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185_000G002+AKS-AA55_20185_000 【정의】 【서지사항】 4권 2책, 목판본. 범례에 의하면 이인좌(李麟佐)의 난과 관련된 다양한 서적을 참고하고 편자가 견문한 것을 바탕으로 엮었다고 하므로 편자는 18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인물로 여겨지나 미상이다. 남정(南征)과 관련한 전후 주문(奏文), 장계(狀啓), 첩(牒) 등을 모두 실을 정도로 객관적 사실을 수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체제 및 내용】 범례에 의하면 본서는 남정(南征)에 대한 도순무사(都巡撫使) 쪽의 기록이 없어서 『정원일기(政院日記)』, 『감란록(勘亂錄)』, 『조풍원일록(趙豊原日錄)』, 군관(軍官) 신진소(申震熽)∙권희학(權喜學)의 기록, 해당 부서의 등록(謄錄) 등을 절충하고 이외에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견문한 것을 참고하여 엮었으며, 남정에 대한 기록이므로 남정 이전 일이나 조정의 조치는 간단히 기록하고 남정 이후의 사정을 자세히 다루었으며, 남정과 관련한 전후 주문, 장계, 첩 등은 번다하더라도 모두 실었다고 하였다. 아울러 영조(英祖)의 칙유문은 본래 내용 중에 있는 것을 앞으로 보냈다고 하였다. 이 글은 1728년 3월 28일에 사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을 격려한 글이다. 이인좌의 난 또는 무신난(戊申亂)으로 불리는 이 반란의 원인은 숙종의 아들인 경종을 지키려는 소론이 경종의 이른 죽음으로 입지가 약화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경종의 죽음에 대한 의혹설과 영조가 적통이 아니므로 적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남인과 함께 동조세력을 규합해 가던 중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일부 소론이 다시 기용되면서 군사를 모아 역모를 도모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고 위기를 느낀 이인좌 등이 1728년 3월 15일 청주성을 함락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난이 시작되었다. 본서는 1728년 3월 17일부터 7월 20일 난이 평정되고 공신축을 만들 때까지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내용을 보면, 3월 17일의 기록에 병조판서인 오명항을 사로도순문사로 삼아 기호지역의 적을 토벌하게 한 일을 적었으며 한 줄을 낮추어서 이 적대세력이 1727년부터 민심을 동요하고 군사를 모은 일 등을 지역, 일자, 인원 등까지 상세하게 수록하였으며 이들에 대한 국문(鞠問)과 처벌 양상 등도 상세히 기록하였다. 날짜별 이동 상황을 보면 18일에 동작진을 출발하여 과천현에 이르렀으며, 19일에는 이를 출발하여 수원부에 들렀다. 이 때 청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20일에 진위현(振威縣)에 들렀으며, 21일에는 그대로 머물고 22일에는 소사(素沙)를 거쳐 안성군(安城郡)에 이르렀다. 저녁에 적이 침범했지만 방어를 잘해서 물러났다고 한다. 23일에는 청룡산(靑龍山)에서 이인좌를 토벌하였으며, 적장인 박종원(朴宗元)을 참수했다. 24일에는 죽산에서 적장 정행민(鄭行旻)을 물리치고 이인좌를 체포하였다. 25일에는 이인좌를 서울로 압송하고 본대는 장양역(長楊驛)을 거쳐 진천현으로 진격하였다. 26일에는 오근창(梧根倉)을 거쳐 청주부에 들어갔다. 27일에는 이인좌의 동생인 웅보(熊輔)가 세력을 규합하여 청주를 친다는 소식을 듣고 방비했으며, 29일까지 방비하다가 30일에 영남을 토벌하기 위해 문의현(文義縣)으로 갔다. 이 때 영남지방은 정희량(鄭希亮)을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었다. 4월 1일에는 회덕을 지나 옥천군(沃川郡)에 이르렀으며, 2일에는 영동현(永同縣)으로, 3일에는 추풍역(秋風驛)으로, 4일에는 금산군에 이르러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부터 영남의 반군을 토벌했다는 첩을 받았다. 5일에 지례현을, 6일에 신창, 7일에 안음현, 8일 함양군, 9일에 운봉을 거쳐 남원부에, 10일에 임실현에, 11일에 전주부를, 12일에 여산부(礪山府), 13일에 公山府(지금의 공주), 14일 천안부에, 15일 진위현에, 16일에 용인에, 17일에 서빙고에, 18일에 동작진을 건너고, 19일에 숭례문에 들어옴으로써 실제 남정의 임무는 끝나게 된다. 그 후 20일에 오명항은 원훈(元勳)에 녹훈되고, 22일에 난을 평정했음을 태묘에 고했으며, 24일∙26일에 녹훈할 일을 의논하게 하고, 7월 18일에는 공신들과 회명연을 지냈으며, 19일에 공신축(功臣軸)을 만들고 20일에 공신들이 하례의 글을 올렸다. 부록에는 노포문(露布文), 병조판서 오명항이 원훈(元勳)을 사양하는 상소문, 종사관 박문수가 녹훈을 사양하는 상소문, 윤혜(尹惠)의 「회맹제천문(會盟祭天文)」, 서명균(徐命均)의 「반축교서(頒軸敎書)」, 「공신등사전문(功臣等謝箋文)」, 「안성평적송공비(安城平賊頌功碑)」 등이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본서는 범례에 밝혔다시피 이인좌의 난을 토벌하는 양상을 날짜별로 기술하되 그에 따른 구체적 문건을 그대로 제시하고 그 배경과 전개양상을 다시 세부적으로 제시해서 이인좌의 난 연구에 대표적인 자료로서 손색이 없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이다. 【참고문헌】 오갑균, 「이인좌의 난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