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2_je_a_vsu_20179_000G002+AKS-AA55_20179_000 【정의】 【서지사항】 표제는 ‘난초(爛抄)’이고 불분권(不分卷) 30책 분량의 필사본이다. 각 책의 표제 우측 상단에는 ‘自癸亥十二月 至甲子十二月’ 등과 같이 해당 책에 수록되어 있는 기사의 시기가 명시되어 있다. 장정은 선장(線裝)이고 광곽(匡郭)과 판심(版心), 어미(魚尾), 괘선(罫線)은 보이지 않는다. 각 책의 크기는 일정치 않고 29책과 30책은 오사란(烏絲欄)이 보이는데 전반부의 초서체와는 달리 단아한 해서로 씌어 있다. 반엽(半葉)의 크기는 34.1×21.4cm이고 12행인데 글자수는 일정하지 않다. 필요에 따라 쌍행의 주석(註釋)을 가하여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고 도처에서 글자를 수정하고 있으며 교정부호도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문장의 우측에 세필(細筆)로 보록(補錄)한 부분도 상당수에 이르며, 서미(書眉)에 본문의 내용을 대표하는 핵심어를 표시함으로써 일견에 그 개요를 살필 수 있게 하였다. 한편 날짜와 날짜 사이는 권점으로 구분하였고, 임금이 제작한 반교문(頒敎文)일 경우는 변려문의 대우(對偶)를 고려하여 대를 이루는 두 구(句)를 병치하여 세필로 적고 있다. ‘藏書閣圖書印’이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다. 전편에 걸쳐 필사자와 필사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체체 및 내용】 『爛抄』에 실린 기사는 1863년(철종14) 12월 8일부터 1894년(고종31) 7월 30일까지이다.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과 『한국인물대사전』 등에서 『난초』의 편자를 尹致羲(1797~1866)로 적고 있다. 그러나 『난초』에 실려 있는 30여 년간의 기록이 대부분 윤치희 사망 이후의 기사임을 감안한다면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장서각에 소장된 또 따른 『난초』(2-178, 2-181)는 1801년(순조1)부터 1835년(헌종1)까지의 기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들 또한 편자가 윤치희로 비정되어 있다. 그러나 윤치희가 1827년(순조27)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된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오류일 가능성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위 목록집에서는 『난초』가 『승정원일기』의 초록이라 명시하고 있는데 『승정원일기』와 상이한 부분이 상당부분임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초록이 아닌 듯하다. 『승정원일기』를 그대로 초록했다면 『난초』에 더 자세한 기사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1888년(고종25) 3월, 승정원에 화재가 발생하여 1851년(철종2)부터 1888년까지의 『승정원일기』 361책이 소실되었고, 이에 익년 8월 일기청(日記廳)을 설치하여 박용대(朴容大)•김종한(金宗漢)•김병수(金炳洙)•민영달(閔泳達) 등 15명에게 改修토록 명하여 1890년에 이를 완성한 바 있다. 이때 비변사(備邊司)와 각 관청의 등록,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과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에 보관된 조보(朝報), 내각(內閣)의 『일성록(日省錄)』 등을 참조하여 작업을 수행하였다. 『난초』가 수록하고 있는 1863년(철종14)부터 1894년(고종31)까지의 기록 중 대부분이 1888년 화재로 유실된 부분임을 감안한다면 『승정원일기』를 개수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朝報에서 채록한 내용을 『난초』라는 형태로 일단 완성하고, 이것이 『승정원일기』에 상당량 반영된 듯 하다. 표제인 ‘爛抄’는 ‘爛報抄錄’의 줄인 표현이고, ‘爛報’란 것은 官報의 한 가지로 승정원에서 그날 그날 생긴 일을 매일 아침에 적어서 반포하는 ‘奇別’을 말하는 것으로 ‘朝報’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므로 ‘抄’의 대상은 『승정원일기』가 아닌, 승정원에서 반포한 朝報인 것이다. 그리고 『난초』의 편집은 한 사람의 성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당시 설치된 『일기청』 소속 관료의 공동 작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등은 자체의 사료적 가치가 막중하거니와 『실록』 편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난초』는 소실된 『승정원일기』의 개수 과정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바, 이에 대한 면밀한 고구는 조선 후기 사료 편찬의 일단면을 확인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소장 현황 및 영인관계】 장서각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표제의 『爛抄』(2-178), 『爛抄』(2-179), 『爛抄』(2-181), 『爛草』(2-180) 등이 소장되어 있으나 수록하고 있는 시기가 상이하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아세아문화사, 1972)과 『한국인물대사전』(중앙M*B, 1999).