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182_000G002+AKS-AA55_20182_000 【정의】 【서지사항】 1책 124장. 국한문 필사본. 융희 연간(1907~1910)에 궁내부에서 기록한 국한문 혼용체 일기. 장서각에 4부의 필사본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의 서두에는 순행을 하게 된 취지와 이에 따른 조칙(詔勅)을 수록하였고, 일기는 순행에 오르기 3일전인 1월4일부터 환궁한지 3일후인 16일(15일은 없음)까지 기록하였으며, 일기의 내용을 보면 4일에는 1월 7일 순행시부터 13일 돌아올 때까지의 일정과 행선지 및 시간을 명시하였고 대구관찰사와 궁내부대신이 서로 보낸 순종의 행차에 따른 문의와 전보를 기재하였다. 5일에는 관보호외(官報號外)로서 순행일정을 반포하고 길가의 경비, 도로∙교량의 수축, 의장기병(儀仗騎兵)의 파견 등 준비사항을 기재하였다. 6일에는 수행원들에 대한 사령(辭令)과 주의사항, 그리고 이들의 예장(禮裝)에 관한 통첩건(通牒件)과 기타 일정 및 출발인원의 명단 등을 기재하였다. 7일에는 순종행렬이 돈화문(敦化門), 덕수궁(德壽宮), 남대문역(南大門驛) 등을 지나 궁정열차로 성환(成歡)∙대전(大田)∙추풍령(秋風嶺) 등의 역을 지나 대구에 도착했음과 이 과정에서 있던 문안관련 전보 몇 건을 기재하였다. 8일에는 대구에서 부산에 이르기까지의 발착 시간과 숙식, 동래부(東萊府)에 들른 일과 이에 따른 전보 건수를 기록하였다. 9일에는 순종이 부산에 머물면서 일본황제가 보낸 일본 제2함대를 들른 일 및 국내외 전보 7건을 기재하였다. 10일에는 부산에서 남산(男山)으로 순행한 일, 창원부(昌原府)에 간 일 등에 대한 기사 및 이 날의 전보 건수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11일에는 마산(馬山)에 간 일과 일본 제1함대를 들른 일, 이곳에서의 칙어(勅語)가 기재되었으며, 역시 순행과 관련된 전보 11건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2일에는 마산에서 대구로 순항하는 상황, 대구에 머무는 동안 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의 각 관찰사를 만나 칙유(勅諭)한 일과 역시 전보 20건이 수록되어 있다. 13일에는 대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상황, 대전에 잠시 머물면서 퇴직고관과 신하들을 만난 일 기타 전보 내용을 수록하였다. 14일에는 서울의 문무고등관 등이 인정전(仁政殿)에서의 문안서명사항(問安署名事項)을 기재하였다. 15일에는 인정전(仁政殿) 동행각(東行閣)에서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황족 및 대신들 그리고 호종했던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려준 일을 기록하였다. 부록으로는 제1호가 지방에서 왕실 의장 방식(地方鹵簿式), 제2호는 지방에서의 폐하 알현식(陛見式), 제3호는 옥거봉시원(玉車俸侍院)의 배열도, 제4호는 궁정열차 배치약도(配置略圖), 제5호는 수행원 사령(辭令), 제6호는 본부 수행원 명단으로 궁연열차 수행승차자의 명단, 음악대, 5일 선발자 명단, 6日 대구에 먼저 간 수행원 명단, 7일 부산에 먼저 간 수행원 명단을 기재하였으며, 제7호로 본부 각 계원(係員)의 배치표, 제8호는 부산∙마산∙대구 등지 관민에게 내린 하사금 명세서와 진헌품 명세표를 기재하였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자료가 많지 않은 순행일기류의 하나로 특히 황제의 순행일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순행에 따른 각종 의식이나 순행지방에서 진상된 토산물 내역, 황제의 하사금 명세표, 순행에 따른 지방관민의 환영과 환송 등 당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그러나 일제 통감부에 의해 진행된 순행이었으므로 행선지와 관련기록들이 일본 시책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을 고려해야 하며 그만큼 자료적 한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소장현황 및 영인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 필사본 4부가 소장되어 있다. 서울대 규장각본에 『남서순행일기(南西巡行日記)』 5책 중 2∙4책이 『남순행일기(南巡行日記)』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이장희, 「남순행일기 해제」, 『남순행일기』, 장서각 소장본(k2-183). 「남서순행일기 해제」,『남서순행일기』, 규장각 소장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