, 평강, 금성, 금강산, 통천, 고성, 간성, 양양, 설악동, 인제, 홍천, 횡성을 거쳐 돌아왔다. 8월 27일에 발순(發巡)하여 시작한 가을 순행은 먼저 남관(南關)을 향하였다. 주천, 영월, 평창 등을 거쳐 순행하여 마지막으로 횡성, 원주를 지나 9월 24일에 감영으로 돌아왔다. 기묘년 4월 16일에는 3월 이후에 숙병이 더욱 심해져 춘순은 생의(生意)하지 못하고 능소의 봉심을 거행하지 못해 심히 송구해 이 날 발행하여 19일에 영월에 도착해서 그 이튿날 능소를 봉심하고 22일에 환영(還營)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해의 춘순은 취소되었다. 9월 초6일에는 원주 치악산 소재의 상원암(上院菴)을 가서 보고 이튿날에는 영원사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상원암을 찾아가게 된 사유와 여정 및 경치의 아름다움을 별도로 기술하고 있다. 이 일기에서 유의할 점은 관찰사의 기능이나 제도의 한 단서들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심수의 첫 추순에서 대관령을 넘어 객사에서 영군∙수령(강릉부사 등)과 좌기(坐起)한 적이 있다. 이 때 흡곡 현령은 수유(受由)로 통천이 겸행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수령이 수유할 경우에는 인근의 어느 수령이 겸행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인년 9월 17일에는 금화에서 방어사와 춘천현감 등 인근 수령들과 좌기하였다. 또한 무인년 9월 초8일에는 연분답험(年分踏驗)은 영문(營門)에서 겸행하므로 여기 즉 간성(杆城)부터 이후의 수령은 모두 경계에 나와서 기다린다고 한 기록도 주목된다. 이 자료에는 북행일록(北行日錄)과 북순일기(北巡日記)가 부록되어 있다. 북행일기는 심수가 무자년(영조44, 1768) 3월 27일에 함경감사에 제수되어 사조(辭朝)하고 밀부와 교유서를 받고서 4월 초1일에 발행하여 회양, 고산, 고원 등을 거쳐 초10일에 드디어 본영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북순일기는 함경감사 심수가 8월 초10일에 영을 출발하여 덕산, 홍원, 북청, 이성, 명천 등을 순행하고 9월 11일에 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관찰사의 순행임무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철저히 수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이 자료는 관찰사 순행의 제반사항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하다. 특히 강원도와 함경도의 순행노정, 관찰사의 기능 및 행정 등을 깊이 있게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개인 일기의 특성상 당시의 계절에 따른 기후변화를 살필 수 있으며, 자연과 경치에 관한 기록을 통해 그 당시 관료의 서정성과 경승지의 역사성을 참고해 볼 수 있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